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 모기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문장군이라는 말대로 정말 용맹스러운 그의 날갯짓에 제 몸은 너무 괴롭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피를 빨러 오는 놈. 잠자리에 눕는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젯밤.

자리에 눕는 순간 눈이 먼듯한 느낌이 듭니다. 창문 사이로 둥근 달이 떠 있더군요. 얼른 달력을 들춰봅니다. 내일이 보름이더군요. 원래 잠자리에 들때면 항상 라디오를 켜 놓거나 CD를 들으며 잠을 청했는데 오늘은 그냥 눕습니다. 오직 정적만이 흐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기겁을 하며 라디오 볼륨을 높였을텐데 왜 이리 조용한지... 보름달은 사람들에게 아는듯 모르는 듯 영향을 끼치는가 봅니다.

시간도 정지하는듯. 그러나 달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점점 오른쪽으로 움직이던 달이 이내 건물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달빛은 아직 제 창가에 남아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주 오래전 오대산서 눈빛을 반사하던 그 달빛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도시에서 느끼는 이런 적막감과 황홀한 빛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추석이나 설때 보는 커다란 달보다도 오히려 더 다정다감합니다. 우수나 외로움, 고독 따위가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마치 득도한 마냥 몰아의 경지에 있는것 마냥 공중부양한 것 마냥 삼매에 들어있는 것 마냥 그런 것 마냥. 이대로 눈이 멀어도 좋을 것 마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윤리이다.

김훈<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85쪽)

 

실은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될 것은 언론뿐만이 아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속에서 조용히 들을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 또한 입보다는 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부끄러움은 행동을 제약한다. 어떤 행동들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아챘을 때 우린 그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 설득이라는 것이 원래 타동사로서 누구를 이라는 목적어를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피동사로 쓰여져 자신이 설득되어지는 경우가 있다. 피동사라고 해서 그냥 멀뚱히 서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설득되어지는 것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일보 전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의 문체에 대하여, 그리고 그 글에 대하여 칭찬하는 글을 여기저기서 본다. 난 개인적으로 문체에 대한 감이, 또는 인식이 전혀 없어 아직 누가 어떤 문체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분별을 잘 못한다. 영화라면 또는 음악이라면 어느 정도 감독과 작곡가에 따라 어떤 색깔을 찾아내곤 하지만 영 글은 잼병이다. 그래도 문체는 잘 모르지만 "어 이거 굉장히 잘 썼는데" 따위의 어설픈 평을 감히 내뱉곤한다. 최근 읽었던 책중에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라는 글이 기억 속에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접하게 된 김훈의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정말 청산유수라는 느낌이다.

감정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그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작가의 생각대로 또는 마음대로 나의 생각과 마음이 같이 흘러간다. 정말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 강까지 이르는 마냥 기분도 생각도 푹 젖어버린다. 그러나 잠시 물에서 발을 떼 흙으로 나오는 순간 그 시냇물의 근원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게 된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신산스러움, 대학 졸업식장의 아수라장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정말 공감이 간다. 하지만 왜 밥법이가 고단해야지만 하는지, 졸업식장 행사에 졸업생은 없는지를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이 불편해진다. 즉 그의 청산유수같은 말은 저 산꼭대기로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중류에서 섞이는 다른 시냇물과 같은 것이다. 즉 그가 바라보는 생각의 근원과 내가 바라보는 생각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정말로 밥벌이는 고단해서는 안되지만 현재의  밥벌이가 고단하지 않는 자는 실은 고단한 밥벌이를 하는 사람에게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며, 졸업식장에 졸업생이 없는 것은 학교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줬는지 학생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하며, 스승이라고 느낄 수 있는 애정어린 교수를 또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터이다.  즉 그의 감정과 논리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흘러가지만 난 현실이 현실이게 된 과정을 못내 인정할 수 없기에 그 물줄기의 근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이 정말 잘 쓰여진 것 만큼 위험의 수위도 커짐을 느낀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오히려 그 희생자들에게 가 있을 수도 있음을 상상하면 못내 그의 글의 날섬이 섬뜩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미국의 건국자에게 영향을 미친 정치철학자 제임스 해링턴의 저서 <오케아나oceana>중

 

바른 정부의 달성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두명의 욕심쟁이 소녀가 하나의 케이크를 가르고 있는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논하였다. 그러므로, 일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규칙을 세워 놓고, 한명의 소녀에게는 케이크를 자르게 하고, 또 한명의 소녀에게는 먼저 원하는 쪽을 고르게 한다면 탐욕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도 바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반대입장의 적대하는 이해관계를 통해서 좋은 동기의 결여를 보완하는 정책이라고...

무섭다. 인풋은 인간의 이기심, 탐욕, 비천함인데 아웃풋은 올바른 결과, 공익의 달성이라니.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경제가 아닌 정치적인 밑바탕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그 위악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기심, 탐욕을 개인마다 확장했을 때 오히려 잘 굴러가는 제도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한다면 그것의 보완은 경제적 측면보다도 오히려 정치적 측면이 더 절실할 지도 모르겠다.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이라고 해야할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그대로 드러내 공익을 창출해내는 마법보다는 인간의 자제심이 빛을 발하는 투명한 거울이 낫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꼭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면 천사가 날아다니는 사회를 꿈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태주의자 예수>를 읽으면서 느꼈던 왜?라는 질문, 즉 우리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자연을 망치고 결국 인간 자체도 망칠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이 책에서 차곡차곡 들을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마치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유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배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만을 그저 열심히 해나간다. 오직 세상은 타이타닉호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타이타닉 바깥의 바다에 여러가지 양태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엔진을 멈추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책은 우리의 모습이 어째서 타이타닉이 됐는지부터 설명한다. 노동자와 소비자로 명명되어진 순간 이미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되는 소비사회,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 그리고 그 돈을 위한 노동, 노동은 이미 즐거움으로부터 벗어나 있게 된다. 서구사회가 세상으로 발을 내딛을때 이해하지 못했던 원주민들의 삶, 그리고 원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서구적 마인드. 왜 내가 돈을 벌어야하는지, 그리고 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새롭다는 그 물건이 왜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서구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장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 애를 먹인것 만큼 소외의 깊이도 커졌다.

최근 우리의 경제도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가 정말 잠깐 논쟁거리로 나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선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분배의 시기가 아직 아님을 일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면서 증명한다. 그러나 제로성장을 통해서, 즉 성장보다는 분배를 통해서만이 인간으로서의 소외를 극복하고 참다운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은 지금 위기에 빠져있는 생태계의 밑바닥까지 다 파헤치자는 것이요, 저개발(개발에 대한 용어자체의 근본적인 문제, 즉 자동사의 타동사화의 문제를 이책은 다루면서 공동사를 새롭게 주장한다. 즉 개발은 누군가가 누구를 지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이루어야 한다는 것.) 국의 파이를 줄여서 자국의 파이를 키우는 것일뿐임을 깨우쳐야 한다. 지금까지 개발이 절대빈곤의 숫자를 결코 줄이지 못했음은 이것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평등한 사회보다는 권력이나 부의  집중화를 은근히 사람들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내가 어떤 기회를 얻어 권력이나 부를 얻었을때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려보겠다는 욕망, 그 욕망이 지금과 같은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화적으로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풍요란 절대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님을, 조금 늦었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라도 건설해야 함을 이성적 감성적으로 동감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함께 제도적 변화도 요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4-10-0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4-10-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정말 통일이 여기서 왜 나오게 되는긴지...... 갑자기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왜 등장하는 건지도... 근데 통일 되면 과연 그 관계틀이 바뀔까요? 통일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고 주한미군은 여전히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경계해야 하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통일이 다른 대부분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데 통일은 정말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해결책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 말이죠.

2004-10-0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4-10-0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저도 잘 모르는거라 혹 이럴지도 라는 생각에서 쓴 글인데. 암튼 지금 주한 미군이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 하는 이유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피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을 향해 미군의 미사일을 전진배치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충청도 쪽에서 황해를 건너면 중국은 정말 가까운 곳 아닙니까? 암튼 미국 정말 앝볼수 없는 나라임에는, 하기야 언제 우리가 앝보기나 했나요?
정말 해결책은 없을까요. 느닷없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납니다. 주먹 센 놈의 횡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또다른 선한 주먹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빌붙어(?) 살아야 할까요. 쥐죽은 듯이 살아야만 하나요. 대학시절부터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인데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제일 정확한 세상살이 세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지적 재산권을 혼자서 행사하려 하지 말고, 돈 있는 사람들이 복지에 투자하고, 시간 있는 사람들이 자원봉사하고... 근데 실제 우리네 삶은 없는 사람들이 더 아끼고 사랑해주니. 쩝. 쓴 입맛만 다셔봅니다.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