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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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내가 다 먹어치웠다가 정답. 따라서 나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야 한다. 내 치즈가 다 사라지기 전에. 치즈를 욕망이나 목표로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는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다보면 결국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자신의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고 냉정히 분석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예견함으로써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만이 달콤한 치즈를 계속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바로 그 변화를 대처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가 주는 편안함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확신할 수 없는 미래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린다면 이는 결코 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지금처럼 살면 안되는데...

내가 원래 생각했던 삶은 이것이 아닌데...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의 무게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쉽게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는 말한다.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냐고? 하지만 그 이유때문에 두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변화는 변화를 가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난 얼마만큼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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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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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의 홍어회가 열 사공의 죽음을 떠올린다. 홍어는 피묻은 사공의 등골을 발라먹고, 사공은 혼신의 힘으로 홍어의 잔등에 작살을 박는다. 이 상잔(相殘)! 우리들의 피안은 어디에 있는가
-민영 <海碑>전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책장을 덮고 나서도 아직도 이 두 시는 뇌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외워서 적은 것인데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대충 그런 뜻이었지 싶은데, 점차 이런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불쌍해진다)하나는 우리네 삶의 치열성과 그것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어떤 좌절감을 주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작은 사물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훈훈함이 녹아있다.

이 시 이외에도 정말 잊혀지지 않는 여러 시들이 있는데 단순히 책속에 나온 시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시인의 책을 찾아 읽도록 신경림 시인은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려 작정한 듯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신경림 시인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시인을 만남으로써 책이 탄생했듯 책속의 시인들 또한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시의 세계로 들어섰거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작가는 자신의 문학이 세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고백했는데 진정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숨쉬는 글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의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즉 시란 어찌보면 소중한 만남이 있을때 가능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시도 언어임을 포기할 수 없듯 언어란 결코 만남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토해내고 싶은 말!말!말!

그것은 누군가에게 향해 있을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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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숍 오브 호러즈 1
아키노 마츠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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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움, 고독, 질투, 미움......
사람의 존재란 유아독존일순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이란 것도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일순 없다. 즉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살아간다면 도대체 어디서 사랑을 느낄 것이며 누구를 미워할 것인가?

그렇기에 우리들 마음속엔 감정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어렸을 적 나를 사랑해주던 삼촌에 대한 기억, 하염없이 주고 싶었던 하얀 손의 어린아이, 공포스러운 존재로 남아있는 뺨을 치던 선생님 등등.

<펫 숍 오브 호러스>는 자신안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찾아내 내 마음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이야기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애완동물 가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 가게를 찾아오는데 이 가게의 동물들은 그 사람들에겐 그 사연의 사람들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상처가 드러나고 이 사람같은 애완동물들을 통해 이윽고 상처는 아물게 된다.

괴기스러운 느낌마저 감도는 이 만화는 섬세한 감정묘사를 통해 메말라 있던 우리를 촉촉히 젖게 만들뿐더러 우리가 무엇에 목말하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더군다나 이 만화속 등장동물은 상상속의 동물과 함께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동물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런 소재는 마지막회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생물을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생존에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멸종동물 이외에도 실제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인간실상-킬러로 키워지고 있는 어린아이등-등을 보여주고 있는데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게된다.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사람들이 어는 순간 악마가 되어 우리를 집어 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감돌게 하는 이야기들은 그러나 끝끝내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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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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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이기고 체스 세계챔프가 된 뇌신경학자가 바로 그날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이 죽음을 범죄로 보고 살인자를 찾는 과정과 체스세계챔프의 변모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해서 치밀한 구성으로 전개해나간다.

이 두 과정은 한가지 질문에서 출발하는데 '인간의 행동은 무엇을 동기로 해서 이루어지는가'이다. 도대체 난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지금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그 동기를 13가지로 분류하는데 기실 그 기본은 첫번째 이유였던 쾌락에 있다고 하겠다. 최후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뇌를 자극하는 것도 실상 그것이 주는 쾌락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가장 중요한 소설의 요소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삶의 동기로서의 쾌락이란 결코 육체적 원초적 쾌락 그 이상의 쾌락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바로 그런 점에서 삶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즐겁게 간주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바로 정신적 쾌락상태, 어찌보면 니르바나의 세계로 이끌어나가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쾌락에 함몰되어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 상태의 추구, 그것은 소설 속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다른 세가지 요소가 있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웃음, 꿈, 어리석음.

웃을 줄 안다는 것은 쾌락을 안다는 것이요, 꿈을 갖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언제나 현실의 삶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리석음이란 쾌락의 상태에 계속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열반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저한 금욕도 쾌락도 아닌 삶의 즐거운 상태, 컴퓨터는 이런 상태를 오류라고 볼 것이다. 우리네 삶은 그런 오류 덩어리였을때 행복한 것임을 우리는 바보처럼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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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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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괜찮지만 ......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괸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P228)

소설은 콜필드라는 학생이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몇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학교친구들과 선생님, 가족은 물론 모텔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즐거움과 함께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에 미소를 그칠줄 모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미소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조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다. 콜필드의 조롱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식의 옷이라는 구속복을 입고 자유를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탐독했다는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챔프먼은 아마도 존 레논이 위의 변호사처럼 자신이 엉터리인줄 모르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터이다.

거울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한번 보자. 모든 옷을 벗어버린채 발가벗은 모습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거기엔 정말 내가 있는가, 세상이 나에게 준 가식의 옷을 잔뜩 껴 입은 내 모습만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내가 대학을 나왔는데...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남자가 말이야... 벗어도 벗어도 끝이 없는 가식의 옷들. 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콜필드가 지켜주고 싶어한 호밀밭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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