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 진짜 우체통인지 다 아시겠죠. 지난 칠월 말엔가 팔월 초엔가 우체국에 가다가 봤습니다. 그곳을 우체통길이라고 하더군요. 언젠가 사진으로 담아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여러 번에 걸쳐서 했습니다. 저것도 겨우 한 거예요. 아무도 제가 뭐 하는지 관심없겠지만 사람이 다니는 데서 사진 찍는 거 잘 못해요. 요즘은 그런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닌데. 휴대전화기에는 거의 카메라가 달려 있잖아요. 작은 디지털 카메라보다 그게 더 잘 찍히는 것도 같습니다. 저렇게 그림 그린 우체통 다 담은 건 아니고 마음에 드는 것만 담았습니다. 더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우체국에서 가까운 가게 앞에만 있는 것 같아요. 쵸파가 있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제가 자주 본 건 어린왕자, 토토로, 피카츄, 고양이예요. 고양이는 손을 든 마네키네코를 따라한 것 같습니다. 마네키네코는 삼색털고양이가 모델이라는 거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둘 다 제가 모르는 만화에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쵸파를 보니 반갑더군요. 도라에몽도, 도라에몽은 만화 거의 못 봤지만, 도라에몽이 로봇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고양이인가 했거든요. 피카츄나 케로로도 있다는 것만 압니다. 둘리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없어서 아쉽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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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10-1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알겠는데 밑에서 3번째 있는 친구는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근데 이거 다 다니시면서 찍으신 거예요? 와우. 우리 동네 우체통들이 이랬으면 좋겠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역시 피카츄가 가장 좋군요.

희선 2016-10-13 02:24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지역에서 쓰지 않는 우체통을 모아다 저렇게 한 건지 다른 곳에서도 가져다 한 건지... 우체통을 아주 없애거나 다른 걸로 쓰지 않고 그냥 놔두었던가봐요 그게 없었다면 저걸 할 수 없었겠죠 피카츄도 좀 나중에 봤어요 눈에 띄는 색인데 저걸 나중에 보다니... 차가 있어서 바로 못 본 건지도 모르겠네요 저 때도 차가 있지만... 밑에서 세번째는 제가 반갑다고 말한 쵸파예요(도라에몽 밑에 거 맞죠 이름 다 말하면 토니토니 쵸파예요) 원피스에 나오고 순록인데, 쵸파를 처음 본 사람은 거의 너구리로 보기도 해요 쵸파는 사람사람 열매를 먹고 사람처럼 말하게 됐어요 하나 더 말한다면 의사예요


희선
 

 

 

 

언제나 철을 느끼고 사는 건 아니다. 그저 오면 오는구나, 하고 가면 가는구나 한다. 여름이나 겨울은 덜하지만 봄이나 가을은 올 때가 좋은 것 같다. 따스한 햇살, 서늘한 바람이 좋으니까. 뜨겁고 차가운 것도 나름대로 괜찮지만 오래 이어지면 지내기 힘들다. 더울 때는 덜 자서 좀 낫지만, 추우면 일어나기 싫다. 싫기보다 힘들다고 해야겠다. 움직이면 괜찮은데 그렇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추울 때도 빨리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춥다고 말할 때는 아니구나. 시간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하는 건 그리 다르지 않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즐겁게 하면 좋을 텐데, 늘 즐거운 것은 아니어서. 뚜렷한 목표도 없이 해서 그런가. 꼭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지금 찾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꾸 하다보면 뭔가 생기거나 알 수 있을지도. 이런 막연한 마음으로 하다니. 어쩌면 찾다가 끝날지도.

 

 

 

 

 

 

 

피해자 식구 못지않게 괴로운 가해자 식구

 

  봄날의 바다

  김재희

  다산책방  2016년 05월 13일

 

 

 

 

 

 

 

 

 

 

 

 

 

 

 

1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희영은 삶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가족사진에서처럼 웃은 적도 드물었다. 밤마다 동생 사건과 관련된 문건들을 찾아내서 지워나가면서 가해자 식구로 겪는 괴로움을 곱씹으며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31쪽)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그 사람 식구가 있다. 피해자 식구는 피해자 식구대로 가해자 식구는 가해자 식구대로 힘들 거다. 피해자 식구는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있지만 가해자 식구는 좀 어렵겠다. 한사람이 저지른 일 때문에 다른 식구도 가해자로 보기도 한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가해자 식구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는가보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아내고 쓰는 건지, 그런 거 하는 사람 대단하구나. 그건 또 다른 가해자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런 사람을 법으로 어떻게 했다는 말은 못 들은 듯하다.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겠지. 누군가 신고를 하면 할지도. 컴퓨터 인터넷을 쓰지만 그런 걸 찾아본 적은 없다. 내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아서겠지. 살면서 어떤 일 피해자나 가해자 식구는 되고 싶지 않다. 이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려나. 살다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겠지.

 

아무 일 없이 보내는 열해와 어떤 일이 일어난 뒤 보내는 열해는 아주 다를 거다. 어떤 일이 생기면 더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희영은 힘든 열해를 보냈다. 열해 전 동생 준수가 은행원 김수향을 죽였다는 걸로 잡히고, 준수는 재판을 받기 전에 희영한테 자신이 한 게 아니다는 말을 하고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은 준수가 죽어서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것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일까. 준수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은 준수가 은행원 여자를 죽였다 여겼다. 희영과 희영 엄마는 살인자의 식구로 살았다. 엄마는 준수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말하고 준수한테 죄가 없음을 밝히려 했다. 희영은 그 일을 돕지 않았다. 피해자 식구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그만 잊자 할지도 모르고 그럴 수 없다 하고 매여 살기도 할 거다.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 가해자 식구는 어떨까. 준수가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열해 전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준수 마음이 알고 싶은데, 희영이 기억하는 준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희영과 준수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살았다. 아버지가 있었을 때도 엄마는 일을 하러 다녀서 희영이 준수를 돌봐야 했다. 동생을 잘 챙기는 누나도 있지만 그걸 싫어하는 누나도 있겠지. 자신도 어린데 어린 동생 보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제주도로 가서는 좀 달라졌지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희영은 제주도에서 단짝 친구를 만났다. 준수는 여전히 누군가와 잘 사귀지 못하고 혼자 지냈다. 엄마가 일을 나간다고 해도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한테 조금 마음을 썼다면 나았을까. 엄마는 준수가 사달라는 건 다 사주었다. 희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희영도 준수한테 마음을 덜 썼을지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 놀았다. 지금은 그런 아이가 적다. 아이가 하나나 둘인 사람이 많을 거다. 이건 사회에서 마음 써야 하는 걸까, 부모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런 책을 보고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면 범죄자가 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그러면 안 될 듯 싶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많을까, 얼마 없겠지. 부모와 아이 사이가 좋으면 아이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지 모를 텐데. 부모가 아이를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해도 마음 깊은 곳을 알기 어렵다.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기도 해야 하지만, 잘못한 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자기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일 믿고 싶지 않겠지만. 엄마는 준수가 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기 전에 희영한테 준수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한다. 희영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받아들이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살았다. 열해가 흐른 뒤에야 그 일과 마주한다.

 

 

“누나, 마음 진정해요. 하지만 진실을 자꾸 외면하면, 언젠가 그게 부풀고 커져서 엄청난 크기로 굴러 떨어져 내린대요.”  (194쪽)

 

 

한 가지는 확실했다. 희영도 준수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그 누명을 벗겨보고자 했다는 것.

 

식구의 마지막 명예와 이름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지켜주고자 그가 가고 나서도 이렇게 하였다는 것. 어쩌면 희영과 김순자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결과로 끝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 힘든 여정을 걸어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크게 싸고돌던 불안감과 두려움은 진짜로 준수가 김수향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밀쳐놓았던 것이 아닐까.  (313쪽)

 

 

희영이 준수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희영은 살인자 식구였다. 대중매체에서는 가해자 식구나 피해자 식구를 시청률을 올리려고 이용하지 않나 싶다. 그런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좀더 생각했으면 한다. 언젠가 피해자 식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보았는데, 가해자 식구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가해자 식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죄를 지은 식구 때문에 나머지 식구도 죄인처럼 살아야 하다니.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지. 그렇게 죄를 갚고 살려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는 거다. 죽은 사람은 한사람일지라도 그 사람과 관계있는 사람 마음도 죽이는 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쁜 짓하기 어려울 텐데.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면 자신이나 식구는 피눈물을 흘린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은 실체 있는 한바탕 꿈

 

 

 

 

당신 이마에 이 키스를!

이제 당신과 헤어지면서

이것만은 인정하리다,

삶은 꿈이라는

당신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환상으로든 아니든

밤새 그랬든 하루 만에 그랬든

희망이 줄어든 것은 없지 않은가요?

우리가 보는 것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이니까요.

 

파도에 시달리는 바닷가

거친 소리에 에워싸여 서서

금빛 모래를 한줌 쥐어 보지만

잡히는 것은 얼마나 적은지! 그나마도

내가 슬피 우는 사이 바닷물에 씻기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구나,

내가 슬피 우는 사이에!

오 하느님! 좀 더 꼭 쥐어도

그것을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오 하느님! 이 무정한 파도에서

모래 한 알도 건질 수 없는 건가요?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인가요?

 

-<꿈속의 꿈>, 에드거 앨런 포

 

 

 

꿈속의 꿈 하면 생각나는 건 장자의 호접몽이야. 어느 날 장자가 나비와 노는 꿈을 꾸고는, 삶을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했어. 동양에서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더군. 에드거 앨런 포도 시에 그런 것을 썼어.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보니 저런 게 생각났는데 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어. 가상현실은 진짜가 아니니까. 사는 게 꿈과 같다 해도 여기에는 실체가 있지. 가상현실은 상상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 상상한 것을 이야기로 쓰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써서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과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는 제대로 말하지 않아. 인터넷 속 세상도 가상현실이겠지.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여기면 좀 낫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만나던 사람이 실제 만나기도 해. 그렇게 만나고 그 자리에서 서로 자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안 될 텐데. 아니 말로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할지도. 이건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니 좀 낫겠지.

 

 

                      

 

 

 

과학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영화는 조금 보았어. 이것도 오래전 일이야. 영화 원작이 소설일 때가 많으니 영화를 보는 게 과학소설을 조금 엿보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 이런 말을 하는 건 SF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기계 같은 것을 지금 쓰기도 하기 때문이야.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하게 된 게 제4차 산업혁명인가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무엇인가 일어나는구나. 빨리 바뀌고 사라지는 것도 많고. 가장 걱정스러운 건 사람이 할 일이 얼마 없게 되는 거야. 회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마음 써야 하는 사람한테 일을 시키기보다 프로그램만 되어 있으면 몇 사람치 일을 하는 기계를 쓰려 해. 지금은 사람이 기계한테 밀려나는 시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기도 해. 젊은이도 마찬가진가. 오십대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군. 그동안 쌓은 경험을 살리는 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즐겁게 살기는 어려워. 같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찾으면 괜찮겠지.

 

온라인 책방 때문에 많은 책방이 문을 닫았는데, 언젠가부터 동네책방이 생겼어. 동네책방은 별로 크지 않아. 그런 곳에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책방에 사람이 별로 없으면 난 쉽게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이번에 두 곳을 소개했어. 음악책을 전문으로 파는 ‘초원서점’과 그림책을 전문으로 파는 ‘작은 정원’이야. 얼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네책방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한곳은 시집을 전문으로 팔고 한곳은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팔았어. 시집 파는 곳은 주인이 시집을 추천하고 시를 옳겨 써 보는 공간도 있대. 동네책방에서는 책만 파는 게 아니고 모임도 가져. 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가기 싫지만,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일본말로 쓰인 책을 전문으로 파는 책방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난 멀어서 못 갈 것 같지만. 거기에서 사도 값이 싸지 않을 것 같기도 해. 동네책방이니 책값을 다 받지 않을까. 동네책방을 살리는 것이니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겠군. 요새 동네책방이 생기는 곳은 서울과 경기 쪽이야. 서울에 더 많겠지. 다른 지방에도 동네책방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닐 텐데. 이게 바로 남과 다른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것이 잠시 퍼지다 사라지면 안 될 텐데. 아니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건 사라지고 남을 건 남을 거야.

 

이번에 반가운 사람이 나왔어. 내 쪽에서만 알지만. EBS 라디오 방송 <북카페>에 인터넷 책방 알라딘 인문 MD 박태근이 나와서 이런저런 책 소개를 해. 라디오 방송에서만 만나던 사람을 책에서 만나서 반가웠어. 가진 책이 이만권이라니. 어마어마하군. 책에 묻혀 살지도 모르겠어. 다른 것보다 책이 많다는 것만 기억하다니. 일하는 곳도 책에 둘러 싸여 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는 제대로 만나보고 싶어. 예전에 한번 보기는 했는데. 지금 사람은 자신이 나이를 먹었을 때 돈없고 힘없는 것을 걱정하겠지. 그런 때라 해도 자신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사는 게 덜 쓸쓸하겠지. 그게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책이야. 책은 자신이 찾을 때 언제나 거기 있잖아. 땡스북을 돕는 여러 사람이 책 열권을 먼저 읽었어. 열권 안에 만나보고 싶은 것도 있어. 잊어버리지 않고 기회를 봐서 만나면 좋을 텐데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전에도 이 말 했군). 한권이라면 기억했다가 만나볼 수도 있을 텐데. 책연이 있기를 바라야겠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한국에 한해 동안 나오는 책이 4만종이래. 엄청난 숫자야. 그 안에는 좋은 책도 있고 별로인 책도 있을 거야. 좋은 책을 자주 만나면 좋을 텐데. 별로인 책에서도 배울 게 있겠지.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 아주 남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힘을 얻기에 책만큼 좋은 건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여전히 흔들리기도 해. 이건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야. 그걸 제대로 보려면 이런저런 책을 만나고 스스로 생각해야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더 좋은 삶이 될 거야. 언젠가 좋은 꿈꾸고 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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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소원을 빌어요
이누이 루카 지음, 홍성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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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숲이 있다면 어떨까요. 제가 사는 곳에 그런 곳이 있다면 가서 걸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서 멀면 잘 모르고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갔다가 오는 데 한시간에서 한시간반쯤 걸려야 한다는 거예요. 꼭 가야 할 일이 아니면 그이상 걸리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두시간 걷는 거 힘들지 않겠지만 저는 한시간쯤이 적당하더군요. 더 걸으면 운동이 될지도 모를 텐데. 앞으로 좀더 걸어볼까요. 지난해에도 이런 생각하고 좀더 걸으려고 했는데 그게 오래 가지 않았네요. 길 옆에 나무보다 차가 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네요. 숲이라고 할 수 없지만 도서관이나 높은 아파트 옆에는 작은 공원(놀이터)이 있기는 해요. 그런 곳도 자주 가면 좋을지 모를 텐데 거의 지나칩니다.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 좋기는 합니다. 여기에 거기에 딱 맞는 숲이 나오더군요. 일본 홋카이도에 진짜 그런 곳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야기 속에라도 있어서 좋네요.

 

이 책을 보면 누구든 여기 나온 숲이 진짜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거예요. 그곳은 달리 이름이 없고 그냥 숲이에요. 도시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숲에 바로 들어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숲 둘레는 담으로 싸여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있어요. 그런 곳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지요. 좋은 곳은 사람이 많이 가지 않는 게 더 좋겠네요. 텔레비전 방송이나 책에서 좋다고 하면 다들 그곳에 가잖아요. 그런 곳에 가면 그곳 풍경보다 사람만 잔뜩 보고 오겠습니다. 좋은 곳은 널리 알리는 게 좋을지 자신만 아는 게 좋을지. 두 가지 마음이 다 들듯합니다. 남한테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고 혼자 알고 싶기도 하겠지요. 어떤 곳을 혼자 아는 사람이 아주 많아지면 그곳이 널리 알려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혼자 가는 곳 없습니다. 어디든 혼자 다니지만, 그곳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기분이 안 좋을 때 가는 곳이어야 해요. 다시 생각하니 저한테 그런 곳은 책 속으로 책숲이군요. 늘 같은 곳은 아니지만. 여기 나오는 숲도 그런 곳에서 한 곳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숲은 도시 속에 있습니다. 이곳에 가는 사람은 사는 게 힘든 사람입니다. 숲이 그런 사람을 부르는 걸까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 자신은 머리가 좋은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실망한 사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어릴 때는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 한사람 때문에 자신이 잘 못사는 거다 여기는 사람, 나이를 먹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 자신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그 숲에 간다니 참 신기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 거예요. 그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없겠지요. 그럴 때 자연을 만나면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혼자 생각하고 다시 일어난 건 아니지만. 이 숲에는 숲지기가 있어요. 어쩐지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목소리는 좀 높은 듯한데, 그런 목소리 어떨지. 만화 <원피스>에 나온 도플라밍고 패밀리 최고간부 피카하고는 다를 듯합니다(아무도 피카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피카는 소프라노에 가깝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 목소리 들었을 때는 좀 웃겼는데 여러 번 들으니 익숙해지더군요. 숲지기는 이십대 중반으로 목소리는 테너에 가까운 높이라는군요.

 

숲에 간 사람은 숲지기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숲지기를 만나서 좀 나았을지도. 이십대 중반인데 어쩐지 그보다 더 오래 산 것처럼 말하는 건 왜인지. 실제 그런 사람 없는 건 아니겠지요. 숲지기와 숲은 비슷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받아들이는 것이. 사는 게 힘든 사람이 숲에 간다고 했잖아요. 그 안에는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한테도 숲지기는 마음이 곱다 해요. 어쩌면 마음이 비뚤어진 건 한때일지도 모르겠네요. 숲지기는 그걸 아는 거겠지요.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런 걸 다 아는지. 숲지기 이야기도 나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걸 보고 앞에서 본 이야기와 비슷하네 했어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 나온 사람은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보이고 누군가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사람한테는 누군가한테 도움을 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은 다른 데서 보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여기 나온 사람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저마다 다르니까요.

 

이런 숲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별 걱정 없지만. 없다 생각하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어떤 생각을 하고 기분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그건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데 마음을 써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생각났습니다. 여기 나오는 몇 사람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지’ 한다는 겁니다. 자신만 안 좋은 일을 겪는 건 아닐 텐데, 기분이 안 좋으면 둘레가 안 보이기도 하지요. 무엇이든 그때가 지나면 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숲에 간 사람은 마음의 여유도 찾는군요. 그건 조용한 숲 때문일지 그곳에 간 사람을 언제나 반갑게 맞는 숲지기 때문일지. 둘 다겠네요. 이 책 때문에 숲이 늘어나면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오히려 줄어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숲지기님에게

 

여전히 그 숲은 잘 있어요. 숲지기님이 많은 걸 하는 건 아니겠지만, 숲을 돌보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아쉽겠네요.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오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웃음을 잃은 사람이 숲을 찾아가 웃음을 되찾으면 숲지기님은 기뻐하겠군요. 지금까지 그런 사람 얼마나 있었을지. 숲지기님이 바라는 건 숲을 찾아오는 사람이 웃는 거잖아요. 작은 바람이고 숲지기님보다 그곳을 찾는 사람한테 좋은 거네요. 아니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 숲지기님도 좋겠습니다. 숲지기님은 어떤 사람한테든 희망을 주더군요. 그 나이에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예전 숲지기님이 그런 것도 가르쳐줬어요.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숲지기님 같은 아이가 숲에 찾아오면 늘 병든 장미를 돌보게 할 것 같네요. 장미가 병드는 건 안됐지만. 장미 돌보기는 어렵군요. 어린왕자가 돌보던 장미가 떠오릅니다. 장미는 왜 그렇게 까다로울까 했는데 실제 그렇군요. 언제까지고 숲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 다치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희선

 

 

 

 

☆―

 

“뭔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멋진 일이에요. 이 숲은 거울 같아요. 숲의 나무와 풀, 꽃과 새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50쪽)

 

 

“아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얼 하든 지금이 삶에서 가장 젊을 때기에, 자신을 자라게 할 기회를 두고 어려운지 어떤지 생각하는 건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고.”  (239쪽)

 

 

 

 

 

 

 

소나무의 꿈

 

 

 

 

공원에 사는 소나무한테는 꿈이 있어요. 그건 이번 가을에는 빨갛거나 노랗게 물이 드는 거예요.

 

지난 가을에 사람들이 공원에 와서는 단풍나무, 은행나무 옆에서만 사진을 찍었어요. 소나무는 사람들이 자신 옆에서도 사진을 찍었으면 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어요.

 

공원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뿐이어서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는 소나무가 어떤지 잘 몰랐어요.

 

소나무는 단풍나무, 은행나무한테 어떻게 하면 가을에 그렇게 예쁘게 물이 들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하는 나무는 없었어요.

 

‘우린 가을이 되면 본능으로 그렇게 바뀌어. 너한테 방법을 가르쳐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 말에 소나무는 슬퍼하지 않았어요. 꿈을 갖고 있으면 이룰 수 있다고 믿었어요.

 

 

 

여름날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자 소나무 잎이 누렇게 됐어요. 소나무 자신은 물이 들었다고 좋아했는데 가을이 아닌 여름에 물든 것이 이상했어요.

 

그날 소나무을 찾아온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소나무 둘레를 돌아 보고는 무언가를 찾아냈어요. 나뭇가지 깊숙이 이름표가 걸려 있었어요. 소나무도 몰랐던 거였어요. 거기엔 ‘솔이 나무’ 라고 씌어 있었어요.

 

“반가워, 소나무야. 나는 솔이야.”

 

소나무는 자신을 아는 아이가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많이 컸구나.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아빠가 널 심었어. 근데 네 잎이 왜 이렇게 누렇게 됐어? 내가 소나무 널 좋아하는 건 언제나 바뀌지 않는 색 때문이야. 저기 멀리 보이는 산처럼.”

 

솔이는 어딘가로 뛰어갔어요. 잠시 뒤 솔이는 물이 든 병을 갖고 왔어요.

 

”비가 와야 할 텐데, 목마르지? 먼저 이거라도 마셔.”

 

솔이가 부어준 물은 아주 적었지만 소나무는 시원했어요. 곧 소나무는 솔이가 말한 먼 산을 바라보았어요. 소나무는 그제야 알았어요. 자신은 단풍드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밤에는 온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비가 왔어요. 소나무는 잎과 뿌리로 빗물을 흠뻑 마셨어요. 다음날 누렇던 소나무 잎은 푸른 빛을 되찾았어요.

 

소나무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어요. 그건, 늘 푸름을 지키는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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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読んじゃえば? (2015)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비원 옮김

  현암사  2016년 03월 30일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국민작가로 많은 사람이 좋아한대. 심지어 종이 돈에도 나쓰메 소세키 얼굴이 있을 정도야. 놀라운 일인 것처럼 말했군. 소세키는 1867년 도쿄 신주쿠에서 나고 1916년 만 마흔아홉에 위궤양이 심해지고 내출혈로 세상을 떠났어.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없군. 올해가 소세키가 세상을 떠나고 일백년 되는 해야. 그 기념으로 현암사에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낸 건가봐. 《명암》이 마지막이라고 해. 올해 전집이 다 나올 걸 생각하고 이런 책을 낸 거겠지. 소세키 소설을 말하는 책은 많을 듯해. 이 책은 읽기 쉬워. 소세키는 여러 세대가 읽는 일본 국민작가잖아. 일본에는 소세키 책을 읽고 소설가가 된 사람 많을 듯해. 이 책을 쓴 사람도 그래.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 소세키 소설을 보고 쓴 것 같은 소설 제목은 본 적 있어. 오쿠이즈미 히카루는 소세키 소설 모두를 몇번씩 본 듯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아주 많이 보았나봐. 난 몇해 전에 봤는데 잘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워. 《마음》과 《산시로》도 보았어. 지난해(2015)에는 《풀베개》를 만났어. 소세키 소설에서 가장 보기 어렵다는 것을 먼저 보다니. 다른 소설 때문에 그랬어. 그 소설을 쓴 사람뿐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풀베개》를 아주 좋아해.

 

앞에서 생각나지 않아서 못 썼는데, 《도련님》하고 단편소설 <런던탑>이 담긴 책도 만났다는 게 떠올랐어. 소세키 이야기를 하는 책도, 편지 모음이었던가. 제대로 읽은 걸 말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읽기만 했어. 잠깐 내가 소세키한테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니 신기하군.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잊어버렸지만 아주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때 다자이 오사무 책도 조금 봤는데. 지금도 난 소설을 이야기 중심으로 봐. 몇해 전에는 여러 가지로 봐야 한다 생각했는데 잘 안 돼. 여기에서 소세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확실한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군. 예전에 한번 봤지만 기억에 남지 않은 걸 그래선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그런 게 없다 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야. 고양이가 되어 사람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만나도 괜찮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다니. 책 읽는 건 자기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지. 한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다음에 아무데나 펴서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적 거의 없지만. 난 그렇게 보면 책 읽은 것 같지 않아. 마음에 드는 곳 어디든 펴서 봐도 된다는 말은 《풀베개》에 나와.

 

소세키 소설 《열흘 밤 꿈》은 제목에 나온 것처럼 꿈을 이야기하는가봐. 꿈은 제대로 말하기 어렵지. 알 수 없는 게 나타나고 쉽게 바뀌기도 해. 이건 열한번째 꿈을 써 보라고 했어. 그걸 써 보면 소설이 어떤지 알 수 있다고. 괜찮은 방법이기는 한데 어려워 보여. 꿈이 생각나야 쓰지. 어떤 때는 생각나지만 생각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아. 자기 꿈을 그대로 쓰는 건 아니겠지만. 《열흘 밤 꿈》은 말만 들어도 무슨 이야긴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런 생각으로 피하는 게 많군. 이제는 책을 다르게 볼 수도 있어야 할 텐데. 책을 읽고 내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시원치 않은가봐. 《도련님》은 도련님한테 가진 인상을 버리고 읽으면 다른 느낌이 든대. 《도련님》이 재미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아. 이건 겉만 보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도련님은 밝지 않고 어둡거든. 가끔 소설을 보면 거기 나오는 사람이 자기 감정과 다르게 말할 때도 있어. 슬픈데도 밝게. 사람이 어둡다고 해서 말까지 어둡게 하면 안 되겠지. 예전에 《마음》을 보고 소세키는 사람과 관계 맺는 게 힘든가 보다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소세키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자주 나온대. 다른 건 잘 몰랐지만 그건 어떻게 봤군. 나와 비슷해서 그랬겠지.

 

소설에서 이야기보다 문장을 보는 건 어떤 걸까. 소세키가 쓴 산문을 볼 때 문장을 더 보기를 바란다고 했어. 이건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어. 책을 보다보면 마음에 드는 말을 만나기도 하잖아. 이런 건가. 난 문장이 좋고 안 좋은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내용이 좋으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말고 다른 것도 봐야 할 것 같아. 앞으로 생각해봐야지. 이 책을 보니 소세키가 쓴 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마음이 들게 한 걸 보면 이 책 잘 쓴 건가봐. 소세키가 다 끝내지 못한 소설이 《명암》인데 여기에는 여성 시점도 있다는군. 소세키가 쓴 다른 소설에는 여성 시점이 나오지 않아. 남자는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 여자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마음》에서 선생님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니까. 그런 건 자기 마음을 닫은 게 아닐까.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를 대하면 좀 나을 텐데.

 

소세키 글이 오래전 거여서 지금 읽기에 괜찮을까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걱정하지마. 지금 읽어도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아. 이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세키 책을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아는 척했군.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는 볼 수 있을 거야. 지금하고 조금 달라도 사람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을 거야. 소세키 소설 한권씩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그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마음은 이래도 시간이 흐르면 바뀔지도. 소세키 소설이 아닐지라도, 어떤 소설이든 이야기만 볼 게 아니고 다른 것도 보도록 해야겠어. 몇해 전부터 그러려고 했는데, 이야기를 볼 때가 더 많았어. 어떤 소설이든 자신이 재미있게 만들어가면 된대. 소세키 소설을 보기로 들고 소설 읽기를 말하기도 하는군. 말은 누군가를 격려하고 힘을 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자신도 다칠 수 있어. 소설을 보면 말을 쓰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군. 맞는 말이야. 실제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소설을 보고 하는 간접경험도 사는 데 도움이 되잖아. 다른 사람 마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소설(책) 안 봐도 사는 데 문제없지만, 안 보는 것보다 보는 게 더 낫겠지.

 

 

 

희선

 

 

 

 

☆―

 

오랫동안 읽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전은 하루 이틀에 읽는 작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평생에 걸쳐 사귈 만한 책과 만났다면 그것은 큰 행운입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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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8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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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그것에 부담을 느낀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감추려고 자꾸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건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예전에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미유베 미유키 글이라는 걸 조금 느꼈다. 지금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에도시대를 말하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 참 이상하기도 하지. 《벚꽃, 다시 벚꽃》에서도 평생 거짓말 할 게 아니면 처음부터 하지 마라 했다. 거짓말은 매우 무겁다. 이 책 본래 제목은 ‘베드로의 장렬’이다. 그대로 장렬이라 하기보다 장례행렬이라 하면 알아듣기 쉽겠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제자 베드로를 잘 아는 건 아니다. 예수를 세번 모른다고 했던가. 유다는 예수를 팔고.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다 예수가 자신의 스승임을 밝히고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책 제목을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라 했다. 십자가는 베드로가 매달리는 거겠지. 반지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다. 그 책 안 읽어봐서 모르는데 여기에 조금 나온다. 절대 반지를 가지려는 사람은 악에 물들어 간다는 말이.

 

 

악은 전염된다. 아니, 모든 인간이 마음속에 깊이 숨긴 악, 말하자면 숨어 있는 악을 겉으로 드러내 나쁜 짓을 하게 하는 ‘마이너스의 힘’은 전염된다고 할까.  (454쪽)

 

 

어쩐지 조금 알쏭달쏭한 말이다. 좋은 감정이 잘 퍼져나가듯이 안 좋은 감정도 잘 퍼져나간다는 뜻이겠지. 이것보다 앞에 것은 《이름 없는 독》이다. 독이 악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탐정은 아니지만, 탐정 같은 역을 하고 어떤 일에 잘 휘말린다. 본래 탐정이나 형사가 나오면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일어나는구나. 이번에 스기무라가 휘말리는 일은 버스 납치다. 이마다 콘체른 사보 편집장인 소노다 에이코와 함께 탄 버스가 납치당한다. 그 일이 죽 나오는 건 아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이야기다. 버스를 납치한 구레키 가즈미쓰가 누군지, 버스 운전사와 인질로 잡힌 사람들. 구레키가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구레키가 총을 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구레키는 경찰한테 세 사람 이름을 말하고 한시간 안에 찾아서 데려오라고 한다. 그 일은 일어나지 않고 버스에 특수부대가 밀고 들어가고, 구레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구레키가 죽지 않았다면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구레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되니까. 스기무라와 인질이었던 사람은 모두 구레키를 범인이라 말하기 꺼려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이 이름이 아니었다. 구레키는 처음에 자신을 사토 이치로라고 했다. 구레키도 진짜 이름이 아니다.

 

버스 납치와 베드로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 베드로는 잘못을 하고 그것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꾼다. 그런 사람이 여럿 나온다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 회사에서도 신입 사원 연수 같은 걸 할까. 그건 하겠구나. 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훈련을 하는지. 그런 거 보니까 중학생 때 간 수련회가 생각났다. 그때 그걸 왜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건 생각나지 않고 선착순이라 한 게 떠오른다. 사원을 가르치는 것과 그건 조금 다를지도. 다단계 회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지금은 그런 거 어떻게 됐을까. 한번도 설명회 하는 곳에 가 본 적 없는데, 거기 가 본 사람 이야기는 잠깐 들어봤다. 그곳에 있으면 세뇌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단계 회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말한다. 무엇인가를 자신이 사는 것뿐 아니라 남한테 파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빠지기도 하다니. 조금 신기하다. 본래 난 돈 벌기는 어렵다 생각한다. 돈은 시간뿐 아니라 마음도 들여야 어느 정도 벌 수 있다. 다단계는 자신이 물건을 사들이고 남한테 팔거나 다른 사람을 회원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회원이 될 때 돈을 내는 건가. 다단계가 아주 나쁜 건 아니다는 말도 있던데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남을 속이려는 사람이 있어서일지도.

 

구레키가 버스를 납치했을 때 인질인 사람들한테 위자료를 준다고 했다. 구레키가 죽고 쿠레키가 가난하게 살았다는 걸 알고 누군가는 돈을 받지 못하겠다고 실망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돈이 사람들한테 배달되었다. 돈이 오지 않았다면 스기무라는 구레키를 조사하지 않았을지도. 구레키가 찾아서 데리고 오라는 세 사람을 알아보니, 다단계 회사 회원이었다. 세 사람은 피해를 봤지만 나중에는 가해자가 되었다. 그런 사람이 세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자신이 피해를 봤다면 거기에서 끝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게 하다니. 어떤 말을 들으면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마비되는 걸까. 다단계 회사에서는 등급이 높은 회원 모임을 열었다. 거기에서 여러 말을 들었겠지. 이것도 악이 전염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세 사람에서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구레키는 세 사람이 이야깃거리가 되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다단계 회사는 망하고 피해자만 남았다. 가공투자사기는 나이 많은 사람을 노렸다.

 

전화사기도 혼자 사는 노인을 많이 노리는데, 다른 사기도 그러다니. 말하는 것도 배우면 잘하게 될까. 구레키가 베드로가 아닐까 싶다. 구레키는 세 사람도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꾸기를 바랐다. 세 사람뿐 아니라 사기 치는 사람은 다 그러기를 바랐을지도. 그전에는 자신의 잘못을 몰랐다는 건지, 나이 먹고 깨달았나보다. 다른 방법으로 사죄할 수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다. 이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말한다. 남을 속이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면 좋겠지만, 자신이 한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가. 잘못된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르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 사람한테는 악이 전염되지 않을 텐데.

 

가정에 아주 소홀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다른 곳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스기무라는 아내 나호코와 헤어진다. 스기무라 마음이 아내한테 전해지고 아내를 불안하게 만든 건 아닐까. 이 일 앞에 일어난 일은 거의 나오지 않는데, 딸 모모코가 문화제 하는 날 모습을 보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 스기무라 아내 나호코가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했다. 잊어버렸는데 스기무라는 형사를 하다 사립탐정이 된 기타미 이치로를 알았다. 기타미 이치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기무라는 자신이 사립탐정 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한테 맞는다고 생각했던가. 다음에 스기무라는 사립탐정이 된다. 그 이야기는 한국말로 언제 나올까. 스기무라는 이마다 콘체른을 떠나서 좀더 자유로워진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사립탐정을 하게 됐으니 그렇게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호코도 홀로서기 잘하기를 바란다.

 

 

 

희선

 

 

 

 

☆―

 

거짓말이 사람 마음을 망가뜨리는 까닭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단단해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한 올바르게 살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까닭으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없게 되어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된다.  (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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