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악마를 보았다>란 영화는 잔인한 영상 때문에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역시 잔인하다다. 하지만 최근 개봉했던 이끼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허준호를 감옥에서 린치하는 장면들) 그럼에도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함 때문에 홍역을 앓은 것은 잔인함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일터다. 만약 이 영화에서 잔인함을 덜어낸다면 영화는 힘을 잃고 말았을 테다. 악마를 보여 줄 화면을 잃어버릴 테니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연쇄살인범 최민식에게 약혼녀의 목숨을 빼앗긴 이병헌이 범인을 찾아내 반복해서 고통을 가하는 복수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왜 악마를 보았다라고 했을까. 살인범 최민식이 악마일까. 아니면 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의 힘을 빌린 이병헌이 악마일까.  

악마란 사전적 의미론 사람의 마음을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을 말한다. 또는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맥락으론 최민식이 그야말로 악마다. 이 악마의 특성은 고통과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병헌의 복수가 먹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병헌의 품성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된다.      

한편으론 악의 힘을 빌려 악을 응징하는 이병헌이 악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약혼녀를 죽였다는 이유로 끈덕지게 그를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복수의 도를 넘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의 행동은 멈춤이 없다. 오로지 앙갚음만이 남아 있는 그의 마음은 악마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천사의 탈을 벗고 악마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이병헌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말한 악마는 바로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이 복수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보다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국정원 출신의 뛰어난 무술 능력과 첨단기기가 없었다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히 잔인무도한 살인범에게 대적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보통 사람들은 국가라는, 또는 법이라는 공적인 힘을 통해 복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힘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용납이 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대신 마음 속의 분노는 용서라는 이름으로 사그라들도록 강요(?) 당한다. 하지만 그 용서란 것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보여준 것은 바로 용서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낼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악마의 실체가 아닐까. 힘이란 언제든 그 악마적 속성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을 동경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옴짝달싹 못할 땐 위치를 바꾸면 벗어날 수 있다. - 영화 '겟 썸' 중 

영화 '겟 썸'은 격투기를 소재로 한 성장영화다. 아버지의 음주운전사고를 방치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격투기를 배우면서 가족과 화해하고, 사랑을 이해하며 성숙해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 격투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위기탈출법에 있었다. 마운트와 같은 상황에서 옴짝달싹 못할 때 스승은 위치를 바꾸어야지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누워서 제압당하던 몸을 180도 뒤집어 올라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누운 상태에서 팔을 밖으로 빼내고 발을 상대방에게 걸어둘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좌절의 상황에서도 이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위치를 바꾸는 기술은 우리의 사고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역지사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언제나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좌절에서 탈출하는 것도 물리적 외부환경 보다는 정신적 위치의 자리바꿈에서 더욱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이 어머니와 화해하고 여친과 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듯이. 탈출구는 버스 속 유리를 깨는 망치를 통해 유리창을 깨뜨리기 보다는 반대편 창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영화처럼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인셉션은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나비 꿈을 꾼 장자가 나비였던 것이 꿈인 것인지, 지금 사람으로 있는 것이 꿈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호접몽 같은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남의 꿈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훔쳐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바로 이 부분에서 호접몽을 떠올릴 수 있겠다.) 꿈속의 꿈, 그리고 다시 그 꿈속의 꿈으로의 침입.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그냥 화면을 쫓아가다 보면 크게 혼돈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꿈 속에서 그 사람에게 생각을 심어준다. 그 생각은 작은 씨앗이 되어 점차 커지더니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감독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지 아닐까 싶다.  

꿈과 무의식은 이성의 시대를 고하는 한 부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성적 측면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것들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는 이성의 작용을 도움받아 행동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 사람의 감정적 측면을 건드린다. 가령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악해 무의식 깊숙히 들어가 새로운 감정을 심어줌으로써 원하는 행동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생각을 교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추억.기억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나의 감정선을 바꾸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동은 크게 변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 샐리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를 바꾸려 노력하기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을 바꾸려는 노력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가 박약함을 한탄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뒤바꿔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를 보여준다. 호접몽과 같은 상태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주인공의 '토템'이 바로 팽이다. 팽이가 멈추면 현실이고, 계속 돌면 꿈이라는 설정.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팽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맞이한 해피엔딩은 꿈일까 현실일까.  

아, 팽이야, 그대로 쓰러져다오. 나도 모르게 애타게 소망해본다. 죄책감에 시달렸던 주인공의 평온한 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꿈인들 어쩌랴. 차라리 그 꿈속에서 깨지 말기를.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란 없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BS스페셜 <옥수수의 습격>두번째 방송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환원주의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어 염려스럽다. 

풀을 먹고 자란 고기나 달걀, 치즈, 우유 속에서는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이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고지혈증,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1부의 요점이었다. 현실은 옥수수로 이루어진 사료를 먹은 고기로 인해 오메가6가 너무 많은 육류로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2부는 우리가 지금과 같은 양의 육류를 소비한다는 전제하에 제작이 이루어진 듯하다. 일단 잃어버린 풀을 찾아야 하는게 최선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선 즉 풀을 먹고 가축을 기를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들깨나 아마와 같은 오메가3가 풍부한 씨앗들을 옥수수 사료에 함께 쓰면 고기의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이상화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오메가3를 첨가한 사료를 먹인 고기를 먹은 사람들의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낮아지는 것을 확인한다.  

그런데 정말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이라면 왜 이런 수고를 해야만 할까. 지금처럼 고기를 먹고 오메가3를 섭취하면 그만인 것 아닌가. 궂이 고기에다 그 비싼 들깨와 같은 사료를 먹여 고깃값을 올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육류의 섭취가 가져온 문제를 고기의 성분 분석을 통해 들여다보는 환원주의가 가져다 준 오류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다.  

옥수수 사료를 먹은 고기가 문제인 것은(특히 소에게 있어서) 원래 씨앗이 아닌 풀을 먹는 가축의 위와 장이 이 씨앗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O157 과 같은 병원성 대장균이다. 가축을 도살하기 전 한달 전부터 풀만 먹이더라도 O157은 사라지지만 현재는 방사선 조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부작용을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원래의 식성을 무시한 사료가 건강한 가축을 키워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군다나 옥수수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음식을 통한 건강 문제만은 아니다. 옥수수 단일 재배로 인한 토양의 오염과 잔류 농약, 그로 인한 지하수와 하천의 오염, 다국적 곡물 기업의 횡포, 제3세계 빈곤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메가3와 오메가6로 접근한 옥수수의 습격은 옥수수 사료가 가져다 준 문제점을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 반면 모든 문제점이 오메가 지방산이었다는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져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만약 제작진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오메가6가 많이 함유된 맛좋은(?) 지방을 실컷 먹은 후 오메가3 캡슐만 보충해줘도 될 것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10일 SBS 스페셜 <옥수수의 습격>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 성인병의 원인으로 취급받던 고기와 유제품이 오히려 건강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버터를 매 끼니마다 한움큼씩 먹었더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고혈압이 나았다는 말을 누가 섣불리 믿겠는가. 그래도 실제 그런 사람들을 목격했으니 찬찬히 그 이유를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페셜에서 다룬 사람들이 먹은 고기들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고기와 같은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먹는 고기, 버터, 계란 등은 방목을 통해 자란 소와 돼지, 닭에게서 얻은 것들이다. 방목이란 바로 풀을 먹고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소. 돼지, 닭이 풀을 먹지 무얼 먹는단 말인가. 현실을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광우병을 야기했던 고기의 찌꺼기들이 사료로 쓰이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는 많아졌다. (물론 소 고기의 잔재를 닭과 돼지에게 준다. 그리고 다시 닭과 돼지 고기의 찌꺼기는 소의 사료로 쓰이는 경우는 여전하다.) 하지만 사료는 풀대신 곡물이 들어가 있다. 그 중에서도 옥수수가 가장 많다. (수확의 효율성을 따졌을 때 우수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풀을 먹은 대신 옥수수를 먹는 고기는 무엇이 다를까. 왜 풀을 먹은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건강해지는 반면 옥수수를 먹는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성인병에 시달리는 걸까. 스페셜은 그 차이를 지방성분으로 분석한다.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비율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1 대 1에서 1대 4 정도의 비율이 건강에 좋은데 옥수수를 먹고 자란 고기나 달걀은 60대 1을 넘어 200대 1에 육박하기도 한다. 오메가 6는 오메가 3와 함께 세포벽을 구성하는 요소인데 활동성이 떨어져 영양분의 전달을 더디게 하고, 또한 지방 세포의 크기를 키우는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내용들은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폴란이 쓴 <잡식동물의 딜레마>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스페셜은 이 책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선 아무리 유기농이라 하더라고 소는 곡물을 먹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많은 유기농 작물들이 말만 유기물일 뿐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TV로 보여진 내용들은 옥수수의 습격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상 옥수수의 습격은 보다 큰 문제를 일으킨다. 단일 작물 재배로 인한 병충해 피해, 따라서 GMO나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의 과다 사용을 불러오고, 흙이 죽고 가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제3세계 국가의 자급자족적 농경지나 숲을 파괴하고 들어가,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수수 사료가 넘쳐나는 이유는 다국적 종자 회사들과 미국 정치권, 농촌 경제와의 얽히고 설킨 이익 때문이다.  

아무튼 <옥수수의 습격>은 현재 지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풀>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