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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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자 예수>를 읽으면서 느꼈던 왜?라는 질문, 즉 우리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자연을 망치고 결국 인간 자체도 망칠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이 책에서 차곡차곡 들을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마치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유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배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만을 그저 열심히 해나간다. 오직 세상은 타이타닉호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타이타닉 바깥의 바다에 여러가지 양태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엔진을 멈추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책은 우리의 모습이 어째서 타이타닉이 됐는지부터 설명한다. 노동자와 소비자로 명명되어진 순간 이미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되는 소비사회,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 그리고 그 돈을 위한 노동, 노동은 이미 즐거움으로부터 벗어나 있게 된다. 서구사회가 세상으로 발을 내딛을때 이해하지 못했던 원주민들의 삶, 그리고 원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서구적 마인드. 왜 내가 돈을 벌어야하는지, 그리고 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새롭다는 그 물건이 왜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서구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장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 애를 먹인것 만큼 소외의 깊이도 커졌다.

최근 우리의 경제도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가 정말 잠깐 논쟁거리로 나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선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분배의 시기가 아직 아님을 일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면서 증명한다. 그러나 제로성장을 통해서, 즉 성장보다는 분배를 통해서만이 인간으로서의 소외를 극복하고 참다운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은 지금 위기에 빠져있는 생태계의 밑바닥까지 다 파헤치자는 것이요, 저개발(개발에 대한 용어자체의 근본적인 문제, 즉 자동사의 타동사화의 문제를 이책은 다루면서 공동사를 새롭게 주장한다. 즉 개발은 누군가가 누구를 지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이루어야 한다는 것.) 국의 파이를 줄여서 자국의 파이를 키우는 것일뿐임을 깨우쳐야 한다. 지금까지 개발이 절대빈곤의 숫자를 결코 줄이지 못했음은 이것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평등한 사회보다는 권력이나 부의  집중화를 은근히 사람들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내가 어떤 기회를 얻어 권력이나 부를 얻었을때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려보겠다는 욕망, 그 욕망이 지금과 같은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화적으로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풍요란 절대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님을, 조금 늦었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라도 건설해야 함을 이성적 감성적으로 동감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함께 제도적 변화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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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4-10-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정말 통일이 여기서 왜 나오게 되는긴지...... 갑자기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왜 등장하는 건지도... 근데 통일 되면 과연 그 관계틀이 바뀔까요? 통일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고 주한미군은 여전히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경계해야 하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통일이 다른 대부분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데 통일은 정말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해결책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 말이죠.

2004-10-0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4-10-0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저도 잘 모르는거라 혹 이럴지도 라는 생각에서 쓴 글인데. 암튼 지금 주한 미군이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 하는 이유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피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을 향해 미군의 미사일을 전진배치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충청도 쪽에서 황해를 건너면 중국은 정말 가까운 곳 아닙니까? 암튼 미국 정말 앝볼수 없는 나라임에는, 하기야 언제 우리가 앝보기나 했나요?
정말 해결책은 없을까요. 느닷없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납니다. 주먹 센 놈의 횡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또다른 선한 주먹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빌붙어(?) 살아야 할까요. 쥐죽은 듯이 살아야만 하나요. 대학시절부터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인데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제일 정확한 세상살이 세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지적 재산권을 혼자서 행사하려 하지 말고, 돈 있는 사람들이 복지에 투자하고, 시간 있는 사람들이 자원봉사하고... 근데 실제 우리네 삶은 없는 사람들이 더 아끼고 사랑해주니. 쩝. 쓴 입맛만 다셔봅니다.
 

정의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법은 그것을 위한 도구다

-메리 로빈스 전 아일랜드 대통령

 

정의가 중립을 지킨다면 그건 강자의 편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정의는 항상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강자는 힘으로 정의를 짓밟을 수도 있다. 따라서 법이라는 제도는 그것을 막기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법치주의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제도를 말한다. 내가 혹시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아래 그 강자의 권리가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그 악마의 유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왔는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그래서 나만은 집에 풀장을 두고 요트를 타고 낭만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헛된 욕망들. 그것이 존재하는한, 권력의 달콤함이 존재하는 한 항상 정의는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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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어제 저녁에 텔레비전으로 메리 로빈스를 보았지요...~

하루살이 2004-05-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쉬 그냥 알아보시는군요.
코비의 컨설턴트 보다는 메리 로빈스라는 인물 그 자체에 가장 관심이 가더군요. 리더십보다는 파트너십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갑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군요(쓸데없는 말인가?^^;)
어쨌든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정의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늘 용기가 부족해서...
 
생태주의자 예수
프란츠 알트 지음, 손성현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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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시대가 가고 태양의 시대가 온다. 석유의 시대는 전쟁을 가져오며, 태양의 시대는 평화를 가져온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러한 명제가 정확히 들어맞는 예다.

태양의 시대란 에너지의 변환을 의미하며, 바람, 물, 땅 등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 자연이 주는 저절로 그러한 힘들을 이용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의 몇배, 아니 몇십배의 에너지를 제공할 뿐더러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 지은이는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임을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러나 출산률과 경제력과의 관계 등 다소 무리가 있는 논리적 비약이 군데군데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조하듯이 이러한 변환이 가져다 줄 평화를 신뢰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대안임을 부정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세계는 변하지 않는 것인가?

길어야, 정말 길어야 100년을 못넘길 석유나 천연가스 등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당장이라도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이 책은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희망의 무지개를 보여주지만 실은 바로 위와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만든다. 석유 메이저7과 자동차 산업 등 국가 뒤에 숨어 있는 많은 경제권력의 사슬에 대해서 감히 추측하지만 그 실상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책은 미완성이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정답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그의 주장은 백번 옳다 하더라도 분명한 현실의 벽을 실감할 터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벽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또 이 오래지 않은 기간동안 어머니라는 지구가 영원히 복구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생태주의자 예수가 진정 생태를 위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선 현재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석유업체들의 죄를 껴안고 또 한번 부활을 꿈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기득권의 저항을 물리치고 개개인 모두가 깨어나 자신속에 숨겨진 생태적 예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 장밋빛으로 변할 것임을 신뢰한다. 이 신뢰의 힘이 그 철옹성을 깨뜨릴 수 있기를...

그래서 나도 머지않아 흙 위에 태양열집판기로 이루어진 지붕에 마당 한켠에 풍차가 도는 그런 집을 꿈꾼다. 텃밭에서는 약초가 자라고 마당에선 아이들과 짐승들이 함께 뛰논다. 아,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태양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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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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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터라 지금까지 기껏해야 2~3권 정도 관련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할 수 없이 읽었던 책이었을 테고, 책을 읽고 나서도 전혀 감동 또는 나에게 이로운 어떤 직접적 지식을 가져다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책이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면 분명 관련서적을 찾아 더 읽었을테니 말이다.

마케팅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광고라는 것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 그래서 난 그 꽃이 너무나도 싫었다. 대량소비를 부추겨야지만 돌아가는 제도를 위해 치장을 한다는 것은 생리에 맞지 않았다. 물론 마케팅이 꼭 광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모습 이외의 것을 새롭게 만드는, 즉 솔직히 말하면 과대포장의 사기술이 마케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을 들게 된 이유는, 정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소개를 듣고 나서다. 발상의 전환은 고리타분한 일상을 딴 세상으로 초대하는 마약(?)과 같은 자극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말 왠걸? 마케팅 관련 책이라 생각했던 보랏빛 소는 나에겐 불경에 가까운 책이었다. 매체의 변화, 특히 인터넷의 확대는 마케팅에도 철저한 변화를 요구한다. 특히나 매스미디어에 의존했던 기존의 광고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입소문(이라기 보다는 글소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치장보다는 본연의 자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관점이 된 것이다. 즉 가상의 나를 만듬으로써 사람들을 유혹했던 시대에서 진아, 진짜 나를 어떻게 가꾸는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아니 조금은 다른, 즉 젖소이긴 한데 머리가 똑똑하다거나 우유를 조금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거나, 잘 생겼다거나, 몸매가 좋은 개체를 매스미디어를 통해 과장된 모습으로 남들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을 알리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그런 이유, 젖소이긴 한데 보랏빛 소, 공통된 어떤 특성 이외의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그래서 그것이 나일 수 있는 모습을 먼저 갖추었을때 성공은 자연스레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는 나만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해진 사회란, 비로소 진아(眞我)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그냥 남들과 무조건 다르기 위한 과장된 모습이라면 과거의 과대포장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자아, 보랏빛 소들이 넘쳐나기를... 그래서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리한 도시적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광활한 초원을 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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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2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차별화...인건가요~~!!

저도 마케팅에 관심 전무한데.... 먹고 살려다 보니..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는 사정에 봉착했습죠... 아직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책을 억지로 접하는 건 싫어서요...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마케팅 책...한 권도 읽은 적 없는데...

님 객관적으로 이 책 추천하고 싶은가요?

하루살이 2004-05-2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책입니다. 제가 읽은 것들 중(많진 않지만)에서는 탁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마케팅 책도 일종의 실용서라고 한다면, 역시 실용서로서의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내가 직접 부딪혀 보고 깨져보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그래도 분명 장점은 있습니다. 타깃을 최대한 좁힌다는 것, 스니저나 어얼리 어댑터 등에 집중한다는 것 등등.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는 명제는 일상에서도 가끔씩 챙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icaru 2004-05-2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장바구니에 추가요....!!!

2004-06-1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용한 지음, 심병우 외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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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만해도 오지가 아닌 평범한 농촌이나 산촌, 어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꼼꼼히 국토의 구석구석을 뒤져서야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사진을 볼때마다 새록새록 솟아나는 그리움들. 그 그리움은 항상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겹쳐져 있다. 그래서 그리움은 주름잡힌 늙은 손의, 그러나 아픈 배를 살살 문질러 주시던 그 손의 애절함과 함께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론 수동 탈곡기인 호롱기의 사진이 가슴에 남는다. 외할아버지께서 지게로 짊어지고 논으로 가져간 그 탈곡기를 발로 밟으며 돌리면서 털어내는 낟알들. 아직 어렸을때라 볏대를 잡고 있는 손에 자꾸 탈곡기로 빨려가 애를 먹으면서도 도움이 되겠다며 (실은 굉장히 재미었어하며 ) 1,2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며 버티던 생각이 난다. 해가 저뭇저뭇 기울어가면 다시 그 무거운 호롱기를 지게에 짊어지시고 외할아버지가 구부렁 논길을 걸어가시면 난 졸레졸레 뒤를 따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뚝뚝한 외할아버지는 농기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간혹 시키셨는데 사투리에다 한번도 보지 못한 기구들이라 실수를 자주했다. 그러면 고등학생이나 된 녀석이 그것 하나 모른다며 꾸지람을 해대셨는데 뭐라 항변도 못하고 그저 몇번씩 눈치를 보며 발품만 팔았어야 했다. 이렇게 사진 하나에 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모든 장면장면이 구수한 옛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런 옛이야기 말고도 이 책이 주는 선물은 우리가 편리함을 찾다 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왜 그런 불편을 참으며 살아왔는가 하며 현재의 문명에 대해 감사의 마음도 간혹 갖긴 하지만-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감성적인듯 하면서도 정직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놓쳐버린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갯벌과 뒷간에 관련된 것들이다. 갯벌이 사라지면서 갯생명도, 그것을 밭으로 알고 살아가던 사람들도, 그리고 바다로 들어가는 물의 정화력도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 뒷간이 사라지면서 논이 죽고, 메뚜기가 죽고, 사람이 죽어가는 것.

불편하지만 지켜가야 하는 것이 분명 있다. 헉헉 거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이 사진책은 그러한 숨 불어넣기에 대한 감성을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들이 새록새록 솟아나 이것이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에 숨을 줄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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