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는 역사가 조금 나오기도 한다. 덧붙이는 말(주)이 꽤 긴 것도 있다. 본문보다 그게 더 길 때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흑인 이야기(이것만 말하다니). 그렇다고 아주 자세한 건 아니다. 거기에 관심 있다면 여기에서 소개하는 책을 봐도 괜찮겠다. 나는 그냥 넘어갔지만.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한 게 있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 두번째는 넓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음악만 다루고 거기에 담긴 여성을 말하니까. 여성이라고 했지만 여성만 말하는 건 아니다. 이 말 밑에도 쓴 것 같다.

 

 

 

 

 

음악으로 말하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돌베개  2015년 06월 29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 아닐까 싶다. 노랫말이 있는 건 어렵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느낌은 조금 알 수 있겠지. 그렇기는 해도 나도 우리나라 노래를 더 많이 듣기는 했다. 내가 아는 다른 나라 음악 얼마 없다. 라디오 방송(음악캠프)은 오래 들었는데, 음악은 외워도 제목은 잘 외우지 않았다(지금도). 라디오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관심 갖고 CD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CD 산 지도 오래되었다. 한동안은 일본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넓게 들은 건 아니고 듣는 것만 들었다. 아직도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말로 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전에 한번인가 들은 적 있는데. 왜 이 말로 흘렀을까. 다른 책에서 일본 문화 개방이 나온 걸 봐서 그럴지도. 그거 보고 그런 일도 있었지 했다. 이 책 마지막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노래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조금 영향이 있는 거겠지. 지금은 텔레비전 안 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턴가 아이돌 음악만 나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전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오래 가는구나.

 

이 책을 쓴 강헌은 대중음악 평론가다. 그런 말 본 것 같기도 한데. 책은 이게 처음이라고 한다. 잡지 같은 데도 글쓰지 않았을까. 그런 건 썼을 것 같은데. 책 제목을 보고 음악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책 제목 처음 봤을 때 무슨 책일까 했다. 음악과 함께 역사를 말한다. 긴 역사는 아니고 어떤 음악이 나온 배경이라고 할까. 그것을 참 자세하게 썼다(이건 주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이런 건 볼 때는 재미있는데 정리하는 건 어렵다. 여러 번 보고 익숙해지면 모를까. 내가 책 한권을 여러 번 본 적 있던가, 없다. 미국 재즈에서 로큰롤, 우리나라 통기타 음악과 밴드 음악, 클래식에서 이름을 남긴 모차르트 베토벤,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의 음모. 트럼펫을 연주하고 노래를 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한 루이 암스트롱,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 나온 노래가 루이 암스트롱 노래던가. 재즈는 규칙이 없는 음악이다. 재즈가 미국에서 널리 퍼진 건 30년 동안이고 그 뒤에는 예술로 흘러갔다. 미국에 중산층이 나타나고 아이들 세상은 지옥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지. 이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와서 어른 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뒤에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나왔다. 비틀스는 처음에 어른 마음에 들게 하려고 옷을 얌전하게 입었다. 롤링 스톤스는 비틀스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불량스럽게 나왔다. 비틀스가 언제까지고 모범생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본성을 드러냈다. 매니저가 죽고는 비틀스는 흩어졌다. 매니저가 약물에 중독되지 않고 살았다면 비틀스 음악은 더 나왔을까.

 

맨 처음에 말하는 건 흑인이 하는 음악을 백인이 좋아하고 나중에는 백인이 하는 건데. 이런 말을 안 하다니. 미국에서 저항 음악이 로큰롤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통기타 음악이었다. 로큰롤은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는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번안곡을 많이 했다. 1969년에 한대수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곡을 썼다. 김민기가 만든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불렀다. 김민기는 다른 생각없이 만들었는데 <아침이슬>은 운동권 노래가 되었다. 지금도 어떤 노래든 다 방송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검열이 더 심했다. 이건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온 거였다. 그럴 수가. 박정희는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노랫말도 써서 그것을 퍼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게 보이지만 그게 우리나라 사람한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친일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건 이승만과 박정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신중현이다. 신중현은 미8군 부대에서 음악을 했다. 록밴드를 했는데 그게 잘 안 되고 다른 사람한테 준 음악이 잘 되었다. 밴드로 한 음악 가운데 잘된 거 있다. <미인>이다. 강헌은 이 <미인>을 우리나라 사람이 왜 좋아하는지 재미있게 분석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야기도 재미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샘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 음악 만들고 지금도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나름대로 잘 살지 않았을까 했는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더 힘들었다. 모차르트보다 열네해 늦게 태어난 베토벤은 좀 나았다. 베토벤은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 힘들었다. 베토벤 성격이 별로 안 좋았다니.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맞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반감을 가졌다. 베토벤은 귀족만 듣는 음악이 아닌 곡을 썼다. 이렇게밖에 못 쓰다니. 나도 조선이 근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본 때문에 그게 잘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명성황후는 일본한테 죽임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청나라를 부른 게 조선정부라고만 알았는데 그게 명성황후였다는 말이 나온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서 일본에서 군대를 조선에 보냈다. 힘을 가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익보다 먼저 백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잠깐 들었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 꾸민 일이라니.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기로 했다는 말을 보고, 아내가 있다고 다른 여자와 죽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는 그런 게 퍼지기도 했다지만. 정말 축음기를 팔기 위해 그 일을 꾸몄을까. 그때 축음기는 일본 정부가 만들었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에 담긴 건, 일본 지배를 받고 서른해가 지나서 나온 노래로 우리나라 사람한테 엔카를 익숙하게 만든 거다. 트로트가 엔카에서 온 게 아니다 말하기도 한다는 말을 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니까. 일제강점기 때 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거 많을 것 같다.

 

 

 

*더하는 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글을 다른 데서 조금 봤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듯한 느낌이다. 청나라 군대는 일본 군대와 싸운 건가. 일본과 청이 조선을 두고 싸운 것이 청일전쟁이구나. 일본과 조선 관군은 농민과 싸우고. 동학농민혁명은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 농민만이 아니고 다른 계층 사람도 함께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하다(동학을 한 사람은 농민이 아니었을지도). 농민한테 관심을 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농민은 이 땅을 살아가는 백성인데.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바뀌고

 

 

  이영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4년 12월 31일

 

 

 

 

 

 

 

 

 

 

 

 

 

대중음악은 언제부터 생겼다고 해야 할까.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높은 사람뿐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그랬지만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은 낮잡아 보았다. 그래도 서양은 잘 하면 잘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중음악은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때 생겨났다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서민이 음악을 아주 몰랐던 건 아닐 거다. 그건 지역마다 달랐겠지(이때 생각한 건 민요, 풍물놀이가 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음악은 널리 퍼지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조금씩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이야기도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 조금씩 바뀌는데(지금은 정보 전달이 쉬워서 다르겠다). 이 책 제목에 ‘대중가요’라는 말이 있는 걸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보다 먼저 본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때문에 ‘가요’라는 말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먼저 본 게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 거기에서 가요 대신 어떤 말을 쓰면 괜찮은지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대중음악이었는지, 유행가였는지. 가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국민가요’라는 말을 쓰고 여기에서 국민만 빼고 가요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 하니 국민학교가 생각난다. 일본은 소학교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학교라고 하다니. 우리도 소학교라고 한 때가 있었을지도. 국민학교는 이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것들을 그대로 쓰는 거 많겠지. 가요는 바뀌기 어려울지도.

 

축음기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 기생 두 사람이 <희망가>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첫번째라 할 수 있는 건 윤심덕의 <사의 찬미>다. 대중음악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여성인데. 일본 엔카가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가 되고 그 첫번째가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음반극이라는 것도 나왔는데 거기에 나온 여성은 기생일 때가 많았다. 음반극이라는 말을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는 그것과 비슷한 게 아직도 나온다는 게 생각났다. 오디오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본에서는 만화나 소설을 성우가 연기한 CD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음반극이 그렇게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일본에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있어서 만드는 건지도. 우리나라에도 성우가 연기한 CD 나올까(우리나라 연기자 백 사람이 우리 단편소설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건 CD로 나왔을까. 책을 그냥 읽는 게 아니고 연기한다). 내가 잘 모르는 것뿐일지도. 그때 기생인 사람이 많아서 기생이 나온 건 아니고 신파성을 나타내기에 기생을 쓰는 게 쉬웠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은 일본을 지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고 느꼈다. 영어도 일본말식으로 알았다. 그때 우라나라 사람이 공부하러 간 곳이 일본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겠다.

 

대중음악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고 그때 사회가 어땠는지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기생이 된 사람이 많았던가보다. 일본도 가난이나 빚 때문에 딸을 기생(게이샤)으로 팔 때 많았는데. 그런 일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일어나도 가난해도 여성은 살기 어렵구나. 시간이 흐르고 공부를 한 신여성이 나타나 여성은 경리, 마네킹 걸, 전화교환수를 하게 되었다. 교사, 간호사도 있었겠지만 노래에는 나오지 않았구나. 그전까지 여성은 떠나가는 남성을 보고 울기만 하고 자기 마음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는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했는데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일제강점기 때 노래를 조금 바꿔서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과 6·25를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남편이 죽은 여자가 많았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아이를 키우고 살기 위해 양공주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가정의 경영자로서 현모양처를 바랐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1960년대까지 남성이 바라는 여성이 노래에 담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것도 있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는지 그것을 잘 잡아내서 썼겠지. 1970년대에는 순수한 여성을 바랐다. 백치미라고 할까. 그런데 청바지와 긴 생머리거나 짧은 머리를 한 여성도 나타났다. 이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첫세대였다. 1970년대에는 어머니한테 느끼는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 뒤에도 어머니한테 잘못했다고 한 노래 있는 것 같은데. 1970년대에는 많은 사람이 서울로 갔다. 거기에는 여성도 많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서울에 가면 모두 부자가 된다 생각했을지도. 이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했다. 우리나라가 좀 잘사는 사라에 들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은 일 많이 한다. 일이 좋아서 많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1970년대 대중음악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겠지. 민중음악이라고 할까 그런 게 생겨난 건 1970년대일까. 1980년대는 남자가 여린 감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90~2000년대에는 또 바뀐다. 그때는 음반이 잘되게 하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잡아내서 노래를 만들었다. 음악을 만든 건 남성이고 노래하는 건 여성이었다. 그전에 아주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1990년대에는 음악을 만드는 여성이 나타났다. 여자가 노래한다고 여자 마음이고 남자가 노래한다고 남자 마음일까. 엄마 인상도 많이 바뀌었다. 말 잘 듣는 아이보다 반항하는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엄마 관심은 그 아이한테만 쏠릴 거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많은 사람이 듣는 음악에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니 재미있다. 여성뿐 아니라 다른 주제로도 볼 수 있을 거다. 일제강점기를 지날 때는 돈 이야기가 나오고, 1970년대에는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꿈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중음악도 산업화 때문에 많이 바뀌었겠지. 많은 사람이 아는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도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거 찾아서 듣는 거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더하는 말

 

다른 말보다 늘 더하다니, 하지 않아도 될 말일지도 모를 텐데. 이 책 제목 보고는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하고 봤다. 이 책도 《전복과 반전의 순간》처럼 볼 때는 재미있었다. 연대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그걸 잘 기억하지 못해서 별로 못 썼다. 보기를 하나라도 써야 했는데. 노래도 시대와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바뀌겠지. 한동안 남성이 바라는 여성을 노래에 많이 담았다. 지금은 음악이나 노랫말을 쓰는 여성이 늘어나서 좀 달라졌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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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者のための音樂 (角川文庫) (單行本)
山白朝子 / メディアファクトリ-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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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

야마시로 아사코(오츠이치)

 

 

 

여기 실린 이야기들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괴담(괴상한 이야기) 기담(이상야릇하고 재미나는 이야기). 괴담과 기담 뜻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괴담은 좀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도 이 안에 있습니다. 괴담과 기담이 섞여있다고 하면 괜찮겠네요. 저는 이런 이야기로 말하려고 하는 게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사회 현상 때문에 생기고 퍼지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아이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 어른이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네요. 그런 것은 옛날에만 그랬을까요, 지금은 그런 일 없을까요.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별로 만나지 못하고 만났다 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 되고 그 안에서 무슨 뜻을 꼭 찾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책을 보면 작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합니다. 작가 가운데는 이 이야기 안에 중요한 걸 담겠어 하고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글(이야기)을 많이 써 본 건 아니지만, 써 보니 첫번째 생각보다 거의 두번째 생각으로 바뀌었네요. 이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떠오르는 게 없어서 거의 못 쓰지만. 어쩌면 이건 제가 이야기를 잘 읽어내지 못해서 하는 변명인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이 작기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잘 모르지만. 전에도 한번 이 작가 책 만났습니다. 길을 떠나면 길을 잃고 여행책을 쓰는 작가 이즈미 로안이 나오는 《엠브리오 기담》입니다. 그 책을 봐서 이 책 보고 싶다 생각한 겁니다. 아쉽게도 여기에는 이즈미 로안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즈미 로안이 한번쯤 가 봤을 것 같은 곳에서 온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했네요. 이 작가 본래 이름은 아다치 히로타카로 제가 조금 본 책은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썼습니다(전에도 말했군요). 이 책을 보니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쓴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진짜 알 수 없었던 건 《ZOO》인데. 그건 지금 봐도 그럴 듯합니다. 거기에 단편이 실렸는데, 그 가운데서 한편은 여러 사람이 누군가한테 잡히고 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곳에 갇힙니다. 하루에 한 사람씩 죽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가둔 사람이 죽이는 거겠지요. 방이 여럿이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요. 이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누나와 남동생이 잡히고 갇혔기 때문입니다. 방 옆에는 물이 내려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몸집 작은 남동생은 그곳을 지나서 다른 방에 갇힌 사람을 만납니다. 남매 방 차례가 왔을 때 누나가 둘을 가둔 사람을 막고 남동생이 그곳에서 빠져나가게 합니다. 이 이야기 생각하니 여기에 나온 <도깨비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여기에서는 남동생이 누나와 마을 사람을 위해 도깨비를 다른 곳으로 이끌지만.

 

작가 이야기하다 다른 말을 했네요. 더할 말은 없습니다. <도깨비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무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도깨비가 나타난 일을 벌받는 거다고 했네요. 그 마을 사람들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 갑옷과 검을 팔아서 돈을 얻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모여 도깨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 있었군요. 제목은 잊었지만. “남한테 친절함을 베풀렴. 약한 사람을 못 본 척하면 안 돼. 저주받은 이 땅이 바뀌려면 그것 말고는 분명 아무것도 없어.” (125쪽)와 같은 말을 할아버지 어머니가 했습니다. 증조할머니네요. 남매는 쌍둥이로 남동생은 자신이 괴롭힘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증조할머니 말을 실천한 게 남동생이 아닐지. 다른 사람을 위해 경을 읽고 다녀도 강도한테 죽임 당하기도 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이 나쁜 거네요. 맨 처음 이야기 <긴 여행의 시작>은 아버지와 딸에서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가 되는데, 그건 딸을 생각한 아버지 때문일까요(아버지는 강도한테 죽임 당하고 딸은 그곳에서 달아났는데, 얼마 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압니다. 딸한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강도가 아버지를 죽인 칼에 찔렸을 뿐입니다. 낳은 아이는 아버지와 많이 닮고 여러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물을 내려가다>는 진짜 우물 밑을 내려가서 살게 된 사람 이야기예요. 남자는 죽을 때가 다가와서 자신이 왜 그런 곳에서 사는지 자기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는 건지도. 아니 자신보다 아이들이 왜 어둠속에서 살게 됐는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산 건 사랑 때문이고, 아이들이 언젠가 해가 뜨는 곳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자기 이야기를 한 것도 사랑 때문이네요.

 

다음에 나오는 <황금 공장>은 어쩐지 무섭기도 하네요. 공장이 커다란 벌레라는 것처럼 말하거든요. 마을 공장(산업폐기물 처리장)에서 공장 사람 모르게 한 곳에서 정화되지 않은 액체가 숲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곤충이나 살아있는 것이 황금이 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자 황금이 됐던 곤충이 본래대로 돌아와요. 벌레나 작은 동물만 황금이 된 건 아니예요. 황금이 된 곤충을 처음 본 남자아이 엄마는 바람 피우는 남편과 상대 여자를 꾀어내어 황금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 황금을 조각냅니다. 황금에서 본래대로 돌아온 걸 생각하면 끔찍하지요. 많은 사람이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액체 때문에 살아있는 게 황금이 된다는 걸 알았다면 큰 소동이 일어났겠습니다. <끝내지 못한 조각>에도 신기한 여자아이가 나오는군요. 여자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갚기 위해 불상 만들기를 배우려 합니다. 여자아이가 조각한 것은 진짜처럼 움직였습니다.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여자아이는 석가여래상을 조각합니다. 조금만 하면 끝나는데 그만 죽습니다. 여자아이가 조각을 끝냈다면 석가여래상도 살아서 움직였을까요. 그런 일도 일어나면 안 될 것 같네요.

 

여섯번째 <새와 패프러츠키스 현상에 대하여>에서는 아버지와 여자아이가 날개 다친 큰 새를 치료한 뒤 같이 삽니다. 새는 까마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까마귀는 아니었습니다. 새는 여자아이와 아버지 마음을 잘 알아서 필요한 것을 갖다줬습니다. 그렇게 산 지 세해 뒤 여자아이가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집에 도둑이 들고 아버지는 도둑한테 죽임 당합니다. 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자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져다줍니다. 여자아이는 새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을 패프러츠키스(Fafrotskies) 현상일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생물이나 물건이 떨어지는 일을 뜻하는 말로 무라카미 하루키도 《해변의 카프카》에서 썼네요. 여자아이는 새가 자신을 키운다고 여깁니다. 여자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큰아버지가 찾아온 날 여자아이는 죽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큰아버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생각해요. 그날 밤 큰아버지 집에서 큰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화가 오고, 새가 큰아버지가 끼었던 반지와 심장을 가져다줍니다. 그러고 보니 이때부터 여자아이는 남과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네요.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여자아이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아버지를 죽인 도둑인데, 그 사람은 뜻밖의 사람이었네요. 아니 뜻밖은 아닐지도. 이건 추리소설 면도 갖고 있군요. 그 새는 대체 뭐였을까요. 죽은 엄마가 새가 되어 나타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엄마가 죽은 건 시간이 좀 지나서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면 여자아이 아버지를 새가 참 좋아해서예요.

 

마지막은 이 책 제목과 같은 <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이네요.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생각하는 이야기예요. 어머니와 딸이 주고받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음악이 들릴까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는 어렸을 때 물에 빠져서 죽을 뻔했는데 그때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음악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많은 음악을 듣지만 찾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탄 차가 사고가 났을 때 그 음악을 들어요. 정말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들을 수 있는 음악일지도. 그때 어머니는 죽지 않고, 딸을 낳아 기른 다음에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어머니가 깨어났는지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어머니는 딸한테 그 음악을 남겨뒀습니다. 똑같지 않을지 몰라도 생각나는 것을 악보에 적었습니다. 그건 딸을 위해서죠. 딸이 아기였을 때는 자장가로 들려줬다는군요. 죽을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면 무섭지 않을지도 모르죠.

 

여기 실린 이야기를 하나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그게 어렵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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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탈리아

 

  아트인문학 여행

      -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우다

  김태진, 백승휴

  카시오페아  2015년 05월 25일

 

 

 

 

 

 

 

 

 

 

 

학교 다닐 때 르네상스라는 말 들었지만 이게 뭔지 잘 모른다. 생각나는 건 ‘문예부흥기’라는 말이다. 이건 무슨 과목에서 배웠을까. 역사일까, 미술이까.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일어난 문화운동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유럽 여기저기로 퍼져갔다고 한다. 그전에는 고딕 양식이었나. 이건 건축이 그랬다고 해야겠다. 르네상스 좀더 자세하게 봐야 했는데 앞에 것만 조금 보고 말았다. 책 볼 때도 조금 아는 게 있으면 더 나을 텐데. 이런 생각한 게 처음이 아니구나. 우리나라도 여러나라로 나뉜 때가 있었다. 르네상스가 일어난 이탈리아도 한나라가 아니었다. 로마가 무너지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조선이었을까. 다른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는 그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해도 시대나 조금 알고 다른 건 잘 모른다. 얼마전에 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에도 비슷한 때가 나온다. 거기에서는 한때가 아니고 더 긴 시간을 다뤘다.

 

이 책을 보기 전에 한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제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다. 아주 예전에도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 갔다온 적 있겠지만 그때 기록은 별로 없는 듯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곳곳뿐 아니라 아주 먼 나라까지 다녀오는 사람 많다. 이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즐거움과 놀라움이 있을 듯하다.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 거기에 집중하는 여행 괜찮을 것 같다. 아는 사람 없고 조용한 곳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도 괜찮겠지. 이건 말 그대로 쉼이구나.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떠났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른 나라에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에 한번밖에 못 간다면 이것저것 많이 보고 오고 싶겠다. 먼저 공부하고 가면 더 잘 볼 수 있을지도. 이건 주제를 정했을 때겠다. 그저 마음 편하게 보내고 오고 싶을 때는 그냥 가도 괜찮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게을러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알고 가서 잘 볼 수도 있겠지만 모르고 가서 보는 놀라움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러면서 앞에서 르네상스가 뭔지 잘 몰랐다고 했구나. 이 말을 모르는 아쉬움 때문에 한 건지도.

 

여기에서 가는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 밀라노, 로마 그리고 베네치아 네 곳이다. 피렌체에서 브루넬레스키와 보티첼리, 밀라노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 부로나오티, 베네치아에서는 티치아노를 만난다. 네 도시 다섯 사람이지만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 이야기도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 사람은 금은세공과 조각을 했는데 건축을 배우기로 하고 로마로 갔다. 그때는 건축을 배우려면 프랑스로 갔는데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로마 건축을 혼자 공부했다. 그것도 열일곱 해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공부할 곳도 마땅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뛰어들다니 대단하다. 브루넬레스키는 두오모 성당 쿠폴라(돔)를 짓고 두오모 성당을 마무리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다 짓기까지 150년이 걸렸다. 지금은 건물 겨우 몇달 만에 뚝딱 지어내는데 예전에는 꽤 오래 걸렸다. 어떤 나라 성당은 아직도 짓고 있던가. 그렇다 해도 일백만년 뒤에는 없을지도(이런 생각을). 브루넬레스키와 관계있는 사람은 조각가 도나텔로, 원근법으로 그림 그린 마사초, 건축가와 예술이론가인 알베르티가 있다. 원근법 이때 처음 쓴 건가보다. 브루넬레스키가 원근법을 마사초한테 가르쳤다고 한다.

 

보티첼리는 종교 그림을 많이 그리던 때 고대 신화를 그렸다. 신화 그림 그린 게 이때가 처음일까. 보티첼리가 여러가지 할 수 있었던 건 메디치 집안이 도와줘서다. 아는 사람은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메디치’라는 집안 잘 몰랐다. 얼마전에 다른 책에서 <동방박사의 행렬> 봤는데, 거기에 메디치 집안 이야기가 짧게 나왔다. 여기에도 다 알만큼 나온 건 아니다. 메디치 집안은 귀족이 아니어서 시민이 좋아했다고 한다. 코모시 데 메디치와 손자 로렌초는 예술가한테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그것을 투자라고 하겠지. 예술은 잘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거다. 그래도 메디치 집안은 그것을 믿은 듯하다. 피렌체는 아직도 17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지금 21세긴데. 거기에는 건물을 새로 짓지 못한다. 피렌체에 가면 17세기로 시간여행 간 것 같을지도(17세기가 어땠는지 모르는데).

 

밀라노는 지난날과 지금이 함께 있는 도시다. 여기에도 두오모 성당이 있다. 이곳 두오모 성당은 다 짓기까지 오백년이 걸리고 세상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피렌체 작은 마을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예술가한테 신분이 뭐 중요한가 싶지만 이때는 아주 상관없지 않았다. 다 빈치는 자기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밀라노다. 다 빈치는 그림을 완벽하게 그리려고 했다. ‘빈 틈없이 완벽하게’ 하는 말과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다 빈치가 그림에 담으려고 한 것은 그리려는 대상이 가진 본질인 듯하다. 그림 그리기 전에 적는 게 아주 많았다. 관찰하고 생각한 다음에 그림을 그렸나보다. 천재라고 해도 애쓰지 않은 게 아니다. 이건 로마로 간 미켈란젤로도 마찬가지다. 미켈란젤로는 다 빈치보다 좋은 집안에서 나고 로렌초 눈에 띄어 양자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긴 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뿐 아니라 그림과 건축도 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그리기 싫었지만 결국 그려서 대단한 작품이 되었다. 보티첼리는 아름다운 성모를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아주 젊은 성모를 조각했다.

 

베네치아는 열려 있고 잘 받아들여서 그것을 융합했다. 티치아노는 캔버스에 유화를 그렸다. 그전에는 나무판에 그림을 그렸다. 앞에 그림 가운데는 나무판에 그린 것도 있을까. 티치아노 제자 틴토레토는 데생과 색감을 섞어서 나타냈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잘 그렸다고 가려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건 잘하는 사람일 때 그렇구나. 책을 보다보니 건축, 조각, 그림은 종교 때문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동양도 다르지 않다. 절을 짓고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만들었다. 종교와 떨어진 예술이 된 건 좀더 뒤겠지.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여기에서 말한 사람마다 도전, 과감한 투자, 몰입, 헌신, 개방에 이른 다시 창조하기라는 말을 했지만, 다들 남을 따라하기보다 자신의 것을 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쿠바, 잘 모르는 나라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아카넷  2015년 06월 15일

 

 

 

 

 

 

 

 

 

 

 

 

제목에 쿠바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잘 아는 나라 별로 없다. 다른 나라만 모르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도 잘 모른다. 누군가는 지도를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곳을 상상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거 거의 안 해봤다. 다른 곳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겠지. 쿠바가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모른다. 쿠바가 섬이라는 것을 안 지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 본 어떤 책에 그런 말이 나와서 알았다. 일본도 섬나란데 어쩐지 쿠바는 일본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둘레 나라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쿠바는 스페인 지배를 받다 다음에는 미국에 간섭을 받았다. 그게 200년쯤이라고 한다. 스페인은 여러 나라를 지배하기는 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스페인말 쓰는 나라가 많은 건지도. 예전에 본 책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이 스페인말이라고 했다. 평면으로 된 지도를 보면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이 아주 멀다고 생각한다. 실제는 바로 옆인데, 그래서 나온 게 지구본이겠지. 늘 그런 건 아닌데 잘 모르는 곳이 있으면 지도가 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만 하고 찾아보지 않았다.

 

이 책을 보기 전부터 그저 쿠바에 다녀온 이야기가 아니리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쿠바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체 게바라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이끈 사람으로만 안다. 어쩌다 보니 체 게바라 평전 보기는 했는데 잘 못 봤다. 천식이 있고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고 남아메리카를 돌아보았다는 것밖에. 평전에서 봤을 텐데 잊어버린 게 있다. 그것은 체 게바라가 태어난 곳은 쿠바가 아닌 아르헨티나라는 거다.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건 쿠바만 생각한 건 아니었나보다. 체 게바라가 사회주의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공산당 사회주의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닐 텐데,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면서 공산당 사회주의를 나쁘게 말해서 그것을 믿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공산당 사회주의도 완벽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지만. 사람이 하나만 생각하고 그것만 옳다고 여기면 안 되는데.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만나 혁명을 일으켰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 게바라 때문에 바뀐 건 교육과 의료다. 쿠바에서는 교육과 의료에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병원에 거의 안 가서 잘 모르지만.

 

쿠바에는 체 게바라와 함께 피델 카스트로가 있다. 체 게바라는 죽었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아직도 살아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독재가 영조가 왕으로 지낸 시간과 비슷하다고 한다. 피델 카스트로는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 이 사람 잘 모르지만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이 말을 여기에서 하다니.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를 다스리면서 굶주리는 사람은 없게 됐지만 딱 그것뿐이었다. 평등주의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일이 별로 없다. 이게 동성애자한테는 좋지 않았다. 혁명을 했을 때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안에는 억울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피델 카스트로가 오랫동안 독재정치를 하다니 어쩐지 대단하다. 미국한테 지배받지 않기 위해 애썼다. 미국하고 사이가 안 좋았는데 앞으로는 미국하고도 잘 지내려고 한단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거리가 있어서 미국 식민지까지 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세계에는 다른 나라 지배를 받다가 독립한 나라가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이야기는 쿠바에서 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 지배받지 않아 느슨한 듯 보이지만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도 하다. 이 책 한번 보고 이런 말을 하다니. 어쩐지 쿠바가 북한보다 좀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자주 쓸 수 없지만 쿠바에서는 인터넷을 쓰게 했다. 중국은 페이스북 같은 데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쿠바에서는 운동선수를 잘 키운다. 예술가도. 전에 EBS에서 그런 다큐멘터리 보려다 말았는데. 발레를 하려는 쿠바 여자자이 이야기였다. 쿠바에는 세계에 이름이 잘 알려진 발레리나가 있다. 그 사람이 있어서 쿠바에는 발레리나 꿈을 가진 아이가 많을지도. 야구도 꽤 잘하는가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한테 졌지만. 그걸 보거나 알았던 것도 아닌데. 쿠바 사람은 다른 남아메리카 사람과는 다르게 여유롭고 평화주의라고 한다. 이건 섬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우리나라 사람은 예전에 속아서 멕시코에 갔다. 멕시코에 간 사람 가운데 그곳을 떠나 쿠바로 간 사람도 있단다. 쿠바에는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 후손이 일천명쯤 산다. 쿠바에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공부를 해도 쿠바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서다. 사람은 굶지 않는 것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게 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미국으로 가기도 하지만 돈 없는 사람은 어렵다. 가짜 국제결혼으로 떠나기도 한단다. 이것도 돈이 있어야 하겠구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 같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루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쿠바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쿠바는 헤밍웨이가 가서 살기도 했다. 헤밍웨이한테 알코올 의존증과 망상증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헤밍웨이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더하는 말

 

앞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식민지까지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 책을 볼 때는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다른 책에서 우리나라가 독립한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보았다. 그것만으로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미국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계획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진정 미국 지배를 받지 않고 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미국 눈치를 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쿠바가 앞으로 바뀐다고 한다. 지금까지 미국한테 영향을 덜 받았는데, 쿠바 젊은이는 미국을 좋아한단다. 미국이 아주 나쁘다 말하기 어렵겠다. 미국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니 말이다. 나라보다 사람을 생각해야겠다.

 

 

 

희선

 

 

 

 

☆―

 

쿠바는 공산당 사회주의 체제여서 거의 모든 인민이 공무원이고, 그들은 모두 넉넉지 못한 월급으로 살아간다. 의사, 교사, 판사, 경찰, 야구선수 모두 봉급이 비슷비슷하다. 이런 평등 때문에 사회, 경제문제가 많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쿠바에는 적어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교육의 사명감이 없는 사람이 선생이 되는 경우는 없다.  (330~331쪽)

 

 

 

 

 

올해 나온 크리스마스 씰은 이렇습니다 케이 리그 12개 구단 마스코트예요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를 지나오면서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만 늘어난 듯한 느낌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지만, 찾아보면 좋은 것도 있겠네요 그걸 찾아야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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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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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잊지 않고 알아야 한다는 거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한테 거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나라처럼 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서 내일이 있다. 어제 잘못을 고치는 오늘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다 잊어버리는 건 아니지만 잘못한 것을 잊어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개인이 이런데 나라라고 다를까. 나라도 잘못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있다. 전쟁 때문에 여자가 겪은 일, 왕이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일. 고려에서는 중국에 여자를 공녀로 보내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로 여자들이 많이 끌려갔다. 청은 돈을 받고 여자들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이 말은 시간이 흘러서 서방질한 여자란 뜻인 ‘화냥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여자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다시 돌아와도 제대로 살기 어려웠다.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다. 일본은 그 일을 인정하지 않았구나. 언제쯤 자신들 나라가 잘못한 일을 깨달을까. 일본에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나라가 늘 해만 입은 건 아니다. 고려는 불교사회여서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소와 돼지를 잡는 사람은 북방 유목민이었다. 백정이라는 말은 본래 농사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거 처음 알았다. 이 말도 시간이 흘러서 소와 돼지 잡는 사람만 가리키고 그 사람들을 차별했다. 그때도 인종차별이 있었다. 그러면서 양반은 고기를 즐겨먹다니. 그때 차별이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한테 옮겨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차별이라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참. 나라고 아무 거리낌없이 다른 나라 사람을 대할 자신은 없지만, 다 같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사진으로 조선사람이 야만스럽고 미개하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그런 사진을 서양과 일본에 퍼뜨렸다. 사진이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거 알아야겠다. 그것을 찍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인상일 때도 있다는 거. 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는 달랐는데, 그건 더 예전 일이구나. 그런 관계를 죽 이어왔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왜나라 무사로 조선에 쳐들어온 사야가는 그 싸움이 잘못됐다 여기고 조선에 귀화했다. 전쟁이 끝나고 사야가는 김충선이 되었다. 이 이름 한번쯤 들어본 것도 같은데 정말 들어본 건지 잘 모르겠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뿐 아니라 조선을 위해 싸운 사람 많았을 거다. 광해군은 그때 왕세자가 되어서 싸움터를 다니면서 백성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왕이 되고는 중립 외교를 펼쳐서 조선이 전쟁터가 되는 걸 막았다. 북쪽에서는 정문부가 의병을 이끌고 가토 기요마사 부대와 싸워 이겼다. 그 일을 북관대첩비에 새겼는데 일본이 러시아와 싸울 때 일본으로 가져가서 야스쿠니 신사 한구석에 두었다. 그 뒤 일백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 정확하게는 북한 함경도에 돌아왔다. 사야가 김충선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 안 건지도. 이번에 제대로 안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보니 그때 조선에 귀화한 일본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람도 많았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나고 일본에서는 조선과 잘 지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조선에서 끌려간 포로를 데리고 오다가 시간이 갈수록 문화교류로 바뀌었다. 통신사는 200년 동안 열두번 일본에 다녀왔다. 그 길 그렇게 쉽지 않았을 텐데. 통신사로 가게 된 사람 가운데는 가기 싫어한 사람도 있었을지도. 그래도 누군가한테는 좋은 기회가 됐다. 김명국 그림은 조선사람보다 일본사람이 더 좋아했다.

 

조선이 왕이 있고 신하가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국사 시간에 조선에 무엇무엇이 있다는 말 들었는데. 대간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대간 말을 잘 듣는 왕도 있지만, 말을 못하게 한 왕도 있었다. 연산군은 역사가 두렵다고 했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나는 조선에 제대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는가보다. 그럴 수가. 사관은 왕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다 적었다고 한다. 사관 생각도. 사관이 쓴 사초는 왕이 죽은 다음에 실록을 쓰고 물로 씻었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몰랐다. 그저 왕조 기록이겠거니 했다. 그게 있어서 우리가 지금 조선을 알기도 하는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치, 경제, 법률, 교통, 천문, 음악, 과학에 걸쳐 그때 사람을 담았다. 왕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죽은 왕 실록은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못 보다니. 도움이 되는 것은 《국조 보감》으로 정리했다. 왕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왕이 잘못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있어야 했다. 그런 게 있어도 폭군이 된 연산군도 있지만. 광해군은 동생과 인목왕후를 잘 대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우리가 일본 때문에 근대로 들어서지 않고, 흥선대원군이 잘 생각해서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구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만 생각하지 않고 둘레 나라와 세계를 다 생각해야 한다. 어디든 자기 나라만 잘살려고 하지 않아야 할 텐데. 기록은 있는 그대로 잘 해야 한다. 좋은 기록을 남겨야 할 텐데, 그리 좋은 것만 남지 않을 듯하다. 역사 더 자주 알려고 해야 하는데 가끔만 보는구나. 가끔이라도 보면 기억에 남기도 한다. 얼마전에 달력 생각했는데 세종은 중국에서 받은 달력, 그러니까 시간이 중국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우리 시간을 알려고 애썼다. 일본과 우리나라 시차 없다고 알았는데 실제는 도쿄와 30분 차이 난다고 한다. 세계화 나쁘지 않지만 우리 것도 마음 썼으면 좋겠다.

 

 

 

*더하는 말

 

첫번째 것을 보고 썼는데 이것보다 먼저 세번째 책을 보았다. 두권을 건너뛰어 세번째 것을 가장 먼저 보다니. 세번째 것에는 다른 책에서 본 것이 좀 나왔다. 조선후기 과거제도나 사람들한테 책을 읽어주고 다니는 전기수 이야기. 조선시대에 아주 많았던 호랑이가 일제강점기 때 다 사라져버린 일. 세번째와 첫번째를 보고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가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세번째에는 고려청자 이야기와 신라 유리병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시대 이야기도 조금 있구나. 교육방송(EBS)에서 하는 <역사채널 ⓔ>는 한번도 본 적 없다. 긴 글이 나오기 전에 조금 큰 글자로 짧은 글이 나오는데 그건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쓴 거 아닐까 싶다. 거기에는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실었다. 두번째는 아직 못 봤는데 언제 볼 수 있을지. 재미있어서 보고 싶기는 하다.

 

 

 

희선

 

 

 

 

☆―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눈앞에 있는 이미지가 현혹시키는 힘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진에서 피사체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눈길, 카메라 뒤에 선 이들 눈길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참된 것을 볼 수 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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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부터 써야지 생각하고 자꾸 미루다 못 썼습니다.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니군요. 그런 건 써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쓰자, 쓰지 말자 하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지요. 앞부분 조금 썼다가 지웠습니다. 글이 우울해서. 요새 좀 우울해서 만화영화(애니메이션)를 봤거든요.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꼭 우울해서 만화영화를 보는 건 아니고 일본말을 듣기 위해서 봅니다. 한때 만화영화만 봐서 그림이 아닌 진짜 사람도 봐야겠다 하고 일본 드라마를 조금씩 보기도 했어요. 저는 드라마보다 만화영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말도 훨씬 잘 들리고 그림이 마음 편하다고 할까. 만화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우리말로 들었지요. 어릴 때 왜 밤에는 만화영화 못 볼까 했습니다. 지금은 보려고 하면 볼 수 있군요.

 

새로운 걸 본 건 아니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봤다고 해야겠네요.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여러번 보고 성우를 안 다음에야 잘 듣기도 했습니다. 만화영화를 보면서 성우는 누굴까 하면서 찾아본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군요. 성우와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했는지 잘 정리된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복사라도 해서 다른 곳에 저당해뒀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전에는 성우 이름 많이 외웠는데, 한동안 별로 생각 안 해서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아는 목소린데 하다가 이름 겨우 떠올리기도 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이름은 거의 모릅니다. 얼굴과 목소리로 기억하는군요. 일본 성우는 거의 연예인이더군요. 우리나라 성우도 노래 잘할 테지만, 일본 성우는 거의 노래도 합니다. 만화영화를 만들면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 노래를 하고, 주제곡을 부르는 사람도 있고 라디오 CD(드라마에 가까운)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성우와 가수를 함께 하는 사람도 많아요. 일본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걸 해도 잘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전에 본 만화영화는 <금색 코르다>예요. 이것을 보니 <노다메 칸타빌레>가 보고 싶어지더군요. 둘 다 음악과 관계있는 거네요. <금색 코르다>는 히노 카호코라는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열리는 음악 콩쿠르에 나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바이올린과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이야깁니다. 카호코가 다니는 학교는 일반과와 음악과가 있어요. 그곳을 지은 사람은 오래전에 음악의 요정을 구해주었는데, 그 요정이 학교에 음악의 축복을 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은 요정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도 가끔 요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때 음악 콩쿠르가 열린다는 종이 울립니다. 히노 카호코는 일반과 학생인데 요정을 봤습니다. 카호코는 지금까지 악기를 배운 적 없습니다. 요정 리리가 카호코한테 마법의 바이올린을 주고 그걸로 연주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콩쿠르에 나가지만, 자신은 진짜가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카호코가 열심히 연습하고 잘 하려고 하지만, 처음처럼 음악을 즐기는 마음이 없어지고 바이올린 줄은 끊어집니다. 음악 좋아해도 자기 실력이 늘지 않으면 괴로워질지도 모르겠네요. 카호코는 바이올린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자신이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때는 마법이 사라진 보통 바이올린으로 자기 나름대로 연주합니다. 그렇게 연주하는 음악도 모두 좋아하더군요.

 

카호코만 다른 사람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카호코 때문에 전과는 달라집니다. 카호코는 아주 잘하지 않지만 카호코만의 음악이었거든요. 그런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카호코 이야기밖에 안 했네요. 콩쿠르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는 여자아이도 하나 더 있지만 다른 사람은 다 남자아이예요. 악기도 저마다 다릅니다. 바이올린, 트럼펫, 플루트, 첼로, 오보에, 피아노. 이거 처음 봤을 때 저도 바이올린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어렸을 때 잠깐 배운 건 피아논데 더 배우지 못해서 지금도 아쉽습니다.

 

코르다는 이탈리아 말로 현이라는 뜻이고 인연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카호코는 음악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서 자기 세계가 넓어졌다고 하더군요.

 

 

 

 

 

클래식이 멋지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은 <노다메 칸타빌레>예요. 칸타빌레는 노래하듯이 라는 뜻으로 노다메가 그런 식으로 피아노를 치는군요. 노다메는 피아노를 잘 치고 재능도 있지만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기보다 듣고 외워서 쳤습니다(그렇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텐데. 귀가 아주 좋은 거죠. 예전에 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도 그런 식으로 나온 것 같네요). 그것도 마음가는대로. 그게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노다메는 피아노 치는 걸 그저 좋아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치아키 신이치를 만나고 치아키와 함께 있으려면 지금과 같으면 안 된다 생각합니다. 나중에 치아키와 파리에 가서 공부해서 대학에 다닐 때와는 달라집니다. 그래도 노다메가 가진 개성(대단함)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들 노다메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하더군요. 노다메라고 했는데, 이건 노다 메구미를 줄인 말입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노다메뿐 아니라 다들 자랍니다. 노다메한테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고, 치아키한테 영향 받는 사람도 있고 서로가 서로한테 영향을 주고받더군요. 치아키는 지휘자가 꿈인데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도 아주 잘합니다. 파리에 가서는 지휘자 콩쿠르에 나가서 1등 합니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음악 콩쿠르에서는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더군요. 악보대로 연주해야 한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를 듯합니다. 노다메가 치는 피아노는 다들 즐겁게 듣고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나오니까 그런가보다 했네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피아노곡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잠깐 나오지만 좋더군요. 만화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만화영화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못 봤지만 이건 드라마로도 만들었군요.

 

 

 

 

 

재미있게 본 만화영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내 이야기>예요. 제목은 내 이야기여도 둘레 사람 이야기도 나옵니다. 오래 사귄 친구, 처음 사귄 여자친구. 내 이야기에 나오는 고우다 타케오는 잘생겼다기보다 남자답습니다. 타케오 친구 스나카와 마코토는 잘생겼습니다(그렇게 말해서). 여자아이들은 거의 타케오가 아닌 스나를 좋아합니다. 타케오가 좋아한 여자아이들은 스나한테 고백하는데 다 차입니다. 왜 그랬는지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스나가 타케오한테 알려주더군요. 타케오가 좋아한 여자아이들은 타케오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습니다. 스나는 그것을 들었던 거죠. 스나 참 좋은 애예요. 잘생긴 아이가 주인공이 아니어서 더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여자아이는 귀여운데 스나가 아닌 타케오를 좋아하고. 타케오가 여자한테는 인기 없지만 남자아이들한테는 인기 많습니다. 타케오와 스나의 우정도 좋습니다. 그런 친구 사귀기 어렵지 않을까 싶더군요. 말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만화여서 좀 지나친 것도 있지만, 현실과 아주 다른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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