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星空 The Starry Starry Night (2009)

  지미 리아오   김지선 옮김

  씨네21북스  2012년 04월 10일

 

 

 

 

 

 

 

 

 

 

 

 

 

 

 

어둠이 내린 뒤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작지만 내가 사는 곳도 도시다. 지금보다 옛날에는 달이나 별을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별빛이 희미하다. 아주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산골이나 사막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인다는데 그런 건 평생 못 몰지도 모르겠다. 밤을 밝히는 빛 때문에 밤에도 이것저것 할 수 있지만, 그 빛 때문에 우리는 밤빛을 잃었다. 아쉬운 일이다. 잘 보이지 않아도 밤이면 여전히 하늘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 아마추어 천문학자. 자주는 아닐지라도 가끔 도시 불을 끄면 얼마나 좋을까. 어려운 일이겠다. 이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거다. 나도 밤에 하늘을 보는 건 아니구나. 예전에는 가끔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더 안 본다. 밤하늘을 보면 지구와 우주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넓고 끝없는 우주. 별바다를 헤엄치는 건 무엇일까.

 

어렸을 때 그림책을 자주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그림책뿐 아니라 다른 책도 거의 안 봤다.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을 나이를 먹고도 즐겨보는 사람 있겠지. 그런 건 더 오래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야기보다. 아직 난 그렇게 못한다. 한번이 아니고 두세 번 보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책을 보게 됐을 때도 그림책은 별로 못 보았다. 이 책 《별이 빛나는 밤》은 어른이 읽기를 바라고 그린 걸까. 지미 리아오는 그런 책을 그렸나 보다. 이 책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어린이한테 바친다’는 말이 있다. 어린이만 세상과 소통할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도 그건 쉽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그냥 살지 할 테지만, 어린이는 방법을 알면 그렇게 할지도. 세상을 보고 여러 가지로 생각한다면 세상과 소통하기 어렵지 않겠지. 사람이 아닌 자연이면 어떤가. 곁에 누군가 있어야 덜 쓸쓸한 건 아니다. 혼자여도 세상을 받아들이면 덜 쓸쓸하겠지.

 

비 오면 비를

눈 오면 눈을

바람 불면 바람을 느끼자.

 

여기에 나오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 같기도 하고 중학생 같기도 하다. 여자아이는 여섯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산 속에 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여자아이는 엄마 아빠와 살게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 때는 엄마 아빠가 그리웠는데, 가까이에 있어도 먼 느낌이다. 엄마 아빠 모두 바빴다. 여자아이는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기도 했다. 옆집 할머니 집에 방을 얻고 사는 남자아이는 여자아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남자아이는 말이 없고 거의 혼자 지냈다. 여자아이는 그런 남자아이를 괜찮게 여겼다. 남자아이가 옆반 남자아이들한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여자아이가 도와준다. 여자아이 머릿속에서 여자아이는 뿔이 나고 커다란 빨간 공룡이 되어 아이들을 혼냈는데, 현실은 그것과 달랐다. 둘 다 크게 다쳤다. 그 뒤 둘은 친하게 지낸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 다 쓸쓸하게 보이지만 남자아이는 혼자여도 많이 괜찮아 보인다. 그건 왤까. 혼자여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어설지도. 남자아이는 물고기를 좋아하고 고래를 좋아했다. 남자아이가 떠나기 전에,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여자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함께 간다.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서 이젠 빈 집이지만. 둘은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밤하늘을 보기도 한다. 둘이 도시를 떠나 산 속에 가는 그림이 여러 장 나온다. 그 그림 멋지다. 다른 그림도 그렇구나.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쓸쓸하면 공상을 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닐 것 같지만, 그건 금세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자아이가 떠나고 여자아이는 더는 공상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나와 세상을 마주하게 된 거겠지.

 

짧을지라도 오래오래 남는 일도 있겠다. 살면서 그런 순간을 만나면 좋을 텐데. 언젠가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놓치지 않게 잘 보아야겠다.

 

 

 

희선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시간이 흐른 뒤 여자아이가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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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3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넘 예쁘고, 글도( 희선님 글) 예쁘네요!

희선 2016-12-24 13:51   좋아요 1 | URL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책으로 보면 그림 더 좋아요
이건 당연한 말이군요


희선

[그장소] 2016-12-2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달마다 나오지 않고 두달에 한번이어서 보기에 좀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두달이 금세 가 버린다. 난 이게 나온 달 보기보다 그 달이 지나고 볼 때가 더 많아서, 한달도 지나지 않고 다음 것이 나온다. 샀을 때 바로 보면 좋겠지만 그게 좀 어렵다. 이번 악스트 보기 전에 다른 것을 먼저 볼까 하고 그 책을 조금 넘겨보다 다시 마음을 돌렸다. 또 미루면 이달이 가기 전에 못 볼 것 같아서. 이 말 언젠가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예전에 <PAPER>를 사고는 늘 다 못 보았다. 마음먹고 봐도 하루나 이틀밖에 못 보고. 그것도 지난해부턴가는 두달에 한번 나온다는 걸 알았다. 난 이제 <PAPER>를 만나지 않게 됐지만, 아직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 많겠지. <PAPER>가 쉽게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나오기를 바란다면 사서 봐야 할 텐데. 안 본다 해도 그게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다. 그것을 어떤 마음이라 하면 좋을지. 오래전에 좋아하던 게 여전히 있으면 기쁜 마음일까. <악스트>는 언제까지 볼까. 이번 것을 봤지만 다음 것은 어떨지. 벌써 이런 생각을 하다니.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쓰는 게 좀 힘들다. 그냥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쓰려고 책을 보는 것 같다.

 

지난 다섯번째부터 조금 바뀌었는데, 올해 마지막에 또 조금 바뀌었다. 소설가 한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건 그대로지만 ‘아무개記’ 라는 것은 없어졌다. 이것도 소설가를 짧게 만나는 것에 가까웠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그대신 다른 게 생겼다. 지난번에는 다른 나라 소설만 주제를 정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소설까지 넓혔다. 이번에 정한 열쇠말(keyword)은 ‘1인칭’이다. ‘1인칭’을 주제로 쓰는 소설 있을까.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소설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소설이 더 많다. 소설을 말하는 소설도 있을 거다. 그런 것도 써 봐야 알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무언가를 다른 말로 나타내는 거 잘 못한다. 소설가는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쓸지, 그것을 읽은 사람이 짐작하는 것일지. 둘 다겠다. 소설가 자신도 모르는 걸 다른 사람이 찾아낼 수도 있다. 자신이 쓴 글을 보고도 ‘이런 뜻이’ 하는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알면 좋겠다 하지만. ‘1인칭’ 주제가 담긴 소설보다 소설을 보고 ‘1인칭’을 생각하는 거구나.

 

이승우는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을 읽는 사람은 없다고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쓴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했다. 난 이 말을 봤을 때 글을 쓰는 사람이 그 글을 첫번째로 읽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 말을 이승우는 끝에서 한다. 어떤 소설가는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도 하지 않는가. 소설가 자신이 쓰는 사람이면서 첫번째로 그것을 읽는 사람이다. 이게 같은 게 아니기도 하겠지. 한사람이 두 가지로 나뉘는 거구나. 재미있는 일이다.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기도 한다. 자신이 쓴 것을 읽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마음도 알겠다. 나도 가끔, 아니 자주 엄청 못 썼다는 생각이 들면 타이핑 하고 한번만 읽어본다. 한번만 보면 오타가 있기도 하지만, 그건 두번 읽어봐도 있다. 가끔 스치듯 오타를 찾아내면 ‘빨리 고쳐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건 왜 잘 보이지 않기도 할까.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지나치기도 한다니. 썼을 때는 별로다 생각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썼을 때하고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반대로 썼을 때 괜찮다 여긴 건 나중에 ‘왜 이렇게 썼지’ 하기도 한다. 잘썼든 못썼든 자신이 쓴 글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이번에 악스트에서 만난 소설가는 윤대녕이다. 윤대녕 소설을 한권도 만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래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다. 그때는 그냥 읽기만 해서, 읽고 나서 뭐지 했을 거다. 내가 읽은 소설 제목에 ‘사슴벌레’가 들어가는데, 작가 소개에는 이 책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윤대녕이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소설 제목은 《사슴벌레 여자》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이재민)과 헷갈린 적도 있다. ‘사슴벌레’가 들어가는 소설 제목 더 있을까. 윤대녕 소설 더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예전에 나온 산문집도 본 것 같고. 지난해에는 확실히 산문집 만났다. 윤대녕이 한 말에서 체력이 좋지 않아 운동하고 글을 쓴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것을 보고 난 몸보다 마음이 약하구나 했다. 난 오랫동안 책 읽을 수 있다. 오랫동안 글을 써 본 적은 없구나. 아니 예전에 한두 번,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 그걸 쓰는 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길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번쯤 며칠에 걸쳐서 긴 글을 써 보고 싶기도 한데 마음뿐이다. 한번에 다 써 버리려 해서 짧은 거겠지. 난 어떤 목표가 없다. 소설가가 된 사람에는 이게 아니면 안 된다 하고 이것에 매달려 쓴 사람이 많다. 윤대녕도 소설을 오래 쓰려고 소설가로 인정받으려는 것을 먼저 썼다고 한다.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게 없구나.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보상받는다는 말 맞다고 생각한다.

 

가끔 소설을 보다보면 인칭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이 소설 3인칭이지 한다. 3인칭이어도 1인칭인 것 같을 때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1인칭에도 3인칭이 들어있기도 하다. 1인칭은 제한이 있지만 말을 하는 사람을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1인칭이라 해도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말하는 것도 있다. 김보경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을 읽고 ‘나’가 ‘우리’가 된다고 말했다. 언젠가 ‘1인칭으로 써라’ 하는 말을 들었는데, 소설은 그때그때 다를 거다. 1인칭이 나을 때도 있고 3인칭이 나을 때도 있겠지. 가끔 2인칭도 쓰겠다. 2인칭은 별로 못 본 것 같기도 한데, 그것보다 2인칭을 확실히 모르는 것일지도. 소설 볼 때 인칭 같은 거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이것도 생각하고 봐야겠다. 왜 그렇게 썼을까 생각해보면 재미있겠다.

 

올해(2016)도 얼마 남지 않았다. 소설은 앞을 보기도 하지만, 뒤를 볼 때가 많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않고 뒤도 돌아봐야겠지. 갑자기 그걸 하기는 어렵겠지만 소설을 보면 조금은 생각한다. 그 안에 담긴 걸 다 알기는 어려워도 소설에 나오는 어떤 말이나 일 때문에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사람을 보는 것도 괜찮다. 현실과 아주 똑같지 않다 해도 소설을 만나는 일은 경험을 쌓는 것과 같다.

 

 

 

 

 

 

 

달과 나무

 

 

 

아주 작았던 달은 하루하루 갈수록 커졌습니다. 이젠 보름달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밤에 보는 세상은 아름답지만 달빛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밝습니다. 그래도 달은 늘 빛을 땅으로 보냈습니다. 달빛만이 밤을 밝혀주는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이 된 달은 더 많은 빛을 세상에 보내며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달은 누가 슬프게 우는지 살펴봤습니다. 곧 달밑에 있는 나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달은 누군가와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달빛만 세상에 보내고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울고 있는 나무를 보니 말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달은 나무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저……, 나무야.”

 

나무는 듣지 못했는지 자꾸 울었습니다. 그래서 달은 조금 크게 나무한테 말했습니다.

 

“나무야, 뭐가 그렇게 슬픈 거야?”

 

놀란 나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누구시죠?”

 

“나는 니 위에 있는 달이란다.”

 

“달님, 말을 할 줄 아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으로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울고 있었어?”

 

“외롭고 슬퍼서요.”

 

나무는 들판에 혼자 서 있고, 그다지 크지 않아서 나뭇가지도 적었습니다. 달은 그런 나무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무야, 지금은 외롭겠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많은 동무들이 너를 찾아올거야. 그러니 외로워하지마.”

 

“달님, 정말 그럴까요?”

 

“그럼. 울지말고 좋은생각을 하렴. 그러면 넌 많이 자랄 거야.”

 

“고마워요, 달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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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아름다운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The Philosopher and the Wolf : Lessons from the wild on love, death and happiness (2008)

마크 롤랜즈   강수희 옮김

추수밭  2012년 11월 02일

 

 

 

몇해 전에 늑대와 염소가 친구가 되는 만화영화 <폭풍우 치는 밤에>를 보았다. 동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사는 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다르게 사는 모습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거기는 하지만. 더 높이 날려고 한 갈매기 조나단……, 다른 것도 생각나면 좋을 텐데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 더 있을 텐데. 앞에서 말한 염소와 늑대가 있다. 염소와 늑대가 만난 건 폭풍우 치는 밤으로 비를 피해 들어간 오두막에서다. 둘은 서로가 보이지 않아서 서로가 달아나고 먹히는 관계라는 것을 몰랐다. 염소는 늑대를 염소라 생각하고 늑대는 염소를 늑대라 생각했다. 둘은 오두막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 좋아서 다음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만난다. 둘이 만났을 때 서로가 어떤지 알고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둘은 그 뒤로도 친구로 지낸다. 둘 사이가 서로의 무리에 들키고 둘은 무리한테 괴롭힘 당한다. 무리는 둘한테 서로를 알아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지만 염소와 늑대는 서로한테 거짓말할 수 없었다. 둘은 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어쩐지 두 집안이 결혼을 반대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나. 힘든 일이 있었지만 염소와 늑대(메이와 가브)는 바라는 곳에 간다.

 

 

       

                     <폭풍우 치는 밤에> (오른쪽 위, 가브 마음 속) 친구지만 맛있겠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늑대와 염소가 친구가 되다니. 고양이와 쥐도 친구 되기 어렵겠지. 고양이와 개도 사이 나쁘지만 가끔 친하게 지내는 것도 보인다. 늑대 브레닌은 염소하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브레닌은 늑대지만 거의 개처럼 살아서. 그렇다고 브레닌 삶이 나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좀 안됐다고 생각하는 건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다. 이것도 내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원에 살아도 여러 사람이 마음을 써서 동물이 거기에서 자유롭게 살게 하겠지. 그러면 좋을 텐데. 브레닌은 부모가 사람과 살아서 야생에서 살기에는 어려웠다. 만화에는 동물을 기르는 모습이 좋게 나온다. 사람이 가끔 골치 아픈 일을 겪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소파를 긁거나 아끼는 바지를 긁을 뿐이다. 그게 다가 아닐 거다. 동물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걸 잘못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이 아니니까. 어린이도 집안을 어지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걸 다 알고 동물을 길러야겠지. 마크는 태어나고 여섯주가 된 늑대를 보러 가서 첫눈에 반하고 바로 샀다. 브레닌을 고를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니. 브레닌은 마크 집에 간 첫날부터 물건을 부쉈다. 마크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브레닌을 집에 혼자 두지 않았다. 혼자 두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학교에서 늑대를 데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걸 내버려두었다니. 마크는 강의계획서에 늑대가 있다는 말도 썼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이 책을 봤다면 마크를 부러워했을 것 같다. 마루야마 겐지는 커다란 개를 기르고 싶어했다. 마크는 브레닌 훈련을 잘 시켰다. 브레닌을 힘들게 한 건 아니고 몇가지를 알아듣게 하고 함께 놀고 달렸다. 요즘은 개를 집안에서 키워서 개가 마음껏 뛰어놓지 못할 거다. 개와 걷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날마다 그것을 하려면 힘들겠지. 나 같은 사람은 개를 기르면 안 되겠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개 산책 시키기 아르바이트 있을 것 같다(소설에서 봤구나). 마크가 철학을 해선지 브레닌을 보고 영장류와 늑대를 생각하기도 한다. 어쩐지 늑대가 더 낫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람이 동물보다 더 뛰어나다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에 들어가고 지구에 사는 생물에서 하나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 처지에서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점은 바꿔야 할 텐데. 겸손해야 한다. 야생에서는 사람이 가장 힘이 없겠지. 사람이 문명을 만든 것도 진화가 아닐까. 힘이 없어서 살아 남으려고. 사람은 그것을 잊고 지구 주인처럼 산다. 늑대는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도 사라지는 생물이 많겠다. 저절로 그렇게 되기도 하겠지만 사람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많을 거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게 되어 기쁜 날이 있지만,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 개는 열다섯해 살기도 하던데 브레닌은 열한해쯤 살았다. 겨우 두해쯤 산 햄스터가 죽었을 때 슬펐는데, 열한해 함께 산 늑대가 죽으면 더하겠다. 브레닌이 자연스럽게 죽지 않아 조금 아쉽다. 암에 걸리다니. 죽기 한해 전에 브레닌이 아파서 마크가 무척 힘들게 돌봤다. 그때는 나았지만 다시 암에 걸려서 마크는 마음을 먹었다. 브레닌이 더 아프지 않게. 난 철학보다는 브레닌과 함께 산 이야기를 더 즐겁게 보았다. 마크와 브레닌은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식구처럼 지냈다. 마크는 브레닌을 형처럼 동생처럼 생각했다. 요즘은 애완동물이라기보다 반려동물이라 한다. 누군가한테는 동물이 식구다. 함께 살던 동물이 죽는 건 식구가 죽는 것과 같겠지. 세상에 브레닌은 없지만 마크와 브레닌이 함께 산 흔적이 남아서 다행이다. 마크는 다른 브레닌을 만났다. 브레닌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아이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지.

 

목숨 있는 게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다. 동물이나 식물도 자기 삶을 힘껏 살다 가지 않을까. 자연은 순리대로 산다, 남과 견주지 않고. 사람이 사는 데 그렇게 큰 뜻이 있을까. 뜻이 아주 없다고 하면 덧없겠지만. 지금 순간을 즐기고 사는 게 좋을 듯하다. 이 말을 잘못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날을 아쉬워하거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좋겠다. 이런 말이 왜 생각났는지, 마크가 비슷한 말을 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브레닌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지만, 브레닌도 마크와 살아서 즐거웠을 거다. 마크는 브레닌과 함께 살아서 자신이 좀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이 말은 마루야마 겐지도 했다).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 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건 늑대도 마찬가지다.

 

 

 

 

 

 

 

햄스터의 하루

 

 

 

제 하루, 별 거 없습니다

거의 잠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제가 일어나는 때가 언제냐구요?

그거야 밥먹을 때죠

 

저한테 밥을 주는 사람은 가끔 저를 귀찮게 합니다

잠자고 있는데 갑자기 통속에서 꺼내서는

자기 손바닥에 놓는 거예요

제가 그 위에서 잠을 자겠습니까

잠이 쏟아질 때는 그냥 자기도 하지만 아주 잠시예요

얼마 뒤 사람은 저를 통속에 넣거든요

그러면 저는 자리를 잡고 다시 잡니다

 

제가 먹는 것은, 밥도 있고 콩도 있습니다

자기가 밥먹을 때 콩 두개씩 줍니다

뭐든 많이 먹으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많이 먹지 못해요

제 몸은 엄청 작답니다

볼 속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 먹기도 하지만

제가 더 많이 먹지 못하면 사람은 아쉬워하더군요

그러면 개나 고양이를 키울 일이지……

 

처음에는 같이 사는 동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없어졌습니다 저는 동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요

하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동무가 없어졌을 때 사람이 무척 슬퍼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가끔 저를 귀찮게 해도 저를 좋아해서 그런 거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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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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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라 정치 사회 이런 것들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겠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애쓴 사람 때문에 지금은 한국이 자유롭다. 여러 가지 안 좋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라고 해서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것에든 좋은 점 나쁜 점이 다 들어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흠이 있을 거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겪고 싶지 않은 때는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싶다. 조선말로 말하거나 조선말로 글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때는 한국사람이 모두 크고 작게 일제강점기에 영향을 받았다. 가장 힘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나 독립운동하는 사람 식구였겠지. 이런 말을 한 건 여기 나오는 시대가 일제강점기여서다. 이 책을 보고 한국에도 일본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벼슬을 돈으로 얻은 사람이 많았다. 여기 나오는 윤형만 아버지 윤병오도 그랬다. 윤병오는 정부 사람과 친해지고 한국과 일본이 합병하는 데 공을 세우고 일본에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잘사는 사람은 늘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여전히 못사는 건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한데. 예전에는 아이가 많은 집은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기도 했다.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도 비슷했다. 입 하나를 줄이고 남은 아이라도 잘 먹이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아들을 낳으려고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을 거다. 수남은 여덟번째 아이다. 아들을 낳으려고 일곱번째 딸한테 수남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아이는 일찍 죽었다. 부모는 여덟번째로 태어난 아이를 다시 수남이라 했다. 수남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은 게 아니구나. 조선시대 아니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도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아들을 낳으려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수남은 가난한 집 여덟번째 딸이다. 또 한 사람 채령은 자작 딸이다. 딸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버지가 자작이어서 모자란 것 없이 자랐다. 수남은 일곱살 때 채령이 여덟번째로 태어난 날 선물이 되었다. 채령 아버지 형만은 딸한테 하인을 선물하려 했다. 본래 데려오려는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자 그곳에 있던 수남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했다. 수남 부모는 수남을 보내고 논 서 마지기를 받았다. 수남이 간다 해도 부모가 못 가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간이 흐른 다음 수남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하고 한번 더 말한다. 수남이 가려 한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몰랐겠지, 보내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벌써 이런 말을 하다니. 수남이 간다고 해서 간 남의 집이지만, 수남은 자신이 팔려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래도 수남은 자기 처지를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한글을 배우고 일본말도 배웠다. 채령이 일본에 공부하러 갈 때 수남이 함께 간다.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간다는 기대를 품었다. 채령은 공부하려고 일본에 간 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애하려고 일본에 갔다. 사람은 자기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고 부모 것이 다 제 것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채령이 그렇게 된 건 아버지 형만이 무엇이든 들어줬기 때문이기는 하다. 채령이 일본에서 독립운동하는 사람과 사귈 때 수남은 영국 사람 집에서 잠깐 일하고 영어를 배웠다. 채령이 사귀는 사람이 일본 경찰한테 잡혀가고 채령도 끌려갈 뻔했는데, 수남이 채령 대신 황군여자위문대에 간다. 수남과 채령은 많이 닮았다. 둘이 닮지 않았다 해도 채령 아버지 형만은 수남을 그곳에 채령 대신 보냈겠지. 수남은 채령이 되어 황군여자위문대에 가고 채령도 신분을 속이고 일본 사람 테라오 준페이와 미국으로 간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수남은 자작 딸 채령이라는 자리를 좋아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다시 수남으로 살거나 아니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도 괜찮았을 때도 그랬다. 그건 강휘 때문일까. 강휘는 채령 오빠로 자작인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상처로 남아서겠지. 강휘는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겠다 했는데, 강휘가 독립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휘 이야기는 한참 나오지 않다가 수남이 일본군 위안부로 간 곳에서 달아난 다음에 나온다. 수남은 그곳에서 달아났다. 다른 아이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수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일본말이나 영어를 해서였다. 공부는 어느 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수남이 혼자 달아났을 때 아쉬웠다. 다른 여자아이와 달아나는 건 더 힘들었겠지만. 내가 그런 처지에 놓였다 해도 수남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수남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도련님 강휘를 만나려고 하얼빈으로 간다. 수남은 시골에서 경성 일본 중국에도 가다니. 러시아에도 잠깐 가고 다음에는 미국으로 간다.

 

언제나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채령은 미국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준페이는 채령을 좋아했지만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채령은 자기 아버지가 준페이한테 돈을 줘서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생각했다. 채령이 미국에서 힘들게 살았다 해도 수남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남이 마음껏 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말이다. 채령 이름으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마쳤다. 수남은 자신이 수남이 아닌 채령으로 산다면 채령한데 큰 일이 일어난다 여겼다.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수남이 강휘를 좋아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에서 살거나 한국에 돌아가도 자작 집에 가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텐데. 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남이 강휘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지 못할 일을 당하고 말았으니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겠지. 수남은 늘 스스로 결정했다. 본래 그렇게 될 일이었다 해도. 아니 두번째는 달랐구나. 나중에는 안 좋게 되었지만 수남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마음도.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도 잘 지냈다.

 

여자는 어느 때든 살기 어렵다. 일제강점기나 전쟁이 일어난 때는 더했겠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친일한 사람이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때는 미국에 붙었다. 채령도 독립운동한 오빠 강휘와 수남이 가지고 온 대학 졸업장으로 집안을 되살렸다. 친일한 아버지 일을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 그런 일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증명서라는 거 다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그런 것을 돈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시대 탓으로 돌려도 괜찮을까.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도 아주 못된 사람도 없다고 하지만.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좋겠다. 수남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독립운동하는 데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도우려 했다. 예전에 그런 식으로 독립운동 도운 사람 많았을 것 같다.

 

힘든 시대를 산 사람 이야기여서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쩐지 안됐다 하면 안 될 것 같다. 수남이나 채령과 강휘 그리고 준페이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았다. 좀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테지만, 그걸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생각하고 살면 조금이라도 나은 길로 가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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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링크로스 84번지   84, Charing cross road (2002)

  헬렌 한프   이민아 옮김

  궁리출판  2004년 01월 20일

 

 

 

 

 

 

 

 

 

 

 

 

 

 

 

 

이 책은 그다지 두껍지 않고 제목은 런던에 있는 헌책방 주소다. 내가 이 책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면 지금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편지를 모아서 묶은 책은 많다. 편지 또한 문학이니 그런 거겠지. 나도 편지 멋지게 쓰고 싶은데 거의 재미없는 말을 쓴다. 멋지게보다 조금 재미있게 쓰려 하면 나을까. 헬렌 한프는 뉴욕에서 글을 쓰고 살았다. 헬렌은 미국에 살았고 헬렌이 책을 산 책방은 영국에 있다. 미국과 영국 우편물이 가고 오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미국에도 잘 찾아보면 괜찮은 헌책방이 있었을 텐데, 헬렌은 토요문학평론지라는 데 실린 마크스 책방 광고를 보고 책을 찾아달라는 편지를 쓴다. 나라면 무엇인가를 찾으면 딱 한번쯤밖에 사지 않을 텐데, 헬렌은 마크스 책방 사람과 스무해 동안 편지를 나눴다. 1949년에서 1969년까지. 아주 가깝지도 않지만 아주 멀지도 않은 친구 같았다. 이런 우정도 있구나 싶다. 지금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터넷 책방에서 책을 사고 없는 책은 고객센터에 물어보거나 인터넷 안에서 찾으면 된다. 어떤 책을 열심히 찾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영국은 배급을 받았나보다. 헬렌은 그런 영국 사정을 알고는 마크스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게 음식을 보냈다. 그때는 달걀을 가루로도 만들었다. 음식을 보내도 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상하지 않는 것을 보냈겠지. 대표로 편지를 받고 쓰는 사람은 프랭크 도엘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헬렌한테 편지를 썼다. 한 사람은 남편이 군인으로 남편과 살게 되고는 연락이 끊겼다. 한해 뒤에 영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생각은 해도 살다보니 연락하지 못한 거겠지.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이 아닌 남아프리카에 갔다.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프랭크 도엘과 가까운 곳에 살던 할머니는 식구와 살게 되어 그곳을 떠났다. 프랭크 아내가 그 할머니가 수놓은 식탁보를 사서 헬렌한테 보내고 헬렌은 할머니한테 선물을 보냈다. 영국과 미국 멀기는 해도 책방 사람은 헬렌이 영국에 한번 오기를 바랐다. 헬렌이 영국에 가려고 돈을 모았지만 늘 다른 일이 생겨서 그 돈을 써야 했다. 헬렌 친구가 마크스 책방에 가니 책방 사람은 무척 반갑게 맞았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과 여러 사람이 마음을 나누었다.

 

책을 사는 사람과 책을 파는 사람이 실제 만나는 것도 아니고 편지로 마음을 나누다니 멋지다. 책방 주인과 손님이 친하게 되는 일은 아주 없지 않겠지. 지금은 그런 사람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책이 헬렌과 여러 사람을 이어주었다. 헬렌이 마크스 책방에 편지를 쓰지 않았거나, 마크스 책방 사람이 헬렌이 보낸 편지를 받고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겠지. 이 책도 나오지 않았겠다. 1969년 1월에 헬렌은 프랭크 도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는다. 프랭크는 맹장염이 복막염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술이 잘 되지 않았나보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일은 전화로 알려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헬렌 전화번호를 몰랐을지도. 헬렌은 그 소식 들었을 때 쓸쓸했을 것 같다. 만나지 않고도 오랫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러는 동안은 즐거워도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마음 아프겠다. 프랭크나 다른 사람이 헬렌과 더 친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리를 지키느라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편지를 받은 헬렌은 편지를 출판사에 가져갔다. 그동안 헬렌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는데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이름이 널리 퍼졌다. 그 뒤로 프랭크 아내나 딸과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그런 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중간에서 이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되기는 한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고 드라마랑 연극으로도 만들었다. 책이 아닌 다른 것은 어떤 식으로 나타냈을지 보고 싶기도 하다. 책과 편지 잘 어울린다. 나도 편지에 이런저런 책 이야기 하고 싶지만 책을 읽고 써서. 책을 읽고 쓰는 걸 편지라 생각하고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했는데. 책도 편지라 생각하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책 좋아하겠다. 이런 인연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지도. 책이야기 하지 않아도 친구나 식구한테 편지 쓰는 것도 좋겠지.

 

 

 

 

 

 

 

편지

 

 

 

네 마음과 내 마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한테는 짐이 되기도 한다

 

짐이라 해도

나 대신 너한테 보낸 내 마음이

덜 쓸쓸하기를

 

내 욕심,

네 마음보다 내 마음을 더 생각하다니

미, 안, 해,

내 마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 마, 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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