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척 덥다.

 

얼마전까지 장마였는데, 비는 많이 오지 않았다. 비가 별로 오지 않는 장마라니. 한국에는 2016년 여름에 비가 얼마 오지 않았지만, 어떤 나라에는 엄청 내려서 비 피해를 입었다. 하늘은 왜 그렇게 제멋대론지. 비가 오기를 바라는 곳에 적당히 뿌려주면 좋을 텐데. 여름이면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비가 많이 올 것을 걱정한다.

 

더울 때는 에어컨을 틀어둔 건물 안에 있는게 낫지만, 지금은 점심을 먹고 잠시 바깥에 나왔다. 가끔은 더위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덥지만 나무 그늘밑 의자에 앉아 있어서 좀 낫다. 바람이라도 불면 더 시원할 텐데.

 

이렇게 더운 날이면 몇해 전 여름이 생각난다. 그해 여름도 무척 더웠다. 그해 여름에 난 집보다 도서관에서 지낼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집보다 도서관이 시원하다 생각했는지 도서관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래도 난 일찍 가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기보다 그냥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가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책을 보다 잠시 쉬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서관 안은 시원했지만 바깥은 무척 더울 것 같았다. 그때가 마침 한낮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창밖을 보면 바로 작은 공원이다. 우연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밑을 보니 그곳 그림자만이 다른 곳보다 진했다. 자꾸 보니 그게 아주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정말 움직였나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조금 움직였다. 그 그림자 쪽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는 게 보였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고양이한테 그걸 알릴 수 없었다. 고양이가 검은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니 고양이 몸이 조금씩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양이가 소리를 냈을 텐데, 어쩐지 그 소리가 다른 사람한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곳은 시간이 멈추고 그곳만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곧 고양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본 검은 그림자는 뭐 였을까. 아직도 그걸 모르겠다.

 

조금 전에 눈 끝에서 검은 게 움직였다. 몇해 전에 본 검은 그림자일까.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검은 그림자가 내 발밑으로 온 건 순식간이었다. 내 몸이 조금씩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대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죽는 건지.

 

“세경 씨, 여기서 뭐 해.”

 

내 몸이 검은 그림자 속으로 반쯤 들어갔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눈 끝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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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

 

  앨리스 죽이기   アリス殺し (2013)

  고바야시 야스미   김은모 옮김

  검은숲  2015년 12월 21일

 

 

 

 

 

 

 

 

 

 

 

 

 

몇해 전에 루이스 캐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 보았다. 소설이 아닌 동화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는 잘 몰라도 만화영화가 하면 보기도 했는데, 만화영화로 본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가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다. 나타났다 조금씩 사라지는 체셔고양이, 작은 애벌레, (사람이 아닌) 아기를 돌보는 여자는 누군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 공작 부인이라는 걸 알았다. 시계를 보고 달려가는 흰토끼.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에 이끈 게 흰토끼다. 책으로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은 앨리스를 보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지, 이것을 모티브로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런 걸 많이 보지는 못했다. 앨리스 잘 모르는데, 이 책 봐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앨리스와 거기에 나오는 인물을 잘 알면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잘 몰라도 괜찮다. 여럿이 정신없이 이야기 나누는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다.

 

이것을 보니 생각난 게 있는데 그게 확실하게 뭔지 모르겠다. 보고 내 마음에 드는 건 제목을 기억하기도 하는데, 뭐지 하는 건 잊어버린다. 난 이것과 비슷한 것을 몇번 보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같다는 건 아니다. 설정이라고 해야 할까. 나만 비슷한 걸 본 건 아니구나. 중국 장자는 호접몽을 말했다.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꿈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이 현실이라 믿는 게 누군가의 꿈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욕심 내지 말고, 한바탕 꿈 잘 꾸고 가자. 덧없는 삶이니 즐겁게 살자는 게 나쁘지 않지만 이걸 잘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상한 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꿈속에서는 처벌받지 않으니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가상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과 가짜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을 가짜라 여기고 잘 안 되면 다시 시작하지 생각할지도 모르고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은 죽이려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는 지구가 꿈이고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사는 인물은 지구에서 사는 꿈을 꾼다. 그것도 오랫동안 생생하게. 많은 사람이 같은 곳에서 사는 꿈을 오래 꾸다니.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에 같은 사람(동물)이 있지만, 똑같지 않다. 그런 것을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게 보인다. 넌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냐 하면 자기 정체를 그대로 말할까. 왜 이런 말을 했느냐면 거짓말한 사람이 있어서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와 그리핀을 죽였다는 의심을 산다. 앨리스가 도마뱀 빌과 흰토끼 도움을 받고 진짜 범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빌과 흰토끼가 죽임 당하고 앨리스까지 죽임 당한다. 앨리스가 죽으면 어떡하나 했다. 여기 나오는 사람뿐 아니라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잘못 본다, 잘못 보게 한다. 앞으로 돌아가서 보면 다르게 보일까. 처음부터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지도.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범인이 잡히고 이상한 나라에서 사형 당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잔인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죽은 사람이 지구에서도 죽은 건 지구가 꿈이어서인가 했는데.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을까. 꿈속에서 죄를 지으면 벌받지 않아도 현실에서는 벌 받는다고. 붉은 왕이 깨어나서 지금 지구가 부서지는 건 책 한권을 다 읽어서 일어난 일 같다. 붉은 왕이 다시 잠드는 건 다른 책을 보는 걸 나타내는 거겠지. 이야기는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니까. 붉은 왕은 작가일지도. 이 책은 어느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작가는 SF, 호러, 추리를 쓴다고 한다.

 

 

 

 

 

 

 

피에로는 모든 걸 본다

 

  십자 저택의 피에로   十字屋敷のピエロ (1989)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8월 06일

 

 

 

 

 

 

 

 

 

 

 

 

 

책을 보기 전에 제목에 나오는 피에로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인형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일을 불러들이는. 피에로 인형을 사거나 갖는 사람한테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피에로 인형을 가진 사람한테 자꾸 나쁜 일이 일어나서 그런 이야기가 붙은 걸까, 피에로 인형에 저주가 걸렸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저주에 걸린 물건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한테 넘어가기도 한다. 피에로 인형을 보니 그런 게 생각났다. 정말 물건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물건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물건은 우연히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하는 일마다 아주 안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가진 것 가운데 안 좋은 물건이 있었다. 그것을 팔았더니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다는. 이 이야기는 만화에서 잠깐 본 거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실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물건은 한 곳에 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옮겨다닐까. 피에로 인형도 다르지 않았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피에로가 보고 생각하는 걸 모르지만, 책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잘못 알기도 한다. 피에로 인형도 사람처럼 잘못 보는 건지도. 가장 처음에 죽는 사람, 아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피에로 인형을 산 사람이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은 모르게 조용하게 할 것 같은데, 처음에 나온 모습은 어쩐지 이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죽인 건 아닐까 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뿐 아니라 나중에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누가 죽였는지 조금 짐작했지만 어떻게 한 건지는 몰랐다. 이런 책을 볼 때는 속임수(트릭)를 풀면 훨씬 재미있을까. 그렇게 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렇게 집중하지 못해설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더 그랬다.

 

여기 나오는 집은 좀 별나다. 건물을 십자 모양으로 짓기도 할까.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연극이라는 말을 보니 《가면 산장 살인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나올 때는 왜 그런 일을 할까 한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욕심과 원한 때문이다. 원한은 다른 원한을 낳기도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건 자기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설지도. 자신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겪으면 어떨지 조금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책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서 그렇다는 걸 아는 거겠다. 내가 안 좋은 일을 겪는다면, 나도 그대로 갚아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큰 일이 아니면 시간이 흐르는 것과 그 일을 잊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일도 있겠지. 사람을 죽이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좋지 않은 생각으로 한 일은 언젠가 들키고, 그 일이 자신한테 돌아오기도 한다.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한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은 평생 그 짐을 짊어지고 살겠지.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피에로 인형은 이제 십자모양 집을 떠난다. 피에로 인형이 나쁜 일을 생기게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한테 가지 않게 잘 가지고 있으면 좋을 텐데. 다시 어딘가로 가고 그곳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지금까지 피에로 인형은 사람이 가진 안 좋은 면을 많이 봤을 것 같다. 사람은 좋은 면도 많이 있는데. 앞으로는 피에로 인형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집보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집에 가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가 퍼지게. 피에로 인형을 사거나 가지는 사람한테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

 

나는 결코 ‘비극을 부르는 피에로’가 아니다. 비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점은 고조도 알고 있을 것이다.  (379쪽)

 

 

 

 

 

 

 

달라 보이지만 어딘가 닮은 이야기

 

  괴담의 집   どこの家にも怖いものはいる (2014)

                    (어느 집에나 무서운 건 있다)

  미쓰다 신조  현정수 옮김

  북로드  2015년 07월 03일

 

 

 

 

 

 

 

 

 

 

 

 

 

 

서로 다른 일이지만 어딘가 비슷한 점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걸 보고 한번 일어난 일은 두번 세번 일어난다고 할까. 이런 것과 좀 다를지도. 보기를 들으려 해도 아는 게 없다. 여러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어난 달이나 날짜가 같았다는 어떨까. 이건 범죄소설에서 여러 사람이 죽임 당했을 때 그 사람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겠다. 여기에서는 미국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 이야기를 한다.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니 몰랐다. 두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힌 해, 링컨은 1860년이고 케네디는 1960년으로 일백년 차이가 난다. 둘 다 암살 당한 요일은 금요일이고 둘 다 머리 뒷부분에 총을 맞았다. 대통령 후계자 모두 존슨이라는 이름이고 부통령이 된다. 앤드루 부통령은 1808년, 린드 존슨 부통령은 1908년에 태어났다. 두 사람과 상관있는 일은 우연일 거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소름이 돋기는 한다. 이건 공포소설에서 쓰는 법칙일까. 그런 걸 잘 안 읽어봐서 나도 잘 모르겠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따듯하게 마무리 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무서운 이야기(일)는 전염성이 있다는 말도 있다.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링》은 비디오테이프가 이런저런 사람 사이로 떠돌고 그것을 본 사람은 이상한 일을 겪는다(죽던가). 사람과 사람은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어서 상대 마음을 조금 안다. 가끔 사람이 아닌 것과도 말을 나누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한쪽에서만 온다. 무서운 일은 그런 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무척 무섭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무서워도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건 마음놓고 싶어서겠다. 마음놓고 싶어서 확인했겠지만 더 무서워질 때도 있겠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그렇다. 전에 읽은 《노조키메》에서도 그 책을 읽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읽지 마라 하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말을 한다. 그 말이 조금 무섭게 들렸지만 난 끝까지 다 읽었다.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부르는 체질도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난 그런 체질이 아닌가보다. 무서운 이야기 들은 적 거의 없고 친구와 무서운 이야기한 적도 없다. 무서운 이야기가 전염성이 있다는 말은 무서운 이야기 백가지를 다 마치면 무언가 찾아온다는 말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집에 얽힌 다섯 가지 이야기는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노조키메》도 비슷하다. 거기에서는 어떤 글(책으로 낸 글)을 읽은 사람이 사라졌다. 여기에서도 조금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다 읽었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리만 들었다. 빗소리가 아닌 빗소리. 다섯 가지 이야기는 다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것도 좀 다르게 보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라 한다. ‘그것’은 아이로 보이기도 하고 늙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젊은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무서운 일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읽고 왜 닮아 보이는지 추리한다. 세 가지를 읽고 그런 말을 해서 나도 무엇이 닮은 건지 생각해봤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실제로는 없는 곳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다른 건 작가가 말한 걸 보고 그렇구나 했다. 하나, 왜 그런지 말하기 어렵지만 다섯 가지 일이 한 곳에서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 건 왤까. 그런 이야기가 있으니까 보는 거겠지. 어떤 건 현실을 은유한다고도 하는데 난 읽어도 잘 모를 것 같다. 지금까지 본 것도 얼마 안 된다. 어떤 이야기든 현실에서 겪기 어려워서 보는 건지도.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로 나타내고 싶은 게 있는 걸까. 어쩌면 그건 그것을 읽는 사람이 멋대로 생각하는 건지도. 이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여러가지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지만, 그게 이어지지 않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곳에 가지 않는 것밖에는. 미쓰다 신조가 쓰는 무서운 이야기는 거의 이럴까. 다른 것도 보아야 좀 알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보이는 건 할 수 있을지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지만, 사람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한을 남기지 않도록. 죽을 때는 모든 일이 부질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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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

 

 

 

 

범부채

 

 

 

닭의 장풀

 

 

 

해당화

 

 

 

 

 

큰나무수국

 

 

 

 

 

 

 

별로 할 말이 별로 어서 책과 함께 올리려고 했는데 많아서 따로 올린다

올해는 이런저런 꽃 이름을 알게 되는구나(본래 알던 것도 있고)

인터넷을 찾아보면 내가 담은 것보다 훨씬 예쁘게 담은 꽃 많다

그게 있어서 꽃 이름을 알기도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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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구름도 조각낸 전깃줄

전깃줄 없는 넓은 하늘이 보고 싶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수께끼

 

  일곱 가지 이야기   ななつのこ (1992)

  가노 도모코   박정임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2016년 04월 01일

 

 

 

 

 

 

 

 

 

 

 

 

 

책 제목이 《일곱 가지 이야기》고 책 속에 나오는 책 제목도 ‘일곱 가지 이야기’다. 여기에는 열네 가지 이야기가 담긴 것인가. 책 속에 나오는 ‘일곱 가지 이야기’와 이리에 고마코가 겪는 일이 아주 상관없지 않다. 고마코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 읽은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핏자국을 수박 주스라고 생각한 것을 듣는 <수박 주스의 눈물>에서는 ‘수박 귀신’을. 전시장에서 본 그림이 바뀌었다고 여긴 <모야이의 쥐>에서는 ‘금색 쥐’를 앨범을 보다 사진 한장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얼마 뒤 그 사진을 우편으로 받는 <사진 한장>에서는 ‘파란 하늘’을. 미군이 사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철망 앞 철쭉 사이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할머니를 보는 <버스 정류장>에서는 ‘하늘색 나비’를. 백화점 옥상에 있던 비닐로 만든 커다란 장난감 공룡이 태풍이 분 다음날 어린이집에 간 <1만 2천년 뒤 직녀성>에서는 ‘대숲이 불탔다, 대숲이 불탔다, 대숲이……’를. 무슨 꽃이든 하얀 색으로 칠하는 마유키를 만나는 <하얀 민들레>에서는 ‘내일 피는 꽃’을. 마지막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같은 제목 ‘일곱 가지 이야기’를 생각한다.

 

고마코가 읽은 책 ‘일곱 가지 이야기’에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하야테가 나온다. 하야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요양원에서 지내는 아야메한테 묻는다. 아야메라는 이름은 하야테가 지은 거로 처음 만났을 때 붓꽃 그림이 있는 옷을 입어서였다. 일본말로 붓꽃은 아야메다. 난 어렸을 때 이상한 일 별로 겪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다 해도 별로 관심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야테가 겪는 일과 고마코가 겪는 일은 같지 않지만 이어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쓴 작가 사에키 아야노한테 편지를 쓴다. 하야테한테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사람이 아야메인 것처럼 고마코한테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사람은 사에키 아야노다.

 

작가는 여러 사람이 되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혼자 쓰는 거지만 글을 쓰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이건 이야기 속 이야기까지 써야 한다니. 난 생각은 해도 복잡해서 못 쓰겠다 할지도. 아니 생각도 못하겠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 이야기하다 쓰기를 말하다니. 고마코가 읽은 ‘일곱 가지 이야기’는 어린이가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거다. 고마코가 겪는 일도 그것과 동떨어진 건 아니기도 하다. 고마코가 겪는 일은 다른 사람 형편이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 잘 맞아 떨어지는 건 <하얀 민들레>라고 해야겠다. 어른은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그림을 색칠하면 이상하게 본다. 그림은 상상으로 그리기도 하는 건데, 왜 정해진 색을 칠해야 할까. 어른(선생님)은 못 봤다 해도 아이는 봤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도 아직 본 적 없지만 하얀 민들레는 진짜 있다. 일본에도 드물게 하얀 민들레가 피는 곳이 있는가 보다. 노란색보다 예쁠 것 같다. 우리나라에 하얀 민들레 많았다는 말 어디선가 들었는데 내가 사는 곳에는 없다. 아이가 하는 행동에는 까닭이 있다(이건 아이만 그런 건 아니겠다). 여기 나온 선생님은 아이를 가르친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는 걸지도. 선생님뿐 아니라 어른은 아이한테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지 않으면 좋겠다.

 

하야테가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파란 하늘’이 좋다. 아픈 할머니가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하늘을 그리는 아이가 나온다. 할머니도 아이들한테 좋은 말을 한다. 하늘색이 파랗기만 한 건 아니다고. 일상을 다르게 보면 수수께끼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난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달이 자신을 자꾸만 따라온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이건 수수께끼와는 다를까. 중간 넘었을 때 하나 생각한 게 있는데 맞았다. 고마코와 편지를 나눈 작가 일이다. 거기에는 조금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슬프면서도 따듯하다고 해야겠다. 이 책에 담긴 감정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앞에서 일상을 다르게 보면 수수께끼가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자세하게 보고 덧붙여야겠다. 이건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찾을 방법일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일도 있을지도 모를 텐데. 풀지 않고 덮어두는 게 나은 것도 있다고 말할 때도 가끔 있다. 어느 게 옳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그때 다르겠지. 덮어두는 이야기를 보면 뭔가 껄끄러움이 남는다. 난 밝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보다. 그렇다 해도 모르고 지나는 일도 있을 거다. 그게 중요하지 않고 풀어야겠다 생각하지 않아서겠지. 여기에서도 확인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사건이 아닌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니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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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걸린 오선에

어떤 음표를 그려 넣을까

더위를 식혀줄 가락이면 좋겠지

너한테도 들리기를

 

 

 

 

 

 

 

 

 

“비둘기 씨들 더운데 거기서 뭐 해요.”

 

“뭐 하긴, 햇볕 쬐고 사람 세상도 구경해.”

 

“재미있어요.”

 

“나름대로.”

 

 

 

 

 

 

 

삶을 그리다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홍익출판사  2016년 04월 07일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옛날에 그림을 그린 몇몇 사람은 살아있을 때 그림이 잘 팔리지 않거나 무척 가난해서 일찍 죽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려면 돈이 많이 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 오래전에 그림 그린 사람 이름은 조금 알아도 지금 사람은 잘 모른다. 그림 그리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그것도 관심을 가져야 알지도 모르겠다. 미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런 걸 잘 알겠지. 보통 사람이 고전음악을 잘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림은 그것을 그린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알려지는 걸까.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어쩐지 그럴 때가 더 많은 듯하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 늘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림 그린 사람이 살아있을 때 많은 사람이 좋아한 그림도 있을 거다. 모지스 할머니 그림도 그렇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할머니’라고 하다니. 어린이책 그림과 뜰을 가꾸고 산 타샤 튜더도 할머니라고 한 것 같다. 이건 미국 사람이 붙인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처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여기저기에 낙서한 적이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그림 그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방학숙제에 그림 그리기가 있었는데 그거 하기 힘들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 갖지 않은 건 그림책 같은 걸 거의 안 봐서일지도. 많이 봐야 그리고 싶을 테니까. 어렸을 때부터는 아니지만, 글은 많이 보다보니 쓰고 싶기도 했다. 그림은 보는 것만 해도 괜찮고 좋아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 없지 않겠지만, 미국 사람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일흔다섯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흔다섯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모지스는 1860년에 태어났다. 십남매에서 셋째로 집은 가난했다. 어렸을 때는 다른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결혼을 하고는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수를 놓았다. 모지스는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수를 놓은 거다. 칠십대에 관절염 때문에 수를 놓기 힘들었다. 그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수 놓기보다는 나았나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 꿈 같은 일을 하면 자신도 그런 꿈을 꾼다. 일흔다섯에 그림을 그린 모지스를 보고 꿈을 갖는 사람도 있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고 한다. 잘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걸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면 좋지 않을까. 이 글을 쓴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림과 그림 그린 사람 그리고 자기 삶을 함께 풀어쓰기. 그림을 말하는 책 많이 못 봤지만, 난 쉽게 쓴 글이 좋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정해진 건 아닐 거다. 난 그림을 봐도 마음에 들면 ‘좋다’고밖에 말 못하겠지만. 그림도 보고 보고 또 보면 무엇인가 말해줄지도. 그런 경험은 없다. 그림을 오래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림에는 시간을 담아둔다. 그것도 짧은 순간이다. 모지스가 그림에 담은 건 기억이다. 기억은 삶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집안일(빨래를 끝내고 빨랫줄에 넌), 잔치가 벌어졌을 때를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 자연이 담겨있어서 보면 편안하다.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 모습도 보인다. 모지스 그림은 구석구석 보아야 한다. 글도 일상이 담긴 글이 공감이 잘되듯 그림도 다르지 않겠지. 그림도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다. 아니 무엇을 그리고 쓰든 진정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그걸 느낀다.

 

추억은 그렇게 별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그게 추억이 된다. 모지스는 그런 추억을 되새기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시절을 떠올릴 수는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난 별거 없다. 거의 혼자 지내서. 그러면 자연을 만나면 괜찮을까. 모지스 그림은 엽서나 우표로 만들고 성탄절 카드로도 만들었다. 눈 내린 풍경은 성탄절 카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지스는 일흔다섯에서 백하나까지 그림 1600여점을 남겼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그렇게 하다니 대단하다. 그림 그리는 걸 즐겨서 그랬겠지. 좋아하는 건 즐겁게 해야 한다. 하다가 막힐 때도 있겠지만, 그때를 넘기면 나아지겠지.

 

오래 사는 요즘 사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까. 이제와서 하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 잘 못해도 좋아한다면 해 보는 게 좋겠다. 나도 그래야 할 텐데.

 

 

 

희선

 

 

 

 

 

언덕 위 느보 산 Mt.Nebo on the Hill │ 1940

 

 

 

 

마을 잔치 Country Fair │ 1950 │ 캔버스에 유채│ 89×114cm │ 개인소장

 

 

 

 

봄날 Spring Time │ 1953 │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 46×60cm │ 모지스할머니재단

 

 

 

 

무지개 The rainbow │ 1961 │  나무에 유채 │ 41×61cm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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