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허수경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잘 몰라도 시를 보았다. 시에서 멀어지고 다시 몇해 전부터 ‘올해는 시를 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못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몇해가 지난 뒤에야 시를 가끔 보게 되었다. 여전히 시 잘 모른다. 얼마전에 박준 시집 보고 기형도 시가 떠오른다고 썼다. 그 말 쓰고 다음에는 기형도 시집을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허수경은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썼다. 박준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를 썼다. 우연히 그 시 봤을 때는 양귀자 소설집 《슬픔도 힘이 된다》가 떠올랐다. 허수경이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써서 허수경 첫번째 시집 제목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늘 그러는 건 아니다. 거의 그때그때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허수경 시집 이야기를 누군가 한 걸 보고 여러가지가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허수경 시집은 두권밖에 없다. 난 허수경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건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지난해 《마왕 신해철》에서 허수경 글 보았다. 두 사람은 라디오 방송 때문에 만났다. 마왕이 처음에 낸 책에 작가 누나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데, 그 작가 누나가 허수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라디오 방송 작가가 있다는 거 알았지만, 시인이 하는지 몰랐다. 시 쓰고 라디오 방송 작가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병률뿐이다. 더 있을지도 모를 텐데. 허수경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1988년 11월에 나왔다. 한달 뒤 대학가요제에서는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는다. 1988년이 거의 끝날 때 무한궤도는 알았지만 허수경은 몰랐다. 허수경 언제 알았는지 모르지만, 허수경이 독일에서 산다는 건 알았다. 그건 언제 어떤 글을 보고 안 건지. 우연히 안 걸 잊지 않았던가보다. 허수경 시집은 두번째 나온 《혼자 가는 먼 집》을 먼저 본 것 같다. 그걸 보고 첫번째 시집 알고 사 봤을지도.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집 제목은 시 모두를 보고 지을 때가 많을까, 괜찮은 구절을 제목으로 쓸 때가 많을까. 시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쓸 때도 있다. 이 시집 제목은 <탈상>이라는 시에 든 구절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 그 안에서 슬픔은 사람한테 힘이 될까.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 그런 말하면, 그 말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어하지 누가 슬픔이 찾아오길 바라겠는가. 슬픔이 찾아오면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슬픔도 힘 거름 자랑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게 잘 지나가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여러 일을 겪고 단단해진다. 난 아직도 단단하지 못하지만. 단단한 게 하나만 고집하는 건 아니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슬픈 일을 겪고 자라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자신한테만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내

배냇기억처럼  (67쪽)

 

 

 

 

근대사

 

 

 

입술만큼 여린 게 없다

우리가 그대들 가슴을 짓이겨 놓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멀리 새벽은 우리가 아프게 한

그대들 가슴에 걸려 있고

우리는 새벽달 되어 그 가슴에

떠다닌다.

 

용서해다오.

안 된다.  (70쪽)

 

 

 

 

아버지, 저를 신고하지 마세요

흔하디 흔한 집에서조차

우리가 분단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3>에서, 127쪽

 

 

 

이 시집이 나온 1988년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 밝지 않다.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늘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경제가 아닌 다른 데 마음을 쓰면 더 나을 것 같지만. 힘들어도 사람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을 거다. 별로 밝지 않은 1988년을 추억하는 것은 어린시절 맛본 따스함 때문일 듯하다. 이 시집에는 1980년대 이야기도 있지만, 그때보다 지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1988년에 그때를 생각한 건 힘들 때와 1988년이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그것보다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잊어가는 이야기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이라고 잊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잊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시가 어떤지 잘 말하지 못한다 해도 시 볼까 한다. 슬픔을 거름 삼아.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죽어서도 편하지 않구나

 

  무덤 수난사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유명한 위인들

  Rest in Pieces (2013)

  베스 러브조이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2015년 09월 10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끝이 아닌 사람도 있다니, 이건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죽은 사람 시신 손이 잘린 이야기 본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이다. 손이 잘린 사람은 한 사람 더 있다. 쿠바에서 혁명을 이룬 체 게바라다. 체 게바라는 다른 곳에서 혁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그곳에서 잡히고 죽임 당했다. 시신을 돌려주지 않고 손만 잘라서 여러 사람과 함께 묻었다. 나중에 시신이 쿠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죽고 나서 자신의 나라나 자신의 바람대로 된 사람도 있지만 바람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많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살아서도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고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구나. 재미있게 볼 수도 있지만, 죽은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죽은 사람은 그걸 모르겠지만, 산 사람이 죽은 사람까지 이용하려 하는 게 느껴진다. 모두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거의 돈을 노리고 무덤을 파고 그곳에서 뼈를 가져가거나 팔았다. 오래전에는 보물과 함께 시신을 묻기도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종교에서는 죽은 사람도 성물로 여기기도 했다. 성인이라고 여긴 사람을 교회에 묻고 시신을 미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것 같다. 어떤 사람 시신에서 나오는 피나 액체가 병든 사람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 진짜 그런 일 일어났을까. 그 사람 시신은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으로 나뉘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런 일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떤 사람은 18세기 말 런던에서 해부학교수한테 팔렸다. 그때 런던에서는 해부할 시체가 많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은 무덤을 파서 시체를 팔았다. 나라에서 해부하는 걸 허용하지 않고 죄인을 해부하라고 해서 그러기는 했다. 그때 제대로 잠들지 못한 사람 많겠다. 제레미 벤담은 18세기에 공리주의를 말한 사람으로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는 법을 합법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 일은 제레미 벤담이 죽은 다음에 이루어졌다. 제레미 벤담도 자신의 시체를 공개해부 요청했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그때 의학은 더 발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덤을 파는 사람은 줄어들었을까. 그건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에도 무덤에서 시체를 훔쳐간 사람 있지 않았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죽으면 유골을 숭배하지 않도록 화장하기를 바랐다.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가 해부를 한 다음 아인슈타인 뇌를 가지고 갔다. 그런 일을 하다니. 생각하면 좀 끔찍하다. 아인슈타인 잘 모르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뇌를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뇌과학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아서 바로 알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 뇌는 아주 많은 조각으로 나뉘었다. 시간이 흘러서 조금 알아낸 게 있기는 하지만, 다는 아닐 거다. 어떤 사람 뇌가 어땠는지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다른 사람은 어떨까 하는 거 조금 알고 싶어하기도 한다. 뇌가 어떤가 하는 것보다 글을 어떻게 쓰고 어떤 책을 보나 정도. 관심이 거기에 쏠려서 그런가보다. 죽었는데 아직 살았다는 소문이 퍼진 사람도 여럿 있다. 아돌프 히틀러에 엘비스 프레슬리.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스탈린이 처음에는 그것을 숨겼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팬들이 살아있다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죽으면 그걸 믿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인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 인체 조직이 병든 사람 거라는. 그런 일에 처음 쓰인 사람은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다. 방송 진행인이고 언론인인 앨리스터 쿡으로 이 사람은 영국에는 미국을 알리고 미국에는 영국을 알렸다고 한다. 암으로 죽었는데 어떤 게 인체 조직 이식에 쓰였다고 한다. 그 일을 알고 미국에서는 더 철저하게 조사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일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장기뿐 아니라 인체 조직도 이식할 수 있으니까. 죽는 사람이 그것을 기증한다면 모를까 기증한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조직을 훔쳐가는 건 사람으로 할 일이 아니다. 병에 걸린 사람 것은 더하다. 그게 다른 사람 몸에 이식되면 그 사람은 병에 걸릴 테니까. 누군가를 도우려고 하는 것이 안 좋은 일로 보이면 안 될 텐데, 좋은 일에는 꼭 어둠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 게 없어져야 할 텐데 말이다.

 

맨 앞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을 말했는데, 영부인 에바 페론은 삼십대에 자궁암으로 죽었다. 에바 페론 시신은 방부처리하고 썩지 않게 했다. 그런 것을 하다니. 이렇게 시신이 썩지 않게 하고 사람들한테 보이려고 한 사람이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어머니와 여동생 곁에 묻히고 싶어했는데 미라로 만들었다. 스탈린이 시신 숭배를 이용해서 공산주의를 선전하려고 했다. 몰랐는데 김일성, 김정일도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북한이 나오다니. 베토벤은 죽기 전에 아주 많이 아팠다. 귀가 먼 이야기는 알았는데 다른 건 몰랐다. 모차르트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베토벤은 자신이 죽은 다음 해부해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를 바랐다. 그때 병명은 알 수 없었고 뼈만 조금 사라졌다. 모차르트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병명 알 수 있을까. 골상학 때문에 도둑맞은 뼈도 많다고 한다. 두개골을 장식한 때도 있다. 누군가는 심장을. 이건 아주 가까운 사람일 때 그렇게 했겠다. 어딘가에서도 무덤에서 뼈를 가지고 오는 게 나왔는데 그건 옛날이 아니다. 뭐였는지 잊어버렸는데 이런 말을 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죽으면 누구나 편하게 잠들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냉동인간이 되어 나중에 살아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한번 죽은 사람을 냉동했다 해동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싶지만. 삶은 한번밖에 없다. 한번밖에 없는 삶이기에 더 소중한 게 아닌가 싶다. 살았을 때나 몸이 중요하지 죽으면 그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은 사람은 마음속에 묻는 게 좋다고 본다. 어쩐지 지금도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시신은 이런저런 일을 겪을 것 같다. 그런 일은 이제 없으면 좋겠다.

 

 

 

 

☆―

 

결국 우리 몸은 먼지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 정신, 작품, 추억은 그보다 생명력이 길 수 있다. 이름이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아마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운 점일 거다.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아울러 자기가 죽고 나서도 오래 살아남을 뭔가를 만들고자 애쓴다.  (345쪽)

 

 

 

 

 

 

 

나는 하나가 아니다

 

  나란 무엇인가   私とは何か (2012)

  히라노 게이치로   이영미 옮김

  21세기북스  2015년 01월 06일

 

 

 

 

 

 

 

 

 

 

 

 

 

사람은 태어나면 부모와 가장 먼저 만나고, 부모에서 형제자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만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 안에는 대하기 편한 사람도 있지만 대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건 대체 왤까.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겠지. 어떤 사람은 누구하고나 잘 지내기도 한다. 그건 처세술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한테 맞게 자신을 바로 바꾸는 걸까. 그렇게 바꾸는 건 자신이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닐 거다. 가끔 책을 보면 일부러 자신을 바꾸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사람이 아주 많은 건 아니겠지. 사람한테는 여러 면이 있고 여러 가면을 쓴다는 말도 한다. 가면을 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못마땅하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책에서 보고 별로다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거의 책에서 만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한사람을 개인(individual)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있다는 뜻으로 분인(分人 dividual)이라 했다. 분인, 처음 봤을 때는 뭐지 했다.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책을 죽 보고 그렇구나 했다. 이 말이 널리 쓰일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나 생각할 거리는 있다. ‘진정한 나’는 하나가 아니다는 거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친한 친구와 만나면 편하게 말하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덜 가깝겠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또 조금 달라지고. 한사람을 여러 사람이 다르게 말하는 것을 소설에서 본 적 있다.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닐까. 그건 다 그 사람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나를 분인의 집합체라 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남은 더 알기 어렵겠다. 그 사람한테 다른 면이 있다고 해서 놀라지 않는 게 좋을지도. 시간이 흘러서 새로운 면을 알게 되면 기쁠 것 같다. 전보다 가까워진 것 같아서. ‘나’보다 ‘남’을 생각하다니.

 

자신은 남을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진다. 사람은 혼자 자신이 되는 건 아니다. 여러 분인으로 살고 싶어한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아주 많은 분인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하고 사귀기 어렵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것을 분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라 한다. 분인 만들기는 어렵다. 사람은 서로 배려하고 사귀는데 어떤 때는 그게 어렵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맞춰주기를 바란 건 아닌지, 하는. 나는 전화하고 만나는 거 싫어한다. 전화가 아닌 걸로 연락하기를 바란다. 나는 안 좋아해도 상대는 전화가 빠르고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좀 다른 걸까. 나는 아는 사람하고 만나는 건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이 거기에 끼면 아주 싫다. 그건 왜 그럴까. 한사람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하고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분인 만들기가 싫어서일지도. 나는 친구가 많은 것보다 적은 게 좋다(이러다보니 별로 없고 지금은 더 없다).

 

분인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천천히 만들어질 때가 많고 무엇인가 공통된 것이 있으면 바로 만들어지기도 한단다. 누군가하고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까워진 느낌이 들지 않고, 누군가하고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도 더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하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말은 없다. 조금 아쉬운 일이다. 그런 말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를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만나면 자신도 좋을 때가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자신까지 싫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 전체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고 좋을 때와 싫을 때 나타나는 분인 때문이라 한다. 이 말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분인을 좋아하는 거다. 이건 좋아하는 사람일 때 그 사람을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한테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걸 느끼면 그런 자신을 좋아하겠다.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누구든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겠다. 자신을 좋아하려면 그런 분인을 크게 하면 된다고 한다.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그때 생기는 분인을 아주 싫어해서 자신을 낮잡아 보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진 분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 마음 많이 쓰지 마라 한다. 이 말 좋기는 한데 그렇게 하기 어렵다. 긍정스러운 분인이 나타나게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분인이나 나쁜 분인을 만들 수 있다. 할 수 있으면 좋은 분인만 만들고 싶은데, 그건 어렵겠지. 히라노 게이치로는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뿐 아니라 아주 많은 분인까지 죽이는 거다 했다. 그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 분인은 그 사람이 죽어서 더는 달라질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슬픈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 해도 그 사람 때문에 생긴 분인이 남아 있어서 위로도 된다. 자신이 죽었을 때도 다른 사람 안에 자신을 만났을 때 생긴 분인이 남는다. 이런 말 아주 모르던 건 아니기는 하다. 누가 죽어서 슬픈 게 그 사람을 더는 만나지 못하고 말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긴 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이것도 맞는 듯하다.

 

진정한 자신 하나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여러 가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그것은 남도 마찬가지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어떨까

모두가 날 좋아한다고

몸에 좋은 생각을 하면 어떨까

보기보다 난 괜찮다고

 

 

<몸에 좋은 생각>에서, 우쿨렐레 피크닉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나하고는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했다. 안 좋은 일도 좋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 우울함에 빠지는 것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낫겠지.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즐거운 거다.

 

 

 

웃는 연습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얼굴 찡그리기보다

살짝 웃기

자주 웃지 않아 어려울까

언제든 웃을 수 있게

웃는 연습을 하자

 

감정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거기로 아주 쉽게 퍼져가지

많이 퍼뜨려서 좋은 것에

웃음만한 건 없지

언제든 웃을 수 있게

웃는 연습을 하자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좋지

 

 

 

봄이다, 바람은 차가워도. 사람은 삼월이 오고 봄이라 해도 바람이 차가우면 춥다 생각하지만 나무는 바람이 차가워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그걸 보면 자연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봄이 와서 좋다는 생각을 덜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책을 봐야겠다. 생각하려면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좋겠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人魚姬: 探偵グリムの手稿 (德間文庫) (文庫)
北山 猛邦 / 德間書店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어공주 : 탐정 그림의 수기

기타야마 다케쿠니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이레에서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이야기 속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한스와 루트비히는 우산도 쓰지 않고 다녔다. 책을 읽을 때 추워서였는지 몰라도 비 맞고 다니는 한스와 루트비히를 보니 나도 비 맞는 것 같았다. 눈은 괜찮아도 비 맞고 다니는 건 아주 싫다. 한스는 비 내리는 밤에 밖에 나갔다 와서 젖은 걸 닦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들어가서 잤다. 그러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 한스 대신 내가 가벼운 감기에 걸렸나보다. 잠시 열 나고 머리가 지끈지끈 했다. 조금 추워서 그랬나보다. 책 볼 때 방 안 공기가 무척 차가워서 손 내놓을 수 없었다. 겉옷 소매를 내려서 손을 덮고 책을 잡았다. 장갑을 끼는 게 나았을지도. 이걸 쓰는 지금은 책 볼 때보다 덜 추워서 손 많이 시리지 않다. 책 볼 때는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쓸 때는 조금 움직여서 괜찮은 건지도.

 

나는 어렸을 때 동화 거의 못 봤다. 잘 알려진 동화는 책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만든다. 안데르센 동화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안에서 인어공주는 만화영화로도 많이 만들었다. 그것을 다 본 건 아니지만. 인어공주는 몇해 전에 책으로 봤다. 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인어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이 되었지만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고 인어는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건 기억한다. 이 책 보고 나니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 보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 그 책 다시 봐야지 생각했는데. 인어공주는 슬픈 이야기다. 슬픈 이야기를 누군가는 행복하게 바꾸기도 했다. 한때는 그렇게 원작과 다르게 해도 괜찮을까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야기라는 건 달라질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 알았던 동화가 실제는 다르게 쓰였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언젠지. 이야기는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생각하면 상상력도 커지지 않을까. 하지만 난 그런 생각 못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주 새로운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나 대단한 작가가 쓴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주겠지.

 

언제부터 동화를 새로 쓰게 됐을까. 동화에서 다른 걸 보고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대단하다 여기고 부럽다. 동화를 미스터리로도 쓰다니. 그런 책 많이 못 봤지만 일본드라마 <앨리스의 가시>는 보았다. 제목에 앨리스가 들어간 책도 많고, 백설공주나 빨간모자도 미스터리로 다시 썼다. 오래전 그림형제가 모은 독일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미스터리하고도 이어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분홍신>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것 말고도 더 있겠지.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처음 만난 작가로 이 책은 한국말로도 나왔다. 비슷한 때 우연히 문고로 나온다는 걸 알고 이렇게 보았다. 맨 처음에 아무 말 없이 한스와 루트비히라는 이름을 썼다. 한스는 동화 <인어공주>를 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고 루트비히는 그림형제에서 다섯째 루트비히 에밀 그림이다. 그림형제는 정말 다섯이었을까. 그림형제는 몇이었나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 책 제목 다음에는 ‘탐정 그림의 수기’라는 말도 있다. 오래전에 작가였던 사람을 탐정으로 나오게 하는 소설도 많다. 그것도 많이 못 봤다. 작가는 자신이 탐정으로 나오는 소설 좋아할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많으니 어떤 마음일지 잘 모르겠다. 아니 나는 좋을 것 같다. 늘 다른 사람 이야기만 썼으니까. 자신이 소설 속 사람이 되는 것도 기뻐하겠다. 여기에서는 이제 열한 살인 한스(안데르센)와 그림형제 막내 루트비히를 만나게 했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한스가 커서 쓰는 인어공주는 이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본래 다른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인어공주가 거품이 되고 사라진 뒤부터 시작한다. 왕자는 폭풍이 일어나고 배가 부서졌을 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인어공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 왕자 앞에 말은 못하지만 아름다운 인어공주가 나타난다. 왕자는 인어공주한테 마음이 끌렸지만 마음을 알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지금 이거 생각하니 왕자 바보구나 싶다. 말 안 한다고 모를 수 있나 싶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도 하지만. 이건 그 인어공주가 아니니 그건 다음에 보고 생각해야겠다.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한 건 정치 때문이기도 했다. 그 공주가 왕자를 구해준 사람이라 여긴 왕자는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왕자는 결혼한 뒤 사라진 시녀, 그러니까 인어공주를 찾았다. 그때서야 왕자는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결혼하고 이틀 뒤에도 왕자는 사라진 시녀(인어공주)를 찾으러 다니다가 아무도 모르게 별궁으로 돌아오고,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사람들은 사라진 시녀,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였다 여겼다. 이건 인어공주가 사는 바닷속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인어공주는 여섯자매에서 막내였다. 넷째언니 셀레나는 사람이 되어 왕자를 죽인 게 누군지 밝혀내려고 땅으로 왔다.

 

한스와 루트비히가 만나고 함께 바닷가에 가고 그곳에서 셀레나를 만난다. 한스는 셀레나 말을 모두 믿었다. 한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상의 세계를 더 좋아했다. 얼마전에 아버지가 죽고 슬픔이 가득할 때 루트비히와 셀레나를 만났다. 여기 나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스 이야기는 진짜일 거다. 루트비히는 스물다섯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그림을 그렸다(예술 공부를 하기 위해 다녔다). 셀레나 말을 다 믿지 않았지만 한스와 함께 셀레나를 돕기로 한다. 셀레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녀한테서 사람이 되는 약을 받는 대신 심장을 맡겨두었다. 심장은 이레 안에 다시 찾아야 하고, 왕자를 죽인 범인을 찾지 못하면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고 했다. 세사람이 별궁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말을 들어봐도 그 안에서 왕자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대체 누가 죽인 거지 했다. 누군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같으면 과학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알 텐데, 이야기는 19세기여서 그건 좀 어려웠다. 아니 왕자가 죽은 모습을 봤다면 루트비히가 좀더 빨리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루트비히는 탐정이라 할 만하다. 그림을 그려서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였을지도.

 

왕자를 죽인 사람을 찾는 이야기 사이마다 다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그 이야기는 왜 왕자가 죽임 당했는지 알게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다 알기 어렵다. 남은 이야기까지 봐야 그렇구나 할 거다. 누가 왕자를 죽였는지 루트비히가 말한다. 거기에는 어떤 트릭이 쓰였다. 그걸 봤을 때 왜 처음에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했다. 이런 건 보다보면 느낌이 오기도 하는데, 다른 이야기 때문에 그 생각을 못했나보다. 그것도 다른 인어공주 이야기다. 사람을 좋아해서 무슨 일이든 해버린. 책을 다 봤을 때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은 그 인어공주도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음을 상대한테 전하지도 못하고 그 사람을 위해 이것저것 했으니 말이다. 한 사람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 상처주는 건 좋지 않은 일인데, 그 인어공주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인어든 사람이든 마음이 아주 다르지 않게 보인다. 이걸 끝까지 보면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다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생각해도 괜찮다.

 

루트비히와 셀레나를 만난 한스는 마음이 한층 자란다. 상상의 세계만 보려 했는데 평범한 현실도 보려 한다. 그래도 상상의 세계를 버리지 않겠지. 루트비히뿐 아니라 셀레나도 재미있다. 만화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모습이다. 셀레나도 한스를 만나고 사람을 조금 알게 되었다. 둘, 셋은 서로한테 좋은 영향을 주었구나. 탐정 그림(루트비히)은 다른 이야기에서도 만나고 싶은데 작가가 쓸지 모르겠다. 이거 하나로 끝날지도.

 

 

 

희선

 

 

 

 

☆―

 

“바다가 거칠어지면 사람이 사는 땅도 멀쩡하지 않겠죠? 셀레나 씨도 말했어요. 당신 나라 일이나 이쪽 나라 일이나, 그런 거 전 잘 몰라요.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저는 셀레나 씨를 돕고 싶어요. 힘들어하는 사람 하나 돕지 못한다면…… 저는 살 자격이 없어요. 살아도 되는 곳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인어공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셀레나를 돕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건 당신이 말한 자격과 바꿔 말해도 괜찮겠지요. 사람이든 아니든 똑같아요.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303~3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연히 이 시집 제목을 보고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지요. 시인 이름은 박준인데 김준으로 잘못 안 적도 있습니다. 비슷한 이름 하나 더 있네요. 박연준. 외자가 아니고 남자 이름이지만 여자더군요. 시집 제목은 《당신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예요. 이 제목에서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어다가 먹은 건 밥이다 멋대로 생각했지요. 좋아하는 사람 이름만 생각해도 밥 안 먹어도 배 부를 듯하여. 참 단순한 생각이지요. 이 안에는 제목과 같은 시도 있습니다. 시에서 이 말은 ‘아픈 내가’로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 말을 뺀 말이었다니. 제목에서 말하는 당신 이름으로 지은 건 약이겠네요. 그 약 먹으면 아픈 거 잘 나을까요. 당신 이름은 밥도 되고 약도 되는군요. 그런 당신 이름 있습니까. 그런 이름 가진 사람 부럽네요. 눈에 안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거여서 그런 게 뭐가 좋을까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름은 그래도 그건 사람이 가진 것이니 이름을 생각하면 바로 그 사람이 떠오르겠지요.

 

제가 시를 만난 건 책을 보기 시작한 때와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예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국어와 문학 시간에 시를 조금 보았습니다. 그때는 일제강점기 때 시인 시를 많이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도 책에 나온 것 같기도 하네요. 현대 시 배웠을 텐데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시가 아닌 시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고 산 시집은 어떤 것일지. 그런 건 기억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생각나지 않네요. 책방에 가서 시집이 많이 꽂힌 곳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이 보이면 가끔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 게 좀 오래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오래 하지 못했네요. 책과 멀어진 때가 있었던 것도 조금 아쉽습니다. 아쉬운 건 그것만이 아니군요.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는 일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무언갈 하지 않아서 나중에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떻게 하죠.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 하려고 하는데 어떤 건 왜 했을까 할 때도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바라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요.

 

몇해 전(2013)에 오랜만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 하나 샀습니다. 그건 2012년에 나온 거군요. 이것도 2012년에 처음 나온 건데 책 만듦새가 조금 다릅니다. 새롭게 했다가 다시 바꿨나 봅니다. 책 제본형식 잘 모르는데 두 권이 좀 달라요. 오랜만에 산 시집은 꿰맨 거지만 이건 붙였어요. 이제는 그렇게 만든 거 살 수 없겠습니다. 어쩐지 아쉽네요. 그때 몇권 더 살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게 별로다 여겼는데.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은 예전에도 조금 샀어요. 예전보다 커져서 다른 데서 나온 시집도 달라졌을까 했는데, 문학과지성사와 창비랑 민음사는 그대로더군요. 시집 나오는 곳 더 있을 텐데. 시를 다시 봐야지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책을 보고 그것을 꾸준히 쓴 다음인 것 같네요. 그전에는 시집 봐도 아무것도 못 썼는데, 시집 봐야지 생각했을 때도 그것을 보고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못 봤습니다(이런 말 또 했네요). 시집에 담긴 시 이야기 못하면 다른 거라도 하죠. 지금까지 재미없는 이야기 늘어놓았네요.

 

 

 

지금은 우리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40쪽)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에서, 58쪽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음 한철>에서, 69쪽

 

 

 

한 이삼 일

기대어 있기에는

슬픈 일들이 제일이었다

 

<2박 3일>에서, 96쪽

 

 

 

앞에서 시를 언제부터 보았다고 말하고 박준이 쓴 시가 어떻다 말하려고 했는데, 다른 말만 했습니다. 전에 오랜만에 산 시집은 한번 읽어봤습니다. 그때는 써야 해 하는 마음으로 보기보다 그냥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까 합니다. 박준 시 다 안다 말하기 어렵지만 저한테 맞는 편입니다. 옛 정서가 느껴진다고 할까. 제가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그것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를 슬픔이나 아픔. 기형도 시가 조금 생각나기도 합니다. 기형도 시보다는 덜 어둡습니다.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보다 박준과 같은 시인 허수경이 쓴 글이 더 좋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 잘 몰라서 그렇군요. 그런 것도 자주 보면 조금 알 수 있을까요. 박준이 말하는 너, 미인, 당신은 뭘까 싶습니다. 같은 사람일지. 미인은 좀 별나기도 하죠.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82~83쪽)

 

 

 

시란 무엇일까요. 시를 봐도 시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네요. 박준이 쓴 시를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썼다고 느꼈습니다. 이건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래야겠지요. 시, 잘 보고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을 잘 말할 수 없다 해도. 시가 제게 찾아오는 일도 거의 없겠지만, 스치는 생각 붙잡고 싶기도 합니다. 이것도 있네요. 스치는 생각 붙잡기. 빨리 붙잡지 못하면 놓칩니다. 시를 밥과 약으로 생각해도 괜찮겠습니다, 당신 이름 대신.

 

 

 

아픈 난 시를 지어다가 며칠 먹었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 같은 재난

 

  체르노빌의 목소리   Voices from Chernobyl

  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 (2008)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김은혜 옮김

  새잎  2011년 06월 07일

 

 

 

 

 

 

 

 

 

 

 

 

해마다 여러 분야에서 인류 복지에 이바지한 사람한테 노벨상을 준다. 누가 만든 건가 했는데 노벨이 죽을 때 남긴 말이었다(예전에 노벨이 나오는 책 본 것 같은데 거의 잊어버렸다). 노벨이 여러 가지 일을 했을 텐데 생각나는 건 화약뿐이다. 화약이 인류한테 좋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한 사람과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쓴 거다. 체르노빌을 내가 언제 알았는지 모르겠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알았을지도. 그때 체르노빌 이야기도 나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전에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알고 왜 그런 걸 썼는지 몰랐던 것 같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났다. 그때 바로 몰랐다 해도 나이를 좀 먹은 다음에는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은 알았다. 원자력 발전소 핵과 전쟁 때 쓰는 핵이 다를까. 나도 그게 같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같은 거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다른 곳 사람이 체르노빌 사람을 돌연변이로 보았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벨라루스 국경과 가까웠다. 벨라루스에는 원전이 없었는데,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그곳 사람도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 사람)가 되었다. 지금은 거의 서른 나라에 원자력 발전소 443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거 몰랐는데 엄청난 숫자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곳에서 가까운 나라까지 영향을 받는다. 가까운 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겠다. 사람이 방사선에 오래 쏘이면 암에 걸리고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 내가 아는 건 이만큼이다. 다른 일도 일어날 텐데. 기형아도 있다. 아무리 좋은 거라 해도 거기에 생물한테 해를 끼치는 게 있다면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핵 폐기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사람은 왜 바로 얻을 것만 생각하는 걸까.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사람이 지구 동·식물을 멋대로 잡고 캐내서 사라진 것도 많다. 지구 동·식물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안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이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아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건지 말할 수 없다.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은 맞는 듯하다. 내가 겪은 건 재난이라기보다 재해일까.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원전 사고와는 많이 다르지만. 몇달 전에 원전 사고 난 뒤 후쿠시마를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곳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지진 해일로 집을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후쿠시마 사람은 원전 사고 때문에 아예 돌아갈 수 없다. 오염이 심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몇대에 이어서 산 사람도 있었는데. 작고 보잘것없다 해도 자기 집이 가장 편하다.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간 소방관은 모두 방사선에 오염되었다. 죽은 뒤 시신은 식구들한테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고방사능 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전 해체를 한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주지 않았다. 돈을 줄 테니 하라는 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식구를 위해 그곳에 간 사람도 많을 거다. 가장 많이 간 건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 사람들을 영웅이라 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누군가 그 사고가 넓게 퍼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체르노빌에 간 사람도 있겠지. 보호장비라도 제대로 갖췄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보다 보통 사람은 잘 모른다. 방사선이 사람이나 동·식물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높은 사람은 요오드화칼륨을 먹었다고 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죽는다. 이건 어느 사회든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동물을 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 동물은 사냥꾼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 후쿠시마 다큐멘터리에서 소를 죽이지 않고 그 뒤에도 키우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동물도 불쌍하다.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아픈 사람 많을 거다. 그건 대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는 더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조금 안 것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내가 해야 하는 건 그것이겠지. 후쿠시마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

 

모두 전쟁과 견준다. 하지만 전쟁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셨고, 내가 책에서 읽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는 무덤이 세 개 남아있다. 첫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무덤이고, 두번째 무덤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번째 무덤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249~250쪽)

 

 

 

 

 

 

 

잘 모르던 이야기

 

  전쟁은 여자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2015년 10월 08일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오랫동안 서로 자신이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싸웠겠지요. 세계전쟁은 두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모릅니다. 언젠가 어떤 일 때문에 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 거 봤는데 잊어버렸습니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만이 이 세계에 있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했군요. 그리고 아리안이 아닌 유대인을 엄청나게 죽였습니다. 독일하고 소련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던가요. 2차 세계전쟁 어디와 어디가 싸웠는지 확실하게 몰랐나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과 여러 나라가 연합하고 연합군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는데. 독일이 소련을 점령한 건 잘 몰랐습니다. 소련에서는 제2차 세계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한답니다. 그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요(러시아와 먼저 싸운 다음인지). 세계는 다 전쟁에 휩싸였겠습니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다니. 아프리카나 호주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 잠깐 했습니다. 잘 몰라서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했군요.

 

지난해(2015)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예요.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면 소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어떤 글이든 다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인류 복지에 이바지했다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저널리스트라는 거 몰랐을 때는 이 책 소설인가 했습니다. 먼저 본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소설 제목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랬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씁니다. 책날개에 ‘목소리 소설’이라는 말이 있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에서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난 뒤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를 만나고 그것을 쓰고, 다음에는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을 만난 것을 썼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거였다는 걸 지금 느껴서 말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 말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귀 기울려 들으려면 참을성이 있어야겠습니다. 말을 이끌어내기도 해야지요. 자료를 찾고 여러 사람 말을 듣고 소설 쓰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겠네요. 처음 만났을 때 듣고, 그 뒤에 몇번 더 들으면 그 감정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앞에서 독일이 소련에 쳐들어간 거 몰랐다고 했잖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모두 러시아 여성입니다. 그것도 전쟁에 나간.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과 아이가 가장 힘들잖아요. 아이와 집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러시아 여성 백만명 이상이 전쟁 한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전쟁이 배경인 영화 아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거기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은 거의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간호사일 때가 많았습니다. 다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전쟁을 말하는 건 남자 목소리였다는 말 맞네요. 소련이라 하고 러시아 여성이라 하다니. 어쨌든 소련은 공산주의였지요. 사람들을 세뇌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이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70년대에 ‘나라를 위해서’ 라는 말 많았군요. 한국전쟁 때도 다르지 않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어린 여자아이들도 전선에 가려 하고 갔습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그런 사람은 커서 돌아오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 여성도 그 나이에 끌려갔군요. 전쟁에 나간 러시아 여성도 안됐고,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여성도 안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억지로 끌려간 사람뿐 아니라 속고 간 사람도 있지요.

 

전쟁 한번 겪은 적 없습니다(‘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네요). 총을 쏘고 싸우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저런 곳에 가는 거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총알에 맞을 수 있고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전쟁을 틈타 사람을 죽이고 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이런 생각을 하다니). 어린 여자아이들은 전쟁이 어떤 건지 잘 몰랐기 때문에 전선에 가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여자가 어떤지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예쁜 거 좋아하지만 예쁘게 꾸미는 건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걸 아예 못하는 형편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전쟁터에서는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옷은 여자한테 맞는 게 아니고 남자옷을 입었습니다(속옷도). 예쁜 옷이 있는 독일 어느 곳에서는 그 옷을 입고 잠들고, 모자 가게에서는 모자를 쓰고 잤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도 있었군요.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니 아이가 못 알아보기도 하고, 어떤 어머니는 자기 딸을 못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도 두 가지 삶을 살았다고 하더군요. 남자와 여자.

 

이 책은 1983년에 썼다고 합니다. 두해 동안 책으로 내지 못하고 1985년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더 나중에 만났네요. 40년이 지난 뒤에도 전쟁을 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나라에서는 쉽게 말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전쟁터에서 남자는 여자를 돕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지만, 혼자 쓸쓸하게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는데, 나중에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났습니다. 전쟁에 나가 힘들었는데 돌아와서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어디든 비슷할 수가 있을까요. 남성만 영웅으로 보다니. 스탈린은 포로로 잡힌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면 반역자로 보고 수용소에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평화로운 세상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겠네요. 다른 나라 여성 이야기라 해도 우리나라 생각 안 할 수 없네요. 우리나라에 일본군 위안부가 알려진 것도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였잖아요. 여자와 남자 몸은 확실하게 다르죠. 여자는 이런 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선에 가고 하룻밤 만에 머리가 센 사람도 많더군요.

 

저도 같은 여자여서 여자 쪽을 더 생각했네요. 남자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여자보다 철이 없다 그 정도만 압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걸 알고 알려고 해야겠네요.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사람이 서로를 알려고 하면 전쟁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요. 이제는 나라보다 세계를 생각해야지요.

 

 

 

희선

 

 

 

 

☆―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268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3-14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5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