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Kindred (1979)

  옥타비아 버틀러   이수현 옮김

  비채  2016년 05월 31일

 

 

 

 

 

 

 

 

 

 

 

 

 

 

 

어떤 것보다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별로 못 본 게 있어. 그건 SF야. 다시 생각하니 SF만 별로 안 본 건 아니군. SF를 글로는 별로 못 봤지만, 만화영화나 영화로는 조금 봤어. 그런 거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아. 만화영화나 영화는 보여주어서 어렵게 보이지 않는 거겠지. 기계나 로봇이 어떤지 설명하는 글은 뭐가 뭔지 알기 어렵잖아. 과학소설은 과학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이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어. 과학소설에도 사람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닌데, 좀더 넓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가기도 해. 지구도 사람한테는 넓은데 우주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고 모르는 게 많아. 그런 걸 상상하는 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어. 지구에 살아도 세계를 다 돌아보지 못하는데. 지구는 우주의 한 부분이고 그 안에는 사람도 들어가지. 우주를 생각하면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기도 해. 사람이 우주를 생각하고 겸손해지면 좋을 텐데, 우주를 어떻게 이용할까를 더 많이 생각하지. 이건 과학이 발달한 뒤겠군. 그전에는 신을 생각하고 무서워했잖아. 신화나 별자리 같은 걸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도 잘 몰라. 우주라는 말을 하니 저런 게 생각났어.

 

과학소설이라고 해서 다 우주, 외계인이 나오는 건 아니군. 시간여행도 SF에 넣기도 해. 이런 건 쉽게 볼 수 있고 나도 여러 번 봤어. 기계로 하는 시간여행 이야기도 있지만 우연히 자신이 사는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가는 이야기도 있어. 이게 그래. 어떤 건 법칙 같은 게 나오지 않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게 나와. 다나는 다나 조상 루퍼스 목숨이 위험해지면 19세기로 가고, 다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때 자신이 사는 20세기(1976년)로 돌아와. 규칙은 없어. 자신이 가고 싶을 때 가지 않고 갑자기 다른 시대로 가. 바라지 않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기도 하지. 다나는 1976년을 사는 흑인 여성으로 소설을 쓰고 그게 팔리기를 바라. 다나 남편 케빈은 백인이고 소설가야. 둘 다 소설을 쓴다고 말해도 될 텐데. 다나가 쓴 소설은 팔리지 않았지만 케빈은 책을 세권 내고 잘 팔리기도 했어. 지금도 인종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만, 1976년에는 더했겠지. 아주 없지 않았겠지만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실제 두 사람 친척은 두 사람 결혼을 반기지 않았어. 1976년도 이런데 다나가 가는 19세기는 더했지. 그때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잖아.

 

다나는 자신이 바라지 않는 시간여행을 해. 다나는 처음 그곳에 가서 루퍼스라는 백인 남자아이를 구해. 다나가 그곳에 갔다 온 시간은 단 몇초였어. 바로 그날 또 루퍼스를 구하는데, 루퍼스는 강에 빠졌을 때보다 커 보였어. 두번째 때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걸 알고 자신이 루퍼스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세번째 때는 남편 케빈도 함께 그 시대로 가. 그게 좋았던 건지 안 좋았던 건지. 다나가 자기 시대로 돌아올 때 케빈이 바로 옆에 없어서 혼자 왔거든. 다나가 다음에 그곳에 가니 다섯해가 흐른 뒤였어. 루퍼스는 다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하면서 케빈한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대신 흑인을 재산으로만 생각하는 루퍼스 아버지가 케빈한테 연락했어. 아주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사람이 있겠지. 루퍼스한테 다나가 그랬을까. 루퍼스는 흑인 앨리스를 좋아하면서도 다나가 곁에 있기를 바랐어. 그 마음은 무엇일까. 앨리스가 루퍼스를 받아들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앨리스가 그러지 못한 건 루퍼스가 19세기 미국 남부 사람이어서일지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때(19세기) 사람, 거기에서도 남자는 흑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루퍼스는 앨리스를 사람으로 좋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지. 그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겠지. 그때 많은 흑인과는 다른 다나를 만나고 루퍼스가 달라질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이 소설을 쓴 사람은 흑인 여성이야. 그것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싶기도 해. 흑인 인권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여자나 남자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람을 봐야 할 텐데. 루퍼스가 그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루퍼스가 그 시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쉬워. 루퍼스는 그랬다 해도 그 시대에도 흑인이나 여성을 존중한 사람 있지 않았을까. 피부색과 상관없이 위험한 사랑을 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지금도 인종 문제가 다 사라진 건 아니야. 여성이 살기에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 남자 여자 조금 다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살면 좋겠어.

 

 

 

 

☆―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한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하다가 잔인해지기를 되풀이했다. 그를 내 조상으로, 내 남동생으로, 내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내 주인으로, 내 애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507쪽)

 

 

 

 

 

 

 

    

 

    

 

    

 

    

 

 

 

 

 

 

 

이중의 어려움을 가졌지만

 

  블러드차일드   Bloodchild and other stories (1996)

  옥타비아 버틀러   이수현 옮김

  비채  2016년 05월 31일

 

 

 

 

 

 

 

 

 

 

 

 

 

 

 

소설을 쓴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소설에 나오는 사람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사람이 쓴 소설을 보면 거기 나오는 사람도 한국사람이려니 한다. 지금까지 흑인이 쓴 글 본 적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있었는데 내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아프리카 사람이 쓴 거 본 적 있다), 백인보다는 아주 적은 듯하다. 그뿐 아니라 중국사람이나 다른 아시아 사람이 쓴 것도 별로 못 봤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거기 나오는 사람을 백인이라 생각했던가. 이건 잘 모르겠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미국 사람으로 여성이고 흑인이다. 책을 읽다 여기에 흑인이 많이 나온다는 걸 느꼈다. 모두 흑인일지 몇몇사람만 흑인일지. 한국사람이나 백인은 쉽게 생각해도 흑인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왜 그럴까. 자주 안 봐서 그런 것일지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피부를 가진 사람이 사는데, 백인을 더 생각하지 않나 싶다. 한국소설에 외국사람이 나오면 이름이나 겉모습으로 외국사람임을 나타내야 하고, 이건 흑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도 한국사람을 소설에 나오게 할 때 한국사람이라 하겠다.

 

지난번에 옥타비아 버틀러 소설 《킨》을 보고 재미있어서 단편은 어떨까 하고 보았다. 여기에는 작가가 그 글을 쓰게 된 이야기도 있다. 《킨》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으로 흑인 여자 다나가 노예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자신의 조상을 구한다. 흑인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쓴 건 아닐까 하기도 했는데. 여기 실린 단편은 SF와 판타지다. SF는 잘 안 보는 건데. 왜 읽기 힘들까 생각하니 실제 있는 것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SF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주나 외계인이 나온다. 여기에도 외계인이 나오는 거 있다. <블러드차일드>와 <특사>다. <블러드차일드>에 나오는 사람은 거의 흑인이 아닐까 싶다. 노예였던 사람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간 거니까. 그곳에서 사람은 틀릭의 숙주가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한식구에서 한사람이다. 작가는 남자가 임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집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영화 <에일리언>에서도 사람 안에서 외계 생물이 자라지 않았던가. 거기에서는 여자였지만. <특사>에 나오는 건 커뮤니티라고 한다. 사람을 감싼다고 해서 조개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커뮤티니가 오고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도 있다. 어떤 사람은 노아처럼 커뮤니티가 시키는 일을 하려고 한다. 커뮤니티 통역을 하는 노아는 커뮤니티와 사람이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암을 치료하는 약 때문에 DGD가 되고 DGD 부모 때문에 DGD가 된 아이. DGD인 사람은 규정식을 먹어야 한다. 언젠가는 ‘표류’를 하는데 그건 자폐증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DGD와 DGD 사이에서 난 사람에는 DGD를 안정시키는 냄새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건 현실에서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이 이야기는 <저녁과 아침과 밤>이다. 약 때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과 소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질병에 걸렸다. 죽은 사람도 많고 말하는 능력을 잃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하기도 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몸짓으로 말한다. 라이는 남편과 아이가 죽고 혼자 살다 다른 곳에 사는 친척이 아직 살았는지 찾아가보기로 한다. 라이가 탄 버스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한 남자를 만난다. 라이는 친척을 찾아가기보다 그 남자와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데 남자는 다른 사람한테 죽임 당한다. 사람이 죽임 당해도 경찰이 없으니. 절망스러울 때 말을 할 수 있는 아이 둘이 나타난다. 이건 희망이겠지.

 

여기 실린 글 가운데서 <가까운 친척>은 쉬운 편이다. 이건 SF도 판타지도 아니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근친상간이니까. 어머니는 딸한테 비밀이 들킬까봐 딸과 거리를 두었다. 딸은 어머니가 그러지 않아야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아직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없지만. <마사의 책>은 소설 쓰는 마사가 신을 만나고 사람이 좋은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다. 꿈이 유토피아라고. 꿈에서만 좋고 현실은 어두워도 괜찮을까. 마사는 사람이 좋은 꿈을 꾸면 현실도 잘 살아가리라고 하는데. 꿈만 꾸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쩌려고. 꿈속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잠들게 하는 만화도 있다. 그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서 주술을 풀려고 한다. 마사가 말하는 꿈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도 꿈을 꾸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이건 괜찮은 거겠지.

 

미국에서 흑인이고 여성으로 글을 쓰는 건 무척 어려웠을 거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어렸을 때 이모한테 자신은 작가가 되어 돈을 벌겠다고 하니 이모는 흑인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말에 옥타비아 버틀러가 뜻을 굽히지 않고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아 다행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끈질기게 썼다고 한다. 글을 쓰는 데 성별이나 피부색은 상관없기는 하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물고 늘어져서 쓰라 한다. 끈기가 있어야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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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여자로 사는 건 힘들지 않을까. 여자를 좀더 생각해주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밤늦게 다니지 마라는 말을 듣는 건 여자뿐이다. 이건 언제부터 그랬을까. 아주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말 안 하고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올까.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범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언제부턴가 ‘묻지 마’ 살인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어떤 사건이든 그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 안에는 좀더 다른 것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여자를 표적으로 삼고 죽인 사건 말이다. 올해(2016) 5월 17일에 일어난 일이 처음은 아닐 거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서울 강남역 가까운 곳 남녀 공용 화장실로 범인은 앞에 온 남성 여섯은 그냥 보내고 일곱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칼로 찔러 죽였다. 남자 여자를 떠나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만, 범인은 남성으로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된 걸까.

 

성차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단다. 예전에 여성은 재산이기도 하고 정치에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아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정말 그럴까. 난 남자 여자를 떠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자도 있다. 자신이 더 높은 데 있다는 식으로. 그런 사람은 무언가를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남자일 때는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여자가 그러면 싫어한다. ‘여자가 어디서 나대는 거야,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할지도. 드라마에 그런 거 자주 나왔다. 지금은 어떨지. 살림이 쉬운 것도 아닌데, 살림을 우습게 보는 남자도 있다. 돈을 받고 남의 집 살림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안 좋은 말할 때 ‘남자가’ 하는 말보다 ‘여자가’ 하는 말이 더 많지 않나 싶다. 운전하다 조금 잘못한 여자한테도 남자는 욕한다.

 

오래전에는 사회가 여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아들)을 여자(엄마)가 기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건 아니겠지만. 여자(엄마) 혼자 아이를 길러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 엄마 아빠가 함께 길러야 한다. 연쇄살인범에는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지만,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가장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머니나 아버지다. 어머니를 죽인 다음에 여자를 죽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아무 상관없는 여자를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죽이기도 한다. 가정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이어서 여성한테 한마디 들으면 더 기분 나빠한다. 이건 성차별이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화풀이를 늘 어린 아들한테 하는 어머니, 아들 앞에서 늘 어머니를 낮잡아 보는 아버지.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자랄지도. 부모라고 해서 아이한테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좀더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 텐데 싶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가정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학교에서. 일터에서는 남녀차별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여성이 알게 모르게 차별의 말을 그냥 넘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세상에는 남녀차별뿐 아니라 많은 차별이 있다. 그런 게 세상에서 모두 사라지기는 어렵겠지. 무엇이든 한번에 바뀌지 않고 조금씩 바뀐다. 여성을 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바뀌기를 바란다. 여성한테 여성성을 밀어부치지 않아야 하듯이 남성한테도 남성성을 밀어부치지 않아야 한다. 남자니까 울면 안 돼 같은 말은 아주 안 좋겠지. 남자한테 여자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바람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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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가리지 않고 읽는다. 내게 비 오는 날 책 읽기는 특별하지 않다. 비 오는 날 좀 다른 일을 하려면 걷기일 텐데, 비 오는 날 걷는 건 싫어한다. 하루 내내 비가 내린 건 아니다. 아침에는 해도 뜨고 맑았는데 하늘에 구름이 깔리더니 낮에는 조금씩 내렸다. 비가 내릴 때는 하늘을 보지 않았는데 알고 있다니, 보아야만 날씨를 아는 건 아니다. 소리로도 알 수 있다(비는 냄새로도 알 수 있구나). 빗길을 달리는 차 소리가 들려서 알았다. 언젠가는 큰 빗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가 엄청나게 내려도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빗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빗물이 빠지지 않고 차오르는 곳에 끊임없이 내리면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닥이 아닌 물에 떨어져서 소리가 흡수된 것일지도. 지난 여름에 비가 얼마 오지 않아서 가끔 비 내리는 건 괜찮겠지 했지만, 너무 많이 오는 건 싫다. 날씨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를 빌 수는 있겠지. 그건 나만이 하는 마음 가라앉히기 방법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지도.

 

이번 악스트는 탁하고 연한 노랑이다. 연하고 어두운 노랑이라 해야 할까. 지난번 분홍도 밝은 건 아니었다. 분홍에 검정 물감 한방울을 떨어뜨린다면 그런 색이 나오지 않을지. 이번 건 노랑에 검정 조금, 하얀색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노랑 하니 노란 은행잎이 떠오른다. 한국소설과 다른 나라 소설로 나뉘었는데 다른 나라 소설은 이번부터 주제를 정했다고 한다. 이번 주제는 ‘여자’다. 올해 나온 책을 보면 페미니즘이 많은 것 같다. 여성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커졌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여성이 예전과 다르게 바깥에서 일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지금은 집안 일이나 아이 기르는 걸 부부가 함께 한다. 그런 사람이 늘고 있겠지.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동안은 두 사람이 일해도 집안 일은 여자가 다해야 했다. 바깥에서 똑같이 일하고 와서 집안 일까지 해야 한다니, 여자 힘들구나. 지금이라고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남자 여자 다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을 바라지 않는 게 좋겠다.

 

서양 동양 할 것 없이 예전에는 여자가 글쓰기 쉽지 않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그런 시대에 글을 썼다. 올컷은 네 자매에서 둘째로 집안 일도 도맡아 했단다.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가 떠오르는데, 조는 올컷이 바라는 모습이었다. 올컷은 《작은 아씨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빚 때문에 썼다. 쓰기 싫은 것을 써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다니, 본래 삶이 그렇기는 하다. 김연수는 시를 쓰려 했지만 소설을 쓰게 되었다. 시간이 나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을 본 사람이 소설 같다 했다. 김연수는 소설을 응모했다. 꼭 해야지 하고 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했더니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끝은 아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야 한다. 김연수는 그래서 지금 한국 소설가겠지. 소설을 안 쓰고 일을 한 적도 있다. 김연수는 마지막으로 써 보고 싶은 것이 떠올라서 《꾿빠이, 이상》을 썼다. 소설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쓰는 것이라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써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소설을 쓰려면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그래야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쓰기도 하겠다.

 

한국소설에는 내가 읽어본 것도 몇권 있다. 이문구가 시골에서 쓰는 한국말을 잘 살려 썼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걸 알았다. 이문구는 토속말을 만드는 실험으로 소설을 썼다. 다시 김연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노트북 컴퓨터 왼쪽 시프트가 고장 나서 글을 못 썼다는. 그럴 때는 종이에 쓰면 될 텐데 했다. 난 왼쪽 시프트 새끼손가락으로 누르지 않는다. 어떻게 쓰느냐 하면 오른쪽 손가락으로 다 누르려고 한다. 왼쪽 시프트를 누르고 ‘얘’를 쓰는 게 편하겠지. 난 왜 그런 버릇이 들지 않은 걸까. 다른 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한국소설을 조금이라도 보는 건 <악스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읽고 쓴 글을 보고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글만 읽는 것과 소설을 읽는 건 많이 다르다. 여전히 한국 단편은 읽기 힘들다. 힘들어도 읽어보는 게 좋겠지, 가끔일지라도. 다 알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느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난 밤에 어디 다니는 건 싫어한다. 낮이라고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요즘은 늦은 밤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나 미술관이 있는가 보다.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문 여는 빵집이 나오는 소설이 있는데, 그런 책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이라는 정책으로 수요일에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도 지난 8월부터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책을 두 배로 빌려준다(세권에서 두 배니 여섯권이다). 여기에서 그런 걸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누가 만들었든 여기저기에서 써 먹는 거 나쁘지 않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달에 두번 화요일에 밤 10시까지 미술관을 열고 영화도 보여준단다. 그런 것도 관심이 있어야 가겠다. 밤에는 집에서 편하게 책 읽는 게 낫기는 하다. 나나 그럴지도.

 

 

    

 

 

 

*더하는 말

 

소설가 백가흠과 악스트 편집장 백다흠은 두 사람이었다. 백가흠 백다흠 이렇게 다른데 그동안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니. 좀 이상하긴 했다. 지난번에 백다흠으로 소설을 찾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내가 이름을 잘못 봤나보다 하고 백가흠으로 찾았다. 지난달(9월)에 백가흠과 백다흠이 형제라는 걸 알았다. 백가흠은 소설을 쓰고, 백다흠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악스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백다흠은 소설도 쓰고 사진도 잘 찍는구나 했다. 백가흠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잠깐 백가흠 소설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악스트에 실린 짧은 소설을 보니 다른 것도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백가흠 백다흠 두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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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0-20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담처럼 백나흠도...있어야하는데...그랬다는 ㅎㅎㅎ

붉은돼지 2016-10-20 11:34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검색해보니 백나흠이라는 분도 계시는 계시더군요 ㅎㅎㅎㅎ
가흠, 다흠...이름이 특이하면서도 예쁜 것 같아요 ^^

[그장소] 2016-10-20 14:47   좋아요 1 | URL
으헉~ 그...저 , 생각만 했을 뿐인데 ! 진짜 있으면 ...어쩐지 미안해지는...(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걸 ...알면서..이런!)설마 이번에도 가족입니다 ㅡ그런건 아니겠죠?!^^ㅋ

희선 2016-10-22 01:24   좋아요 1 | URL
혹시나 하고 백나흠 쳐보니 나오네요 형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백나흠보다 백라흠이 더 예쁘지 않나요 나는 라가 되기도 하니까요 발음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10-22 12:24   좋아요 0 | URL
마흠 ~ 바흠 ~ 말리지 마세요! 우리 끝까지 가는고야~^^ ㅎㅎㅎ
사흠 ! 아흠 , ㅋㅋㅋ ( 백씨댁네 분들껜 송구합니다~꾸벅꾸벅~)

붉은돼지 2016-10-22 13:14   좋아요 1 | URL
송창식 노래가 떠오릅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에헤이 으헤으헤으허허
 

 

 

    

 

해협의 로맨티시즘

임화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7월 29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을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한 이름도 많다. 임화는 많이 들어본 이름은 아니다. 임화를 언제 알았느냐 하면 이 시집이 나온 지난해(2015)다. 이 시집을 보다보니 그전에도 지나가면서 본 적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카프라는 걸 들었으니까. 그때 배웠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한반도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람 이념도 둘로 나뉘었다. 그때 갑자기 둘로 나뉜 건 아니겠지만,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이념의 차이를 더 깊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를 몰아내려 하고 북한에서는 미국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숙청을 했다. 그 안에 임화도 들어갔다. 임화가 1947년에 북한에 갔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는데. 임화는 조선 레닌이라 하는 박헌영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글을 쓰다 북한으로 간 사람은 많지만, 내가 아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를 쓴 백석, 단편소설 동화 《문장강화》로 잘 알려진 이태준, 소설 《고향》을 쓴 이기영, 정말 얼마 안 되는구나. 이밖에 더 있을 텐데 생각나지 않는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아서 그렇구나.

 

세계에서 한나라가 둘로 나뉜 곳은 한반도밖에 없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할까. 아니 조금씩 해나가야 할 텐데 싶다. 윗사람은 조금 알겠지만 일반 사람은 북한이나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 들리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뿐이다. 북한 사람은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작가는 다 남쪽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북한으로 넘어 간 사람 이름을 들었을 거다. 기억에 남은 사람이 이태준이나 이기영이 아닐지. 백석은 좀더 뒤에 알았다. 한국 작가 소설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북한으로 간 작가 글을 생각하다니. 새천년이 다가오고 작가는 북한에 가거나 북한에서 오기도 했다. 그런 만남 몇번 없었겠다. 남과 북이 통일하는 것도 괜찮지만, 두 나라로 사이 좋은 이웃 나라가 되는 것도 좋을 텐데 싶다. 거기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다른 길을 걸었으니. 한국 사람끼리도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데, 북한과 한나라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하게 싸울지. 그 싸움으로 피해를 입는 건 백성이다.

 

한때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보면 큰일났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더 많은 작가가 알려지면 좋겠다. 임화는 만 열여덟에 시를 발표하고 글을 썼다. 본래 이름은 임인식이고 시뿐 아니라 평론도 썼다. 여기에 평론이 한편 실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임화 시를 보고 쓴 건가 했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제야 그 글도 임화가 썼다는 걸 깨달았다. 임화는 영화배우에 출판인 혁명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를 했다니. 시는 연극 대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니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를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피배에 울었다.

─그 중엔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 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현해탄>에서, 91~92쪽)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너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서, 145쪽)

 

 

 

조선시대가 끝나갈 때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은 많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만 하러 간 건 아니구나. 돈 벌러 간 사람도 많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현해탄이라 했다. 지금은 거의 듣지 못하는 말이다. 배보다 비행기로 가서일까. 임화는 연기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갔다 왔다. 영화도 찍었는데 그건 지금 남아 있을까. 북한에 가서 죽임 당한 사람은 아주 많겠지. 큰 뜻을 가지고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 간 사람도 많았을 텐데. 미국 스파이로 몰리기도 하다니. 남한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다. 임화는 미국 스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딸을 그리는 시를 썼을 때도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자기 감정을 나타내지 못하다니. 임화는 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북한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저세상에서나마 임화 영혼이 자유롭기를 바라고 그리던 딸도 만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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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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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둘기피리 꽃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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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하면 생각나는 건 바라는 일이야. 다 그럴지 모르겠지만 요정을 도와주면 바라는 일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도 하잖아. 좋게 말하면 요정, 무섭게 말하면 도깨비. 한국에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 이야기에서도 바라는 일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 한 것 같아. 사람은 그 세 가지에 만족할까. 세 가지라고 끝이 있어서 더 깊게 생각하고 말할지도 모르겠어. 어떤 이야기에서는 세번째 바람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를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말하기도 하지. 두 번째까지는 잘못 생각해도 마지막 세번째에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갑자기 일어나는 좋은 일은 그렇게 좋지 않기도 해. 복권 당첨된 사람이 그렇게 오래 잘살지 못한다고도 하잖아. 많은 돈이 생기면 감각이 없어져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마구 쓸까. 난 그러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군. 난 아예 복권을 안 사지. 복권 살 돈도 아깝다 여기고, 쉽게 얻은 건 쉽게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쩌다 이런 이야기로 흐른 거지. 이 책은 세 가지 바람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초능력은 진짜 있을까. 손 안 대고 물건을 옮기거나 물건에 남아있는 기억을 읽거나 다른 사람 마음을 읽는 건 만화에서 더 많이 봤어. 이밖에도 여러 가지 힘이 있을 텐데 난 잘 모르겠어. 불이나 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을까. 이건 손 안 대고 뭔가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가. 불을 내거나 물을 생기게 하는. 앞날을 아는 것도 있군. 많은 사람은 이걸 바랄까. 아니 어느 하나만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어떤 힘이든 있다면 그걸 쓰고 싶어할지도. 쓰고 싶어하는 건 그 힘을 가진 사람보다 그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 세계전쟁 때 소련인가 미국에선가는 초능력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힘을 가진 사람보다 그걸 쓸 만한 소질을 가진 사람을 모아서 실험한 걸까. 그런 힘 가진 사람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예전에는 그런 힘이 무엇과 상관있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뇌와 상관있다는 거 조금 알아. 좀더 일찍 다른 데도 관심을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과학 말이야. 지금도 잘 모르고 관심 많은 것도 아니야. 과학을 잘 안다고 초능력을 아는 건 아니겠지만. 난 어떤 일을 설명(이론)을 보고 알기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야.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 더 나아가 우주를 알려고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잘 말할 수 없는 말을 또 꺼냈군. 내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건 과학만은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처음 말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를 텐데 이제야 말해. 뭐냐면 만약 자신한테 어떤 힘이 있다면 어떨지야. 사람은 다 평범하기를 바라는데 어떤 힘이 나타나는 건 정말 다른 걸까. 사람은 누구나 힘을 갖고 세상에 나오지만 시간이 흐르고 약해지는 것일 수도 있잖아. 본래 힘을 갖고 나는 사람도 있지만, 살면서 힘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건 경험으로 얻은 지혜겠지. 난 그것도 힘이라고 생각해. 이건 재능과도 같군.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을 들여서 익히는 사람도 있지. 재능을 타고난다고 해도 애쓰지 않으면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만화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괴로워해.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여기고 혼자다 생각하니까. 무엇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듯해.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힘을 가진 사람을 괴물로 보기도 하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람은 자신과 다르거나 잘 모르면 무서워해. 무서워하기보다 좀더 가깝게 지내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지. 그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겠지만 쉽게 말 걸지 못할 것 같아. 난 먼저 다른 사람한테 말 못해. 인터넷은 말이 아니고 글로 쓰는 거여서 좀 낫지만(그렇다고 아주 다르지는 않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닐지라도 우리 둘레에는 뭔가 좀 다른 사람이 있기도 하잖아. 그런 사람도 마음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야.

 

이 책 제목인 비둘기피리꽃(구적초)은 정말 있을까. 이게 없는 건 아닌데 이름은 다를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엇인지 나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노래하는 꽃이라고 하니까. 여기에는 힘을 가진 세 사람이 나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서로 다른 세 가지 이야기야. 첫번째 <스러질 때까지>는 어릴 때 차 사고로 부모를 잃고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기억이 없는 아소 도모코가 함께 살던 할머니가 죽고 기억과 힘을 되찾는 이야기야. 도모코는 부모가 자신의 힘을 싫어했다는 생각을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그런 부모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사고가 갑자기 일어나서 그걸 이상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어. 도모코가 여덟살 때 엄마 아빠와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일어났어. 그때 엄마 아빠는 죽고 도모코만 살았어. 엄마 아빠는 죽고 자신만 살아서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까. 그래서 도모코는 엄마 아빠가 자신과 죽으려 했다고 생각했겠지. 그 생각은 잘못된 거였어. 도모코 엄마 아빠는 그저 도모코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어. 도모코가 잠을 자고 안 좋은 꿈을 꾸면 머리가 아팠거든. 꿈 이야기를 하면 덜 아팠어. 도모코한테는 앞날을 아는 힘이 있었어. 아니 그 말을 할 때는 그게 어떤 일인지 몰라. 그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알았어. 자신이 제어하기 어려워 보이는 힘이야. 잠들었던 그 힘이 기억과 함께 깨어났어. 도모코가 한번 죽으려 했지만, 엄마 아빠 마음을 알고 그 힘과 살기로 해.

 

두번째 <번제>는 나중에 《크로스파이어》라는 장편이 되지. 그 책 읽었는데 다 생각나지 않아.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한테 희망을 갖고 글을 쓰는데 이건 좀 다르기도 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 식구를 죽인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 생각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얼마 없지. 아오키 준코는 불을 내. 이건 염화 능력(파이로키네시스)이군. 준코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는 생각으로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살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보고 그 힘을 쓰려 해. 미야베 미유키가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아오키 준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사람도 나오니까. 그렇다 해도 아오키 준코를 막지 못했군. 장편에는 여자 형사가 나왔던 것 같아. 아오키 준코 마음을 조금 알아주는.

 

남과 다른 힘이 있으면 남한테 도움을 주고 싶겠지. 마지막 <비둘기피리꽃>은 거기에 딱 맞아. 혼다 다카코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경찰이 되어 일했는데, 그 힘이 사라지는 걸 느껴. 다카코는 사람이나 물건에서 마음을 읽어. 그런 힘이 사라지기도 하다니. 다카코는 자신한테 그 힘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해. 꼭 그럴까. 그 힘이 없다 해도 다카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다카코도 그걸 깨달아. 다카코 힘이 사라져도 죽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카코 힘이 사라지면서 몸이 안 좋아져서 이런 생각을 했어. 지금 잠시 나타나는 거고 보통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지. 힘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카코가 앞으로도 잘 살기를 바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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