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드의 피아노

  A Romance on Three Legs

  : Glenn Gould's Obsessive Quest for the Perfect Piano (2008)

  케이티 해프너   정영목 옮김

  글항아리  2016년 07월 11일

 

 

 

 

 

 

 

 

 

 

 

 

 

바이올린이나 첼로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 스트라디바리우스다(내가 아는 게 이것뿐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오래되고 잘 관리한 것은 아주 비싸겠지.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혼자 들 수 있는 건 자기 악기를 어디든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할 수 있다. 피아노는 크고 옮기기 힘드니 자기 것을 고집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글렌 굴드는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로만 연주하고 싶어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는 건 아는데, 피아노도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 한 사람이 시간을 많이 들여 만드는 건 아니지만 거의 손으로 만들었다. 피아노는 일본 피아노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한국에서 만드는 것도 생각난다. 많이 만드는 것과 스타인웨이에서 만드는 피아노는 다르겠지.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비쌌다. 이곳은 아직 있을까. 피아노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해도 아주 없어진 건 아니겠지.

 

이 책을 보니 스타인웨이에서 만든 피아노는 다 달라 보였다. 공장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은 피아노를 만들고 안에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건 많이 만드는 피아노에는 할 수 없는 거다. 대를 이어 피아노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 책 제목이 《굴드의 피아노》여서 피아노 이야기를 먼저 조금 했다. 글렌 굴드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연주를 들어봤는지 그건 모르겠다. 고전음악을 그렇게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피아노 연주는 좋아하지만, 고전음악보다 대중음악을 더 들었다. 엄마가 굴드한테 피아노를 가르칠 때 연주하는 걸 따라부르라고 한 걸 보니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났다. 굴드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언제나 그것을 따라불렀다는 게. 어떤 음반에서는 굴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단다. 굴드는 다른 소리에는 민감했는데, 자신이 앉은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나 연주를 따라부르는 소리는 마음 쓰지 않았다. 누가 자기 몸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고 밝은 색을 싫어한다는 말을 보고 아스퍼거증후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나 보다. 굴드한테는 음악이 있어서 그런 게 심하게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상은 천재한테는 마음이 넚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남과 조금 다르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이건 나도 들어간다고 해야겠다. 내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식구가 그런 것을 알고 배려하기도 하던데. 내가 무엇인가 되었다면 좀 나았을까 싶지만. 내가 왜 그런지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 이해받지 못하는 거겠지. 우울하다. 굴드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손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고 병균을 두려워하고 건강에 마음을 많이 썼다. 다른 사람과 손잡기 싫어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었다. 이건 좀 안 좋은 거 아닌가. 약이 아픈 몸을 낫게 하지만 약을 잘못 먹으면 더 안 좋다. 굴드는 더울 때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 자신이 치는 피아노에 꽤 까다로웠다. 의자는 자신이 늘 앉는 것을 가지고 다녔다. 굴드가 피아노 치는 자세는 사진으로 봐도 안 좋은 걸 알겠다. 자세가 그래서 몸이 안 좋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굴드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는데, 굴드는 세게 맞았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굴드는 그렇게 느꼈을 테니까.

 

굴드가 마음에 들어한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에서 만든 CD 318이다. 베른 에드퀴스트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조율사로 굴드 피아노를 조율했다. 예전에 피아노를 생각하다 조율을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베른이 피아노 조율 배우는 걸 보니 어려워 보였다. 베른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숫자와 소리를 색깔로 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살던 곳을 떠난 것이기도 했다. 굴드가 CD 318을 좋아한 것처럼 베른도 그것을 좋아하고 굴드가 바라는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누군가 피아노를 옮기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나보다. 그 일을 솔직하게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 뒤에 CD 318을 여러 번 고쳤지만 굴드가 바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똑같은 걸 만들 수 없나 했는데, 똑같은 걸 만든다고 해도 그게 CD 318은 아니겠지. 배는 다 다르다는 것이 생각났다. 지금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가는 거의 성격이 별로다. 성격이 별난 사람이 잘 알려져서 예술가 성격이 별로다 생각하는 건지도. 예술가는 다른 건 잘 모르고 하나만 생각할 것 같다. 굴드는 서른한 살에 연주를 그만두고 그 뒤로는 스튜디오에서 녹음만 했다. 여기저기 다니는 게 힘들고 피아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겠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도 잘해야 할 텐데. 자기 악기만 고집하는 사람은 지금도 있을 것 같다. 굴드는 자신이 쉰쯤에 피아노를 그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데 1982년 쉰살에 뇌졸중으로 죽었다. 굴드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 받았겠지. 베른은 굴드 피아노를 오래 조율했는데 굴드가 죽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 굴드 소식을 바로 듣지 못한 베른은 무척 섭섭했겠다. 아무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가 다가오면 몸 어딘가에서 그런 것을 느끼는 건 아닐까. 굴드도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흔한 말이고 언젠가도 했는데). 굴드가 연주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 들어보고 싶다.

 

 

 

 

 

 

 

소년은 기타를 만났지

 

 

 

소년은 늘 혼자였어요.

그렇다고 소년이 혼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 아빠는 아침 일찍 일을 나갔다 밤늦게 들어와서

소년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소년은 씩씩하게 지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소년은 말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소년과 같이 놀지 않고,

가끔 놀리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조금 억울하고 쓸쓸했지만

그 마음을 나타내지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늦은 밤 소년이 잠을 자다 깼을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소년을 부르는 듯했습니다.

소년은 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소리는 아빠가 치는 기타에서 나는 거였어요.

아빠는 소년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소년에게 기타를 건넸습니다.

 

기타는 조금 컸지만,

소년한테 좋은 동무가 되었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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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짧게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부터 메모장(컴퓨터 프로그램)에 쓴 다음에 붙여넣는 버릇이 들었다. 글 쓰다 그게 날아갔다는 말을 보면 난 그런 일 별로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컴퓨터가 멈춘다거나 쓴 걸 저장하지 않아 날릴 때도 있다. 새벽에는 시간이 늦어서 ‘밤에 쓰지’ 하고는 내가 쓴 걸 다른 데 저장하지 않고 메모장을 닫았다. 그걸 할 때는 중요한 거 없겠지 하고 ‘저장 안 함’을 눌렀다. 자려고 하자 내가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메모장 닫기 전에 확인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냥 닫지 않고 저장하는 메모장에 써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잠은 빨리 들지 않고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작가 이름은 알았지만 소설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윤성희는 예전에 한권인가 두권인가 보고 윤고은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성희는 모르겠고 얼마전에 윤고은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본래 이름은 고은주로 끝에 주를 빼고 엄마 성인 윤을 붙여서 윤고은이라 했단다. 고은주라는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윤고은이라는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고은주라는 소설가가 있어서 바꿨다고 한다. 은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많다. 내가 알았던 사람도 여럿이다. 난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은주》(권비영)라는 소설도 있다.

 

내가 뭐라 썼더라 하면서 다시 썼다. 똑같지 않지만 저런 말을 썼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다시 쓰면 될 텐데 쓸데없는 말을 했다. 윤고은은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말은 못 썼지만. 윤성희와 윤고은 소설을 악스트에서 먼저 만났는데 그 소설도 책에 실렸다.

 

 

 

 

 

생존배낭은 있을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한겨레출판  2016년 05월 20일

 

 

 

 

 

 

 

 

 

 

 

 

 

윤고은 책은 처음 만났다. 책은 처음이지만 단편 <된장이 된>은 악스트에서 보았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 다른 데서 봤는데일지도. 아버지는 열다섯해 전 같은 회사에 다닌 동기한테 빌려준 돈 천만원 대신 된장 오십킬로그램을 받아온다. 된장 오십킬로그램이 천만원은 안 될 것 같은데. 어떤 사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그동안 돈을 받으려 애쓴 일을 말하려는 것일 테지만, 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돈은 왜 투자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때는 잘되리라고 믿었겠지. 아버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한테서 악착같이 돈 받아내지 못할 것 같다. 돈 받을 기회도 여러 번 놓쳤다. 딸인 ‘나’도 다르지 않았다. 떼인 돈 받아준다고 한 조는 돈이 아닌 된장을 받았다. 빌려준 돈은 못 받았지만 돈을 대신해서 다행인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람들한테 보여준 다음에 태울 수 있을까. 오래전 그림이 남아서 지금 사람도 보는 건데. 로버트 재단에서 하는 미술관은 그림을 전시하고 나중에 그것을 모두 태운다. <불타는 작픔>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로버트가 사람이 아닌 개라는 거다. 로버트 재단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마당 딸린 개’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로버트가 진짜 그랬다. 가끔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일은 거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겠지. 로버트가 하는 말을 통역하는 최부장도 있다. 남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더 고유성을 가질까. <전설의 존재>에서도 고유성이라는 게 나오는데.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생각한 게 진짜 자기 안에서 나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도 한다. 비슷한 것이라 해도 남의 것을 그대로 쓰면 안 되겠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달력 작가는 진짜 있을까. 예전에 글을 잘 쓴 사람이 지금은 자신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큰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놓칠 수 없는 마음이 보인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게 또 나온다. X-ray가 아닌 <Y-ray>다. Y-ray는 새로운 빛으로 사람 몸을 인식한다. 몸 속이 공장처럼 보이고 없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런 사람을 Y라고 한다. Y-ray를 찍어서 그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Y-ray를 찍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 달라서 차별받는 사람. <책상>은 작가 비서로 일하는 사람이 하루는 작가가 말한 문장을 찾으려고 평소와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여기 나온 비서는 자신이 아닌 작가의 말만 쓰고 작가 이름으로 여러 사람한테 전자편지를 쓴다. 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걸까. 그런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다옥정 7번지>는 1930년에서 산책을 하던 박태원이 2010년으로 와서 박태원 노릇을 하다 이상이 되는 이야기다. 이것도 이렇게 한줄로 말하다니. 시간여행처럼 보이지만 지금 사람은 박태원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진과 얼굴이 달라서. 진짜 그런 일 있을까. 아주 다른 사람을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 아는 일 말이다. 어쩐지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오두막>은 조금 어두워 보인다. 세해 전 제주도에서 사람 발길이 뜸한 오두막에 있던 두 사람은 오두막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지만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 사람과 한 사람이니 용기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가 아니더라도 남자가 자리를 떠났을 때 여자를 도왔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두 사람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제주도에서 친환경 가로등을 세운다지만. 그것을 보고 나는 빛공해를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도 무서운 일이 일어나겠지. 밝으면 그런 일이 줄어들까. 안 좋은 일을 함께 겪으면 그 일을 같이 이야기하기보다 서로 더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함께 견디는 일도 쉽지 않겠다. 생존배낭은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나온다.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만드는 거다. 실제 이런 거 있을까. 재해를 대비해 준비하는 것도 나을지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사흘 동안 견딜 수 있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데, 이건 사흘 뒤에 구조가 될 것을 생각한 걸까. ‘나’는 생존배낭에 넣을 양말 계약을 하려고 양말 만드는 회사 사장 홀튼을 만나러 울룰루에 가려 한다. ‘나’는 차를 잘못 탄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홀튼 같다. ‘나’는 제대로 계약을 따내지 않을지.

 

마지막 이야기는 따듯한 걸까. 겨우 다섯살 많은 형이 동생을 살리는 이야기도 나오니까. 동생은 사십년이 지나서야 형을 묻은 곳에 찾아가려 한다. 그곳을 찾을 수 있을지. 짧게 호주 원주민과 백인 사인에서 난 애버리지니 이야기도 나온다. ‘나’가 만난 위키도 그랬는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삶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

 

Y. 그것은 놀라운 힘을 가진 말이었다. Y. 그 한마디에 연애는 끝이 났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으며, 대출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꿈은 대출조자 되지 않았다. Y. 그것은 불길한 낙인이었다. 상점에 들어가 고를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다. 집 밖에서 움직일 때마다 갖가지 제약이 따라붙었다.  (<Y-ray>에서, 132쪽)

 

 

 

 

 

 

 

 

 

 

 

 

 

 

 

 여러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문학동네  2016년 04월 21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고,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 마음도 다 알기 어렵다. 가깝기에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깊이 알고 싶지 않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사귀는 건 상대가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지는 것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사람 사귀기 어렵겠다. 처음부터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식구다. 식구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기 어렵다. 아예 연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식구 이야기를 하다니. 여기 실린 소설이 식구뿐 아니라 친구 이야기로 보이기도 해서다. 식구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다. 올케 셋과 시누이 하나,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헤어진 남편과 아내. 단편소설을 하나로 말하기 어렵지만 하나하나 말하기도 어렵다.

 

소설과 상관없이 제목으로 말할까. 그것도 하나나 둘밖에 못할지도. <가볍게 하는 말>에서 가볍게 하는 말은 뭘까 싶다. 고모가 고모 친구 장례식장에서 친구 아들한테 한 말 “산 사람은 살아야지” (29쪽)일까. 고모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손자한테 말했다. 혹시 고모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일지도. 고모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고 고모는 손자와 산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제목이 무엇을 뜻할까 했다. 딸과 어머니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어머니는 자신이 왜 아이를 낳으려 했는지 말하고 딸은 그 말을 듣는다. 딸은 쌍둥이였는데 언니가 없었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동생이 언니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더는 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어머니는 정말 딸이 죽었다는 걸 모를까. <날씨 이야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우는 얼굴은 다 비슷하지만 웃는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다. <휴가>는 ‘나’가 고등학교 때 친구 박의 식구와 휴가를 보내는 이야기다. 둘이지만 본래 한사람이 더 있었다. 그 친구는 죽고 ‘나’는 결혼하려다 하지 못하고 박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나’는 셋에서 하나라도 잘살아서 다행이다 한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헤어지면 친구로 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베개를 베다>에서 남자는 헤어진 아내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간 동안 물고기 밥을 주러 아내 집에 간다. 베개를 베면 쉽게 잠들고 꿈을 꾼다. 아내한테 전화하는 꿈이다. 꿈에서만 전화하지 않고 실제로 말했다면 어땠을지.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도훈이 초등학생에서 서른 후반까지 나오는 이야기다.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어떤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일까. 그것보다 가깝거나 멀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낮술>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만나고 ‘나’를 낳고, 아빠는 사고로 죽는다. 이렇게 말하니 두 사람이 만나고 아무 문제없이 결혼한 것 같구나.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겁을 먹고 달아났다가 돌아왔다. 나이를 먹으면 계단이 무섭다는 어느 할머니 말을 듣고. <모서리>는 오래전에 죽은 사촌형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염이 조와 군복을 입고 술을 마시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말했구나. <다정한 핀잔>에서는 사고로 수술을 받는 미희 언니를 ‘나’와 미희 언니 동생이 이야기한다. 미희 언니 동생은 미희 언니 이십대를 몰랐다. 함께 산다고 언니와 동생이 서로를 잘 알까. 미희 언니와 동생은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미희 언니가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한테 뭐라 말하기를 바랐다. 그 일이 이뤄진다면 좋을 텐데. <이틀>은 감기로 회사를 이틀 쉬면서 겪는 일이다. 죽은 아내와 딸을 생각했는데. 감기는 꾀병이 아닐지. 첫날은 지금까지 못 본 목련나무를 본다. 이틀째에는 트럭 밑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우고, 할머니 밭을 간다. 지금까지 둘레를 보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쉰 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없다. 우리 둘레에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보인다. 살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사는.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도 들어간다. 그런 것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누구나 아픔을 갖고 살겠지. 힘을 내고 산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 같다. <날씨 이야기>에 나오는 언니는 좀 다른가. 잘못 온 엽서 때문에 미움을 생각한다니.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에 빠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달 찾기

 

 

 

달과 지구는 우주에서 저마다 돌고

돌다보면 어느 때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건 몇십해 만에 찾아오는 일

견우와 직녀도 해마다 한번 만나는데

달과 지구 사이는 몇십해 만에야 가까워지는구나

 

몇십해 만에 커다란 달을 볼 수 있다기에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하늘은 캄캄한데 달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든 빛만 가득했다

그 빛이 달빛을 가린 걸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겨우 달을 보았다, 아니 찾았다

달은 며칠 전과는 다른 쪽에서 빛났다

엉뚱한 곳에서 달을 찾았구나

 

찾으려는 것이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해도

그곳이 늘 같은 곳은 아니다

네 마음도

내 마음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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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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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슬픔입니다. 얼마 전에 시집을 보고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쁜 건 아니지요. 이 말도 했군요. 시집을 보고 느낀 슬픔과 이 소설집을 보고 느낀 슬픔은 조금 다른 듯도 합니다. 살다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잖아요. 그건 산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느낀 건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슬픔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로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슬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 더는 감당할 수 없음에 관계를 끊는 데서 오는 슬픔, 알 수 없는 까닭으로 관계가 끊어지는 데서 오는 슬픔. 더 있을 테지만 생각나는 건 이만큼뿐이네요. 이런 슬픔도 살다보면 찾아오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세상에는 사랑뿐 아니라 슬픔도 흘러 넘칩니다. 이런 말 때문에 이 책 못 읽겠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안 될 텐데. 여기에 슬픔이 담겨 있다 해도 눈물을 쏟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할 뿐입니다. 이건 저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소설 보면서 작가는 잘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쓴 최은영은 일본 사람 친구가 있고, 독일 플라우엔, 프랑스 리옹,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가 본 적이 있을까 했습니다. 다른 나라가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이에요. 이장욱은 어딘가에 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갔다오기도 했더군요. 그때 바로 소설을 쓴 건 아니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썼다고 합니다(《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담긴 소설). 최은영은 어땠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게 별난 건 아니지만, 최은영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소설에 쓴 건 아닐까 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쇼코와 소은은 최은영 자신일까 하기도. <미카엘라>에서도 최은영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는군요. 작가는 자신이 쓴 글 자체만 보기를 바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다르지만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런 것을 생각해도 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봤습니다.

 

다섯번째까지 보면 관계가 끊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쇼코의 미소>(마음속으로는 웃음이라 생각하고 봤습니다)에서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한국학생과 일본학생 문화교류라는 것으로 만난 소유와 쇼코가 한주를 소유네 집에서 함께 보내고 편지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만 편지를 나눈 게 아니고 소유네 할아버지와 쇼코도 편지를 나눠요. 소유네 외할아버지한테 쇼코는 친구였어요. 소유한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쇼코한테는 했어요. 소유와 쇼코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부터는 연락이 끊겨요. 소유와 쇼코가 편지를 나누지 않게 됐지만 몇해 뒤에 소유가 쇼코를 만나러 일본에 갑니다. 그때 소유는 괜히 쇼코를 만났다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니 피천득 수필 <인연>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소유 할아버지가 죽고 소유는 쇼코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됩니다. 쇼코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걸. 소유는 할아버지가 쇼코한테 보낸 편지로 할아버지 마음도 조금 알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한테 자기 마음을 터놓기 어렵죠. 식구와 마주이야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지.

 

다음 <씬짜오, 씬짜오>는 독일에서 베트남 사람과 독일말로 말합니다.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도 자기 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 이야기 하는군요. 같은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할 때가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말로 할 때는 더할지도. 그래도 서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한지와 영주>는 조금 다릅니다. 프랑스에서 케냐 사람인 한지와 한국사람인 영주는 영어로 말합니다. 둘은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는 듯하지만, 그걸 겉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한지는 케냐로 돌아가기 두주 전부터 영주를 피합니다. 한지는 영주한테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영주는 한지가 왜 그럴까 하지만 한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묻지 않습니다. 물어도 한지는 대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생각할 수 있는 건 정을 떼려고 했다는 거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는 국경도 없다 하지만, 한지는 돌보아야 하는 여동생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이해하지 못해 관계가 틀어지고(<씬짜오, 씬짜오>), 문화가 달라서 멀어졌네요(<먼 곳에서 온 노래>).

 

관계가 끊긴다 해서 슬프기만 한 건 아니예요. 따듯함도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자신은 잘살고 순애 언니는 못사는 것 같아 더 보기 어렵다 생각한 <언니, 내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순애 언니한테 자신이 한 잘못을 용서받았다 여깁니다. 사는 게 차이가 많이 나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요. 저도 저랑 상관없는 사람이 자랑하는 걸 보면 부러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네요. 남은 남, 자신은 자신이다 생각하면 괜찮을 텐데,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세 사람이 중심이라 해야겠네요. 소은과 미진 그리고 율랴. 소은과 미진이 함께 산 적 있고 미진과 율랴가 함께 산 적 있네요. 미진이 세상을 떠나고 소은과 율랴는 함께 미진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는군요(<쇼코의 미소>). <미카엘라>와 <비밀>도 관계가 끊어지는 거 맞네요. 죽음으로. <미카엘라>는 조금 먼 사이지만 슬퍼합니다. 가깝지 않다 해도 그때(20140416) 한국 사람은 모두 슬퍼했네요. <비밀>은 손녀가 중국에서 죽음을 맞고 할머니가 손녀를 그리는 이야기예요. 이걸 읽으면 손녀가 죽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된 건가 했습니다. 아직 슬픔이 가득해서 차마 그 말을 못하는 건 아닌지. 할머니는 자신이 죽었다면 손녀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할머니는 예전에 암으로 죽는다고 했는데 다 나았습니다. 앞으로는 딸과 사위와 함께 살아가겠지요.

 

슬프지만 따듯하다 말했는데 왜 그런지 제대로 말하지 못했네요. 그냥 그럴 때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이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겠지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습니다. 헤어질 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플 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있어서 기쁠 때도 많잖아요. 그 사람은 식구, 친구,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말하는 거예요.

 

 

 

희선

 

 

 

 

☆―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쇼코의 미소>에서, 18쪽)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한지와 영주>에서,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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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드러내기

 

  잔혹한 그림 왕국   The Grimm Conclusion (2013)

  애덤 기드비츠   유수아 옮김

  미래엔아이세움  2016년 05월 25일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독일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그림 형제 동화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실린 동화는 많을 텐데 책으로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그것을 조금 안다니 신기하다. 아마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봤겠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그림 동화가 잔인하다는 걸 알았다.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만 보는 건 아닐 거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화라는 말이 어린이책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일지도. 그림 동화가 잔인해서 그것을 아이한테 그대로 보게 할 수 없다고 여긴 어른이 내용을 많이 바꾸었다. 그런 일 지금이라고 없을까. 어린이는 밝고 예쁜 것만 보아야 할까. 어릴 때부터 어두운 이야기를 보고 삶이 덧없구나 생각하는 건 안 되겠지만. 어려도 사람한테는 안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과 세상이 밝고 예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생각 조금 엄한 건지도.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알았던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건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어서겠지.

 

동화에서 아이는 모두 집을 떠날까. 파랑새를 찾으려고 떠나는 건 생각난다. 그 아이들은 왜 파랑새를 찾으려고 했을까. 부모가 행복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드는데. 아이는 부모 눈치를 많이 본다. 내가 그런 것을 경험했던가.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아파도 잘 참는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그 뒤로 나는 아파도 아무 말 안 했다. 돈도 아끼고. 지금 생각하니 어렸을 때 난 그게 착한 거다 생각한 건지도. 그때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파도 참고 돈도 잘 안 쓴다. 어릴 때 든 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를 하다 이런 말을 했구나. 집을 떠난 아이는 이런저런 경험을 한다. 경험을 하고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어쩐지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린다와 요링겔은 쌍둥이로 둘이 태어났을 때 아빠는 무척 기뻐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이 태어나서 기뻤지만 아빠가 죽은 슬픔에 빠져서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 아이가 혼자가 아니고 둘인 게 다행이구나. 둘은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결혼하고 새아빠와 두 딸이 오고 집은 안 좋아졌다. 엄마는 정말 요린다와 요링겔을 생각하고 다시 결혼한 걸까. 누군가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요린다와 요링겔은 어쩌다 보니 집을 떠난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둘은 괴롭고 아픈 것을 피하듯이 집을 떠난 거다.

 

부모한테 맞는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슬픔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한테 감정을 삼키라 한다. 자신이 아프고 괴로운 일에서 피하면서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다니. 둘은 감정을 참고 참아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만약 요린다와 요링겔이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린다와 요링겔이 지옥에서 악마네 할머니를 만나 자기들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다. 사람은 즐겁고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화내야지, 그런 것을 억누르면 안 된다. 화라고 해서 별거 아닌 일에 욱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참지 않고 그것을 말하는 거다. 자기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지 모를 거다. 요린다가 여왕이 됐을 때 그랬다. 백성이 어떤지 잘 살펴보지 않았다. 요링겔은 아이를 때리는 부모를 엄하게 다스렸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넓게 보아야 하는데.

 

아이한테 어두운 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잔인한 건 별로다. 좀 잔인한 게 나온다. <신데렐라>에서 의붓언니가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는 건 많이 알려졌을지도. 엄마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달아나서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했다. 부모를 따라 아이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요린다와 요링겔은 엄마한테 자신들 마음을 털어놓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나중에 알았구나. 요린다와 요링겔이 죄책감과 자신들한테 마음을 쓰지 않는 엄마 때문에 집을 떠났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다. 엄마도 괴롭고 두려웠다는 걸.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을 사랑했지만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아내가 죽고 아이한테 마음 쓰지 않고 일에 빠지는 아빠가 생각나는구나.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그때는 아이가 고생하겠다. 자신이 아픔이나 괴로움을 피한다고 해서 아이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겉으로 드러내는 게 좋겠지. 말할 사람이 없으면 글로 나타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마음이 조금 나아질 거다.

 

 

 

 

 

 

 

 

 

 

 

 

 

 

 

 

 책은 썼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단풍을 보려고 어딘가에 가 본 적은 없다. 거의 볼 일 있을 때 나가서 길에서 본다. 사진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저기를 작은 공원이라 해도 괜찮겠지. 운동기구도 조금 있고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공연하는 곳도 만들어뒀지만 거기에서 한번이라도 공연했을까. 했지만 내가 한번도 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단풍을 봐서 좋았다. 도서관에 여러 사람이 와서 강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한번도 못 봤다. 그런 걸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거의 책만 빌린다. 그것만 해도 괜찮기는 하다.

 

십일월에는 씰(실seal이라 써야 하겠지만 저기에도 씰이라 쓰여 있으니)이 나온다. 며칠에 나오는지 잘 모르는데, 이달 첫째주에 동네 우체국에 갔을 때 물어보니 7일에 나온다고 했다. 그날 갔더니 거기에서는 팔지 않는다는 거다. 멀리 시내까지 나가야 해서 며칠 지나서 가기로 했다. 며칠 지나면 다 팔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샀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는 사지 않다가 우연히 우체국에 가서 성탄절 씰을 보고 예뻐서 샀다. 그때는 우표와 다르지 않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는 스티커로 나왔다. 그게 언제부턴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스티커로 나온다. 올해는 독립운동가 열사람이다. 뜻깊게 보인다.

 

나라를 되찾으려고 애쓴 사람에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어쩌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나라가 있는 거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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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시집을 한달에 한권 정도는 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움이 될까요. 어디에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에. 생각을 다르게 한다거나 상상력을 키우는 데. 이건 소설을 봐도 되는 것일지도.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시를 보는 건 아니군요. 하나 있습니다. 시가 아니어도 시처럼 느껴지게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겁니다. 한달에 한권으로는 어림없을지도. 책을 읽고 써도 저만의 글을 쓰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어렵더군요. 몇해 동안 책을 읽고 쓰기 꾸준히 했는데 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잘 못 써도 쓰면 괜찮더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게 꼭 맞는 건 아닐지라도. 책은 사람마다 그 사람이 놓인 형편에 따라 보겠지요. 저와 상관없는 일이 나올 때는 무슨 말을 쓰면 좋을까 합니다. 자신과 상관없다 해도 생각해 보는 게 괜찮겠지요.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몇번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소설에서 잘 보는 건 이야기예요. 그런 소설만 있는 건 아닌데. 이야기가 뚜렷하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좋을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런 걸 보면 ‘작가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합니다. 제가 잘 못 알아듣고 작가 탓을 하는 거군요. 시는 어떨까요. 시도 이야기가 있는 거 있어요. 제가 그런 시 좋아합니다. 다행하게도 시는 잘 몰라도 느낌이 괜찮다 하기도 합니다. 그게 어떤지 뚜렷하게 말할 수 없지만. 시를 보고 그게 어떤지 잘 말하는 사람 부럽습니다(글 잘 쓰는 사람은 다 부럽군요). 시는 시인 이야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때도 있겠지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쓰는 것이겠지요. 시만 그렇게 쓰는 건 아니군요. 시도 자주 만나면 조금은 알 수 있겠지요. 처음 봤을 때는 ‘뭐지’ 해도 나중에 다른 데서 보면 뭔가 느낌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 말 들은 말이기는 하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본 소설에는 기형도 시 <조치원鳥致院>이 나왔습니다. 이 시는 기억하지 못한 거기는 하지만, 그걸 보니 시집 한번 펼쳐보고 싶기도 하더군요.

 

어떤 책은 읽다보면 나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도 뭔가 쓰지 못하지만. 단지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뿐입니다. 쓸거리도 떠오르게 하면 좋을 텐데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이 시집을 보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는 못 쓰고 이런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책이나 영화와 음악 그리고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요. 쓰고 싶은 마음만 드는 건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여기 담긴 시가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을 끄집어 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건 다시 제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겠네요. “떠오르고 싶었을 텐데 미안해” 그렇게 제 마음속에 가라앉은 건 얼마나 될지요. 아주 많지는 않을 거예요. 쓰고 싶다 생각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책 읽지 않았을 때도 그런 일 있어요. 아니 그때도 책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읽거나 보았을 거예요.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휴일의 평화>에서, 57쪽)

 

 

 

10

 

사랑을 잃은 자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  (<먼지 혹은 폐허>에서, 79쪽)

 

 

 

심보선 시는 처음 만났는데(제가 아는 시인이 많은 건 아니군요), 시집 보기 전부터 내가 이걸 잘 볼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냥 보면 될 텐데, 이렇게 보기까지 두해가 걸렸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보고 싶었지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니. 슬픔이 담긴 시가 많이 보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슬프고, 사람을 슬픈 짐승이라고도 하지요.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작가는 슬픔으로 글을 쓰기도 하네요. 자신의 슬픔에 빠져서 둘레를 못 보면 안 되지만, 슬픔을 알아야 남의 슬픔에 공감하겠지요. 슬픔이나 아픔을 좋아하지 못해도 아주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이 쓸쓸하지 않게.

 

 

 

 

 

 

 

 

 

 

 

네 슬픔이 내게 인사하네

 

 

 

지난 밤 꿈에 네가 나왔어

오랜만이어서 기뻤지만

우는 널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마음 아팠어

 

현실의 넌 울지 않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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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6-11-13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시집 한권!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응원드립니다. /^^/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인들은 좀 아는데 (시집을 좀 많이 봤습니다.) 그 후론 모르는 시인이 많아 2000년대 이후 활동한 시인들을 좀 들춰보려고 하는데, 생활(직장, 아이)이 발목을 물고 있고, 많은 책들이 여전히 줄 서 있어 쉽지 않습니다만, 시간을 내 볼 계획입니다.

희선 2016-11-13 00: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조금 쓸데없는 말이지만, 제가 책을 읽고 쓰고부터는 시집을 보면 뭐라 쓰지 하는 마음에 좀 멀리 했습니다 한국소설도 마찬가지네요 그것도 있고, 다른 책을 보다보니 시는 잘 못 보게 되기도 했어요 여전히 시집 많이 나오고 시인도 많더군요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해도 책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러네요 하지만 얼마 못 보기도 합니다 한달에 한권 보기로 한 건 다른 것도 있는데 그건 올해 별로 못 봤습니다

가을에 시가 어울리죠 아니 시는 언제 봐도 괜찮습니다 雨香 님한테 시를 만나는 시간이 나기를 바랍니다


희선

오거서 2016-11-13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뚜렷하게 말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도 응원합니다! ^^

희선 2016-11-15 01:28   좋아요 1 | URL
시를 보는 것도 정해진 답은 없는 거겠죠 그때 자기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