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 다루 사거리의 거북이 12
김성종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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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장난감 말로 제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반려동물' 그중에서도 '강아지' 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애견인구가 정말 많다. 요즘은 몸집이 작은 개 뿐만이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큰 개를 키우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어려서는 그리고 아프기 전에는 모든 것이 참 좋다. 하지만 동물이 나이가 들어가고 사람처럼 성인병및 큰 돈 들어가는 병에 걸리게 되면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우리도 애견을 13년 째 키우고 있고 두마리중에 한마리는 11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죽음을 심장마비로 보내게 되었고 지금 키우고 있는 치와와는 12살, 큰 고비도 몇 번 넘기면서 보험이 되지 않아 큰 돈을 들이기도 했다. 그럴때는 정말 포기를 해야하나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우선은 식구처럼 오래 키웠기에 식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우선은 돈보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정말 위급상황에서 옆에서는 다들 '안락사'도 운운하기도 했지만 가족처럼 키우던 녀석에게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일이지 싶다.

 

"병들고 약하다고 동물을 버리면 안 되지.그럴수록 돌봐야 해. 그건 곧 인류애와 통하는 거야."

 

다루는 사고로 한 쪽 눈을 다쳐 한 쪽 눈밖에 없고 한 쪽에는 안대를 하고 다니던 엄마가 35살에 먼저 갔기에 아빠와 함께 캠핑카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하지만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보다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다.아버지는 젊은 날 둘이 여행중에 사고로 인해 빚도 안게 되었는데 아내가 간암으로 가게 되어 병원비며 치료비를 떠 안게 되어 그 또한 큰 짐으로 집이며 모든 것을 빚으로 떠안게 되면서 아이들과 캠핑카 생활을 하며 노가다 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이 구김살없이 자라주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다루는 늘 공부도 잘해서 은근 아내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그런 다루가 어느 날 집으로 오던 길에 누가 내다 버린 쓰레기중에 한쪽눈을 고양이들이 파먹어 없는 강아지를 안고 들어오게 된다. 한쪽눈이 없어 더욱 아내와 엄마를 생각하게 했던 강아지,그 강아지에게 다루는 케로베로스라는 지옥앞을 지키는 개 이름을 지어주는데 가족은 '케르'라고 부르는데 녀석은 좁은 집에서도 적응을 잘 하기도 하지만 다루를 닮아 영리하다.

 

 

다루를 모두들 '천재소년'이라고 하고 담임선생님은 다루의 천재성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유학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형편이 그러니 내놓고 말하기도 그런데 그런것에 굴하지 않고 다루는 책도 열심히 읽어 지식을 습득하는 한 편 케르를 잘 훈련시켜 주변에서 영리한 개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케르가 아파트 화단에 쓰러져 있는 아줌마를 발견하게 되고 자살하려던 여인은 케르가 발견하게 되고 다루가 신고하여 간신히 살아나게 되는데 그들은 혈액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혼외자식이라며 트러블이 있던 부부였다. 하지만 다루는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그집 아저씨게 편지를 써서 다시금 전문기관에 혈액형을 검사하도록 하게 한다. 분명 혈액형 판단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고 하는 다루는 호기심이 있거나 알고 싶은 것은 스스로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자기주도형 학습을 하는 소년이다. 학원이나 그외 다른 공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엄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번드르한 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전혀 자신의 현재에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런 남매를 보며 아빠는 꿋꿋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너희가 충분히 해낼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거야. 사실대로 말하면 지리산 종주는 어른들한테도 힘든 코스야. 그래서 너희한테 억지로 권할 생각은 없어.하지만 아빠하고 같이가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빠 생각이 그러니까 정 자신이 없으면 안 가도 돼."

 

캠핑카가 있는 그들은 한곳에 정차해 놓고 살아가긴 힘들지만 여행을 갈 때는 편리하다. 아빠는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힘든 일을 찾아 다니는데 방학을 맞아 그들과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된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지리산에서 보았던 일출을 잊을수가 없기도 하고 케르와 함께 그들 가족이 자연으로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그들은 힘들지만 지리산 자연고 함께 하며 가족애도 다지고 자연과 그리고 지리산의 역사와 함께 한다.그러던 중에 케르는 무언가 발견하게 되고 다루가 뒤쫓아가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6.25 때 전사한 이들의 뼈가 묻혀 있던 곳,다루는 아빠에게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지리산에 얽힌 역사에 대하여 빠삭하게 조사를 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남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어린 소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 해박한 다루,아빠는 그런 아들에게 놀라고 더 열심히 벌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지리산종주여행 후에 다루는 지리산에서 가져 온 '뼈조각과 증거물'을 관계 기관에 보내 전사자를 찾게 하고 그것은 다름아닌 모 기업의 CEO의 부친을 60년만에 찾게 된 것이다. 그것도 어린 소년이 말이다. 국가도 하지 못한 일을 어린 소년이 찾아내게 되고 그들을 모두 놀라게 한다. 함께 발굴작업에 임하면서 소년이라기 보다는 그의 천재성에 놀라게 되는 모 기업의 서회장은 다루를 도울 것을 생각한다. 그가 백일 때 한국전쟁에 참가한 아버지는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가 어머님도 며칠 전에 눈을 감으셨는데 다루에 의해 발굴이 된 것이나 얼마나 벅차고 큰 일었겠는가. 무엇을 다 내주어도 소년에게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소년이 또한 집안 사정도 어려운데 장래가 밝다면.케르가 해 낸 일기도 하지만 다루가 하지 않았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렇게 역사는 묻혀서 60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소설은 소년의 모험과 성장과 함께 역사가 함께 어우러져 감동적이다. 눈물이 갑자기 울컥하고 쏟아져 나와서 한참 울먹이다보니 다루네가 서회장을 만나 정말 다행이게 활짝 피게 되어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며 내려 놓게 되었는데 무언가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가 뒤에 이어질 것만 같다. 다루가 성장한 후의 이야기가 아니 그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이 느낌은뭐지.저자의 다른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 <여명의 눈동자>하면 대단했던 작품이며 난 <여명의 눈동자 OST>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저자는 한국역사를 이야기에 엮어가는 능력이 탁월한 듯 하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 작품 또한 소년 다루와 케르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한국역사가 엮이어 더욱 감동적이면서 모험적인 이야기가 잘 엮어나갔다. 소년의 이야기가 지리산에 얽힌 빨치산과 한국역사가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짧은 듯 하면서도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아내의 죽음이후 다루가 데리고 들어 온 한쪽 눈을 잃은 케르는 정말 아내의 환생처럼 그들을 보살펴주는 모험이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자꾸 잊어가고 있는 역사를 일깨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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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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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거에서 풀어야 할 매듭 하나쯤 우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뒤돌아 보면 옹이처럼 가슴에 박혀 아픔의 상흔으로 자리한 그런 매듭 하나,그것이 인생을 모두 뒤틀리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 어느 날 배달된 한 장의 편지 때문에 자신의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조우하며 화해하고 다시 사랑을 되찾는 '해럴드 프라이' 가 있다. 예순다섯 살,만만하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핸드폰도 없고 등산화를 신은 것도 아닌 보트 슈즈를 신었고 아웃도어도 아니지만 '걷기'로 한다.아니 걷기를 선택하여 자신의 뒤틀린 인생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어한다. 아니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한번 자신의 삶 속으로 부딫혀 들어가 보려 한다.

 

 

해럴드에게 퀴니의 편지가 배송되었다. 자신의 암에 걸려 종양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하지만 그를 기억하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해럴드의 아내 모린에게 퀴니는 결코 반가운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십여년만에 그것도 시한부 삶에서 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일까? 그녀에게 답장을 써서 부쳐야겠다고 나가는 해럴드가 결코 달갑지 않다. 하지만 해럴드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낸다는 것이 뭔가 찜찜하면서도 자신이 맞게 답장을 쓴 것인지 생각도 들고 과거 그녀에게 '고맙다' 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이참에 그녀를 만나러 가볼까 생각한다.그런데 그것이 아무것도 갖추어지 않은 상태에서,그러니까 편지를 부치려고 했던 그 상태로 그냥 '걷기' 로 한다.영국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1000km정도를 걸어서 그녀가 있는 요양원까지 가겠다면서 '가다려 달라' 라고 한다.

 

해럴드는 살면서 포기해 버린 모든 것을 생각했다.작은 미소,맥주 한잔하자는 권유, 양조 회사 주차장에서,또는 거리에서,그가 고개 한번 들어 바라보지도 않고 계속 지나쳐 버린 사람들,이사 간 곳의 주소를 챙겨 둔 적이 없는 이웃들,더 심각한 것은 - 그에게 말을 하지 않는 아들과 그가 배신했던 아내.그는 양로원에서 있던 아버지,문간에 있던 어머니의 옷가방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십년 전에 그에게 친구로 자리 잡았던 여자가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가 뭔가 하려는 순간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인가? 삶의 모든 조각들을 결국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시한부의 삶인 퀴니가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 모르는 그의 걷기여행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죽음이 임박한 자에게 그의 한마디가 과연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처음 그의 걷기여행은 그의 아내조차 믿기지 않은 것처럼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그가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회사와 집만 착실하게 오갔던 삶이고 퇴직후 육개월 동안 집안에 갇혀 지냈다.집밖에 나가지 않고 살았는가 하면 모린도 그가 없는 시간을 받아 들일 수가 없으며 그 또한 집과 냉담한 아내지만 그런 아내와 그저 갇혀 지냈던 삶인데 그것도 60대 노인이 아무런 준비 없이 오랜시간을 길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 해럴드는 주유소에서 간단하게 햄버거로 요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주유원인 소녀가 햄버거를 데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녀가 암에 걸린 고모를 위해 기도를 해서 낫았다는 이야기를 해준것에서 걷기여행에 희망을 더욱 가져본다. 암이란 큰 병마가 단순히 기도만으로 낫을 수 있을까? 결코 그럴수는 없다. 그걸 알지만 해럴드는 퀴니를 만나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다.

 

"해럴드 프라이가 가는 길아라고 전해 주세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내가 구해 줄 거니까. 나는 계속 길을 걸을 테니, 퀴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그렇게 전해 주겠어요?"

 

그는 모두가 걷기여행은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다고 하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들 개개인의 '진심'을 만나듯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가 알지 못했던 세상밖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만나며 하루하루 달라진다.그런가 하면 걷기를 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조우하며 자신이 어릴 때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며 그로 인해 알콜중독자가 되고 '고모' 들을 늘 바꿔치기 했던 아버지를 생각했다.물론 다 크지도 않은 상태에서 쫒겨 내기도 했지만 부모의 정의 부재와 더불어 자신의 아들 데이비드에게 어쩌면 자신의 아저비와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는,데이비드가 물에 빠진 사고가 났을 때 왜 자신은 신발 끈만 고쳐 매고 있었던 것인지.그로 인해 모린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들은 남남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무척 힘든 시기에 투박하면서도 칼칼한 성격의 퀴니가 회사가 들어오게 되고 그들은 파트너로 일하게 되면서 그들의 어려운 곳,가려운 곳을 알게 되었다. 그리곤 해럴드가 저지른 일을 뒤집어 쓰고 자취를 감추어 버린 퀴니가 이십여년 만에 시한부의 삶이라고 고해 온 것이다.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그 때 정말 고마웠다고 한마디 해야 하는데 그녀가 그 때까지 견디어 줄까.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하지만 본능적으로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해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해럴드의 사정이야기를 듣고는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따뜻한 곳이란 것을,그런가 하면 누구나 가슴에 아픈 상처 하나쯤은 모두 안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격려를 얻어가며 가는 하루 하루 더 단단해지면서 처음엔 무작정 걷기를 선택했다면 점점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걷기가 되면서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배운 응급처치 요령으로 좀더 편안한 '발'을 유지하며 걷게 되기도 한다. 퀴니에게 기다려 달라고 시작했던 걷기는 그의 자신과의 약속처럼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걷기로 변하면서 그 소식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면서 그의 뜻과는 다르게 크게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가 하면 소원했던 모린과의 관계에 희망의 불이 켜진다. 그를 의심했던 모린은 해럴드를 응원하게 되고 그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자신의 아들 문제에 있어서 자신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다시금 해럴드를 받아 들일 준비를 마친다.

 

해럴드의 순례는 단순한 걷기 여행이 아닌 인생 여정을 만나는 그야말로 '순례' 였던 것이다.자신과 삶과 조우하며 다른 이들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들의 잘못과 조우하지만 해럴드만큼 진심성이 담기기 보다는 일회성으로 끝나려 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유명해진 그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순수성을 잃었지만 해럴드는 그럴수가 없었다. 이 순례의 주체는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요양원 앞에서 망설임도 잠시 퀴니를 만나면서 그녀의 현재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삶이란 때론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부분이 있다. 더이상 잡을 수 없다면 편안히 보내줘야 한다.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도 울컥 목에 무언가 커다란 것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계속적으로 울컥하고 눈물이 흘러 도저히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친정아버지를 암으로 보내드린 그 시간들이 생각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아버지의 삶을 더 붙잡고 싶었지만 안된다면 고통을 덜 받게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생과 사는 삶의 연속이다. 삶만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분명 그 속에 '사死'도 속해 있다.

 

" 나도 버윅이 아주 멀다는 걸 인정해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요. 또 내가 걷기 훈련도 받지 않았고, 몸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요.그러고 보니 내가 가능성이 없는데도 거기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네요.하지만 나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속에서는 포기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포기 할 수가 없네요. 계속 가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가고 있네요."

 

인간의 최고 능력인 걷기를 부여 받았지만 점점 우리는 걷기를 잊어가고 있다. 편리한 문명의 기기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기 보다는 편한것만 추구하려고 해서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걷기를 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나 또한 걷기를 많이 하려고 산행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제일 힘든게 또 걷기이다. 옆지기와 함께 산행을 하다보면 많은 이야기도 하게 되고 스킨쉽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 부부사이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 걷기라고 본다. 해럴드는 자신과의 싸움처럼 남에서 북으로 과거에 존재하는,그녀의 현재를 확실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걷기를 하면서 모퉁이마다 숨겨진 과거와 조우하면서 그렇게 하나 하나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희망의 현재를 안게 되고 점점 더 단단해진다. 그에게 걷기여행이란 삶의 담금질처럼 그의 미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는 그 시간이 모두 그와 함께 순례를 하는 시간처럼 느껴지면서 내 자신의 엉킨 과거의 매듭은 없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모린과 해럴드가 두 손을 다시금 꼭 잡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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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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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제주여행을 가서 아쉬웠던 것이 '이중섭거리'를 밤에 여행해 보기로 했는데 내가 몸살기가 있어 몸상태가 좋지 않아 밤여행을 포기했다. 아침에 일찍 여미지 식물원을 구경하고 갈까 했는데 그 또한 비행기시간에 맞지 않을 듯 하여 다음으로 미루었던 것이 못내 서운하고 아쉽고 이 책을 읽다보니 그때 '이중섭거리'구경을 하고 왔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화가의 그림은 미술책에 나와 있는 '소' 그림을 통해 접했다. 힘이 느껴지는 한마리의 소가 민족을 대변하듯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무언가 질주할 듯한 그림은 한참을 보고 있게 만든다.그런데 소 그림들도 좋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아이들이 등장하거나 가족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어쩌면 그를 더 잘 나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겉표지그림 <도원>

 

겉표지 그림으로 <소> 보다는 아이들의 등장하는 <도원> 을 선정한 것도 보면 어느 면에서 그의 작품 세계와 가족에게 향했던 사랑을 잘 표현한 작품은 이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그는 결혼전까지는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미술에 더 열정을 쏟을 수 있지 않았을까.결혼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아내인 마사코와 처가에 아들 태현과 태성을 맞기고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자주 가지도 못하면서 아내와 아이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그 사랑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여주는 그의 천재적 감각은 정말 서양 어느 학파의 유명한 화가의 작품보다 더 매력적이고 대단하다. 거기에 작품을 그리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주위에 있는 어느 것이든 작품을 구리는 재료가 되었고 특히나 담배갑에서 얻을 수 있는 '은종이' 그림은 그를 알리는 특별한 재료가 되지 않았나 본다.

 

여러가지 일로 초조한 나날을 보내면서 당신과 아이들의 일은 ' 보고 싶다'는 한 가지밖에는 깊이 생각하질 않았소.남편으로서 아빠로서...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소.그러나 앞으로 대향은 꼭 훌륭하고  새로운 예술을 창작하고 표현할 자신으로 부풀어 있으니... 이제부터는 당신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좋은 남편,좋은 아빠가 될 생각이오. 멀지 않았소.

 

책은 이중섭의 (대향) 이 그의 일본인 아내 마사코 (남덕)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연애편지와 같은 편지글과 그림 그리고 두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림과 아내 남덕이 아고리인 이중섭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아고리 이중섭의 편지글에서 보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정말 절절한 연애편지를 쓰듯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이 지극 대단하다. 일제 강점기였으니 일본인 아내는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는 '적'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홀로 현해탄을 건너와 그와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두었지만 일본으로 가게 되고 이중섭은 홀로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해도 그림만은 손에서 놓지 않고 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듯 하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기상은 고구려 벽화에서 느껴지는 그런 우리 민족의 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조면에서 정말 화려하고 다양하고 구성이며 표현 모든 것이 독특해서 이런 천재적인 화가를 역사가 너무 외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초가을, 모든 것이 열매 맺는 소중한 시기요. 우리 성가족 넷이서 단란하게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대지를 밟으면서 정확한 눈,눈,눈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응시합시다.한 걸음 한 걸음을 확실하게 내디딥시다.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가 가난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은종이나 그외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을 듯 하다.시대가 천재적 화가를 나았다고 봐야 하나,이런 아이러니. 그의 곁에 아내와 아이이들이 있었다면 천재적 예술혼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가 남긴 작품들과 다른 작품들이 더 많이 탄생하고 그가 좀더 우리곁에 오래 머물렀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가난에 시달렸고 자신의 천재성을 시대가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자존심에도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좀더 그의 작품이 경제적인 면을 뒤받침 해 주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힘든 시기에 감성적이고 예민하면서 자존심이 강했던 예술가에겐 치명타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내만이라도 곁에 머물면서 그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었더라면.구구절절 편지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느 연애편지보다 더 열정적이고 뜨겁다. 손을 데면 데일것만 같은 뜨거운 사랑이 느껴지면서 예술혼 또한 활활 불타오름이 느껴진다. 시대는 그를 너무 일찍 데려갔다.

 

한국에서도 제작은 할 수 있지만,여러 가지 참고와 재로, 그밖의 외국의 작품을 하루라도 발리 보고, 보다 새로운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오.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을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으로 자처하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조국을 떠나는 것은...더욱이 조국의 여러분이 즐기고 기뻐해줄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여 다른 날의 어떠한 화공에게도 뒤지지 않는 올바르고 아름다운,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하기 위하여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여러 가지 일들이 있소.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하에서 생활해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아아들을 생각하며 그려 보내준 그림과 글 속에서는 그만이 나타낼 수 있는 천재적이고 천진난만한 독특함이 그림에 시선을 잡는다. 아이들이 물고리,게 그외 개구지게 노는 모습과 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또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그림 속에서는 숨김없이 드러나는 가난이 짖게 물들어 있지만 그 속에서도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예술혼은 그를 놓아주지 않은 듯 보인다. 그를 회상하는 글에서 보이는 인간 이중섭의 모습은 어느 누구보다 재밌고 유머있는 남자였다. 거기에 가족을 사랑하고 천재적인 소질까지 가졌으니 시대가 시기한 것일까.이 책을 읽으니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된다면 다른 곳보다 '이중섭 거리'를 먼저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의 천재적인 그림보다 이 책에서는 그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더 깊게 만나는 듯 하다. 범부로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였기에 그에서 발화된 그림들이 더 멋지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찬바람이 부는 계절,옆구리가 시리다고 느끼는 사람은 마음에 드는 이에게 이 책을 선물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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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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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정말 '개인적인 궁금증' 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는데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좋아할듯한 책이다.현시대의 이름 있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담집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이해를 할까? 사실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하라' 는 읽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읽을 당시에도 눈으로는 읽으면서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으니 지금 '사유'가 안되고 있는 것 맞지 않을까. 암튼 내겐 철학,사유,인문 언제부터인지 거리감이 있는 단어들이라 그런지 어렵다.

 

책은 2부로 나뉜다. '철학자들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 라고 해서 현학자들의 사유에 근접하기 위한 여행지침서처럼 '포스트구조주의 이후, 왜 프랑스 철학인가? 정치적인 것의 계보학,영국의 신좌파, 이탈리아적인 차이, 철학과 아시아' 로 나뉘어 미리 술적심을 하듯 진짜 메인으로 가기 위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부분도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눈으로는 열심히 읽는데 속을 깊숙히 파고 들질 못했다. 책의 두께로 보면 금방 읽겠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다. 두께가 아니라 '질'이 문제였고 내 지식의 한계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1부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읽어 나가보면 현시대를 위기의 시대로 놓고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학들의 '사유'를 저자가 현학들과 나누는 대담형식,물론 직접이 아닌 이메일이나 그외 웹상으로 나눈 것인데 정말 대단하다. 물론 저자 또한 지식의 깊이가 있기 때문에 능수능란하게 그드르이 대화에 대한 맥을 짚어내면서 진행자가 되어 대담을 나누어갈수 있겠지 하면서도 어렵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의 호의가 없었다면 이 책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뷰는 2012년에 이루어졌다. 인터뷰 내용 일부는 2012년 2월부터 5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 형태로 실렸지만 이 책에 수록된 것은 편집을 거치지 않은 전체 판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것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한 논평을 가감 없이 들어보는 것이었다.슬라보예 지젝이나 자크 랑시에르, 또는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가야트리 스피박 같은 '거물'뿐 아니라 사이먼 크리츨리나 알베르토 토스카노처럼 최근 부상하고 있는 소장학자들의 시선을 담는 것이 중요했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은 한 마디로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는 것이다.이 말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최악을 향하여> 에 나오는 구절이다. 말하자면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철학자들이 경제학자들과 다른 점을 여기서 짚어낼 수 있다.자본주의가 실패하는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철학은 새로운 체제를 사유한다.'

 

성공에서도 많은 것을 얻겠지만 인생도 실패를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더 값진 것을 얻는다고 했다. 실패도 경험이고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귀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다라는 말도 들었는데 승승장구만 하는 이에게 한번의 실패란 막다른 길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지만 몇 번으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하게 굳어지듯 단단함을 얻는 담금질의 시간이 된다. 현시대를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위기의 순간이라고 한다. '중국이 새로운 세계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2배로 올릴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가? 중국은 오히려 내수 확대를 위한 예산을 2배 증액했다. 재정정책 같은 경제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를 시작하라,자크 랑시에르의 목 없는 자들의 몫으로, 지그문트 바우만의 2012년 현상을 기억하라, 가야트리 스피박의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교육,피터 싱어의 다윈주의와 윤리적 삶,사이먼 크리츨리의 실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영구평화를 두려워하랴?, 알베르토 토스카노의 평범한 마르크스주의, 제이슨 바커의 진리는 훨씬 더 도전적이다.' 분명 사유의 혁명을 가져 오는 이야기고 책이다. 하지만 내 사유의 끝을 보는 것처럼 버겁다. 낯설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아니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철학자도 분명 있는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류다. 그저 읽는 것으로 만족하며 좀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사유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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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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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저자의 글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하지만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긴 것인가,글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끝나지 않은 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올해는 좀더 저자의 책을 많이 읽어보려고 많이 쌓아 둔 책 속에서 저자의 책을 골라 한 권 한 권 빼들고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을 것만 저자의 이야기,깐깐한 때로는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된장찌개와 같은 맛이기도 하다가 어느 날은 늘 마시던 보리차와 같은 맛이기도 한 정말 삶은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는 작가의 글에 빠져 허우적 거린 시간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도 좀더 빨리 만나보고 싶었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서 이제 겨우 읽게 되었다.

 

 

저자의 책으로 읽은 것은 <나목> <두부> <호미>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가 누가 다 먹었을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환각의 나비> <잃어버린 여행가방>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세상에 이쁜 것> <나의 아름다운 이웃>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아주 오래된 농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는데 많이 읽은 듯 하지만 내 책장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늦게 문단에 등단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늘 글로 삶을 다스린 듯 많은 글들이 퍼내도 퍼내도 끝나지 않은 우물물처럼 늘 새롭게 고여드는 듯 하다.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

 

<노란집>은 작가의 마지막 아치울통신이라고 봐야하나.아직도 곁에 있는 듯 한데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섭섭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늘 작품을 대하면서 아쉬움으로 자리할 때 이 책이 나와 주어서 좀더 저자의 여운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노년의 삶' 이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글을 읽으며 나의 부모님,특히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 또한 내 곁을 떠나신지 벌써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아픈 내색 한번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말씀 하신 것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눈물짓게 한다. 아버지는 큰 병을 앓으셨는데 당신이 아프신 것보다 평생 짓던 농사일을 예전처럼 하지 못하는 것을 더 힘들어 하셨다.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 먹거리를 모두 챙겨 주셨던 아버지인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곁에서 모든 시간을 보살펴 드렸는데 아버지의 다리는 그야말로 마른 장작개비처럼 뼈만 남아 앙상했다.아니 정말 마른 장작개비를 만지는 것과 같아 속울음을 얼마나 울었던지.소설속에서 영감님과 마나님의 이야기가 꼭 내 부모님의 그 모습처럼 정겹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아리기도 했다.감정의 어느 한 곳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낸 것처럼 강한 통증에 마비되는 듯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노작가의 마지막 통신에서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듯 해서 다시금 그 시간들을 되새김질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더기 옷에서 이 잡던 때를 그리워하는 소리를 해도,그럼 그렇고말고.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것도,궁상스러운 비위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식구들 사이에 체온의 교류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렇지만 친정아버지도 비슷한 해에 태어나셨기에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되는,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어렵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아버지 또한 늘 우리를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힘들게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전쟁중이거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핏덩이 동생들을 어린 나이에 부모처럼 키워야 했던 이야기를 말씀 하시고 또 하시고 그렇게 새뇌를 시키듯 말씀 하셨었다. 다른 것은 잊으셔도 그 시절의 시간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고 늘 말씀 하셨는데 저자의 글을 보면 반복되는 지난 이야기들이 사골을 우려내듯 하지만 그 맛과 풍미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질 못한다.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우려내도 또 다시 뽀얗게 우려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아치울의 노란집은 그야말로 개풍의 어린시절 집을 생각하듯 자연과 함께 하는 여유와 삶의 뒤안길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준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는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이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처럼 찾고 느끼고 만끽하고 그렇게 노년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며 타인의 삶까지 안고 가듯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준다. 하얀 쌀죽에 얹어 먹는 육젓의 칼칼함처럼 그 때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칼칼한 맛을 이제는 그리움처럼 혀끝에 맴도는 아니 가슴 안에만 남아 있는 추억의 맛을 되새김질 하듯 저자의 글 속에서 여유롭게 머물게 한다. 작은 것 별거 아닌 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 때에는 모르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 한참 지난 후에는 알게 되는 그런 아련한 맛이라고 할까. 소탈하게 웃는 그 웃음이 참 좋았는데 이젠 먼 기억속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글 중간 중간에 있는 삽화가 저자의 모습을 담기도 했지만 따뜻함을 전해줘서 잠시 담장에서 쉬고 있는 따뜻한 햇살처럼 양지녁에서 해바라기라도 해야할 것처럼 따뜻함으로 머무르게 해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삶을 정말 사랑해야 한다는 것,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흘려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일상의 어느 한 순간 아니 마당에 무심히 난 잡초 하나 이유없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서 빠져들게 한다. 이제는 먼 그리움이 된 저자의 아직 읽지 못한 글을 좀더 빨리 꺼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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