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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직 이야기를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은 지어봐라. 뭐든지 상관없으니까 지어봐. 그러면 단단해질 수 있어. 언젠가 힘든 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 고.
“이야기 세계로 달아나라는 뜻인가 싶었지. 선생님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줄 알았어. 그래서 그때는 그런 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슬퍼졌지. 이야기가 현실을 구원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선생님은 마치 게이스케 생각에 대답하듯이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이야기 세계로 달아나라는 뜻이 아니야. 이야기 속에서 다정함과 단단함 같은 여러가지를 보고, 알고 나서 다시 돌아오는 거야. 다른 사람이 지은 이야기도 물론 괜찮아. 하지만 알고 싶은 것을 알려면 스스로 지어보는 편이 나아. 혹시 알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 해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자신이 지은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곳으로 나아가는 법이니까. (253~254쪽)
아주 많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2013년은 이제 지난해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다 보고 나서도 떠오른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입니다. 열한 달 남짓 차이가 나지만 책이 나온 때도 비슷하답니다. 2012년 12월, 2013년 11월. 둘 다 성탄절을 앞두고 나왔군요. 그렇다고 그때만 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때 보든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어쩐지 성탄절에 기적이 더 잘 일어날 것 같지요. 책뿐 아니라 영화도 그런 게 많으니까요. 구두쇠 스크루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도 성탄절에 일어난 기적을 말하는 거잖아요. 예전에 저도 그런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못 썼습니다. 생각만 하고 쓰려고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씨앗인데 제가 잘 기르지 못했나봅니다. 어딘가에서 말라비틀어졌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세계가 나오는 책이 있다고 하더군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별 뜻 없이 말한 겁니다. 쓰지 못하고 내버려둔 이야기가 사람을 원망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어서요. 그렇다 해도 제가 그냥 내버려둔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앞에서 왜 이야기에 대한 말을 할까 하셨지요. 이 책에는 노엘이라는 제목 말고도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것을 액자소설이라고 배웠지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쓰다니 힘들 것 같습니다. 하나가 아니고 여러가지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바깥 이야기와 어울려야 하고. 이야기 자체에 빠져서 볼 때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 더 생각하는 것은 이 책 이야기를 어떻게 쓰지 예요. 줄거리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해서. 하지만 쓰다보면 줄거리를 쓰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그러면 ‘그래서 어떤 이야기인데’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자주 그러지는 않아요. 줄거리가 아닌 다른 할 말이 많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는 중편소설 세 편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이야기에는 힘이 있을까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책을 보고 무엇인가 많이 달라진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는 것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어떤 책을 보고 마음이 많이 달라진 분도 있겠지요. 여기에 나오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한사람은 이야기를 써서 아픔과 외로움을 잊습니다. 또 한사람은 이야기를 보고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바로 잡습니다. 마지막 한사람은 이야기를 쓰고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남기는 게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이야기를 보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군요. 그래도 거기에 나온 사람은 자식은 없지만 결혼도 했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내가 먼저 떠나서 마음이 약해진 거겠지요. 마지막 사람한테도 보람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은 이야기와 말 때문에 힘을 얻고 달라진 사람이 있었거든요. 사실 이것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세 편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인데 이어져 있기도 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생각날 만하죠. 루돌프 사슴코 노래로 이야기를 쓰다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노래로 이야기를 쓴 적 있거든요. 노랫말을 그대로 쓴 것도 있고(이것은 없어졌습니다), 제목으로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주 달랐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게이스케가 루돌프 사슴코 다음 이야기도 썼는데, 거기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아이들한테 주는 게 물건이 아니고 다른 것(빛으로 보이는)이어서 멋지게 보였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반딧불이와 장수풍뎅이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마지막 사람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이 사람은 자신이 이야기에 담아둔 마음을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본래 그런 거긴 해요.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려요. 혼자 남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자신이 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누군가한테 아주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믿어라 하는. 아니,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제가 앞으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면 어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조금 쓸쓸하군요. 죽었을 때를 생각하기보다 살아있을 때 무엇인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게 남게 되는 거겠지요.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아쉬워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요. 순간일지라도 이야기는 사람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주기도 합니다. 세상에 따듯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는 우리가 모르는 일도 알게 해줍니다. 어떤 이야기든 사람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야기 세계로 달아날 때가 더 많았지만요. 그럴 때도 있는 거 아닐까요. 무엇인가를 좀더 잘 알려면 자신이 이야기를 지어야 하는군요. 두번째 이야기에 나온 리코는 책을 보다가 그것을 버스에 놓고 내려서 자신이 다음 이야기를 지어요. 하지만 좀 잘못 흐릅니다. 아직 어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본래 보던 책을 찾게 되어 괜찮아집니다.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는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갔을 때 그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겠군요.
이야기가 가진 힘은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야기에 아주 잠깐 위로 받고 현실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그래도 이야기가 없어지면 살아가는 게 심심할 것 같습니다. 오래전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심심해서였겠군요. 처음은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 이야기에 여러가지를 담게 된 것이겠지요. 미치오 슈스케가 들려주는 따듯한 이야기 한번 만나보세요.
*이제 어떤 말은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또 씁니다. 써버리고 왜 썼지 해요. 이제는 정말 그만 쓰고 싶습니다. 책을 보고 그것을 쓰면서는 그 안에 투덜거림 같은 것을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쓰고 지운 적도 있지만 그대로 두었던 적이 더 많습니다. 그런 것은 일기에나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좀 넓게 보려고 합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우물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봤자 아주 작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겠지요. 하늘은 아주 넓고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습니다. 생각도 그렇게 펼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자기 자신을 잘 봐야 하지만 바깥도 잘 봐야 하겠지요.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그렇지만...
말
1
멋진 말로 시를 짓고 싶어
아니
멋진 말보다
솔직한 말이면 될지도
2
내 말로 네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고 싶어
꽁꽁 얼어버린 네 마음에 내 말은 더 이상 닿지 않는 걸까
그래도 언젠가는 녹을거야
네 마음에 봄이 찾아오길
3
말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상대 마음을 찌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면,
실패해버린 저주가 자신한테 돌아오듯이
언젠가 그 말은
똑같이, 아니 더 큰 아픔으로 당신한테 돌아올 겁니다
고운 말을 합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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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고마워”
희선
☆―
“아무리 싫은 일이 있어도 괜찮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뭘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법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158쪽)
ノエル : a story of stories (2012)
일본에서 나온 책 겉에 그림은 여기에 나오는 것을 나타냈군요. 책을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보고 나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