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은 따로따로 쓴 것으로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함께 올려두기로 했습니다. 이런 설명은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본래는 두 권에 대한 것만 올릴까 하다가 하나 더했습니다.

 

 

 

 

되풀이 함정에 빠져보아요

 

 

  일곱 번 죽은 남자   七回死んだ男

  니시자와 야스히코   이하윤 옮김

  북로드  2013년 10월 25일

 

 

 

 

 

 

 

 

 

 

 

 

일본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 작가가 많이 있을 것 같다. 니시자와 야스히코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을 텐데, 지난해 《일곱 번 죽은 남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그 뒤에 다른 시리즈 소설도 나오고 그 시리즈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대표작이고 일본에서 거의 20년(18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같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서 또 보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 다른 세대도 이 책을 보는 것일까. 좋고 재미있는 책은 어느 때 보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 나왔는가 하고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임 루프’다.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로 썼다고 하는데 타임 루프 때문에 SF가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은 SF 신본격이 되었다고.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그 책을 본 사람이 그런 이름을 붙이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그게 나쁘지 않았는지 작가는 SF 신본격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이 책 ‘일곱 번 죽은 남자’에서 나오는 타임 루프는 기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SF라고 할 수 있을까. 과학보다는 환상에 가깝지 않나 싶다. 타임 루프가 SF에 자주 나와서 타임 루프가 나오면 SF다로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작가가 자신이 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라고 하는 말이 맞다. 타임 루프를 하는 오바 히사타로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열여섯살이다.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고 한다. 히사타로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정신 나이는 서른 이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히사타로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하루를 오래 되풀이해서 살아서다. 본래대로 돌아가니까 아주 다르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기억이 히사타로한테는 남아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히사타로는 자신이 어느 하루를 되풀이하는 것은 체질로 그것을 ‘되풀이 함정’이라 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을 잘 몰라서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게 어떤 법칙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하루가 얼마나 되풀이되는지는 알아도 되풀이 함정에 빠지는 날을 히사타로가 정할 수 없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다. 전에 시간여행을 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나온 소설을 본 적 있다. 거기 나온 사람은 자신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히사타로는 하루가 되풀이되는 마지막 날 어떻게 끝낼지 정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다 아는 그 하루를 늘 정확하게 기억할까. 헷갈릴 때도 있지 않을까.

 

하루가 자꾸 되풀이되는 것은 좋을까 안 좋을까. 그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갇혀버린 듯해서 괴로울 것 같다. 히사타로는 되풀이 함정에 빠져도 아홉번째가 지나면 거기에서 빠져나온다. 아흐레도 그렇게 적은 날은 아니구나. 히사타로는 그런 자신의 체질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 즐기기로 한다. 운 좋게 시험 보는 날 되풀이 함정에 빠지기도 해서 고등학교 편입 때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성적이 아주 나빴다. 한때는 히사타로가 체질을 이용해서 큰 사고를 막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을 듯해서 그만두었다.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혼자 다 막을 수는 없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둘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을 바꾸는 것뿐이다. 지금까지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히사타로가 되풀이 함정에 빠진 두번째에 할아버지(정확하게는 외할아버지다)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한 것이다. 히사타로 식구들과 친척들은 새해를 맞아 모두 할아버지 집에 모였는데, 그렇게 새해에 할아버지 집에 모인 것은 할아버지가 가진 재산 때문이었다.

 

히사타로는 할아버지가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히사타로가 빠진 되풀이 함정에 빠지고 만다. 히사타로는 범인이 누구일거라 짐작하고 움직이지만 할아버지는 자꾸만 죽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범인이 바뀔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끝까지 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1월 2일 밤에 히사타로가 식구들과 집에 돌아가는 게 마음에 조금 걸렸는데. 그리고 다른 것도. 그냥 그런 생각만 하고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는 몰랐다. 히사타로가 말하는 게 다 맞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게 바로 속임수구나. 다 보고서야 그렇구나 했다. 히사타로 할아버지는 어쩌다 돈이 많아져서 식구들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첫째딸, 셋째딸, 그리고 손자, 손녀도. 히사타로만은 할아버지 돈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 좋은 면을 보고 만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람이 싫어질 것 같기도 한데. 그동안 되풀이 함정에 빠졌던 게 그런 모습을 멀리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히사타로는 자신의 체질을 믿어주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이 죽는 일이 나오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히사타로는 어떻게 할아버지가 죽지 않게 할 것인가 하면서. 할아버지는 예전에 딸들한테 잘해주지는 못했지만 첫째딸과 셋째딸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부모는 자식한테 조금이라도 더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식은 그런 마음을 잘 모르기도 한다. 자신이 부모가 되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도 하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부모한테 받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희선

 

 

 

 

☆―

 

SF 신본격은 많이 써도 뜻이 없다, 그런 것은 자꾸 쓰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기에 더더욱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이어지는 한, 아니, 설령 아이디어가 말라버리더라도 새빨간 거짓말을 날조해서라도 써주마,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지만 그런 오기가 제 창작 의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겠죠.  (작가의 말에서, 314쪽)

 

- 소설도 재미있지만 뒤에 있는 작가의 말도 좀 재미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하기

 

 

  실내인간

  이석원

  달  2013년 08월 08일

 

 

 

 

 

 

 

 

 

 

 

이 말은 전에도 생각한 적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그 마음이 아주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을까. 이것은 아닌가. 크기와 상관없는 것인가.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일기도 하다. 자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못나 보이니까. 그러면 이 말이 나오겠다. 남과 자신을 견주지 마라는. 남과 자신을 견주기는 우리가 나면서부터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갓난아기였을 때는 스스로 그것을 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와 둘레 사람이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첫째와 둘째를 견준다거나 남의 집 아이와 견준다거나. 그런 말을 아이가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다르게 행동한다. 그게 좋은 것이라면 괜찮지만, 언제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버릇이 들면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보기보다 다른 사람 얼굴만 살피지 않을까. 그런 일을 아주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어렸을 때 좀 그랬던 듯. 아파도 참고 돈을 받으면 안 쓰기 정도. 이것은 지금까지도 그렇다.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그런데 나도 그래서. 그러면서 나는 저사람보다는 덜 하잖아 한다.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들면 바꾸려고 애쓰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잠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한다. 내가 좀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 말이다. 책속에 나오는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쉽게 일을 하고 글도 쉽게 쓸까 싶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은데. 다 나오지 않았지만 책속 사람도 어려운 점이 있었겠지. 그저 쉬워보이는 것일 뿐. 잘된 사람도 그렇게 되기까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겪었는지 볼 수 없고, 지금 잘된 모습만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쉽게 이룰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 책을 한번 읽는 데 다섯 시간 남짓 걸렸지만, 이석원은 이 소설을 쓰는 데 네해 남짓 걸렸다고 한다. 솔직히 조금 많이 걸렸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나는 아직 책 한권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본 적이 없으니까. 책 읽고 쓰는 것도 겨우 쓰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도 재미없게. 용휘가 용우한테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삶을 비관하면 엿 같은 일이 기다린다는. 내가 앞에서 삶을 잠깐 나쁘게 봤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삶이 늘 술술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하면 마법처럼 잘되어서, 나도 이런 것을 써서 대리만족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는 할 수 없으니 이야기속 사람이 잘되게 하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그만뒀다. 이런 점이 내가 가진 안 좋은 점인가보다. 불씨가 나타났을 때 그게 꺼지지 않게 잘 보살피지 않고 바로 물을 부어서 꺼버리다니.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는 불씨는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사람을 알기 위해서고, 소설을 읽는 것은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고 어떤 작가가 말했다는데 어쩐지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을 알기 위해 책을 보는 거다 생각했는데, 책을 보다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사실 나는 남다른 경험뿐 아니라 남과 같은 경험이 거의 없다. ‘누구나 하는~’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누구나에 나는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나도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좀더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 잊고는 한다. 어쩌면 이것은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내가 그런 말을 하건 하지 않건 아무도 관심없을 텐데 말이다.

 

여기 나온 용휘를 보니 《신월담》(누쿠이 도쿠로)에 나온 사쿠라 레이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다르지만 비슷한 게 있다. 그것은 자신이 더 잘난 사람이 되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도 안다. 그래서 조금 슬펐다. 두 사람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안 한다는 거다. 그것보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잘난 사람이 된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무엇이라도 한 사람을 부러워할까. 정말이지 이런 내가 웃긴다. 레이카는 성형중독이 되었지만 글은 자기 힘으로 썼다. 용휘는 그러지 않았다. 거짓으로 이름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한다 해도 상대는 돌아봐주지 않을 텐데. 그렇구나, 용휘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작은 희망도 깨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삶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거짓이 아닌 진짜 자기 삶을 쌓아가면 된다. 좋아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것까지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했다. 용우가 먼저 여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말했으면서 왜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인지.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면 마음이 아프겠구나 했을 텐데. 아니, 내가 모르는 거지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도 슬플지도 모르겠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 슬픔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사귄 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좀 그렇겠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까닭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나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게 나쁘지는 않은데, 먼저 자기 자신부터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여기까지다.

 

 

 

*미처하지못한말

 

몇해 전에 알게 된 친구(지금은 연락이 끊긴)가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해서 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줄리아하트도. 이 소설을 쓴 이석원은 언니네이발관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한다. 예전에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에 가서 이석원이 쓴 일기를 보기도 했다. 잠깐 보다가 말았다. 용휘라는 이름을 그곳에서 본 것 같기도 했는데 아니었던가보다. 이 책을 보고 오래전 일기를 찾아보니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존재》는 예전에 나왔을 때 사두고 아직도 읽지 않았다. 그것을 먼저 봤다면 더 좋았을까, 모르겠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하는 말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남자 처지에서 쓴 듯하다. 보통 여자 마음도 잘 모르지만.

 

언니네이발관을 하다가 줄리아하트, 지금은 가을방학을 하는 정바비도 책을 낸다고 한다.

 

 

 

희선

 

 

 

 

☆―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64쪽)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262쪽)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270쪽)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 씨. 누굴 만나도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284쪽)

 

 

 

 

 

 

 

+덤

 

저는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 책이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아주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줄거리를 더 많이 썼습니다. 이것도 책을 보고 자세하게 썼더군요. 아마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한테도 어떤 이야기인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가끔 그럴 때 없나요, 어떤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알았으면 하는 때 말이에요. 앞으로 책을 봐야지 하는 분은 밑에 글은 안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책 볼 시간은 없고 어떤 이야기일까 알고 싶으신 분은 보십시오. 줄거리가 자세하다 해도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를 겁니다.

 

에드워드가 참된 사랑을 깨달아가는 모습 한번 만나보세요.

 

 

 

 

 

사랑을 배운 에드워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

  케이트 디카밀로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년 02월 17일

 

 

 

 

 

 

 

 

 

 

 

옛날, 이집트 어느 거리에 몸이 거의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가 있었습니다. 몸 안에 철사가 있어서 팔과 다리를 구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인 애빌린 툴레인이 움직여줘야 했어요. 키는 1미터 남짓이었습니다. 그래도 에드워드는 보고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열살 생일 때 주려고, 할머니가 주문해서 만들게 한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한테 사랑받으며 살았지만 그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애빌린과 어른들이 식탁에서 말하고 있으면 그냥 듣는 척만 했어요. 어느 날 애빌린과 엄마, 아빠가 배를 타고 이집트를 떠나 런던에 간다고 했습니다. 애빌린은 에드워드도 데리고 갈거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같이 가기로 했죠.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같이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밤에 애빌린은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애빌린과 에드워드한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공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공주는 마녀를 만나서 검은멧돼지가 되고 왕의 부하들에게 잡혀서 요리로 만들어지고 맙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에드워드한테 자신을 실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5월에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식구들과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애빌린이 안고 있는 에드워드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장난을 치는 남자아이도 있었어요. 남자아이 둘이 에드워드를 던지며 주고받는 것을 막으려고 애빌린이 남자아이를 밀었을 때 에드워드는 그만 배 밖으로 날아가 바다에 빠져서 가라앉고 맙니다. 에드워드는 이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이 자신을 찾으러 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애빌린은 오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는 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바닷속에서는 별을 볼 수 없었어요. 바닷속에 있은 지 이백구십칠 일이 되는 날 폭풍이 불어 에드워드는 바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그렇게 떠다니다 어부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에드워드는 어둡고 외로운 바닷속에서 나온 것이 기뻤습니다. 늙은 어부 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집에는 로렌스의 아내 넬리가 있었어요. 넬리는 에드워드를 보고 기뻐하며 수잔나라고 이름 짓고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여자 옷이고 평범한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닷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넬리는 에드워드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안 일을 했습니다. 에드워드는 전과 다르게 넬리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어깨에 앉히고 밖에 나가서 별자리를 가르쳐주었어요. 굉장한 일은 없었지만 평화롭고 따스한 날들을 지냈습니다. 그곳에 로렌스와 넬리의 딸 롤리가 나타나 에드워드를 쓰레기통에 넣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에드워드는 로렌스와 넬리와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에드워드는 쓰레기장에 버려졌습니다. 쓰레기가 쌓여서 에드워드는 묻혀갔습니다. 처음에는 롤리한테 복수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절망했어요. 쓰레기장에 있은 지 백여든 번째 날 무엇인가가 쓰레기장을 파헤쳐서 에드워드는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랑자 불의 개 루시가 에드워드를 꺼낸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불과 루시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루시가 에드워드의 몸에 주둥이를 올려놓고 자면, 밤새도록 낑낑대고 으르릉 대는 루시의 소리가 에드워드의 몸속에 울렸습니다. 에드워드는 불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에드워드는 불과 루시가 잘 때 혼자 깨어 밤하늘을 보며 이름을 떠올렸어요. 애빌린, 로렌스, 넬리, 불, 루시 다시 애빌린. 다른 부랑자들한테 에드워드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에드워드한테 부랑자들은 자신의 아이들 이름을 속삭였습니다. 에드워드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거든요.

 

불, 루시와 여행하고 일곱해가 지났습니다. 불과 루시가 빈화물칸에서 자고 있는 것을 들키고 맙니다. 거기에 온 사람은 루시를 발로 차고 에드워드를 멀리 집어던졌습니다. 에드워드는 루시를 도와줄 수 없어서 슬펐고, 또 불과 루시와 헤어져서 마음 아팠습니다. 언덕 위에 있던 에드워드를 나이 많은 여자가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에 에드워드는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에드워드한테는 아무런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밭에 일을 하러 온 남자아이 브라이스가 에드워드한테 인사했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한테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요. 밤에 브라이스는 에드워드를 막대기에서 풀어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집에는 브라이스의 병든 여동생 사라 루스가 있었습니다. 사라 루스는 에드워드를 아기처럼 꼭 껴안고 흔들어 주었습니다. 에드워드한테는 그런 일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뜨겁고 격렬한 감정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사라 루스는 죽고 맙니다. 에드워드는 사라 루스가 죽어서 아주 많이 슬펐습니다. 브라이스와 사라 루스의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사라 루스를 자신이 묻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를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한테 줄을 매달아서 춤을 추게 해서 돈을 벌 생각이었어요. 에드워드는 사라 루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것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브라이스가 음식을 먹은 식당에서 돈이 모자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가 춤을 추는 것을 식당 주인한테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식당 주인은 에드워드를 던졌습니다. 쨍그랑 소리가 나고 에드워드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에드워드는 스스로 걸어서 간 집에서 애빌린, 로렌스, 넬리 그리고 브라이스와 만납니다. 불과 루시도 있었겠죠. 사라 루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에드워드가 물으니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에드워드한테 날개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날아서 하늘에 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모두가 가지 말라고 하며 에드워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어딘가 낯선 곳에서 깨어났습니다. 에드워드 머리는 스물한 조각으로 부서졌고 그것을 인형 수선공 루시어스 클리크가 고쳤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치는 대신 에드워드는 브라이스의 것이 아닌 루시어스 클라크의 것이 되었어요. 브라이스와도 헤어진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인형 수리공의 가게에 진열되었습니다.

 

다른 인형들은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에드워드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에드워드 옆에 아주 오래 살아온 인형이 옵니다. 그 인형은 누군가 올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있을 바에는 산산조각 나서 부서지는 게 낫다고 했어요. 그 인형이 한 말은 에드워드 마음에 남았습니다. 철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봄비가 내리는 날 에드워드는 애빌린과 다시 만납니다. 먼저 에드워드를 갖고 싶다고 한 것은 애빌린 딸 매기였지만요. 에드워드는 다시 애빌린과 만나서 기뻤습니다. 사람이 옮겨줘서 여행을 한 에드워드는 여러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고 애빌린과 다시 만났습니다. 에드워드는 누군가한테 사랑받는 것뿐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배웠습니다. 그게 마음 아프다는 것도. 하지만 또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게 된 다는 것을. 이렇게 쓰기는 했지만 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에 봐서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는데 이것을 보니 생각나는군요. 사랑을 받았지만 사랑하는 것을 몰랐던 도자기 토끼 인형 에드워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기쁨과 아픔을 배웠군요. 에드워드 키가 1미터 남짓이라니, 어린이가 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희선

 

 

 

 

☆―

 

“이번에는 누가 날 데려갈까 궁금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늘 오니까. 이번에는 누굴까?”

 

“누가 날 데리러 오든 난 마음 안 써.”

 

“하지만 그건 끔찍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는 뜻이 없잖아. 뜻이 없어. 기대를 가져야지 희망을 가져야 하고 다음에는 누가 널 사랑하고 네가 누구를 사랑하게 될지 알고 싶어해야지.” (188쪽)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 날 아주 실망시켜. 네가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생각이 없다면 어떤 여행도 아무런 뜻이 없어. 넌 지금 당장 이 선반에서 뛰어내려서 몇백만 조각으로 부서지는 게 낫겠다. 끝내 버려. 지금 끝내 버리라고.” (189쪽)

 

 

“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 거라고. 하지만 네가 마음 문을 열어야 하지.”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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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문학의 즐거움 41
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김보경 옮김 / 개암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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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집단 따돌림, 괴롭힘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그것을 보려고 하는 걸까요, 그런 이야기가 저를 찾아오는 걸까요. 둘 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봐도 시간이 지나면 학교 폭력을 잊고 살아갈 테니까요. 제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이런 책이 늘 나오는 것은 집단 따돌림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학교, 가정, 그리고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 뿌리가 다 뽑히지 않을 정도로 깊이 박혀 있는 거겠죠. 이런 생각을 하면 슬프기도 하군요. 왜 사람은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따돌리고 괴롭힐까요. 어쩌면 저한테 이런 말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저와 아주 다르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모르거든요(비슷해도 그럴지도). 하지만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그냥 관심을 안 갖습니다. 이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못 보고 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감정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모르기도 합니다. 저도 비슷하군요. 집단 따돌림, 괴롭힘 안 당하고 살아서 다행이군요. 지금 같은 세상에서 학교에 다녔다면 저도 따돌림 당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아주 심하지 않았을 뿐. 그래서 제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나봐요.

 

지금까지 본 책에서는 아이들이 한 아이를 따돌리고 괴롭혀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그저 보기만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괴롭히는 아이, 괴롭힘 당하는 아이, 그리고 그저 지켜보는 아이. 그저 지켜보는 쪽에 있다 해도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지요. 지금은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 집단 따돌림, 괴롭힘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사회가 빠르게 바뀌고 사람들이 마음을 돌보기보다 성적이나 성공에만 마음 써서 그럴까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것을 풀기 위해서. 하지만 누군가를 괴롭히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요.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은 내가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인지도. 이것은 조금 위험한 행동이군요. 그 안에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두게 하지 않는 한 집단 따돌림, 괴롭힘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그 한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겁한 저군요. 새로운 학교로 옮김 오카자카 아카리는 용기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 많아지면 좋을 텐데요.

 

아카리는 산골 마을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그 학교는 한 학년에 한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 일 때문에 2학기 때 학교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새 학교에 다니기 전에 아카리는 도서실에서 히가시카와 에미코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그런데 아카리가 학교를 옮겼을 때 에미코는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다고 했어요. 아카리는 학교 아이들과 에미코 병문안을 갔다가 에미코가 사고가 난 곳에 들렀습니다. 그곳에 가 보고 아카리는 에미코는 사고가 난 게 아니고, 스스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말을 학년 모임에서 하고 난 뒤 아카리는 반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자 아카리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날 예전 학교 친구 가나를 만납니다. 가나는 소프트볼팀에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카리는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 일을 떠올리고 아카리는 가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답니다. 가나는 아카리한테 집단 따돌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카리뿐이라고 했어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요.

 

학생 혼자 집단 따돌림, 괴롭힘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도 도와야 하지요. 아카리는 먼저 에미코에 대해 알아봅니다. 에미코가 5학년이 되고 따돌림 당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에미코는 4학년 때부터 따돌림 당했다고 합니다. 에미코는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 감정을 잘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 있잖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좋을 텐데. 사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게 아니고, 내가 다른 아이들을 따돌리는 거다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못했을 것 같군요.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옮겼는데, 제가 5학년 때 어땠는지 생각이 안 나는군요. 잠깐 다른 말을 했군요. 아카리는 5학년이 모두 모인곳에서 에미코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증거를 찾아서 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한테 보여주었어요. 바로 무엇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바뀌었어요. 집단 따돌림, 괴롭힘은 숨기고 모르는 척하면 안 됩니다.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은 자기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선생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선생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선생님도 있더군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아이들 하나하나한테 마음을 쓸 수 없다는. 선생님은 아이들만 가르치지 않고 다른 일도 해야 하는군요. 그런 것을 줄여주고 아이들을 잘 볼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부모는 자기 아이가 괴롭힘 당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그런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가정, 학교, 그리고 아이 모두 애써야 합니다.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재미있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꿈에서 제가 집단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전에 제가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었거든요. 그랬더니 다음에는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꿈이었지만 기분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꿈에서나마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서 다행입니다. 꿈을 해석하기도 하는데 저는 꿈은 그냥 꿈으로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의식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지만.

 

 

 

희선

 

 

 

 

☆―

 

“괴롭힘을 당한 아이뿐만이 아니야. 남을 괴롭힌 아이 역시 앞으로도 쭉 괴로워하게 될거야. 자기 자신이 싫어지고, 끝없이 울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게 될 거야. 반드시…….”

 

숨이 막혔다. 그 말은 내 얘기인지도 몰랐다.

 

“아마 모두 누군가 멈춰주길 바랄 거야.”  (96~97쪽)

 

 

우리는 약하다. 작은 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잔인한 감정에 휩쓸려버린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스럽지 않더라도, 야단스럽더라도, 자신이 여러가지 감정에 떠밀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서 버티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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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21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정은 습관이다 - 부정의 나를 긍정의 나로 바꾸는 힘
박용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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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나를 긍정의 나로 바꾸는 힘’이라는 말 때문에 이 책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느 때는 괜찮은데 그런 마음은 잠시뿐 바로 마음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의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자신한테 안 좋아도 오랫동안 버릇이 들어버리면 고치기 아주 어렵잖아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래된 버릇이라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감정도 버릇이라고 하더군요. 긍정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바로 좋은 감정으로 돌아가고, 부정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좋은 일이 있어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안 좋은 감정으로 돌아간다는군요.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뇌, 마음. 언젠가 뇌가 우리를 속인다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책이 있다는 것만 알고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더군요. ‘뇌는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 않는다. 유쾌한 감정이건 불쾌한 감정이건 익숙한 감정을 좋아한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익숙하다면, 뇌는 그것을 느낄 때 안심한다. (21쪽)’ 즐거운 감정버릇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우울한 감정버릇을 가진 사람은 늘 우울하다니. 뇌는 마음을 배신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군요. 우울한 사람도 늘 우울하고 싶지 않기도 하잖아요.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뇌 때문인가봅니다.

 

힘들게 살던 사람이 편해지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도 하잖아요. 지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다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는 겁니다. 이것도 그동안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라는군요. 칭찬받는 것보다 혼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답니다. 믿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주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번도 못 본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자주 우울해지는 것도 제 표준감정이 이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보면서 나는 어떤 감정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중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소에는 그런 것 같은데 어떤 일이 일어나면 안 좋아질 때가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쪽인 것 같군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분이 안 좋아지고,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군요. 그런데 저는 안 좋은 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겁니다. 저도 이런 제 마음 때문에 기분이 나쁩니다. 어쨌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그 감정이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더군요. 이렇게 보니 역시 저는 중간인 듯하군요. 안 좋은 쪽에 아주 조금 기운.

 

어떤 사람은 자기한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자꾸 만나기도 하잖아요. 이런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 보기도 한 거군요. 그런데 그것도 감정버릇과 같다더군요.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도 자신한테 버릇이 든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 것이라는군요. 다른 사람, 그러니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면 편하지 않게 느끼기도 하지요. 그것은 새로운 감정버릇을 들여가는 것이라는군요. 저는 그런 경험은 없지만, 어떤 사람은 자꾸 사기를 당하기도 하잖아요. 그것도 감정버릇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익숙해진 것이지요. 처음부터 사람을 의심할 수는 없고, 남을 속이는 사람이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자신한테 편하다고 해서 다 좋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아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군요. 실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뇌는 친밀감을 채우려고 한다는군요. 친밀감에는 폭식형, 포기형, 거식형이 있는데 저는 폭식형, 포기형이 다 있는 듯합니다. 포기형에 더 가까운 듯.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뿐입니다. 바뀌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것도 익숙한 감정을 바꾸지 않으려는 거군요. 사실 저는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인가 했습니다. 아니, 게으른 것도 뇌가 그것을 익숙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습니다.

 

자신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한번 보십시오. 하나도 없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폭식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상대의 관심을 지나치게 바란다.

- 버림받을 것을 걱정해 자주 애정을 확인하려 한다.

- 상대의 의견에 조건없이 따르고 상대한테 지나치게 의존한다.

- 자신이 결정하지 않고 덮어놓고 상대가 결정해주는 대로 따르고 상대한테 종속되려 한다.  (124쪽)

 

 

포기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자신은 어디에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 소외감을 자주 느낀다.

- 남들이 자신에 대해 모두 알면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스스로 모자란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25쪽)

 

 

거식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상대 뜻에 대해 늘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 다른 이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한다.

- 사무적이고 일과 관계된 것에만 집중한다.

- 소위 왕자병, 공주병이라고 하는 행동들을 보인다. 곧 남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느낌을 준다.  (126~127쪽)

 

 

다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공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익숙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이어갈 수 있게 하라는군요.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곁에 두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기한테 익숙한 사람이 안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한테 상처를 받으면 안 좋은 것이지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한테 상처를 받았는지 잘 생각해보면 비슷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것을 생각해도 사람은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은 남한테 기대지 않고 홀로 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많이 기대하지 않기,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 이런 것은 알고 있어도 잘 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때 뇌에서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나온다고 합니다. 도파민은 짜릿한 쾌감을 느낄 때, 세로토닌은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때. 도파민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로토닌이 더 자주 나오게 해야 한답니다. 짜릿함은 갈수록 세기가 커져야 느낄 수 있지만, 작은 즐거움은 심심하지만 자주 느낄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세로토닌이 나오게 하는 방법은 걷기, 햇빛쐬기, 고마워하는 마음 갖기, 자연과 함께 하기랍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하려면 날씨 좋은 날 둘레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걷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지요.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세로토닌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도 했다니 신기합니다. 본래 사람은 자기한테 좋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술이나 담배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군요. 이것은 나쁜 감정버릇 때문이겠지요. 스트레스를 술, 담배로 풀지 않아야 한다는군요. 이것보다 안 좋은 것은 마약이겠군요. 자신은 술을 마셔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고 긴장을 쭉 지키는 것이랍니다. 안 좋은 버릇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고치려고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군요. 어쩌다 이렇게 흘러갔는지.

 

좋은 감정버릇을 들이는 방법을 보니 명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애를 많이 써야 한다는 거예요. 뭐든 쉽게 되는 것은 없기는 하군요.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은 다릅니다. 자신이 어떤 때 좋은가를 잘 들여다보는 게 좋겠지요. 아니, 그것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좋아해야 합니다. 자극이 크지 않은 것으로. 성공하고 크게 좋은 일이 터져야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좋습니다. 걱정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라고 하더군요. 감정수첩에 잠깐 느낀 기쁨과 고마운 일을 적고 자주 들여다보기는 저도 해 보고 싶습니다. 자기 감정을 자주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늘 같은 날이지만 다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긍정의 생각을 하고 자주 웃는다면 좋겠지요. 좋은 일이 없어도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잖아요.

 

 

 

희선

 

 

 

 

☆―

 

일상이 지겹고, 사소한 즐거움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돌아보면 작은 즐거움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저 기다리지만 말고 작은 뜻이라도 주고, 내 삶 속에서 오늘 하루가, 작은 그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되풀이되는 하루라도 돌아보면 작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뜻 없이 되풀이되는 당신 생활이 뜻을 갖게 될 것입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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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2 ?子さんと謎めく日常 (メディアワ-クス文庫) (文庫)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文庫) 2
미카미 엔 지음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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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2  栞子さんと謎めく日常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시오리코 씨와 수수께끼에 싸인 나날)

 

 

 

책 이야기뿐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잘할 수 없는 나는 무엇보다 책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시노카와 시오리코가 부럽다. 고우라 다이스케 말에 따르면 시오리코는 책 이야기를 할 때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스위치가 켜진 듯. 첫번째 책에서 시오리코는 병원에만 있었다. 끝에서는 병원을 나왔다. 어쨌든 비블리아 고서당에 나가서 일을 한 건 고우라 혼자였다. 가끔 시오리코 동생 아야카가 책방을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시오리코와 고우라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렇다 해도 아주 다른 점은 없다. 시오리코는 책으로 벽을 만들어두고 그 안에서 컴퓨터로 홈페이지를 보거나 책을 보기도 했다. 비블리아 고서당에 찾아오는 손님은 고우라가 맞았다. 고우라가 없었을 때 시오리코는 어떻게 했을까. 그때는 또 어떻게든 했을지도. 책방에 바로 오는 사람보다는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책을 사는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고우라가 일하게 되고 알게 된 사람은 가끔 찾아오기도 할 것이고. 책방을 하려면 책뿐 아니라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어딘가에 실제로 비블리아 고서당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곳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비블리아 고서당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던 고우라는 다시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기로 했다. 나이 많은 분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책 몇 권은 된다고 하는데, 고우라도 이 말과 같은 말을 했다.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게 되고 그만두고 다시 일하게 된 이야기를 하면 책 한권은 된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이야기 책 한권으로 나왔는데’ 했다. 이 책은 고우라가 이야기하는 것이라기보다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말이 있기도 하다. 다시 생각하니 이야기하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같겠다. 내가 쓰는 것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잘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해도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데도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도. 그래도 아주 가끔은 이것저것 생각나기도 한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흘렀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을 나는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데 시오리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려운 책을 읽고 감상문도 아주 잘 썼다. 시오리코가 초등학생 때 자전거를 타고 여러 책방에 다니면서 책을 샀다고 하니, 고우라는 그때의 시오리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초등학생 때 스쳐지나간 적이 있을까.

 

자매와 형제는 사이가 아주 좋을 수도 있지만 아주 나쁘기도 하다. 자매와 형제 사이가 좋고 나쁜 것은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 탓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매여도 서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만 마음을 닫기도 한다. 마음을 닫는 쪽은 거의 동생이다. 경험은 없지만, 지금까지 본 책을 생각하면. 언니와 동생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은 언니 쪽이다. 고스가 나오와 고스가 유이 두 사람 가운데서도 동생인 유이는 언니가 남자친구를 사귀고(실제는 차였는데) 이런저런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언니가 자신보다 앞서간다고 느꼈다. 자기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책에서 확인하기를. 골이 깊어져서 다시 좋은 사이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고스가 나오와 고스가 유이는 사이가 좋아졌다. 둘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서겠지. 이제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생도 읽기 어려워하는 책을 시오리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읽고 감상문을 썼다. 시오리코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살았을 테니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는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어떤 일은 잊지 않기도 한다.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왜 이런 말을 꺼냈을까.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 때문이다.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4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5학년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어느 때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보러 가고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일을 소설로 쓰는 사람은 그때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런 사람도 부럽다.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잘 기억하는 사람. 지금부터라도 잘 잊지 않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때는 ‘잊지 않을 것이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한다. 사람은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간다고 하지만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고우라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사귄 여자친구 아키호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죽은 아버지가 남긴 책을 팔게 된다. 비블리아 고서당에 책을 팔게 한 사람은 아키호 아버지다. 고우라와 아키호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야기가 조금 나왔다. 고우라가 떠올린 일이다. 그건 그렇고 시오리코는 아키호 아버지가 남긴 책을 보고 아키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 취미, 직업에 나이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예전에는 나도 책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보면서는 많이 사지 않게 되었다(이 책은 빌려볼 수 없어서 샀고 책이 많으면 좋겠지만 짐이 늘어서). 나와 같은 사람은 가지고 있는 책을 봐도 알 수 있는 게 적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에 시오리코와 같은 사람이 많지 않기를. 시오리코는 거의 탐정에 가깝다. ‘책탐정’이라고 하면 어떨까. 시오리코는 아키호 아버지 책으로 아키호 아버지가 아키호한테 하려고 한 말을 알아냈다. 다른 때보다 조금 늦었던 것은 감기기운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과는 다르게 말하기도 한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떤 말은 살아있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아주 친하지 않는 한 상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시오리코는 고우라와 아키호가 성이 아닌 서로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러고는 고우라를 ‘다이스케 씨’라고 했다. 고우라도 시오리코한테 시노카와가 아닌 시오리코라고 해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시오리코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거의 없을지도) 그런 것을 부러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보고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세번째 이야기에서 시오리코는 고우라한테 엄마 이야기를 하고는 자신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드라마 같은 데서 들을 법한 말. 책이나 드라마나 다르지 않을까.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간 일은 시오리코한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많이 닮은 자신도 엄마처럼 하는 것은 아닐까 했다. 그래도 시오리코는 엄마가 자신한테 무슨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엄마가 남겨준 책을 찾고 있다. 이것은 고우라가 알아냈다. 고우라는 따로 시오리코와 만나고 싶어했는데, 시오리코는 무엇보다 헌책방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 마음은 아주 잘 알아도 정작 자기 마음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시오리코도 그런 듯하다. 어디에서든 책만 생각하는 시오리코. 무엇인가 하나를 아주 좋아할 수 있어서 좋겠다. 나는…….

 

 

 

+더하는 말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일본에서 나오는 책을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게 나왔다. 고스가 나오 때는 신초사에서 나오는 문고책에만 있는 가름끈. 옛날에는 다른 데서 나오는 책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신초사에서 나오는 문고책에만 있다고. 가름끈이 달린 책을 내는 출판사가 한곳 더 있다는 말은 만화책에 쓰여 있다. 여기에는 고스가 유이 때다.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전표(책속에서는 슬립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말한다)다. 이것은 만화책에도 끼워져 있다. 예전에 일본에서 나온 만화책을 처음 샀을 때 그것이 뭔가 했다. 그러고는 책갈피로 쓰라는 것인가 했다. 하지만 책갈피로 쓴 적은 없다. 고우라는 이 전표를 책에서 빼고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끼워두는 사람은 없겠지, 했는데 그것은 잘 모르고 한 말이다. 그런 사람 있다. 바로 나다. 처음에는 그냥 뺐는데 다음부터는 그대로 끼워두었다. 이런 나도 참 이상하구나. 나는 책을 아주 깨끗하게 보는 편이다.

 

 

 

  

   왼쪽 분홍색이 슬립(전표) 옆에는 3권, 어쩐지 자랑하는 것 같다^^

 

 

 

*그냥 짧은 이야기, 친구

 

 

 

고등학생이 되고는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간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집중도 잘되고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홀로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30분 남짓이다. 그 뒤에는 반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 온다.

 

한주가 지나고는 나홀로 교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 대각선 앞자리에 앉는 아이가 나보다 조금 뒤에 학교에 왔다. 그 아이도 학교에 일찍 와서 나처럼 책을 읽었다. 하루하루 가다보니 그 아이가 어떤 책을 보는지 알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책 이야기를 나눠본 친구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주가 지나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 아침에 나는 교문에 서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교실에 같이 들어가면서 잠깐 이야기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5분, 10분이 지나도 그 아이가 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다른 날보다 늦게 학교에 왔다. 교실에서 말을 해봐도 될 테지만 누군가한테 먼저 말하기 어려워하는 나여서. 뒤에서 보니 그 아이는 자기 짝하고는 조금 친해진 듯했다.

 

첫째 시간이 끝나자 그 아이는 가방에서 다음 시간 교과서와 다른 책을 꺼내서 그 책을 읽었다. 얼핏 보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책이었다. 나는 어쩐지 반가워서 그 아이 옆에 가서 말을 했다.

 

“너, 이름 김성민이지? 나는 박희진이야.” 성민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이 책 나도 요새 읽고 있어.” 성민이는 그 말에 반가운 듯 웃었다.

 

우리가 학교에 일찍 와서 읽은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미카미 엔)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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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4-01-0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ㅋㅋㅋ 사진 멋진데요, 풋. 이 시리즈는 결국 못읽었다는...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희선 2014-01-05 23:17   좋아요 0 | URL
책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가 볼 수 있겠죠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희선

2014-01-0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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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일등과 이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첫번째 아이와 두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40쪽)

 

 

이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두번째 사람은 모차르트를 샘하여 미워한 살리에리다. 살리에리도 나름대로 잘했을 텐데 모차르트 때문에 자신이 첫번째가 되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아니, 첫번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것보다는 살리에리도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살리에리는 어느 누구보다 모차르트를 인정했고 자신이 모차르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리에리는 차라리 모차르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면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차르트가 힘들었던 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한테 곡을 만들게 했다. 이것은 영화에서 본 것인데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차르트가 그 곡을 끝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그 곡을 쓰고 죽었던 것 같다. 그것은 진혼곡(레퀴엠)이었다. 천재라 해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품은 나쁜 마음도 조금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몸이 아픈 모차르트가 말해주는 것을 살리에리가 받아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 살리에리는 좋았을까. 어쩐지 그 반대였을 것 같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한테 경쟁 상대였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면 재미없지 않을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죽어서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을 것 같다. 자신을 불태웠던 감정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것을 바랐던 것일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일등한테만 빛을 비춘다. 그 보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네 해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다. 세계운동회.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무척 애쓴다. 아마 거의 하루종일 운동과 그것만 생각하지 않을까. 거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조금이고 이것은 어느 나라나 같을 것이다. 사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올림픽에 나갔으니 선수가 메달을 따고 싶어하고 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달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진다. 방송에서는 금메달을 딴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어쩌다 처음으로 메달을 딴 종목이면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상관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더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은메달도 동메달도 모두 값지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메달을 따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닐까. 메달 색깔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보기만 하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만 선수 자신도 그래야 한다. 메달을 따건 따지 못하건 올림픽에 나간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다.

 

내가 아는 괴담은 별로 없다. 들은 적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은 없다. 이 책을 보다보니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가 떠올랐다. ‘어나더’는 한 마을에 일어나는 일이어서 더 섬뜩하기는 하다. 그 책을 보고 그런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지옥소녀>도 생각났다. 누군가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지옥소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0시가 다 되어갈 때 인터넷에서 지옥소녀 사이트를 찾는다. 0시가 되면 그곳에 접속한다(거기에는 0시에만 접속할 수 있다). 진심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보고 그곳이 나오면 지옥에 보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는다. 잠시 망설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보내기로 한다. 거의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참을 수 없어서 그곳을 찾았다. 어쩐지 그 안에는 두번째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이 첫번째가 되기 위해서.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샘하고 미워해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 말이다. 청소년 소설인데 이렇게 어둡다니(생각해보니 어두운 게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제목부터 ‘괴담’이니 이것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착한 사람만 잔뜩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반대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착한 사람만 나온 이야기에서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서로가 잘되기를 바랐다. 여기에서는 왜 자신이 더 사랑받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가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학생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야 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을 샘하고 미워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책을 보고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번째, 두번째는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누군가를 샘하고 미워하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저 그런 마음이 오래 가지 않을 뿐이다. 나 자신이 더 괴로우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더 모자라잖아. 조금 슬픈가.

 

서로가 가진 것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사라지면 자신이 첫번째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가지고 있는 것도 다른데 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걸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러기는 한다. 아주 부질없는 일인데, 그것을 더 빨리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안다 해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가진 것을 찾아서 갈고 닦아야 한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첫번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회도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걸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상대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을 샘하고 미워할 게 아니고 좋은 경쟁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거짓말.

 

애초부터 모든 게 추측에 불과했다. 프리즘처럼 던져진 한 문장의 괴담이 있었을 뿐.

 

늘 사라지는 건 두번째 아이. 남는 건 첫번째 아이. 지연은 언제나 남았다. 하지만 지연은 한번도 첫번째 아이가 될 수 없었다. 두번째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순간조차도 지연은 자신이 첫번째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두번째 아이였다.

 

―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어쩌면 이 괴담 자체가 위험할 정도로 끝이 없는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두번째 아이니까. 사라지는 것도 남는 것도 모두 두번째 아이.

 

남은 우리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남아있는 건 그저 먹잇감을 끌어오는 미끼 노릇이 남아있어서일 뿐.  (238쪽)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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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4-0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세 문장이 정말 섬찟하네요...

희선 2014-01-05 23:13   좋아요 0 | URL
어떤 것 무생물 이런 이야기도 그런 것에 가깝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그 이야기 자체에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움직여서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한테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구나 하고 덥석 물어버리면 안 될 듯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먹고 사는 바쿠치간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