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도 나왔듯이 1953년 체결됐던 정전협정에는 대한민국의 서명이 없다. 북한과 중국, UN의 사령관이 협정체결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통일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만들었던 북미회담 또한 우리의 자리는 크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대통령의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약한 토대위에 있는지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평화협정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강철비2]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희생정신과 소통력을 통해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그려보인다. 


2. [강철비2]에서는 중국, 일본, 남한, 북한, 미국이 각자의 국익을 위해 복잡한 셈법을 펼친다. 특히 일본은 중국과의 다오위다오-센카쿠 분쟁, 한국과의 독도 분쟁을 자국 자위대의 희생을 빌미로 국방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카게무샤 계획을 세운다. 물론 영화속 상상이다. 이 상상이 공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 현실에서 간혹 벌어지기 때문이다. 


3. [강철비2]는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역학관계를 드러내는 극사실적 영화가 아니다. 오락영화다. 오락의 핵심은 북한의 핵잠수함을 두고 벌어지는 미국, 일본, 한국의 군사력 대결이다. 그 중심에 남북미의 정상을 납치해 감금한 북한의 핵잠수함이 있다. 일본 초계기와 잠수함이 북한의 핵잠수함을 공격하고 이에 맞대응하는 장면은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잠수함의 전술이 다소 단순하다는 점만 빼면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 영화 [유령](이 영화에서도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온다)으로부터도 진일보한 모습이다. 


4. [강철비2]의 또다른 오락적 측면은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삼국의 정상이 잠수함의 좁은 공간에서 벌이는 행태는 마치 사춘기 사내아이들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인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유머가 극의 강약을 조절한다. 반대로 이 웃음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측면도 없지않아 보인다. 아무튼 미국 대통령의 억지같은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덕분으로 생각된다. 


5. [강철비2]의 감독은 정우성의 입을 통해 묻는다. 통일이란 통솔자가 이루어내는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열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통일을 진정 원하는가? 라고. 맞다. 국민적 지지없이 통솔자만의 독단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간혹 있다 할지라도 끝내는 좌초하고 만다. 

그런데 통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과연 옳은 질문일까. 통일은 목적이 아니다. 통일은 수단이다. 목적은 평화다. 평화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통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하느냐고? 그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 통일이라는 다리를 선택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 땅에는 아직도 전쟁을 원하는 자가 있고, 전쟁을 위협삼아 이익을 챙기는 무리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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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오리지널 폴란드 영화. 넷플릭스 덕분에 평소 보지 못했던 유럽국가들의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접하고 있다. 이번 영화는 마치 정치인 테러 실화를 바탕으로 한듯한 이야기 전개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2. 댓글의 힘은 대단하다. 같은 의견의 댓글이 모이고 모이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 힘을 알기에 댓글조작부대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심지어 여론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3. 영화 [헤이터]의 주인공 토메크 기엠자는 한 가족의 지원 덕분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표절로 인해 대학을 중퇴하게 되고, 한 커뮤니티 회사에 들어간다. 의뢰인의 입맛에 맞추어 댓글을 조작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 일이다. 

그는 자신을 지원해준 가족의 딸인 가비를 좋아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후원가족이 일하고 있는 한 정치인의 선거캠프에 들어간다. 이 정치인은 커뮤니티 회사에서 여론을 조작해 지지율을 떨어뜨려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토메크는 게임속 캐릭터로 사회부적응자인 한 남성을 꾀여 테러를 유도한다. 

영화 [헤이터]는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비뚤어진 욕망과 책임감 없이 비대해진 온라인 댓글이 만나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매력이 영화 내내 흘러넘친다.  


4. 그저 관심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한 여자로부터. 또 조직으로부터. 가짜 계정을 만들고 조작된 댓글로 공격하는 것이 일인 회사. 이곳에서도 능력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일이 일인지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불법도 서슴치않는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남을 해치고 불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뛰어나서야 되겠는가.


5. 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잘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도 이때문일지 모른다. 무한경쟁 속에서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다. 어떻게 이기는지는 상관없다. 무엇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저 꼭대기에 서 있는 것만이 최대 관심사다. 

반대로 꼭대기에 서 있을 수 없다면 꼭대기에 있는 이들을 잡아끌어 내려야 한다. 그 잡아끄는 손가락-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눌러대는-엔 정의나 양심이 없다. 욕망만이 춤을 춘다. 비극은 그렇게 잉태된다. 


6. 댓글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헤이터]처럼 온라인의 영향력으로 사람을 조정해 테러까지 일으키는 일이 상상 속의 일일 수만은 없어보인다. 섬뜩하지만 미움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온라인에 남겨진 글은 칼날이 되기도 한다. 부디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를... 그 칼날이 자신에게로 향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미움과 증오로 춤추는 댓글들. 우리는 어디까지 그 춤을 허용하고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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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도 아이가 있나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건드린다. 올해 본 영화중 단연 탑3에 꼽을 수 있는 영화. 


2. 마약 카르텔인 산토스 가문의 둘째 아들 후안. 형 대신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가문과는 거리를 두고, 평범하게 살고자 한다. 하지만 딸의 첫 성찬식을 위해 가석방된 날, 뺑소니 사고로 딸을 잃는다. 폭력과 거리를 두려했던 후안은 딸의 복수를 위해 총을 든다. 과연 뺑소니범은 누구인가?


3. 엇갈린 목격자의 증언들. 경찰에게 말한 목격자가 지목한 범인과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이 후안에게 넌지시 알려준 범인이 다르다. 경찰이 쫓던 범인은 차 안에서 죽은채 발견이 됐다. 하지만 후안은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범인일까? 영화가 주는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4. 후안의 딸은 이렇게 묻는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이에요?"

 "어른은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땐 책임을 져야한단다" "나쁜일을 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죠" 그렇다. 어른은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다면 후안은 처절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안함도 표현되어져야 한다. 


5. 영화 [아디오스]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것은 모성애나 부성애와 같은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악의 구렁텅이에도 빠질 수 있고, 목숨마저도 내놓을 수 있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꼭 이런것만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는 아이를 내팽개치고 책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헌신이 동력이 되어 영화가 진행되는 모습은 마음 저 깊이 울림을 준다.


6. 딸이 죽고나서 흘러나오는 음악 Rosalía canta가 부르는  'Me quedo contigo'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귓가에 맴돈다. 유튜브를 뒤져서 이 음악을 다시 들을 정도였다.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영화[아디오스]를 본다면 스페인 영화와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7. [아디오스]는 한국어로 "잘 가"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의 자막은 딸을 보내는 진혼시라 할 수 있다. "천국에 머물렴 지옥을 떨쳐버리고 천사가 된 너를 새가 된다면 볼 수 있을까"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영화 자체가 죽은 딸을 떠나보내는 진혼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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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르제프 지역에서 벌어진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를 다룬 영화. 제정러시아에서 소비에트러시아(소련)로 정권의 성격이 바뀐지 채 30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전하게된 인민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또한 화려한 그래픽은 없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이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 


2. 초반 전투씬은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의 배경이 해변가가 아닌 설원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22년전의 영화가 아직도 전쟁영화 전투씬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1942:언노운배틀]의 전투씬은 러시아 설원을 배경으로 다소 굼뜰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기위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드러내준다.


3.[1942:언노운배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전령병은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연상시킨다. 전쟁 속에서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더군다나 영화 중반부 이 전령병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병사들간의 갈등이 생긴다. 갈등의 발생과 해결 과정 속에서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직업이 주는 편견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4. 영화 중반부 독일은 소련군의 머리위로 삐라를 뿌린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약속과 통행증이다. 전투의 와중에 감찰의 임무를 띤 장교가 나타나 삐라를 지닌 장병들을 색출한다. 이 장교는 오직 나라와 법에 충실할 뿐이다. 고아로 자라 주위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지낸 장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가 전쟁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에 눈을 뜨게 되는지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5.[1942:언노운배틀]의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실제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치러진 르제프 전투에서는 150만명의 소련 병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승리를 가져왔다. 영화는 영웅이 아니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죽어야만 했던 병사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병사들의 군상은 러시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다가온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인간성을 짓밟는 전쟁 속에서도 지켜질 수 있는 인간미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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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19로 극장개봉하지 못하고 스트리밍서비스로 직행한 또하나의 영화. 디즈니에서 만든 SF 판타지 모험극. 온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한 요정으로부터 인간계와 요정계를 지키는 천재소년의 이야기. 어른들이 보기엔 유치한, 아이들이 보기엔 사랑하고픈 캐릭터가 없는 밋밋한 전개와 구성.  


2. 오언 콜퍼 작가의 원작 소설과는 다소 달라보인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아르테미스 파울이 천재소년인데다,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기 위한 지극히 선한 존재로 나온다. 반면 온 우주를 지배하고자 하는 요정은 그야말로 악한 존재. 명백한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영화는 전개된다. 이 악한 요정이 왜 우주를 지배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가 좀더 이해가능한 것이었다면 좋았을텐데...


3. 영화[아르테미스 파울]은 아무래도 눈요기로 승부를 볼 심산이었던 것 같다. 지구 내부에 살고 있는 요정 세상에 대한 CG로 꾸민 풍경과 요정의 날개를 비롯해 각종 운송기와 전투기, 시간조절기계 등등이 요정의 마법이 아닌 첨단과학의 결과물임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말 그대로 눈요기다. 이중 어떤 것도 아이들을 사로잡을만한 특징이나 재미, 색다른 캐릭터가 없다.


4. 마치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온 우주의 문을 여는 만능키같은 절대적 힘을 가진 보석이 나온다. 그리고 이 보석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영화의 전체적 줄거리이다. 하지만 절대반지와 같은 묘한 힘을 느낄 수도 없다. 그저 절대적 힘을 가진 보석일 뿐이다. 아무래도 [아르테미스 파울]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귀여운 캐릭터라도 있으면 좋았을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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