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U턴이다.

공덕동 오거리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에서 U턴 연습. 오거리 쪽은 차선이 넓은데다 신호등도 복잡하지 않아 크게 어렵지 않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워 큰 어려움 없이 해냈다. 하지만 서강대 쪽으로 향하다 신호등을 받고 U턴 하는 곳은 우회전 차량은 물론 오른쪽에서 느닷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등으로 인해 진땀을 뺐다. 특히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해 나타나는 오토바이는 사이드미러에도 잘 보이지 않아 자칫 사고가 날 뻔할 정도로 아찔했다. 그냥 앞으로 달리는 것보다 수십배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래, 맞다. 돌아가는 길은 단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살펴보아야 할 것이 산더미다.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들을 대비해야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을 수 있다. 때론 돌아서야만 하는 길, 절대 한눈 팔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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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날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붙은 것은 아니다. 조심조심 운전하고 있자니 옆에서 한마디 날라온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차선을 꼬박꼬박 지키려 하고, 앞뒤 거리 유지하려 하는 모습이 영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실제로도 차선 자체보다는 옆차들과의 거리가 더 중요할 것이다. 

"긁혀도 좋다고 생각하고 운전하세요. 그래야 운전을 배웁니다." 

맞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안전만을 생각하다가는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기 쉽상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1000번의 실패 끝에 한번의 성공이 아니라, 1000번의 도전 또는 1000번의 행위 이후 또다른 도전 또다른 행위가 성공일 뿐이다. 

모험은 실패를 거름삼아 커가고 행복은 그 거름을 바탕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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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첫날 배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좌우를 둘러보라는 것. 멀리 보고 흐름을 읽으라는 것을 명심하다 보니 다른 함정에 빠졌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다 앞을 보는 것을 간혹 잊어버린 것이다. 옆 차선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쳐다본다는 것이 오히려 지금 가고 있는 차선의 앞 차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되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시선은 앞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길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목적만을 향해 달리다간 꽈당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브레이크는 제동 즉 멈춘다는  뜻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연수강사는 브레이크는 정지가 아니라 속도조절임을 강조했다. 액셀도 마찬가지다. 액셀도 속도조절이고 브레이크도 속도조절인 것이다. 다만 더 빠르게이냐 느리게이냐의 차이일뿐. 운전은 속도조절의 능력을 갖추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말한다. 절망에 빠져 한치 앞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상황. 좌절하고 움츠려들며 한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멈춰 선 것이 아니다. 다만 속도를 늦췄을 뿐이다. 인생의 흐름에 과속을 막아준 일이기도 하다. 잠시 천천히 간다 해도 다시 액셀을 밟으면 된다. 늦게 도착한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끝내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레이크도 액셀도 모두 속도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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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운전학원에서 하루 20분씩 속성으로 딱 나흘. 그리고 응시한 면허시험에 덜컥 합격해버렸다. 그 이후로 핸들 잡은 적이 한번도 없으니 이건 면허를 따나 마나한 일. 다른 사람이 운전한 차만 타고 다니다 보니 너무 편했다. 가끔, 정말 가끔 운전할 줄 알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뿐. 귀찮고 성가신 마음에 운전석에 앉진 않았다. 그러나, 이젠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일뿐더러 행동의 아버지였던 셈이다. 

아무튼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우습지 않은가.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쥐어준 면허증이 실제론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하니 말이다)하고 나서 도로연수를 신청했다. 시간당 2만원씩 10시간 20만원의 수강료. 아깝다면 아깝겠지만 차가 없는 상황에서 배우려면 별 수 없다. 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더군다나 아는 사람들은 옆에서 운전을 가르쳐주는 걸 꺼려한다. 자신의 숨겨진 성격이 확 드러날까봐. 

첫날. 액셀과 브레이크, 깜박이와 미등, 전조등 정도의 기본적인 기계 작동만 알아둔 채 바로 운전에 들어갔다. 14년 장롱인데 괜찮나요? 그냥 가세요. 제가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겁내지 말고.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액셀을 밟았다. 좌우 폭이 전혀 가늠되지 않을뿐더러 사이드 미러는 커녕 계기판 조차 흘끗 마음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말 그대로 앞만 보고 달린다. 좌우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걸어가는 길에 자신이 없고, 자꾸만 주저주저 하다보면 자신의 바로 앞만 쳐다보며 가는 삶을 살아갈련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고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이를 토대로 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것이다.  

또 하나. 앞만 보고 가더라도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저멀리 신호등이나 교통상황 등 흐름을 먼저 읽고서 운전을 해야 방어 운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상황만을 대처하다가는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꼼짝못하게 될 수도 있다. 흐름을 읽는 눈.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가지 못하더라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세상의 흐믈을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운전, 참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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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독 - Alpha Do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알파독은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납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납치된 아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수십명에 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년의 죽음을 막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영화는 목격자를 차례대로 순서를 매기면서 보여준다). 그것은 납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감금의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소꿉장난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런 평온하고 유쾌한 아이들 장난같은 모습으로 인해 결말은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무엇이 이토록 젊은이들의 미래를 꼬이도록 만든 것일까

 

치기와 오기

치기란 어리고 유치한 기분이나 감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리고 유치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결과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즉흥적인 상황대처인 셈이다. 반면 오기는 어떤가. 오기란 다가올 결말을 알면서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행동하는 자세일 것이다. 치기는 가지치기 당하듯 언젠가 떨쳐내야 할 감정이지만 오기는 불러오기처럼 때때로 내면 깊숙히 감추어두었던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하는 상태이다.

영화 속 납치는 전혀 계획적이지 않다. 납치를 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오히려 당황해한다. 치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들의 치기어린 행동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던지지 못한다. 그 과정 속에서 치기는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뒤죽박죽 되어버린 미래가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도록 만든 것이다. 치기가 치기로 끝나지 않고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아이들의 치기가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반대로 과보호 때문인가(각각 다른 아이의 부모로 나온 브루스 윌리스와 샤론 스톤의 조금은 추레한 모습과 일품 연기는 또다른 영화의 재미이다). 마약과 총이라는 매개물이 치기를 증폭시킨 것인가. 아마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치기를 조장했을 것이다. 이 치기어린 모습 밑에 감추어진 중산층의 따분함 또한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미래를 꿈꾸는 것. 혹 그것이 치기 대신 오기 부릴 줄 아는 아이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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