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의 산행은 트레킹으로 결정헀다. 한켤레 뿐인 등산화를 빨았는데 아직 덜 마른 탓에 운동화로 갈만한 코스를 선택했다. 제천 청풍호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자드락길. 그 중 괴곡성벽길을 걷기로 했다. 자드락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의미한다. 일종의 둘레길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또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조금 나쁨'이란다. 아무래도 한국의 봄은 미세먼지와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 모양이다. 쾌청한 날 산에 오른다면 가히 축복이라 할만하다.

 

괴곡성벽길의 출발점은 옥순대교에서부터다.

가은산 맞은편의 옥순봉 쉼터에 주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코스가 시작하는 길 맞은편에도 주차장이 있다. 옥순봉 쉼터에서 주차하면 옥순대교를 걸어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면 일부러라도 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옥순봉 쉼터 맞은편에 나 있는 가은산 등산로로 2분만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수묵화라고 할 만하다.

 

동양의 그림이 왜 수묵화가 주가 됐는지는 그 풍경을 보면 이해가 갈법하다.

 

옥순대교를 건너면 바로 자드락길로 접어든다.

잠깐 길을 오르면 그때부터 청풍호를 오른쪽에 끼고 계속 걷게 된다. 방금 지나온 옥순대교도 눈앞에 펼쳐진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흙길이다. 봄에 풀어진 흙들이 부드럽다. 맨발로 걷는듯할 정도로 얇은 바닥의 신발을 신은 덕분에 흙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급경사는 거의 없고 완만한 길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잠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에 성벽이 있는걸까. 능선 중간쯤에 가보니 그 궁금증이 풀렸다. 실제로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이 괴곡의 능선이 삼국시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성벽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 전쟁터가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휴양지가 되다니, 역사도 삶도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렇게 흙길로만 50여분을 가면 '사진찍기 좋은 장소'라는 곳에 도달한다.  

솟대들이 환영하는 그곳에 서면 금수산과 청풍호, 가은산, 옥순대교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아, 미세먼지만 없다면...

이곳에서 다시 2,3분만 걸으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 12미터. 군인들이 레펠훈련을 하는,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미터와 불과 1미터 차이가 나는 전망대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조금 전의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반대편 모습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왔던 길을 10분 정도 다시 돌아가 앞으로 가야할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은 아쉽게도 시멘트다. 이 길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농로로 이용하는 길이다. 간혹 찾는 사람들이야 흙길이 좋겠지만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겐 시멘트는 아마도 오랜 숙원이었을게다.

이길로 접어든지 10분이 채 되지않았을때 주막이 나타났다. 동동주와 파전 등을 파는 이 주막에서 한 잔 하고 싶지만 사람이 많아 지나친다.

주막 옆에선 아저씨가 장작을 팬다.

사진을 찍어서일까. 낯선 사람을 많이 봤을법한데 개가 요란하게도 짖어댄다. 주인의 호통에도 멈출줄 모른다. 이노~옴. 그만 짖어라.

주막을 뒤로하고 30여분쯤 걸으면 다불암 입구에 다다른다.

다불암엔 작은 불상들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게 많다고 다불암이라고 한다면 좀 과장된 느낌이다. 역시나, 알고보니 이곳 두무산에 불상처럼 보이는 돌들이 많아서 붙여진 다불리에 암자가 뒤늦게 들어선 것이었다.

사람들의 염원, 소망도 이렇게 한가득일 것이다. 암자 위쪽으론 산신각이 있다. 그 안에 놓여진 공물이 대부분 술이다. 오다가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일 것이다. 바람없이 왔다가 수중에 있는 것을 내놓다보니 술이었을게다. 부처님도 곡주는 마다하지 않으실터다.

술병엔 바람없는 소망이 가득하다. 이런 소망들이 좋다.

 

산신각을 뒤로하고 오르면 이제서야 산에 오르는가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독수리봉과 형제봉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또한번 사진찍기 좋은 장소가 나타난다. 이곳은 월전 장우성이라는 동양화가와 얽힌 풍수이야기가 있다. 화필봉이 보이는 이 자리로 묘를 이전한 덕에 유명한 화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 때문일까. 두무산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묘들을 본다. 우리의 자생 풍수는 음택이 아닌 양택을 중시했다는데... 아무리 좋은 묘자리라 해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은 이유다. 음택은 현세 후손의 위세를 뽐내는 모양새로 변모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을 돌아내려오면 미륵부처를 만난다. 왼쪽과 정면, 오른쪽에서 보는 모양이 다르다고 하는데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두무산을 10분 정도 내려오면 아직 지어지지 않은 다불암의 대웅보전 현판을 마주친다. 하필 이 현판이 놓인 곳이 통신전파기다. 전파가 삼라만상이요, 세상을 주재하는 것이 전파이니 이것이 불상을 모셔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 잠깐 망설인다.

지곡리 고수골로 내려가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 쉼터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왔던 길로 회귀할 것인지... 걷는걸 좋아하니 그냥 회귀하기로 했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풍경은 사뭇 다르지 않던가. 늘 한결같으면서도 항상 대하는 대상에게서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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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튼다. 봄이 오니 움이 난다.
살아보겠다는 살아가겠다는
그래서 아름다운
때로는 처절한
작은 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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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밭에 퇴비를 잔뜩 뿌렸다.
몸에 퇴비 냄새가 뱄다.
딸내미 데리러 가는 길, 딸내미가 아빠를 밀쳐낼까 살짝 겁이 났다.
"아빠, 무슨 냄새가 나."
뜨끔!!!
어린이집 밖으로 나온 딸내미
"아, 좋다. 바람냄새~"
으이그, 누구 딸내미 아니랄까봐, 겉멋은 ㅋ
차에 올라탄 딸내미 다시 푸념을 내뱉는다.
"아빠, 냄새. 차에서 냄새가 나."
"퇴비 냄새야. 땅도 맛있는 걸 먹어야 하거든."
잠깐 냄새 타령을 하더니 초콜릿 먹겠다고 투정이다.
"초콜릿은 집에 가서 밥 먹고 먹자.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뭐 하기로 했지?"
"몰라"
이런, 여기에 또 속으면 안된다.
'몰라' 해놓고선 아무 것도 안하고 집에 가면 약속 안 지켰다고 난리다. ㅋ
"약국에 밴드 사러 가자"
"안돼, 아빠 욕 먹어. 냄새 풍기고 나가면 사람들이 욕해."
???
많이 컸다. 우리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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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가 있다.
몸도 정신도 성장을 멈춰버린 아이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일하러 가요."
"어? 공부하러 가는게 아니고?"
"네, 복지관에서 일해요. 9시 30분까지 가야해요."
"그래. 힘들지는 않니?"
"29 다음이 30이에요."
"어? 아, 그래 29다음이 30이지."
"근데, 꼬마야, 넌 어디 유치원에 다녀?"
딸내미. 이미 얼음이 되어 있다.
이 아이를 만날 때면 완전 얼음이 된다.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낯선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내 뒤로 돌아서 숨는 편이다.
하지만 이 아이와 만날 때면 그야말로 얼음이다.
2. "아빠, 이 사과는 못생겼어. 버릴거야"
"아니야, 버리면 안돼. 이것도 먹을 수 있어."
"아니야. 버릴거야. 쭈글쭈글하고 못생겼어. 안먹을거야."
"딸내미. 사과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잘 생긴 것도 있고 못생긴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고 파란 것도 있고, 가지각색인거야.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거란다."
"아니야. 예쁜 것만 맛있어."
"딸내미. 예쁜걸 좋아하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다른걸 버리면 못써. 못난 것들도 다 아저씨들이 힘들게 땀흘려 거둔거란다. 그리고 맛도 좋아. 어디 한번 먹어볼까?"
안먹는다던 딸내미, 그래도 사과를 깎아주니 용케 먹는다.

예쁘고 건강한 것만 찾는 그 마음을 버리고,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려 딸내미와 함께 시골살이를 택했다. 그런데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하나 둘 자기와 다른 것들과 마주치다 보면,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길러지겠지. 아빠의 작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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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자락에 속해 있는 칠보산에 올랐다.

출발점은 절말, 쌍곡휴게소다.

 

등산로 초입에 집 한 채가 보인다.

요즘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집들을 보면 어떻게 지었는지, 주위에 농사는 무얼 짓는지 관심이 쏠린다.

어디에 살든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어야 할테니...

 

잠깐 집에 한눈 팔다 다시 길을 재촉하려는데 또다시 걸음을 멈춘다.

물이 너무 맑다. 말 그대로 거울같다. 한참 물이 부족할 때인데도 수량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물에 비친 소나무마냥 내모습도 한번 비쳐보고 싶다.

 

그래도 길은 떠나야 하는 법. 10여분을 걸으니 쌍곡폭포가 보인다.

이름이 왜 쌍곡인지 알 수는 없다. 폭포라는 이름을 갖기엔 조금 민망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 색깔만큼은 정말 투명하다.

 

폭포를 뒤로하고 5분 정도 걸으니 갑자기 길이 사라졌다.

울타리는 있는데 길이 보이질 않는다. 눈을 씻고 찾아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뒤를 돌아본다.

길은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막다른 길이라 생각되는 울타리 끝까지 걸어가본다. 끄트머리 오른쪽에 길이 나 있다.

멈춰 선 자리에선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벽이라, 끝이라 생각했을지라도 정말 끝까지 가보아야 할 일이다.

길은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산 곳곳에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있다.

아마 지난 겨울 눈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진 것일게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면 덜어내는 게 상책이다.

 

슬슬 걸어왔다 생각했는데 벌써 1/3 지점이다.

지난 주 월악산을 생각하면 트레킹이 가깝다. ^^

 

물맛에 취해 걸었다면 이번엔 조릿대 길이다. 주위가 온통 조릿대다. 아주 짧긴 하지만.

잠깐은 한라산이나 지리산 자락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벌써 절반을 넘어섰다. 채 1시간도 안됐다.

그런데 그렇게 깊은 산도 아니건만 휴대폰이 불통이다.

이렇게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나 겨우 안테나 하나가 달랑달랑거린다.

아니면 긴급통화 정도만 가능할 정도의 전파만 머리 위를 지나친다.

한마디로 무수한 전파로부터 완벽하게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전파청정지대인 셈이다.

 

조금 더 걸으니 못다 이룬 사랑의 연리지라 부를 만한 소나무가 보인다.

다른 뿌리에서 나온 소나무 가지가 말라 죽어간다.

옆에 있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활목고개를 올라서는 이 순간부터 실제로 등산은 시작된다.

그 이전까진 그야말로 트레킹이었다.

 

소나무는 천근성이다. 뿌리를 원래 얇게 드리운다. 반면 넓게 뻗어나가 자신의 몸을 지탱한다.

하지만 역시 뿌리깊지 않은 나무는 쉽게 쓰러지는 법이다.

바위 틈에서도 뿌리를 박고 늠름하게 서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쉽게 쓰러져 버리기도 하는 것이 소나무다.

 

칠보산도 관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마냥 계단이 나타났다.

그래도 경사가 아주 급하지는 않다. 1시간 조금 넘게 걸었기에 아직 다리에 힘도 남아 있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나무들의 자태가 용트림한다.

 

저 멀리 산등성이 하나는 저혼자 햇빛을 받은듯 훤하다.

혹시 나무들이 병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이 든다.

수종이 다른 것들이라 보이는 현상이길 바라본다.

 

드디어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운치가 느껴진다.

곧 눈앞이 정상이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가득하다.

 

정상이다.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정상 표지에 써 있는 표고가 정확한지 모르겠다. 다른 표지판에는 그 높이가 다르다. 이런 경우가 종종이다.

 

정상으로 나 있는 다른 길, 떡바위 쪽 이정표가 보인다. 이 길로 내려가보고 싶지만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갈 생각에 욕심을 버린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에서 빛이 쏟아진다.

구름 사이로 내비친 빛은 몽롱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준다.

먹구름 속에 갇혀 해가 보이지 않아도 햇빛은 그 뒤에서 언제나 내리쏟을 준비를 하고 있음을.

그러니 우린 아주 작은 희망이라는 틈새라도 만들어 절망의 먹구름을 헤치고 나가고자 하는 것일지도.

하산길 또한 1시간 반이 걸리지 않는다. 총 산행시간은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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