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통로에 눈이 쌓였다. 처마로 인해 전체를 뒤덮진 못했다.

이래저래 경계는 형성되지만 굳건할것같던 이 선도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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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배움이란 암기에 가까웠다. 지식이 더 많은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나름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배움은 가치가 없어질 듯하다. 삶에도 물론 큰 도움을 주지 못할성싶다.

암기에 가까운 지식은 인터넷 속에서 넘쳐난다. 필요한 것은 검색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어떤 것이 참된 지식인지를  추려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즉 지식을 찾아내고 걸러내는 방법론적인 것이 배움의 첫 단계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방법론을 넘어서 이 시대에 맞는 참된 배움이란 무엇일까.

그런 바로 물음일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는 능력,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고 협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미래의 배움일 터이다. 문제는 바로 올바르게 묻는 법이다. 모든게 문제 투성이이니 아무거나 물어도 되는 세상일까. 세상을 더 살만하게 만들어가는 문제제기. 즉 물음에는 가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묻는 능력만이 아니라 무엇을 물을 것인지 그 가치를 따져볼 줄 아는 능력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다.

지식 속에서 해답찾기라는 과거의 배움에서 가치있는 물음이라는 미래의 배움으로 넘어가는 시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업이 우리는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배움은 그 끝이 없는 법이다.

지금 나의 질문은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도 잠들기 전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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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독감검사라도 받아볼래요?"

딸내미가 체한 듯 구토를 하고 난 다음날, 열이 떨어지지않고 계속됐다. 단순히 체한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도 열이 가라앉질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문진 후 열의 원인을 당최 알 수 없다는듯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아무래도 독감이나 뇌수막염일 수도 있다는 것. 정밀 검사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단다. 의사는 아니지만 딸내미의 현상은 급체로밖에 보이질 않았는데... 조금 더 지켜보는 건 어떻겠냐는 질문에 의사가 화를 낸다. "열이 38도가 넘었는데 지켜보자니 말이 되냐. 정 그렇다면 그냥 독감 약이라도 지어가라." 아니, 이건 무슨 말인가. 독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독감 약을 지어가라고? 의사가 다시 권유한다. "방금 전 환자도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독감 조사를 해보니 독감이었다. 독감 검사 받아볼래요?" 아, 이런. 울며 겨자먹기로 독감 검사를 받았다. 독감은 아니었다. 일단 해열제 중심의 약 처방을 내렸다. 일단 약을 조제하고 집으로 데려가 딷듯한 방에 뉘었다. 그리고 추이를 지켜봤다. 약은 먹이지 않았다. 점차 열이 사그라들었다. 다행이다.

#"글쎄, 잘 모르겠네요. 일단 그냥 가세요."

자동차가 말썽이다. 정차하고 있으면 가볍게 덜컹거린다. 가속 중에도 덜컹거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계속적인 게 아니라 나타났다 잠잠했다 그런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점화플러그 한두개가 고장 난듯한 현상으로 보여진다. 시간을 내어 정비소로 갔다. 정비사는 자동진단기로 자동차를 점검하고 나서 아무 이상없다고 말한다. 증상은 있지만 이상은 없다? 점화플러그 이상은 아닌가 물어보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 불안하다면 다 뜯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일단 후퇴.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기로 했다.

 

프로라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라 함은 기술적으로도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자세도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연이틀 시간과 돈을 들여 방문한 병원과 정비소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고객에게 못미더움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또한 돈을 버는 사람이니 내가 하는 일에 프로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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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프로그램 중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은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다.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 반려견들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문제해결에는 반려견 전문가가 등장하는데 이 전문가의 말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에 있다 라거나 '무조건 퍼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는 등등 사람과 반려견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까지 확장해도 될 격언이 매 회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말썽을 일으키는 반려견들의 문제는 함께 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방식이 그릇된 것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길들이기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길들여진다 또는 길들이다라는 개념은 순치(順治)라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해 약간 부정적 입장이다. 즉 길들여진 말보다는 야생마가 좋다는 관점이다. 길들여짐이란 순치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여우와 어린왕자간의 대화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진다는 뜻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그래서 길들여진 여우가 진짜 행복할까? 자신만의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자유와 행복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으로 확장됐다. 

그런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서 길들여진다는 것이 꼭 순치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길들여지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그것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퍼주는 사랑보다는 때론 절제도 하며 인내하는 자세를 통해 행복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모든 걸 내주는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길들여짐이란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조건 내어주거나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에도 균형은 필요하다. 길들여짐은 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나쁜 사랑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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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움찔움찔할 때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반대편 차 때문이다. 인도가 없어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가는 어르신들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자전거나 경운기,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가장자리가 패이거나 울퉁불퉁해 이걸 피하려 할 때도 중앙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 무작정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들도 있다. 중앙선을 넘었다 차선을 지켰다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차들이 다가오면 이쪽에선 도로 끝자락까지 피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차선을 지키겠다고,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나아가다간 충돌할 게 뻔하다.

 

도로에서뿐만이 아니다.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조차 나는 올바르게, 정당하게 내 차선을 지키며 끝까지 내 길을 고집하겠다고 주장하다가는 필시 사고가 난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경우 피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피해간다고 내 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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