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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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명랑하게 자연을 노래하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태의 건강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웃음은 보너스다. 길을 떠나게 만드는 상큼한 매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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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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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지금, 여기 있음을 알려준다.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그토록 쉬운 행복으로 가는 길.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행복을 옆에 두고. 멈춤의 참된 방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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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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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난장이는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질 것 같았던 그들의 존재가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는 듯하다. 거리마다 난장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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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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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란 영화는 잔인한 영상 때문에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역시 잔인하다다. 하지만 최근 개봉했던 이끼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허준호를 감옥에서 린치하는 장면들) 그럼에도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함 때문에 홍역을 앓은 것은 잔인함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일터다. 만약 이 영화에서 잔인함을 덜어낸다면 영화는 힘을 잃고 말았을 테다. 악마를 보여 줄 화면을 잃어버릴 테니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연쇄살인범 최민식에게 약혼녀의 목숨을 빼앗긴 이병헌이 범인을 찾아내 반복해서 고통을 가하는 복수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왜 악마를 보았다라고 했을까. 살인범 최민식이 악마일까. 아니면 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의 힘을 빌린 이병헌이 악마일까.  

악마란 사전적 의미론 사람의 마음을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을 말한다. 또는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맥락으론 최민식이 그야말로 악마다. 이 악마의 특성은 고통과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병헌의 복수가 먹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병헌의 품성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된다.      

한편으론 악의 힘을 빌려 악을 응징하는 이병헌이 악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약혼녀를 죽였다는 이유로 끈덕지게 그를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복수의 도를 넘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의 행동은 멈춤이 없다. 오로지 앙갚음만이 남아 있는 그의 마음은 악마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천사의 탈을 벗고 악마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이병헌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말한 악마는 바로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이 복수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보다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국정원 출신의 뛰어난 무술 능력과 첨단기기가 없었다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히 잔인무도한 살인범에게 대적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보통 사람들은 국가라는, 또는 법이라는 공적인 힘을 통해 복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힘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용납이 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대신 마음 속의 분노는 용서라는 이름으로 사그라들도록 강요(?) 당한다. 하지만 그 용서란 것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보여준 것은 바로 용서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낼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악마의 실체가 아닐까. 힘이란 언제든 그 악마적 속성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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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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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은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나비 꿈을 꾼 장자가 나비였던 것이 꿈인 것인지, 지금 사람으로 있는 것이 꿈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호접몽 같은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남의 꿈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훔쳐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바로 이 부분에서 호접몽을 떠올릴 수 있겠다.) 꿈속의 꿈, 그리고 다시 그 꿈속의 꿈으로의 침입.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그냥 화면을 쫓아가다 보면 크게 혼돈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꿈 속에서 그 사람에게 생각을 심어준다. 그 생각은 작은 씨앗이 되어 점차 커지더니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감독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지 아닐까 싶다.  

꿈과 무의식은 이성의 시대를 고하는 한 부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성적 측면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것들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는 이성의 작용을 도움받아 행동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 사람의 감정적 측면을 건드린다. 가령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악해 무의식 깊숙히 들어가 새로운 감정을 심어줌으로써 원하는 행동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생각을 교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추억.기억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나의 감정선을 바꾸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동은 크게 변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 샐리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를 바꾸려 노력하기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을 바꾸려는 노력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가 박약함을 한탄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뒤바꿔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를 보여준다. 호접몽과 같은 상태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주인공의 '토템'이 바로 팽이다. 팽이가 멈추면 현실이고, 계속 돌면 꿈이라는 설정.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팽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맞이한 해피엔딩은 꿈일까 현실일까.  

아, 팽이야, 그대로 쓰러져다오. 나도 모르게 애타게 소망해본다. 죄책감에 시달렸던 주인공의 평온한 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꿈인들 어쩌랴. 차라리 그 꿈속에서 깨지 말기를.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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