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스트링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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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듣기를 더 많이 했다. 어릴 때는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악기도 조금 배웠는데. 음악 많이 들었다고 했지만 좋아하는 것만 그랬다. 내가 찾아서 들은 적은 별로 없다. 지금은 그저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주는 걸 조금 듣는다. 음악을 좀더 안다면 좋을 텐데 싶다. 그러면 이런 책 보고 잘 쓸 텐데. 아직도 잘 쓰는 것에 마음을 두다니, 그것보다 잘 읽어야 할 말이 생기는데. 모른다고 해서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음악은 더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음악이다. 이 책이 음악 이야기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음악으로 푸는 삶이다. 작가 소개에 미치 앨봄이 음악을 하려고 했다는 말이 있다. 이건 처음 본 것 같다. 예전에도 이런 말 있었는데 내가 못 본 걸까. 전설의 기타리스트 프랭키 프레스토(진짜 이름은 프란시스코 드 아시스 파스쿠알 프레스토)에 미치 앨봄 자신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에서 음악하는 사람 이름은 많이 모르지만, 실제 있는 사람이 나와서 프랭키도 진짜 있었던 사람인가 했다. 이런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니. 이건 작가가 만들어낸 사람이 역사에 남은 사람과 만나게 하는 이야기다. 한참 다음에야 프랭키가 실제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늦게 깨닫다니. 미치 앨봄 소설은 그런 면이 있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느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더 그렇게 보인다. 음악하는 사람이 프랭키를 만난 일을 말한다. 그걸 보고 이 사람들을 만나고 소설에 쓰고 싶다 말하고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어려운 일을 했을까 한 거다. 소설 쓰는 사람은 다른 건 잘 못해도 소설 쓰는 일은 부지런하게 하겠지. 책 읽으면서 별걸 다 생각했다. 가끔 그러기도 한다. 이야기에만 빠져서 볼 때도 있지만.

 

프랭키는 이 세상에 없다. 음악은 장례식 전에 기타리스트고 한때 이름이 잘 알려진 로큰롤 스타 프랭키 프레스토 이야기를 한다. 음악이 말을 하는 건 소설에 나올 일이다. 음악은 모습이 있을까. 요정이라면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 프랭키는 세상에 나올 때 음악을 손에 움켜쥐었다. 그건 몇몇 사람만 그럴까, 다들 음악을 움켜쥐었지만 많고 적은 걸까. 프랭키는 나중에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만, 프랭키 아버지는 기타리스트다.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프랭키와 살았다면 다른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시대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난 때로 스페인은 더 어지러웠다. 엄마는 성당에서 프랭키를 낳고 죽고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가 죽었다고 여겼다. 수녀가 잠시 프랭키를 돌보았는데, 힘들어서 강물에 던진다. 프랭키를 강에서 구한 건 털 없는 개고 기른 건 정어리 공장을 하는 바파 루비오였다. 바파는 프랭키가 다섯살 때 자꾸 눈을 비벼서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어쩌나 하고 눈이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기타를 가르치려고 했다. 음악 학교에서는 프랭키가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바파는 눈이 보이지 않는 기타리스트를 찾아가 프랭키한테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언젤까. ‘바로 지금’이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무엇인가를 즐겁게 열심히 하는 어린시절이 아닐까 싶다. 프랭키가 엘 마에스트로한테 기타를 배우는 모습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도 어린시절이 가장 좋아 보였다. 보는 사람은 그렇다 해도 사는 사람은 다르겠지. 프랭키를 만나고 엘 마에스트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파가 감옥에 끌려가지 않고, 엘 마에스트로가 프랭키를 미국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난 꼭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구나. 여러 일이 일어났기에 프랭키 프레스토가 있는 건데. 프랭키한테는 재능이 있었다. 엘 마에스트로는 그것 때문에 프랭키를 떠나 보낸 거겠지. 프랭키는 미국에서 운명의 여자아이 오로라 요크도 다시 만나고 로큰롤 가수로 잘됐다. 그때 기타는 치지 않았다. 오로라는 프랭키 곁을 떠나고, 프랭키는 많은 여자를 만나고 약에 빠졌다. 귀여운 프랭키는 이제 없구나 하고 아쉽게 여겼다. 프랭키가 엘 마에스트로와 헤어질 때 슬펐다. 그건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걸 모르고 헤어져서기도 했지만, 순수한 프랭키를 더는 볼 수 없어서였을지도. 아이는 모두 자란다.

 

사랑과 일을 이뤄도 그게 언제까지고 가지 않는다. 오로라가 아이를 잃고 모습을 감추자 프랭키는 술과 약에 빠져 살다 스스로 자기 손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다. 예전만큼 기타를 치지 못했지만 노래를 했다. 프랭키는 오로라와 다시 만나고 조용한 곳에서 산다. 그곳에서 아이를 입양하고 기타를 친다. 프랭키는 자신을 기른 바파가 거짓말쟁이다 하고 원망했는데, 딸을 보고 바파 마음을 생각한다. 바파는 프랭키한테 자신이 친아버지가 아니다 말할 수 없었다. 그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아이를 데려다 기르는 사람한테는 언젠가 아이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지도. 음악이 있지만 프랭키 삶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나고 자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부모가 되는(모두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닌가. 프랭키는 자신 한 사람이 자라는 데 많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은 자라면 혼자 컸다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겠지. 멀지 않은 곳에서 프랭키를 지키려한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마법이고 기적이라는 뜻에서.

 

 

 

희선

 

 

 

 

☆―

 

“삶이란 이런 거야. 살다 보면 잃는 것이 있어. 넌 셀 수 없이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쓸모없게 돼.”  (364쪽)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어느 밴드에든 들어가죠.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연주는 언제나 누군가한테 영향을 미치죠.

 

가끔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5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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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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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0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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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0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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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0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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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와 뇌과학

 

  피아니스트의 뇌 : 뇌과학으로 풀어낸 음악과 인체의 신비

  ピアニストの腦を科學する: 超絶技巧のメカニズム (2012)

  후루야 신이치   홍주영 옮김

  끌레마  2016년 05월 20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든 음악이 그런 건 아니예요. 어쩐지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음악도 있습니다. 뇌에서 어떤 부분을 다치면 그걸 느끼지 못하기도 한답니다. 어떤 부분이라 하다니. 뇌과학을 말하는 책을 만나본 적은 얼마 없어요. 피아니스트와 뇌과학 무슨 상관있을까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아니 피아노를 어렸을 때부터 치면 뇌가 보통 사람과 다를까 하는 생각은 조금 했네요. 보통 사람은 거의 한 손만 많이 씁니다. 피아노는 두 손가락을 다 써서 음악을 연주하지요. 어쩐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하면 뭔가 좀 다를 것 같지 않을까요. 실제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 뭐가 다르냐 하면 피아노를 늘 치는 사람은 잘 듣습니다. 저는 악보를 보고 천천히 치는 건 해도 그게 어떤 음악인지 잘 몰라요. 피아노를 오래 쳐본 사람은 악보만 봐도 그 음악을 압니다. 전 지금까지 그걸 청력이 좋아서 그런 거다 생각했어요. 그건 청력보다 뇌를 다르게 써서였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건 훈련하면 된다고 하네요. 조금은 타고난 음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아주 조금 배웠습니다. 두 손가락을 움직여서 피아노를 치는 건 재미있어요. 오래 배우지 못해서 연주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멜로디온을 연주했어요. 그걸로 놀다보면 어떤 노래 멜로디가 어떻다는 걸 알 게 되기도 합니다. 그게 확실한지 잘 모르지만 멜로디온을 치면 그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음을 알아듣는 건 정말 훈련하면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 수 있다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피아노는 두 손을 쓰기 때문에 뇌 왼쪽뿐 아니라 오른쪽도 다 씁니다. 머리가 좋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감성이 좋을까요.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치면 뇌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보통 사람보다 신경세포가 덜 움직입니다. 그건 뇌가 힘을 덜 쓰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보통 사람이 피아노를 친다면 그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피아노를 늘 친 사람은 그걸 하면서도 다른 걸 생각할 수 있겠지요. 뇌를 많이 쓰지 않으니까요.

 

이 책에 <노다메 칸타빌레> 이야기가 조금 나오기도 해요. 그게 어떻다고 나온 건 아니고 아주 잠깐이에요. 이 책을 보다보니 그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노다메는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기보다 다른 사람이 치는 거나 CD를 듣고 피아노를 쳤습니다. 노다메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피아노를 오래 치면 거의 그렇게 할 수 있다더군요. 음뿐 아니라 그때 어떤 손가락으로 쳐야 할지 안다고 하네요. 스포츠도 뇌와 깊이 관계있습니다. 몸이 익힌다고 생각하는 건 뇌가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뇌는 알 수 없는 게 아직도 많습니다. 피아니스트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자신이 피아노로 친 음악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억과 피아노 치는 건 다른 식으로 뇌에 저장되는 건지도.

 

음악을 하는 사람은 다른 나라 말을 쉽게 익히기도 합니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노다메(<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오는)도 다른 나라 말을 밤을 새워 익혔습니다. 듣고 말하기예요. 노다메는 프랑스로 공부하러 갔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조금 힘들어합니다. 같은 아파트에 일본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남자아이가 만화영화를 봤는데 그건 노다메가 아주 좋아하는 거였습니다. 프랑스말로 나오는 걸 노다메는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봅니다. 노다메는 읽는 건 잘 못해도 듣고 말하는 건 바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만화여서 좀 지나친 면은 있지만, 아주 거짓말은 아니기도 해요. 말도 음악처럼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치는 게 말하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만 음악이 말이 되기도 하겠네요. 음악을 즐기려면 악기를 배우면 더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저는 지금 바로 뭔가 배울 수 없네요. 전 피아노 소리 나오는 노래 좋아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다루는 악기 소리를 더 잘 듣는다고 해요. 어쩐지 이건 재미있네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병이 있다고도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연습을 많이 하면 아프기도 하다니. 그건 피아노를 치는 자세가 안 좋아서 그렇답니다. 뭐든 자세를 바로 하면 괜찮기는 하지요. 몸을 많이 써서 아플 때도 있지만 뇌를 많이 써서 피아노를 잘 치기 어려울 때도 있답니다. 적당히 하라 말하면 안 되겠지만, 하루에 어느 정도만 하고 쉬면 아프지 않겠지요. 실제 피아노를 치기보다 이미지트레이닝을 해도 괜찮다니, 그것을 자주 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음악으로 뇌졸중과 이명을 고치기도 한다니, 음악은 사람한테 좋은 거네요. 뇌졸중인 사람은 음악을 듣기보다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고 재활훈련을 합니다. 자신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몸을 움직이니 좋아지겠지요. 음악은 배경음악으로 들을 때보다 마음 써서 듣는 게 더 효과가 좋습니다. 이건 당연한 거군요. 무언가 할 마음이 들게 하는 음악도 있을 텐데, 그런 음악을 많이 듣고 싶기도 합니다. 음악과 뇌는 연구한 지 좀 됐겠지요.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힘을 얻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것보다 피아니스트라는 말이 있어서 이 책을 보았습니다. 어렵기도 해서 잘 못 읽었어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조금 적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피아니스트기도 해요. 자신처럼 음악을 하면서 뇌와 어떤 상관이 있을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기를 바랐습니다. 과학자여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음악을 하던 사람이 과학을 하기는 조금 어려우니, 과학하는 사람이 음악도 하면 괜찮겠습니다. 과학하는 사람이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하니 그런 일 아주 없지 않겠네요.

 

 

 

 

 

 

 

 

 

슬슬 옷 갈아입으려는

슬슬 버릴 준비하는

느티나무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 개

 

  개와 웃다

  마루야마 겐지   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6년 05월 06일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가 아닌 동물과 마음을 나누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와 얽힌 이야기도 많을 거예요. 술을 마신 주인이 들에서 잠이 들고 불이 나자 개는 자기 몸에 물을 묻혀서 불을 끄고 주인을 살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는 충성심도 있지요. 모든 개가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사나운 개도 보이니까요. 봤다기보다 어린이가 커다란 개한테 물려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커다란 개여도 성격이 온순한 것도 있을 텐데, 그 개 주인이 개를 사납게 만든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이가 부모한테 영향받는 것보다 개가 주인한테 영향받는 게 더 클지도 모르겠어요. 주인을 그리는 개 이야기도 예전에 보았습니다. 그 개는 시바이누였어요. 시바이누는 본래 한 주인만 따를까요. 그런 성격 때문에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안 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 주인이 죽으면 주인이 죽은 것도 모르고 기다릴 테니까요. 하치가 그랬습니다. 그거 봤을 때 슬펐어요. 하치가 시바이누여서 그런 것이 아니고, 주인을 잊지 못한 거다 생각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치를 돌보려고 했을 때 하치는 따라가지 않았으니까요.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개도 있습니다. 그 개는 왜 먼 곳에 갔을까요. 집으로 돌아온 것만 신기하게 여겼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개를 많이 기르겠지요. 예전에는 마당에서 개를 기르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집 안에서 기르는 사람이 많겠습니다. 커다란 개보다는 작은 개를 키우겠네요. 개한테 옷을 입히고 털을 깎거나 물들이기도 하지요. 저는 순하게 보이는 커다란 개도 무섭습니다. 가끔 걷다가 개를 보면 눈치를 봐요. 가까이 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개를 보면 잠깐 몸이 굳습니다. 큰 개면 그 개와 반대쪽으로 가곤 해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도 잘 안 갑니다. 이건 개를 무서워하는 걸까요. 예전에 개를 피하다 뒤로 넘어진 적이 있어서 그런지도. 그 길 넓었는데 사람은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개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가끔 들었네요. 개는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고. 아주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큰 개는 기르지 않는 게 좋을지도. 개가 아이를 지키는 이야기 본 적 있지만, 그런 개로 기르기 어렵겠지요. 마루야마 겐지는 개와 아주 친근하게 지내고 싶어했는데 그런 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개를 만나고 자신이 좀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요.

 

개나 고양이를 기르고 식구처럼 지내는 이야기를 보면, 이제부터 개나 고양이를 길러야지 한 사람은 없었던 듯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개와 고양이와 함께 지내다 정이 들었어요. 개나 고양이를 길러야겠다 마음먹고 찾은 사람도 있을 텐데,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가 되고 시골로 이사하고 개를 기르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보다가 개는 어디에서 사는 걸까 했어요. 얼마전에 개를 파는 곳 이야기를 잠깐 봤는데 그곳 무척 안 좋았습니다. 사람이 먹는 소, 돼지, 닭도 아주 안 좋은 환경에서 기른다는 말 본 적 있는데, 개도 그렇다니. 사람이 동물한테 그래도 될까 싶습니다. 마루야마 겐지가 개를 산 곳은 T축산이라는 곳인데, 처음 산 개 셰퍼드는 집에 왔을 때는 건강했는데 오래 살지 못했어요. 디스템퍼에 걸린 개를 준 거였습니다. 두번째도 일찍 죽고 다음에 산 개는 나고 여섯달이 지나서 좀 컸습니다. 맥이라는 이름도 있었어요. 셰퍼드지만 별로 똑똑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훈련사한테 맡기고 훈련시켰지만 그때만 말을 듣고 본래대로 돌아갔어요. 다행하게도 마루야마 겐지는 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더 괜찮은 개가 없을까 찾았어요.

 

마루야마 겐지는 개를 보고 사람을 생각합니다. 완벽한 개는 없듯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이런 말은 안 했던가(개 주인은 말했는데). 제가 생각한 거군요. 성질 안 좋은 개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사람을 닮은 개도 있겠지요. 맥은 갑자기 죽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가 다른 개와 같이 키웠을 때 맥은 그 개와 싸우지 않고 그 개한테 마음을 썼는데. 죽었다는 말을 보니 제가 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기르던 개가 죽으면 또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개를 기르지 않기도 하는데, 마루야마 겐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세인트버나드를 기르기로 했어요. 맥과 바롱이 있었을 때 작은 개도 키웠습니다. 그 개는 집 안에서. 곰을 닮아서 구마고로(일본말로 곰은 구마)라고 짓고 구마라 했어요. 구마는 오래 함께 산 듯합니다. 조로, 맥, 바롱, 조르바, 류, 장고, 구로. 구마가 죽고 찾은 돈구리. 마루야마 겐지가 기른 개는 한 마리가 아닙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커다랗고 검은 개를 좋아하는데 차우차우인 검은 개로 참기로 해요. 그 개가 구마와 돈구리예요. 돈구리는 드라이브를 좋아합니다. 그런 개도 있다니.

 

사람과 사는 동물이 동물원 동물보다 좀 나을까요. 사람과 사는 동물도 힘들 듯합니다. 본래는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데, 사람이 그런 곳을 빼앗아서. 개를 기르다 버리는 일도 문제네요. 개는 장난감이 아닌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도 있겠지요. 마루야마 겐지는 개를 자유롭게 풀어두고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시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지요. 개가 죽어서 마음 아팠다는 말은 없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닐 겁니다. 꿈에 나오기도 한다니, 지금도 마루야마 겐지는 가끔 꿈속에서 개와 함께 웃겠지요.

 

 

 

희선

 

 

 

 

☆―

 

완벽한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완벽한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깊이 반성한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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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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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무서워지고 사람들은 참을성을 잃고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이건 왜 그럴까. 세상이 빨리빨리 흐르고 지구환경도 안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말하는 걸 보면, 거의 어린시절이 그리 좋지 않았다. 부모가 아닌 사람 때문일 때도 가끔 있지만, 부모 때문에 힘들게 지낸다. 그 사람이 가장 처음 죽이는 사람은 부모다. 이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하고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건 부모 어느 한쪽에 질투를 느끼는 게 아니고 부모를 넘으려는 마음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아주 커 보여서 반항하지 못하지만, 자라면 부모가 별로 크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는 부모라도 아이는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이에 한한 게 아닐지. 아이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부모는 나이를 먹고 힘이 없어진다. 나도 문제가 아주 없지 않았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일을 겪고 산다. 그런 가정을 평범하다 여긴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힘이 빠진 부모를 안쓰럽게 여길 거다. 이런 생각으로 흐르다니.

 

앞에서 환경문제를 잠깐 말했지만, 내가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먹는 것도 상관있지 않을까. 살기에는 편한 게 많지만 그것 때문에 잃은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원시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있었고, 자기 부모나 형제를 죽인 사람도 있을 거다. 그때는 그 일이 여기저기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지금은 정보가 아주 쉽게 빠르게 여기저기로 흘러간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정보에는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게 섞여 있다. 멀리에서 그걸 보는 사람은 그걸 그대로 믿기도 한다. 이 책은 정보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만약 과학이 지금보다 발달해서 갓난아이가 자라서 살인자가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갓난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모른다. 나중에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게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그런 시대를 생각하고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는 엄마 이야기 괜찮을 것 같다. 좀 다르지만 <터미네이터가>가 생각나네.

 

모든 사람이 갓난아이는 착하다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는 자라는 환경 때문에 되기도 하지만 태어나기도 한다. 내가 그런 걸 많이 알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난 책이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 부모한테 문제가 없다 해도 그런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유전자는 오래전 것도 이어지니까.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나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해야겠구나). 그런 것까지 말하는 책을 본 적은 없지만. 이것도 이런저런 책을 보고 생각하게 된 거겠지. 여기에 나온 유진도 그런 경우일 것 같다. 확실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건 자아를 갖게 되는 때겠지. 지금도 갓난아이뿐 아니라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하다 생각하는 사람 많을 거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생각하는 게 있을 텐데. 그런 아이 가운데도 다른 아이와 좀 달라 보이는 아이가 있을 거다. 유진이 그랬다. 조용하지만 마음속에 무서운 것을 숨긴 아이처럼 보였다. 엄마 배 속에 유진이 생기고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생각한 것 때문은 아닐까. 작은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케빈에 대하여》에 나온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이코패스에서 최고 레벨 프레데터(이 말 처음 알았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앞에서는 갓난아이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 갓난아이든 조금 자란 아이든 엄마가 받는 충격은 클 거다. 유진 엄마는 어떤 일을 보았다. 그 일을 못 보거나 보았다 해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좀더 커 보였을 텐데, 유진 엄마는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엄마는 유진이 다른 사람한테 해를 입히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해를 입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사람은 누구나 좀 이상한 면이 있다. 엄마와 이모 사이도 그랬는데, 그건 생각하지도 않고 유진 엄마는 이모가 하자는대로 했다. 남편과 큰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일지도. 사람을 약으로 어떻게 하는 건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아야 한다지만, 충동을 막으려고 약을 먹게 하다니. 약을 안 먹었을 때 느낌을 알면, 약을 안 먹는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를 텐데. 유진이 그랬다. 유진은 약을 먹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어떤 충동이 일어나는 거겠지. 유진은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고 일을 저지르지만 그 일에 충격을 받고 잠시 잊어버린다. 잊어버린 일은 다시 떠올려야 한다. 피 냄새에 잠에서 깬 유진은 자신이 한 일을 조금씩 떠올린다.

 

이걸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유진이 되어서 써야 하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유진이 생각하는 걸 죽 따라가야 한다. 유진이 했다는 걸 알아도 그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람한테 어떤 성향이 있든 그건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거나. 유진은 수영을 하고 싶어했는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말을 따라도 크면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건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사람은 못하게 하면 더 하려고 한다. 엄마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유진한테 검사 결과를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이겨내려 해야 했다. 그런 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다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닐 거다. 알아듣게 설명하면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둠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걸 드러내면 안 된다 여기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운다. 유진은 그런 기회를 빼앗겼다. 다른 방법을 썼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건 사람이 약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이기지 못한다 해도 힘든 일에서 눈을 돌리기보다 마주보고 눈싸움이라도 하면 좋겠다.

 

 

 

희선

 

 

 

 

☆―

 

잊기는 최고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잊기로 했고, 나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하구언 길의 위험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스스로 경고했겠지. 그런데도 자꾸 했던 건,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사회 자아가 견고하다고 믿었다. 즐거운 한때와 삶을 맞바꿀 만큼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에 대한 과대평가, 나를 제어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어젯밤 운명의 손에 내 목을 내주게 만든 것이었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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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니 비행기 구름이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구름을 만들었다. 위쪽에 있는 것은 먼저 만들어진 비행기 구름일지도... 높고 파란 하늘도 좋고 구름이 예쁘게 깔린 하늘도 좋다.

 

 

 

 

 

 

데가미바치 20

아사다 히로유키

集英社  2016년 01월 04일

 

 

 

이 만화를 본 지 몇해가 됐는지 확실하게 모르겠다. 만화잡지에 연재한 건 2005년이고 첫번째 책이 나온 건 2007년이다. 그때는 이런 만화가 있는지 몰랐다. 내가 이걸 본 건 2010년 4월로 그때 9권까지 나왔다. 앞에 아홉권은 빨리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그 뒤에는 천천히 나왔다. 한해에 한권이나 두권 나오기도 했다. 2010년에서 2016년까지 보다니, 햇수로는 일곱해다. 돌아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구나. 그만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끝이 나는 만화 보는 건 두번째다. 만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안에서 두 가지나 끝이 나다니.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편하기도 하다. 마지막 권이 나왔을 때 바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봤다.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랬으리라고 믿고 싶다. 내 마음을 내가 잘 모르는 건가. ‘마음’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꽤 중요한 말이다. 사람이 쓰는 편지를 마음이라 여기고,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이로 삼는다. 그 갑충을 해치우는 데도 마음이 쓰인다.

 

지금까지 보면서 감동받기도 했는데 그게 다 생각나지는 않는다. 데가미바치 고슈는 편지인 라그를 배달하고, 라그는 그런 고슈를 보고 자신도 데가미바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다. 몇해 뒤 라그는 데가미바치가 된다. 데가미바치가 된 라그는 니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멀리 사는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 따듯한 이야기로 보였는데, 앰버그라운드의 비밀이 드러난다. 빛이 없는 앰버그라운드를 밝히는 건 수도 아카츠키에 뜬 인공태양이다. 인공태양을 밝히는 건 사람 마음이고 그 안에는 갑충이 있었다. 깨어나면 갑충이 되는 건가. 인공태양에 마음을 보내는 장치에서 하나인 여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고, 여제가 죽으면 인공태양은 꺼진다. 단지 어두워지기만 하면 괜찮지만 인공태양 안에 잠든 아주 커다란 갑충 스피리터스가 깨어난다. 인공태양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기보다 스피리터스를 잠재울 뿐인 요람 같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잃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앰버그라운드에 사는 모든 사람 목숨이 위험했다. 라그는 많은 사람이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한 건 많은 사람이 희생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괜찮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다.

 

라그와 치코는 수도 아카츠키에 갔다. 스피리터스를 무찌르려고. 갑충이 사람 마음을 먹이로 삼지만, 갑충은 마음탄에 쓰러지기도 한다. 스피리터스도 엄청나게 많은 마음으로 스피리터스의 약한 부분을 쏘면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거다. 치코는 많은 사람 마음을 이용하려 했고, 라그는 많은 사람이 쓴 편지로 하려고 했다. 편지는 마음과 같으니까. 전에 라그가 편지를 모아달라고 했는데 그건 어디에 있나 했다. 늦지 않게 라그가 있는 곳에 왔다. 많은 편지는 빛이 되었다. 마음탄과는 조금 달랐다. 많은 사람 마음이 담긴 편지가 희망의 빛이 된 건 아닐까. 그것으로 스피리터스를 쏘았다. 하나 더 있다. 라그 엄마는 라그한테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 다섯을 찾으라고 했다. 넷만 찾았는데 나머지 하나는 실베트였다.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한테는 아주 오래전 앰버그라운드 기억이 있었다. 라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라그가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거였다. 라그는 보통 사람처럼 태어나지 않고 많은 사람 마음이 모여서 형태가 만들어졌다. 열두해를 사람으로 살았는데. 라그도 보통 사람처럼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욕심일까. 라그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부분은 환상 같아서 뭐가 뭔지 알기 어려웠는데 이상하게 슬펐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슬프지 않은가. 그래도 라그 혼자가 아니고 니치가 함께여서 다행이다.

 

하치노스 관장인 로이드는 아버지가 왜 어머니와 자신을 인공정령 실험체로 썼는지 알게 된다. 예전에 그 이야기 봤을 때는 로이드 아버지를 나쁘다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죽을 병에 걸리고 다음에 로이드도 같은 병에 걸렸다. 어머니는 살리지 못했지만, 로이드는 아버지 장기를 조금씩 이식해서 살았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 일어날 수 없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는 건 알았다. 어떤 일은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로이드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죽기 전에 그걸 알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다. 로이드는 어렸을 때 자신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일을 한 건 라그다. 라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이런 말로 흐르다니. 모습은 볼 수 없다 해도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는 빛을 보고 라그를 떠올리는 사람 많을 것 같다. 라그는 늘 세상에 편지를 보낸다. 빛이라는 편지를.

 

종이에 글을 써서 보내는 것만이 편지는 아니다. 그게 가장 좋기는 하지만. 누구나 받는 편지가 있다는 거 아는가. 그건 자연이 우리한테 보내는 편지다. 그걸 즐거운 마음으로 받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한테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가까이 있어서 더 말하기 힘들기도 하겠지. 멀리 사는 사람한테도 편지로 소식을 전하면 그걸 받는 사람이 반가워하겠다. 편지는 받는 사람과 쓰는 사람 마음을 이어준다. 처음 하는 말은 아닌데, 내가 이걸 본 건 편지 때문이다. 이것을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편지를 쓴다. 앞으로도 쓰겠지. 내 편지를 받는 사람이 무거움을 덜 느끼게 써야 할 텐데 싶다.

 

 

 

 

 

 

 

 

편지

 

 

 

시간 많고

바쁘지 않은

내가 써야지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내가 써야지

 

받으면 기쁘고

보내면 더 기쁜

내가 써야지

 

사나흘 뒤

웃음 지을 네 얼굴 떠올리고

나도 웃음 짓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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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 더 좋을 텐데, 그냥 책을 읽고 그것을 쓰는구나.

 

 

 

 

 

공부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자

 

  공부할 권리

  정여울

  민음사  2016년 03월 10일

 

 

 

 

 

 

 

 

 

 

 

 

 

공부라고 하면 학교 다닐 때 하는 것을 많이 떠올리겠다. 난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별 생각 안 한 것 같다. 책을 다 보고 나니 공부할 권리보다 공부할 자유가 더 낫겠다 싶다. 정여울이 말하는 공부는 누가 하라고 하거나 꼭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그렇지만 옛날에는 못하게 했을지도. 요즘은 공부하라고 한다, 평생 공부. 조선시대 선비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다. 학교나 부모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할 수 없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훨씬 많다. 비정규직이라도 구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공부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늘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어떤 힘을 얻은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정여울은 문학과 철학 역사, 심리학과 신화학을 공부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을 공부할 때 신났다고 했다. 그 말 보고 난 뭘 할 때 신날까 했는데, 신이 나서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즐겁지만,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다니. 난 인문학 책은 별로 못 읽었다. 거기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주 관심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회사에서 요즘은 인문학을 하라고 한다. 이것도 그저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아는 사람을 바라기도 하니까. 인문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건 지식만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기도 하겠지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는 건 쉽지 않지만, 큰 일보다 작은 일이라도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든 작은 것부터니까. “한 사람의 힘이 정치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부수는 독재자들이 지닌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한 사람의 꾸밈없는 양심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한 사람의 힘입니다.” (180쪽) 한 사람이 양심을 지키면, 두 사람 세 사람…… 갈수록 늘어나지 않을까. 한 사람 힘은 작지만 크다.

 

이런 말하는 건 좀 창피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어렸을 때는 자신없다는 말을 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자신과 자존감, 다를까. 아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건지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할 말에 난 마음을 잘 다친다. 그걸 하나하나 말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정여울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다친 자신의 마음을 낫게 했다고 한다. 살면서 마음 다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공부와 책읽기는 다를까. 누군가는 책읽기는 공부가 아니고 일상이어야 한다던데.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한 걸지도. 뭔가 알려면 책을 보아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공부를 한 사람은 그것을 책으로 썼다. 나한테는 책읽기가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을 읽고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다. 만나는 책을 좀더 넓혀야 할 텐데. 어떤 책을 보든 생각을 하고 이렇게 쓰면 좀 괜찮겠지. 한쪽이 아닌 여러 쪽에서 봐야 한다. 그걸로 자신을 가질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볼 때는 그럴 수 있을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은 자기 단의 다른 자신이라 한다. 무의식인가. 예전에 만난 《헤세로 가는 길》에서도 카를 구스타프 융이나 무의식을 말했다.

 

지금 세상은 물질은 넘쳐나지만 정신은 더 가난해졌다. 우리나라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경제를 살려야 한다 말하지만, 한쪽에서는 마음을 쉬게 하려 한다. ‘피로사회’라는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 책은 읽지 않았지만. 공부가 사는 데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른다. 이건 책읽긴가. 공부를 하면(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로 보려 하고 넓게 보려 한다. 자신의 세계도 넓어지겠지. 무언가에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를 돕고 남도 돕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

 

존엄의 근거를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면 자존감은 쉽게 바깥 형편에 따라 비틀거리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지요. 먼저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한테 묻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 나는 가진 것이 충분하니 반드시 남을 도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행복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47쪽)

 

 

나만의 속도, 나만의 깊이를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 누구도 나를 앞지를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다. 천천히 걷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82쪽)

 

 

 

 

 

    

 

                     

 

                      

 

 

 

 

 

조선시대에도 산문을 썼다

 

  문장의 품격

  안대회

  휴머니스트  2016년 05월 23일

 

 

 

 

 

 

 

 

 

 

 

 

 

조선시대에 글을 쓴 건 남자고 양반이다. 언젠가 조선시대에 아이를 기른 일기를 할아버지가 썼다는 말을 들었다. 손자를 잘 키우려고 했지만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한 것 같다.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기를 때 일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쓰는 건 아니겠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쓰겠지. 조선시대에 할아버지가 손자 기르는 일기를 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모두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허난설헌은 결혼하기 전에는 글공부를 하고 시를 썼다. 결혼하고도 썼지만, 죽을 때 자신이 쓴 걸 모두 태우라고 했다. 그래도 조금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겠지. 그때 글을 쓴 여성이 허난설헌 말고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서도 여성 화가가 신사임당만 나와서 아쉬웠는데. 이 책을 볼 때도 글을 쓴 여성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편지는 많이 썼을지도 모를 텐데. 남은 게 거의 없어서 우리가 모르는 건지도.

 

지금까지 난 조선시대 사람이 어떤 글을 썼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조선시대 사람이 쓴 글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소설에 나오는 건 봤다. 정약용과 황상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는 시를 보았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사람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난 한글로만 글을 써서 한자로 산문이나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세종이 일찍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한글로 글 쓰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거의 한자로 글을 썼겠지. 중국하고는 좀 다른 식으로 썼겠지만 한자로도 산문이나 소설 쓸 수 있겠다(한문소설이 있다는 건 안다). 양반은 어렸을 때부터 글 공부를 한다. 과거를 보려고 하는 공부기는 해도 여러 책을 보다보면 좋아하는 게 생기고, 뭔가 쓰고 싶을 거다. 사람은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지니까. 시를 많이 썼겠지만 산문도 썼겠지.

 

여기에서는 일곱 사람 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곱 사람은 허균, 이용후,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이다. 이용휴와 이옥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전업작가였다는 거. 조선시대에도 전업자가가 있었을까. 그런 말이 있어서 썼지만, 조선시대에 전업작가로 사는 건 지금보다 힘들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금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용휴와 이옥이 놓인 현실이 책을 읽고 글만 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과거를 보고 벼슬을 했지만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다. 허균은 사회 부조리에 통곡하고 신분차별에 화를 냈다. 글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다. 일곱 사람은 그 시대에서 삐져나온 못 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약용은 정조가 죽은 다음에 유배를 떠났지만. 정약용은 유배 간 곳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글도 많이 썼다. 유배가 아주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벼슬자리를 물러났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오래전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괜찮은 건 시대를 앞선 거겠지. 그건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다. 일곱 사람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쓴 듯하다. 참신하고 독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했다. <춘향가>는 신분을 넘은 사랑이라 하는데(다른 해석도 있겠지만), 자유연애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났지만 여자가 죽고 남자도 일찍 죽어서 안타까운 이야기 <심생의 사랑>을 보니,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뿐 아니라 자유연애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자유연애를 하거나 바란 사람 있지 않았을까. 이옥이 쓴 산문 몇 편은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이 어떻다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못하겠다. 글과 그 사람이 어긋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글과 그 사람이 똑같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글과 사람을 따로따로 보기도 한다. 산문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을 잘 들여다보거나 바깥을 보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기도 하니까. 어떤 글이든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쓴대로 살지 못해도 그게 무의식에 남아서 때때로 자신을 일깨울거다.

 

 

 

희선

 

 

 

 

☆―

 

종일토록 망련된 말을 하지 말고

종신토록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자!

남들은 대장부라고 안 해도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리라!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입에 비루하고 속된 것을 올리지 말자!

오래 지나면 향기가 피어나리라.

 

<서쪽 문설주에 쓰다>, 이덕무 (44쪽)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은 저절로 한가롭다.”  (147쪽  이덕무)

 

 

큰 사귐은 꼭 얼굴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깊은 우정은 꼭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면지(黃勉之)는 오중(吳中) 포의일 뿐이고, 이헌길(李獻吉)은 문장의 대가에다 지위까지 높아서 그때 세상 귀인으로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천 리 멀리 편지를 보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니 예로부터 드문 성대한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163쪽  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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