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오은 시를 읽는 걸 들었어. 누가 소개한 것 같은데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아. 그건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러면서 글 쓰는 사람이었는지 노래하는 사람이었는지 하는 생각을 하고, 라디오 방송은 아침에 한 건지 낮에 한 건지 기억해내려 하다니. 그래도 떠오르지 않아. 그날은 스치듯 들어서 그럴 거야. 라디오 방송을 귀 기울여 들을 때도 있고, 그냥 틀어두기만 할 때도 있어. 소개한 사람은 잊었지만 ‘오은’이라는 시인 이름은 잊지 않았군. 이번에 내가 만난 건 그때 소개한 시집은 아닌 것 같아. 그때 들은 시가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 재미있었던 것 같거든. 그런 건 여기에서도 볼 수 있어. 오은은 작란(作亂) 동인이야. 이 말 뭔가 있을 것 같은 말처럼 보이지. 장난을 저렇게 쓴 게 아닐까 싶어. 이건 여긴 실린 시 <청문회>(40쪽)를 보고 알았어. 내가 좋아하는 해는 ‘좋아해’고 싫어하는 해는 ‘싫어해’야. 별로 재미없구나. 지금 생각난 건 이것뿐이어서. 하나 더 있어 띄어쓰기를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보기로 드는 말,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말이라 해도 허투루 볼 수 없어. 말을 갖고 놀면서 뼈 있는 말을 하니까. 다 그러면 무척 무거워지겠지. 그런 것도 있고 조금 가벼운 것도 있는 것 같아(확실하지 않은 말이군). 아니 마냥 가볍다고 말할 수 없기도 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군. 어떤 중요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바로 알아듣기 어려워. 이건 내 느낌일 뿐이군. 잘아는 사람은 바로 알아듣겠지. ‘네 개’와 ‘네 개’는 무슨 뜻일까. 글자는 같지만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말도 있어. 어떤 건 하나만 쓰였는데 다른 뜻도 생각하게 해. 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군. “주머니에서 빛바랜 동전들이 쏟아졌다 / 다보탑이 무너졌다 / 벼 이삭이 흩어졌다 / 이순신 장군이 엎드렸다 / 학이 곤두질했다 (<아무개 알아?>에서, 27쪽)”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어. 다른 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순신과 학은 뭐지 한 거야. 앞에서 한 말을 잘 생각했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아는 것이라 해도 조금 다르게 쓰니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군.

 

 

 

파란색과 친숙해져야 해

바퀴 달린 것을 좋아해야 해

씩씩하되 씩씩거리면 안 돼

친구를 먼저 때리면 안 돼

대신, 맞으면 두 배로 갚아줘야 해

 

인사를 잘해야 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받아쓰기는 백 점 맞아야 해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밤에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해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해

대신, 집안 부끄러운 일은 쓰면 안 돼

거짓말을 하면 안 돼

 

꿈을 가져야 해

높고 멀되 아득하면 안 돼

죽을 때까지 내 비밀을 지켜줘야 해

대신, 네 비밀도 하나 말해줘야 해

 

한국 팀을 응원해야 해

영어는 잘해야 해

사사건건 따지려고 들면 안 돼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도 돼

대신, 정말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야 해

가족을 지켜야 해

 

학점을 잘 받아야 해

꿈을 잊으면 안 돼

대신, 현실과 타협하는 법도 배워야 해

돈 되는 것을 예의 주시해야 해

돈 떨어지는 것과 동떨어져야 해

 

내 둘레 사람들한테는 늘 친절해야 해

대신, 나만 사랑해야 해

나한테만 베풀어야 해

 

뭐든 잘해야 해

뭐든 잘하는 척을 해야 해

나를 과장해야 해

대신, 은은하게 드러내야 해

적당히 웃어넘기고 적당히 꾀어넘길 줄 알아야 해

눈치를 잘 살펴야 해

눈알을 잘 굴려야 해

 

다움은 닳는 법이 없었다

다음 날에는 다른 다움이 나타났다

꿈에서 멀어진 대신,

대신할 게 걷잡을 수 없어 늘어났다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비밀처럼

 

다움 안에는

내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다움>, 79~81쪽

 

 

 

시 한편 다 옮겼어. 이 시집을 보면서 시가 다 길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짧은 것도 조금 있어. 짧게 말하기 어려워서 길어진 거겠지. <다움>은 웃기면서도 슬픈 느낌이 드는 시야. 어른이 아이한테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잘살려면 착하기보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같잖아. 여기에는 이런 느낌이 드는 시도 있어. 요즘 사회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해.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떨어진다는 말도 해. 모두가 떨어지고 하나만 남아서 우리라고 할 수 없게 돼. 그래도 시인은 시인하고 시를 쓰겠다 말해. 시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주려는 거겠지. 그것보다 말로 노는 게 먼저지만. 이 말은 시를 한층 밑으로 떨어뜨리는 걸까. 시가 재미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재미있는 것하고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시인은 시를 말로 노는 것이다 했어. 실제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니. 오은만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말로 노는 건 생각하는 건지, 저절로 나오는 건지. 난 말장난 생각해도 별로 떠오르지 않아. 평소에 그런 걸 거의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 앞으로는 가끔 생각해 볼까. 오은 시를 보고 익혀보는 것도 괜찮겠어. 무엇을 익힐 수 있을까. 이건 좀 썰렁하지. 멋진 말로 멋진 이야기 하는 시도 좋고 말장난 같지만 뜻이 있는 시도 좋다고 생각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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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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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공룡과 동물이나 식물만 살았던 지구는 어땠을까. 너무 멀리 갔구나. 한국, 아니 한반도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한반도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지 아직 한세기가 지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빼고 싶은 때일지 몰라도 그럴 수 없다. 잘될 때보다 잘되지 않을 때 배울점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이 조선을 넘본 건 오래전부터다. 조선을 지나 명나라에 쳐들어 간다고 했지만 조선을 그저 지나는 길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다행하게도 일본한테 조선을 빼앗기지 않았지만 일본에 끌려가거나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때 그 일을 좀더 생각하고 잊지 않았다면 나중에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까. 이건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지나간 일에 만약은 없다고 하니.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은 바꾸어갈 수 있다. 역사라고 해도 그건 다 지나간 일은 아니다. 그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도 역사가 된다. 좋은 것을 쌓아가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사람 역사도 그런데 한 나라 역사는 더하겠지. 오래전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오래전 사람이 남긴 자손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땅에 새로운 것을 짓기도 하는데 오래전 것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새로운 것을 지으려다 오래전에 무엇인가 있었던 터나 물건을 찾아내서 그렇구나. 그런 건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땅 속에 묻힌 거겠지. 한국은 나라를 되찾고 일제가 남긴 것을 많이 없앴다. 그것을 남겨야 할지 없애야 할지 어느 한쪽만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정기를 끊으려고 별 것을 다했다. 풍수지리를 이용해 중요한 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런 건 당연히 없애야 한다. 일본은 한국 문화재도 많이 가져갔다. 나라를 빼앗겨서 한국 사람은 그것을 그냥 볼 수밖에 없었겠지. 어쩌면 조선 사람은 그런 일을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일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일본에 끌려가서 일한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일을 한 사람도 많고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도 많았다.

 

일본 사람은 아주 많은 신을 섬긴다. 서울이나 인천에 신사를 지었다는 말은 처음 보았다. 이제는 그런 곳이 남아있지 않으니. 그래도 기록에는 있겠지. 신사는 일본에서 조선에 온 사람 때문에 지었겠지. 그러고 보니 일본은 조선 사람한테 신사 참배를 시키기도 했다. 신사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게 다 나쁜 건 아닌데 조선 사람은 싫었겠지. 일본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신사 참배를 시킨 신사에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을 신으로 모셨을 것 같다. 일본에도 그런 곳이 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일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조선 사람은 신사를 부수었다. 그래도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니 신기하다. 오래전에 한반도 사람이 왜에 건너가 일본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는데, 한반도에는 일제가 쳐들어온 흔적이 남았다니. 이건 한반도 사람뿐 아니라 일본 사람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일본말로 일본에 나오면 좋을 텐데. 한국 사람도 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이 물러가고 미군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데 미국 땅 같은 곳이 생겼다. 용산이 그랬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나 벙커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게 남아서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인천에는 은행 건물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조선 사람이 농사 지은 땅주인이 일본 사람이었다는 거다. 아니 이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나왔는데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쌀을 빼앗아간 건 알았는데. 소설 《토지》에 그런 게 나올 것 같다. 군산 발산초등학교와 군산간호대학이 나오다니(예전에는 개정간호대학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간 적은 있다. 군산간호대학 가까운 곳은 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거기에서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드라마를 찍었다는 말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군산이지만 예전에는 ‘군’이나 ‘면’이었다. 그게 다 군산시가 되었다. 그렇게 합쳐지는 게 좋은 걸까. 내가 사는 곳이 나와서 조금 신기했다. 이곳에는 일본이 쌀을 빼앗아간 항구가 있었다. 군산보다 밑에 있는 여수도. 내가 어렸을 때 다닌 초등학교 가까운 곳에는 일제강점기 건물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한국 곳곳에는 일본이 남긴 것이 있을 거다. 봐도 잘 모르고 지나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일이 없게 안내판이라도 세워두면 좋을 텐데. 예전과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보면 일본한테 지배를 받은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겠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제주도에 가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곳에도 일제가 남긴 흔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말 다른 책에서 본 것 같다. 다행하게도 그건 피했지만, 같은 나라 사람한테 죽임 당한 사람이 많다.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흐른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가끔 뒤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남긴 것을 걷는 것은 그런 일이겠지. 건물이나 터를 바라보는데 거기에서 일하고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 보였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만 대단한 건 아니겠지. 자신과 남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앞세대한테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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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이 났어요 - 지친 마음을 토닥이는 세나의 감성 엽서북
굳세나 지음 / 로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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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아는 것일 텐데, 난 편지 쓰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쓴다. 초등학생 때는 어버이날에나 편지를 썼는데, 중학생이 되고는 친구와 편지를 나눴다. 편지로만 이야기하는 친구였다(언젠가도 썼구나). 난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책을 좋아했다. 그 친구가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걸 읽었는지 좀 물어볼걸 그랬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생각나지 않는다. 그 친구가 준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친구하고 연락을 하지 않지만. 나보다 잘 살겠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거의 내가 썼다. 그래선지 그게 오래 가지 못했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전화를 자주 한다거나 말을 잘 했다면 좋았을지. 지금도 말 거의 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쓰는 말은 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니 아직도 편지를 쓰지.

 

색칠하는 엽서를 산 적도 있는데 다 칠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나중에 심심할 때 한장씩 칠하고 써야겠다. 심심한 건 늘이구나. 그 심심함은 다른 걸 하면서 달랜다. 편지 쓰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편지지를 사고 거기에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또 이런 엽서를 샀다. 이건 뜯어서 바로 쓸 수 있다. 봉투는 없지만. 엽서가 좀 두꺼우면 좋을 텐데 얇다. 봉투를 두꺼운 종이로 만들면 좀 낫겠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냥 얇은 종이로 만들지도. 어쩌다 두꺼운 걸로 만들어야겠다. 봉투 만드는 건 아주 쉽다. 종이 자 가위 칼 풀만 있으면 된다. 난 엽서를 봉투에 넣지 않고 우표 붙이고 보내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한번 그렇게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것도 받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건 얇아서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글씨를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잘 안 된다. 연습할 때는 손에 힘 주지 않고 흘려 쓰기도 하는데 편지지나 엽서에는 꾹꾹 눌러쓴다. 펜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마음을 담아서일지도.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누군가한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편지가 막 쓰고 싶다. 그럴 때 다른 걸 하면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걸 끝내고 써야지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걸 뒤로 미루고 편지나 엽서를 먼저 쓴다. 중간에 할 때보다 하던 걸 끝내놓고 할 때가 더 많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런 버릇이 든 건지도.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거의 쓰고 싶을 때 쓴다. 가끔 그렇게 써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미없어서. 예전에는 좀 재미있게 쓰려고도 했는데, 지금은 좀 어두운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일이 별로 없어서구나. 별일 없는 게 더 나은 거기는 하다. 늘 무슨 일이 있어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면 힘들 거다. 나도 조용하게 사는 게 좋다.

 

 

 

 

 

 

엽서 다 예쁘고 글씨 쓰기도 괜찮다. 이름이 굳세나인데, 진짜 이름은 아니겠지. ‘굳세, 나’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나도 굳세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언가를 쓰는 게 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많은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쓰기만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려고 해야 하는데. 걸어야겠다. 갑자기 걸어야겠다고 하다니.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좋다. 실제 걸을 때보다 책 속을 걸을 때가 더 많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걸은 걸 세어보면 아주 많을 거다. 어렸을 때부터 걸었으니 말이다. 걷기는 내가 단 하나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운동이 좋기는 해도 누구한테나 좋은 건 아닐 거다. 자기한테 맞는 운동을 알고 그것을 꾸준히 하면 몸이 괜찮겠지. 나한테는 그게 걷기다. 걷기 좋아하는데 많이 걸어서 무언가를 떠올린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그런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걸어야 하는구나. 이 생각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하는 거다. 그런 건 거의 해 보지 않았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건 그냥 여러 가지다. 가끔 좋은 게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런 건 어쩌다 한번이다.

 

편지를 쓸 때도 뭔가 좋은 게 생각나기도 한다.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써야 할 텐데, 내 생각을 더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받을 사람을 더 생각하고 써야겠다.

 

 

 

 

 

덩그러니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한마디도 적지 못하고

하얀 종이만 덩그러니

봉투 속을 채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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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0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2-12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은 굿세나 스타일보다는 꿋꿋하게 쓰나 스타일 같으세요^^

희선 2017-02-14 02: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꿋꿋하게 써야겠습니다 책을 잘 읽고 쓰면 좋을 텐데, 마음과는 다르게 될 때가 많네요 어쩌다 한번 하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기도 합니다 써도써도 늘 어렵고, 같은 말 자꾸 쓰는 것 같기도 해요


희선
 

 

 

 

크게 휘두르며 27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6년 07월 22일

 

 

 

지난번 것을 본 지 아직 한해는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크게 휘두르며>도 나오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제인지 잊어버렸는데 몇해 전에 작가가 연재를 쉬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아이를 낳아서다. 이번에도 쉰다고 한다. 지난번과 똑같이 아이를 낳아서다. 둘째구나. 다음 권은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곧 나올지. 그동안 연재한 게 한권이 되면 좋을 텐데. 다음 권 빨리 보고 싶다. 사도 바로 안 보고 알고 싶은 건 없지만, 아니 미하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싶다. 연습한 다음에 제구력이 돌아올지. 미하시 학교 니시우라는 센다와 한 경기에서 졌다. 시작은 좋았는데, 경기하다 미하시는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그건 경기하기 얼마전에 공 던지는 자세를 조금 바꿔서다. 미하시가 그렇게 해서 니시우라가 진 건 아니다. 센다가 야구를 잘했다. 센다한테 콜드로 지기는 했지만 7회까지 끌고 간 것을 괜찮았다 말했다. 이건 응원하는 하마다가 한 말이구나. 그런 생각으로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겠지만. 연습 많이 하고 싶어도 한동안 부활동이 없었다. 점심에 잠깐 연습했다. 곧 시험을 봐서다.

 

아이들이 야구 연습하는 거 보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내가 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잘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구나. 이 말은 예전에도 했을 텐데.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은 점심에만 하는 연습이 모자란다고 느꼈다. 미하시는 경기한 날에도 공 던지고 싶어했지만 쉬었다. 타지마가 미하시한테 연습하자고 했지만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에 아베가 와서 타지마가 아베한테 학교 끝나고 자기네 집에서 잠시 연습하자고 한다. 학교 끝나고 타지마 미하시 아베 이즈미 넷이 타지마네 집에서 연습했다. 다른 아이들도 가고 싶어했는데 하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면 타지마네 집에 폐라고 몇 사람만 가라고 했다. 주장다운 모습이구나. 타지마네는 식구가 많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살고 형제도 많고 첫째형은 결혼하고도 함께 살았다. 아이들이 연습할 때 집에 있던 타지마네 식구는 그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 이름도 불렀다. 처음 만난 아이도 있을 텐데 친근하게 대하다니.

 

이즈미는 타지마와 미하시가 렌과 유 군이라 하는 걸 듣고 신기하게 여겼다. 왜 그러느냐고 이즈미가 미하시한테 물으니 식구들이 유와 렌이라 해서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타지마라 해서 미하시도 타지마 군이라 한다고 했다. 미하시 엄마 아빠는 집에 늦게 올 때도 있어서 미하시는 자주 타지마 집에 갔다. 이즈미는 자기도 부르라고 했다. 미하시와 타지마가 친할 수밖에 없었구나. 이름 이야기로 돌아가서, 타지마네 집에서는 다들 성이 아닌 밑에 이름으로 불렀다. 미하시는 다른 아이 이름은 어떻게든 불렀지만 아베 이름 타카야는 말하지 못했다. 아베가 자신을 렌이라 하는 것도 어색하게 여겼다. 학교에서도 아베는 미하시를 렌이라 했다. 그걸 자꾸 듣다보니 미하시도 익숙해졌다. 미하시가 아베를 타카야라고 하는 날은 언제 올지. 시간이 더 있어야 할지도. 둘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면 좀더 친해지고 야구도 즐겁게 하겠다. 이런 말하면 아베한테 미안하지만, 나도 아베는 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니. 난 미하시와 좀 비슷해서.

 

미하시가 공 던지는 모습을 아베가 카메라로 찍어서 코치(감독 아버지)한테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던지고 받기 연습 많이 하라고. 이렇게 짧게 말하다니. 제구가 안 되는 건 공 던지는 자세를 바꿀 때 일어나는 일이고 중심과 하반신을 단련하라고 했다(허리와 다린가). 저녁에 잠깐 코치를 만났다. 코치는 몸 균형을 잡으면 쉽게 다치지 않는다고 했다. 야구를 좋아해도 하다보면 다치기도 한다. 균형을 맞추면 쉽게 다치지 않는다면 다 그러려고 하겠지. 투수는 한동작만 오래 해서 한쪽만 쓴다. 다른 쪽도 단련해서 부드럽게 만드는 게 아닐까. 운동선수만 몸 균형이 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도 그래야 한다. 왼손도 자주 써야 할 텐데. 어른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히구치 아사가 어딘가에서 본 모습을 그린 거겠다.

 

타지마 집에서 야구 연습하고 타지마와 아베는 미하시 집에서 공부했다. 오래 못하고 조금 하다 잠들었다. 잠깐이라도 함께 공부하는 게 낫겠지. 시간은 흐르고 중간시험 보는 날이 왔다. 첫날 시험이 끝나고 타지마는 야구부 아이들한테 시험 끝나고 자기 집에서 바비큐 잔치를 한다면서 모두를 불렀다. 식구도 많은데 야구부 아이를 다 부르다니. 타지마네 식구는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내는구나. 어른이 함께 살아서일지도. 다들 시험 잘 봐야 할 텐데. 시험 못 보면 야구 못한다. 야구를 생각하고 공부 열심히 했겠구나.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 공부도 야구도 즐겁게 하기를 바란다. 경기 이기면 좋겠지만 이기지 못해도 많이 아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니시우라가 어디와 경기할지 모르겠지만 이길 것 같다. 이기는 모습 내가 보고 싶은 건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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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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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도 쓰기도 힘든 책을 만났습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은 건 다른 일보다 이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지나간 일이라 해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일흔해가 넘게 흐르고 일본 위안부 피해자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언젠가는 한 사람만 남을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일본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지요. 피해자한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려 했어요. 누군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가 돈을 받고 그 일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누가 그걸 하려고 할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몸을 팔고 먹고 사는 사람이 그랬고, 그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었어요. 일본은 전쟁을 하는 곳 여자들을 군인이 성폭행하는 일이 많아지자 몸 파는 사람을 그곳에 데리고 갔어요.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자 한국 여자아이들을 끌고 갔습니다.

 

일본한테 지배받는 조선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고 먼저 죽은 아이 이름을 물려주기도 했어요. 여자아이는 집안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돈을 더 준다는 곳으로 가려 했고, 식모살이를 다른 데서 하려고도 하고, 좋은 데서 일한다는 말에 속고, 야마다공장에 실 푸러 간다고도 했어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열세살에 다슬기를 잡다 남자들한테 끌려갔습니다. 누군가는 엄마와 일하다 끌려가고 간호사 일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속고, 돈 벌어서 동생 배를 곯게 하지 않으려 집을 나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양반집 딸을 대신한 아이도 있었겠지요. 여자아이들이 끌려간 곳은 만주로 일본군을 받는 위안소였어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여자아이들은 일본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하하가 붙여주고 군인이 붙여주기도 했어요. 하하(母), 오토상(お父さん), 엄마 아빠라는 말이지만 실제 엄마 아빠와는 달랐습니다. 누가 자기 딸한테 일본군을 받게 하겠어요(그런 일 아주 없었던 건 아니군요). 하하한테는 딸도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타고 온 기찻삯을 내라고 하고, 물건을 주면서 모두 빚이라 했어요. 빚을 갚으면 돌려 보내주겠다니.

 

한반도에서는 여자를 다른 나라에 보낸 일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있었어요. 고려 시대에는 공녀로 중국에 보내고 조선 시대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질 같은 거로.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인조 때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라고 했다지요. 그때 돌아온 여자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 사람 많았을 거예요.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했다니.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님이 처음으로 증언을 하고 이어서 많은 사람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곳에 끌려간 사람은 이십만명이고 돌아온 사람은 겨우 이만명이었어요. 1991년 뒤에 알린 사람은 이백서른여덟(238)명이고 지금은 마흔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는 한 사람만 남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한 사람은 지금까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한 사람이 말하는 거지만 많은 사람 이야기예요. 드라마에서 그런 것을 봤을 때도 저런 일이 있었다니 했는데, 이 소설은 더 현실에 가깝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말한 것을 바탕으로 써서군요.

 

지금도 인도에서는 여자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서 성노예로 만들기도 합니다. 집이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미국에 가지만 성노예가 되는 유럽 여자아이도 많습니다. 그런 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군요.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에는 열한살 열두살 아이도 있었어요. 나라에 힘이 없어서 그걸 그대로 보고 있었을까요.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을 일을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죽임 당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힘들게 살아 돌아온 사람은 죄인처럼 살았겠지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3인칭 대명사로 나와요. 한 사람 남은 분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풍길’이라는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일흔해가 넘어서야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겠지요. 남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말을 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그때가 올 거예요. 그전에 일본이 제대로 사과를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아니 그것보다 나라에서 먼저 그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그런 말한 사람 있는지. 제가 모르는 거고 있었다면 좋겠군요.

 

일본한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을 바친 분도 잊지 않아야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분도 거의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이 살지 않았다 해도 오래전에 일어난 일 알아야 합니다. 저도 역사 공부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소설을 보고 알기도 합니다. 소설은 개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이 모여 역사가 되지요. 작다고 해도 한 사람은 중요합니다.

 

 

 

희선

 

 

 

 

☆―

 

위안소에 있을 때 그는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하나인 몸뚱이를 두고 스무 명이, 서른 명이 진딧물처럼 달려들었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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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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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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