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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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세번째를 보고 한해가 넘게 지나서야 마지막 네번째를 만났습니다. 책을 다 보고 나서 쓰려고 하니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앞에 세권 보고 어떻게 썼는지 신기합니다. 그때는 이것저것 할 말이 생각났는데, 그건 첫번째를 봤을 때였나봐요. 오래전에 한반도 사람이 왜(일본)에 건너가 문화를 전한 게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이제 그 사람들은 다 일본 사람이지만. 한반도 사람이 왜에 갔지만 그곳에서 살고 그곳 사람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지요. 도래인 자취가 모두 다 사라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런 게 없었다면 이 책 나오기 어려웠겠습니다. 그때는 다른 모습으로 나왔을까요. 지금도 나라와 나라가 영향을 주고받을 테지만 그때는 더 자유롭게 오고 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바다를 건너는 건 힘들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건 좀 쉬웠겠지요. 앞에서 말 조금 잘못했습니다. 나라와 나라를 자유롭게 오고 갔을 거다 한 거 말이에요. 자유로웠겠지만 쉽게 오고 가지는 못했겠네요. 탈 것이 별로 없어서. 나라와 나라를 쉽게 다닐 수 있는 건 지금이죠. 위험한 곳만 빼고 어디든 갈 수 있겠습니다.

 

저는 어디에 다녀오고 그곳 이야기를 하는 책 자주 안 봅니다(그런 책 안 보여서 안 보는 거기도 하네요). 그런 거 보면서 다른 곳이나 다른 나라가 어떤지 아는 것도 좋을 텐데. 지금 사는 이곳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서 잘 안 보는가봐요. 그런 책이 아니어도 현실에서 떠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얼마전에도 거의 같은 말을 했군요). 늘 그런 걸 생각하고 책을 보는 건 아니지만, 무의식으로 할지도 모르죠. 예전에도 한 말인데 이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나오고 스무해가 넘었습니다. 예전에 우연히 첫번째를 보고 재미있게 느끼고 그 뒤에도 좀더 본 것 같기도 한데, 한동안 잊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이야기를 보고 이 책 아직도 나오는구나 했네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책은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고전이 될지도. 지금 나오는 책 가운데 오랫동안 이어질 책은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네요. 문화유산도 그렇군요. 오래전 것이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가 그때 일을 생각하잖아요. 사라진 것도 많겠지만 남을 건 남기도 하겠지요.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10쪽)

 

 

가끔 저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은 하는데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습니다. 역사 공부하는 사람 아니면 늘 역사에 관심 갖기 어렵습니다. 그건 저만 그렇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띄엄띄엄 기회가 오면 역사와 관계있는 책을 보기도 하는군요.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아서 재미있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지만. 거기에 나오는 게 다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심 자주 안 하는데 하는 것처럼 말했네요. 책을 볼 때는 거기에 나온 거 거의 믿습니다. 역사나 역사와 관계있는 책 쓰는 분은 틀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은 틀린 게 나와도 잘 모르고 그대로 받아들일 테니까요. 틀린 걸 모르는 건 공부를 게을리 한 제 탓이겠네요. 보통 사람은 유물 봐도 겉만 보지 그게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그것을 유홍준 같은 분이 가르쳐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문화유산과 이어서 역사를 말하는 책 이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 제가 다른 건 못 만나봤습니다. 사람이 어떤 책을 처음 만나는가도 중요하군요. 제가 예전에 이 책 첫번째 것을 만나지 못했다면 쉽게 이 책 안 봤을 거예요. 지금 제가 이 책 칭찬하는 거군요(《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다예요). 아니 일본편 나왔을 때 처음 알았다 해도 봤을 겁니다.

 

시대마다 지은 절과 별궁, 그 안에 만든 정원을 이야기합니다. 정원, 건축, 역사, 선종, 다도. 책을 보기는 해도 여기 나온 걸 설명하기는 어렵겠네요. 앞에 세권 보고는 책 속에 나온 거 말했는데. 지금까지 일본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는 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로 일본 문화나 역사를 알아본 적 거의 없습니다. 그저 책을 보고 조금 알았습니다. 아는 이름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일본 와비사비 다도를 완성한 센노 리큐 7철 한사람인 후쿠타 오리베뿐이네요. 센노 리큐는 다도 시도 썼습니다. 리큐햐쿠슈(利休百首)라고 합니다. 예전에 후루타 오리베가 중심인 만화영화를 봤는데 거기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센노 리큐가 나왔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거의 다도와 역사 이야기였어요. 잘 봤다면 좋았을 텐데. 일본은 역사 만화도 많이 그립니다. 그런 걸 많이 본 건 아니고 많다는 것만 아는군요.

 

예전에 천황한테 힘이 별로 없었다는 거 잘 몰랐습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나온 데서 천황한테 정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났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무사만이 아니고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말도 한 듯합니다. 지금 민주주의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카모토 료마는 같이 일을 꾸민 사람한테 죽임 당했군요. 그거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에서 역사 잘못 알려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고는 제가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군요. 천황한테 힘이 없어서 천황은 별궁을 짓고 정원을 만들기도 했네요. 일본에는 신이 아주 많기도 합니다. 이건 민간 신앙일까요. 불교가 활발하게 퍼질 때도 있군요. 우리나라에서 팔만대장경을 받아가다니. 아니 조선이 유교사회여서 불교와 관계있는 것을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문화재를 생각하지 못한 때가 있었군요.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갔네요. 조선시대 때도. 일본 지은원에는 고려불화와 조선초기불화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잘 만듭니다. 일본 하면 아주 작은 것이 생각나는데, 작은 것뿐 아니라 아주 큰 것도 있더군요. 극과 극이 함께 있습니다. 아주 화려한 것과 아주 수수한 것도. 저는 정원은 꽃이나 나무를 심은 곳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일본에는 독특한 정원이 있습니다. 마른산수(가레이산스이)라고 하는 거 말이에요. 그건 일본에 선종이 들어오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원을 바라보고 선수행을 하는 거죠. 좋은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 좋아지겠지요. 용안사에는 선정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얀 모래에 줄 같은 게 있어서 저건 사람이 만든 걸까 했습니다. 갈퀴질로 만드는 거더군요. 그건 자주 할지 한달에 한번 할지. 일본 정원은 만들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답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거네요. 저마다 가진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지요.

 

윤동주, 정지용 시비가 교토 도시샤 대학 교정 한쪽에 있군요. 우리나라 사람이 그곳에 가면 반갑겠네요. 고려미술관을 만든 정조문은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지 않았을 때 일본에 갔다면 자신이 남쪽 사람인지 북쪽 사람인지 결정할 수 없겠지요. 정조문은 조선 국적이어서 우리나라에 올 수 없었습니다. 어쩐지 슬프네요. 일본에서 사는 동포들이 자랑스러워하도록 우리나라 미술품을 모아서 미술관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를 위해 애쓴 사람 가운데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 많겠습니다. 아스카, 나라, 교토로 이어져온 일본 문화유산 이야기 이걸로 끝이네요. 문화재는 다른 데도 있을 텐데. 교토에 가장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교토가 수도였던 게 일천년이니까요.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조선도 돈을 썼다면 나았을 텐데요. 십년에 한번이었다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가 앞으로 좀더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한국을 싫어하고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비트는 일본 사람도 있겠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바로잡으려는 일본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더하는 말

 

220쪽, 223쪽 노무라 미술관 한자 잘못 쓰였습니다. 野村(노무라)인데 野田(노다)라고 쓰여있네요. 224쪽에 사진 있습니다. 노다(野田)라고 쓰여있어서 노무라(野村)는 어떻게 쓰더라 했네요. 읽기는 해도 쓰는 건 잘 안 해서 바로 생각나지 않았는데 사진 보고 ‘저렇게 쓰지’ 했습니다. 일본말 쓰기도 가끔 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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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夜行 (文庫)
히가시노 게이고 / 集英社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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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우연히 이 책과 같은 제목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그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았을 것 같다. 그 드라마를 보고 얼마 뒤에 책 《환야》를 봤으니까. 영상을 보고 그것을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 잘 아는 건 아니다. 괜찮을 때도 있고 별로일 때도 있을 뿐이다. 그래도 드라마 <백야행>은 괜찮았다(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는 어땠을까). 그때 바로 책을 안 본 건 드라마가 인상 깊어서였을지도. 이 책을 보면서 드라마 안 봤다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고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하는 것도 있어서다. 책을 본 다음에 드라마 보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책에 없는 게 드라마에는 조금 나오니까. 책이나 드라마 가운데서 하나만 봐도 문제없겠다. 그러면서 나는 시간 차이를 두고 둘을 다 봤구나. 언젠가 책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권으로 나뉘어서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한권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본 히가시노 게이고 책에서 가장 두껍다고 생각했는데, 《환야》도 그리 짧지 않다. 《환야》 읽었지만 생각나는 게 얼마 없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게 좀 생각나면 같이 이야기 해도 좋을 텐데. 하나만 말한다면 둘 다 제목에 ‘밤’이 들어간다. 보통 사람처럼 낮을 살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나쁜 여자.

 

책 《환야》를 보고 그것과 관계있는 글이 없을까 찾아본 적 있다. 아니 그 책 때문은 아니었을지도. 한때 인터넷에서 일본 작가 인터뷰 같은 걸 찾아보았다.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겨볼까 하고. 그것도 있지만 일본 작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때 히가시노 게이고도 찾아봤는데 그게 《환야》와 관계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글 찾기만 하고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환야》가 나왔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가 한 짧은 인터뷰 글은 조금 봤다. 거기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과 ‘환야’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나쁜 여자 이야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스칼렛 같은. 그런데 스칼렛이 그렇게 나쁜가. 스칼렛 알지만 책은 제대로 못 봤다. ebs 라디오 방송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읽을 때 잠깐 들었다. 그걸 듣고 느낀 스칼렛은 자기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깨달았을 때는 늦어버린.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이 책 속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떤 두 사람을 잇는 중요한 실마리다. 드라마를 먼저 안 봤다면 그거 보고 놀랐을지도. 아니 그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건 더 빨리 나왔구나. 어쩐지 이름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 책 맨 뒤에는 두 사람 이름이 쓰여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을 많이 써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까 싶다. 늘 쓸 게 떠오르는가보다. 하나를 쓰면서 거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하고 쓰는 것 같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르는 건가. 내가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 책 가운데서 이건 다른 것과 많이 다르다. 형식이라고 할까, 아니 말하는 방법일까. 마음먹고 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쉽게 썼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도 그 사람 마음은 알기 어렵다. 그저 둘레 사람이 바라보는 것만 나온다(그 사람이 아닌 둘레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는 거 처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건 앞에서 말한 두 사람으로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두 사람이 남 모르게 연락한다는 건 알 수 있을지도, 이건 드라마를 봐서 안 것 같기도 하다. 왜 둘이 그렇게 됐는지는 거의 끝날 때쯤 알 수 있다. 그것도 두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고 여러가지 안 뒤에 형사 사사가키가 생각하는 거다. 다시 생각하니 가끔 아주 작은 실마리를 주기는 한다. 작가가 ‘의심해’ 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일지도.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사람 마음이 착하든 못됐든 좋아할 테니까.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걸까. 이건 선을 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 이야기기도 하다.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은 상대를 좋아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마음이 덜한 듯하다. 아니 아무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 같다. 그러니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하지. 어릴 때 안 좋은 일을 겪었다고 사람이 다 그렇게 될까(예전에 비슷한 이야기 봤구나). 본성이 그런 걸지도. 뇌과학 책을 보니 사람은 엄마 배 속에 생겼을 때 많은 게 정해진다고 한다. 그런 말 봤지만 자라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뇌과학 책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그것을 안 봤다면 자란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됐나보다 생각했을 거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나은 데서 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괜찮아지지 않아서 본성이 그런 걸까 한 거다. 두 사람 일을 누군가 바로 알았다면 많이 달라졌을지도. 형사 사사가키도 오래전에 나쁜 싹을 자르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겼다. 진작에 누군가 알았다면 이런 이야기가 안 됐겠다. 소설은 그런 것을 이야기 해야 하는 건지도. 현실에서는 어떤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때가 많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소설에서 보고 그 길로 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할까. 그것보다 그러지 않아야겠다. 생각할 때가 많구나.

 

뇌과학이 떠올랐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부서지고 한번 부서지면 본래대로 돌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왜 여자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고 하는구나. 남자는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무슨 일이든 했다. 남자는 유령 같은 사람이 되었다. 밝은 곳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남자는 낮에 여자와 손을 잡고 걷고 싶어했는데 여자한테도 그런 마음 있었을까. 자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내버려두지 않는 여자여도 믿고 싶다, R&Y에 담은 마음만은. 모든 게 거짓이어도 그것 하나만은 참된 것이기를 바란다. 그게 아무것도 아니면 남자가 아주 불쌍하잖아.

 

 

해가 뜬 길을 너와 함께 걸을 수 없다 해도

네가 있다면 괜찮아 (R)

 

너 없이 나홀로

하얀 밤길을 걸을 수 있을까 (Y)

 

 

조금 유치해 보이는 말을 했다. 마지막에 여자는 슬퍼했을까. 별로 슬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 겉은 그렇게 보여도 마음속은 울고 있었다고 할지도. 이것은 내 멋대로 생각하는 거구나. 여기에 담긴 시간은 짧지 않다. 열아홉해다. 처음부터 여자 남자가 아니었다. 둘은 여자아이 남자아이였다. 둘이 아이였을 때 가까이에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그저 둘뿐이어서. 이 말은 안 하는 게 나았을지도. 별로 생각나는 거 없는데 더 써야 해 하는 마음으로 썼다. 때는 1973년에서 1992년까지인가. 《환야》는 여기 나온 때보다 뒤다. 여자는 모든 것을 숨기고 《환야》로 넘어간 건지도.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사람이기보다 조금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백야행’과 ‘환야’에 나오는 여자가 바라는 건 같다. 그것으로 정말 괜찮은 걸까.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부서지고 텅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서였을지도. 이렇게 생각하니 여자가 조금 안됐구나. 평범하게 살 수 없었으니 말이다.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앞으로도 죽 그렇게 살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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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78

오다 에이치로

 

 

 

다음 (79)권 나오기 전에 78권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어쩐지 아쉽다. 루피와 동료 그리고 로가 드레스로자에 왔을 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했는데. 아니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어떤 일이 있어서 외다리 장난감 병정과 아주 작은 사람 톤타타 족은 도플라밍고와 싸우려 하는지. 루피와 펑크해저드에서 해적동맹을 맺고 사황에서 하나인 카이도를 끌어내리기 전에 어둠의 세계 중계자 조커가 도플라밍고인 것을 밝히고, 악마의 열매를 만드는 공장을 부수려한 로. 로는 스마일 공장(악마의 열매를 만드는 곳)을 부수어서 악마의 열매를 만들지 못하게 된 도플라밍고가 카이도한테 당하기를 바랐다. 도플라밍고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카이도는 아닌가. 카이도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스릴러바크에서 본 호그백도 카이도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곧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은 로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드레스로자에는 도플라밍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 사람이 있고, 루피와 동료는 그 사람들과 만났다. 자신과 상관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루피와 동료와 만나면 친구나 마찬가지다. 친구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로도 마음을 정한다. 아니 본래 로도 그러고 싶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코라손이 도플라밍고한테 열세해 전에 죽임 당해서다(쓰고 보니 앞에 것 보고 쓴 말이다. 정리라고 할까).

 

도플라밍고는 많은 사람한테 원한을 샀구나. 드레스로자 예전 왕을 비롯해 외다리 병정이었던 콜로세움 전설의 검투사 퀴로스(이 사람 동상 봤을 때 언젠가 나올지도 몰라 했는데 정말 나왔다), 톤타타 족 그리고 장난감이 되어 일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잊어버린 사람들. 로는 이런 일은 몰랐겠지. 드레스로자 사람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도플라밍고 때문에 괴롭지 않았을까 싶다. 평화로운 나라에 무기를 주어서 전쟁이 일어나게 했으니까. 갑자기 도플라밍고가 바라는 건 뭔가 싶다. 전에 한번 나왔다. 세상을 부수는 거였다. 그다음에는, 세계 정복 같은 건가. 아니 이건 아닌 듯하다. 도플라밍고 마음 모르겠다. 만화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남을 괴롭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코라손도 이것과 비슷한 말을 했는데). 도플라밍고는 많은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돈키호테 패밀리 최고간부는 도플라밍고가 왕으로 누구한테도 무릎 꿇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악의 카리스마). 이것도 좀 이상한 생각이기는 하다. 왕은 힘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도플라밍고와 돈키호테 패밀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을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패밀리다 하면서 도플라밍고가 자기 좋을대로 이용한 것 같기도 하다. 도플라밍고 나쁘다 하는 것 같다. 나쁘기는 한데 어쩐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도플라밍고를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면 기뿐 나빠하겠다.

 

콜로세움에서 싸운 사람들은 장난감이 되었다 본래대로 돌아오게 해준 은혜를 갚는다고 루피와 함께 싸워서 차례차례 돈키호테 패밀리 간부를 쓰러뜨렸다. 스마일 공장에서 프랑키는 세뇨르 핑크를 쓰러뜨렸다. 그 뒤 아주 작은 사람은 공장 안을 부수었다. 왕궁앞 해바라기밭에서는 디아만테(돈키호테 패밀리 최고간부)와 퀴로스가 싸웠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어떻게 싸웠는지 설명하기 어렵구나. 퀴로스는 몸을 사리지 않고 디아만테한테 맞서서 싸운다. 다리 하나밖에 없는데도.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고 한 이순신 말이 생각나는구나. 퀴로스는 자기 아내 스칼렛을 죽인 디아만테를 쓰러뜨렸다. 어쩐지 스칼렛도 도와준 것 같다. 조로와 피카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피카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드레스로자 왕은 도피(도플라밍고)밖에 없다고 하면서 리쿠 왕을 죽이려고 했다. 피카는 바위와 하나가 돼서 바위가 있는 곳을 자유롭게 다녔다. 커다랗게 돼서 리쿠 왕과 우솝과 여러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조로는 어떻게 피카를 쓰러뜨릴지 다섯가지를 생각하고 다섯번째를 하기로 했다. 다섯번째는 하늘을 날아서 피카를 베기다.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 피카 쪽으로 날아가서 벴다, 바위를. 그리고 거기에 나온 피카도. 그때 잠깐 매의 눈 미호크가 가르쳐준 것을 생각했다. 전에는 조로가 검을 부러뜨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 없겠다. 검을 패기로 감싸고 싸우기 때문이다.

 

남은 건 셋, 셋에서 하나인 베라미는 루피가 마음먹고 쓰러뜨렸다. 베라미 마음을 알고 그렇게 한 거다. 도플라밍고와 싸우던 로가 죽었다고 했는데 죽지 않았다. 루피가 그곳에 나타났을 때 로는 도플라밍고를 공격했다. 내장이 파괴되는 수술을 했다고, 처음에는 도플라밍고가 괴로워했는데 조금 뒤 괜찮아졌다. 스스로 치료를 했다고 했다. 루피와 도플라밍고가 싸우고 로는 트레볼을 쓰러뜨렸다(트레볼이 쓰러지면서 톤타타 족이 지르던 비명 ‘피갸’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그 소리를 들은 듯한 톤타타 족 레오 모습도 나왔다). 루피는 드디어 새로운 기술 네번째 기어를 썼다. 도플라밍고가 그 모습을 보고 좀 웃었는데, 루피 공격에 맞고 날아갔다. 이번에 싸우는 모습은 어쩐지 무섭기도 하다. 루피를 말하는 건 아니고 로가, 로는 도플라밍고와 싸우다 팔이 잘리기도 했다. 그것은 톤타타 족인 레오가 꿰맸다. 로가 의사니까 팔도 자신이 붙일 수 있겠지 했는데 그것은 어려운가보다. 레오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힘이 있는 사람이 나오기는 한다. 우솝은 슈가가 먹인 타타바바스코 때문에 엄청난 얼굴이 되어 슈가를 기절시켰다. 슈가가 깨어난 것을 알았을 때 칸주로 힘이 도움이 되었다. 앞뒤를 다 생각하고 만화 그리는 거구나. 이야기는 그렇기는 하다.

 

루피가 새로운 기술을 써서 도플라밍고를 공격할 수 있었지만 도플라밍고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악마의 열매 힘은 더 올라갈 수 있는가보다. 도플라밍고는 지금까지 쓰지 않은 힘을 썼다. 아직 루피는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앞에서 아쉽다고 말한 건 이것 때문이다. 언제나 루피 싸움은 길다. 도플라밍고는 더 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지 못해서 아쉽다. 아직 톤타타 족 공주 만셸리한테 도움받지 못했다. 로한테 그 힘 썼을까.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도플라밍고가 드레스로자를 싼 새장은 시간이 흐르니 안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 한시간 뒤면 새장은 드레스로자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잘라서 없앨 거다. 건물 같은 건 그렇다 해도 사람이 거기에 잘리면 엄청 아프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람들은 줄어드는 새장 살을 피해 중심으로 갔다. 리쿠 왕은 루피가 도플라밍고와 싸우는 일을 백성한테 알리고 희망을 갖고 달아나라고 했다.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어서 사람들은 힘을 냈다. 힘이 빠져서 걸을 수 없다고 한 할머니는 리쿠 왕 말을 듣고 손자와 뛰었다. 조로와 긴에몬 칸주로는 새장 살이 줄어드는 걸 멈추려 했다. 이건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알겠다. 새장이 줄어드는 걸 늦추기라도 한다면 루피한테 도움이 될 텐데.

 

쓰다보니 도플라밍고 많이 썼다. 77권 보고 하나 생각났다. 그것은 원피스에서는 자유롭게 사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다. 에이스와 루피는 어렸을 때 사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둘은 바다에 나가 자유롭게 살자고 했다. 사보는 귀족이어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었다. 지금은 괜찮겠지. 옛날에 코라손은 도플라밍고한테 로는 자유롭다 했다. 수술수술 열매 때문에 로를 얽매는 것은 없으니 내버려두라고. 그런 말을 한 코라손도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았을까. 코라손은 도플라밍고가 나쁜 짓하려는 걸 막기 위한 일을 했는데, 진짜 하고 싶은 것도 있었을 것 같다(전에 코라손은 수술수술 열매를 손에 넣고 로 병이 나으면 여기저기 다니자고 했다). 로는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자신은 자유롭지 못하다 하고,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기 위해 지금까지 살았다 했다. 그런……. 어떤 일은 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하겠지. 로는 코라손이 다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라손은 로가 도플라밍고와 상관없이 살기를 바랐을 테지만. 한을 풀기 위한 복수와는 좀 달라보이기도 하는데 어쩌면 똑같은 건지도. 그래도 여기에서는 그 일이 덧없지 않겠다.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구나. 전에는 그저 재미있겠만 봤는데. 아니 어인섬 때는 차별을 생각했다. 역사도. 펑크해저드 때는 인체실험. 세상에는 밝은 것만 있지 않다. 빛이 밝으면 그만큼 어둠도 깊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도 하구나. 그런 것을 잘 알아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하게 해도 원피스 재미있다. 잠깐 관심을 덜 가진 때도 있지만, 볼 수 있을 때까지 보고 싶다. 이 말이 하고 싶었던가보다(전에도 비슷한 말 했는데). 여전히 꿈을 꾸는 루피와 동료와 여러 사람이 있으니 그것을 보는 사람도 꿈꿀 수 있겠지.

 

 

(이달에 79권 나오고 며칠전에 받았다. 몇해 전에 70권 나왔을 때 펑크해저드 편 끝나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못 봤는데, 이번에는 바로 볼 수 있을까. 드레스로자 편 끝나려나보다. 여기에서 싸우고 쓰러뜨린다고 해도 상대가 죽는 건 아니다. 예전에 죽은 사람은 있지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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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한겨레출판  2015년 05월 15일

 

 

 

 

 

 

 

 

 

 

 

 

책을 보기 전부터 무엇을 쓸지 생각했어. 뚜렷하게 생각한 건 아니고, 이 책을 보고 나면 어떤 사물을 말할 수 있겠지 생각했어. 하지만 책을 다 봐도 달리 떠오르는 건 없었어. 이럴 수가. 평소에 내가 사물을 눈여겨 보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아마 거의 그냥 지나쳤겠지. 무엇이든 잘 관찰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렇게 가만히 쓸 때는 그래야겠다 생각하지만 바깥에 나가면 잊어버리고 걷기에 바빠. 꼭 밖에만 사물이 있는 건 아닌데. 여기에 실린 글에도 집에서 보고 쓰는 사물도 있어. 자신이 쓰는 것, 다른 사람이 쓰는 것. 사물을 보고 떠올린 생각을 시로 쓰기도 하는가봐. 여기에 글을 쓴 사람은 다 시인이야. 추억이 많은 듯해. 부모님 이야기도 있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이야기도 해. 때론 모르는 사람도 말해. 사물은 그저 사물로만 있는 건 아니군. 사람이 쓰고 보기도 하니 사람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사물은 생각할까, 사람이 쓰고 생각하면 마음을 갖게 될까. 별 생각을 다 했군.

 

 

 

공중전화

 

 

나는 전화하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말을 잘 못해서 그런 것도 있고,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할 말이 없어서 전화를 안 하는 거군. 내가 전화를 아주 안 한 건 아니야. 먼저 할 말을 생각하고 전화했어. 공중전화를 자주 쓴 건 아니지만. 우리 집에 전화가 생긴 건 언제였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집에 전화 없었어. 셋방에서 살 때도 있었으니까. 전화가 없어서 공중전화를 썼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야.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길에 공중전화 있어. 예전에는 전화를 쓰고 있으면 뒤에서 다른 사람이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공중전화 쓰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사람이 쓰러 오지 않아서 공중전화가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지금은 공중전화보다 휴대전화기를 쓰지. 집 전화도 쓰지 않는 사람 많을 것 같아. 우리 집에는 아직 전화 있어. 내가 누군가한테 공중전화로 연락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군. 멀리 떨어진 사람한테 전화할 때는 동전을 준비해서 했다고도 하더군. 이제는 그런 낭만은 없겠군.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이 가지 않기를 바란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그런 일도 있고, 할 말만 짧게 하기도 했겠어.

 

공일오비 노래 <텅빈 거리에서>에 나오는 공중전화요금 얼마인지 알아. 이십원이야. 그런 때도 있었다니, 그걸 나도 알다니. 공중전화요금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어. 아직 칠십원일걸.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겠군. 전에는 3분이 기본이었는데. 이것도 바뀌지 않았겠지. 시간이 흐르고 바뀌는 것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겠지. 아직 길에서 공중전화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나처럼 휴대전화기 없는 사람도 있으니 공중전화 조금이라도 있어야 해. 전화할 일은 없지만 갑자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며칠 지나고 공중전화가 나오는 꿈 꿨어.

 

 

 

우체통

 

 

지금 많이 보이지 않는 것에는 뭐가 또 있을까. ‘빨간 우체통’이지. 이렇게 말했지만 내 눈에는 우체통 많이 보여. 몇해 만에 우체통 색칠도 새로 했더군. 처음에는 우체국 앞 우체통만 칠했구나 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다른 곳 우체통도 새로 칠했더군. 하루에 다 칠하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서 칠했는가봐. 얼마전에 우체통에 편지가 얼마 없으면 그 우체통 없앤다는 글을 봤어. 지금까지 내가 본 우체통 가운데 없어진 건 아직 없어. 내가 편지 넣는 우체통은 하나지만. 그 우체통은 나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지도. 나만 편지 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군. 지금은 편지가 줄어서 일자리를 잃은 집배원도 많대. 이건 택배를 보내주는 곳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어. 그래도 편지는 우체국에서 보내거나 우체통에 넣어야 제맛이 나. 예전에는 빠른우편도 있었는데. 그게 있었다 해도 나는 거의 보통으로 보냈어. 시간이 걸려서 가는 게 더 좋잖아. 가끔 생각보다 많이 걸릴 때도 있지만. 편지가 가거나 나한테 오기까지 보통 나흘 걸리는데 이것보다 더 걸릴 때도 있더라구. 편지 줄었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군.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해야겠어.

 

공중전화, 우체통은 다 기다리는 거군. 우체통은 자기 안에 편지가 자주 떨어지지 않아서 쓸쓸해할 것 같아. 그러다 그 자리를 아예 떠나야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기다리는 마음 내가 잘 알지. 나도 늘 기다리니까. 아니 나만 기다리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우체통 하나라도 더 남게 편지 써서 넣어보는 건 어때. 편지 우체통에 처음 넣어보는 사람은 그것을 정말 가져갈까 할지도. 우체통에는 편지 거두어가는 시간도 적혀있어. 그 시간보다 좀더 빨리 넣으면 편지 가져갈거야. 편지 보내려고 우체통에 자주 넣어도 잘 갈까 하는 걱정 여전히 해. 그저 잘 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고 거의 잘 가.

 

(편지 받는 꿈 꿨어. 나한테는 편지가 한통 오고, 다른 사람한테는 편지가 아주 많이 왔어. 편지함에서 꺼내도 꺼내도 자꾸 나왔어. 나한테 편지 한통이라도 와서 좋았어.)

 

 

 

푸른 곰팡이

──산책시 1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푸른이 맞을까, 파란이라 해야 할 것 같지만 푸를 때도 있고 파랄 때도 있는 듯...)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사물을 말했군. 아니 하나 있어. 공중전화와 우체통은 사람을 기다린다는 거. 사물과 사람한테는 서로가 있어야 해. 이렇게 말하니 앞으로 사물이 하는 말 잘 듣고 싶기도 하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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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10-05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중전화와 우체통,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점도 그렇고...이제는 예전보다 찾는 이들이 적어졌다는 점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짜 저는 공중전화를 사용해 본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동전을 넣는 전화기이든, 혹은 카드를 넣는 전화기이든 말이죠. 공중전화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공중전화에서 긴줄 서던 기억이 항상 나요. 삐삐 시대에 말이죠. (나이가 나오나요?) 그 때 학교 셔틀버스 타는 데 앞에 공중전화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줄이 항상 정말 길었어요. 하도 줄이 길어서 줄을 설 때면 으레 책을 한 권 손에 들고 기다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어요. 그 당시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용케 기다렸구나 하고 말이죠. 요즘 같은 시대에 몇 분만 통화 안되도 답답해 하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삐삐 보내고 그렇게 한참 있다가 통화하고 그런게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희선 2015-10-07 02:23   좋아요 0 | URL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잘 했는데... 아직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한동안 그 일을 하겠죠 저는 공중전화 보기는 해도 쓰는 일은 거의 없네요 예전에도 그랬고...

예전에 공중전화카드 돈 조금 든 게 있었는데 그것도 다 못 썼어요 돈 조금 남았는데 예전에 넣어보니 안 나오더군요 남은 거 다 쓸걸 하는 생각이... 그곳에는 공중전화가 하나밖에 없었나보네요 그렇게 길게 줄을 섰다니... 그런 모습 아주 못 본 건 아니군요 기다렸다가 쓰기도 하다니, 예전에는 잘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듯하네요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군요 은행에서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 많아요 저는 일부러 기다리기도 하는데, 기다리지 말고 기계로 하라고 하거나 다른 창구에서 받기도 합니다(공과금, 거의 제가 우체국에 내러 갑니다) 사람 대하는 거 안 좋아해도 우체국에서 기계로 하는 것은 별로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도 그랬는데, 이제는 기계로 빌리고 돌려줍니다 사람보다 기계를 상대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은행 통장 없어진다는 말도 있던데... 좀 빠른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 이야기가 나와서 이런 말을 했네요


희선
 

 

 

헤세 좋아하세요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이승원 사진

  arte(아르테)  2015년 05월 10일

 

 

 

 

 

 

 

 

 

 

 

 

 

부디 헤세를 ‘허세’로 잘못 보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헤세는 소설, 시, 동화 거기에 수채화를 그린 헤르만 헤세예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도 헤르만 헤세 이름 알고 소설 몇권 봤지만 다른 건 잘 모릅니다. 시와 동화도 쓴 건 언제 알았는지 모르겠고, 그림(수채화)까지 그렸다는 건 한두해 전에 안 듯합니다. 그러고서 헤세가 그림도 그렸구나 했습니다.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은 벌써 알고 있었을 텐데. 헤세가 그림을 그린 건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는 게 우울증인 사람한테 다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면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그리는 일에만 집중하겠지요. 저는 그림은 안 될 듯합니다. 우을증이 더 심해질지도. 왜냐하면 그림 잘 못 그리니까요. 헤세는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와 상관없이 그리는 일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저도 아주 어렸을 때는 아무렇게나 그림 그렸을지도 모를 텐데, 언제부터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제가 그린 그림 남한테 보이기 싫었고 글짓기 시간에 쓴 글도 남한테 보이기 싫었습니다. 지금은 글 못 써도 여러 사람이 보게 하는군요. 글이라고 말하기 조금 어렵지만. 제가 그림보다 글로 나타내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네요. 그래도 그림, 글 다 잘하는 사람 보면 부럽습니다. 헤세도 그렇군요.

 

저는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책도 없습니다. 좋게 여겨서 그때그때 보는 건 있지만. 글에는 관심 가져도 작가한테는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는군요. 정여울은 헤세를 좋아해서 책을 여러 번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썼군요. 정여울은 헤세가 나고 자란 독일 남부 칼프와 헤세가 40년 동안 살다 죽은 스위스 몬타뇰라에 갔습니다. 두 곳 다 조용한 곳입니다. 칼프와 몬타뇰라에는 헤세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나치 시절에는 독일에서 헤세 책을 낼 수 없었는데, 지금은 독일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사람이라 합니다. 헤세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느 나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더군요. 누군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살면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하는데, 헤세는 민족과 나라에서 자유로웠군요. 그래도 독일에 서운함을 느꼈겠지요. 헤세는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이것을 안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군요. 《싯다르타》가 그냥 쓰인 소설이 아니군요. 몬타뇰라에서 세번째 아내 니논과 살 때는 헤세보다 니논이 여기저기 다녔다고 하네요. 그때 헤세는 첫번째 아내 마음을 조금 알았을 것 같습니다.

 

헤세는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 편지를 쓰면서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큰돈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는군요. 헤세 소설을 읽고 헤세한테 편지를 쓰면 답장을 썼다고 합니다. 지금 작가 가운데 헤세처럼 하는 사람 얼마나 될까요. 지금은 보통 사람도 편지 잘 쓰지 않는군요. 저는 아직 씁니다(이 말을 또 하다니,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헤세는 식구들한테도 편지를 썼다고 하네요. 헤세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좋아한 것은 뜰 가꾸기예요. 자연과 함께 하는 게 마음을 좋게 해주었겠지요. 넓은 뜰을 가꾸고 동화책 그림 그린 타샤 튜더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사람은 뜰을 가꾸고 텃밭을 일굴 듯합니다. 어쩌면 헤세가 가꾼 뜰에도 열매 맺는 나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헤세가 뜰에 씨 뿌리고 과일과 채소를 거두어들이기도 했군요. 헤세는 한때 포도 농사로 먹고 살기도 했습니다. 제가 뜰 가꾸기라고 했는데 헤세가 한 건 농사였네요. 땅에 마음을 쓰고 채소와 과일을 거두어들이는 일은 또 다른 기쁨이었겠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군요.

 

앞에서 헤세가 쓴 소설 몇권 봤다고 했는데 오래전에 봐서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무엇무엇을 봤는지도.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저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봤네요) 《싯다르타》는 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헤세가 쓴 동화도 봤네요. 전에는 몰랐는데 정여울이 쓴 글을 보니 헤세가 쓴 소설 공통점이 있더군요(어쩌면 이건 예전에 알았을지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만나서 친구가 되는. 두 사람이지만 그건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한테는 여러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세가 만들어낸 인물은 한쪽으로 치우친 듯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 관계는 영혼의 동반자예요. 한쪽으로 치우친 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 균형을 잡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것을 이룬 적도 있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헤세는 융이 말한 것을 소설에 나타내려 했답니다. 융을 알면 헤세가 쓴 글 좀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소설 이야기를 보면서 소설에 나온 것 같은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이 실제 있을까 했습니다. 한 사람을 둘로 나눈 것 같지만 있겠지요, 지음이라는 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혼의 동반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헤세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파고든 듯합니다. 저도 저를 알기 위해 애써야겠습니다.

 

 

 

 

☆―

 

살아있다는 것은 쓸쓸하다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모두 다 혼자다.  <안개 속에서> (33쪽)

 

 

진정한 나다움의 실체를 깨닫는 것, 그것이 개성화라면, 개성화의 절정은 자기 안에 잠자는 알 수 없는 힘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엄청난 힘을 깨닫는 일. 그리하여 아무도 함부로 자신을 상처주거나 자신의 영혼을 부술 수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는 일. 그 깨달음의 순간 개성화는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자기 안의 엄청난 힘을 깨달으면 어떻게, 어디에, 무엇을 위해 써야 할지 생각한다. 힘을 깨닫는 것만으로 개성화가 완성될 수 있다.  (178쪽)

 

 

“나도 누구 도움을 받은 적 없어.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어. 만일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를 찾을 수 없다면 어떤 것도 네 진짜 모습을 찾아낼 수 없어.”  (《데미안》에 나오는 말, 231쪽)

 

 

 

 

 

 

 

오래전 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辺境・近境 (1998)

  무라카미 하루키   김진욱 옮김

  문학사상  2015년 03월 26일

 

 

 

 

 

 

 

 

 

 

 

 

이 책은 1999년에 나온 것을 다시 낸 것이다. 그때는 책이 어땠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9년에도 우리나라 사람이 잘 알았을까.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1999년에는 모르고 2000년이 지나고 알았을 것 같다. 알고 나서 이런저런 책을 보았다. 그렇게 본 건 무라카미 하루키 글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니었을지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아서 책을 여러 권 사기도 했다. 도서관에 다니면서는 책 오면 빌려보았다. 잘 보고 다 본 건 아니다. 모르는데도 그냥 본 것 같다. 어느 때부턴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잘 안 보게 되고 몇해가 지난 뒤 산문으로 다시 만났다. 어쩌면 소설 《1Q84》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소설 나온 것을 알았을 때 여전히 소설을 쓰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인터넷을 써서 많은 사람이 《1Q84》 이야기하는 걸 알았다. 오랜만에 한번 볼까 했을지도. 이렇게 생각하니 무라카미 안 지 오래되었구나. 우리나라 소설가 가운데서 오래 안 사람은 누굴까. 오래 알았다고 해도 지금까지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없어서일까.

 

산문을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 좀 재미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한 듯하다. 글을 재미있게 쓴다고 그 사람도 재미있는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열심히라고 할 수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산문을 조금 찾아보기도 했다. 그건 또 느낌이 달랐다. 달리기 하는 이야기와 다른 나라에서 살았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니 이 책 분위기와 비슷했다. 재미있게 본 건 ‘무라카미 라디오’다. 그건 여성잡지에 실린 글이어서였을까(여성잡지에 실린 글 맞던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와 어딘가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안 건 언제일까. 소설 보고 안 건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에서 본 적 있을 테니까. 그런 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꼭 기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좋아하지 않아도 조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책(소설)을 봐도 작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도 생각해야겠다 생각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글속에 작가가 있는지 없는지. 아니 소설에서 작가를 보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많이 드러난 게 있어도 내가 그것을 모르는 것일지도.

 

책이 나온 때(일본에서는 1998년에 나왔다)도 사람들이 쉽게 여기저기 다녔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하다 갑자기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그것을 글로 써서 책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여행작가라는 것도 있던가. 이렇게 말하는 나는 여행기 잘 안 본다. 그것도 관심이 있어야 보는 거지. 어렸을 때 소풍가기 전날 들뜨기도 한 걸 보면 어딘가에 가는 거 아주 싫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먼 곳에 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힘드니까. 벗어나고 싶은 일상도 없다. 좋아서 그런 건가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좋지 않다. 책을 보는 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은 일상이 있는 사람이 더 나은 건지도. 어딘가에 가려면 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힘도 없구나.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많은 사람이 떠나는 걸 좋아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여행기 보고 이런 말을 하다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는 여행은 소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소설에 쓴 곳에 가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도 다른 곳에 다니면서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기 쓰는 게 소설 쓰기에 도움 된다고 한다.

 

하루키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안에 여행기가 많았다. 그 말 보고 그걸 봐서 어딘가에 가는 걸 좋아하나 했다. 책을 보고 그곳에 간 듯한 느낌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 그곳에 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가 많이 사는 이스트햄프턴은 글쓰는 사람한테 성지라고 한다. 그곳에는 작가만 사는 게 아니다. 돈 많이 번 사람이 집을 사두고 쉬러 다녔다. 땅값이 비싸단다. 하루키는 사람이 없는 까마귀 섬에서 보내기도 했다(여기는 일본이다). 처음에는 며칠 지낼 생각이었는데 낚시도 헤엄도 칠 수 없고 밤에는 벌레가 엄청나게 나왔다. 겨우 하룻밤만 지냈다. 사람 없는 섬은 조용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그저 사람이 바라는 것일 뿐이구나. 사람이 없는 곳은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인이다. 아니 사람이 주인인 곳은 어디에도 없겠다. 사람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하루키가 멕시코는 한달 동안이나 다녔는데 버스에서 노래를 엄청 크게 틀어둬서 본래 들으려 한 음악은 듣지 못했다. 멕시코에서는 물건이 자꾸 없어졌다. 일본 시코쿠의 가가와 현에서는 우동을 먹는 여행을 하고, 노몬한 전투가 있었던 곳에 가서는 일본을 생각했다. 그곳에는 전쟁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아메리카 땅은 차를 타고 가로질렀다. 그런 것도 다 하다니. 마지막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걷고 쓴 글이다. 니시노미야에서 고베 산노미야까지. 큰지진이 일어나고 두해가 지나 때였다. 자신이 살던 때와 바뀐 모습을 보고 아쉬워했다.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도 하지만 그곳은 지진 때문에 바뀐 것이었다.

 

떠나는 건 돌아오기 위해서다.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길 위에서 사는 사람.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한테 돌아오는 게 더 좋을 텐데. 책을 볼 때도 거기에 푹 빠져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다른 것보다 책속으로 떠났다 잘 돌아오고 싶다.

 

 

 

희선

 

 

 

 

☆―

 

그때그때 눈앞 모든 풍경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려 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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