태백산 천제단 주변

지난 토요일 새벽에 태백산을 올랐죠. 눈이 엄청 많이 내린 날이었죠. 새벽이라 사진을 찍기 어려웠어요. 눈도 눈 앞을 가리고 카메라 렌즈도 가리고. 손은 시리고. 바람은 거세고. 발은 어는 것 같고...

태백산에 오르면 많은 사람들이 주목에 핀 눈꽃을 배경으로 일출을 찍죠. 그런데 눈이 워낙 많이 내린 탓에 일출은 꿈도 못꾸었죠.  주목군락지는 새벽 어스름에 지나쳐 왔고, 정상에 섰을때가 아침 6시였으니.

사진은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빛으로 겨우 찍은 정상 부근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다 속 풍경같지 않나요? ^^ 카메라가 똑딱이다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기회에 지름신을 불러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망경사로 내려와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어라! 해가 뜹니다. 빠알갛게 말이죠. 카메라요? 생각도 못했습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쏙~ 사라져버립니다.

아이젠이 있었지만 귀찮아 그냥 내려왔습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발이 무척 아팠어요. 하지만 아이젠이 없으면 미끄럼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중간중간 등산화가 스케이트가 됐죠. ㅋㅋ

눈! 정말 실컷 구경했어요. 그래도 질리지 않네요. 눈속에 파묻혀 한 1주일 아무 생각없이 지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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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1-1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옷을 입고 있는 주목이 의젓해 보입니다.
1993년도인가, 1994년도인가 겨울에 갔었어요. 올라가는 길은 좋았는데
하산길에서 쭈르륵 미끄럼을 타며 내려 온 기억이 있어요. 아이젠이고 뭐고 없어서^^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셨으니 나중에 카메라 구경시켜주기에요.

하루살이 2007-01-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지름신 강림하시기엔 조금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조만간^^
자랑해야지~~
 


라디오 스타

영화 속에서도 박중훈이 연기하고 있는 왕년의 가수왕 최곤을 팔아먹고 싶어하는 제작사 사장이 나온다. 7080세대가 소비력이 있으니, 지금 그 구매력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털어먹자는 심산이다. 최곤은 그것이 매니저와의 결별을 통해 이뤄진 일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돈이야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겠지만 사람은 없어지면 다시는 보지 못한다. 영화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별이 스스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처럼.

그런데 이 영화는 음반 제작사 사장처럼 추억을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그렇더라도 괜찮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라고 괴로워하던 때가 벌써 수십년 흘렀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디오처럼 추억은 그것을 팔아먹는다고 해서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귓가에는 여전히 라디오를 통해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정말로 라디오의 사람냄새가 좋나? 사실 라디오를 틀면, 특히 FM라디오는 음악이 줄어든 자리에 연예인들의 신변잡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TV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처럼 다방 아가씨와 철물점 아저씨, 고스톱 치는 할머니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서로 정다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가능하기는 하다. 영월보다 더 적은 곳에서의 지역 방송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곤의 방송이 서울로 들어가 전국방송이 되는 순간 영월에서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이것이 라디오 스타라는 이 영화의 매력이자 환상인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라디오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둘러보게 만들기도 한다.

가수와 매니저의 관계. 흔히 사회시간에 배웠던 1차적 관계인지, 2차적 관계인지 모호하지만, 우리는 2차적 관계 속에서도 1차적 관계를 목말라 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최곤이 불렀던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가 여전히 사람들 입에서 불려지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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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행복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까요, 만족의 다른 이름일까요.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의 3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무엇으로 가득찼던 것일까요.

사형수 윤수와 자살을 시도하는 유정의 만남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유정이 자살을 꿈꾸는 것은 과거의 상처때문입니다. 그 상처 자체보다도 더 큰 것은 배신감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엄마에게 다가갔을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의 뺨을 때립니다. 위로하고 감싸주고 쓰다듬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부와 명예라는 다른 이름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아니죠. 어머니도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감당 못할 그 무엇. 영화는 유정이 엄마를 용서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윤수는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눈이 먼 남동생과 함께 노숙생활을 시작합니다. 유정의 애국가를 듣고 힘을 얻곤했던 동생은 어느 겨울날 숨을 거둡니다. 윤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고 짧은 것인지를 깨우칩니다. 다시는 사랑 같은 것 못할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가스배달을 하던 시절, 미용실 아가씨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찾아온 위기는 아내의 자궁외 임신. 수술비조차 마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결국 한탕 하려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왜, 칼을 들었는지조차 모르게 말입니다. 동료의 죄까지 모두 뒤집어쓴채 사형만을 기다립니다. 이때 윤수의 칼에 쓰러졌던 파출부 아주머니의 엄마가 찾아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편히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말입니다.

영화는 용서를 말하고 있는듯합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조차 용서를 베푸는 사람들.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문을 서로에게 열어주며 비로소 용서라는 온기가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 겁니다.

그 행복은 과거를 씻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때문일까요.

이들의 행복이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이 살고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것은 오로지 삶이 살아갈만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지금 당장 너무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행복지수. 경제강대국 보다는 못산다고 생각하는 동남아 국가들이 훨씬 높죠. 그 행복감은 윤수와 유정의 행복과 같은 행복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디서 찾아온 것일까요.

옆 사람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죠. 한번쯤 안아보는 건 어떨까요.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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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0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우리도 안아보아요. 꼬옥~

하루살이 2007-01-0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따뜻해라!!

파란여우 2007-01-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부끄)*^^*

하루살이 2007-01-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함께 해요
*^^*

프레이야 2007-03-2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며 '용서'를 생각했어요. 그 할머니의 용서가 눈물겨웠어요.
용서는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욱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봉산 주봉

해가 막 떨어지려는 찰나의 도봉산 모습입니다.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산의 실루엣은 북한산이고요. 뽀샵을 안한 사진이다 보니... 앞에 어둠 속에서 솟아있는 바위가 바로 도봉산 주봉입니다. 예전 산악인들이 바위연습을 많이 하던 곳이죠.

무척 추웠습니다. 감기 기운마저 있었는데. 하지만 바위가 품고 있는 자기장이 묘약이라고도 하더군요. 그 덕분인지 다음날 몸이 조금 괜찮아진듯 하기도 합니다. 추위에 조금 떨었지만 감기가 악화되지 않은걸 보면 효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찬바람이 불어도 해는 뜨고 가라앉습니다. 바람에 휘둘리지 않는군요. 갈대처럼 흔들흔들 거리는 제 마음 속엔 아직 태양이 들어서질 못했는가 봅니다. 따뜻한 햇볕이라도 바람에 실려 날아와 제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주었으면 합니다. 올라서는 해가 아니라 사그라드는 해을 향해 빌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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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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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것은 몇 주 전인데 이제서야 자판을 두드린다. 붕어에 가까운 기억력으로 8편의 단편 내용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쉽게 생각나진 않는다. 나쁜 소설과 국기게양대 로망스, 수인 정도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정도다. 어쨋든 소설이 꽤 재미있는 반전으로 끝을 낸다는 공통점이 있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3편을 포함해 대부분의 소설들이 웃음 뒤에, 나와  내 주변을 힐끗 돌아보게 만든다는 묘미도 있다. 내가 처한 위치, 또는 목적이 흐지부지되고 주위 환경에 동화되거나 또는 차라리 오해가 나은 착각이나 속내를 비쳐보일 수 없는 아부 등이 소설을 전반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게양대 국기를 훔쳐 생계를 유지하는데 게양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다. 소설만 읽어주겠다면서 결국엔 응큼한 행동을 한다. 거짓말의 냄새를 맡다가 어느새 거짓말을 풍긴다 등등) 

정말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다.

그냥 날 내버려두세요 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의 인간. 나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로 형성된다는 인간. 이러니 내 이럴수밖에.

소설 속 등장인물의 갈팡질팡함이 꼭 내 마음 속을 닮아 애잔하면서도 부끄러운 웃음을 흘린다. 제발 내 무덤앞 비명엔 갈팡질팡하다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어쩌랴 갈팡질팡하는 것이 숙명에 가까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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