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2월 27일 맑음 영하 7도~13도

농업기술센터에 토양을 떠서 의뢰를 맡긴지 2주가 지나서 토양검정서를 받았다. 매년 발효톱밥과 균배양체를 1주당 3~5키로그램 정도 넣어주고, 한 해에만 토탄을 넣어준 땅이다. 토양이 옥천통이라고 하는데, 옥천통은 강한 산성에 배수가 불량한 성질을 지녔다. 발효톱밥을 매년 꾸준히 넣어주었음에도 아직 배수가 불량인 것은 아쉽지만, 유기물은 6%로 꽤나 만족스럽다. 유기물이 5%를 넘기면 토양의 양분 투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하고 있어서다. 


전체적으로 양분이 부족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칼륨은 다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나나 껍질에 칼륨이 많다고 하니, 바나나를 먹게 되면 껍질을 모아서 퇴비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또 현재 토양의 산도가 블루베리에 적합한 범위의 끄트머리에 걸려 있어, 칼륨도 주고 산도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커피박을 활용한 퇴비를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요즘은 커피를 먹지 않다 보니 커피박이 나오질 않아서 자급적인 방법으로 퇴비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될 수 있으면 외부에서 재료를 구입해 투입하기 보다는 자급적인 방식으로 퇴비를 만들고 싶은데,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조금씩 조금씩 방법을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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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133분 감독 이해영 출연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일제시대 독립을 위해 싸웠던 비밀조직원 유령의 활약상. 영화 초반엔 유령의 실체를 찾는 스파이 첩보물로, 후반엔 유령의 활약을 그린 액션으로 장르를 바꾼다.(스포일러 있음)


1. 유령을 찾아라

영화는 항일독립조직인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이 조선 총독부의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총독의 행선지 정보를 빼내 조직에 전달하지만, 이는 유령과 흑색단 조직을 잡기 위한 덫이었음을 보여준다. 

총독의 행선지를 알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5명. 이들은 한 호텔에 감금되어 자신이 '유령'이 아님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호텔에 감금된 5명이 총독부 내에서 정보를 전달하면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초반부 장면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더군다나 과감하게도 '유령'이 누구인지까지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 5명 중 유령을 찾으라고? 장난치나? 라는 생각도 잠시. 정체를 보여주고 나서도 다시 정체를 밝히라는 것은 유령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인가. 설경구의 역할이 바로 복수 유령의 암시인데,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이면서도 흥미 유발보다는 오히려 패착이 된 부분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이미 알고 있는 유령이 어떻게 밝혀질까에 대한 영화적 설명이 갖는 재미 보다는 다른 유령의 존재가 어떻게 밝혀질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재미는 오히려 반감된 것이다.


2. 유령이 나섰다

영화 중반엔 이미 유령의 존재가 다 드러난다. 미스터리적 요소는 강렬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이제부터 영화 후반부까지는 유령의 도주와 조직원을 구하기 위한 활약상이 주를 이룬다. 이해영 감독의 액션 장기가 드러나면서 몰입도가 커진다.(스포일러 있음)

게다가 두 유령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이름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아도, 세상을 위해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모습이 지난 시대의 여성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또한 동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각오로 험지로 뛰어들 용기도 지녔다. 물론 다소 신파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 신파적 동지애가 감동을 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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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189분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디에고 칼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할리우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 낫 투데이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탑건 매버릭]은 톰 크루즈의 매력이 여전함을, 전투기 액션 장면의 짜릿함 또한 여전히 강렬함을 보여주었다. 모든 게 자동화, 기계화 되고, 이제 사람의 고유 영역이라 할 부분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해가고 있는 시대. '파일럿의 시대는 갔다'라는 주장에 톰 크루즈는 '낫 투데이'라고 답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장은 죽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시대의 끝자락을 움켜잡고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톰 크루즈의 '낫 투데이'는 우리의 '낫 투데이'다. 


2. 왕년엔

누구에게나 황금기는 있다. '언제나 지금이 최고'라며 자기최면을 걸기도 하지만.... 결국 시대는 바뀐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의 리즈 시절도 멀어져 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92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무성영화의 시대도 유성영화의 시대에 자리를 내주었다. 

영화 [바빌론]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무성영화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유성영화의 시대에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다만 영화 [바빌론]에서는 오히려 무성영화의 시대를 시끌벅적하고 짧은 컷들로 현란하게 묘사하고, 유성영화의 시대를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무성영화는 찬란한 시대였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의 시대가 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바빌론] 속 브래드 피트가 평론가에게 응원을 받듯, 우리의 찬란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그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시대를 살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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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108분 감독 임순례 출연 황정민 현빈 강기영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 23명의 대한민국 국민. 이들을 구하기 위해 외교부 실장과 국정원 해외요원이 탈레반과 교섭에 나선다. 외교부 실장(황정민)과 국정원 요원(현빈)은 교섭의 방식이 다르지만 국민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만은 똑같다. 영화가 진행되면 두 사람의 갈등은 같은 목표 속에서 씻겨내려가고, 서로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국가란 국민의 목숨을 지켜야 하며, 국가의 일을 하는 공직자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목표를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당위가 실현되는 과정이 묵직하게 그려진다. 


1. 몰입과 이입

영화 [교섭]의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리틀 포레스트]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다. 임 감독의 영화들은 화려함 보다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잔잔함이 특징이라 보여진다. 꿈이 현실과 부딪혀 부서져 가기도 하고, 현실을 이겨내고 성취하는가 하면, 잠시 숨을 돌려 다시 힘을 갖기도 한다. 이 과정 속의 인물들에 천천히 스며들면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들 속 주인공들은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기 보다는 감정이 흘러내려가듯 그려진다. 그리고 관객은 이 주인공들에 이입이 되어 눈물과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이번 영화 [교섭]은 영화 속 인물들에 이입을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인질들의 묘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오직 두 주인공의 교섭 과정 속 갈등과 화합 만을 찬찬히 그려내고 있다. 이런 목표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액션 장면 또한 한 시퀀스에 그친다. 다만 교섭이 이루어졌다 깨지고, 다시 새로운 교섭을 이끌어내고 하는 과정에 몰입이 강하다. 감독의 의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입 대신 몰입을 택한듯 보여진다. 그리고 이 선택이 순전히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 국가와 개인

국가란 허상이다. 실체가 없다. 다만 국가를 이루는 국민은 실체를 지니고, 이 국민들이 정부를 만들어 국가의 일을 한다. 개인이 아닌 거대 집단으로서의 국가는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 이상의 장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국가를 이룰 필요가 없다. 

국가의 장점이란 바로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지켜내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재난이 발생 시 극복할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실체가 없는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책임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공무원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영화 [교섭]은 소위 공무원이라고 하는 국가의 대행업자(? ^^;)들의 바람직한 태도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만큼의 각오를 지닌 사람들. 영화 [교섭]은 공무원들의 필수 관람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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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차례 죽음과 마주친다.

하지만 나무가 얼어 죽거나 풀을 뽑으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진 않는다. 반면 도로 위에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보면 죽음이 떠오르고, 안타까움이 인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은 잠깐일 뿐, 자동차가 도로 위를 지나가듯 그 감정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한 번이라도 쓰다듬었거나, 먹이를 주었던 상대의 죽음은 허전함을 넘어 슬픔의 감정이 솟구친다. 만약 그 상대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훨씬 커진다. 


이렇게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식물과 동물, 사람의 차이는 아무래도 유전자적 유사성의 정도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와 가까운 상대에게 감정의 변화도 커지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유전자의 닮은 비율이 비슷한 경우에도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동물이 죽었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고양이의 경우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 보다는 지나치며 자주 보았던, 먹이라도 한 번 주었던 고양이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그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차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정情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정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정이 넘치는 사람도 있고, 정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 여하튼 우린 서로 정을 주고받는다. 정을 더 많이 주는 대상이 있기도 하고, 정을 많이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주고받기는 하지만 정은 좀처럼 계산되지 않는다. 딱 이만큼 만 정을 주어야지, 또는 받은 만큼만 주어야지 같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간혹 정에 휘둘리기도 한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는 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휘둘리지 않는 선에서 풍성하면 좋겠다. 죽음 앞에 너무나 무덤덤해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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