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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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랬다. 십여세 안팍의 소년이 온 몸이 정말 고기의 비늘과 같은 피부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진과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런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정말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분명 온 몸이 비늘로 덮힌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그런데 피부가 갈라자면서 몹시 아프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현대의학으로 고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평생 그 피부가 아픔을 덜 느끼게 관리하는 것 뿐인데 소년은 얼마나 아프고 그에 따른 고통이 심할지.그러다 이 책을 손에 들고나니 그 소년의 고통어린 눈이 생각이 났다. 데자뷰처럼 사진으로 보았던 소년의 모습을 겉표지에서 보는 느낌,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겹치지는 것은 무얼까? 물고기소년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본 것은 이 책을 읽으려던 계시였나.

 

이 책은 받아 놓고 건성을 한번 본 후에 많은 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정작 난 이제서 읽어 보고 있다는,며칠전에 손에서 놓은 저자의 <파과>를 읽고나니 이 책도 얼른 읽어야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그래서 얼른 다른책들 제쳐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속처럼 세상 밖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밤과 같고 천둥 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 더 실감이 나게 읽었다. 물 속을 헤매이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청년,아니 그를 인어왕자라 불러야 하나.그에겐 퇴화되듯 흔적기관처럼 '아가미'가 있다. 왜 그에게 아가미와 온 몸에 고기 비늘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는 물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며 왜 물 속을 유영하고 있는지. 저자의 소설을 접하다 보면 주인공들의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름도 곤,해류,강하,이녕 등 흔한 이름도 아니고 소설과 이름은 하나가 되어 흘러가듯 한다. 소설 <파과>에서는 투우,조각,유기견의 이름은 무용이다.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인데 낯선듯 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너무도 잘 맞는다.

 

해류는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빨리 집에 가야하기도 해야 했지만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 가진 돈만큼 타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그것이 다리다. 다리를 걷다가 핸드폰을 놓치게 되고 핸드폰을 집으려 하다가 그만 강물에 떨어지고 만다. 강물에 떨어지며 그녀는 죽으리라 생각했지만 물고기와 물고기를 닮은 사람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정말 인어왕자일까? 그로 인해 그녀는 덤으로 주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구해준 그가 궁금하다. 왜 그는 물에서 살고 있는가? 약간은 어눌하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있으니 분명 인간인데 그에게서 어류에 있는 '아가미'를 보고 물고기 비늘과 같은 것의 반짝임도 보게 된다. 그는 물고기 인간일까.

 

아무리 괴롭혀도 도망치지 않는, 실은 그러면서도 정말로 도망치게 놔두기를 원했는지조차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던 당신이란 존재가 나름 불만스럽기도 하고 덜 마른 접착제처럼 불안하며 온몸에 까슬까슬한 촉수를 세운 듯이 초조하기도 했지만, 강하는 그것을 삶의 긴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받아들이려던 거였어요.

 

곤이 이내천에서 건져지기 전에는 정말 곤궁하면서 사람으로의 삶이 아니었다. 그를 놓고 나간 엄마에 생활비마져 바닥이 나 막다른 골목까지 쫒긴 아버지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이내천에 그와 함께 빠졌다. 하지만 작은 몸으로 그곳에서 살아서 밖으로 나온 그의 몸에는 '아가미'가 있었던 것,그를 건져낸 할아버지와 강하의 손에 의해 그들과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곤,곤이라는 이름 또한 강하가 지어 주었다. 그가 읽던 장자라는 책에서 그에 맞는 이름을 발견한것이 '곤'이다. 그렇게 하여 생년월시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땅에 존재한다는 증거라도 되듯 이름하나 얻게 된다. 강하의 삶 또한 곤보다 나은것이 없다. 그를 버리듯 하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하여 할아버지와 살게 되니 그가 뱉어내는 말은 험하다.곤에게도 험하게 말을 하지만 그 속은 그를 얼마나 챙기고 가족으로 생각하는지.

 

인간세상에서 그것도 죽음의 호수나 마찬가지인 '이내천'주변에서 물고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한 삶이다.평범한 강하도 힘겨운 삶인데 어류와 인간의 경계처럼 태어난 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늘 물이 그립듯 물과 함께 하려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이슈가 될 수 있다.숨겨야 잘 살수 있고 이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엄마 이녕의 귀향은 곤과 강하를 갈라 놓게 된다. 곤이라는 생명체를 이내천에서 떠나 보내야 했는데 그것이 조금 더 일찍,뜻하지 않은 이녕의 죽음으로 앞당겨진 것 뿐이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곤을 떠나보내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던 강하,그의 마음 속에서는 늘 곤이 살아 있다. 곤이 아가미를 가졌고 몸에 고기 비늘을 가졌어도 그는 그에겐 동생이나 마찬가지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신의 그런 특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언 곤의 앞에 '해류'가 나타나며 강하의 이야기며 모든 일들이 밝혀지게 되고 그 순간 이후오 곤은 물에서 강하와 할아버지를 찾아 늘 물 속을 헤매인다. 그를 가족으로 받아 들여주었던 할아버지와 강하를 찾는 일에 아가미와 물고기의 특성이야말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실과 만나 정말 현실적으로 그것도 장맛비가 지나는 여름에 읽으니 더 실감이 난다. 거기에 '물고기비늘 소년' 사진을 보아서일까 낯설지 않은 형상이 머리속에 그려지며 현실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듯 영상이 나타나니 비현실속에 있으면서 현실을 보는 이녕처럼 혼상속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위저드베이커리>에서는 환상 속으로 이끌어 들이더니 이번에는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이게 하고 <파과> 에서는 60대 살인업자인 조각의 삶을 통해 육십이라는 나이가 비현실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제 현실에 눈 뜨게 해준다. 그녀의 소설은 이렇듯 비현실과 현실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현실세계인처럼 이끌어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그녀의 이야기의 현실과 비현실으로 오가는 '흔적기관'으로 '아가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실과 비현실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듯한 '아가미'라는 호흡기관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생명' 혹은 '가족애' 라고 본다. 태어나 가족이라는 의미를 가져보지 못한 곤에게 아가미를 통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할아버지와 강하의 관계 그리고 해류라는 여성까지 이어지고 그가 물 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 의 연결고리를 통해 결코 흔적기관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호흡기관'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린시절 <인언공주>를 읽고 왕자를 꿈꾸었다면 <아가미>를 읽으면 '인어왕자'를 물가에 가면 찾아봐야 할 것만 같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어린 강하가 자신과 다른 '곤'의 아가미와 비늘을 인정하고 가족으로 받아 들였듯이 우리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역지사지를 해 본다면 가족이라는 혹은 넓은 의미의 세상에서 흩어지거나 깨지는 경우는 드물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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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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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가 주는 의미나 느낌은 무엇인가? 내가 침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스물살이 되던 해에 혼자 독립된 삶을 위하여 '더블'로 장만하게 되었다. 침대를 산다고 주위에서 무어라 했지만 내가 편하기 위하여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였기에 남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장만한 침대는 조카의 놀이터가 되어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밤에는 확실한 내 공간이었지만 내가 없는 시간에는 조카의 놀이터로 변해 모든게 엉망이 되곤 했다. 그렇게 해서 가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던 시간이 었었다. 하지만 침대에서의 시간은 더없이 편하고 좋았다. 옆에 누군가를 위한 잠자리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 더없이 혼자 넓은 그 공간을 유영을 했던 시간이었고 지금은 넓은 침대보다는 바닥에서 혼자 뒹굴뒹굴 자는 것이 더 편한 삶이 되었다.누군가와 붙어서 자는 것도 한때다. 특히나 여름에는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 편한대로 공간분할을 한다.

 

이렇게 신경 쓴 침대 에 눕힐 남자인데 너무 엉성하면 안 되겠지.침대의 목적, 참 낯부끄럽다.

 

'와다 아카리' 그녀는 서른할 살의 노처녀라 할 수 있다. 독신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아직 마땅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늘 그녀 주위에는 남자가 있지만 딱히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고르지 못하고 있고 또 아직 콩깍지가 씌워지지 않아서일까 상대를 못 만났다. 그런 그녀가 여성전용 원룸에서 과감히 나와 5층 빌라,그것도 오각형의 특이한 형태의 집으로 이사를 한다. 혼자 살기엔 안성맞춤인 곳에 그녀를 위한 가구,아니 누군가를 위한 가구를 들여 놓게 된다. 바로 '침대'.그녀 혼자서 자기에 침대가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침대를 사기로 한다.그것도 원목으로 정성들여 만든,누군가 주문해 놓고 가져가지 않아 그녀에게 오게 된 침대를 산다. 그리고 다른 가구와 가전제품도 들여 놓으며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다. 모든 것을 다 갖춘듯 한데 아직 마땅한 남자가 없다는 것,정말 남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좋아하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만 아직은 아닌듯 하다.

 

"우와, 침대 엄청나게 편해 보여."

라고 말하며 침대에 앉는다. 누가 재워줄 줄 알아? 한 잔만 내어주고 쫒아낼 거야.

 

연애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고 하듯이 결혼하고픈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연애는 그야말로 즐기는 상대이고 결혼은 언제고 함께 있고 싶은 상대다. 그런 그녀에겐 그녀가 좋다며 아니 그녀를 보면 섹스파트너 쯤으로 아는 연하남이 있다.그는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침대로 곧장 달려갈 생각만 한다. 그런 그가 그녀는 싫지 않다.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가 않다. 새로 장만한 침대는 특별해서 꼭 자신의 맘에 맞는 그와 함께 하고 싶다. 그녀가 눈여겨 보게 된 또 한사람,회사 동료다. 옆자리에 앉아 늘 함께 하기에 손발이 척척 맞는 그들은 이야기 파트너로 정말 잘 맞는다.그러나 그남자 그녀를 침대에 내동댕이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그녀를 좋아하는 또 한사람,유부남이다. 그는 너무 능숙능란하다. 어느 여자에게나 손을 내미는 능숙함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만 외로울 땐 그라도 부르고 싶다.

 

결혼,결혼, 하면서 집착하고 있는 사이에 꽃이 활짝 핀 시절도 흘려 보내고, 신이 내린 보물을 가지고도 헛되이 썩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결혼 없는 남은 인생을 생각해보면, 생각만으로도 외로워지는걸. 집착해서 이룬다 한들 그곳에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그녀가 사는 원룸은 주변에 건물로 막혀 있듯 한데 앞에 학원이 자리하고 있고 그 학원에는 정말 무식한 학원선생이 있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듯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한다. 손님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의 심한 말이 대화를 끊어 놓기도 해서 그녀는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게 된다.하지만 그는 듣지를 못했는지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다.도대체 저 남자 뭐야 하던 그가 어느날 그녀가 주워 오던 쇼파를 들어다 주게 되고 고쳐주고 그리고 작은 티테이블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 남자 보기하고는 정말 다르다. 순진하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하고 손재주도 뛰어나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그녀에게 준다. 정말 아닐것 같은 그 남자가 그녀의 눈에 쏙 들어왔다.

 

'다나베 세이코'는 '일본 연애 소설의 여왕' 이라고 불린다.그녀의 소설 <노리코,연애하다>와 <서른 넘어 함박눈>을 읽었고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영화로 보면 일본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달달한 영화를 보기 시작했었다. 그런 그녀의 이 작품은 1985년 작이라 하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연애와 결혼 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요즘 트렌드가 '연상연하커플'인데 이 작품에 나오는 연하남은 연상녀를 좋아한다. 우리문화와는 조금 달라 성에 대한 개방성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연애를 참 달달하면서도 그녀만의 위트로 재밌게 풀어내면서 끝에는 달달한 반전의 결만을 준다. 아카리가 00파트너와 같은 연하남과 이어지나 했는데 절에 음식여행을 떠나면서 사랑의 작대기는 서로 어긋나 그어지고 그녀만 혼자 남게 된다. 그녀가 한번씩 그렸던 남자와 친구들은 그녀를 빼 놓고 자신들끼리 서로 달달하게 연결이 되어 진행되고 있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외로움을 느낀다. 너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서 아니 틈이 없어서 자신에게 맞는 남자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그녀를 너무 잘 알기도 하지만 그녀 또한 그들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흠이 되어 선택을 못했는데 학원선생은 어쩌면 신선함과 투박함 속에 가려진 순진함이 그녀의 매력을 끌었는지 모른다.

 

연애에도 변수가 있지만 정말 결혼에는 '변수'가 많다. 설마 하던 이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꼭 이뤄질 것 같은 커플은 잘 연결이 안될 때가 있다. 너무 믿어서일까.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옆자리의 남자가 수다파트너로 그녀와 잘 어울릴 듯 했는데 남자는 그녀를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본다.그러다 그녀의 친구와 연결이 되는 것을 보면 그녀가 너무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너모 완벽해 보여 '남자'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데 학원샘은 늘 욕만 듣고 있었는데 그의 강직하면서 숨겨진 내면을 보게 되면서 진정한 짝으로 연결이 되는 것을 보면 결혼의 짝은 따로 있는가 보다. 서른한 살이라고 하면 1985년도에는 노처녀 중에서도 '골드 미스'라고 할 수 있는 나이라 할 수 있을텐데 골드미스라고 해도 어디 하나 꿀리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잘 이끌어 가면서 남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뜻을 똑바로 펴며 휘둘리지 않고 골대를 향하여 열심히 나아가는 당당함이 재밋으면서도 연애소설의 여왕이 그린 이야기라 그런지 노련하다. 와다의 침대가 이제 비로소 짝을 만난 해피엔딩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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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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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단어의 어감만으로도 정말 아름답고 설레는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는 기분이 드는 단어이다. 청혼을 어떻게 했는지 내겐 까마득한 이야기이고 이렇다할 '청혼' 이 있었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요즘은 이벤트로 청혼을 많이 하지만 옆지기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난 안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손해보고 사는 느낌이 들어 두고두고 우려가며 옆지기에 청혼을 왜 안하고 결혼했냐고 묻고 또 묻는다.지금이라도 해보라고.쑥스럽게 웃기만 하는 그, 하지만 <청혼>에 나오는 것처럼 우주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청혼을 어떨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살았던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는 것이기에 '마찰음' 이 있을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마찰음없이 처음부터 서로 잘 어우러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삐그덕 삐그덕 마찰음을 내기 마련이다. 지구의 여자와 우주의 남자가 만난다면,그들은 170여시간을 달려가야만 만날 수 있다. 우주에 가서 만나려고 하면 얼굴은 빵빵하게 부풀어 지구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사랑하고 만나고 싶다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달려가야 한다,빛의 속도로 말이다.

 

저자의 책은 처음이다. <타워>라는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독특하다. 남녀의 사랑이 어쩌면 다른 세계가 서로 도킹하는 것이라 생각을 해서일까? 영원히 깨지지 않을 반지를 우주에서 만들어 여자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다. 그 편지가 제대로 갈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온 마음을 다 담아 그녀에게 보낸다. 그가 하는 싸움이란 우주에서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 상대편을 향한 싸움이다. 성과도 그 무엇도 없지만 그들은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싸움에도 지치듯 그의 고향과 같은 그녀에게 가고 싶다. 그녀가 바로 그의 고향이고 정착지다. 더이상 광활한 우주에서의 허공에 헛발질 하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건 정말 현실감 없는 싸움이었어. 소리라도 들렸으면 좀 달랐을 텐데,우주에는 대기가 없어서 박에서 아무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도 이 안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거든. 아무 예고도 없이, 별 긴장도 느끼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거야.중간과정도 없이 그냥 사라지는 사람들.마지막 변론도 죽음을 정당화하는 과정도 전부 생략된 채 신속하게 진행되는 최후의 즉결심판.

 

궤도연합군에서 작전 장교로 몇 번의 싸움을 거치는 동안 점점 지위가 올라가지만 누구를 향한 싸움인지 의문이 든다. 그녀가 나를 만나러 먼 시간을 날아왔지만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다. 자신은 점점 그녀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 들고 광활한 우주의 끝은 무엇인지 혹은 자신들과 같은 상대를 향한 싸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현실감 없는 싸움에 지쳐간다.  광활한 우주만큼이나 텍스트도 여백이 더 많고 삽입된 일러스트를 보다보면 자꾸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무언지 모르겠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허무하게 빨려 들어간다. 우주라는 공간에서의 허무한 싸움이라 그런가 정말 소설은 소리도 없고 잔해도 없이 그저 사라지거나 영원할것만 같다. 저자를 처음 접한 소설인데 처음엔 뭔가 감이 오지 않는 듯 하다가 읽다보면 자꾸 빠져들것만 같다. 이 소설은 단편을 중편으로 그리고 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단편을 장편으로잘 바꾸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1Q84>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탄생한 소설이라 알고 있다.우리나라는 그런 소설들이 드믄듯 한데 단편에서 중편으로 그리고 장편으로 나왔다니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만큰 우주에 대한 천문학자의 조언을 받아 우주에 대한 것들이 더 보완되었다는데 우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아직 우주라는 공간이 낯설다. 그래도 사랑이 아름답다. 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알고 보니 그 신호는 대부분 우주 저편에서 날온 거였어. 우주 어디에선가는 늘 끊임없이 대폭발이 일어나니까. 그러니까 어떤 건 수백억 년 전부터 날아온 거고, 또 어떤 건 몇십만 년을 날아온 거였겠지. 가시광선영역만 놓고 따지면 우주는 늘 암흑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다른 영역에서는 늘 그런 떠들썩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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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 - 완벽한 아이를 위한 결정적 조건
EBS <퍼펙트 베이비> 제작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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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아니면 둘을 낳는 시대라 그런지 더욱 '완벽한 아이'를 원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하다.나 또한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키우며 은연중에 나타나 가끔은 말다툼으로 혹은 빈축을 사기도 한다.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내 아이가 좀더 '남보다 나은' 것을 원하지 못한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런면에서 '태교'가 중요시 되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먹는 것,듣는 것, 보는 것 모든 것들이 '좋은 것' 만 하려고 노력을 한다.아이에게 나쁘다고 하면 나부터 먹지 않으려 노력했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모든 것을 가려서 했던 기억이 있고 태교를 한다고 늘 음악과 동요나 동화등을 늘 틀어 놓고 있었다.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음악에 좀더 남다른 기질을 보이기도 했고 자신들의 길을 '음악'으로 정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음악이 아니라 '공부'에 길로 가야한다고 한참 부딪히며 서로가 힘들었던 기간이 있다. 그것이 사춘기 때라 더 힘든 시기를 서로 보냈던 기억이 있다.지금이야 '엄마,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하며 피아노나 그외 음악적인 소질을 취미로 보여주긴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신들의 길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다. 머리가 커서일까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던 것은 어쩌면 부모의 욕심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제 자궁 속 나쁜 환경으로 인한 저체중 출산과 비만 및 갖공 성인병 사이에 단단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즉 각종 성인병은 상당 부분 태아가 자궁에서 준비한 것과 실제 맞닥뜨린 세상이 달라서 생긴 문제다.

 

이 책을 아이들을 가지 전, 미혼이나 지금 한창 어린 '베이비'들을 키우는 신참 엄마들이 읽는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우린 딸들이 이십대라 도무이 되기 보다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기억하고 되뇌이며 읽었는데 딸들에게 한번 읽어보라 해야할 듯 하다. 이런 책은 읽어 둔다면 앞으로 교육적으로 좋을 듯 하다. 그들이 또 언젠가는 '엄마'가 될지 모르기에. 엄마의 '자궁' 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아니 한사람의 인생을 놓고 볼 때 어람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파헤쳐 들어갔다 볼 수 있다.이 프로그램을 EBS에서 몇 번 보긴 봤는데 모두가 챙겨보지 않았다. 후천적인 영향도 크겠지만 먼저 '선천적'인 '자궁의 역할'에 대하여 파헤쳐 들어갔다 볼 수 있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먹었던 영양상태 혹은 그 때 자연환경 등이 그사람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저체중아로 낳아 크게 키우는게 좋다는 말이 많이 들리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보면 저체중아들은 그나름 또 먼훗날 가지는 질병이 있다.그런가 하면 과체중아도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중년이 되면 성인병에 난리다.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취미로 등산이나 그외 운동을 하기도 하는데 자궁에서부터 시작된 어쩌면 멀고 먼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1세가 됐을 때는 MRI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태아기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이들이 해마 영역이 보통 아이들보다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는 학습과 감정,그리고 스트레스 조절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아이를 가지면 잘 먹는 물론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인 것처럼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와 멀게 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다 스트레스다. 태아도 엄마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반할까? 물론이다. 여성들은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어쩌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 왔던 모든 삶과 달라지기 때문인기도 하지만 입덧이나 몸의 변화등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산후우울증이 심한 살마도 있다. 나 또한 둘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첫아이는 입덧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둘째는 입덧이 너무 심해 7개월여까지 먹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해주지도 못했다. 병원에 가는 길 또한 고역이라 가다가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던 기억이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스트레스였었는지 둘째는 6개월 때에 유산위기에 놓였지만 끝까지 한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보겠다고 하여 겨우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였을까 둘째는 태어나서도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녀석이다. 스트레스가 성인에게도 좋지 만병을 불러 일으키지만 태아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의 출산 경험을 한 여성들이라면 두번째는 더 잘해 보려고 노력을 한다. '[후성유전학]에 의해 증명되고 있는 태아 프로그래밍은 자칫 여성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임신 중인 여성은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고,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보며 다시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다....' '유전자를 통해 회복탄력성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자궁내에서도 중요하지만 '양육' 또한 중요하다.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 인간,자궁내에서 떨어졌던 것들을 자라나면서 회복할 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 쌍둥이도 환경에 의해 서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떻 교육을 받고 양육되는지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감정조절 능력,공감 능력, 내적 동기 등 교육에 의해 후천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환경이 또한 그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악한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않았는데 요즘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아이들이 감정이 메말라 버려 폭력에 쉽게 물들고 목숨을 경시하는 현상이 잦다. 그로 인한 사건이나 이슈도 많이 듣고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공감의 어원을 따지면 '남의 신발을 신다.' 라는 의미가 있다. 남의 신발을 신으면 기분이 어떠한가.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누구나 바라는대로'완벽한 아이'를 가질수도 없다. 완벽한 아이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자궁' 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임신' 과 '태아'에 더 많은 관심을,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줄 '양육 혁명 보고서'다. 이 프로에서였던가 근육위축증으로 아이들이 모두 고생하는,부모는 정상인 가정의 이야기를 본 듯 하다. 현대의학으로 풀 수 없는 문제인가? 아니 그 부모가 건강한 아이를 원한다면 낳을 수 있고 또 그런 병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본 듯 한데 유전에 관한,정상 염색체를 수정시키면 부모와 아이들이 겪었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본 듯 하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는 분명 '의학'의 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의학적인 힘으로 풀 수 없는 감정조절 능력이나 공감 능력을 위하여 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요즘은 IQ보다 그외 감성적지수나 도덕적지수등 다른 지수들이 더 높이 평가를 받는 시대다. 자궁안에서 스트레스나 저체중아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노력으로 나아질 수 있는 것이고 양육에 세심함을 기울이면 행복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고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달라진다. 아이가 떼를 많이 쓴다거나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태아에게 어떤 자궁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지 혹은 어떤 자궁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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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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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일이 서로 부딪혀 얼이 먹거나 긇힌 자국이 있거나 하면 상품가치로는 질이 떨어져 싸게 팔리거나 상품값을 못하고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헐값에 판다. '파과' 하지만 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가 파과가 된다고 사과가 아닐까? '방역'이라고 자신들 업계에서는 그들을 지칭하는 살인청부업을 하는 조각,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끼' 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특이하다. 살인청부를 하는 60대 노부인은 '조각'이다. 어릴 때 부모곁을 떠나 홀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가족을 갖지 못하고 평생을 '살인'만 하면서 산다.어릴 때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조각과 이제 은퇴를 해야하는 나이가 되어 가면서 자신이 죽였던 이들의 '남은 가족'을 돌아보게 되고 가족을 가지지 못했던 그녀가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지만 서로의 그만큼의 거리에서 다가가지를 않는다. 그런가하면 그녀를 쫒는 '투우'라는 삼십대 남자,투우라는 것은 목표물을 향하여 질주만 하는데 투우라는 젊은 남자 또한 조각을 향하여 '복수의 질주'만 한다.

 

투우가 왜 조각을 쫓게 되었을까? 조각은 왜 살인청부업자가 되어야 했을까? 그녀는 이제 자신이 이 일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몸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않아 평범한 이들의 삶에 흘러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 돈 있는 CEO의 아내로도 그렇다고 여유있게 나이들은 노부인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이들과는 어디가 다른 무언가 섞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고 싶어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유리창 밖에서 쳐다만 볼 뿐 자신의 손에 할 생각을 못한다. 그런 그녀가 투우라는 젊은 살인업자가 쫓게 된다.투우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언제가 조각이 젊은 날에 가정부로 위장을 하고 들어가 죽였던 어느 가장,그 집에서 나올 때 그의 아들인 어린 소년이 그녀의 모습을 보았고 가정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리곤 세월이 흘렀다. 조각은 허리통증도 그렇고 슬슬 자신의 목표물의 남은 가족들이 보이게 되고 그들을 감싸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자신이 살기 위하여 선택하게 된 길이 '살인청부' 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능력을 더부살이를 하다가 알게 되었고 그런 그녀의 끼를 '류' 라는 인물이 보고는 그녀를 그런 쪽에서 키우게 된다. 자신을 지키고 살기 위하여 선택한 길이 남을 죽여야 자신이 사는 일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있어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속에서 날로날로 커나가고 세월이 흘러 가면서 노련함은 어느새 흔들리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누리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든다. 이제 일반인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보다.하지만 자신의 본질이 너무 깊숙히 박혀 빼낼 수가 없다. 사과는 썩어도 사과인 것이다. 살인업자가 세월이 흐른다고 살인업자가 아닐까? 하지만 언젠가는 이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한사람 투우, 그는 왜 자꾸 조각의 곁에서 맴돌고 있는가.

 

조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유기견 '무용' 과도 섞이지 못하고 그만큼의 거리에서 살아가다 어느날 무용이 먼저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죽여야 하는 목표물의 가족에게 향하는 마음,나이차가 있지만 그녀의 마음에 담긴 강의사에 대한 마음은 남다르다.자신의 단점을 덮어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의 단점을 모두 보고 말았다.서로의 아픔을 보고 나니 더이상의 아픔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목표물이 되었다.목표물을 제거해야할까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까.60이 지나서 뒤돌아 보는 조각의 삶,모든 것을 잃은 듯한 삶이다. 상실과 고독 외로움,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온 금전 또한 어디에 남겨 줄 곳이 한 곳도 없지만 자신의 노후를 맡길 곳도 없고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나눌 이도 없다. 정말 허무한 인생이다. 남의 목숨만 빼앗을 줄 알았지 자신의 삶을 챙기지 못한 삶이다. 썩어 문드러진 파과처럼 언제 상품가치가 하락하여 '쓰레기'로 버려질지 모르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투우와 조각은 일직선에서 만나게 된다.그녀의 일을 방해하며 자신의 곁을 맴돌던 투우,왜 그랬을까? 그가 '그 소년이었을까?' 자신이 단기로 가정부 일을 하며 알약을 곱게 쌓아 약을 먹였던 아이, 너 였구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기도 했지만 타인들의 목숨까지 담보로 삼으며 복수를 했어야 할까? 투우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다면 조각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이제 다시 남은 생은 찾고 싶다. 평범한 삶을 누리고 싶다.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만 보던 '네일아트' 도 해보고 싶고 한 팔을 잃었지만 아직 온전한 한 쪽 팔에는 새 삶을 주고 싶다. 류를 만나고 시작된 인생이 류의 죽음으로 인해 멈추어 버린 후 '희망'을 가지지 않았던 삶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을 내것을 삼고 싶다. 인생의 조각을 아직 다 채우지 못했고 찾지 못한 '조각'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육십평생 방역업을 하며 누군가의 삶을 '파과'처럼 만들었고 그 삶으로 인해 자신의 삶 또한 '파과'가 되어 버렸다. 다시 재생시키기엔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남은 삶은 과거와 똑같은 삶으로 살고 싶지 않는 조각,자신의 남은 조각은 어느 틈에 끼워 맞추어서라도 햇빛 찬란한 공간 속에 아름다운 색과 생생한 형태를 가진 네일아트처럼 이제 그녀의 삶은 변할 것이다. 60대 노부인이 살인업자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소설이었다. 소설의 구상이 냉장고에서 어느 날 발견하게 된 '파과' 인 썩은 과일에서 였다니 정말 뜻밖이고 나 또한 냉장고는 클수록 불필요한 존재로 점점 여겨지고 있다. 냉장고에 한번 들어가면 미로에 빠지듯 잊어가고 찾으려면 한참 걸리기도 하지만 냉장고에 들어간 물건을 싫어한닥.그러니 당연히 썩어서 나오는 것들이,상해서 나오는 것들이 많다. 냉장고가 썩지 않게 보관해줘서 좋은 것이 아니라 냉장고는 점점 '썩은 것들의 집합장소' 로 바뀌어가고 현대인들은 다람쥐도 아닌데 쟁여놓게 한다. 욕심을 더 불러 일으킨다. 냉장고가 없다면 많은 김치를 담지 않을 것이며 음식도 조금씩 먹을 것만 해서 먹을텐데 냉장고로 인해 모두 쟁여놓게 되고 그 안에 들어가면 온전하게 보전이 되리라 믿게 된다.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파과가 되기 전,사과가 사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먹어줘야 하고 사람 또한 본질을 잃어버리기 전에 사람으로의 삶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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