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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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독특한 소재였던 것 같다. 요리에 관한 소설이나 만화책등은 많지만 이렇게 한 사람만을 위한 식당이라니. 하루에 한 팀만 예약을 받고 또 인터뷰를 통해 그를 파악한 후 요리를 알아서 준비한다니. 그래서 이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되고 사랑하게 된다니. 참 독특했다. 

  그런데 나는 이 식당의 독특한 시스템에도 반했지만  사실 가슴에 와 꽂힌 장면은 키우던 돼지 엘메스와의 이별 장면이다. 14페이지에 달하는 이 이별장면은 참으로 숭고하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 시골집에서는 가끔 개를 잡는다. 나는 처음에 "엄마 이거 키우던 그 놈이야? 이걸 어떻게 먹어~" 라고 하였고 엄마는  직접 키운 놈들이라서 직접 잡지 않으시고 다른 집 개와 바꾼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놈이 그놈이었다... 

  어쨋든, 이렇게 직접 키운 무언가를 먹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다. 그것이 나를 잘 따르던 것이라면 더더욱이나. 그런데 이 책에서 엘메스와의 마지막 장면은 뭔가 그런 도덕적인 것을 뛰어넘는 숭고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엘메스의 피한방울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는 짧은 한줄의 메시지가 정말 살 한점, 피 한방울 안남기고 요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달팽이 식당의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갑자기 루리코의 아픈 이야기로 넘어갈 때는 참 황당했다. 참으로 상투적이 되어가는구나 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만난 이 장면에서 이 소설의 진가는 여기에서부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메스가 세계 각국의 요리로 변신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베트남, 러시아, 아메리카 등등... 솔직히 어떤 음식인지 알지 못하기에 군침이 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엘메스가 가공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근사한 요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음... 뭐랄까... 도자기를 굽는 작업, 100호의 그림을 점묘화로그리는 작업, 장승을 깍는 작업 등 어떤 예술작품에 몰입하여 정말 멋진 대작을 만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선물할 몇 사람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이 높은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책을 한 권 내는 작업도 매우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청년 사장님. 1평이 조금 넘는 카페에서 커피만큼 음악과 사람을 좋아하는 청년 사장에게 당신이 주는 커피한잔 한잔이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하고, 사랑하게도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 세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연극배우. 내가 보아온 그녀의 연기는 결코 쉬운적이 없었다. 매번 자신의 뼈를 깎는 고통이 느껴질만큼 난해하고 생각과 마음이 열갈래, 만갈래로 찢어져있는 역할들만 맡았다. 이번에 하는 연극도 마찬가지이고...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다. 당신의 연기는 내게 치유가 되고 생각할 여지도 주고 또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든다고. 그리고 네번째... 

  달팽이 식당.내가 제일 좋아하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었는데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놓쳐버린 책.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점에서 산 책. 이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에서 만난 책이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그만큼 너무너무 행복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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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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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난 추리소설에는 젬병인데다가 이 책은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만날 법한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 책을 만난건 순전히 김지은 아나운서 덕분이다. 내 인생의 멘토라고 여기는 김지은 아나운서가 지난 11월 즈음인가 장진의 라디오 북카페에 출연한 사진을 우현히 보게 되었다. 그 사진에는 바자의 에디터인 김경이 쓴 에세이 셰익스피어 배캐이션에 포스트 잇을 붙여가며 정독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있었다. 나는 대체 어떤 책이기에 저렇게 열심히 읽었을까 하는 궁금함으로 그 책을 샀고 그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몰타의 매를 접했다.  

  김경은 프롤로그에서 몰타의 매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이 글이 자신에게 이제는 떠나야할 때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나는 아직 셰익스피어 배캐이션을 떠날 준비가 안되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읽을 준비가 안되있었던것같다. 그래서 이 책을 좀 더 잘 읽기 위해 몰타의 매를 집어들었다. 김경이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그 동기부터 상상하며 책 읽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경의 마음은 헤아릴수 없으나 또 그 부분이 내게는 뭐 그닥 크게 확~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게 잘~~~~읽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한편을 본 기분으로 말이다.  

  사실 요즘 소설들은 인물의 내면 묘사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읽으면서 많이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피곤하다는 것이 싫다는 표현이 아니라 내 감정이 소설에 이입되어 감정소모가 크다는 말이다. 그런데 몰타의 매는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행동과 대사들로만 이루어져있다. 그러니까 상상의 여지도 많고 보여지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정말 제대로 된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 소설은 3번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보고싶다...  

  주인공 스페이드. 탐정으로서 냉혈한 같으면서도 로맨티스트 같으면서도 어쨋든 꽤나 멋있게 느껴지는 인물, 그에게 사건의 의뢰가 연거푸 2개가 들어오고 그건 몰타의 매와 연관되어있다. 음흉하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건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스페이드의 모습이 소름끼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멋있게 느껴진다. 정말 오쇼네시를 사랑했을까? 라는 의문도 생기고, 에피와는 어떤 관계지? 혹 여자를 가장한 남잔가? 하는 생각까지 의뭉스러운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상태를 전혀 표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입문해보려고 참 애썼었다. 솔직히 추리소설 읽는 사람들 쫌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 전에 물만두님(알라딘 블로거)께 추천을 부탁드리기도 했었고, 애거서 크리스티 책을 사서 시도해보려고 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몰타의 매는 흡입력이 강하고 정말 술술 읽히기 때문에 이런 것이 추리소설이라면 앞으로 쭈욱~~~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대 작품이라서 그런건지 문장이 어렵지가 않다. 문장의 길이도 길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 대한 공간의 설명부터 등장인물의 생김새 묘사까지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상상하며 읽으니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도 든다. 나처럼 추리 소설에 영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번 같이 추리소설의 세계로 빠져보자고 권하고 싶다. 결말을 알 수 없는, 결말이 막 궁금해지는 소설. 그런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추리소설을 이어갈 수가 없다. 다음에 읽을 책은 셰익스피터 배캐이션이기 때문이다. 김경의 책은 언제나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 혹 더 많이 떠나게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왜냐면... 돈도 없고....메여있고....등등....^^ 

  이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대실 해밋의 또 다른 추리소설도 막 궁금해지지만 당분간은 대실해밋것은 안볼것이다. 왜냐면...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깐 ^^  여튼~ 영화 한편 제대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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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 Room in the heart, BIUM 고래뱃속 생각 그림책 1
곽영권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고래뱃속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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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1일, 6월 1일 양일간 신규야간보호교사 워크샵이 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지역아동센터 또는 복지관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나이트케어를 해주는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 고무신학교의 교장즈음 되시는 고무신님이 오셔서 비움을 비롯한 여러권의 책으로 책 읽기와 놀이를 주제로 워크샵 형식의 강의를 하셨다. 참! 고무신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스승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선생님]이라는 말을 고무신 학교의 금지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나 또한 정말 선생, 교사로서의 자격이, 자질이 있는 건가 돌아보게 되었다. 

  비움... 제목만 가지고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고무신님이 전에 아이들과 워크샵을 했을때 어떤 아이는 [비움]이 비가 온 뒤에 움이 트는 것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머리속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한 것 같다. 비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치 시를 읽 듯이.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분히 철학적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만의 순수함이 이 책속의 내용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나뭇결들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나뭇결을 이용하여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와우~ 신기해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는 소리내어 책 읽기와 그림 보기를 마친 후 조그마한 나무 도막을 받았다. 길거리에 가다가 어느집에서 버린 나무를 톱으로 쓸어서 가져오신 거라고 하였다. 우리는 고무신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나무도막을 일명 뻬빠, 건조한 사포로 열심히 문질렀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릴 것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될 때까지 문지르라고 하였다. 매끄러운지 아닌지는 볼에 대보면 안다고 했는데 볼에 대니 아주 기분좋은 매끄러움이 전해졌다. 대신에 하얀 밀가루 같은것도 묻었다. 나무 도막을 뚫어지게 30초를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뭇결이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다.  

  6명이 한조가 되어 둥글게 앉아서 작업을 했는데 어쩜 6명이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나뭇결에서 큰 고래한마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피노키오도 보았고, 성경의 인물 요나도 보았다. 어떤이는 선풍기를, 공작새를 그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는 막대사탕을, 곰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어진 미션은 이 여섯개의 그림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각조마다 정말 근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무 조각이 하나 남아서 집에서 남편에게 해보려고 가지고 왔다(아이가 없으니 나의 실험 대상은 언제나 남편이다. ^^) 남편은 열심히 사포로 문지르고 얼굴에 대보고 물티슈로 깨끗이 닦고 난 후 나무조각을 뚫어지게 30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난 아무것도 안그릴래" 잠시 실망했지만 맞아!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인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나무 조각을 볼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하나쯤 아무것도 안그려진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겠군!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4평형의 우리집은 책들로, 살림들로 정말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가끔 숨이 막히기도 한다. 결혼해서 8년동안 한번도 이사를 한적이 없기에 살림들이 구석 구석 잘도 채워지고 있다. 이제 슬슬 비움을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들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있는 것들로 더 많이 풍성하게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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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최근에 출간 되었습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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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 학생 상담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월 1일부터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야학의 전담 교사가 되었다.  지난 한달간 일을 배우고 상담에 참관하며 숨가쁘게 보냈다. 이번달도 행사가 참 많고 1:1 상담이 잡혀있다. 물론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외부에 나가셔야 해서 내가 하게 되었다. 어젯밤 얼마나 걱정이 됐는지 모른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눠야 한다니. 게다가 어제는 한 학생에게 대해서 뜻모를 화가 계속해서 나서 집에 오면서 내가 왜이러는 걸까 고민 또 고민해야했는데 상담이라니... 그래서 인지 빨리 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고 내 문제를 더 들여다 봐야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형광펜질을 하였다. 그래 그래 바로 이거야 그래 그래! 라며 고개를 많이도 끄덕였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야! 책을 읽는게 아니라 무슨 공부하는 것 같다야!"라고 말을 하였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정말 나는 공부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대목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먹먹해 왔다. 

  맞벌이하는 세진의 후배부부에게 기은이라는 딸이 있는데 생 후 삼개월부터 시골 할머니가 키웠다. 여름휴가 동안 아기와 함께 지내기 위해 데리고 왔는데 네 살먹은 기은이의 눈빛이 벌써 상처입은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진은 이 아이 기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안아주려해도 안기지 않는 점, 언니가 제 것을 탐내자 순순히 양보한 점, 작은 서운함에 크게 상처 받는 모습 등... 그리고 세진은 의사에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하는거냐고. 그러자 의사는 말한다 [무조건 사랑해줘야 합니다. 아이가 귀찮다고 느낄 만큼 사랑해줘야 해요] 나는 아직 아이인것 같다. 아직도 사랑받고 싶다. 내가 귀찮다고 느낄 만큼 누군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을 잘할 때만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실수를 해도 용납되어지고  귀찮으리만큼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일단은 그 대상이 남편인 것 같다. 철저하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남편에게 묻곤 한다. 내가 불구가 되어도, 지금보다 더 못생겨지고 뚱뚱해져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남편은 당연하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내가 한 시간 가까이 설겆이할 때 TV나 만화책 보느라 나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남편을 향해 눈물 바람을 날리며 뭐가 당연히 사랑하는거냐고 따져 물었다. 귀찮으리만큼 사랑받는 일...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래야하는 상황이다. 나도 받지 못해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 야학 아이들을 향해 그런 사랑을 해야한다. 아이가 귀찮다고 느낄만큼 사랑해줘야 한다. 나의 콤플렉스를 자꾸 건드려 나로 하여금 화를 돋우는 그 아이를 향해 귀찮을 만큼 사랑해줘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없는 몸인데 말이다. 책은 박세진에 대해서 [올바름, 정의, 그런 것을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그것은 페르소나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내보이면서 성격의 다른 면은 깊이 억압한 채 그 페르소나가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자선사업가가 꿈일 정도로 페르소나로 철저히 나를 감추었다. 나 가진 것도 없어서 동네 수퍼에서 도둑질을 했던 내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으로 찾은 것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중학교 때 일기장을 보면 내 안에는 악마가 있다며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는 일기로 가득차 있다. 이 이중성에서 벗어 날때 나는 비로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 학원에서 학생과 아주 크게 싸웠다. 정말 패고 싶도록 미운 감정이 솟아 올랐다. 악다구니를 치고 얼굴이 씨뻘개졌다. 원장이 말려서 그 싸움은 일단락 됐다. 그 다음. 그 학생을 만나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라고. 너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나 때문에 화가 났던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나는 아이앞에서 울고 말았다.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엉엉... 학원을 그만두고 나오던 날 그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죄송하다는 말과 선생님은 저의 유일한 상담자였다는 말이 적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부도덕성을 인정하고, 열등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그렇게 학생을 대해야겠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남편을 향해서도,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서도. 책 한번 읽었다고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된다면 35년간 이 문제를 끌어안고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내 문제에 다가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이 책이 그 기폭제가 되어준 것을 인정한다. 오늘보다 안나아있을지도 모를 내일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줘야겠다. 귀찮으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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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김씨 2010-09-2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전에 읽다가 말았습니다. 최근에 어떤 자매에게 이 책을 권유하고, 좀 찔려서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인터넷에서 찾다가 들렀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내적치유와 세진이 상담하는 부분이나 세진이 절에서 행하는 일들과 관계설정이 가능한지요?
아니면 서로 따로따로 인가요? 세진을 상담하는 의사가 종교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그냥 궁금해서

2010-10-0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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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삼십대 후반의 사회적 명성이 어느정도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모여 사회를 비판하고, 현실의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 성문제 등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박세진에게 몰입되었고 그녀의 정신분석 수순을 똑같이 밟아가며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세진뿐 아니라 인혜의 이야기도 흡입력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재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두 번째 읽을 때는 세진에게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세진이 했던 말들, 의사가 했던 말들에 형광팬을 그어가며, 나의 상처에 직격탄을 날린 곳에는 펜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가며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내 이야기를 어디에든 잘 정리해서 둬야겠다는 생각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오래오래 고민하여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의사는 처음 병원을 방문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엇을 해결해 줬으면 하는지 말해보세요]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제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이 작업을 통해 제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심리학 책도 읽었고, 심리상담도 받아봤고, 교회에서 내적치유 프로그램도 참여를 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것들을 통해 무엇을 해결받고 싶은건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힘들고 뚫리지 않는데 정면으로 그 문제에 부딪힐 엄두는 못내고 그냥 겉핡기만 열심히 하고 그래 이정도면 됐어! 라고 여기며 똑같은 문제로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묻는다. [대체 넌 문제가 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한건데!!] 그러게 도대체 내 문제가 무엇인건가. 만일 내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내게 [내가 무엇을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화를 내며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위로도 안해주고 바로 문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문제를 회피하고 내 주변을 둘러싼 그 무엇에서 맴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에 조금씩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진의 문제와 나의 문제가 많은 부분이 닿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외가에 보내진 세진과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방학 때면 할머니댁으로 보내진 나,  열심히 울어봐야 들어주는 이 없어 좌절감을 맛보았던 세진과 생일 날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는 뭔가 해주고 싶은데 집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 수퍼에서 과자를 훔쳤던 나,  질투의 대상이었던 인혜네 집에 그렇게 끊임없이 갔던 세진과 엄마가 학교 선생님인 친구네 집에 가서 그 집 방안으로도 못들어가고 마루에서만 놀던 나,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어려운 세진과 시키느니 그냥 혼자서 해결하지 하면서 모든 짐을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나,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전화를 못하는 세진과 대학교 때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 늘 "왜?" 라고 하시며 전화를 받으셔서 용건이 없으면 집에도 전화를 못하게 된 나,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없는 세진과 호의에 대해서 나를 깔보는 것 같아 오히려 화를 내는 나... 정말 여러면들이 겹쳐 보였다.  나는 잊었던 내 과거의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그게 있었던 일인지 내가 만들어낸 건지 모를 정도로 우습고 기막힌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꺼내기 시작했다. 

  책은 건강한 퇴행에 대해서 말한다.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고 가까워지면 퇴행이 일어나야 한다고. 오륙세와 같은, 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엄마 놀이하는 수준까지 퇴행이 따라야 한다고.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유치한 관계]를 견딜 수 없어 했다. 가치있는 대화, 가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당신은 참 어른스러워요 라고 말하고, 친구들은 너는 뭐가 그렇게 어렵니! 라고 말했다. 지금은 나의 모든 퇴행이 남편에게 마구 쏟아버려져서 남편을 힘들게 한다. 책에서도 세진은 경호를 참 힘들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들을 남편에게만 쏟아 붓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을 일차 목표로 삼았다. 옆에 없으면 보고 싶고 빨리 집에 왔으면 하면서도 남편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서운한 것이 확~ 내 몸을 감싸는데 아주 환장할 노릇이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끔찍한 말로 그를 할퀸다. 이제 제발 그만하고 싶다. 이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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