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5
윤이형 지음 / 내인생의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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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먼 앞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말하는 걸까.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환경오염 때문에 사람 몸속에는 NF 바이러스라는 게 있어서 나이가 어릴 때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국민 미래 재건 위위원회에서 검사받는다. 그런 검사를 스스로 하는 건지 부모가 시키는 건지. 반반으로 거의 다 하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날 거다. 학교에 다녀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하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일 말이다. 학교에 다니는 건 그렇게 나쁜 건 아닐 거다. 학교에 다니면 기본은 배우기도 하니까.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하면 더 좋을 텐데. 거의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되었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 했으니.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는데, 학교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 청소년이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른다. 청소년뿐 아니라 다들 힘들다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굽히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을 거다. ‘나’는 대학 합격 통지서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통지서를 함께 받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 나라에서 집과 돈을 준단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아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대를 골라서 아이를 갖고 낳으면 자신이 기르지 않고 입양 보낸다(그렇게 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축이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반에 아이를 가진 아이가 있으면 따돌렸다.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 거겠지.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자신이 친구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걸 미안하게 여긴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 엄마는 ‘나’한테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보다 아무 말도 안 한다. 이건 ‘나’가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걸까. 여기에는 자기 아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기를 바라는 부모도 나온다. 진짜 이런 세상이 되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한 부모 때문에 아이를 낳고 돈을 받으려는 아이도 있다. ‘나’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두고 집을 떠났다. 엄마는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엄마한테 돈이 얼마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검사를 받은 거였다. 대학은 ‘나’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고 성적에 맞춘 곳이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있다. 자신이 관심없는 것을 공부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먼저 같은 반 남자아이 밀을 만난다. 밀은 한해 전에 아이를 낳고 입양 보냈다고 한다. 밀은 남자아이여서 여전히 학교에 다녔구나. ‘나’ 친구 희나는 다시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이 일을 깊이 생각하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여자 남자를 생각하게 한다. 밀이 ‘나’한테 사귀자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얼마 뒤 ‘나’는 다른 아이 경호를 만난다. 경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말로 나타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게 우리만의 잘못은 아니잖아.”

 

경호가 말했다.

 

“그리고 난, 말하기 힘든 것일수록 누구한테든 말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고 믿는 편이야. 말하지 못하면 그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하지 않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니까. 난…… 무서워. 분명 뭔가 마음속을 떠나니고 있었는데, 내가 외면할수록 그게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 앉아서, 결국 사라져 버리고 대체 뭐였는지 영원히 모르게 되는 게.”  (149~150쪽)

 

 

아이들 만나는 게 어쩐지 맞선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가 경호를 만난 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경호가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자신을 생각하고 말을 했다. 둘이 친구로 지내도 좋았을 텐데 서로 바쁘게 지내다 연락이 끊긴다. 엄마도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나’한테 힘들다 해도 자신이 엄마가 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엄마 같지 않기도 했다. 어떤 일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싫지 않지만 그게 정말 자신이 결정한 걸까 한다. 그 아이는 ‘국민 미래 재건 위원회의 임신·출산 정책에 반대합니다’ (198쪽)는 말을 종이에 쓰고 홀로 시위한다. 지금 바로 바뀌지 않는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커다란 흐름에 떠밀려 가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저항하는 방법은 생각하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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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人 (新潮文庫) (改版, 文庫)
가와바타 야스나리 / 新潮社 / 196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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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지난해가 된 2016년에 바둑기사 이세돌(몇단인지 잘 모른다)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을 두었다. 그런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보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잠깐 나와서 들었다. 내가 그때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을 보려 한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책을 알게 되고 한번 볼까 생각했다. 책이 얇아서 조금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마음은 그랬지만, 책이 얇아도 쉽게 펴볼 수 없었다. 책을 보지 않고도 어떤 기운을 느낀 걸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책, 그러니까 일본말로 쓰인 소설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먹고 읽었다. 한번 읽기는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은 처음이다. 한국 사람이 많이 본 건 《설국》일 텐데, 그것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보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바둑에 관심을 가진 건 <히카루의 바둑>(한국에서는 <고스트 바둑왕>으로 했다)을 보고서다. 그것을 봤을 때는 바둑이 참 재미있게 보였는데 그 뒤 바둑은 배우지 못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바둑 대국을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히카루의 바둑>을 보고 내가 좋게 여긴 건 바둑이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에 빠져서 그것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거였던가보다. <치하야후루>를 봤을 때는 카루타가 재미있게 보였으니 말이다. 카루타는 백인일수(百人一首)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도 잠깐. 난 좋아해도 끝까지 가지 못한다. 책만은 여전히 읽는 걸 보면 이것은 그만두지 않겠다. 읽는 시간이 늘면 좀 잘 보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기도 해서 아쉽다. 그것도 애써야 하는 거겠지. 바둑 이야기하다 다른 말로 빠졌다.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신의 한 수를 두려는 헤이안 시대 바둑기사 후지와라노 사이가 지금 시대에서 바둑을 둔다. 실제 바둑을 두는 건 히카루다. 사이가 히카루 몸을 빌린다고 해야겠다. 히카루는 사이가 두는 바둑을 보다가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의 좋은 맞수(호적수)도 만난다. 히카루가 히카루의 바둑을 두는 동안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사이는 신의 한 수를 두지 못하고 사라진다(이거 지금 생각해도 조금 슬프다). 그렇다고 사이 바둑이 사라진 건 아니다. 히카루가 사이 바둑을 이어받고 히카루가 신의 한 수를 두려 한다. 옛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건 사람 삶이기도 하다.

 

이 소설 《명인》과 <히카루의 바둑>이 상관없지 않다. 만화를 그린 사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 봤을까. 알았을 것 같기는 하다. 만화를 그리려고 자료를 많이 찾았을 테니까. 사이가 지금 시대에 나타나기 전에 에도시대에 자기 대신 바둑을 두게 한 건 혼인보 슈사쿠(본래 이름은 구와바라 토라지로)다. 혼인보는 일본에서 대대로 바둑을 둔 집안이다. 지금은 ‘명인’과 함께 바둑기사 타이틀이다(타이틀을 뭐라 말하면 좋을지). 여기 나오는 명인은 혼인보 슈사이다. 슈사이 명인은 예순다섯살에 마지막으로 은퇴 바둑을 둔다. 슈사이 명인과 바둑을 두는 건 오타케 7단이다.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실제 있었던 사람으로 그때 바둑을 둔 사람은 기타니 미노루 7단이라 한다. 이름을 바꾼 사람도 있고 그대로 쓴 사람도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에서 글을 쓴 사람처럼 슈사이 명인과 기타니 7단이 한 대국을 보고 글을 썼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글을 써서 이 소설을 쓴 거겠지.

 

슈사이 명인과 오타니 7단은 1938년 6월 26일에서 12월 4일까지 바둑을 두었다. 바둑 한판을 여섯달이나 걸려서 두다니 하겠다. 여섯달에서 석달은 슈사이 명인이 병원에 있어야 해서 쉬었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바둑과 달리 40시간을 제한시간으로 정했다. 40시간도 길다. 시간을 다 쓰면 초읽기로 들어가고 1분에 한 수를 둬야 할 거다. 슈사이 명인보다 오타니 7단이 시간을 더 많이 썼다. 한 수 두는 데 몇시간 걸리기도 했다. 하루에 몇 수 못 두기도 했다. 그런 바둑을 몇달 동안 두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다. 소설 속 작가는 마지막 바둑이 슈사이 명인 목숨을 빼앗아갔다고도 한다. 본래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바둑을 두다보니 더 안 좋아졌다. 슈사이 명인은 바둑을 두면서도 이것을 끝내면 괜찮을 텐데 하거나 그만두고 싶다고도 한다. 그래도 바둑을 끝낸다. 슈사이 명인뿐 아니라 오타니 7단도 힘들었다. 아픈 사람과 바둑을 두려니 부담스럽고,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은 것도 부담스러웠다. 오타니 7단이 한 수 한 수에 시간을 들일 법하다.

 

은퇴 바둑을 두고 한해가 조금 지난 1940년 1월 8일에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세상을 떠난다. 소설에는 이게 맨 앞에 나온다. 잘 모르는데 명인은 그 시대 최고 기사가 받는 종신 명예였는데, 슈사이 명인을 끝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명인이 될 수 있게 된 거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그 대국이 그때 꽤 중요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거였겠다. 바둑도 예술처럼 둘 수 있는가보다. 슈사이 명인은 기술보다 예술에 가까운 바둑을 두려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런 바둑기사가 슈사이 명인이 마지막이다 여겼다.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바둑을 멋지게 두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또 히카루가 생각나는데, 히카루는 안 좋은 수로 보인 것을 좋은 수로 바꾸는 바둑을 두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그것을 꽤 훌륭하게 여겼다. 바둑은 한번 잘못하면 모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잘못한 것을 좋게 바꿀 수도 있다. 늘 그런 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살 길이 없으면 어렵겠지. 잘 보이지 않아도 살 길을 찾으려 하는 게 바둑과 삶이 닮은 걸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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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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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의 한주에 걸쳐서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조금 알고 책을 읽은 화가는 핀센트 판 호흐밖에 없다. ‘빈센트 반 고흐’라고 알려졌는데 네덜란드 말로는 핀센트 판 호흐라고 한단다. 이 책에서는 핀세트라 했으니 핀센트라 쓸까 한다. 호흐보다는 고흐가 더 익숙하고 화가 이름처럼 들린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모를 텐데. 핀센트는 네덜란드보다 프랑스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핀센트가 세상을 떠난 곳이 프랑스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을 알았을 때는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를 소설처럼 쓴 건가 했다. 소설이라면 책이 이렇게 크게 나오지 않을 텐데. 그림 <호흐의 방>을 보고 핀센트 판 호흐가 내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만난 책은 핀센트가 테오와 여러 사람한테 쓴 편지밖에 없다. 내가 본 건 한권으로 나온 책(중에 두번째도 나왔지만 그것은 못 보았다), 두껍게 나온 책, 두권으로 나온 책이다. 소설은 자세한 것은 기억 못해도 줄거리는 기억한다. 편지는 여러 번 봐도 기억 못하는 건지, 한국말로 옮긴 사람이 다 달라서 그랬는지 책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책마다 다른 편지가 실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핀센트 하면 동생인 테오가 함께 생각난다. 이건 예전에 편지를 본 다음에 생각한 거겠지. 핀센트는 누구보다 테오한테 편지를 많이 썼다. 그런 것을 보고 핀센트한테 테오 같은 동생이 있어서 좋았겠다 생각했다. 그건 한쪽만 본 거였다. 테오가 핀센트를 도운 건 형제를 생각해서겠지. 그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닐 거다. 둘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었고, 테오는 핀센트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아니 테오만 그런 게 아니고 부모와 다른 동생도 그랬다. 핀센트 때문에 가장 애먹은 건 부모겠지. 핀센트는 어릴 때부터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거의 혼자 지냈다. 그런 아이도 있는 거겠지만 오래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거다. 테오는 핀센트보다 네살 어린데 사교성이 좋았다. 사람들이 테오를 좋아했다. 핀센트는 삼촌 화랑에서 일하기 힘들어했지만 테오는 잘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그랬겠지. 그렇다고 거기에서 일한 게 핀센트한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핀센트는 화랑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많이 보았다.

 

예전에는 핀센트가 다른 사람보다 그림을 늦게 시작했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보고 핀센트 집안이 그림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름이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핀센트 호흐라는 화가가 집안에 있었다. 핀센트는 둘째인데, 첫째가 죽고 그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 한국에도 없지 않았다(소설에서 본 거지만). 핀센트 식구는 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핀센트가 이것저것 하다 못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집안 영향도 크겠지. 핀센트는 어렸을 때는 안데르센 책을 읽었다. 자라서는 에밀 졸라 모파상 발자크를 읽고, 밀레 그림을 좋아했다. 좋아했으니 그것을 그리기도 했겠지. 핀센트 그림은 지금 봐도 개성 있다. 핀센트가 살았을 때는 더하지 않았을까. 책을 보다보니 핀센트가 정말 자기 그림을 팔고 싶어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해도 자기 이름이 많이 알려지는 건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건 잠깐 받은 인상이다.

 

두꺼운 책을 보느라 시간 많이 걸렸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으면 좋을 텐데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핀센트 집안에는 정신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핀센트와 테오는 매독에도 걸렸다. 매독균은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 때문에 이상하기도 했겠지. 핀센트는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루지 못했다. 가정이라기보다 공동체라고 해야 할까. 핀센트는 자신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리라는 걸 몰랐을까.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거나 함께 그림 그리고 싶어했을까. 쓸쓸함 때문일지도. 고갱과 함께 지내고 헤어진 게 핀센트한테는 안 좋았다. 그 뒤에 핀센트는 자기 귀를 자르고 발작을 일으키고 요양원에 들어갔다. 핀센트는 요양원에서도 그림을 그렸지만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핀센트는 괜찮을 때도 있었다. 테오는 핀센트가 죽은 다음에 건강이 나빠지고 정신도 이상했다.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핀센트라는 끈이 끊어져서 그랬을까. 테오가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요양원을 나온 핀센트는 오베르에서 지낸다. 핀센트는 그곳에서 테오 식구와 함께 살기를 꿈꾼다. 핀센트가 그런 생각하는 게 안되어 보였다. 그건 이루기 힘든 일이니까. 핀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 르네 세크레탕은 그때 열여섯살로 총을 가지고 다니고 친구와 핀센트를 놀리고 괴롭혔다. 핀센트는 르네 형 가스통과 그림 이야기를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것 때문에 핀센트는 르네가 자신한테 나쁜 짓을 해도 참았다. 가끔 술도 함께 마셨던 것 같다. 핀센트는 총을 맞고 서른 시간 뒤에 숨을 거두었다. 서른 시간이라니. 그때 무척 아팠겠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테오를 만나서 좀 나았을까. 테오는 핀센트가 잊히지 않을 거다 여기고 뒤처리를 했다. 테오 말처럼 핀센트 판 호흐는 잊히지 않았다. 테오 또한 그렇다.

 

핀센트가 사람하고는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림이 있어서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외로움을 잊으려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겠다. 그런 게 부럽기도 하다. 난 식구라 해도 신세지고 싶지 않다(내가 말하는 식구는 형제 자매다. 부모한테도 신세지지 않아야 할 텐데). 나한테는 어떻게 해서든 하려는 게 없는 건지도, 자신도 없다. 핀센트가 식구한테 걱정을 끼치기는 했지만 자신을 다치게 했다. 그림을 그려도 잘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도 컸겠지. 테오가 핀센트 마음을 다 받아준 건 아니지만, 핀센트한테 오랫동안 돈을 보낸 건 대단하다. 핀센트가 있는 건 테오가 있어서구나. 핀센트와 테오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저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 자신 때문에 잘됐다 하는 건 아닐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남기고 죽는 건 멋진 일이다. 아니 무언가를 남기지 못해도 자기 삶을 살다 가면 괜찮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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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컴퓨터가 아닌 카메라로 볼 때는 괜찮았는데, 한장 더 담을걸 그랬다. 밑에 것처럼 몇권씩 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책을 한권씩 사면서 언젠가 책만 둔 멋진 방을 갖고 싶다 생각했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책도 별로 없고 책꽂이를 둘 곳도 없어서다. 내 물건에서 가장 많은 건 책이지만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많다(얼마 없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책은 시집이 많고 소설도 몇권 있는데 담지 않았다. 거의 예전에 나온 책이다. 며칠전에 《원미동 사람들》(양귀자)을 찾았는데 글자가 아주 작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마당 깊은 집》(김원일) 《봄날》(임철우) 《관촌수필》(이문구) 《여수의 사랑》(한강) 생각나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몇권 더 있을지도 없을지도. 임철우 소설 《봄날》은 다섯권이다. 정리를 잘 해두지 못했고 몇해전에 물난리가 나서 많이 버렸다(이 말 또 하다니).

 

나한테 있는 시집에서 담지 못한 게 몇권 있다. 그래봤자 몇권이다. 아주 많이 나온 것에서 일백권도 사지 않았다니, 다른 곳에서 나온 것과 합치면 일백권 넘을까. 예전에 나한테 어떤 시집이 있는지 적어둔 것에서 두번째 것만 있는데 거기 마지막을 보니 아흔여섯(96)권이다. 그 뒤에 네권 넘게 샀으니 일백권 넘겠다. 아니 버린 게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시집이 그렇게 많지 않구나.

 

예전에 책방에 가면 책장을 가득 채운 시집을 보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그게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거였다. 시집은 잠깐 보다 안 본 시간이 길어서 얼마 못 샀다. 지금이라고 자주 사는 건 아니고 소설도 많이 사지 않는다. 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적다. 여기에는 나와 반대인 사람이 더 많겠지.

 

 

 

을 열고 하늘을 보니

한 마리가 날아가네

일을 좋아할지

렁이를 좋아할지

게를 좋아할지

과, 사탕, 사랑

 

 

 

지는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하고

교에서도 시를 많이 봤어요

제로 쓴 시는 선생님이 칭찬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금도 문지는 시를 좋아해요

우는 그런 문지를

탕합니다

 

 

 

장이 나를 찾아오길

목처럼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린다

일은 잘도 익어가고

구는 돌기를 멈추지 않는데

기기만 한 내 글, 그래도

탕해

 

 

 

마지막은 사탕이 되는... 그냥 그렇게 쓰고 싶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말은 쓰기 어려워서. 누군가한테 말하는 것도 아니고 글일 뿐인데. 글이기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안 되는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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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1-22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 사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몇권 안되더라고요 ..ㅎㅎ 시집..ㅜㅜ

희선 2017-01-24 23:04   좋아요 1 | URL
저는 한때 조금 사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조금 사고 다시 어쩌다 한권 사는군요 몇권 안 된다 해도 저보다 많으실 것 같네요


희선

[그장소] 2017-01-25 03:47   좋아요 1 | URL
문지사 시집만 쭉 모으기 시작한건 얼마 안되서 몇권 안되고 동인시집, 옛날 시집들이 좀 있어요.
언제 한번 세어 봐야겠네요. ㅎㅎㅎ

ICE-9 2017-01-23 0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꽤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무려 백권이 넘다니! 제가 가진 것은 희선님 것에 비한다면 정말 조족지혈 같습니다. 오행시도 잘 읽었습니다^^

희선 2017-01-24 23:06   좋아요 1 | URL
문학과지성사 것뿐 아니라 다른 데서 나온 것과 합쳐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시집 많은 사람에 견주면 적은 거예요 어디든 지금까지 나온 시집이 백권은 넘었어요 문학과 지성사는 좀더 나오면 오백권이더군요 며칠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얼마전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 책 이야기 들었는데, 책이 아주 많더군요 예전에 고양이 빌딩 본 적 있어요 그건 거의 도서관이죠 그런 건 남 이야기고 책이 많아도 그걸 다 보기 어려울 것 같아요


희선
 

 

 

이제 절망밖에 없을까

 

  중앙역

  김혜진

  웅진지식하우스  2014년 05월 19일

 

 

 

 

 

 

 

 

 

 

 

 

 

 

사는 게 힘들다 해도 살다보면 나아지기도 하겠지 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난 지금보다 나아지기보다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는 게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지만, 나 자신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것을 바라고 하는 건 책 읽고 쓰기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건 어렵다. 이번에 본 책은 뭐라 말해야 할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가장 힘들겠다 여겼는데 그것보다 밑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집 없이 바깥에서 사는 사람 말이다. 먹고 입을 것이 별로 없다 해도 잠 잘 곳이 있으면 괜찮다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살지. 길로 나 앉을 수밖에 없을까. 그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방 하나만 가지고 역에 나타났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역에 나타나면 어딘가에 가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역 둘레를 돌아보다 밤이 오자 잠 잘 곳을 찾았다. ‘나’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

 

집 없이 사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거다. 한번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거 본 적 있는데. 여기 나오는 사람도 돈을 벌면 그날 술 마시는 데 거의 다 써 버린다. 남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다. ‘나’는 어떤 여자한테 가방을 도둑맞는다. 그것을 경찰한테 말하고 찾으려 하지만 주소가 없어서 그럴 수 없었다. 주소가 없으면 국민의 기본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구나. ‘나’는 가방 찾기를 그만둔다. 누군가 여자가 다시 돌아올 거다 하는데 정말 돌아온다. ‘나’가 여자를 그렇게 거칠게 대할지 몰랐다. 난 어떤 형편에 놓여도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도덕이나 윤리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젊었다. 길에서는 젊은 게 더 안 좋았다. 그게 안 좋을 수도 있다니. 여자도 ‘나’한테 ‘너는 여기를 떠나라’고 했구나.

 

‘나’와 여자가 좋게 만난 건 아니지만 그곳에서 서로 의지한다. 낮보다는 밤에 더 그런다. ‘나’는 여자와 사는 앞날을 꿈꾼다. 집 없이 살면 사랑도 못하는 걸까. ‘나’가 길로 나오지 않았다면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봤다 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가 더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몸이 아픈데도 술을 마셨다. ‘나’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나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 사정도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남편과 아들 딸이 있어서 나라에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밖에. 여자가 많이 아프자 ‘나’는 자신의 이름을 판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은 누군가한테 빼앗기고 나머지 돈도 받지 못한다. 갈 때까지 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기에서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나’는 여자를 응급실에 두고 온다. 그리고 철거 지역 사람을 쫓아내는 일을 한다. 가진 게 없어서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절망만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하면 좀더 괜찮아질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조금 다르지만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 밑바닥에 떨어지고 더 떨어질 곳이 없어 보이는데 ‘나’는 그곳으로 떨어진다. 자존심도 다 버린다. ‘나’가 처음에 역에 갔을 때는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여기기도 했는데. 쉽게 보기 어려운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밑으로 떨어뜨린 건지, 다른 사람(사회)이 그렇게 만든 건지. 둘 다가 아닐까 싶다. 집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야 할까, 누구나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 생각해야 할까. 다른 건 잘 모르겠다. 하나, 집 없이 산다 해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겠지.

 

 

 

 

 

 

 

 

 

길을 건너기 전

빨간 불일 때는 멈추고

파란(풀색)불일 때는 건너기

쉽지만 지키기 어렵기도 하다

 

 

 

 

 

 

 

정말 깨어 있는 걸까

 

     ねむり (2009)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사상  2012년 10월 17일

 

 

 

 

 

 

 

 

 

 

 

 

 

 

 

난 중, 고등학생 때부터 밤늦게 잤어. 열두시가 넘으면 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벽 한시나 두시가 넘어서 자고는 했어. 예전에는 밤 열시나 열두시가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늦은 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때 밖에 나가는 일은 없지만. 오랫동안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보니 잠 자는 게 힘들기도 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꼭 자려 해. 자려고 누워도 잠이 잘 들지 않고 작은 소리에 깨기도 해. 자다가 한번 깨면 라디오를 켜기도 하는데 라디오 방송과 꿈이 섞일 때도 있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야. 꿈을 꾸지만 한번 깼다 다시 자면 거의 잊어버려. 어떤 때는 밤에 꿈이 생각나기도 해. 긴 내용은 아니고 어느 한 장면만 떠올라. 별거 아닌 꿈만 꿔. 괜찮은 꿈을 꾸고 싶기도 한데. 꿈과 현실은 같지 않은 데 좋은 꿈 꾸고 싶다 생각하다니. 꿈이 들려주는 말이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 책을 읽는 것도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꿈속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설지도.

 

밤새 잠을 하나도 안 자고도 괜찮은 적 한번 있어. 겨우 한번이군. 여기에 나오는 ‘나’는 잠을 안 잔 지 어느새 십칠일째래. 대학생 때도 한달쯤 잠을 못 자고 잠 속에서 살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른 것 같아. ‘나’가 대학생 때는 잠을 거의 못 자면 정신이 흐릿했는데, 지금은 잠을 안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어. 대학생 때도 지금도 ‘나’가 잠을 안 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 대학생 때는 어느 날 갑자기 잠이 왔대. 이번에도 다시 잘 날이 다가올까. ‘나’가 잠이 오지 않아서 한 건 책읽기야. 《안나 카레니나》를 세번이나 읽고 다음에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어. ‘나’가 책을 읽다가 예전에 자신이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아.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보면 그전에 자신이 좋아한 것을 잊고 살기도 하지. 《안나 카레니나》는 ‘나’가 고등학생 때 한번 읽은 책인데 다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예전에 나름대로 감동도 받았는데 그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해. 이 마음 어떤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언제나 흐르니 어쩔 수 없지. ‘나’는 결혼하고 조금씩 바뀐 삶도 생각해. 잠을 안 자니 여러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긴 걸까.

 

잠을 못 자기 전날 ‘나’는 아주 안 좋은 꿈을 꾸고 깼어. 꿈에서 깼는데 발치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어. 노인은 ‘나’ 발에 주전자에 든 물을 뿌려. 그때 ‘나’는 움직이지도 소리치지도 못했어. 그건 가위눌림이야. 가위눌리고 나면 다시 자기 힘들기는 해. ‘나’는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잔 건 아니겠지만. ‘나’가 잠을 안 자고는 집안 일은 기계처럼 하고 새벽에는 혼자 깨어 책을 읽거나 차를 타고 나가기도 해. ‘나’는 낮에는 수영을 했어. 어느 날 ‘나’는 자신이 젊어졌다고 느껴. 그런 일 실제 있을까. ‘나’가 겪은 일은 현실인지 꿈인지 잘 모르겠어. 꿈과 현실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다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안 좋은 꿈을 꾸고 가위눌린 다음부터 잠 못 자는 꿈을 꾸는 건 아닐지.

 

마지막에 ‘나’는 차를 타고 항구에 가. 얼마 뒤 검은 그림자 둘이 나타나서 차 문을 쾅쾅 치고 흔들어. 오른쪽 왼쪽에 있는 건 남편과 아들이 아닐지. 이건 무서운 일이 실제가 아니기를 바라는 거군. 어쩌면 잘 걸리지 않던 차 엔진이 시간이 흐른 뒤에 걸릴지도. 아무 일 없이 흐르는 일상이 좋지만, 그런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면 지루한 날이 되겠지. 단조로운 일상을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하려면 스스로 애써야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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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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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0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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