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경연 프로그램은 평소 마주치지 못했던 다양한 색깔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JTBC에서 방송되고 있는 [팬텀싱어3]에서는 크로스오버 남성4중창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이번 시즌3는 카운터테너와 소리꾼이 멤버로 들어가면서 보다 다양해진 레퍼토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지난주 방송됐던 결승 1라운드에서는 라비던스의 <흥타령>이 귀를 사로잡았다. 소리꾼 고영열이 멤버로 있었기에 처음 시도한 국악 장르의 노래였다. 성악을 전공했던 멤버들도 성악 창법이 아닌 국악의 소리를 내기 위해 몸을 떨어가며 열창을 했다. 국악이 꼭 한의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흥겨움도 갖고 있다. 라비던스는 그중에 남도민요 <흥타령>을 택했다. 제목만으로는 흥겨운 노래같지만, 실은 떠나버린 님과 흘러간 세월을 잡을 수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떠나가버린 님과 세월을 잡으려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라비던스 멤버들의 '부질없다'라는 노래는 각자의 색깔로 슬픔과 허무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부질없다는 한탄을 통해 마음을 씻어내리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라비던스의 노래는 그런 씻김의 소리로 개성을 한껏 뽐냈다. 잘 알지 못했던 민요 <흥타령>을 새롭게 안 것도 좋았거니와, 이 노래가 대중적인 모습으로 선을 보인 것도 좋았다. 


우리 인생의 희노애락을 잘 어루만져주는 노래가 누군가의 입에서 콧노래로 흘러나올 수 있기를 ... 그래서 위로받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본다. 노래는 결코 부질없지 아니하기를...


사족 : '부질없다'는 뜻은 쇠를 담금질 할 때 불질을 하고 찬물에 담근 후 두드리는 과정이 있어야 단단해지는데, 불질을 하지 않아 헛된 일이 된 것을 말한다. 위로가 되는 노래란 끊임없는 불질을 통해 잘 타오르고 망치로 두들겨맞아 단단해진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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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N 드라마 <(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과 답을 끊임없이 되뇌이게 만든다. 9회차에서는 가족이란 정말 아는게 별로 없어보이지만, 심장을 꿰뚫어버리는 한 방의 날카로운 비밀을 알고 있는게 가족임을 상기시킨다. 그만큼 가족이기에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앙금이 되어 쉽게 씻겨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앙금은 평소에 아무일 없다는 듯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다. 


2. 아무튼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는 어찌보면 '배다른 자식'이라는 상투적 소재와 동성애라는 금기에 가까운 소재를 가져와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 덕분일 것이다. 특히 원미경의 연기는 무르익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소리높인 장면에서는 원미경 특유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나긋나긋한 말 속에서는 얼핏 김혜자의 그림자가 비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3. 첫회부터 깜짝 놀랐던 것은 원미경의 얼굴이었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연예인들의 얼굴이 아니라, 주름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을 과감하게 보여준 것이다. 동안을 위해 피부과 병원을 집 드나들듯 다니며 관리한 얼굴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삶의 행로가 그대로 드러난 듯, 이제는 팽팽하지 않고 조금은 처진 얼굴. 진짜 주위에서 만나는 60대 아낙네의 얼굴. 그 얼굴만으로도 원미경은 <가족입니다>에서 미혼모로서의 삶을 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사랑없는 결혼 생활의 핍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였다. 


4.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얼굴. 시간을, 세월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살아온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얼굴. 엄마로서의 삶이 투영된 원미경의 얼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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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홍콩무협영화를 사랑한 사람들에겐 소극적으로 추천. 김용 류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소극적으로 추천. 레트로적 감성에 취하고 싶은 사람에겐 강추. 어설픔과 상투성이 곳곳에 묻어나지만, 그때 그시절을 그리며....


2. 어렸을 적 마교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은 주인공 '정소범'. 마침 그곳을 찾은 천하제일 문파인 청운문의 제자가 되지만 무술 실력은 영 늘지 않는다. 다만 누구인지도 모를 살인자를 대상으로 복수를 꿈꾸는 대신,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릴적 습격 사건 때 없애버리라고 건네받은 '서혈주'를 지금껏 간직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서혈주가 법기 섭혼을 깨운다. 세상을 지배할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 정소범은 마교에게도 청운문에게도 죽임의 대상이 된다. 


3.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의 샤오딩이라는 작가는 팬덤이 형성될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선]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남자주인공은 중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 원작과 주인공의 힘 덕분인지 지난해 중국에서 추석시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개인적으론 이 정도 그래픽 기술로 관객을 모았다는 것에 놀랐다. 마치 심형래 감독의 [디 워]처럼.) 


4. 개인적으론 정소동이라는 감독 이름을 보고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천녀유혼]과 [소오강호]에서 비쳐진 무용같은 무술과 슬픔과 허무감을 드러내는 극의 전개를 좋아했다. [영웅]과 [연인]에선 무술감독이었는데, 정중동의 움직임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주선]은 [영웅]과 [연인]류의 움직임이 아닌 30여 년 전 [천녀유혼]과 [소오강호]류의 어설픈 와이어 액션이 비쳐져 실망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틀에 박혀 감동을 주기에도 미흡하고 흥미를 끌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엄청 긴 원작을 압축하다보니 발생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5. 순박한 마음. 무협이야기 속 절대무공의 주인공들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은 대부분 순수함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대부분 잃고 살아가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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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은 딱히 눈길 가는 드라마가 없다. 집중해서 보는 것이 어렵다. 졸음을 이겨가며 꼭 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 물론 이곳저곳에서 재방송을 틀어대니 굳이 본방 사수에 목매달 필요도 없어졌지만.


그러던차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제목부터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니. 정말 그렇지 않은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된 것 같으면서도 실상 알고 있는 것은 허무할 정도로 적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적적인 단어. 하지만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버리고 싶은 애물단지이기도 한 가족. 


트럭운전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각자 개성 가득한 3남매. 돌연 어머니가 '졸혼'을 선언하고, 아버지는 야간 산행에서 부상을 입는다. 2편 예고로 보아 기억상실로 젊은 시절만을 기억하는 듯하다. 큰 딸은 아이가 없어 고민이자, 카페 알바생에게 마음을 준다. 둘째딸은 5년 전 9년간 사귄 남친과 헤어지고 남친의 남친을 배신자라 칭하며 절교를 선언했다 용서를 빈다. 셋째아들은 천하태평. 


이 가족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와 같은 감동을 선물해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눈이 부시게>가 치매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라'는 애틋함을 전해주듯 <가족입니다>가 과연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어떤 울림을 전해줄지 첫회가 주는 기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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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최요한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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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과거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때 쓰는 말일텐데, 이것이 복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속에서 과거의 문화나 정신들을 새롭게 살려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평화롭고 지혜롭던 그들의 삶이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후 헬레나는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세계화를 외치며 몸집을 키워가는 신자본주의로 사회가 분열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다. 


헬레나는 라다크 복원운동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로컬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책 <로컬의 미래>는 그의 주장을 대화 형식으로 싣고 있다. 그는 환경과 사회 파괴는 경제 규모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서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지역화란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자는 것


이다. 대도시 중심이 아닌 마을 단위 생활 형태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든 대도시든 중요한 것은 <규모>다. '규모의 경제'는 단일화를 가져오고, 힘의 집중을 불러온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규모 단일작물 농장과 소규모 다품종 유기농장의 생산성은 단위면적당으로 따지면 소규모 농장이 더 높다. 하지만 대규모 단일농장은 기계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으로 움직일 수 있기에 1인당 생산량으로 따지면 훨씬 더 높게 된다. 즉 소수의 사람이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유럽의 농장 3퍼센트가 유럽연합 전체농지의 50퍼센트 이상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소규모 다품종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의 일자리 증가를 의미한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고 일자리도 증가하고, 여기에 더해 지역 중심의 유통이 이루어진다면 한쪽에선 배고파 죽는 곳이 생기고, 한쪽에선 남는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은 최소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정치체계가 무엇이든 말이다. 


대규모의 농사로 지어진 농산물은 어떻게든 팔려나가야 한다. 필요(수요)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이것이 실패할 땐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것에 맞추어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의 경제 활동이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이지 않을까.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며 세상 반대편까지 농산물이 날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지역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지역과 지역간의 나눔이 필요할 터. 그런 부분에서 지역화의 세계화는 필요하다. 대도시로 대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로인해 치우쳐진 힘의 균형, 군중 속의 고독과 환경 파괴는 대규모가 가져다 준 상처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 <로컬의 미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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