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어서는 안될 것을 집어 삼키는 이식증의 심리를 관찰하다. 외로움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위태롭다. 묘하게 매력적인 영화.


2. 헌터는 소위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성폭력을 당하고 태어난 과거를 비밀로 하고 살아가다 상류층의 남자를 만나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은 물론 시부모들도 상류계층의 품위를 유지하며 그녀에게 잘 대해준다. 하지만 온전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윈도우 며느리이자 아내라고 할 수 있다. 

헌터는 자신의 마음가는대로 살 수 없는 환경과 외로움 속에서 임신을 하고, 이후 갑작스레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기 시작한다. 처음엔 구슬에서 시작해, 압핀 등등 위험한 물건도 서슴지않는다. 결국 이식증은 초음파 검사를 하다 뱃속에 집어삼킨 물건이 보여 들통이 나고, 그녀는 정신치료를 받는다. 과연 그녀의 이식증은 나아질 수 있을까. 


3. 헌터는 왜 음식이 아닌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을까. 그녀의 이식 행위를 감시하게 된 시리아 출신의 남자는 "시리아와 같은 전쟁통에 있다면 절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댄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가 헌터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하자 도망가는 것을 도와준다. 난민으로서의 서글픔을 아는 그였기에 오히려 그녀의 외로움과 억압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4. 입으로 삼킨 것은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된다. 소화가 되지않는다면 삼킨 모양 그대로 나올 수 있다. 헌터는 구슬을 집어삼키고 나서 배설된 구슬을 깨끗이 씻어서 놔둔다. 이후 계속해서 압핀이나 다른 사물들을 먹고 배설되어진 것들을 함께 모아둔다. 삼키고 배설하는 것은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금지된 것들이라해도 내가 의지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삼킬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5. 헌터는 억압되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같다. 사랑의 결과가 아닌 폭력의 결과로 태어났기에, 자신의 출생부터가 억압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어머니의 사랑마저도 충분히 받지못해 외롭다. 자신의 자유를 내주고 타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헌터는 이식이라는 행위를 통해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난다. 그 마지막 과정이 바로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임신된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과정이지만, 헌터는 이제 비로소 혼자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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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비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 이번엔 드리프트다. 카레이싱 욕구를 일으킨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마저 드리프트로 날려버렸다. 


2. [반도] 영화 초반, 부산행 이후 4년이 지난 한반도 상황을 미국의 인터뷰 방송으로 짧고도 명확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좀비화되고, 한국을 탈출하던 사람들 중에도 감염자가 나타난다. 세계는 한국을 봉쇄하고 더이상의 난민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의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방법으로 봉쇄를 말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좀비의 전염과 코로나의 전염은 다르지만, 방역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좀비를 연상시킨다. 선한 얼굴의 좀비!


3. 봉쇄된 나라. 생존자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 하지만 그곳에선 세계에서 통용하고 있는 금이나 달러가 방치되어 있다. 만약 그곳에 들어가 금이나 달러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일확천금이다. 영화 [반도]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빛나는 설정이다. 


4. 영화 [반도]의 빛나는 초반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조금은 실망스러워진다. 좀비와의 싸움에서 내세울 수 있는건 자동차 추격과 드리프트뿐이다. 빛을 좋아하고 소리에 민감하다는 좀비의 특성을 활용한 싸움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다른 한 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애증을 다루는 부분은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다.   


5. 영화 속에선 좀비의 속도와 힘이 남성 성인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면 애당초 좀비 초기에 적극적으로 전염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좀비의 사냥터 게임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을 보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것처럼 보인다. 전염 초기가 중요하다.  


6.좀비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람의 피를 먹고서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 [반도] 속 한반도는 좀비왕국이 되었는데, 이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생태계에서 우위에 있는 종들의 숫자가 적은 것을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좀비도 어느 정도 전염이 이루어지면 일반인들을 물어뜯는 행위가 줄어들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집단면역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좀비천국은 결국 좀비의 멸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영화 [반도]를 보고 있자니, 감독의 좀비에 대한 세계관이 궁금해진다.      


7. 시도는 해봤어? 포기란 시도를 해보고 할만큼 다해봤을 때, 그때 내뱉을 말이다? 영화 [반도]속에서 강동원은 죄책감에 쌓여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내버려두었다는 것, 누나와 조카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를 괴롭힌다. 그래서 그는 영화 종반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생명을 구해낸다. 마치 이건 영화야! 라고 증명하듯. 

현실에선 어떨까. 현명한 사람이란 애당초 시도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리고 시도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혹여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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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상력 풍부한 애니메이션. 나는 어떤 동물로 변하면 좋을까?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2. 오웬은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을 위해 장인어른의 회사에 다닌다. 그러던중 삼촌이 남긴 동물모양의 크래커가 담긴 요술상자를 얻게된다. 이 크래커를 먹으면 그 모양의 동물로 변신한다.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형태로 된 크래커가 하나 생긴다. 오웬은 동물변신이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서커스를 일으켜세운다. 하지만 이 비밀을 눈치챈 호레이쇼가 애니멀 크래커를 노리면서 좌충우돌 사건이 벌어진다. 


3. 동물로의 변신이 유쾌하다. 서커스 장면은 짜릿하다. 동물의 특성을 살려 서커스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도 재미있다. 어른도 아이도 동심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총알맨을 비롯한 서커스단원들은 물론 악당 캐릭터들도 개성이 철철 넘친다. 


4. 오웬은 동물로 변신해 있는 와중에 자신의 모습을 띤 크래커를 잃어버린다. 사람으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이때 호레이쇼가 크래커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돌아갈 것인지, 서커스를 넘길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오웬은 가족들이 서커스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가족들을 위한다면 자신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서커스를 지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웬은 서커스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이 될 수 없는 오웬이라도 가족은 그를 사랑해줄까.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다. 사랑만 있다면.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아이들과 이런 판타지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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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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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천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나 되는 인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20년, 올 여름에도 용인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12년전 사고로 배운 것이 없이 똑같은 사고로 똑같이 사람을 잃었다. 


화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 큰 원인중의 하나는 소위 샌드위치 패널이라는 단열재, 가연성의 우레탄 폼을 이용한 마감 자재다. 불에 잘 타는데다 유독성 연기를 내뿜어 치명적이다. 그런데 왜 물류창고에 이런 위험한(?) 단열재, 마감재를 쓰는 것일까. 비용때문이다. 물류창고를 짓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2008년 이천 화재가 분명 이것을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목숨보다는 비용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악당이어서 비용을 중시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분명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따듯한, 인정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약탈적' 자본주의에 물들어져/길들어져 있기에 아무런 고뇌없이 비용만을 고려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명보다 효율, 또는 돈이라는 것을 더 중시하게 됐을까. 


자신이 속해있는 일상 속에 묻혀살고 있을 때는 그 일상의 문제점을 잘 파악할 수가 없다. 일상은 당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럴 땐 외부의 시선으로, 또는 외부를 기준점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을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독일을 준거로 삼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당연한 일상이 왜 우리의 불행이 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된다.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 더군다나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갖춘 나라에서 3만 달러 이상의 GDP를 올리는 7개 국가 중의 하나이다. 또한 촛불혁명이 보여주듯 정치적 민주주의는 세계로부터 탄사를 받을만큼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스며들지 못했다. 즉 정치적 현장에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일상에서는 권위주의가 만연해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 문화 등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요원하다. 소위 꼰대라고 말하는 권위주의적 행태가 만연해 있다. 또한 경쟁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찬양할 정도다. 경쟁 없이는 모든게 도태될거라는 엄포와, 경쟁을 이겨냈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승자독식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체화했을까. 그 원인을 쫓아가보면 분단이라는 조건이 상식을 벗어난 가치관을 수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행을 당연시하지 않고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전쟁이 없는 평화적 상태, 나아가서는 통일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도르노가 말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는 것을 잊지않은 강한 자아가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게되면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불행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에서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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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자평 - 5분 초능력자들과의 액션신은 황홀하지만, 상투적 결말은 아쉽다.


2. 5분간 초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알약 '파워'가 암시장에 나오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전직군인, 그리고 10대 흑인여자딜러의 활약을 그린 SF액션영화.


3. '파워' 알약을 먹는 순간 어떤 초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초능력은 5분간만 발휘된다. 만약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폭발해버린다. 이 초능력이라는 것은 동물들의 능력을 모사한다. 카멜레온의 위장력, 도마뱀의 재생력 등등. 이런 초능력을 보여주는 CG의 화려함을 무장으로 알약을 먹은 범죄자와 전직 군인 아트의 격투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 그런데 짧은 액션 장면이 몇 개 나열되면서 스~윽 스쳐 지나가버린 느낌. 영화 중간에 클럽에서 싸우는 장면은 그 시점이 유리관에 갇힌 피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독특하다. 이 장면은 강력추천.

   

3. 그런데 당신도 5분간이지만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면 알약을 먹을 것인가? 알약을 먹겠다고 선택했다면 왜 초능력자가 되고 싶은 것인가? 영화 [프로젝트 파워] 속에서는 그 힘으로 대부분 범죄를 저지른다. 힘에 대한 갈망이 범죄를 불러오는 것이다. 

반면 전직군인 아트는 10대 흑인소녀 마약딜러인 로빈에게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생존의 도구로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로빈은 랩에 자신있다. 아트는 로빈의 랩 실력에 엄지 척 해주며, 그 실력을 쌓아서 살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세상은 자신의 온전한 실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영화[프로젝트 파워]는 어찌보면 초능력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랐던 것은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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