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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1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학생운동, 소위 말하는 데모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대학2학년의 언니를 두었던 나의 고2시절, 그녀가 집으로 가져온 책들을 나는 소리없이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는 책하고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고 뭔가 대단한 책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뭐라고 딱히 구별지어 말할 수 없는 충격 같은 감흥이 내게 전달 되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맹신이 시작되었던것 같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누구냐고 물으면 뭐 앞뒤 잴것도 없이 공지영! 이라고 외쳐댔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을 읽고 [고등어]를 읽고 나의 애정은 그칠줄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도록 영원히 지속될것만 같았던 나의 애정이 [착한여자] 에서 거기에서 딱!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난 공지영님의 책은 단 한권도 보지 않았다. 수렁에라도 빠진듯 더이상 그녀의 글빨이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이름만 봐도 거부감 마저 들 정도였다. 얼마전 헌책방에 가서 은희경님의 책을 집는다는게 공지영님의 책을 집었는데 무슨 벌레라도 만진듯 황급히 어머! 내가 미쳤나봐 하며 책을 떨어뜨렸다. 착한 여자때문이다. 나의 이 알수 없는 미움, 반감..다 착한 여자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내가 살던 하숙집은 하숙주식회사 수준의 하숙집이였다. 주공아파트를 몇채 사서 한 아파트당 6-7명의 하숙생을 살게 하였고 그런 집이 10여채가 넘었으니 하숙집 주인아줌마가 하는 식당은 아침, 점심, 저녁 70-80명의 하숙생들로 북적였다. 그중에 우리과 선배들만 해도 다섯명이나 되었다. 매일같이 부시시한 모습으로 같이 아침을 먹고 오전강의 듣고 점심먹고 또 저녁먹고 하다보니 정이 안들수 있겠는가. 아주 끈끈한 우정 같은 것이 발생하였고 (내가 공대이다보니 모두 남자선배들이였다.) 또 어떤 사람과는 더 끈끈한 우정을 넘어선 애정(?)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 선배가 내게 선물해준 책이 바로 [착한여자]였다. 내 스스로 나는 지금껏 큰소리 한번 안치고 웬만한건 다 받아주면서 나름 착한 여자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선물해준 책이 착한 여자라니.... 일단 제목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어떻게 더 착해지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책을 사준 건 내가 공지영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음냘..여튼 제목때문에..씽..) 어쨋든!! 일단 제목에서 한번 반감을 주고 책을 읽으면서 정인의 행동때문에 또 한번 화가나고 결말이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로 끝나는 것에 화가 났다. 나의 이 화는 아무래도 나의 컴플렉스에서 온것이 틀림이 없다.
친어머니의 부재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어린시절. 큰소리내서 싸우는것이 혼자 사는 아빠에게 큰 부담을 줄것만 같았고 새어머니가 들어온 후에도 그 것은 계속 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회장과 반장을 할정도로 자기 주장을 똑뿌러지게 얘기하는 나였고 인정도 받았음에도 집에만 오면 언제나 주눅들고 제 방으로 기어 들어가버리곤 하였다. 대학에 가서도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강한 여자로 공략했다가 늘 아무런 혜택도 못받고 천덕꾸러기 취급받는것 같아 착한 여자 로 공략법을 바꾸었더니 여기저기서 도움과 애정의 손길들이 마구 쏟아지더군. 그런 나였기에 그냥 싫었던것 같다. 결말이 어떻게 됐든 말든 그 모든 아픔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나 복수도 없이 그냥 자기안으로 다 끌어들여 용서하고 더 나은 세상 만들기로 돌아선 그녀에게 화가났었나보다.
혼자서 생각했다. 공지영님이 세상에 압력을 받은걸 꺼야. 아님 가정사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차라리 이렇게 사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꺼야..등등..그러나 쉽게 공지영작가를 향한 나의 애정은 살아나지 않았고 지금도 내 책장에는 고등어까지가 그녀의 작품 세계이다. 착한 여자는 선물했던 그 에게 돌려주었다. 뭐 그때는 돌려줄 생각으로 준것이 아니라 안읽고 선물한거길래 읽어봐라~ 라고 준건데.. 어찌 어찌 하숙집을 나오고 그는 졸업을 하면서 돌려받지 못했다. 뭐 만일 내게 돌아왔더라도 다시 누군가에게 주었을것이다. 아님 헌책방에 갖다주던가..
나의 이 베베꼬인 마음을 풀어줄 공지영님의 작품이 있으면 추천받고 싶다. 잘 풀릴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