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새로 생겨나고 있는 모니터에는 지하철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가 표시된다. 보통 한 역마다 2분쯤 걸리니, 두 정거장 전부터 보여주는 모니터에 전철이 표시되면 대략 4분 이내에 도착한다는 걸 알게 된다.   

지역 도시에서는 시내버스가 몇분 후에 도착하는지를 표시해 주기도 한다. 몇분 후 몇번 노선 버스가 어디 정류장에 도착하는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모바일을 통해서도 받아볼 수 있다.  

이렇듯 기다림도 계산이 되는 시대다. 막연한 기다림은 사라졌다. 초조해할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기다림도 편안해진다.  

사람과의 만남은 또 어떤가. 휴대폰 덕분에 약속한 상대가 어디만큼 왔는지를 시시각각 체크할 수 있게됐다. 반면 약속은 쉽게 깨지기도 한다. 연락이 어려운 시절, 한번 정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무게감을 지녔지만, 어느 순간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고 쉽게 깨지게 됐다. 또는 기다림이 헛되게 무산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절부절하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괴로워할 필요는 사라졌다. 

예측가능한 기다림이란 편안함을 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이 철저한 계산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간혹 그 계산이 틀어지면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그리워지는 기다림이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대상을 기다리는 것이 꼭 초조와 불안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봄이 되면 꽃이 피길 기다리고, 겨울이 되면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렇다. 물론 이런 기다림도 예보라는 형식을 통해 미리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예보가 100% 맞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흥분을 가져온다. 동네 어귀에 피어난 샛노란 개나리나, 새벽 귀가길에 우연히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첫눈은 행복감을 자아낸다. 약속을 정해 애인을 만나는 기쁨보다도 깜짝 출연으로 얼굴을 대하는 기쁨이 훨씬 크듯이 말이다. 

편안함 보다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예측하지 못한 기다림의 대상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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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9-03-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찾아 나서는 것도 기다림이 아닐까 싶네요. 나의 기다림이 아니라 꽃을 피우고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기다림. 이렇게 따뜻해진 날씨에 아직 매화가 안 핀걸 보니 그래도 역시 지조가 있네요. ^^; 기다림의 크기만큼 기쁨의 크기도 커지길 바랍니다.

하루살이 2009-03-1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남산에도 얼른 개나리가 폈으면 좋겠어요. ^^
 
멋진 하루 - My Dear Enem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멋진 하루는 조금 당황스러운 영화다. 전도연이 1년 전 빌려줬던 350만원을 받기 위해 헤어졌던 애인 하정우를 찾아가고, 하정우는 돈을 갚기 위해 전도연과 함께 주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만나 돈을 빌린다는 게 영화의 내용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선 도대체 왜 전도연이 1년전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면서까지 돈이 필요한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이 질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시작하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어쩃든 영화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도연과 하정우가 사람들을 만나 돈을 빌리는 모습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사람들 가슴속엔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딱지가 들러붙어 있음을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허허거리고, 다른 누군가는 가시 돋힌 말을 내뿜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담담하기도 하고, 억척스럽기도 한 가지각색의 겉모습은 상처를 감추기 위한 포장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 한마디다.  

너 괜찮니? 

하정우가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 꿈이야기를 한다. 링 밖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저씨같지만 격투기가 시작되면 거친 모습으로 돌변하는 표도르가 나타나 자신을 토닥거리며 "너, 괜찮니"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전도연이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그저 "너, 괜찮니"라는 단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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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못생겼다' 

속으로 생각했다. '웬만하면 봐주겠는데...' 

지하철 안으로 갓난아기를 안은 새색시가 들어온다.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다. 잠자는 갓난아기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이었던 셈이다. '정말 못났다' 납작한 코며 툭 튀어나온 입술.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어라, 그런데 이 새색시 좀 보게. 내 마음을 읽었나? 손으로 자꾸 콧대를 세워준다. 아마 그러면 콧대가 실제로 선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도가 지나쳤다. 자고 있던 아이가 그만 깨고 말았다. 울음을 터뜨리면서. 당황한 새색시. 얼른 코에서 손을 때고 얼르느라 정신 없다.  

풋,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한편 머리를 맞은듯한 충격.  

생김새란 생겨난 모양새다. 생겨난 모양새를 고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 세상이다. 그러니 돈 들여 고치기 보다 어렸을 적부터 그 생김새를 바꾸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선뜻 이해가 간다. 잘난 자식을 만드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면 그 잘난 이라는 말엔 잘 생긴이란 모습도 포함되어져야만 한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참 잘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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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고로 80분마다 기억을 잊는 수학박사. 그리고 그의 집에서 식사와 청소를 담당하는 가정부와 그녀의 아들. 이 세명이 엮어가는 사랑.우정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메모를 보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아야 하는 박사의 아픔이나, 남편과 헤어져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정부의 아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전해주는 정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의 외로움, 그리고 박사의 형수지만 과거 그를 사랑했던 여인으로서의 애달픔 등은 소설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는다.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은 애틋함을 더한다. 물론 이들 사이에 신뢰와 우정이 커가는 모습에 흐믓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흐믓함과 애틋함, 바로 이 정서가 소설을 관통하면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여기에 덤으로 박사가 말해주는 숫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넘어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도 보여준다.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더구나 그 장소가 정상이란 보장은 없어. 깎아지른 벼랑과 벼랑 사이일 수도 있고, 골짜기일 수도 있고.  51쪽 

박사의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가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른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향한 도표다. 91쪽 

아무튼 그는 그 초라한 손가락으로 드넓은 하늘의 한 점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무도 구별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113쪽 

수학 또는 수치 대신 인생을 집어넣어도 의미는 통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인생을 알 수 없다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향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조용한 진리를 대할 때 때론 환호하고 때론 절망하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인생은 누구나 걸어야 할 길이며 그 속에서 사랑 또한 수와 같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랑의 크기는 0에서부터 무한대까지 다양하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향해 나갈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박사의 온전한 정신의 한계가 80분도 채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비록 박사가 자신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와 함께 나눴던 추억의 크기는 무한하기에 이들의 사랑과 애정은 절대 나누어지지도 빼지지도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이처럼 나눗셈과 뺄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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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할만한 가치 있는 뭔가를 배워왔니?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노인으로 태어나 점차 젊어지게 되는 벤자민 버튼은 거동이 자유로워지자 집을 떠나 여행에 나선다. 몇년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그를 키워준 어머니가 건넨 첫마디가 바로 "반복할 만한 가치 있는 뭔가를 배워왔니?"다. 

일상의 지루함은 반복에서 비롯된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간혹 그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모험심으로 꽉 찬 사람들도 있다. 반복은 지겨움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반복이 꼭 지겨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운동을 하든, 악기를 다루든, 기계를 만지든 간에 반복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력을 쌓을 수 없다. 소위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반복은 되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는 번복이 필요하다. 번복이란 뒤집어 엎는 것을 말한다. 반복 속의 번복 또는 번복을 통한 반복이 반복의 지루함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즉 판박이 같은 반복만으로는 발전이나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반복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차이점을 간파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번복의 거름이 된다. 즉 반복이라고 해서 똑같은 반복인 것이 아니라 번복의 반복이 되는 것이다. 번복을 갖춘 반복의 힘은 가치를 생산한다.  

그래서, 반복할 만한 가치 있는 뭔가를 배운 다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 된다. 단지 그 기쁨을 찾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대부분 반복 속에 파묻혀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번복의 순간을 찾아내지 못하고 반복을 뛰쳐나와 또다른 반복만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반복할 만한 가치 있는 뭔가를  찻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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