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の海 迷宮の岸 十二國記 (新潮文庫) (文庫)
小野 不由美 / 新潮社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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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내가 가장 괴로울 때는 학년이 올라가서 모르는 아이들 틈에 있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기분이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해진 듯하다. 새학년 새 반에 적응하는 시간은 거의 한달이 걸렸다. 새학년이 되면 한달쯤 가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해서, 그쯤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한달이 지났다고 해서 내가 친구를 사귀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다른 아이한테 말을 먼저 했던 적은 거의 없다. 다른 아이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다. 그다음에 친구가 되었는지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는 동네 친구가 있어서 다른 친구를 별로 사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중 ·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만 친구고 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만날 시간이 없었던가). 그런 친구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주 친한 친구는 없었다. 이런 말을 하다보니 《달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 나온 요코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코와 나는 좀 다르지만. 나는 요코처럼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 눈치를 본 건 비슷한가. 나는 이상하게 선생님이 무서웠다.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을 무서워한 건지, 어른을 무서워한 건지. 어릴 때만 그렇게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 건 아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선생님 같은 어른과 편하게 지내지 못한 건 왜였을까. 어렸을 때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 없다’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생길까 했는데, 이건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어릴 때 만들어진 성격이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가보다. 아니 아주 잠깐 활발해지려고 애쓴 적도 있다.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아서 본래대로 돌아갔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아주 어릴 때는 활발했다. 학교에 다니기 전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절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는데, 커갈수록 그런 모습에서 멀어졌다. 남 앞에 서는 게 싫고 창피하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내가 성격을 바꾸려고 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땐데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때 같은 반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편지로는 말을 잘 했지만 학교에서 보면 한마디도 못했다. 그래도 그 친구가 그런 것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지금 생각났는데,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 가다가 개를 만나고 뒷걸음치다 뒤로 넘어진 적이 있다. 그게 3학년 때였는지, 1학년 때였는지. 그때 나는 정신을 잃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일으켜줘서 학교에 갔다. 넘어져 있던 게 그렇게 오랫동안은 아니었나보다. 학교에 늦지 않은 걸 보면.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그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뒤에 이상해졌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전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 없는 것과 이건 별로 상관없겠다.

 

사회생활(우리는 모두 사회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지만, 일을 해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을 할 때도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나는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닌 친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럴 때마다 한사람을 사귀기는 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괜찮았다. 친하게 지냈다고 했는데, 정말 친했던 걸까. 내가 상대한테 기댔던 건 아닐까. 잘 모르는 사람 틈에 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 부럽다. 나는 왜 그것을 못하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자신 없는 건지. 잘못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잘못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 나는 잘못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것은 다른 사람한테 나쁘게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일까.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내가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건 아니지만. 답도 안 나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일이라 여기고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 역사를 알아야 그때 잘못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 일을 생각하고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 하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지금 나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사람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거. 억지로 바뀌려고 하는 것은 안 좋을 듯하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여러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더 쓸쓸했다. 그건 남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선지도. 바보 같은 생각이다. 바보 같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여러 사람 사이에 있으면 여전히 쓸쓸할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지금처럼 살면 괜찮겠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집에서는 할머니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남자아이 다카사토 카나메는 열살 겨울에 다른 세계로 간다. 사람들은 다카사토를 다이키라 하고 그곳에 돌아온 것을 기쁘게 여겼다. 다이키는 대국 기린이었다. 열두 나라가 있는 곳에서는 기린이 왕을 골라야 한다. 책임이 무거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왕을 고르는 것을 하늘(천제)이다. 하늘이 왕에 어울리는 사람을 기린한테 알려주는 거다. 하지만 다이키는 기린이 태어나는 봉산이 아닌 봉래(일본)에서 오래 살아서 자신이 기린이라는 것을 몰랐다. 자신이 기린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게 어떤 건지 모른다. (다이키는 자신을 돌봐주는 여선이 자신이 기린이라는 것을 알려줬을 때 그것을 목이 긴 기린으로 생각한 듯하다. 나중에 경국 기린 케이키가 기린이 된 모습을 보여줬을 때 그 기린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모두 다이키가 기린이니 왕을 만나면 저절로 알 수 있다고만 말한다. 자신이 사람이 아닌 기린이라는 것을 안 것도 얼마 안 되었는데, 한 나라 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다이키는 힘들어한다. 그런 자신이 진짜 기린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기도 하다. 다이키는 다른 기린과 다르게 검정 기린이다. 아니 기린은 여러 색이 있는데 많이 있는 게 금색 갈기에 연한 노랑에 가까운 기린이다. 검정 기린은 아주 가끔 나온다고 한다. 다이키가 가진 힘은 아직 다 나타나지 않았고, 다 자라지 않았다.

 

본래 기린으로 태어나야 했다지만, 어린이가 지금까지 살던 집을 떠나 아주 모르는 곳에서 살게 되면 엄청 불안할 듯하다. 다이키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여괴 산시가 있어설지도 모르겠다. 여선들은 모두 다이키한테 잘해주었다. 어린 다이키는 여선들한테 보답하고 싶어했다. 마치 어린이가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다이키는 자신을 지켜주는 사령을 만든다거나 기린 모습이 되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왕을 만나고서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이키는 자신이 고른 왕을 가짜라 생각했다. 자신을 믿으면 자신이 한 일도 믿을까. 다른 기린은 자신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기린은 기린이 무엇인지 누가 가르쳐주는게 아니고 스스로 깨닫는 건가보다. 다이키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쩐지 다이키가 안됐다. 마지막에는 웃었지만.

 

이 책보다 먼저 나온 게 《마성의 아이》다. 나는 그 반대인지 알았다. 이것을 먼저 쓰고 나중에 ‘마성의 아이’를 썼다고 생각했다. 오노 후유미는 ‘마성의 아이’를 쓸 때부터 십이국기를 쓰려고 했나보다. 다이키는 다시 일본에 돌아가고 자신이 기린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기린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기린으로 살아가는가보다 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바랐는지도. 여기에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볼 수 있겠지. 다이키한테는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요코도 미련이 있었지만, 일본보다 경국에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했다. 요코와 다이키는 처지가 다르다. 하지만 둘 다 한 나라에 없으면 안 된다. 다이키는 언젠가 다시 기린으로 돌아갈까. 내가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과 다이키 이야기는 별로 상관없구나. 그냥 그게 생각나서 먼저 적었다. 나는 다이키처럼 책임 무거운 일을 해 본 경험도 없다. 하나, 자신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 자신을 믿는 것. 다이키도 그게 모자랐다. 모자란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좋겠지.

 

 

 

희선

 

 

 

 

☆―

 

드디어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이라고 믿은 범위를 크게 뛰어넘은 생물이라는 것. 그것은 하늘에 직결되어 하찮은 자신의 껍질 속에 큰 힘을 불어넣어준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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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の影 影の海(上) 十二國記 (新潮文庫) (文庫)
小野 不由美 / 新潮社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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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지금까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마음먹고 어딘가에 가면 즐겁겠지요. 그것은 다시 돌아올 곳이 있기에 그런 걸 거예요.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학교에 갔는데 그곳에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곳은 위험하다고 하자, 처음 보는 괴물 같은 새가 나타나고 다른 사람을 휘말리지 않게 하려면 떠나야 한다면 오래 생각 못하고 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요코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고 갑니다. 아직 요코는 자신이 어디에 온 건지 모릅니다. 학교에 나타난 사람은 케이키로 요코를 자신의 주인이라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요코는 다른 곳에 가서 모두와 떨어지고 혼자가 됩니다. 혼자가 아니고 자신이 왜 그곳에 온 건지 알았다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요코는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내용을 모르고 처음 읽는 거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요코가 간 곳은 어디일까 기대하고, 요코 모습을 보고 ‘왜 이래’ 하면서 읽었을 텐데 아는 내용이어서 그냥 읽었습니다. 책도 예전에 한번 읽었는데 제가 기억하는 건 책보다 만화영화예요. 책하고 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책 한번 읽었는데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좀 이상하군요.

 

십이국기(十二國記)는 말 그대로 열두 나라 이야깁니다. 몇 해 전에 책을 한번 봤지만, 만화영화에 나온 곳 빼고 다른 나라 이야기는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이 책 뒤에 나온 해설을 보니 다른 나라 이야기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생각했는데, 다시 보기로 하길 잘했네요. 앞에서도 예전에 책 봤지만 처음 보는 느낌이 든다고 했잖아요. 그때도 재미있게 본 것 같은데 왜 느낌이 다를까요. ‘재미있네’하는 생각만 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무엇인가를 알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예요. 아, 하나 알았군요. 요코가 일본에서 다른 세계에 가서 혼자가 된 까닭이네요. 요코는 자신이 간 곳이 일본이 아닌 다른 세계라는 것을 나중에 압니다. 요코는 그곳 사람과 말이 통했거든요. 말이 통하면 사람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겠지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요코가 해객이어서 높은 사람한테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 길에 요마가 나타나고 요코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얼마 뒤 다른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습니다. 그때 만난 여자가 그곳이 어딘지 조금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여자는 요코를 어딘가에 팔려고 합니다. 요코는 배신당했다 생각하고 그곳을 떠나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은 요코와 같은 해객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꽤 오래전(전쟁이 끝나기 보름 전)에 왔습니다. 요코가 이쪽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왜 자신만 그렇게 힘들어야 하느냐 합니다. 이 책을 보다보면 이런 사람 좀 나옵니다. 그 사람은 요코 짐을 가지고 달아납니다. 요코는 그 일 때문에 더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곳이라고 다르지 않겠지요. 요코가 다음에 만나는 사람은 라크슌이에요. 라크슌은 쥐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은 사람 반은 동물입니다. 요코가 초음부터 라크슌을 믿은 건 아니예요. 요코는 이 세계에 오고 저쪽 세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깨닫습니다. 요코는 아무도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고,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웃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사람은 참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 앞에서는 자기한테 좋게 이용하고 뒤에서는 나쁘게 말합니다. 요코 친구도 그랬습니다. 그렇다 해도 요코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을 이겨냅니다. 나쁜 사람을 만난 것도 요코한테는 잘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크슌은 요코한테 케이키를 찾으려면 안국에 가라고 하고 함께 길을 나섭니다. 아무리 라크슌이 이 나라(교국)에서 사는 게 어렵고 언젠가 떠나려 했다 해도 바로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교국은 라크슌 같은 반은 동물인 사람을 차별했습니다(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더군요. 어쩐지 장애인 같네요). 라크슌은 공부도 잘했는데 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어느 나라나 스무 살이 되면 나라에서 땅을 줍니다. 하지만 라크슌은 땅을 받을 수 없어요. 그러니 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고 싶겠지요. 다른 나라에 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군요. 요코는 쫓기고 있어서 어려운 면이 있지만.

 

 

                     

 

 

 

열두 나라가 있는 이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릅니다. 이곳에는 왕이 있고 기린(麒麟)이 있습니다. 목이 긴 기린이 아니고 전설에 나오는 그 기린입니다. 왕을 기린이 고릅니다. 기린 마음대로 고르는 것은 아니고 하늘이 왕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왕이 길을 잘못 들지 않게 기린이 도와주지만, 왕이 정치를 잘못해서 길을 잃으면 기린이 병에 걸립니다. 병에 걸린 기린이 죽으면 왕도 얼마 뒤 죽습니다. 왕이 먼저 죽으면 기린은 죽지 않습니다. 기린과 왕이 죽으면 또 다른 기린과 왕이 나오면 된다 생각하겠지만, 왕이 없는 나라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요마가 나타나고 전염병이 퍼져서 백성은 살아가기 힘듭니다. 왕은 신에 가까워서 죽지 않습니다(목을 베고 몸을 두 동강 내고, 길을 잃으면 죽지만). 선인(仙人)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런 거 부러워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못 봤습니다. 자신은 자신이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에는 전기도 없고 차도 없습니다. 과학을 아주 모를까 했는데, 안국에서 생활과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 사람은 일본에서 갑자기 이곳에 온 사람인데, 이곳에서 적응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누군가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요코는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합니다.

 

제목에 쓴 말과는 참 다른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그 말을 중심으로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요코가 자신을 깨닫는다고 해야겠군요. 아니 아직 망설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코는 엄청난 자리에 앉아야 하니까요. 그래도 요코는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와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좋아지려고 애써야겠지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갖는 것도 쉽지 않지요. 쉽지 않겠지만 요코는 앞으로 나아지겠지요. 혼자가 아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 같군요. 남과 견주지 않기. 그것을 해서 자기 나라를 기울게 한 왕이 있거든요. 왕이 자신을 잃으면 힘든 건 백성이네요. 왕뿐 아니라 우리도 자기 자신의 주인(왕)으로 살아야 합니다(이 말은 나중에 요코가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희선

 

 

 

 

☆―

 

막다른 곳에 몰려서 아무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거부해도 괜찮을까. 자신한테 잘해준 상대를 내버리는 까닭이 될까. 절대 선의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걸까. 남이 나한테 아주 다정하지 않으면 남한테 다정할 수 없는 걸까.

 

“……그런 게 아니잖아.”

 

요코 자신이 사람을 믿는 것과 남이 요코를 배신하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을 거다. 요코 자신이 다정한 것과 남이 요코한테 다정한 것은 아무 관계도 없을 텐데.

 

혼자, 도와주는 사람 위로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이 넓은 세상에 오로지 혼자여도. 요코가 남을 믿지 않고 비겁하게 행동하고 내버려두고 달아나고, 하물며 남을 해치는 까닭이 될 리 없을 텐데.  (하권, 84쪽)

 

(마지막 부분 어쩐지 조금 이상하군요. 읽을 때는 그렇지 했는데, 우리말로 옮기니 이 모양이네요. 앞에 다른 말이 더 있었다면 나았을지도. 요코가 라크슌을 해치지 않은 걸 다행이다 생각한 뒤예요.)

 

 

“있잖아, 요코.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모를 때는 자신이 해야 할 쪽을 골라. 그럴 때는 어느 쪽을 골라도 나중에 분명히 후회해. 어차피 후회할 바엔 조금이라도 가벼운 쪽이 낫잖아.”

 

“응.”

 

“해야할 일을 고르면, 해야 할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은 만큼 후회는 적을 거야.”

 

“응.”  (하권, 246~247쪽)

 

 

 

 

 

지도에 쓴 나라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인터넷 책방에서 미리보기로 지도를 봤습니다)을 보고 썼는데, 공과 안 사이에 있는 유는 류로 읽어도 될 것 같기도 한데, 버들 류(柳)예요. 책을 볼 때 류로 읽었더니 유라고 하니 이상하기도 하군요. 다른 나라도 발음 다른데 이런 말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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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나눠서 읽고 잘 못 썼지만, 여기에 잘못 쓰인 게 있어서. 이 말은 예전에도 했던 거다. 그때는 다른 책이었는데, 여기에 또 나올지 몰랐다.

 

 

 

 

거미줄로 들어가다

 

  무당거미의 이치 상   絡新婦の理 (1996)

  교고쿠 나쓰히코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2014년 08월 25일

 

 

 

 

 

 

 

 

 

 

 

교고쿠 나쓰히코 책 본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보게 되었다. 이것보다 앞에 것 《철서의 우리》도 세권이었는데, 이 《무당거미의 이치》도 세권이다. 얼마전에 ‘백귀야행’ 두권을 다 보았는데, 거기에서 본 사람이 여기에도 나와서 그렇구나 했다. 거기에서 제대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뒤가 이것인가 싶기도 하다. 병풍 위에서 사람을 엿보는 요괴를 본 다다 마키, 결혼을 앞두고 웃는 연습을 하다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여자는 여기에서 피해자로 나온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가까이에 사는 열아홉살 처녀를 죽이고 말았다. 그 사람이 여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범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을 하는 여자를 싫어하는 형사도 나온다. 아내 기모노에서 손이 나와서 집을 뛰쳐나간 스기우라 다카오 아내 스기우라 미에는 남편을 찾았다. ‘백귀야행’이 생각나서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그것은 그거고 이것은 이것이다 해야 하는데, 아주 상관없지 않기도 하다. 다다 마키는 여기에서는 아주 짧게 나와서 별로 안 좋게 보일지 모르겠지만(허가 받지 않고 사람한테 방을 빌려주었다. 몸을 파는 사람한테), ‘백귀야행’을 봤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이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그것을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백귀야행’은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크게 다루지 않은 사람 이야기다.

 

처음 시작은 여자가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일이다(그전에 다른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이게 네번째였다. 무엇보다 죽은 여자 모습이 비슷했다. 두 눈이 뽑힌 거다. 그래서 경찰은 한 사람이 네 여자를 죽였다고 여겼다. 앞에 죽임 당한 세 여자는 품행방정(이 말을 그대로 쓰다니)한 열아홉살 처녀, 물장사하는 서른다섯살 여자, 근엄하고 성실한 서른살 여교사다. 네번째는 정통있는 포목점 안주인이다. 네 사람한테 공통점은 없다. 이것은 정말 연쇄살인일까. 처음 범인으로 보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았다는 말을 형사 기바 슈타로가 듣는다. 기바 슈타로는 가와시마 신조를 알아서 검은 안경을 주웠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때를 놓쳤다.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이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 생각한 건지도. 아직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네 사람을 같은 사람이 죽인 건지, 다른 사건인지. 처음에 죽은 여자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세 여자는 연관 있을지도. 기바가 가와시마 사무실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달아나는 가와시마를 만났다. 가와시마는 기바한테 아직 붙잡힐 수 없다 하고, ‘여자한테, 거미한테 물어봐’ 하는 말을 남겼다.

 

첫째 권에서는 세가지 이야기가 얽혀간다. 첫번째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두번째는 성 베르나르 여학교에서 저주를 걸어서 사람이 죽은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학교 선생이 목이 졸려 죽임 당한다. 그 선생은 학생한테 나쁜 짓을 했다. 그 학생은 저주해서라도 선생을 죽이고 싶어했다. 이 학교 선생이었던 여자도 학생이 저주해서 죽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세번째 여자다. 세번째는 이 학교를 지은 오리사쿠 집안 이야기다. 당주라고 할 수 있는 오리사쿠 유노스케가 죽었다. 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이다. 뒤는 조금 다르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 비슷한 것일 뿐일까. 은혜 갚은 학은. 부잣집은 언제나 재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 이 집에서는 재산보다 누가 오리사쿠 가문을 이을까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이것도 다르지 않은 건가). 오리사쿠 집안에는 딸만 태어나서 데릴사위를 얻었다. 죽은 유노스케한테도 딸이 넷이었다. 첫째는 죽고, 둘째는 결혼했는데 남편이 별로였다. 셋째는 결혼하지 않겠다 하고, 넷째는 아직 중학생이다. 괜찮지 않다 해도 집안을 이을 사람은 둘째딸 남편밖에 없다. 그런데 오리사쿠 유노스케 장례식 다음날 그 사람도 죽임 당한다. 어쩐지 죽는 사람이 많다. 여자만 죽는 게 아니고 남자도 죽는다. 여자와 남자를 죽이는 것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맨 앞에서 스기우라 미에가 사라진 남편 스기우라 다카오를 찾는다고 했는데, 미에는 탐정 에노키즈 레이지로한테 남편을 찾아달라고 한다.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서다. 미에는 여성 운동을 하는 듯하다. 사람들과 모여서 공부하는데 그곳에서 오리사쿠 집안 셋째딸 오리사쿠 아오이를 만났다. 남편 스기우라 다카오는 죽임 당한 술집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성 베르나르 여학교 이사장은 그곳에 퍼져 있는 이상한 일을 거두어 달라는 일을 에노키즈 레이지로한테 부탁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교고쿠도 추젠지 아키히코다. 정리하는 것도 복잡하구나. 추젠지 아키히코는 우연히 일어난 일처럼 보이는 일을 누군가 일이 그렇게 일어나게 이끌었다고 한다. 지금 관심을 갖게 한 사람은 스기우라 다카오다. 스기우라 다카오는 죽임 당한 여자와 있었고, 선생이 죽임 당한 학교에 있었다.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관계있을까. 그것보다 이용당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은 겉보기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책 한권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제목에 무당거미가 들어가서 누군가 거미줄을 쳤다고 말한 건지도. 오리사쿠 집도 거미집처럼 말하기도 했다. 베를 짜는 기계 역직기를 만들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이름에도 짠다는 말이 들어간다. 일본말로 직녀를 오리히메라고 한다. 견우와 직녀도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긴데. 저주로 사람을 죽인다는 일을 푸는 게 먼저구나. ‘검은 성모’ ‘거미의 종(거미를 따르는 하인일까)’ 사람은 저주로 죽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걸 거다. 남은 두권을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겠지. 여성 운동도 관계있을까.

 

 

 

 

☆―

 

마스다가 생각하기에 추젠지는 수수께끼를 해명하지 않는다. 추젠지는 수수께끼에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 쪽을 일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해체하는 것이다. 수수께끼가 수수께끼가 된 배경을 흔들어, 수수께끼 자체가 효과 없는 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을 일단 못 쓰게 만들어 버리고 속임수든 궤변이든, 수수께끼가 수수께끼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을 겉으로 드러내는 게 추젠지 방식이다.  (358쪽)

 

 

 

 

 

 

 

책을 다 읽었지만

 

  무당거미의 이치 중 · 하  

  絡新婦の理 (1996)

  교고쿠 나쓰히코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2014년 08월 25일

 

 

 

 

 

 

 

 

 

 

“당신은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인자들에 일부러 자극을 주어서 사건을 산출하는 네트워크, 그 망상조직을 재생산하여 사건이 이뤄지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냈어요. 개개의 인자나 그 행동은 계획 자체에는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계획의 움직임──사건은 인과 작용에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사건 자체를 되풀이해서 산출해 나갔지요. 당신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시스템, 곧 체계를 규정하는 계획을 생각, 발동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저는.”

 

“──이 경우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이라는 이원으로 쌍을 이루는 인식론 도식은 효과가 없어지지요. 그렇게 되면 깨달음 없는 관찰자는 일을 잘못 볼 뿐입니다. 관찰자는 당사자가 파악한 현실을 객관성을 갖고 궤도를 고칠 수 있는 처지에는 더 이상 있지 않게 되고,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찰은 그저 현실을 숨길 뿐인 행위가 되지요. 움직여버린 계획은 그저 끊임없이 사건의 되풀이, 재생산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그리고 당신 바람은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당신은 반면, 많은 것을 잃었지요.”  (상권, 21쪽)

 

 

마지막까지 읽었는데 제대로 안 건 반쯤 될까.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정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교고쿠 나쓰히코 책은 거의 그런 식으로 본 듯하다. 예전에는 추리소설을 본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알쏭달쏭한 느낌은 비슷하다. 무엇인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잘 몰라도 그런 것을 재미있게 느끼는 것인지. 두번보다 세번쯤 보면 반 이상 알 수 있을까. 게으른 나는 그렇게까지 읽지 못한다. 이번에는 예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더 복잡하다(다른 데도 앞에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사람 관계가 복잡하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말은 ‘세상은 넓은 듯하지만 좁기도 하다’다.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 《철서의 우리》에서 세 가지는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광골의 꿈’은……, 그때 나온 사람이 여기에 나온 것인가. 《백귀야행》에 나온 것도 조금 이해했다. 다는 아니고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여긴 사람(히라노 유키치)만 알았다. 아내 기모노에서 손이 나왔다고 여긴 사람(스기우라 다카오)도. 그리고 계획은 벌써 그때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 작가가 처음부터 생각하고 쓴 것인지, 쓰면서 그렇게 엮은 것인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시대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일본에서 내려오는 문화가 있고, 서구문화가 들어왔다. 가부장제가 서구문화라고만 할 수 없겠지만. 이것은 우리나라도 비슷했을 것 같지만, 아니 우리나라 조선은 유교 사회였기 때문에 일본보다 더 오랫동안 가부장 사회였다. 불교도 비슷했을까. 우리의 가부장 사회는 더 오래됐을 거다. 조선 초기에는 조금 달랐다고 하지만. 일본에는 모계 사회였던 때가 있고, 무사시대가 되면서 가부장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화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 모계 사회 풍습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성은 그것을 다르게 바꾸어버렸다. 여자 쪽에서 보면 보통인 게 남자 쪽에서 보면 그것은 매춘이었다. 여기 나온 이야기는 모계 사회와 가부장 사회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싸움에 여러 사람이 휘말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을 꾸민 사람도 거기에 걸려든 건지도 모르겠다. 한 집안에서 일어난 핏줄 싸움이 있었고,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 더해졌다고 해야겠다.

 

오리사쿠 집안은 모계 집안이다. 대대로 데릴사위를 들이고 첫째딸이 집안을 이었다. 딸이 낳은 아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한사람이 바깥에서 딸을 낳아와서 집을 잇게 했다. 아내가 가만히 있었을까. 자신의 핏줄(오리사쿠)을 끊기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희생당한 것은 여성이다. 딸이라고 해야겠다. 시대는 창부, 곧 몸 파는 여자를 차별하고 여성도 차별했다. 모계 사회 풍습은 아이 아버지가 누구든 상관없다. 어머니가 낳은 아이면 되었다. 마치 이것은 창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다르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쟁이 끝난 뒤 그런 것을 끌어내린 게 바로 남성이다. 남성은 자기 핏줄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가(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모계 집안에 반발한 사람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람들이 죽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얽혀서 죽었다. 누군가는 저주했고, 다른 한쪽은 자기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여겼다. 두쪽 다 진짜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눈알 살인마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주 아닌 건 아닌가.

 

여러 사람이 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일을 숨기고 자신이 있을 곳이 생기는 건가. 어떤 일은 바라지 않았을 텐데,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일은 멈추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죽고서야 멈추었다.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사람은 정말 싫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여성 차별이 심한 때여서일까. 그 사람 마음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남자가 전쟁에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단다. 듣고 보니 맞는 듯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이 맞을까. 사람에 따라 여성스러운 남자도 있고, 남성스러운 여자도 있다. 자신이 가진 성향을 죽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것에 따라야 할까.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괴로운 사람 많았을 거다. 여성이 여성 인권을 위해 운동한다고 해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어딘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건 쉽지 않다. 자신한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없는지 늘 확인해보아야 한다. ‘백귀야행’을 보고 스기우라 다카오가 자기 아내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아내 또한 스기우라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종교 이야기도 꽤 나온다. 일본 민간 신앙도. 그런 것은 그런가보다 하면서 보았다. 사람이 책을 보고 안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의 차이도 알아야 하는구나. 성 베르나르 여학교는 기독교와는 관계없었다. 그렇게 보였는데 아무 상관이 없었다니. 그것 때문에 해를 입은 아이도 있다. 오리사쿠 집안 딸은 다 안됐다. 하나 아쉬운 것은 신라에서 왜로 건너간 하타씨가 중국 진시황 후손이라 한 거다(여기에는 하타씨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항설백물어》에도 그런 식으로 나왔는데. 그때는 작가도 그렇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렇게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책이 나온 1996년에는 일본 역사책에 그런 말이 더 많았을지도(지금은 제대로 됐을까. 절에 있는 비석 글씨는 고쳤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변명을 하다니. 나는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건 아니다 생각한다. 잘못 쓰인 역사책을 봤기 때문일 거다. 나도 역사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다. 쇼토쿠 태자의 총애를 받은 하타노 가와카쓰(진하승)는 신라에서 왜로 간 사람이다. 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에서 본 말이 나오기도 한다. 누에 신사, 오사케 신사, 샘 그리고 우즈마사 광륭사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일본에도 나온다니, 이 부분을 일본 사람이 잘 봤으면 좋겠다.

 

 

 

희선

 

 

 

 

☆―

 

“넌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놈이야. 세상은 변태라고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 없어!”  (하권, 104쪽)

 

 

“인간은 누구나 남성성과 여성성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래요. 이건 균형 문제고, 그 가운데 어느 쪽 비율이 높은지, 어느 쪽이 겉으로 드러나는지, 거기에서 개인차가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여성성이 큰 남성이 열등한 것도 아니고, 남자니까 남자다워야 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차별이고 근거 없는 편견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어느 특정한 곳과 시간 문화속에서만 뜻을 가질 뿐이에요.”  (하권,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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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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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2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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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쟁 - 우리말 우리글 5천년 쟁투사
김흥식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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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말에는 그 나라 문화와 그 나라 사람 생활이 담겨있다(잠시 문화 안에 생활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화만 쓸까 하다가 생활까지 적었다). 말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고조선 때 우리말이 어땠을까. 아쉽게도 우리는 그때 말을 모른다. 그때뿐 아니고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도 모른다. 조선이라고 해서 아는 건 아니다. 이 책을 보니 중국(예전에는 다른 이름이었을 테지만) 가까운 곳에서 살던 사람은 한자가 어렵고 자기들 마음을 다 나타낼 수 없다고 여기고 자기들이 쓸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글자는 거의 한자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쓰기에 어려워서 지금까지 남은 게 별로 없다. 일본도 한자에서 글자를 만들어서 가나(仮名)라고 했다. 그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지배층은 한자를 잘 썼다고 한다. 다른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글자가 없지 않았다. 신라는 향찰로 향가를 쓰고 설총이 만든 이두는 오랫동안 조선 중간관리가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이 쓰기에는 어려웠다. 세종은 여러가지에 관심을 가져서 글자에도 관심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 본 소설에서 세종이 신미 대사한테 우리 글자를 만들라고 해서 신미는 범어에서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여기에는 그런 말이 없다.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걸까. 범어를 찾아보고 거기에서 어떻게 우리 자음과 모음이 나왔을까 했다. 글자 모양보다 읽는 것에서 가져온 것일까. 글자가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을 테지. 오랫동안 알아보고 만들었으리라고 본다. 소설에는 세종이 왜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했는지 나왔는데, 나는 그 말에 더 믿음이 간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자가 아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로 보이게 하려고(한자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더라도 훈민정음 쓰기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싸움에서 세종이 이겼다.

 

훈민정음을 세상 사람이 알게 했지만 그게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연산군은 언문을 배우고 쓰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나쁜 모습을 쓴 편지 때문이다. 그 편지를 쓴 사람을 찾았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는데(이때 사람들한테 글씨를 쓰게 해서 같은 글씨체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배우지 못하게 한다고 해도 몰래 배우는 사람은 있다. 조선시대에 언문 소설이 널리 퍼져서 언문을 아는 사람이 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한자를 가르치는 책에 훈민정음이 있었다. 최세진은 중국말(글을 잘 썼을까, 말도 했겠지)을 잘해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여러 책을 썼는데 그 안에 어린이한테 한자를 가르치는 《훈몽자회》가 있었다. 《훈몽자회》에 훈민정음을 적고 그것을 익힌 다음 한자를 익히라고 했다. 최세진은 자음 이름뿐 아니라 모음을 지금 우리가 아는 순서로 적었다. 한자를 가르치기 위한 책에 훈민정음을 쓰다니(옛날 사람은 그대로 읽어도 지금 사람은 읽기 조금 어렵다). 최세진은 그것으로 훈민정음을 알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어쩌면 최세진이 훈민정음을 익힌 다음 한자를 공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문에 백성은 조선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선조는 백성한테 내린 글을 훈민정음으로 썼다. 그때 그 문서가 보물 제915호가 되었다. 1728년 노래꾼 김천택은 시조를 모아서 《청구영언》을 펴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450년이 지난 1894년 11월에 훈민정음을 우리글로 인정한다.

 

한글 신문이 나오고 주시경이 여러 사람과 맞춤법을 만들었다(이때 한글이라는 말도 생겼다). 신소설과 신체시 같은 게 나왔다. 많은 사람이 글을 쉽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다. 다행하다고 해야 할지 아직 우리말과 글은 빼앗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를 자신들 노예로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우리말과 문화를 많이 알아보고 없애려고 했다. 청일전쟁 때는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고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 이런 형편에서 사람들은 조선말사전을 만들려고 애썼다. 광복이 되기 얼마전에 원고를 일본 경찰한테 빼앗겼는데 역에서 찾았다. 우리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이제는 한글만 쓰게 되었다. 이것은 교과서가 그랬고 신문에는 한글과 한자가 함께 쓰였다.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이렇게 힘들 때 이승만은 국어 맞춤법을 바꾸라고 한다. 그런 일도 있었다니. 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고 발음이 바뀌기도 한다. 이승만은 미국에 있다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바뀐 게 어렵게 보였나보다. 자신이 어렵다고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것을 바꾸라고 하다니. 이 책은 한글로 본 우리 역사 같은 느낌이 든다(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것도 있다.

 

한글만 쓰는 것과 한자를 함께 쓰는 것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자는 우리 문화와 관계있으니까. 오래전에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받아들여서 그때 쓰던 말이 없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외래어는 우리말처럼 된 외국말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대로 쓰기보다 우리말로 바꿀 수 없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텐데, 거의 그대로 쓴다. 그저 한글로 쓸 뿐이다. 한글이지만 뜻을 알 수 없는 말 아주 많다. 한글은 여러 소리와 모양을 나타낼 수 있다. 색도 있구나. 한글이 뛰어난 것은 맞는데 우리가 그것을 잘 살려쓰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우리말에는 약점도 있다. 그것도 인정해야겠지). 우리말로만 나타낼 수 있는 정서가 있다. 그게 정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만의 것이다. 어디에서 살든 그곳에서 하는 말을 배우고 익히면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러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하면 좋을까. 이러저런 말 배우지 않아도 하나만 알면 여러나라 사람과 말할 수 있다면 편하기는 할 거다. 하지만 그 나라의 고유성이 없어진다. 세계화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나온 지 오백년이 넘은 한글, 우리는 이것을 지킬 수 있을까. 나도 한글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나는 순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우리말이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거 많으니까. 한자 공부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같이 쓴다고 들었는데. 급수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연스럽게 하는 공부라면 훨씬 좋을 텐데. 이것은 어떤 공부나 그렇다. 재미있게 공부하면 훨씬 오래 남는다. 우리말과 글 사라지지 않게 잘 가꾸고 지켜가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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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2016-06-1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헐 님 한자공부만하면 중국갈것도 아니고 우리말을 지켜야죠

희선 2016-06-17 00:02   좋아요 0 | URL
한자 공부만 하자는 말은 안 했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까요 우리말 지켜야죠 제목에 그렇게 썼는데... 얼마전에는 다른 책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한글을 썼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그러지 않았죠 많지 않아도 한글을 쓴 사람이 있어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네요


희선
 

 

 

 

  치즈 스위트 홈 8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1년 04월 22일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도 고양이 생활을 다 알 수 있을까. 고양이는 집안에서만 지내지 않을 거다. 아니 요즘은 집에서만 지내는 고양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비싼 것도 많으니까. 그래도 집에서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고양이도 있겠지. 치도 처음에는 집 밖에 나오지 못했다. 요헤이네가 전에 살던 집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치는 길에서 주웠지만(그렇다고 길고양이는 아니다, 어미와 떨어진 것뿐이다), 요헤이와 엄마 아빠는 치를 함께 사는 식구로 여기게 되었다. 요헤이네는 치를 키우기 위해, 아니 치와 함께 살기 위해 동물을 기를 수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걸까. 새 집으로 옮기고 치가 돌아다니는 곳은 조금 넓어졌다. 검정 고양이를 다시 만나고, 새 친구 코치를 만났다. 코치는 밖에서 사는 얼룩 고양이다. 치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길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아는 듯하다. 만화 속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흘러가는구나. 현실에서 고양이는 몇달만 지나면 꽤 클 텐데, 치는 여전히 귀여운 새끼 고양이다. 사람인 요헤이도 여전히 어리다. 치는 언제까지나 새끼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땅에 내려온다. 몸이 가벼운 것도 있고 땅에 내려올 때 몸에 충격을 덜 받게 하는 방법이 있는 건지도. 치는 먼지떨이로 청소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놀자고 한다. 먼지떨이가 강아지풀처럼 생겨서 치는 엄마가 놀자고 하는 걸로 생각한 거다. 엄마가 높은 곳 먼지를 털어서 치 발이 닿지 않았다. 치는 이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먼지떨이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치는 계단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고양이든 물건이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아주 짧다. 만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냈을까. 공중으로 뜬 치는 뭐지 하는 모습이었는데, 조금씩 몸을 돌려서 바닥에 사뿐히 네 발을 디딘다. 그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다니. 높은 곳에서 내려온 건 이때만은 아니다. 요헤이, 엄마, 아빠가 치와 놀아주지 않자 치는 공원에서 만난 코치를 생각하고 그곳에 간다. 코치는 공원에 있었다. 치가 같이 놀자고 하니 ‘나는 바빠’ 하고 다른 곳에 가려고 했다. 그런 코치을 멈추게 한 것은 빈 상자였다. 치가 먼저 안에 뭐가 들었나 발로 눌러보니 코치도 똑같이 했다. 둘이 앞발을 집어 넣고 뭔가 있다고 하는데 서로의 앞발이라는 것을 곧 알았다. 둘은 조금 아쉬워했다.

 

공원에서 나온 치와 코치는 어느 집을 지나다 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문양)을 보고 둘이 한번에 들어가려고 했다. 두 마리가 한번에 빠져나갈 만큼 크지 않아서 차례차례 들어갔다. 그전에 코치가 뭔가 무서운 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치는 조금 겁을 먹었다. 치는 자기 발로 밟은 나뭇가지가 부러진 소리에 놀라고 얼굴에 닿은 풀잎에 놀랐다. 둘은 빈 플라스틱 통을 굴려보고, 나뭇잎과 벽 사이로 좁은 하늘을 보고 놀라워했다. 별일 없이 그 집에서 나왔다. 얼마 뒤 개가 나타났다. 치는 겁을 냈는데 코치는 줄에 묶여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사람이 개줄을 놓쳐서 치와 코치한테 달려왔다. 치와 코치는 개한테 쫓겨서 나무로 뛰었는데 치는 조금밖에 못 뛰었다. 코치가 치한테 위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치는 잘 올라가지 못했다. 개가 치를 핥자 깜짝 놀라서 빨리 위로 올라갔다. 조금 뒤 주인이 나타나서 개를 데려갔다. 드디어 치가 높은 곳에 올라갔구나.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만 내려오는 건 어렵다고 한다. 치와 코치도 나뭇가지에서 밑을 보고 어떻게 내려가지 했다. 코치가 먼저 내려오고 치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짧게 말하다니. 사람과 사는 고양이는 자기도 사람으로 생각한다는데 치도 그랬다. 그러면서 코치와 놀다니. 코치는 대체 뭐냐고 치한테 물어보고 싶다.

 

한번은 코치가 치를 바깥으로 불렀다. 우유를 먹다가 치는 바깥으로 나갔다. 코치가 좋은 곳을 찾았다면서 치한테 따라오라고 했다. 그곳은 창고였다. 코치와 치가 그 안에서 놀면서 거기 쌓인 물건을 건드려서 큰 소리가 났다. 그 집 사람이 나와서 코치와 치를 내쫓았다. 치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거기 숨어있었다. 사람이 물건 정리를 하고 문을 닫아서 치는 그곳에 갇혔다. 오랫동안 그 안에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치가 나갈 곳을 찾으려고 물건을 건드려서 또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나타나서 문을 열었다. 사람이 치를 잡으려고 했을 때 치는 요헤이와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 사람을 잘 피했다. 한편 코치는 치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니고, 집에서도 요헤이와 엄마 아빠가 치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그러다 밖으로 나와서 찾아다녔다. 코치와 치가 함께 오는 모습을 요헤이가 보았다. 배가 고픈 치는 집에 가서 우유를 먹어야지 했는데, 엄마 아빠는 치를 씻겼다. 치가 창고 안에서 돌아다녀서 먼지가 묻어서 지저분했다. 먼지 때문에 치는 눈이 안 좋아졌다. 결막염이었다. 동물이 발로 눈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때 고깔 모양을 씌우지 않는가. 치도 그것을 목에 둘렀다. 그거 이름이 엘리자베스 칼라인가보다. 처음 알았다.

 

요즘은 고양이와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만화와 책이 많이 나온다. 이것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치는 새끼 고양이로 요헤이네 식구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다른 고양이와 노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번에도 코치와 놀았구나. 앞으로도 코치와 노는 일이 많이 나올까. 사람이 모르는 일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데 고양이가 정말 이럴까 싶기도 하다. 실제보다 더 귀여우니까. 아니 진짜 새끼 고양이는 귀여울거다. 그 시간이 짧을 뿐이구나. 큰 고양이는 그것대로 사람 마음을 따듯하게 해줄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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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4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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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5 0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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