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노는 아이들 - 상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가 나타내는 여러가지 뜻에서 하나를 더하면, 우리말로 어린이기도 하다. 다른 뜻은 ‘I 나 자신’ ‘EYE 다친 내 왼쪽 눈’ ‘愛(아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哀(아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 ‘i 허수, 없다’ ‘藍(아이) 짙은 청색’이다(이것은 책 속에 나온 아이 뜻이다). 발음은 같지만 다른 뜻이 되는 말 재미있기도 하다. 이것과 똑같지 않지만 이 책 속에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게 좀 나온다. 그것을 바로 안 건 아니고 여기 나오는 사람이 생각하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거기에는 일본이기에 쓸 수 있는 것도 있다. 문화라고 해야겠다. 한가지만 보기를 들면, 엄마를 엄마라 하지 않고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 문화지만 일본은 서양 것을 많이 받아들였다. 아니, 그게 서양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린이 이름을 말할 때 그냥 이름만 말하지만, 일본은 이름 뒤에 ‘상さん(씨)’을 붙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게 좀 별나 보였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게임(사람을 죽이는)도 말로 문제를 낸다. 어떤 말이 들어갈까, 그 안에 들어가는 말(글자)이 이름에 있는 사람을 찾는 거다. 자신이 당한 일을 되갚아준 일도 있지만 아무 잘못 없는 사람도 죽인다. 아니 아주 관계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둘레 사람을 죽여서 누군가 자신을 찾고 멈추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제목이 ‘밤과 노는 아이들’ 이어서 아이가 나오는 건가 했다. 밤은 또 무엇일까 싶기도 하다. 어둠. 아이가 순수하다고 하는데 세상에는 그런 아이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론 끝없이 잔인해지는 게 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겠지. 아이가 순수하다는 거 아주 틀린 건 아니구나. 무엇에든 쉽게 물든다는 뜻에서는. 아주 잠깐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올바른 말을 듣고 자랐다면 나쁜 환경에 놓인다 해도 그것을 잊지 않고 지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 때부터 나쁜 환경에서 자란다면,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더 크겠다. 부모가 없고 시설에서 자란다고 해서 모두 나빠지는 건 아닐 거다. 그 시설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 아이는 몸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텐데. 시설 환경이 나쁘면……. 아이가 아주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어린시절 이야기에 잠깐 나온다. 대학생, 대학원생은 어른일까. 나이는 어른일지라도 아주 어른이라고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직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겠다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될 것 같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가보다.

 

책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사람이 보는대로 볼 때가 있다. 앞에서 일본이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는 말을 했는데, 한사람만 어떤 사실을 몰랐다. 군데군데 어쩐지 이상한 말이 나오는데 그 사람처럼 나도 그것을 바로 알아내지 못했다.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그렇게까지 모르지 않을 듯하다. 관심 갖지 않으면 모를 수 있을지도.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을 멈추게 해줄 것이 있으면 큰일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이것은 보통 사람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생각해서 잘 살아야겠다 하는 거. 그게 꼭 좋아하는 사람만은 아니다(그 안에 들어가겠다). 식구, 친구여도 괜찮다. 가끔 자신한테는 지킬 게 없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은 지킬 게 있을 때 더 힘내지 않을까 싶다. 기무라 아사기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을 봤다면 좋았을 텐데, 형한테만 매달려서. 어떻게 보면 형한테 매달린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기 자신을 없애고 싶었던 건지도. 모두라고 할 수 없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은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다. 고즈카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아버지 친구와 다시 결혼했다. 고즈카 친구 교지는 어릴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와 동생이 죽어서 아버지 친구 부부와 살게 된다. 가장 안 좋은 건 아사기다(아사기는 고즈카와 같은 연구실 친구다). 아사기는 아버지 없이 엄마와 쌍둥이 형 아이와 함께 셋이 살았는데 엄마가 아사기를 많이 때렸다. 형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어떤 일이 생겨서 아사기는 시설에서 살게 된다. 시설 환경은 아주 안 좋았다. 아사기는 그곳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다.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공부 잘하는 건 폭력에 아무런 힘도 되지 않았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모르는 거다. 대학 사람들은 아사기를 타고난 천재에 왕자님으로 보았다. 고즈카는 애쓰는 모범생. 고즈카와 아사기는 서로의 사정을 모른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라 해도 여러 모습이 있다. 어떤 게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친구는 친구라 할 수 없을지도. 츠키코 친구 시노는 자신을 여왕처럼 떠받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츠키코가 시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괜찮았는데 언젠가부터 이상해졌다. 츠키코는 그런 시노를 만나는 게 편하지 않은데 여전히 친구로 지냈다. 언젠가 시노한테 멋진 남자친구가 생기면 괜찮아질거다 여겼다. 정말 괜찮아질까. 그런 기회는 영영 없어졌지만. 시노한테 츠키코 같은 친구가 있어서 시노가 슬쓸하지 않았겠다 생각해야 할지도. 처음부터 시노가 안 좋은 성격을 드러냈다면 츠키코는 친구가 되지 않았겠다. 시노도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지도. 온실 속 화초였다고. 그것보다 시노는 자신이 없었다. 집은 부자였지만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했나보다. 얼굴하고 다르게 행동한 사람도 있다. 얼굴은 순하고 피부도 곱고 따듯하고 다정해 보이는데 여자친구를 때리고 둘이 사귄다는 것도 비밀로 한 사람. 그런 사람한테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아니면 그만두는 게 좋다.

 

이제 끝내야 하는데 어떤 말로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다 말하지 못했다. 잊어버려서. 짐작한 게 하나 있다. i와 Θ(아이와 세타). 얼마전에도 비슷한 걸 보았는데. 그런 것을 처음 봤다면 놀랍구나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여러번 보아서. 그렇군 했다. 사람 정신(마음)은 약하다는 것을 또 느꼈다. 약하기에 힘을 내기도 하지만. 츠키코도 지금은 현실에서 달아났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받아들이겠지. 책이나 영화에서는 오해하는 일이 벌어져도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적었으면 좋겠다. 만약 깨달았다면 그때 진짜 해야 하는 일을 하기를. 무슨 말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배추흰나비와 기생벌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섭다. 번데기, 나비도 되지 못한 애벌레구나. 자연은 겉에서 보면 평화롭지만 그 속을 잘 보면 그렇지 않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본능대로만 살지 않고 생각하고 서로 돕고 산다.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희선

 

 

 

 

☆―

 

“뭐랄까. 좋아해서 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을 하나 만들어두는 거야. 스무살도 넘은 남자가 무슨 부끄러운 얘기냐고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되는데, 나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예전에 깨달았거든. 안 그러면 사는 게 점점 무책임해지고 한심해져. 난 무서워. 어떤 것에도 열정이 없고, 집착하지도 못하는 지금 스스로가.”  (하권, 220쪽)

 

 

“아사기는 말이지, 세상에 복수하고 싶어했어. 이 세상은 잔인하고 손 쓸 수 없는 악의로 가득 차 있어. 인간이라는 건 정말 쓸데없이 머리가 아주 좋거든.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남한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는 거야. 자신이 더 잘 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고 열심이 되지. 여긴 그런 한심한 곳이야. 아사기는 누군가한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자신한테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고 엉뚱하게 화를 내고 있었어.”  (하권,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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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나아졌을 것 같은데

 

  살고 싶다 : 제10회 세계문학상

  이동원

  나무옆의자  2014년 05월 23일

 

 

 

 

 

 

 

 

 

 

 

 

군대가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꼭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국방의 의무가 있다. 이것은 남녀 모두한테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왜 우리만’ 하는. 그냥 보내는 두 해 조금 넘는 시간은 빨리 가지만 군에서 보내는 두 해 이상은 잘 가지 않을 거다(지금은 두 해 안 되려나). 먼저 그곳에는 남자들만 있고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도 많다. 잘 모른다면서 이런 말을. 책 같은 데서 조금 본 것뿐이다.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갔다 오고는 몸이 좋아지기도 한다. ‘군대 체질인가 봐’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그럴까. 군대 이야기를 보다보니 학교도 생각났는데, 학교가 군대보다 좀 나을 것 같기는 하다.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군대는 모두 같아야 한다. 튀면 안 된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반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그곳에는 그곳만의 규칙이 있다. 그것을 지키지 않고 적응하지 못하면 아주 힘들다. 군대 잘 적응하면 그럭저럭 지내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같은 곳일 듯하다. 하루가 한 해 같을지도.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계급이 조금씩 올라서 전역할 때가 다가온다.

 

가끔 군대에서 사고,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그럴 때마다 걱정이 크겠다. 혹시 저 안에 자기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아들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롭힘 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 돈과 힘있는 사람은 군대도 가지 않게 하기도 하고, 뒤로뒤로 미루다 잠깐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도 걱정하겠다. 군대에 가야 하는 사람이 생각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군대가 더 심할까. 학교나 일반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으니까 쉽게 ‘그러지 마’ 할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다. 계급과 상관없이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그러지 못하게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은 잘하는구나.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잘 말할 수 있을지. 같은 곳에 있으면 그곳이 어떤지 서로 잘 아니 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왜 자기보다 밑에 사람을 괴롭힐까. 사람은 이상하다. 어느 때는 힘과 마음을 모아 대단한 힘을 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자신만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느 자리에 있든 사람답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이 책에는 군대 이야기보다 군 병원 일이 나온다. 일반병원이 아니어서 여기도 힘있는 사람은 그 힘을 쓰고 자기 쪽 사람한테는 좋게 대하고 다른 사람은 심하게 대한다. 군대에서 다치면 군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그저 훈련받지 않고 잠시 쉴 뿐이다. 시간이 흘러 자대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겉돈다. 위에서도 밑에서도 그 사람을 업신여긴다. 이필립은 군대에서 무릎을 다치고 병원에 여러 번 갔다 왔다. 군대에 오기 전에 이필립은 자신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군대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이필립 같은 사람이 실제로도 많겠지. 어느 날 높은 사람이 이필립을 찾아와서 예전에 있었던 병원에 다시 가라고 한다. 이필립이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정선한 병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이다. 군대에서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정선한은 괴롭힘과는 조금 다른 일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자신이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또 한사람은 정선한의 마음을 잘못 받아들였다. 나쁜 일을 당하면 다시 누군가를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군 병원 안에서도 힘을 가지고 휘두르는 사람이 좀 우스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한 건지도.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면 안 된다. 이필립이 전역을 앞두고 쉬게 되었는데, 그때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필립은 사회는 군대와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별로 다르지 않았다. 힘있는 사람이 힘을 휘두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잘해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힘든 일을 시켰다. 그래도 하나 군대와 다른 게 있다. 그것은 절대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는 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군대도 해당하지 않을까. 윗사람이라고 해서 꼭 옳은 건 아닐 테니까. 밑에 사람이 하는 말을 윗사람이 잘 들어야 하는구나. 군대도 수직이 아닌 수평이 된다면 좀더 나을 텐데. 조금 어려울까. 앞으로 군대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일반사회와는 다르지만 그곳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피하지 않고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나 아픔처럼 군대도 우리나라 남자한테는 꼭 다녀와야 하는 거다. 그 시간을 나름대로 잘 지냈으면 한다.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이필립은 그동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아버지를 알려고 하기도 한다. 군대는 아버지 같은 거라고도 하는데 이필립 아버지는 권위만 내세우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필립은 군 병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정선한도 생각했다. 정선한한테 마음을 더 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주 힘든 사람은 한마디 말에도 힘을 얻을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듣고 싶어하는 쪽인지도). 아니,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다(이 말 얼마 전에도 했구나).

 

 

 

 

☆―

 

“더러운 꼴 많이 볼 거다. 억울하기도 할 거고 모멸감도 느낄 거야. 인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세상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구나 싶을 거야. 너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게 느껴져서 죽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 나처럼 될 거야.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잖아? 나갈 때가 오잖아? 군 생활 잘하지 못했다고 좋은 삶 살지 못하란 법은 없잖아.”  (86쪽)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한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은 사람 삶을 부수는 사랑은 없다. 포도 냄새만 첨가한 탄산 주스처럼 그것은 사랑이라 했을지 모르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110쪽)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가 아니고 ‘옳은 것을 함께 지켜나가자’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괜찮지 않겠냐?”  (156쪽)

 

 

 

 

 

 

 

한번 가면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

 

  벚꽃 흩날리는 밤   宵 (2006)

  기타모리 고   김미림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년 03월 20일

 

 

 

 

 

 

 

 

 

 

 

 

 

단골 손님 가운데 누군가 “내 그림자를 찾으러 이 가게에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고 얼근하게 취해서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별 뜻 없는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슴 속 어딘가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저도 모르게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닿는 범위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다.  (13쪽)

 

 

사람은 왜 술을 마실까요. 하나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 세번째로 간 별에는 술꾼이 살았습니다. 어린왕자가 술꾼한테 왜 술을 마시느냐고 하니, 술꾼은 잊기 위해서 합니다. 어린왕자가 무엇을 잊기 위해서냐고 하니, 술꾼은 술을 마시는 부끄러움이라고 하지요. 거의 안 좋은 기분을 날리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을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요. 거기에 빠져서 의존하지 않는다면 조금 마시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술 조금은 약이 되어도 넘치면 독이 되잖아요. 저는 싫어합니다. 무슨 맛으로 마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말을. 누군가는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고도 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어떤 건지. 술 싫어한다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이 책 속에 나오는 맥주바 가나리야 때문입니다. 맥주바기는 한데 가나리야에 도수 다른 맥주 네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 구도 데쓰야가 나름대로 만드는 음식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주 가끔은 맥주가 아닌 다른 술을 주기도 하는군요. 구도는 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술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만한 걸 줄 것 같아요. 이것은 저만의 바람일지도 모르겠군요. 가나리야는 그리 크지 않아요. 어쩌다 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골이 많습니다.

 

가나리야가 어딘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나요. 저는 지난번에도 그곳이 생각났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그곳은 <심야식당>입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겠군요. 심야식당 주인(이름은 모르는군요)은 재료가 있다면 손님이 해달라는 음식을 해주기도 합니다. 가나리야는 메뉴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고, 구도가 말하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구도는 손님 마음을 잘 압니다. 관찰력이 뛰어나지요. 구도는 안락의자 탐정입니다. 심야식당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나리야를 찾아오는 손님은 수수께끼를 가지고 옵니다. 그곳에서 만난 손님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뭘까’ 하기도 하고, 구도가 생각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탐정은 적은 정보로도 잘 알잖아요. 구도도 별말 안 들어도 어떤 일인지 그 일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알더군요. 확신이 없을 때는 조사를 해보기도 합니다. 신중한 사람이군요. 형사인 사람이 구도가 형사를 하면 범인이 벌벌 떨겠다고 했습니다. 구도 앞에서는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하게 되어서요.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요. 보면 무슨 말이든 하게 되는. 어쩌면 ‘이 사람한테 말해도 다른 데 퍼질 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가깝지도 않고 아주 멀지도 않은 사이로 인상이 좋아서일지도. 구도는 요크셔테리어가 사람이 된 듯한 모습과 분위기라고 합니다. 요크셔테리어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생긴 개인지 모릅니다. 이 말에서는 그저 친근함이 느껴질 뿐입니다.

 

식당, 맥주바가 배경인 이야기뿐 아니라 커피집이 배경인 이야기도 있어요. 책으로 본 건 아니지만 원작은 책입니다. 커피 한잔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 커피집을 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버지가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을 마시지 않고 나가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커피를 마셨다면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텐데 했어요. 죽은 사람은 좀 나쁜 사람입니다. 나쁘다고 해서 죽어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죽고 그 사람은 형무소를 나와 커피집을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커피맛을 내고 싶다고 했어요.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기도 합니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마음 아픈 아내, 아픈 아내 병간호에 지쳐서 나쁜 마음을 먹은 남편, 형무소를 나와 마음잡고 살아가려는 사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칼로 찌르고 그 마을에 온 여자, 남편이 죽임 당한 사람.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이런 사람들이 커피집에서 남자가 내리는 커피를 마시고 생각합니다. 심야식당, 맥주바 가나리야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겠지요.

 

저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가는 걸 좋아해야겠군요. 저는 이렇게 책으로 가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가나리야 주인 구도가 만드는 먹을거리는 글로만 보아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이런 이야기만 했군요. 가나리야라는 곳이 실제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섯편입니다. 이번이 두번째로 첫번째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는 저마다 재미있습니다.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해서 엄청난 일을 푸는 건 아닙니다. 한사람 죽기는 하는군요. 여기 나온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일 때문에 어떤 일을 꾸미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귀찮고 크게 바라지 않아서 안 하는 거고, 실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죄 없는 개를 이용한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것은 예전 남자친구가 불행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이 잘되면 자신은 잘 안 된다고 여겼어요. 자신이 잘되고 잘 안 되고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인데 말입니다. 그 여자가 했을 법한 일은 무섭더군요. 그렇게까지 안 했다면 좋을 텐데요.

 

한해 전에 죽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내가 남편한테 복수하려고 한 건 아니다 생각했어요. 같은 여자라 해도 저도 여자 마음을 잘 모르지만, 아주 모르는 건 아닌가봅니다. <벚꽃 흩날리는 밤에>에 나오는 연두색 꽃이 피는 교이코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이 꽃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에서는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 마음도 볼 수 있군요.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고. 어른 사정 때문에 아이가 마음을 다치는군요. 이런 일은 실제 일어나기도 하겠네요.

 

사람들이 가나리야에 가는 건 맥주와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먹을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말을 나누기도 하거든요.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살짝 구도한테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곳에 가면 마음 편하고 즐거운 거겠지요. 거기에서는 하루 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 쉽게 잊겠습니다. 책을 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거네요.

 

 

 

희선

 

 

 

 

☆―

 

뚜껑을 열자마자 맛있는 국물 냄새가 김과 함께 코끝에 전해진다. 유자 껍질을 넣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상큼한 냄새도 풍겼다. 조금 전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구도는 조금 독특한 메뉴를 준비해 봤다며 이 요리를 추천했다. 구도가 이렇게 말할 때는 자세히 묻지 않고 바로 주문한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이렇게 주문해서 나온 음식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어긋났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12쪽)

 

 

“뭐, 요리는 그 녀석, 혀에 뭔가 특별한 장치라도 있는 것 같다니까.”

 

“우리들은 마법장치라고 하죠.”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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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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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절판


 

 

소설은 우리한테 어떤 일을 할까. 가장 먼저 심심할 때 보면 덜 심심하다. ‘소설을 시간 때우기 위해 본다’고 하는 말 싫어하는데 이 말을 하다니. 심심할 때만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우울할 때 책을 보면 우울함이 조금 사라진다. 이것은 소설이 재미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활자가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설은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아쉽게도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지만. 실제 없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사신의 7일》에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신이 나온다. 책 제목에서는 ‘사신’이라 하지만, 책 속에는 사신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죽을 사람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을 조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 차사(사자)라고 했다. 검정 두루마기와 검정 입술이 생각난다. ‘전설의 고향’에서 본 저승 차사는 거의 남자였던 것 같다. 그런 것에 성이 나뉘었을 것 같지 않지만, 왜 남자만 그것을 했을까. 남자 모습이라고 해야겠다. 이 저승 차사와 치바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옷이 검다는 거다.

 

몇해 전에 《사신 치바》를 보았다. 시간이 흘러서 그 책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다. 생각나는 건 이름이 치바라는 것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 정도다. 치바만 별나게 음악을 좋아하는가 했는데, 앞으로 죽을 사람 조사를 하는 치바 동료도 다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음악을 듣기 어려운 때도 치바는 ‘음악 들을 수 없을까’ 하는 말을 해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어이없어하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는 짜증낸다. 저 사람은 이런 때 잘도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치바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어딘가에서는 사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앞에 나타나서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라고도 하는데 치바는 아니다. 치바는 이레 동안 사람을 조사하고 관찰해서 그 사람한테 죽음을 줄지 주지 않을지 결정한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딱 한번 ‘보류’였고, 거의 다 죽음을 맞게 했다. 결국 죽음을 줄 텐데 왜 이레 동안 조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치바 동료는 조사 대상을 잠깐 만나고 모두 죽음을 준다. 치바는 그런 동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 해도 치바는 성실하게 사람을 조사한다. 이것은 치바가 저도 모르게 곧 죽을 사람을 이레 동안만이라도 힘껏 살게 이끄는 일 같다.

 

이번에 치바가 만나는 사람은 한해 전에 하나뿐인 딸 나쓰미를 잃은 야마노베 료와 야마노베 마키다. 치바가 야마노베 집에 온 날 비가 내리고(이 말은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여기에 넣었는데 뜬금없구나. 치바가 일을 할 때면 늘 비가 내린다고 한다), 야마노베 딸을 죽인 혼조 다카시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치바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하고 야마노베와는 유치원 때 친구라고 했다. 야마노베가 그 말을 다 믿은 건 아닌 듯하다. 야마노베는 작가로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간 적이 있어서 사람들한테 이름이 잘 알려졌다. 집앞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거기에서 치바는 기자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야마노베는 치바를 집안에 들였다. 치바는 야마노베한테 복수할 거지 한다. 이런 말 들으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할 것 같은데 야마노베 부부는 침착했다. 치바가 진지하게 말해서,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치바는 에도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게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 자식과 배우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에도시대에 복잡한 절차를 밟아 원수를 찾아내 죽인 사람 많았을까. 그때는 그렇다 해도 지금은 살인을 살인으로 갚을 수 없다. 치바는 사람 일에 관심 없다. 복수를 돕지 않아도 야마노베 부부와 함께 움직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도 슬픔이 클 텐데, 누군가한테 자식 목숨을 빼앗기면 그때는 슬픔보다 화가 더 클 듯하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야마노베 부부가 복수를 결심한 것은 나쓰미를 죽인 혼조 다카시가 보통 사람이 아닌 사이코패스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서는 스물다섯 가운데서 한사람은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소시오패스라고 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용서를 빌어도 그 말을 들을까 말까 할 텐데, 혼조 다카시는 야마노베 부부를 큰 슬픔에 빠뜨리고 절망하게 하려 했다. 야마노베 부부 두 사람만 혼조 다카시를 찾아갔다면 혼조 다카시가 친 덫에 그대로 걸려들었을 거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바가 있었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실제는 사람이 아닌 사신. 치바가 있어서 혼조 다카시 계획은 틀어지고 야마노베 부부는 세 사람을 구했다. 치바 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잘못된 표지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정보부에서 사람을 빨리 죽게 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균형을 잡으려고 사람 목숨을 돌려주는 일을 한다고.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실수하면 제대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목숨을 빼앗았을 때는 사과하기 어렵겠다. 치바는 그 일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제도를 갑자기 하면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표지판 잘못된 거 알면 벌금 낸 사람한테 그 돈 돌려줄까. 그렇게 안 하고 아무도 모르게 고칠 것 같다. 다른 것은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 있지만 사람 목숨과 관계있는 건 잘못하면 안 된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전화를 받고 지금 조사하는 사람 수명을 늘려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나라면 그렇게 해주고 싶을 텐데. 한해 전에 딸을 잃고 자신도 죽는다면 억울할 듯해서. 다시 생각하니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걸 모르겠다. 남은 사람이 이제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거지.

 

야마노베는 치바를 만나고 가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야마노베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게 무섭고 아들이 죽는 게 무서워서 달아났다. 딸 죽음을 경험한 야마노베가 더 용기있는 걸까. 아니 그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랬겠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살게 한 건지도. 야마노베 자신이 죽을 것을 몰랐지만 저도 모르게 느낀 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자꾸 생각하는 걸 보면. 죽음은 누구한테나 찾아온다. 사람은 죽기에 열심히 살아간다. 야마노베 아버지도 언젠가 죽으니까 그날그날을 잡으려고 했는데 거기에 식구는 없었다. 자신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들이 나이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지도. 죽을 때가 되어서는 그런 이야기를 야마노베한테 한다. 야마노베는 아버지 때문에 죽는 게 무섭지 않다고 느낀다. 누구한테나 찾아오는 죽음, 이것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한테도 찾아온다. 치바는 혼자 다카시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했다.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큰일을 저지른 사람과 비슷할까.

 

이 책을 다 보고는 어떤 일을 당하면 그대로 갚아도 된다고 말하는 걸까 했다. 그런 말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겠지. 그대로 갚는다고 해도 죽은 딸이 돌아오고 기뻐하지 않으니까. 복수도 산 사람을 위한 것이구나.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하려고 하는지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죄를 짓고 법망을 피해서 빠져나가는 사람을 잘 잡아달라, 일지도.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낯설지 않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바로 치바. 치바가 사람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야마노베를 도와주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말했지만. 치바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을 거다. 일천년 넘게 이 일을 하는 걸 보면. 야마노베는 지난 한해는 괴롭게 보냈지만 치바와 함께 한 한주는 어느 때보다 잘 보냈다. 즐거웠다고 했다. 치바가 사람한테 죽음을 주는 일을 하지만 마지막 이레는 잘 보내게 하는 듯하다. 이레 동안 하는 조사 치바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하겠지. 결과가 같아도 그것을 하는 시간을 잘 보낸다면 그걸로 괜찮겠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기다.

 

 

 

희선

 

 

 

 

☆―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다리 살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이제 눈도 같은 꼴이 날 거예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된다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건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바 씨가 대꾸했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굉장히 안정된 말투였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천지 차이야.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그건 죽는 것과는 거의 상관없어.”  (274쪽)

 

 

“평화롭게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게.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나 무서운 일이 이어지는 거니까. 죽는다는 건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거잖아.”

 

“가장 큰 거?”

 

“죽음이 가장 무엇운 일 아닐까. 게다가 무섭게도 그 가장 무서운 죽음은 누구한테든 반드시 찾아와.”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그건 결코 피할 수 없는 ‘절대’ 법칙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아이든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때가 온다. 어떻게 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반드시 ‘가장 무서운 일’이 찾아온다.

 

“그래서 네 아버지, 그것 때문에 애썼어.”

 

“무엇 때문에?”

 

“언젠가 죽는 때가 찾아오지만, 그건 결코 무서운 게 아니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492~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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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4년 07월 28일

 

 

 

 

 

 

 

 

 

 

 

   글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쓰다니. 그것보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에 만난 책에 실린 글 제목은 ㄱ에서 ㅎ까지야. 차례가 사전과 같아. 나도 따라서 ㄱ에서 ㅎ까지에 맞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 대신 첫소리 ㄱ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어쩌면 중간에 쓸데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이렇게라도 ㅎ까지 쓴다면 좋겠지만 끝까지 못 쓸지도 몰라.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황경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 잘 생각나지 않아. 다른 데서 먼저 알고 페이퍼(PAPER)를 본 건지, 페이퍼를 보고 나서 안 건지. 황경신 하면 페이퍼와 뗄 수 없는 이름이기는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페이퍼를 만든 김원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퍼는 잡지 이름이야. 몇해 전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안 봐. 사도 다 볼 때가 별로 없어서 그만 보기로 했어(어쩐지 김원 아저씨한테 미안하군). 그때 ‘책을 다 못 보는 것은 책이 크기 때문이야’ 하는 핑계를 댔어, 나한테. 페이퍼에는 멋진 사진과 글이 실려있어. 그 책을 보고 나도 사진을 잘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글도 잘 써 보고 싶었지. 지금은 사진 잘 안 보게 되었어. 맞다, 달마다 주제가 있었어. 책 속에는 그 주제에 맞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있었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쓸까 했는데, 아직도 글 쓰는 건 어려워. 페이퍼 안에는 황경신 글도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 그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어. 황경신은 신화, 그림도 이야기했어.

 

 

 

                
                
                
                

                      지금이 11월이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네권 모두 2007년 페이퍼다

                    올해 페이퍼는 열아홉살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해에는 스무살이다

 

 

 

 

 

   다락방이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그리고 인터넷 속 페이퍼에도. 다락방이 있는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큰 집에도 다락방 만들겠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방 한 칸에 작은 다락이 있었어.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지만 앉으면 괜찮았어. 혼자 있기에 딱 좋은 곳이지. 난 그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썼어. 편지쓰기보다 숙제를 했던가. 책은 안 읽었어. 또 생각하니 아쉽다. 책 읽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일은 없었지만 다락방이 있던 곳에 살아본 것은 괜찮은 일 같아. 다락방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 같기도 해. 자신이 기억하는 다락방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다락방 다를지도 모르겠어. 이것도 조금 재미있지.

 

 

 

 

 

   라디오는 내 친구

      (책도 내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지

      “고마워”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말했는데, 나는 ‘초콜릿 우체국’을 생각하고 그것을 꺼내 보았어. 책 제목을 보고 이것은 그냥 ‘초콜릿 우체국’이네 했지. 곧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더 나중에 나온 책으로 봤다는 게 생각났어. ‘초콜릿 우체국’은 어느 날 초콜릿 우체국을 본 ‘나’가 그곳에 들어가서 지난날 자신이 지난날 그 사람한테 초콜릿을 보내는 이야기야. 본래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는데. 주소 몰라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신기한 이야기지. 2월 14일이 지나자 초콜릿 우체국은 연기처럼 사라졌어. ‘나’는 집에서 지난날 그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 물건을 보다가 시집 속에서 ‘초콜릿 잘 받았어’ 하는 말이 적힌 종이를 봐. 지난날이 조금 바뀌어도 지금은 그대로인 듯해. 그래도 추억이 하나 늘어난 거니 괜찮은가.

 

 

 

 

 

   밤, 좋아해. 낮도 좋아해.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거구나. 아니 사실 밤을 조금 더 좋아해. 어두운 것보다 조용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별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보이잖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 별빛이구나(언젠가도 한 말). 어쩐지 밤에는 낮보다 신비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지만 늘 반대도 생각해. 빛과 어둠은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 일도 그렇구나. 기쁜 일 반, 괴로운 일 반.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도 흘러간다

      마음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기

 

 

 

 

 

   어느새 ㅇ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여섯이나 남았어. 무엇을 쓸지 정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니 이야기가 뒤죽박죽이야. 황경신 책을 읽고 느낌을 써 본 적은 겨우 한번이야.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군. 마음에 드는 제목과 내가 쓰고 싶은 제목으로 짧게 썼지. 얼마전에도 한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좋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 유치한 것만 썼어. 그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 어떤 글을 보면 나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막상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 하는 거야. 황경신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부러워. 멋진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쓰는 사람은 다 부러워.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닌 바로 지금

 

 

 

 

 

   천마디 마음 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 담긴 말이 듣고 싶어

      아니, 아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 좋아

      내가 다 들을 테니 말해봐

 

 

 

 

 

   코코아, 커피 뭐가 좋아. 쌀쌀할 때는 따듯한 게 좋지. 나는 더울 때도 따듯한 걸로 마셔. 물은 차가운 거. 이건 언제나 그렇구나. 날이 차고 건조할 때는 따듯한 물 많이 마시면 좋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알아도 그렇게 안 하거든. 사람 체질에 따라 물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흐른 거지. 코코아든 커피든 반가운(좋은) 사람과 함께 하길.

 

 

 

 

 

   텅 빈 내 마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따듯한 시,

      따듯한 노래,

      따듯한 마음,

 

      따듯한……

 

 

 

 

 

   피아노는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자신을 쳐줄 사람을. 한때 피아노 둘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피아노가 하는 일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피아노는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부수어 추운 밤을 따스하게 보내길 바랐다. 피아노한테는 그런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피아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렀다. 피아노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어갈 무렵 여자아이가 찾아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

 

 

해철이는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가끔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해철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살았다. 어느 날 해철이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해철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중에 해철이 데리러 올게.”  “엄마, 어디가, 언제 올 건데?”  “미안하다, 해철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해철이 걱정은 말고 잘 살아.” 하늘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 엄마!” 해철이 울음소리에도 해철이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따라 나가려는 해철이를 할머니가 잡았다. 다음날부터 해철이 해바라기가 시작되었다. 정류장에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끔 버스가 서면, 해철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도록 해철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철이는 엄마를 믿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해철이가 정류장에 가자 버스가 왔다. 누가 내리는지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버스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해철이 엄마가 서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바꿨습니다. 이런 글에 이름을 써서 미안하군요.)

 

 

 

희선

 

 

 

 

☆―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17쪽)

 

 

이제 아셨군요. 내가 왜 볼펜이 되고 싶어하는지. 나는 내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죠. 누군가한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좀 더 사랑받고 싶다거나, 좀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정상이 아닌 정신 상태로 밤마다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 되지 않고도 죽을 수 있어요.  (38~39쪽)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저마다 만들어 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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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글이군요. 이 글을 읽으니 지나간 몇 가지 것들이 저도 추억이 됩니다.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페이퍼 잡지 같은 것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페이퍼`라는 잡지가 좋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사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잡지 한 권만 사서 들고와도 뭔가 마음이 들뜨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감흥이 없어요. 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 잡지가 나오는 날을 미리 물어봤다가 나왔다고 하면 연락받고 가서 사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더러, 그런 잡지도 거의 사라지고 없군요. 핫뮤직이나 키노나 서브나 같은 잡지들 말입니다. 이제 집으로 잡지를 가져다주는 좋은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감흥은 사라져버렸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결국 마음도 흘러가니, 말씀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희선 2014-12-12 01: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책이 나오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사서 왔을 때 감흥은 없어도, 책을 산 다음 그게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오면 책이 왔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고... 아쉽게도 그러고 나면 기쁨이 줄어드는군요 책을 보는 기쁨보다 책을 사는 기쁨이 더 크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도 페이퍼는 책방에 가서 사왔어요(한달에 한번 나와서 그런 건지도) 집에서 좀 먼 곳인데, 그게 나오는 날쯤 가죠 그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서 다음에 다시 가야 했어요 그걸 사서 올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차례대로 안 봐도 괜찮았군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그땐 그랬지(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쉬워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나가면 늘 아쉽기 때문에 그때 잘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아쉬운지 아쉽지 않은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지금 아는 건 뭐지, 싶기도 하네요

흘러가고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겠죠 뭔가 하나쯤......

며칠은 덜 추웠는데, 다시 추워지고 다음주에는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올해 이사카 고타로 책 자주 나오는군요. 새로 나오는 것도 있고 예전에 나온 게 다시 나오기도 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적지만. 전에는 차가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책을 보는 우리는 우연히 톰을 만난 ‘나’처럼 톰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지만 이야기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나’와 사람들. ‘나’는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낚시를 하게 됐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는데 무슨 낚시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것 말고 다른 취미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바깥을 돌아다니게 된 거겠지요. ‘나’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데 배가 뒤집힙니다. 그때 바람이 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잿빛 고양이가 ‘나’ 가슴 위에서 말을 했어요. 톰이 알고 말을 한 건 아니고 그냥 했더니 ‘나’가 톰 말을 알아들은 거예요. 그때는 서로 놀랐습니다. 배가 뒤집혔을 때 ‘나’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 간 것인지도. 톰이 사는 곳은 우리가 사는 곳하고 달랐습니다. 원을 그리면 반은 철국이고 반은 톰이 사는 나라였어요(나라 이름은 모르는군요). 반원 안에서 왕이 있는 마을이 톰이 사는 곳입니다. 나라가 반원보다 작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작은 나라를 철국이 지배하게 된 이야기를 톰이 ‘나’한테 들려줍니다.

 

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딘가 조금 이상합니다. 저는 그런가 했을 뿐이군요. 아니 그 나라에서는 왜 나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까 하는 생각은 했군요. ‘나’는 톰이 해준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철국하고는 오래전에 싸우다 지고, 다시 여덟해 동안 싸움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게 끝나고 철국 병사가 그 나라에 와서 왕인 칸토를 죽이고 마을 사람 몇을 잡아갔습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쿠파 병사가 자신들을 도와주러 오기를 바랐습니다. 쿠파 병사는 뭐냐구요. 십년 전까지 그 나라에서는 해마다 몇 사람을 뽑아서 삼나무가 쿠파가 되었을 때 무찔렀습니다. 삼나무가 생물이 된다니 조금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쿠파 병사에 뽑히는 걸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쿠파 병사가 되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쿠파를 무찌를 때 사람들은 쿠파 속에 든 물을 뒤집어써서 투명해지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겁니다. 십년 전에 왕 칸토는 쿠파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는 쿠파 병사를 뽑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투명해진 쿠파 병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철국 병사가 왔을 때 아무도 타지 않은 말이 한마리 있었습니다.

 

앞에 나온 알쏭달쏭한 일은 나중에 다 풀립니다. 톰이 ‘나’한테 철국 병사를 쫓아내달라고 했을 때는 어떻게 혼자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럴만 해서 한 말이더군요. 어떤 이야기든 끝까지 보면 앞에 나온 수수께끼는 풀리는군요(아니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도 가끔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예전에는 반공만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북한군은 늑대였습니다(아주 어릴 때 본 건데도 기억하다니). 어린이는 그것을 보면 북한 사람은 늑대인가보다 생각하겠지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거짓 정보군요. 톰이 사는 그 나라도 누군가 정보를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지요. 다른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려고 왕은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까닭으로 나라를 높은 벽으로 둘러쌌습니다.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 나라 사람이 밖에 나가는 것도 막은 겁니다. 적도 진짜 적이 아니고 만들어낸 겁니다(쿠파). 철국은 있지만. 앞에서는 누군가라 하고 뒤에서는 왕이라 했군요. 아주 작아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면 좋은 건지도 모르죠. 그것 또한 힘이군요. 사람은 힘 맛을 알게 되면 그것을 놓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지요.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착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도 힘을 가진 사람 진짜 마음은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카 고타로는 비슷한 말을 자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짜라 믿고 있는 게 거짓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라고 하네요. 어느 한쪽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렇구나 하기보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죠. 어렵다고 해서 그냥 있기보다 뭐라도 해 보기. 쥐도 비슷했습니다. 쥐는 늘 고양이한테 쫓기는 신세였는데 바깥에서 온 쥐가 고양이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어요. 고양이는 쥐가 말을 하는 걸 듣고 놀랍니다. 말을 나누면 고양이는 쥐를 잡기 어렵겠지요. 사람도 동 · 식물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괴롭히죠.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들을 뿐이고 동 · 식물도 괴로움을 느끼겠지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말을 하니 더 잘 통할 텐데 그게 어렵기도 하군요. 그것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럴 때는 아무리 말해도 싸움밖에는 안 될지도. 사람은 왜 잘 모를까요.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다는 것을.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입니다(한번도 그러지 않은 것처럼 말했군요). 마음을 닫지 않아야 할 텐데.

 

쥐와 고양이는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 사람으로 바꾸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쥐는 힘없는 쪽이군요. 고양이가 말해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보기만 했던가요. 실제 고양이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사람은 그러면 안 되겠지요. 만나고 말을 하게 되어서 힘들어하면 모르는 척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어요. 요괴를 만난 나츠메예요. 힘든 사람을 보면 모르는 척하지 않고 말이라도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못해서 이런 말을 했네요. 말 들어주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 책을 봐서 그런지 꿈에 고양이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아니고 햄스터였는데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먹이를 줘야 할 텐데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러 밖에 나갔더니 고양이도 따라서 밖에 나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고양이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전에도 이런 일 있었으니 괜찮겠지 한 듯합니다. 먹이는 안에서 찾아야지 왜 밖에서 찾았을까요. 다음날에는 쥐가 나왔습니다. 이 책 하루에 다 못 봤습니다. 하루 만에 보는 책 별로 없네요. 쥐는 한두 마리가 아니고 떼로 나왔습니다. 그곳은 학교 교실이었습니다. 쥐떼가 나와서 ‘발을 들어야 해’ 하고 생각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아닌 꿈이군요.

 

여기 나온 고양이를 톰이라고 한 건 이사카 고타로가 만화 <톰과 제리>를 좋아해서일까요. 쥐 가운데는 이름이 제리인 쥐가 있었을지.

 

 

 

희선

 

 

 

 

☆―

 

“(……) 지금까지는 커다란 돌을 앞에 두고 그것을 피해다니고 있었을 뿐입니다. 두려운 마음에 겁을 먹고 눈을 돌린 채 그 옆으로 돌아서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밀어 봐야 한다’고. 밀어보면 돌은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땅에 박힌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밀어는 봐야 한다고요.”  (170쪽)

 


서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고양이와 쥐 관계는 평행선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상대한테 다가서고자 마음먹는다면 두 선은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남는다.  (529~5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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