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갈 때면 노오란 은행잎을 비롯해 오색의 단풍잎들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길을 걷다 그 화려한 색에 놀라 단풍을 하나 집어들어 책사이에 끼워 놓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이 그냥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일 터이다. 단풍은 그렇게 찬란했을 때 땅에 떨어지는 걸로만 알았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즈음. 산을 오르다 갑자기 낙엽이 되지않고 끈질기게 가지에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을 보게됐다. 단풍나무의 그 화려한 잎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칙칙한 갈색의 쪼그라든 잎들만이 처량하게 매달려 있었다. 단풍의 색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색을 다 잃어버리면서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레한 그 잎은 탐욕에 대한 깨우침을 준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야 했음에도 기어코 자리를 지키려 한 그 잎의 욕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듯했다. 퇴색의 끝자락까지 버텨보았자 그것은 안타까움조차 자아내지 못한다.

단풍나무 옆엔 소나무가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솔잎은 어떻게 독야청정할 수 있을까. 솔잎은 보통 2~3년에 한번씩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즉 솔잎 또한 낙엽이 되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솔잎이 나오는 것이다. 그 순환의 물결이 푸루름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솔잎이 말해주는 청정한 마음이다.

퇴색은 누구나가 겪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퇴색이 주는 초라함에서 벗어나 청청하고 맑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자세에 있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언제나 젊은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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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생각한다 - 집이 갖추어야 할 열두 가지 풍경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다빈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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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가 위기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비롯해 한국 경제의 위기 속에는 주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집이라는 것이 돈으로 계산되면서 부동산이라는 투자처로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집은 탐욕을 빨아들이는 거주처가 된 셈이다. (물론 옮겨다니지 않고 안주할 수 있는 자신의 집을 갖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 있지만)

언제부터 집은 이렇게 물적 대상이 되었을까. 이 책은 집이라는 것이 본래 가지고 있던 거주지로서의 참된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12가지 요소로 집을 바라보며 집이 가지고 있어야 할 충족조건을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바로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이다. 그리고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재미와 여유, 그리고 집,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손에서 자라나는 애착, 적당한 격식, 효과적인 장식, 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집,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 두 가지 의미의 빛이라는 재료를 내놓는다.

집이란 이런 것이었다. 혼자이든 가족이 함께 하든 그곳에선 평온함과 행복감, 재미와 여유가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물론 이것은 집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도 중요할 것이다. 때로는 훤하게 트여진 빛의 공간보다는 조금은 어두우면서도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할 수 있는 명상의 공간도 필요하다. 집은 그저 들어가 잠자거나 또는 밥만 챙겨 먹는 곳은 아니다. 그 속에선 나의 숨결과 때, 추억과 기억이 혼재하는 곳이다. 아니, 집과 함께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비록 척박한 원룸의 공간이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숙집처럼 잠깐 머물러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행복이 자랄 수 있도록 집안 구석구석 손길을 끼쳐봐야겠다. 즐거운 곳에서 나를 오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야할 곳은 집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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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8
천경환 지음 / 갤리온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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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은 몇분의 1초에서 몇천분의 1초까지 찰나의 순간을 담는다. 그 찰나는 온전히 빛이 주는 세상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 속에서 눈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풍경 속에는 일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 비쳐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몇백년 몇천년이고 굳건하고 묵직하게 버텨내고 있을 것 같은 바닥을 통해 빛이 주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지하철 철로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 찬겨울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바닥에 드리운 빛의 찬가, 지하철 통로의 타일에 부닥친 빛이 어그러진 모습, 유럽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벽과 바닥에 흩뿌려진 아리따운 햇빛 등등. 바닥에 드리워진 빛의 찬가와 함께 바닥 그 자체에 탐닉하고 있는 저자의 눈초리가 매섭다.

건축가인 저자는 건축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닥이 갖는 의미에 탐닉하고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 전해주는 빛의 향연 속에서 삶을 생각한다. 그것은 낯섬이 주는 깨우침이다.

현대미술이 감상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감흥의 본질은 낯섦일 것이리라.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여준다는 것.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은 새로운 생각거리, 고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많은 예술가들이 누가 더 낯익은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잘 포장해 내느냐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96쪽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낯설고 신비스러운 풍경,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인식의 과정이 머릿속 엔진을 재시동하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그래서 내게는 무척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104쪽 

 

일상은 매우 지루할 듯하고 매일 지나치는 길은 그 일상을 더욱 지루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오늘 걷고 또 걷는 그 길 속에서도 빛은 한번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쏟아져내리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풍경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다. 뚜벅뚜벅 생각없이 걷다보면 일상이라는 이름의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이다. 그 속에서 단 한순간의 미묘한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눈을 뜨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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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개론 -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 읽기
윤영수.채승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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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혼자만의 문제일까. 내가 숨쉬고 내뱉는 공기에서부터 밥 한끼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된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상호작용, 누군가를 넘어 환경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것이 바로 생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생태라는 것은 닫혀진 세상이 아니라 열린계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것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너무 안정되어 있거나 또는 너무 혼돈되어 있으면 그것은 적응이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즉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면 결국 죽음의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증가는 결국 에너지의 소멸로 이어지고 그것이 바로 안정된 상태로 생존과는 정반대의 길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선 계속되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가능해야 한다. 이것은 교배와 변이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교배와 변이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 혼돈의 가장자리란 혼돈 그 자체라기 보다는 혼돈과 질서 사이의 경계점 어딘가를 지칭한다. 이것은 예측가능한 곳이 아니다. 즉 예측보다는 적응, 경쟁자 행동에 대한 반응과 적응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래는 결코 예측가능하지 않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얼마나 잘 하는가가 생존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적응은 혼돈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을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변화의 중심은 혼돈의 가장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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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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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적 습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적 습성이 진화생물학적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윈이 그의 종의 기원에서 생물학적 진화라는 현상을 주장했을 때 그가 제시한 증거의 대부분은 해부학적인 것이었다. .. 나중에 생물학자들은 해부학적 측면에 대한 다윈의 고찰이 생리적 측면이나 생화학적 측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동물 또는 식물의 생리적, 생화학적 특성은 특정 생활 방식에 맞추어 적응해 나가고 환경조건에 따라 진화하게 된다. 최근에는 진화생물학자들이 동물의 사회 체제 역시 진화와 적응을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성적 습성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동물 종의 식량사정, 포식자의 공격 위험, 기타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어떤 성적 특성이 생존과 생식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예)거미와 사마귀 수컷의 교미 후 잡아먹힘-교미의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암컷의 영양상태가 후손의 생존 가능성이 높을 경우가 합쳐져 발생... 단, 이것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주장처럼 개체의 생존 보다는 유전자의 전달을 극대화 하는 것이 유전이라는 전제하에서 가능.

암컷과 수컷의 양육책임과 관련해서는 각 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상호 연관된 세 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이 수정된 알 또는 태아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이미 수정된 태아나 알을 돌봄으로써 또 다른 자손을 수정시킬 기회를 얼마나 잃어버리게 되는지, 그리고 수정된 태아나 알이 자신의 자손임을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지가 그 세 가지 요소이다.

인간의 생식에 있어서 몇 십년 전만 해도 말도 안 될 일이었던 방법이 점점 더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체외수정, 인큐베이터 등. 여자만 아이에게 젖을 주도록 되어있는  진화적 적응도가 생리적으로 볼 때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다른 동물들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특성은 진화에 거역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살인, 강간, 대량 학살에 반대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유전자를 후손에 널리 퍼뜨리는 수단으로서 어느 정도 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다른 동물 종이나 초기 인류의 사회에서는 널리 실행되었떤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은 배란 여부가 드러나지 않고, 여성이 언제나 섹스에 응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왔고 그 결과 우리만의 독특한 조합, 즉 결혼, 부모의 공동양육, 혼외 정사의 유혹으로 이루어진 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을까?

동물의 세계에서 어린 새끼들의 사망원인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유아 살해 관행은 어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원래 하렘의 주인이었던 수컷을 몰아내고 새로이 하렘을 차지하고자 하는 침입자 수컷이 새끼를 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암컷이 발정기를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교미에 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배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사바나원숭이의 암컷은 모든 잠재적 유아 살해자인 이웃 수컷들을 너그러운 중립적 자세를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연 과시형 남자(사냥)는 비록 수는 적되 친자 관계에 대한 확신이 큰 부양형 남자(수렵, 채집)의 전략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신이 많은 아이들의 진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얻음으로써 더 나은 유전적 이익을 얻게 될까.

만일 여러분이 신 또는 다윈이 되어서 나이 든 여자들이 폐경을 하는 편이 낳을지, 생식력을 되찾는 편이 나을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폐경이 가져다 주는 비용과 이익을 대변과 차변에 기입해 보자. 폐경의 비용은 생식력이 정지됨으로써 포기해야 할 잠재적 아이들이다. 폐경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노령에 아이를 출산하거나 키우다가 죽게 될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과, 이전에 낳은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들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책 인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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