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브
알렉스 모렐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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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조난 영화로 '클리프 행어' 나 'K2' '버티칼 리미트' 등을 보았다.물론 이와 유사한 내용의 영화들도 있다.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 시험하듯 주어진 공간과 시간이 험한 겨울 산에 비행기가 추락하고 그곳에서 살아 남는 극한의 사람들,그리고 그들을 혹독하게 하는 추위와 먹거리 그리고 아픔 등과 싸우며 타인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극한과 싸우는,진정한 인간승리로 거듭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사고 또한 위험하지만 산악사고 또한 정말 위험한데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비행기추락이라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산과 싸워 이겨야 하고 거친 자연과 싸워 이겨내야만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다. 나 또한 한번의 큰 산행사고를 겪었다. 사고란 아차하는 순간에 일어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고가 날 곳이 아니었지만 사고는 그렇게 나고 말았다. 사고가 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서 벗어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겪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을 고통과 싸워야했고 지금은 영광의 상처도 남아 있다. 그런가하면 교훈을 하나 얻기도 했다. 동네 뒷산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다니라는 것,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뜻하지 않은 비행기추락사고 뿐만이 아니라 가족간의 소통이 되지 않던 이들이 위기를 순간을 이겨내며 소통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따뜻함을 담고 있어 한번 손에서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든다.비슷한 류의 영화나 소설들이 있지만 말이다. 제인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자살을 겪어야 했고 가족들이 자살,죽음을 겪으며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죽음'이 몸에 베이기라도 하듯 그녀도 자살기도를 한다. 꼭 뭉크의 '절규'그림을 보는 듯한 초반 부분의 느낌, 타인의 죽음이 자신에게 옮겨 오기라도 하듯 그녀는 요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비행기 안에서 멋지게 자살에 성공할 만반의 계획을 세운다. 모두를 감촉깥이 속였다고 생각하며 비행기 오르지만 옆에 앉은 폴이라는 소년도 맘에 들지 않고 군데 군데 앉은 사람들 또한 그녀에겐 맘에 들지 않는다. 뭐 상관없다 얼마의 시간 후에는 아빠를 만나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옆에 앉은 손이 거친 폴이란 소년의 의미심장한 말, 폭풍이 오고 있고 난기류를 피해 비행기는 급출발에 약간을 노선을 벗어난듯한 운행을 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녀는 화장실에서 멋지게 '자살'을 할 것이기에 모든 것은 상관없다. 약을 챙겨 화장실로 향하면 곧바로 이젠 어둠의 시간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약을 털어 넣으려는 순간,비행기가 무엇엔가 부딪힌듯한 소리가 나기도 하고 사람들의 비명소리,무슨 일인가 일어났다.그녀 또한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고 기절을 했다. 화장실 안에서. 그러다 깨어났지만 이것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명 죽음의 세계는 아닌 듯 하고 뜻하지 않게 비행기가 추락을 한 것,그것도 옆자리의 제수없는 폴이란 소년과 말이다. 그녀가 아빠의 죽음에 대한 강박증에 갇혀 있듯 소년 또한 엄마와 형의 죽음 때문에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그런 소년과 소녀가 서로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로키산맥에서 말이다. 눈 덮인 그곳에서 극한의 먹을 것과 옷가지 침낭을 챙겨 거친 자연속으로 몸을 던지지만 곳곳엔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 뿐이다. 이 산에서 살아서 내려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다행히 폴이란 소년이 거친 삶을 살아와서인지 길을 잘 인도하니 죽으려고 맘을 먹었던 제인 또한 살고자 하는 힘이 생긴다. 둘은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소통하고 삶기 위하여 사투를 벌인다.거친 자연 속에서.

 

다른 듯 하면서도 너무도 닮아 있는 두 소년과 소녀, 그들은 짐처럼 여겨졌던 과거의 시간을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고 치유해 나가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을 한다. 죽기 위해 자신의 팔을 긋던 제인은 살기 위해 토끼를 잡기도 하고 거친 자연 속에 혼자 길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둘을 살여 둘 순 없었던 것일까? 잠싼의 실수로 폴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혼자서 삶의 길을 헤쳐 산을 내려와야 했던 제인, 어제의 제인이 아닌 이젠 야생녀가 다 된것처럼 거친 자연 속에서도 거뜬하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자연에 적응해 가면서 점점 단단해져 간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한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빨리 누군가를 만나야 폴을 살려 낼 수 있는데 폴이 살아 남을 가능성은 너무 희박했다. 그녀 또한 삶의 희망을 보기는 너무도 거친 자연, 그 속에 한줄기 빛은 있어 다행히 살아 남지만 폴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제인,그녀가 비행기 추락사고 후에 폴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우정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고 희망을 나누고 소통을 했던 폴이 있어 주었기에 그녀 또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그러고보면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 남기 어려운 곳이기도 한 듯 하다. 누군가와 부딪혀가며 배우고 부대끼고 그런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자살'의 반대로 하면 '살자'라는 말이 된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자살을 품었던 제인이 살아야 한다는 삶의 끈을 놓치 않게 된 것 또한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폴을 봄으로 하여 더욱 살아야 한다는 강한 희망을 품게 되는 '서바이브',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야 하고 산 자의 것이다. 죽음을 꿈꾸었던 그녀에게 비행기추락사고와 폴과의 시간은 분명 너무도 혹된 시련의 시간이지만 그것으로 과거와 소통하고 희망찬 미래와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참 다행한 일이다. 온실속에 갇혀 있기 보다는 거친 자연에 내 몰렸기에 더욱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짐하게 되었겠지만 그녀 안에 폴의 죽음을 그러 안고 살아야 한다니 또 씁쓸하다. 하지만 살아 남았기에 세상은 그녀의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암흑이었다면 분명 살아 남은 후의 삶은 '감사'로 바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살아서 다시 숨쉬게 된 시간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고 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덤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바이브는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하는 것 같다. 비록 지금 거친 자연 속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희망을 만날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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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푸른숲 어린이 문학 28
임정진 지음, 이윤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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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산과 사찰 중에는 안성의 서운산에 있는 청룡사가 있다. 작은 사찰이지만 안정적이면서 뒤와 앞으로 펼쳐지는 아담한 서운산과 함께 청룡저수지가 참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는 곳이다. 이곳을 가는 길 입구에는 '바우덕이묘'로 가는 이정표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늘 마음만은 그곳을 들러 청룡사로 향한 기분이 든다.왜일까? 안성은 '바우덕이' 뿐만이 아니라 문화 아이콘이 참 많기도 하고 잘 활용되어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거듭난 곳이라 볼거리로 많고 체험할 것도 많은 곳이다. 그중에서 어름사니가 펼치는 '줄타기'는 세계 어느 곳의 줄타기 보다도 더욱 돋보이며 '왕의 남자'로 인해 우리에게 더 각인된 문화 이기도 하다.

 

금녀의 무대인 '남사당패' 그곳에서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었던 인물인 '바우덕이','바우덕이가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바우덕이가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바우덕이가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그녀를 이르는 수식어에는 '돈' 이 함께 한다. 다른 남사당패와는 구별이 가기도 했지만 아릿따운 여자가 줄타기및 노래 장구 모든 것을 아우르며 잘했으니 놀음판에서 이보다 더 인기있는 남사당패가 있었을까? 거기에 안성 청룡사라는 곳은 위로는 경기와 아래로는 충청 전라를 향할 수 있는 교통의 중심과 같은 곳에 있었으니 어디로든 그들의 활로를 뻗어 나갈 수 있는 잇점이 있었으며 다른 남사당패와 다르게 '바우덕이'라는 '치마만 들춰도 돈 나온다'라는 인물이 꼭두쇠를 하고 있었으니 왜 안그렇겠는가. 그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좋으련만 개똥이 쇠똥이처럼 남들이 괄시하고 평범한 민초의 삶이었으니 기록이 아닌 구전에 의한 것에 의지하니 작가들의 창작열에 따라 그녀의 재주는 더 빛나게 보일듯도 한데 이 책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하여 남사당패로 들어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사실감 있고 재밌게 표현해 놓았다. 거기에 난 '청룡사'라는 절을 잘 알고 있으니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읽을 수 있어 재밌게 읽었다.

 

 

바우덕이,그녀의 몸에 베인 재주를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아닌것인가 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집 나간 어머니가 그리 표현된 것은 아닐까? 어린 나이에 병든 아버지를 남겨 놓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그런 가운데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가고 그런 아버지의 친구였던 곰뱅이쇠 아저씨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돌봐 주시고 바우덕이까지 거두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곰뱅이쇠 아저씨를 따라 남사당패가 머무르고 있는 청룡사 요사채에 와서 눈치밥을 먹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보는 대로 자신의 재능으로 갈고 닦아 다부진 아이로 거듭나는 바우덕이,금녀의 공간인 남사당패에 바우덕이를 둔 다는 것은 화근이 될지 모른다고 모두들 한소리씩 했지만 그녀는 그녀나름의 뿌리를 그곳에 내리고 있었던 것,공양 보살마져 그녀에게 살갑게 대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어머니처럼 혹은 할머니처럼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만 인생이란 기다려주지 않는 것,그녀가 놀이판을 다녀 온 후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녀를 위해 옷 한벌 이쁘게 갈무리 해 놓고 가실 정도로 정을 주게 만드는 아이였던 것.

 

그녀를 품어 준 것은 남사당패 뿐만이 아니라 청룡사 공양 보살 뿐만이 아니라 주지 스님 또한 그녀의 인생에 큰 힘이 되어 준다. 자연목을 이용하여 그대로 청룡사 대웅전 기둥이 된 나무를 보며 주지 스님은 그녀에게 교훈과 같은 말씀을 해 주신다. '아가, 이 기둥들은 울퉁불퉁해도 부처님을 든든히 모시는 집을 세우고 있지 않니? 매끈해야만 기둥 노릇을 하는 건 아니란다.말을 거칠게 한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듯이 말이다.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이 기둥을 세울 때 말이다. 이 나무가 따에서 살 적에 뿌리 쪽이었던 부분을 반드시 아래로 해서 세운단다.' 그녀의 인생 또한 매끄러운 나무가 아니듯이 울퉁불퉁하다. 그렇다고 부처님을 모시는 기둥이 되지 못할 것도 없는 대웅전의 기둥들처럼 그녀 인생 또한 잘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꼭 대단한 부모님과 배경을 타고 나야 잘 되는 법은 없다.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재주를 갈고 닦는다면 그녀 또한 훌륭한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꼭 그것이 남자만 된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고 여자가 안된다면 그녀가 한번 해보는 것이다,청룡사 대웅전의 울퉁불퉁한 기둥처럼 말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듯 그녀가 습득해간 노래나 재주들은 어쩌면 그녀가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 이었는지 모른다. 누구보다 더 몸으로 가난과 부모의 품을 그리워 하고 없이 살아 보았기 때문에 배 곯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재주를 배워서 놀이판에서 그녀의 몫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면 다시 엄마가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도 익히도 장구도 익히고 줄타기도 하지 않았을까. 피 나는 노력없이 '바우덕이 치마만 들춰도 돈 나온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녀를 냉대하던 사람들도 그녀가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꼭두쇠로 인정해주는가 하면 그녀의 그늘에서 등 따시고 배 곯지 않는 그런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그런가하면 궁궐에서도 기별이 왔다. '경복궁에 와서 연희판을 펼치어라.' 라는 감치 광대가 궁궐을 출입한다 것,그것도 대원군이 그녀에게 '참으로 귀한 재주로다. 저 어름사니에게 옥관자를 내려 그 공을 모두가 높이 여기게 하여라.' 라고 하여 당상관 정3품에게 내리는 옥관자를 내렸다니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폭풍에 휩쓸리게 만들어 젊은 나이게 어느 골에 묻혔는지도 모르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청룡리 어딘가에서 그녀의 혼백은 지금도 노래를 부르고 줄타기를 하며 놀이판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고관대작이 나라의 큰 일을 위해 제 목숨을 걸고 줄 위에 올라 저리 뛰겠느냐.' 바우덕이 한 많은 인생은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고 대원군이 내리는 옥관자까지 받게 된 어름사니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삶은 어미에게 버려지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남겨진 어린 바우덕이의 가난하고 불행한 삶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녀 스스로 개척해 나가듯 금녀의 무대인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거듭나기까지 고난의 삶이었으리라.

 

 

청룡사 일주문을 드나들며 놀이판을 떠나고 보살들과 함게 어울려 놀이판이 없는 기간에는 눈치밥을 먹지 않기 위하여 어린 고사리손으로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했을 바우덕이,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나 또한 그녀의 시간과 만나본다. 돌계단을 오르고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며 그녀는 무슨 다짐을 하며 청룡사 대웅전과 마주했을까? 집 나간 어미를 찾게 해달라고 했을까? 자신의 미천한 재주로 모두가 신명나는 삶을 다시 재충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까?  청룡사 일주문을 다시 들어서면 이젠 그녀의 장구소리가 '덩기덕 쿵더러러러' 하고 맞이할 듯 하기도 하고 서운산을 울리는 쟁쟁쟁 노래소리가 울릴것만 같다. '육칠 월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찍 들고/ 수수땅잎 뚝 제쳐 머리를 질끈 동이고/ 검은 암소 고삐를 툭 제쳐/ 이랴 어디야 낄낄 소 몰아 가는/ 노랑 대가리 더벅머리 아희 놈/ 게 좀 섰거라 말 물어보자/' 바우덕이 그녀는 조선시대 그녀 스스로 '유리천정' 을 깨고 그 위에 올라서지 않았을까.그녀를 오늘날까지 있게 한 것은 모두 그녀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노력없이 얻는 것은 없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흔들린다.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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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새싹 인물전 51
이은정 지음, 김혜리 그림 / 비룡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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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만든 우리글 훈민정음은 정말 뛰어난 글자야! 스물여덟 자만 알면 어떤 말도 다 쓸 수 있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한자만 치켜세우고 우리글은 돌보지 않았어. 우리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아름다운지 아무도 눈여겨본 사람이 없었던거야.나는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어. 한글이란 이름도 내가 지어 준 거야! 우리글에는 역시 우리말 이름이지!' 한때는 우리말 이름을 짖는 것이 유행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왠지 모르게 한자 이름을 지어야만 할것 같은,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쓰게 되는 이름 칸에 늘 '한자이름' 이 있으니 한자가 있어야 제대로 된 이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말로 이름을 지으면 나이가 들어서 이상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드는데 우리말 이름은 한자보다 더 이쁘고 값진 이름들도 많은데 왜 그럴까.

 

주시경은 서당 훈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한문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던차에 서울에서 살고 있는 큰아버지가 병으로 자식을 모두 잃게 되고 둘째인 그를 데려다 키우게 되면서 열다섯,그는 한글 공부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글이 있으면서 왜 한문공부를 해야할까? 한문으로는 제대로 우리말을 다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어렵게 꼭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글에 더 열심이었던 그는 배재학당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우게 되면서 더욱 우리말 우리글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한자로는 제대로 우리말을 표현못한다면 우리글로 표현하는 우리말 우리글은 어떨까 하며 실생활에 맞는 우리글 우리말 작업을 하기도 하며 서재필과 함께 우리글로 <독립신문>을  펴 내는 일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리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는 서울 시내 학교를 돌며 국어 강습에 나섰고 누구보다 열심히 보따리 보따리 국어에 대한 열정이 넘쳤났던 분이다. 그런 그가 원대한 꿈을 품었지만 건강이 꿈을 좇아 가기엔 멀었는가보다. 하지만 그가 이룬 일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아이들의 눈높이게 맞게 재밌는 동화형식으로 쓰여진 '새싹 인물전편' 주시경은 인물이해에 도움이 되는 동화형식의 이야기와 함께 사진으로 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편이 있어 쉽고 재밌게 인물에 다가갈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글 우리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어느 언어보다 과학적이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언어가 없는 민족들이 한글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가하면 글씨의 독특함 때문에 여러 곳에 응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래어와 함께 우리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신조어들도 많이 등장하고 한글파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언어들이 나오기도 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우리말이 사라져 가고 있는 듯도 하여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재밌고 유익하게 읽으며 인터넷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좀더 한글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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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섬 티오 - 제41회 소학관 문학상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6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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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오가 사는 남쪽 섬은 태초의 신비도 간직하고 있으면서 문명의 이기로 발전해 가고 있는 단계의 위치에 놓인 섬인 듯 하다. 그곳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는 아빠를 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거들고 있는 티오, 호텔을 찾아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나 혹은 섬의 역사와 관계한 이야기들이 현실적인 면도 있으면서 때론 신비한 마법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읽는 동안 티오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힘든 수술이 끝나고 퇴원을 했다가 또 한번의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다시 재입원을 하고 겨우 몸을 추수린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되어서일가 더욱 신비롭고 몽한 상태로 재밌게 읽었다. 내 힘든 시간에 함께 해준 책이기도 하여 고맙기도 하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 '섬'에 대한 동경이나 섬여행을 꿈꾸기도 한다.우리도 섬여행을 계획하며 몇 번의 가족여행으로 섬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육지인들에게 섬은 너무 심심하고 작고 볼것 없고 그저 조용하고 문명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긴시간을 있는 다는 것은 시간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섬처럼 풍부하고 풍서한 곳은 없으리라. 섬을 떠나고 싶냐는 질문에 모두들 이 좋은 곳을 왜 떠나느냐는 대답을 듣곤 하는데 그것이 육지인과 다른 것일 것이다. 육지인 들이야 차로 한바퀴 휘 돌면 하루면 끝날 곳이 그들에게는 온 천지가 그들의 역사요 세상인 것이다. 그런 곳에 문명의 이기들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고 그렇다고 하여 태초의 신비마져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 간직할 것은 간직하고 간직될 것은 그들의 가슴 안에 간직되어 면밀히 이어져 오고 있는 섬 이야기,그곳에 '티오'가 있어 더 행복한 이야기들이 들려 온다.

 

그림엽서를 팔러 온 핍,그가 그림엽서에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호텔을 찾고 무이산을 찾는 여행객들은 분명 늘어났다. 그림엽서를 받은 사람들은 그림엽서에 있는 무이산과 꽃을 보기 위하여 아니 언젠부언지 모르게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처럼 마법처럼 섬을 찾게 되고 더 많은 엽서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그의 생사가 불분명 하다는 것,어쩌면 더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에 위해 섬이 알려진다면 섬은 섬으로의 기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진정 섬의 아끼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이 이곳을 찾아 오길 바라는 마음이 그림엽서에는 담겨 있지 않았을까.

 

티오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태초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받아 들일줄도 안다. 반씨는 자신이 제일 좋은 고등 소라를 찾았지만 그 값진 것을 혼자서 행운을 누리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누리도로고 사거리에 묻어 놓았다가 도로가 포장이 되면서 그것을 꺼내게 된다. 왜 누가 도로에 구멍을 내었을까? 하고 숨어서 지켜보던 사람들에 눈에 들어온 반씨,그는 값비싼 고등 소라를 팔아서 섬아이들이 마음 놓고 야구를 할 수 있게 야구장비를 마련해 준다. 그리곤 그 순수한 마음이 들키지 않게 돌아서 버린다.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그런가 하면 자신의 아이도 아닌데 아코짱을 살려 내기 위하여 티오와 요란다는 카마이 할머니를 만나 그들이 대적하여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만나지만 그들의 믿음은 아코짱을 살려 낸다. 카마이 할머니는 가끔 그렇게 이야기의 여러 부분에 등장하여 더욱 신비한 존재로 섬의 역사를 더해주는가 하면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주관이라도 하는 우주적 존재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태풍으로 이웃 섬이지만 티오가 사는 섬으로 와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살아가게 된 에밀리오와 친구들,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편히 살 수 있으니 대부분은 태풍으로 피폐해진 자신의 섬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살아 간다.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 가고 있는데 에밀리오는 가슴에 품은 자신의 섬을 잊을 수가 없고 자신이 자연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아이가 된 에밀리오,그는 티오에게 무척이나 큰 자취를 남기고 자신의 섬으로 자신이 만든 카누를 타고 떠난다. 자연은 자연으로 지켜질 때 그 값어치가 빛나는 듯 하다. 비록 티오가 사는 섬은 태초의 신비도 간직하고 있지만 분명 문명의 이기로 발전해 가고 있다.문명이 섬을 어느 정도 혼탁하게 할 수 있지만 아직 자연이란 자연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도 한사람 한사람 모두 신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곳이 티오가 사는 섬이기도 하다. 오래전 신비한 이야기와 신화가 살아 숨쉬면서 현대인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살아 있는 전설이 될 수 있는 섬이 남쪽섬 티오가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더욱 한정된 자연으로 문명으로 존재하고 지켜지질 그림엽서를 그리는 핍씨는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의 이기들이 들어선다 해도 섬이 간직한 고유의 것을 지켜 나가고 기억해 나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티오'와 '남쪽섬'을 존재하게 한 것은 아닐까.

 

종종 뉴스를 통해 섬의 슬픈 현실에 대하여 듣게 되는 곳들도 있다. 돈을 좇고 문명을 좇다가 섬이 위기에 몰리고 존재위기에 몰린 섬들은 비단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천연자원이 넉넉하다고 무턱대고 캐내고 팔다가 섬이 황폐해져서 더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섬이 되기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태고적 신비를 잃고 문명의 이기들로 가득한 섬이 된 곳도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섬 또한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간직하고 지켜나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비단 자연을 지키고 존재하게 하기 위하여 섬주민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할 일임을 말해주기도 하는 듯 하다. 점점 우리 환경은 파괴되어 가는 곳이 많은데 이런 곳이라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길 바란다. 그곳에 어린 듯 하면서도 어른스러운 티오가 있어 더욱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인간미 있는 남쪽섬이면서 누구나 한번쯤 언젠가는 꼭 한번은 가고 싶은 동경의 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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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 채소, 인류 최대의 스캔들
리베카 룹 지음, 박유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요즘은 건강을 위하여 일부러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건강에 정말 좋은 컬러플 채소인 어느 것이 좋다고 하면 한때는 품귀현상을 빚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채소는 우리 밥상에서 그 중요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육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고 외식문화가 점차 발달하면서 쉽게 고기를 접할 수 있어 성인병의 노출이 더욱 심해지고 있기도 하고 채소보다는 육식을 더 즐기는 식문화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내가 늘 먹는 채소가 어떤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여 내 밥상에 올라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것이다.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따지기 보다는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는 어느 정도 선을 그으며 찾기도 하는 부분은 있지만 채소의 과거를 캔다고 하면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한때 만화 '뽀빠이'가 먹으면 힘이 나는 채소인 시금치에 철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여 철분섭취에 제일 좋은 채소로 알려졌던 시금치의 철분함량이 잘못된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백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것을 다른 글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점 하나를 잘못 찍어 비롯된 사실이 백년동안 우리를 세뇌시킨 시금치의 역사에서도 보듯이 다른 채소들 또한 분명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채소가 다름아닌 늘 식탁에서 접할 수 있는 오이,샐러리,고추,양파,양배추,당근,콩,옥수수,가지,상추,완두콩,감자,호박,시금치,토마토 그리고 요즘서 좀더 흔하게 접하게 된 비트,아스파라거스,멜론,래디시,순무 등이다.

 

다른 어떤 채소보다도 우리 한민족에겐 '고추'는 없어서는 안될 채소이기도 하다. 김치에 고추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고추장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가하면 당근,양파,양배추,콩 등은 늘 접해야 하는 기본적인 채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들에 숨은 역사를 캐는것 또한 재밌다. 나 또한 베란다의 협소한 곳이지만 화분에 고추며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심어 먹기도 하는데 수확의 기쁨 보다는 키우는 재미에 더 키우기도 하는데 간혹 못난것이나만 하나 둘 열린 것을 수확하여 음식의 재료로 쓸 때는 기분이 정말 남다르다. 하지만 위의 채소들이 그렇게 모두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정원에 심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생김새가 이상하다 하여 '최음제'로 쓰이기도 하고 먹고 난 후에 냄새가 난다고 괄시를 받는가 하면 조리후에 색상의 변화로 인해 냉대를 받기도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했던 것들도 있다는 것도 있는가 하면 '야생 생태에서 고추 종자는 보통 새들이 퍼뜨린다. 그런 까닭에 야생 고추는 대체로 열매가 화려한 색을 띠며 의기양양하게 곧추 서 있다. 모든 식물에 바른 자세로 붙어 있는 그 열매는 새들의 관심을 더 잘 끌기 위해 잎들 밖으로 도발적이게 솟아올라 있다. 고추 종자는 조류의 소화관을 무사히 통과한 후 새드르이 배설물로 널리 흩어진다.' 그런 고추가 인간만은 결코 막아내지 못하고 있으니.우린 매운 것을 먹으면 더 강한 것을 원한다. 고추에 캡사이신이 왜 들어 있을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진화가 인간에게 더욱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고추의 캡사이신은 음식이 뿐만이 아니라 그외 다용도로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려 주기도 한다.

 

'아스파라거스는 비아그라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울혈성 심부번에서 신장 결석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병의 특효약으로도 권장되었다.' 하지만 아스파라거스는 의학적으로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한다.하지만 그 생김새로 인해 최음제로 쓰이기도 하고 '퐁파두르 부인'은 그만의 아스파라거스 요리가 있었는가 보다. '퐁파두르식 아스파라거스' 라는 레시피까지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아스파라거스 애호가가 아니었을까. 비록 최음제로 알고 먹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가하면 피타고라스는 빈(콩)을 멀리 했다고 한다. 지중해 혈통 사람들에게는 '잠두 중독증'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빈을 멀리 하며 자신의 운명을 고치려 했던 피타고라스는 끝내 '콩밭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유일한 탈출 방법을 거부하는 바람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그의 인생에서 콩이란 땔래야 땔 수 없었던 채소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콩은 육식으로 인한 현대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육식을 대신할 수 있는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할 수 있는 영양 최고의 채소라고 할 수 있고 여성들에게는 특히나 좋은 채소이기도 한데 콩의 역사 또한 재밌게 읽어 가다보면 밥상에 오르는 '콩 한 알'이라도 정성껏 먹어야 한다는 것.

 

양배추는 다른 채소들보다는 그 쓰임도 많고 섬유질도 풍부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다 좀더 챙겨 먹어야 하는 채소이기도 하다.그런 양배추가 한때는 '괴혈병' 특효약으로 배에 싣고 다니기도 하고 ' 중국의 만리장성을 지은 노역자들은 쌀과 양배추 포도주 절임을 먹었다. 수 세기 후 칭기즈 칸의 군대는 소금을 가미한 휴대용 양배추를 동유럽 침략 때 가지고 다녔다.' 괴혈병 특효약으로 혹은 노역자들이 군대식량으로 자리한 양배추에서 파생된 브로컬리나 콜리플라워등은 지금도 건강 채소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채소의 과거와 현재를 오르내리다보면 과거에는 그리 관심을 받지 못하던 채소가 지금은 건강 채소로 우리 식탁에 깊게 자리를 잡고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채소의 생김새를 보고 먹기 보다는 채소가 가지고 있는 영양소와 우리 몸에 유용한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지가 더 중요한 듯 하다.머리말에서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백작 부인은 1890년대에 독일의 자기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며 이렇게 썼다. '우아하기는커녕 사람을 덥게 만다는 일이다.하지만 복된 일이다. 하와가 삽을 가지고 있었고 그 쓰임새를 알았더라면 사과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채소가 아무리 영양이 풍부하다고 해도 그 가치를 모르고 쓰임을 모른다면 절대 가치가 없는 채소로 군락하여 도퇴할 수도 있다. 그 재밌는 과거사와 함께 하며 좀더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균형을 이루고 채소를 먹는 사람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채소를 키우는 사람'으르도 거듭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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