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심리학 - 나의 잠재력을 찾는 생각의 비밀코드
김경일 지음 / 진성북스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삶의 목적을 행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즉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 행복이란게 도대체 뭘까.

이 책은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준다. 그 가르침은 인지심리학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부터 시작해 행복에 이르는 또는 행복을 만드는 길을 말한다.

먼저 인간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 동기에서 비롯됨을 말한다. 접근동기와 회피동기. 이 두 가지 동기는 숲이냐 나무냐이자, 계획이냐 검토냐, 목포냐 구체적 실행계획이냐 등등으로 구분되어진다. 즉 목표를 세울 때는 접근동기로,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울 때는 회피동기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동기와 행위의 어긋남이 없어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과 회피를 잘 활용해 살아가는 것, 행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행복을 위한 접근과 회피 동기의 적용이라는 어려운(?) 말 보다는 딱 한마디 <비교>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된다. 내 삶이 행복해지려면 비교를 하지 마라. 비교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타인과의 비교뿐만 아니라 시간의 비교, 즉 과거의 나와 비교를 해서도 안된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의 나를 대하고, 나의 행위 그 자체에 몰입되어질 때의 충만감이 행복일 수 있겠다. 과거의 나와, 타인과 비교하는 즉시 우리는 불행과 우울에 빠질 수 있다. 바로 지금, 나의 행위에 접근하고 타인과 과거로부터 회피하는 것, 행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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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툰이 원작?

드라마의 재기발랄함에 혹시 웹툰이 원작이 아닐까 찾아보았다. 하지만 웬걸? 드라마가 원작이었다. 김혜자의 옛 광고를 패러디한 모습이라거나, 도라에몽 할머니의 화수분 같은 몸빼바지,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의 가공할만한 지팡이 신공(?) 등등. 톡톡 튀는 연출의 재미가 돋보인다. 물론 이 재미에는 김혜자의 귀여운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2. 웃음과 함께 감동!

<눈이 부시게>는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 속에 감동도 넘쳐난다.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정과 의리 등 사람들의 외로운 이면에 숨겨진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만남의 온도가 느껴진다.

3. 청춘과 늙음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대사를 하나 꼽으라면 "너도 늙어봐라"가 아닐까. 늙는다는 것의 의미와 청춘의 소중함을 혜자를 통해 절절히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번도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정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뭄뚱아리는 어떤가. 하나둘씩 삐걱대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몸의 늙어감이 생활의 조건을 바꾸게 하고, 그 변화가 정신마저 나이들게 하는듯하다. 정신과 육체의 괴리. 아마 그것의 차이가 커지는 것이 바로 나이듦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기억

1,2부를 보지 못하고 어느덧 10회까지를 시청했다. 10회 혜자가 알츠하이머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과연 현실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기억 자체만을 잃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생각>은 기억의 집합체이다. 물론 그 기억들은 왜곡 투성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사라진다면 나 또한 사라지는 일이다. 혜자는 사라지는걸까.

ps.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보다 따듯하게 바뀌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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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이란 스스로 그러함이다. 농사는 이 <그러한> 것 중 인간에게 이용될만 한 것을 선택해 그 성질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이 작업을 위해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왔다. 너무나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보니 점차 그 힘에 기계와 화석연료가 많이 쓰이게 되었고 이젠 <스마트>한 것들이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의 성질을 이용해 그러함을 얻을순 없었을까. 즉 외부 에너지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갖고 있는 변화의 힘을 이용한 농사란 불가능힐 것일까.
지속가능함을 생각한다면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바람과 햇빛, 물, 풀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땅이 생명의 힘을 키우는 힘을 활용하는 것이며, 생태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심었던 나무들은 그야말로 풀과함께 자랐다. 퇴비를 비롯해 비료, 살충제, 살균제 등등 아무것도 투입되지 않았다. 방치에 가까윘다. 몸이 아픈탓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힘을 <이용>하지 못하고 스스로 그러하게 버려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나무들의 성장이 더디다. 올해는 스스로의 힘을 갖추도록 살짝살짝 힘을 쓸 계획이다. 그 첫번째는 퇴비다. 흙이 힘을 가질때까진 (예상으론 3~5년 정도) 퇴비를 조금 넣어줄 것이다. 흙이 살아나는동안 퇴비 조차 넣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자랄수 있도록 환경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갈 생각이다.
일명 머리로 농사짓기다. 게으르고자 하는 얼치기 농부의 꿈이다. 그나저나 비야 쏟아져라!

 

 ※3월 9일 블루베리 1주당 3kg, 체리나무 1주당 4kg 친환경 퇴비(흙살림 균배양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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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각본, 속도감 있는 전개, 사건의 반전.

트랩은 정말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하지만 결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마치 시즌2를 염두에 둔 듯 급하게 마무리 지어진 느낌이다.

그야말로 소시오패스로 뭉쳐진, 권력을 지닌 악의 집단이 허망하게도 헌팅 그라운드에서의 한판 대결로 무너져버린다는 것은 드라마가 6부까지 쌓아왔던 견고한 성이 모래성이었음을 고백하는 듯하다. 특히 악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도련님’의 캐릭터가 쉽게 무너져 내린 점이 실망스럽다. 권력을 지닌 집단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지닌 도련님이 사냥터에서 맥없이 쓰러져 내리는 모습은 작가와 감독의 직무유기라 보여진다. 실제 이렇게 사냥터에서 조직이 무너질 정도라면 굳이 집단을 설정해 움직일 필요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시즌2에서 다시 이 조직이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겠으나, 그 구성원이 아닌 조직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싸움이 벌어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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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SKY 캐슬>을 다 보았다. 본방송일 때 1편을 보던 중 채널을 돌려버린 나의 안목을 반성하며, 정주행을 시도했다. 역시나 1편이 문제였다. 도중에 그만볼까? 하는 유혹이 또다시 일었다. 아무래도 나와는 거리가 너무 먼 이야기였다. 설정 자체가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했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왠지 과장돼 보였다. 그럼에도 열풍의 근원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욕구가 더 컸기에 더 지켜보기로 했다. 1편을 무사히 넘기니 2편부터는 몰입의 정도가 강해졌다. 설정을 인정하고 나니 이야기의 재미가 보였다.

대학입시에 모든 걸 걸어야하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해피엔딩은 그 비판의 칼날을 다소 무디게 만들었다. 교육의 문제는 우리나라 전체 시스템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는 혜나의 죽음으로 등장인물들의 인식이 바뀜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가 끝나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이용한 광고가 많아졌다.

우리 사회는 피라미드가 더욱 굳건해지고, 피라미드를 오르내리는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나마 그 작은 통로는 대학의 서열로 그 진입이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분명 이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를 항아리든 다이아몬드이든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근원적인 열망에의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고 싶다는 열망 속에 갇혀 있기 일쑤다. 차민혁 교수는 우리 도처에서 지켜볼 수 있는 욕망의 상징이다.

경쟁은 분명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밑거름이지만, 공생하지 못하는 경쟁은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피라미드 꼭대기라는 유혹으로 경쟁의 그림자를 가려왔지만, 언젠가는 그 그림자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꼭대기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을 향한 욕망도 커지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욕망 또한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견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스스로 피라미드 속으로 걸어가기 보다는 피라미드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주가 나선 길이 바로 질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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