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프리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난 만화를 글 중심으로 본다. 그냥 쓱쓱 그어버린 듯한 그림일지라도 그 속에 잘 짜여진 이야기가 있다면 만족해버린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대사라도 발견할라치면 그 한줄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만화읽는 습관을 호텔 아프리카를 통해 통째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됐다. 그림 하나하나를 쳐다보는라 만화읽는 속도가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화란 글과 그림이 함께 공존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맑은 눈, 선한 눈, 슬픔에 가득 찬 눈, 사악한 눈, 지혜로 반짝이는 눈, 개구쟁이 눈...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의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어느 순간 머리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공간들. 때론 그림이 글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추고, 진실이 가져올 변화를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아 숨기는 것들로 인해 우린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할 것인지, 주인공들의 깊은 눈을 통해 보여주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기댈 수 있는 사랑의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소박하게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의 집이 됐으면 한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뢰전 가이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서현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은 첫장과 끝장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서... 고립하라!고립하라는 뜻은 고립되어 살다라는 뜻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번역상의 까다로운 문제로 보이는데 아마도 가장 가까운 뜻은 자수성가 정도가 아닐지 싶다. 노부유키의 만화가 그렇듯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추악함과 세상의 벽에 부딪혀 한없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 그는 세상은 혼자 살아나가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 최근 우리는 더불어 숲을 이루는 화해와 협동을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가슴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하지만 숲은 나무들의 어깨동무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 서 있음으로 해서 숲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 서 있는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러한 삶들이 모였을 때 숲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숦을 이루기 위한 어떤 희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노부유키는 인간이 나약하고 누구에게 기대고 싶은 정신 때문에 협동, 희생, 공공의 선을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느끼는 것인지만 우리는 혼자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고립해야 한다.

ps 그러나 이런 고립도 사랑앞에선 힘없이 무너진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언제나 서로에게 기댔을 때만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은 사랑도 독립된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고립을 위한 무대로서 이 작품에선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간의 사랑도 없다. 이것은 고립을 위한 최소의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남녀가 모두 존재하는 세상은 고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일랜드 1
윤인완 글, 양경일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신화 전설 민담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금발에 길쭉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짜리몽땅하고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도깨비나 귀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기야 밥 보다는 햄버거와 피자를 주로 먹는 아이들에게, 다리도 길어져 팔등신이 대부분인 젊은이들에게 금발의 영웅이 보다 더 친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산하가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 그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던 귀신들과 정령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바로 우리의 정령들을 만화속에 살려놓고 있다. 우리의 땅이지만 이국적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정염귀 등을 비롯해 고유의 정령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무척 특이하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그들을 다스리는 술법은 밀법과 기독교의 엑소시즘이다. 우리의 정령을 다스리는데 왜 이방의 것들을 들여온 것일까? 다소 엉뚱하다. 무척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만화의 장점은 또하나의 고향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실사건을 바탕으로한 추리형식에 있다. 일본 신주쿠에서 발견된 해골의 정체를 찾는 과정은 스릴넘친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상상력은 결코 그것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않음으로써 설득력을 지닌다. 더더군다나 요괴들과 인간들간의 차이점을 분노와 용서로 구분한 부분은 매력적이다.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들은 한의 정념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도깨비는 그런 한의 개념보다는 신명의 개념이 더 어울리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면 쉽게 와 닿을듯 하다) 그 한을 분노로 다스리는냐 용서로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괴와 인은 확실한 구분점을 갖을 수도 있겠다.역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분노를 억누르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그 마음을 지녔을때 아일랜드 제주도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섬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함대 1
카이지 카와구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핵균형을 통한 세계평화의 시대. 하지만 이 균형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다. 만화는 핵잠 한대가 이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현재의 평화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허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세상의 평화는 바로 세계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인간이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는 이 만화는 그래서 따뜻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이런 세계평화가 꼭 환상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건 정말 공격이다)에 반대하는 반전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마치 만화속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함성을 듣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정도로 현실적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왜 전쟁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세상의 모든 국가들은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무기를 들어야만 하는가? 국가적 사고를 넘어 세계적 사고를 행함으로써 세계시민, 세계국가는 탄생하고 민주주의는 비로소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만화적 상상력은 현실적 상상력을 키워준다.

하지만 이런 평화를 위한 전단계로써 필요한 침묵의 함대인 핵잠의 연합은 힘으로써 힘을 제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무척 위험해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미국을 바라보면 자국의 이익에 혈안되어 있는 그들에 대한 견제를 과연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등이 전쟁을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폭격은 시작될 것이다. 무엇이 이 독주를 막을 수 있을까? 정말 야마토 같은 핵잠이 등장한다면 미국은 비로소 공정해질 수 있을까?평화를 향한 길에서 꼭 거쳐야만 하는 군축, 하지만 그 군축이 막강한 군부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뒤에 감추어진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인간은 희망이며 또한 절망인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마스테~♡ 2010-01-1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팡구의 가와구치 작품!
 
내 이름은 콘라드 그리폰 북스 1
로저 젤라즈니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는 한때 미국의 51번째 주로의 편입을 국민투표로 실시한 바 있다. 현재 갖고 있는 시민권 이외에 실질적인 권력행사라 할 수 있는 대통령선택권까지를 쥠으로써 명실 상부한 미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푸에르토리코의 완전한 독립을 표방하며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는 부류도 있다. 소설은 지구가 핵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계 선진행성의 노예로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다. 주인공인 콘라드는 나이가 몇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 삶을 강인한 체력과 정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과거 지구 독립을 위한 데지탕스 활동을 했고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입장에 서 있게 된다.
소설의 내용은 외계의 주요인물이 지구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를 탐사하는 것은 그들이 지구를 사 들임으로써 완벽한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인지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회복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지구로의 귀환을 장려하려는 것인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의 지구인들은 어찌보면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푸에르토리코의 사람들과 닮아있다. 비록 독립된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할지라도 현재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다면 굳이 독립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 주인공은 독립된 삶이 현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택했을때만이 진정한 자아로서의 삶과 행복을 만들 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한 노예와 불행한 주인우리는 어떤 삶을 택해야만 하는 것일까?자유가 주는 괴로움, 구속이 주는 편안함. 지금까지 인간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이었을까?갑작스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한국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망언을 한 한국인이 머릿속에 떠 오른다. 그의 말을 어이없게 받아들이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일까? 자유에의 무조건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정말 어려운 선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