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 그러니까 가장 처음 나온 《눈 먼 자들의 국가》는 여전히 못 보았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것도.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보기 힘들 것 같기도 하네요. “엄마, 나야” 하는 말은 더 가슴 아픈 제목이군요. 이 말 아직도 저는 듣기보다 하는 쪽입니다. 엄마 아빠, 부모 마음 잘 모릅니다. 부모라고 해서 다 좋은 부모만 있는 건 아니지만(이런 말을 하다니). 이건 시집이고 시인들이 아이들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사랑받고 형제자매와 잘 지낸 아이들이더군요. 가끔 싸울 때도 있었겠지만. 글 보면서 부모 형제한테 사랑받지 못한 아이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런 아이도 기억해야 할 텐데. 제가 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했을 때는 다들 설레고 기뻤을 텐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탄 아이들은 다 마음 착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신보다 남을 생각할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 만화 <표류교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을 보았습니다. 드라마 시작할 때 “지금을 살아라(今を生きろ)” 하는 말이 나와요. 이 드라마 보기 전 새벽에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곳보다 덜 했을지 모르겠지만, 땅이 울리고 창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죽는 게 무서웠다기보다, 아무 말 못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 잘 살자 생각했는데.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다음에 고등학교가 사라집니다. 원작은 초등학교라는데 드라마는 고등학교고 나오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라진 고등학교에는 선생님 몇 사람과 학생 스물둘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가 간 곳은 인류가 거의 사라지고 지구는 사막이 된 그다지 멀지 않은 앞날이었어요. 드라마에서 지금은 2002년이에요(만화는 더 옛날에 나왔군요). 이 드라마 한 지 오래됐군요. 저는 지진이 일어난 뒤에 이걸 보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간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곳에서 살기는 하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습니다. 만화는 더 무서울 것 같더군요. 드라마에도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인류가 나타납니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지만 무서운 듯하더군요.

 

지금 2002년을 사는 사람과 지구가 사막이 된 곳으로 간 사람들을 보여줘요. 지금이 더 조금 나옵니다. 학교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사라진 아이들 부모와 친구는 무척 슬퍼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딸(학생은 아닌 일반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고 목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도움도 주어요. 사막이 된 지구(일본)에 간 아이들은 그날 말하지 못한 것과 그동안 멍하게 산 것을 아쉬워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학교가 사라진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 때문에 지구는 사막이 된 것일지도. 앞날에 간 사람도 생각합니다. 자기 둘레만 괜찮으면 상관없다고 한 건 아니냐고. 한 사람이 ‘나 하나쯤 어때’ 하는 생각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겠지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 하나라도 잘 하자’ 하면 좋을 텐데요. 선생님과 아이들은 2002년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냅니다. 그 편지 잘 닿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마지막에 학교 둘레가 바뀌었어요. 어떤 마음은 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나타낸 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삼켰던 두려움이 바다의 포말이 되었어요

내 친구들이 흘렸던 눈물이 한 잎 한 잎 낙엽이 되었어요

하고 싶었던 모든 말들이 송이송이 눈발이 되었어요

우리 모두가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봄별이 되었어요
이 모든 것들 빛깔과 이름을 잊지 마세요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면

그건 여기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그리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손짓하고 있다는 것, 나처럼요

그러니 귀 기울여주세요

가만히 가만히 닻처럼 잠긴 4월 산사꽃 비명을!

이제라도 환하게 밝혀주세요

기다리며 기다리며 벼렸던 4월 새파란 별빛을!

 

지난해 흘렸던 눈물은 여전하네요

오는 봄볕과 빛을 가리지 않게 해주세요  (54쪽)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을게요.  (189쪽)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모두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하늘 높이 올라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늘 다니던 동네 슈퍼, 운동장, 학원 근처에서

생생하게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할게요.  (253~254쪽)

 

 

 

드라마에서 아이들은 비록 사막이 된 지구에 갔지만 살아있었습니다(나무나 물도 없고 살기 힘든 곳이지만). 세월호를 탄 아이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가 목숨을 잃었네요. 두번 다시 못 본다 해도 어딘가에 살아있는 게 나을지도 모를 텐데요. 시 속에서 아이들은 말합니다. 자신은 그곳에서 잘 지내니 엄마 아빠 언니 누나 오빠 형 동생도 잘 지내라고. 아이들 이제 차갑지 않은 곳에 있겠지요. 밤하늘 별이 되어 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건 산 사람이 생각하는 거지만. 아이들도 부모 형제자매 친구한테 그런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자신이 맡은 일이라도 책임감을 갖고 하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좀 넓게 생각하고 양심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나, 여기 있어’ 하고 별들이 인사할 것 같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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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하태환 원작, 김새봄 문학, 전윤나 미술, 안진성.박경훈 음악, 연극프로젝트커피 연극 / 새봄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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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괴롭겠지만 좀 참으시오. 물론 우리들이나 그밖에 상부에서도 당신들을 어떻게 할까, 연구하고 있고. 그러나 혁명이 만일 한두 달만 늦었다 해도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었을 것 아니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에 우리가 나라를 구한 것이오. 당신들만은 아니지만 도대체 정치인들이 그동안 해놓은 게 무엇이오? 우리는 겨우 한달 반 만에 양담배 일소했지, 깡패 일소했지, 밀수 일소했지, 시민 생활 질서 확립했지, 절도나 강도 같은 범죄도 없앴지……. 보시오! 필요한 건 다 했소. 이제는 민생문제만 남았소. 하여튼 상부에다가 보고는 잘해두리다.”  (45쪽)

 

 

1961년 5월 16일에는 군사정변(쿠데타)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5·16 혁명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 쿠데타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혁명은 한자말인데 쿠데타는 프랑스말이던가요. 5·16 군사정변이라는 말을 봤습니다. 박정희, 전두환(전 대통령 이름을 막 쓰다니, 전에도 한번 썼네요)이 물러난 뒤에 혁명에서 군사정변으로 바뀌었을지도. 이런 말하면 부끄러운데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해 몰랐습니다. 1980년은 아는데. 제가 나기 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1945년이나 1950년은 알기도 하네요. 5·16 아는 거 거의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조금이라도 배웠을 텐데. 어렸을 때 그때 이야기 나오는 드라마 했던 것 같은데 못 봤어요. 어렸을 때니 봐도 잘 몰랐겠습니다. 드라마 실제와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무엇 때문에 군사정변을 일으켰는지. 이 부분 좀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저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하는 말로 정리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 마음 아주 없었던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대통령 했겠지요.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뒤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도와준다고 하고 삼팔선을 그었지요.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전쟁을 치른 뒤에는 휴전선을 그었네요. 나라가 둘로 나뉘었으니 남이나 북이나 통일을 해야 한다 생각했겠습니다. 꽤 오랫동안 북한에서 남쪽으로 공작원이 오기도 했지요. 그런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이라 하고 잡고. 간첩 신고하라는 말도 많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빨갱이냐’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이건 예전에 그랬을지도). 제가 잘 아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주의를 몰아내려고 했답니다. 그 일에는 미국이 상관했다고. 1960년대에도 통일문제를 많이 생각했을 테지요. 5·16은 왕이 바뀌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까닭으로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것과는 닮았습니다. 정치를 한다고 해도 이념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5·16을 군사정변이 아닌 혁명으로 보이게 하려고 진보당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16 뒤에 소급법(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130여명한테 실형을 언도했습니다. 5·16이 일어나고 세해가 지나고 죄가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 풀어주지 않고 감형만 하고 많은 사람이 형을 다 채우고 나왔습니다.

 

일곱해보다 훨씬 긴 옥고를 치른 사람도 많겠지요. 혁신 정치를 한 사람은 죄가 없는데도 그랬군요. 사형을 언도 받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고 감옥에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을 한번에 잡아다 가두어서 좁은 감방이 꽉 찼답니다. 1.27평에 일곱 사람. 겨울에는 좀 나아도 여름에는 아주 더웠겠습니다. 포개서 잘 때도 많았다네요. 잘못하지 않아도 잘못된 법 때문에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다니. 어렸을 때 저는 드라마에서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거짓 자백을 시키는 모습을 보면 무서웠습니다. 진짜 저런 일 있고 내가 그런 일 당하면 어쩌나 했지요. 그런 것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한 일은 누구나 당하고 싶지 않겠지요. 일제강점기에서 이어져 온 것이 고문이군요. 이 책 원작을 쓴 하태환은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다 진보당에 들어가고 통일운동과 혁신정치 운동을 펼치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5·16 바로 뒤에 잡히고 만 일곱해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것은 그 안에 있을 때 적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하게 잡혀서 감옥에 갇히면 그 사람도 힘들겠지만 식구도 힘들겠습니다. 함께 옥고를 치르는 듯한 느낌이었을지도. 사회에서는 좋은 눈으로 안 봤을 테지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죄가 없다는 걸 알았겠네요. 감옥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고 여러가지를 했더군요. 가장 많이 한 건 책읽기와 사색입니다. 글을 쓴 사람도 있고, 공부에 한이 있던 사람은 그 안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바람을 쐬기 위해 기독교, 천주교, 불교집회에 다 나가고 텔레비전 보는 시간은 극장에 간다고 했습니다.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작은 것으로 그 생활을 견디려고 했네요. 나이 많은 분은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진보당 사람들 처음에 잡히고 유치장에 갇혔을 때 한 모의재판에서는 모두 죄가 없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졌군요. 앞에서 말해야 했는데, 지금 그게 생각났습니다.

 

정치는 어디에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늘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저는 정치와는 멀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여러가지를 정하는 건 정치가일 때가 많겠네요.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이 몸담은 당 이념만 옳다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어는 한쪽만 좋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한 적 있을지도. 좋은 건 늘 좋고 싫은 건 늘 싫은.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를 알면 어떤 문제에 답이 하나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는 아직도 마음이 좁아서 많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 하지 말고 다른 걸 한번 귀 기울여 들으면 좋겠습니다. 유연성은 정치뿐 아니라 어디에든 있어야 하는 거지요. 5·16과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지요.

 

 

 

*더하는 말

 

좀 다르지만 《어느 혁명가의 삶》을 보고 났을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말을 쓰기도 했네요. 때가 다를 뿐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전향하지 않은 사람이 더 오래 감옥에 있었겠습니다. 여기 나온 사람은 한국에서 정치를 한 사람이니까요. 형을 다 채우고 나왔지만, 죄가 없다는 판결도 나왔죠. 다른 것 때문에 다시 정치를 할 수 없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그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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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7 0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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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8 0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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麒麟の翼 (文庫)
東野 圭吾 / 講談社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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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히가시노 게이고

 

 

 

어느새 세해가 넘게 흘렀다. 어떤 것이냐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나오는 《신참자》를 보고 난 시간이다. 이 책 《기린의 날개》는 2011년 3월에 나오고 문고로는 2014년 2월에 나왔다. 내가 이 책을 안 건 문고가 나오기 전이었던가보다. 2011년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쓴 지 스물다섯해 된 때다. 어쩌면 이 책도 그때를 기념으로 쓴 것일지도. 이게 2011년에 나왔으니 다음 권도 나오지 않았을까 할지도 모르겠는데 나왔다. 그 책이 나온 것도 알았다. 이 말을 꺼낸 건 이 책 띠종이에 그 책이 가가 형사 시리즈 마지막이라는 말이 있어서다.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정한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는 것 가운데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도 있다. 올해 두권이 문고로 나와서 사두었다. 그것도 빨리 보고 싶지만 천천히 볼까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잘 읽힌다. 이건 우리말로 옮긴 책을 말하는 거다. 일본말도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우리말보다 시간 걸리고 모르는 말도 있다. 우리말로 옮긴 것을 편하게 읽은 건 일본말을 우리말로 잘 옮겼기 때문이겠지. 일본말로도 쉽게 써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지 모를 말도 있다. 나는 아직도 그런 걸 잘 모른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지.

 

이 말은 몇번 했는데, 일본 추리소설에서 내가 처음 본 건 히가시노 게이고 아니면 미야베 미유키 책이다. 두 사람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졌을 때쯤부터 나도 알게 된 거겠지. 어쩌면 나는 좀 늦었을지도. 2008년인가 2009년이었던 것 같은데.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용의자 X의 헌신》을 가장 처음 봤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나오키상을 받았다. 여기까지 쓰고 전에는 귀찮아서 하지 않은 일을 했다. 내가 일본 추리소설에서 가장 처음 본 게 누구 책일까를 찾아봤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미야베 미유키도 아닌 시마다 소지였다. 일본 추리소설이라 여기고 본 게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가 아닐까 싶다. 일본 추리소설 보기 전에 일본 작가 책을 가끔 봤다.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본 건 2010년쯤부터다(이때부터 읽고 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본 건 거의 잊어버리고 제목 잊어버린 것도 많다. 책을 제대로 본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가보다(여전히 잘 못 보지만). 예전에는 대체 어떻게 읽은 거지 싶기도 하다. 그런 시간이 아주 헛된 건 아니겠지, 그래야 할 텐데. 추리소설도 처음에는 범인이 누군가를 더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사람이 맞으면 조금 좋아하기도 했다. 지금은 왜 사람을 죽였을까를 보고 그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건 뭘까를 생각한다. 배워야 할 것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저 재미있게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이것보다 앞에 나온 책 《신참자》는 드라마로도 만들었다. 그건 드라마를 먼저 보고 책은 나중에 보았다. 드라마가 먼저 해서였겠지. 그걸 봐선지 이 책을 보다보니 가가 교이치로 역을 한 사람(아베 히로시)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가 교이치로가 어떤 형산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신참자》는 세해 전에 보고 《붉은 손가락》은 더 오래전에 보고 《잠자는 숲》 《거짓말, 딱 하나만 더》 《졸업》도 본 지 오래되었다. 《악의》도 가가 형사 시리즈던가. 예전에 어땠는지보다 지금 어떤지 보아야 하는 건데.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 않는가. 소설에 나오는 사람도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바뀔 거다. 그런 걸 잘 알면 좋을 텐데. 가가 아버지가 같은 형사였고 어머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고 한 듯하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만 살다 가가도 경찰이 되었을지도. 잠깐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했다고 한다. 가가와 아버지 사이는 아주 가까웠다고 하기 어렵다. 그래도 《졸업》에서 가가는 아버지한테 편지로 사건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건 생각나는데, 가가 아버지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가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버지가 죽고 곧 3주기를 맞는다.

 

다른 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것보다 앞에 나온 책 《붉은 손가락》과 《신참자》는 식구 이야기다. 《붉은 손가락》은 잘 모르겠고, 《신참자》는 가가가 니혼바시경찰서로 옮기고 나서 맡은 일이다. 두권이 이번 《기린의 날개》로 이어지는 듯하다. 아니 죽임 당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부모거나 자식이겠다. 남자는 니혼바시 다리 중간에 있는 기린상 앞에서 쓰러졌다. 니혼바시서 순경이 그 모습을 보고 남자한테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남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 가슴에 무엇인가 꽂혀 있고 피가 흘렀다. 남자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을 거두었다. 얼마 뒤에 남자 지갑과 가방을 가진 사람을 찾았지만, 그 사람은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차에 치이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죽었다. 한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을 해친 듯한 사람도 죽고 말았다. 경찰을 보고 달아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범인일까. 다른 형사는 그렇게 정리하려고 했다. 그래도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했다. 아무 잘못도 안 한 사람은 경찰을 봐도 달아나지 않겠다. 경찰을 보고 달아났다 해도 그 사람이 그날 무엇을 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거 알아보기 쉽지 않겠지만. 가가는 피해자를 죽인 범인 찾기보다 피해자 아오야기 다케아키가 왜 니혼바시에 갔을지를 알아보았다. 용의자로 몰린 야시마 후유키 행동도 알아본다.

 

우리나라 사람도 그렇지만 일본사람도 아버지와 자식이 말을 잘 안 한다. 할 때 해야 하는데 때를 놓치고 아쉽게 여긴다. 아오야기 다케아키 아들 유토 또한 그랬다. 아니 유토뿐 아니라 아내와 딸도 아버지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왜 니혼바시 다리에 갔는지. 아오야기 다케아키가 니혼바시에 간 건 칠복신 돌기를 해서였다. 그 가운데서 꼭 가려고 한 곳은 스이텐구 신사였다. 그곳은 아이를 잘 낳게 해달라고 비는 곳이고 또 하나 물로 입는 해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아오야기 다케아키 지갑과 가방을 가지고 있었던 야시마 후유키는 아오야기 다케아키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한 적 있었다. 파견 사원으로 야시마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쳤는데 그 일을 공장에서 숨기고 공장 일도 못하게 됐다. 공장장은 산업재해를 제조부장인 다케아키가 숨기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죽임 당한 아오야기 다케아키를 안됐다고 여겼는데 산업재해를 숨겼다고 하니 죽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대중매체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어떤 말이 나오면 그것을 말한다. 정확한 정보를 사람들한테 알려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대중매체 때문에 해를 입는 사람 아주 많겠지. 잘못된 정보인지 모르고 그것을 그대로 믿어도 안 되겠다. 나도 그런 일 아주 없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일이 흘러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게 좋겠다.

 

가가는 아오야기 다케아키가 죽임 당한 일이 아들 아오야기 유토가 다닌 중학교에서 세해 전에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생각했다. 자식이 잘못을 하면 숨기려는 부모가 많을까, 제대로 밝히고 죗값을 치르게 하려는 부모가 많을까. 숨기려는 부모가 나온 책을 더 많이 본 듯하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게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한번 얼버무리면 다음에 또 그러려고 할 거다. 그렇게 된 건 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이들보다 자신을 지키려고 한 거다. 아오야기 다케아키는 유토가 다닌 중학교에서 일어난 사고에 유토가 관계 있으리라고 여기고 밝히려고 했는데. 유토는 아버지가 왜 니혼바시 다리 기린상 앞에 간 건지 깨달았다. 아버지와 좀더 이야기했다면 좋았을걸 했다. 혹시 가가도 그런 생각했을까. 사람은 죽을 때 진짜 자기 마음을 전하려고 할까. 추리소설에서는 다잉 메시지라고도 하는데. 죽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자식이나 가까운 사람한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은 형사가 어떤 식으로 수사하는지 알기 어렵다. 책에서 그런 것을 보기도 하는데 가가처럼 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을 가가는 알아보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냈다. 시간과 힘이 들었지만. 뉴스 같은 데서는 누가 죽이고 누가 죽임 당했는지만 나온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있는 거구나.

 

 

 

희선

 

 

 

 

☆―

 

죽어가면서 니혼바시 다리로 간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다케아키는 아들한테 전하고 싶었다. 용기내고 참된 것에서 달아나지마, 자신이 믿는 일을 해, 하고.  (350~351쪽)

 

 

“그 일을 용케 알아챘군. 사람은 누구든 잘못을 저질러. 중요한 것은 그 일과 어떻게 마주하는가야. 달아나거나 눈을 돌리면 다시 똑같은 잘못을 해.”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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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

  허영철 원작    박건웅 그림

  보리  2015년 02월 02일

 

 

 

 

 

 

 

 

 

 

 

 

 

 

우리나라는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고 제대로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닐 거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돕기로 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한 나라가 아닌 둘로 나뉘고 만 걸까. 해방이 되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려고 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른 나라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지금까지 이어질 거다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하지 못했겠지. 바로 통일이 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와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7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북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식구가 사는 사람들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을 거다. 그 자손은 있겠지만 첫세대만큼 식구와 고향 그리워할까.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 많이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이 노래 가르칠까. 이 통일도 반공처럼 세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남과 북이라고 해야 할까)가 통일을 하면 좀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다. 천천히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어가면 좋을 텐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말을 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 일 정말 있었던 일일까. 내가 어렸을 때도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 표어를 썼다. 이런 거 언제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낮은 학년 때까지만 한 것일지도. 그때는 북한이나 공산당을 아주 나쁘다 생각했다. 북한에서 그것도 일요일 새벽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배웠다.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다. 남한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미국이 우리 통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왜 방해했을까.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될 것을 걱정한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도 미국 때문이 아닐까. 친일파가 미국에 붙은 것도 있지만, 미국이 친일파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독립운동도 사회주의자와 농민만이 끝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지식인이 친일을 했다. 절망스럽다고 마음을 바꾸다니.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겠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 온 일을 무척 슬프게 생각하는데, 남쪽에서는 그런 일 없었을까. 내가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죽임 당한 사람 무척 많다(제주, 광주). 여러 사람이 있으면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그것을 죄로 여기다니.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여러가지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예전에는 조금 다르면 모두 빨갱이로 몰았다. 이런 말하는 사람 아직도 있겠다. 사상이 다른 사람만 힘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사람 식구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은 다 힘들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허영철은 비전향 장기수였다. 1920년에 태어나 일본 탄광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만난 책이 다른 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에서 잠시 만난 사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아오고 공산당에 들어가고 고향 부안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활동을 하고 북에서 당 간부학교 교육을 받았다. 장풍군에 잠시 있다가 1954년 공작원으로 남쪽에 오고 한해 만에 잡혔다. 허영철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전향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하지 않았다. 허영철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다. 당이 남쪽으로 가라고 했으니 그 말 어길 수 없었겠지. 허영철도 남쪽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허영철은 서른아홉에 감옥에 들어가고 일흔둘에 그곳에서 나왔다. 그 뒤에는 보안 관찰법 대상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러고는 남이 좋은지 북이 좋은지 묻다니. 허영철이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허영철 식구는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영철한테는 한해도 함께 살지 않은 아내와 얼굴도 잘 모르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그저 호적에 아내와 딸 아들이라고 적혀 있을 뿐일 텐데. 그게 아주 모른 척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구나. 허영철은 나름대로 자기 신념을 위해 살았을 테지만, 그것 때문에 나머지 식구는 살기 힘들었다. 그건 나라에서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다.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민주주의가 없는 건 아니고, 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독재가 없는 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야기해서 더 좋은 걸 찾아야 한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하나를 정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하나만 좋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답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예전처럼 덮어놓고 공산당은 나쁘다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6·25 때 한국 군인이나 미군 잘못한 일 없을까, 없지 않을 거다. 잘못한 일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여러가지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이건 나라보다 개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이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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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심, 우울할 때 보면 더 우울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가끔 생각하게 되었는데 죽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누구나 다 비슷한 건 아닐 테지만, 나이를 먹으면 여기저기 아프고 시간이 더 흐르면 혼자 살아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다. 날마다 적당히 운동하면 나이를 먹어도 혼자 살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서 말한 사람들은 어딘가 아프기도 했다. 아니 다 그런 건 아니구나. 나이를 먹으면 움직이는 데 힘이 들고 자주 넘어지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해도 누구나 그런 때를 맞이하겠지. 그렇게 될 때까지 살기보다 혼자 움직이고 제대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죽음을 맞으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건 아니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갈 때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때 사고로 죽는다거나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평소에 이런 생각 거의 안 한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고 사고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 누구한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심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은 과학 의학이 발달해서 사람이 오래 산다. 암은 빨리 찾아내면 다 낫기도 한다지만, 암으로 죽는 사람 여전히 많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좀 걱정스럽다. 언젠가 혼자 살 텐데 아프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면 좋을 텐데(이건 어려운 바람일까).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생각하고 가벼운 운동을 해야 할지도. 여기에 이런 건 없다. 다 우울해 보이는 일 뿐이다. 여든이 넘어서도 혼자 잘 살던 할머니가 차 사고를 내고 자꾸 넘어지게 되어 자식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냈다. 요양원은 안전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자고 일어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요양원에 갇혀 산다고 느꼈다. 나만 규칙 규정 싫어하는가 했는데 많은 사람이 자기 생활이 없는 요양원 싫어했다. 요양원 들어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내고 편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니.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다. 돈도 없고 힘 없어도 혼자 살도록 해야겠다. 요양원은 노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자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사람이 적다. 같이 살면 요양원에 가느냐 마느냐 생각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을 만들어서 나이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자기 생활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람이 늘고 돈이 오고 가니 성질이 바뀌었다고 한다. 보통 요양원과 비슷해졌다고.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면 그저 관리하기 쉬운 시설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텐데. 사람은 혼자 지낼 수 있는 집 같은 곳이 좋다.

 

한 의사는 요양원 분위기가 축 처진 것을 느끼고 요양원에 식물, 동물, 어린이를 들였다. 언젠가 요양원에서 사는 고양이 이야기를 보았다. 요양원 사람들은 고양이 때문에 그곳에서 사는 걸 좀 좋게 여기기도 했다. 요양원 노인과 어린이를 만나게 하고 식물, 동물을 키우게 하니 요양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을 하기도 했다고. 책임질 일이 있을 때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우리나라에도 요양원 있겠지. 어쩐지 이 말은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우리나라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사람 많지 않다고 했는데. 어떤 곳은 나이든 사람이 많이 살게 되면서, 그곳에서 끝까지 살 수 있게 의료 도움을 주었다. 몸이 아프다 해도 자기 집에서 살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거의 집에서 죽음을 맞았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도 죽기 전에 의료비로 쓰는 돈이 많다고 한 말 본 적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자신이 돌보았다. 아내는 병원보다 집에서 지내는 걸 더 편하게 여기고, 다리뼈가 부러졌을 때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지냈다. 한 사람이라도 건강하게 움직여서 그럴 수 있었구나. 혼자 사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다.

 

며칠 전에 본 《오베라는 남자》에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을 시에서 요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곳은 복지제도 때문에 그런 일을 하려고 했을까. 아내 몸이 안 좋아서 알츠하이머병인 남편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 생각하고 그런 거다. 아내는 잠깐 동안 도우미가 와주기를 바란 건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을 잊었다 생각하고 자기들 편할 대로 해도 괜찮을까. 아픈 사람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더 관심을 가지고 말을 들어야 할 텐데. 이건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바로 수술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거의 수술하라고 할 것 같다. 위험이 있을 때는 제대로 말해줄까. 이 책을 쓴 사람 아버지도 일흔이 넘어 척추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찾아간 의사는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사지 마비가 올 거다 하고, 다른 의사는 조금 지켜본 다음에 수술하자고 했다. 그 의사는 작가 아버지가 물어보는 것에 잘 대답했다. 작가 아버지도 의사로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수술해도 마비가 올 수 있었다. 암이어도 바로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가보다. 종양이 천천히 자라는 거였다. 수술할 때는 좋은 의사를 만나서 자기 뜻대로 살았는데, 나중에 화학 치료할 때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는 호스피스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호스피스가 꼭 죽음을 맞게 하는 건 아니었다. 죽기 전까지 편안하게 사는 걸 도와주는 게 호스피스다. 암 수술을 하고 한해쯤 아이들을 가르치다 다시 암이 나타나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사람은 호스피스 케어를 이용했다. 그렇게 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잠깐 할 수 있었다. 오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힘 없이 약에 취해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 볼 때 우울했는데 우울한 내용이어서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알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죽겠지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다 죽을지 생각해보는 거 괜찮겠지. 어떤 사람은 치료가 잘 되지 않는데도 나을 수 있다고 믿고 힘든 치료를 되풀이했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남겨두고 죽는 건 아쉽겠지만, 치료보다 식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었다.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집착하면 더 손에 잡히지 않고 놓으면 손에 들어오는. 이 말 알아도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지도. 의사도 환자한테 죽음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어야 한다. 사람은 다 나면 죽음으로 나아간다. 자신한테 소중한 게 무엇이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빨리 아는 게 좋겠다.

 

 

 

희선

 

 

 

 

☆―

 

우리는 지금도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곁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그리고 그저 수수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159쪽)

 

 

“지금 우리는 환자들이 삶을 어떻게 끝내고 싶어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내 친구 의사가 말했다. “문제는 그게 무척 늦었다는 거예요.”  (239쪽)

 

 

신기하게도 어떤 질병들은 호스피스 케어가 살아있는 기간을 늘리는 듯했다. 췌장암 환자는 평균 삼주를 더 살았고, 폐암 환자는 여섯주, 울혈심부전 환자는 여섯달을 더 살았다. 이 결과는 거의 선禪 메시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 오래 살려 애쓰지 않아야만 더 오래 산다는.  (273쪽)

 

 

우리 최고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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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0-03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씩 내려놓으면 가벼워 먼길을 갈 수 있다.

희선 2019-10-04 01: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가벼워지면 좋을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