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바뀌는 영시가 지나고도
잠 못 이루고, 아니 잠들지 않고
밤을 낮처럼 보내
늦은 밤에도 깨어 있는
많은 사람
어둠이 내려와도 불을 켜면 어둡지 않아
온전한 어둠을 느끼지 못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밝은 밤은 좋아
영시가 지난 지금
당신은 뭐하세요
희선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 해도
걸어가
걷다가 힘들면 잠깐 쉬고
둘레 한번 둘러봐
때론 꺾이거나
좁은 길로 가기도 할 거야
그 길엔 못 보던 꽃이 있을지도 모르지
누군가와 함께여도 괜찮고
혼자여도 괜찮아
즐겁게 걸어가
누군가와 함께 한 기억이 좋겠지만,
혼자 지낸 기억도 괜찮아
날마다 같은 걸 되풀이해도
시간이 흐르면
처음 그걸 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해
그때 있었던 일은 아니고
그때 느낌이랄까
그것도 나쁘지 않아
같은 걸 한다 해도
그때그때 다르겠지
봄이 오면 녹고 사라지는 눈사람,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함께 하고 싶었어
눈사람이지만
눈이 아닌 다른 걸로 눈사람을 만들었어
솜 털실 스티로폼……
눈사람은 봄이 와도 사라지지 않았어
씨앗은 싹을 튀우고
작은 나무로 자랐습니다
나무가 작았을 땐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나무는 비바람과 폭풍우를 잘 견뎠어요
이제 나무는 어리지 않아요
바람이 말하는 푸념과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 새 말을
곤충이 날아오는 걸
흘러가다 나무뿌리에 스며든 시냇물 이야기를……
나무는 한자리에서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