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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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시리즈' 인 <잠자는 숲>을 읽고는 가가형사시리즈 책을 몇 권 구매를 했다. 그중에 <둘 중에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먼저 읽어 보기로 하고는 잡게 된 책이다. <잠자는 숲>은 가가형사의 로맨스가 담긴 책이라 조금 색달랐다면 이 책은 좀더 가가형사의 멋지고 냉철한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면 했는데 기대만큼의 활약을 못한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는 가가형사의 활약보다는 자신의 '트릭' 을 좀더 독자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교통지도계경찰 야스마사는 부모님 두분이 모두 돌아가셔서 소노코와 둘만이 남겨 지게 되었다. 누구보다 누이동생인 소노코에게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만큼 둘의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사는 곳이 달라서 마음만 각별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녀에게서 뜻하지 않은 전화가 온 것이다. '내일 나고야에 내려가도 될까?... 사실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어...내가 죽으면...아마 가장 좋을 거 같아.' 다른 때하고는 느낌이 정말 다른 싸한 누이동생의 전화에 야스마사는 일을 마치고 그녀에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그렇게 계속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그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집문은 굳게 닫혀 있고 전화도 받지 않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자신의 키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그가 그동안 많이 받아온 현장에서의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누이동생은 그녀의 침대 위에서 잠자는 듯 죽어 있다.그것도 '자살' 인 듯 오래전 그녀가 고등학교 대 친구가 자살을 한 방식으로 말이다.

 

경찰의 감각으로 사건현장보전도 하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취하며 범인을 찾아낼 '증거'를 찾아 낸다. 아니 그는 소노코가 자살이 아닌 타살,그러니까 자신은 살인사건과 마주한 것이다. 그것이 누이동생이라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사건현장의 증거사진도 찍어 두고 하나하나 주도면밀하게 사건을 파헤쳐 보려고 하지만 그동안 그녀에게서는 자살할만한 어떤 '느낌' 도 받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증거를 획득한 후에 경찰을 부른 야스마사, 그는 정말 누이의 죽음이 원인을 알 수가 없다. 분명 남자관계가 있을 것이라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의 손에 들려쥐게 된 두개의 전화번화를 추적해 나가는 그앞에 가가형사가 등장해 주신다. 하지만 가가형사를 믿지 못하는 야스마사는 그와는 다른 방향에서 범인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좁혀 나간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소노코의 죽음은 삶을 비관한 '자살' 일까? 하지만 자살에 대한 유서도 없지만 딱히 '자살이유'로 들 수 있는 것들이 없다. 그렇다면 자살을 빙자한 '타살'일까? 정말 알수가 없다. 왜 그것도 오래전 고등학교 친구가 자살한 방식 그대로 죽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친구관계도 좁은 그녀가 그 이야기를 했을,아니 그 자살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관여했을 것이다. 누굴까? 그렇게 좁혀 가며 드러나는 진실, 역시나 애정관계가 아니 치정에 얽힌 사건이라 봐야한다는 것일까. 그녀와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가요코 그리고 한남자 '준이치' 삼각관계가 빚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살인사건일까. 그렇다면 둘 중에 누가 소노코를 죽였다는 말인가? 준이치일까 가요코일까?

 

알리바이트릭을 밝혀라.

거리에서 그림을 팔던 인물인 준이치,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그 배경에 끌렸던 가요코, 그 둘의 배신으로 방황하고 삶을 비관해야 했던 소노코가 설자리는 없었던 것일까.한때는 연인이었던 준이치와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인 가요코, 그 둘은 소노코에게 어떤 짓을 한것일까. 아니 그들의 '거짓과 진실' 은 무엇일까? 게이고는 이 책에서 '알라바이트릭'이란 말을 한다. 준이치는 그야말로 '알리바이트릭'을 준비한것처럼 딱 들어맞는 '알리바이'가 있었던 것이다.그의 알라바이트릭을 밝히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야스마사, 그렇다면 우리의 가가형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는 야스마사가 누이의 죽음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게 한다. 소노코의 죽음으로 그가 어떤 마음일지는 알지만 그것이 똑같은 복수를 낳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의 활약을 어쩌면 소노코의 오빠인 야스마사가 반은 대신을 해준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진실과 거짓'은 무엇일까.

 

준이치와 가요코의 '진실과 거짓'을 밝혀라.

중간정도까지는 누굴까? 아니 왜 죽여야 했을까. 정말 자살일까 아님 타살일까. 자꾸 망설이게 만든다. 아니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자살로 마무리 되는 것을 아닐까 하게 만든다. 그런데 결만 부분에 이르러서는 호랑이 굴안에 둘을 잡아 넣듯 하고는 둘에게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게임에 이르른다. 아니 소노코가 타살되던 그대로 그들을 몰아 넣고 '진실'을 받아 낸다. 그런 과정에서 준이치와 가요코가 범인이라는 저울질이 자꾸만 왔다갔다 하며 마지막 그순간까지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자를 위한 깨알같은 재미일까? 범인은 나와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구다' 하고 지목을 하지 않으니 괜히 읽고 나도 찝찝한 감정을 감출 수 없게 하지만 정말 마지막 그 순간까지 아슬아슬 살얼판을 걷듯 '누굴까?' 로 독자가 함게 풀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기발함이 재밌다.

 

그런가 하면 게이고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책 속에 살짝 써놓았다. ' 현실에서는 소설 같은 범죄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사건은 일상다반사지만, 시각표 트릭도 없고 밀실도 없고 다잉 메시지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사건 현장은 무슨 외딴섬도 아니고 환상적인 별장도 아니다. 그저 생활의 구차함이 느껴지는 싸구려 아파트나 늘 다니는 길거리인 겨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형사는 아직 젊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좀 더 추하고 비겁하고, 그리고 약하다.' 인간이 얼마나 추한 존재인지,아니 살인사건의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지 적고 있다.진실과 거짓에 둘러 싸여 자신의 '진실' 마져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 겉모습으로는 그 속마음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없음을 어쩌면 이 살인사건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래서 추리소설은 자꾸만 빠져드나보다. 아니 좀더 가가의 멋진 모습을 고대하며 또 다음책을 읽어야할것만 같다.그 책에서는 인간의 또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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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누들로드 - 국수따라 방방곡곡
김미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1년 12월
품절


국수여행이라고 해야하나, 국수따라 맛따라 정말 대한민국 방방곡곡 골목길을 누비고 소문속 손맛 입맛을 찾아 대한민국 누들로드가 나왔다. 왜 난 책 표지만 보고 바로 주무을 했던 것인지. 내게도 '국수' 에 담긴 추억이 너무도 많기 때문일까? 음식은 추억과 기억을 따라 먹는 듯 하다. 물론 손맛 입맛이 곁들어지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어릴적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의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오래전 그 맛을 찾아 떠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국수는 오래전에는 주린배를 배부르게 채울 수 있는 한그릇 풍성한 음식이었다면 지금은 그 옛 맛을 찾아 추억을 먹고 그 깊은 맛으로 마음이 풍요로운 음식이 되었다고 할까.


추억속의 국수

내 기억속에 엄마가 해주시던 '국수' 에 얽힌 추억들이 너무도 많다. 들일을 하시고 늦게 들어와 제비새끼들처럼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종일 배곯던 우리들에게 엄마는 가마솥에다 뚝딱 뚝딱 도깨비방망이라도 휘두른 것처럼 맛있는 잔치국수를 해 내시기도 했고 울타리에 있는 애호박을 따서 들기름에 들들 볶아 고명으로 얹어 주는 국수를 하기도 했다. 싫어도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고 그것이 주식이듯 했으니 다른 선택이 없었다. 싫건 좋건 먹었던 그 맛을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비 오는 날이면 오빠들과 함께 채와 어망을 들고 논과 개울로 다니며 미끄라지며 고기를 잡아 오면 역시나 엄마는 가마솥에다 한소끔 끓여낸 물고기를 가지고 어죽을 가마솥 한가득 끓여 동네 어른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릇이 모자라 아무 그릇이나 바가지에도 퍼 담아 먹으면서도 뜨거워 호호 불며 식혀 먹던 그 어죽 속에는 손으로 직접 밀거나 국수공장에서 사온 '옛날국수'를 넣어서 어죽맛이 더욱 일품이며 양도 많아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젠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추억속에나 맛있는 음식이지 맛있다고 하는 맛집을 찾아가도 예전 그 맛이 아니다. 왜 그럴까? 가난하고 없던 시절에 먹던 그 음식들은 무엇이 다르기에 지금의 음식맛과 다를까? 추억 때문일까.


나 또한 국수를 많이 해 먹는다. 남편이 '비빔국수'를 좋아해서 우리집은 다른집보다 국수를 많이 하니 고추장이며 양념을 많이 먹는다. 친정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무엇하냐고 고추장을 그렇게 먹는다냐?' 물론 비빔국수다. 비빔국수는 열무김치건 배추김치건 김장김치건 알맞게 익으면 정말 딱 비빔국수의 재료가 된다. 물김치는 물국수로 그냥 김치는 비빔국수로 해먹기도 하지만 난 잔치국수를 좋아해서 늘 국물멸치나 다시마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하여 몇 해 전에는 친정아버지와 함께 예산의 오래된 국수공장으로 국수를 사러갔다. 친정엄마는 국수를 좋아하셔서 자주 두분이 그렇게 잔치국수를 해드셨는데 마침 국수가 떨어졌다며 사러 가자고 하여 갔는데 처음 간 국수공장이 신기하여 난 구경에 신이 났다. 정말 오래된 기계들 속에서 하얀 국수가 천처럼 나오는 정말 신기한 구경거리에 신이났는데 아버지는 우리들과 함께 국수를 사러 간 일이 더 신나셨었나보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신지도 이제 두어해가 되니 그도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국수공장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으니 또한 추억에 젖어 본다.


국수는 오래전에는 궁에서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것이 밀의 공급이 늘어나고부터는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잡았으니 '국수 언제 먹여줄래?' 라던가 잔치에 꼭 잔치국수를 하는 것은 그 오랜 전통이 남아 있는 말이라는 것. 무엇이든 여러 사람이 누려야 발전하고 여러 맛과 음식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쌀보다 흔한 밀가루인 국수는 서민의 주린배를 채우듯 한그릇 '후루룩' 하고 나면 정말 배가 불렀다. 친정엄마의 말처럼 '오줌한번 누면 쉬꺼지는 배가 국수배여..' 라는 말처럼 국수배는 질보다는 양이다. 예전에 들일을 나가신 아버지에게 새참으로 엄마는 자주 국수를 끓여 가셨다. 들 한가운데서 논두렁에 앉아 먹던 '잔치국수'는 얼마나 맛있는지,그런 국수들이 할머니들의 손맛으로 다른 세대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그런 귀한 손맛이 담긴 집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가서 맛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아지게 만든다. 정말 신기하던 것은 홍두깨로 밀면 점점 커지던 밀가루바탕, 그것을 밀가루를 훌훌 뿌리고 둘둘 말아 정말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 훌훌 털어 가마솥에 후루룩 끓여 내면 모두가 함께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한그릇 국수가 되었다. 고명으로 무엇이든 올려도 좋은 국수, 냉면집이나 국수집에 가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망설이듯 비냉을 먹을까? 물냉을 먹을까? 아님 비빔국수를 먹을까? 물국수를 먹을까? 우린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국수가 다르니 어느때는 비빕국수 한그릇 물국수 한그릇을 한다.그러면 혼자서 얼마나 바쁜지. 단시간에 후루룩 삶아 내어 양념을 하여 비빔국수를 한던지 물국수인 잔치국수를 한다던지 국수는 육수와 국수 고명의 세가지를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국수의 종류에는,지역의 특색과 흔한 재료 그리고 손맛이 가미되어 있다.

비빔국수는 정말 양념이 맛있어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가 하면 잔치국수는 '육수'가 맛있어야 그 맛을 정말 끝까지 맛있게 즐겁게 즐길 수 있다. 눈에 띄는 국수로는 메밀국수에 명태무침도 정말 먹어보고 싶고 강원도의 올챙이 국수도 티비로 보기만 했지 아직이니 먹어 보고 싶고 국수발이 콧등을 친다는 콧등치기국수도 먹고 싶고 이름도 정말 재밌다. 그런가 하면 포항의 포구에서만 맛볼수 있는 '모리국수' 또한 정말 궁금하다. 어부들이 잡아 온 고기를 넣고 국수와 함께 끓여서 모두가 모여 먹었을 정이 담긴 음식인 모리국수,서민적이면서 함께 모여 먹으니 얼마나 더 맛있까.제주의 성게국수와 회국수 그리고 땅콩국수들은 지역의 특색과 재료가 잘 가미된 국수이기도 하면서 주인들의 손맛이 어우러져 더욱 맛있는 서민의 음식이 탄생하지 않았나싶다.호떡집에 불나듯 국수집에 사람이 모이면 다들 비슷한 종류의 가게를 차린다.그렇게 하여 원조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손맛'과 음식에 맘 상하지 않을 만큼의 '질과 양' 인듯 하다. 국수는 다른 음식보다는 싸고 양적으로 풍성하여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맛이 남달라야 다시 또 찾게 된다.


국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추억이 깃들어 있고 어려운 시절 친근하게 먹던 음식이라 그런가 하면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을 풍부하게 쓸 수 있음이 이유일 수도 있다. 다른 음식에 비해 국수를 혼자서 먹기 위해 끓이는 경우는 없다. 한솥 가득 끓여서 모두가 풍족하게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보니 싸면서도 손쉽고 간편하게 모두가 함께 정을 나누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주식인 밥대신 없던 시절을 채워주던 주식이었기에 더욱 그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한 것이 국수인듯 하다. 겨울에 먹어도 좋고 여름에 먹어도 좋고 비벼 먹어도 좋고 육수를 넉넉히 부어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쭉 들이켜도 좋은 국수, 때론 이름 있는 이가 즐겼다고 해서 그런가 하면 서민의 가벼운 주머니와 배를 풍성하게 채워줄수 있었던 국수가 다시 부활하듯 우리네 골목을 점령하고 골목음식이 아닌 당당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을 보면 국수의 대단한 발전이라고 해야하나 앞으로가 기대된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백석의 맛>에서 읽었던 백석의 詩 중에서 <국수>를 떠올렸는데 저자 또한 에필로그에서 그 시를 언급해 놓았다. 백석의 시에서는 누구보다 더 전통의 음식들이 맛깔스럽게 들어가 있고 주제로 등장을 하는데 음식이 눈 앞에 있지 않아도 먹고 싶게 만드는 것처럼 <대한민국 누들로드>의 국수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먹고 싶게 하는 것들이,배부르게 한그릇 국수를 비운 뿌듯함을 안겨준다. 나의 곳간에서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었으니 조만간에 비빔국수를 해먹지 않을까,아이들은 김장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한 바지락칼국수를 좋아하니 겨울이 가기전 우리집 상에 국수가 몇 번은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여행가고 싶은 많았는데 '국수여행'은 어떨까 한다. 포항포구에서 맛보는 '모디국수'나 강원도에서 맛보는 '올챙이국수나 콧등치기국수' 그리고 '회국수' 또한 맛보러 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손끝에서 우러나는 '손맛' 이 있는 국수집들이 장수하길 바래본다.

<이미지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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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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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탄생시킨 '가가형사'시리즈 중에 두번째 책이란다. 첫번째 책은 <졸업>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책인데 이 책에서는 대학교때 사귀었던 그녀를 이젠 일년에 두어번 소식을 나누는 정도의 먼 사랑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에 처음 만난 발레리나인 '미오'와 알듯말듯한 사랑을 하는, 그리고 위험한 로맨스가 잔잔히 깔려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로맨스는 다음 책에서는 어떻게 발전을 했을까? 물론 좋은 쪽으로 기대를 해보기도 하고 별별 상상을 다 해보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으니 나중에 일어난 일은 모르겠다. 암튼 이야기 전반에 가가형사의 로맨스가 깔린 로맨틱한 미스터리라고 해야하나.

 

도쿄의 유명한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을 했다. 한남자가 둔기로 뒷머리를 맞고 쓰러져 죽어 있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발레리나는 사무실에 강도가 들어와 청동화병으로 그를 내리쳤다고,정당방위를 주장하는데 그 남자는 왜 사무실에 들어왔을까? 사무살엔 강도의 흔적도 없고 그 남자의 신원은 오리무중,정말 정당방위일까?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발레리나 하루코는 정당방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다면 이남자는 누구이고 왜, 발레사무실에 들어왔을까?

 

가가형사는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발레단 사무실에 갔다가 '미오'를 만나게 되는데 첫 눈에 반하듯 야릇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발레리나들은 자신의 몸 만들기에 철저한 사람들, 그러면서도 외부인들과는 담을 쌓듯 자신들의 울타리안에서 철저하게 똘똘뭉쳐 생활을 한다. 과연 이곳에 왜 남자가 들어왔을까? 첫번째 살인사건이 아무런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발레단의 리허설도중 연출자이며 발레단의 실세나 마찬가지인 인물이 갑자기 타살된다. 의도된 타살, 겉옷 속에 주사기를 부착하여 니코틴중독을 일으키게 만든 이는 누구일까? 정신없던 현장에서 타살이 일어났지만 누구인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첫번째 살인과 관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연관성은. 아무리 발레단 사무실을 드나들고 발레단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정확인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아니 왜 발레단과 상관없는 미술을 하는 이가  죽고 난 후 연출자가 죽음에 이르러야 했을까.

 

이야기의 중간 부분은 조금 진부한 면도 있다. 사건이 빠르게 전개 되거나 독자가 빨리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발레와 발레단 사람들의 이야기,그리고 가가의 이야기가 많이 보여져 어찌보면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지난해에 본 <블랙 스완>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 영화를 보아서일까 삽입된<백조의 호수> 이야기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고 무언가 좀더 눈앞에 선하게 현장을 그려볼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미스터리라고 하면 약간의 스피드를 원하기도 하는데 '로맨스 미스터리' 라 그런가 잔잔한듯 하면서도 발레인들의 각고의 노력과 몸만들기 뿐만이 아니라 한 명의 프리마돈나를 위한 그들의 피나는 서로의 끊을 수 없는 끈끈함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몸이 재산'인 발레하는 사람들의 피나는 다이어트, 하지만 꿈이 사라지면 다이어트 또한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한사람 가가형사와 러브라인을 잇고 있는 '미오' 그녀는 다이어트로 인한 '빈혈'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미스터리에서 범인은 늘 형사나 탐정의 주변에 가까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많이 등장을 하는 인물을 주위깊게 보면 그는 꼭 무언가 숨기고 있다. 범인이 아닌듯 하지만 그의 실체가 드러나고 보면 범인이 아니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하면서도 범인인 경우가 있다. 이 이야기가 그렇다. 그렇다면 첫번째 살인자 '하루코'는 정당방위일까? 그리고 두번째 타살된 연출자는 누구에 의해 어떤 이유로 살해당했을까. 그리고 또 이어지는 살인미수와 자살사건 등으로 하여 가가형사는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짚어 보다가 '아하' 하는 순간에 사건을 조합하여 퍼즐을 맞추듯 범인을 찾아낸다. 왜 그녀는 빈혈이 일어난다며 가끔씩 멈추어 섰을까. 그리고 이어지지 않을것만 같았던 살인사건들,하지만 그 속에는 감추어진 지난 조각들이 맞추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잠자는 숲을 마지막 작품으로 하여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준 그들, 그리고 그녀와 입맞춤으로 인하여 그의 인생이 '잠자는 숲'에서 깨어나게 된 사람,하지만 너무 가슴 아프다.이 사랑이 아프다. 위태위태하게 발끝으로 서 있던 거짓의 지난 날들이 이젠 편안하게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녀 곁엔 함께 하고픈 사람도 생겼다.살인사건과 가가형사의 로맨스가 얽혀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미스터리로 '가가형사 시리즈' 인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 몇 작품을 구매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재밌다.다작이라 어떤 작품들은 약간은 부족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재밌다. 늘 새로운 이야기속에서 새로운 트릭을 구상하는 그야말로 '잠자는 숲' 에서 깨어나게 해준다.미스터리와 로맨스를 접목시키다니,가슴 아릿한 사랑에 발레와 관련된 무엇이라도 하나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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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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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파묵의 두번째 소설이라 한다. 난 그의 소설중에 <내 이름은 빨강>과 <순수 박물관>을 읽었고 <눈> <이스탄불> <하얀성><검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처음에 읽은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그에게 빠져 들고 말았지만 그의 소설은 언제나 어렵다. 동서양을 만나는 지점인 이스탄불, 지역적 위치의 잇점이 소설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문화적 충돌지이면서 동서양의 충돌지인 터키, 터키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오르한 파묵' 이지만 내겐 정말 어려운 작가이다.

 

<고요한 집>은 이스탄불에서 벗어난 지역에 살고 있는 아흔 살의 파트마 할머니 집에 역사가 파룩과 혁명주의자 여대생 닐귄,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메틴이 일주일간 머물면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 집에는 아흔 살의 파트마 할머니 뿐만이 아니라 할머니의 모든 것을 돌봐주고 있는 셀라하틴의 혼외 아들인 난쟁이 레젭이 함께 한다.아흔살의 파트마 할머니 또한 그 삶이 파란만장하지만 레젭 역시나 순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집의 집사이면서 혼외아들이면서 난쟁이이니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까. 묵묵히 한자리에서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던 파트마, 겉으로는 풍족한 삶인듯 보여지지만 장농에 있는 빈 보석함처럼 그의 인생은 하나 하나 없어지던 귀금속처럼 한귀퉁이씩 잃어가던 삶과 역사를 털어 놓게 된다.

 

소설은 한사람이 아닌 다섯명이 화자로 나선다. 이런 구성박식은 <내 이름은 빨강>으로 통한다.파트마는 자신의 구십년 생과 남편이면서 백과사전을 집필하며 생을 보낸 셀라하틴을 이야기 한다. 그는 갔지만 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함께 한다. 서구문화를 따랐던 그, 그리고 불완전한 혼외 아들들을 남긴 남편 셀라하틴, 그가 남겨 놓고 간 것은 난쟁이 레젭과 절름발이 이스마엘처럼 불완전하면서 동서양의 완전한 접목을 시키지 못하고 서양의 문물만 좇던 그처럼 불완전한 터키의 역사를 보여준다.

 

소설은 건조하면서도 때로는 독백과도 같은 나레이션처럼 짧은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런 문장속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하지만 내가 난쟁이라서 분한 건 아니야. 사람들이 쉰다섯 먹은 난쟁이를 놀릴 정도로 못됐다는 게 내 마음을 정말 아프게 해.' 예전에도 난쟁이였고 지금 쉰다섯이어도 레젭은 난쟁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난쟁이라 놀린다. 그런가 하면 ' 아참,엄마, 얘는 메틴이야. 그 오래된 집 있잖아, 거기 산대 이상하고,고요한 집에' 파트마와 레젭이 살고 있는 집은 사람들에게는 오래되고 고요한 집이다. 하지만 그 집은 그냥 오래되고 고요한 것이 아니라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아들이지만 혼외아들이고 난쟁이라 사람들의 놀림감이었던 레젭,그런 아들을 집사로 두고 사는 아흔살이 된 할머니 파트마, 그들의 삶 또한 고요하지만 숨겨진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집을 구성했던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지난 것은 잊어 버리려 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쫒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밑바탕이 된 과거의 역사가 없이 현재의 역사가 이루어지지는 안는 법이다. 어쩌면 파묵은 그런 과거와 현재의 가교역할을 하는 소설을 탄생시키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요한 집을 통하여 파트마와 레젭을 통하고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을 통하여 터키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레젭을 아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아들이다. 비록 난쟁이고 집사이지만 혼외아들이므로 분명 아들인데 인정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터키의 역사 또한 혼외아들 레젭처럼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아도 스펀지에 흡수되는 물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서구문명을 흡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집처럼 고요한 집처럼 근간이 되는 밑바탕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선일 뿐이라는 걸 이 거리는 말하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 마치 모든 것의 표면에 가짜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집이란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내 이름은 빨강>은 세밀화를 보듯 그려냈듯이 이 소설 또한 세밀화처럼 집이 담고 있는 역사와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잘 그려내고 있어 다음책을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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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집의 살인 집의 살인 시리즈 2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작품은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밀실살인게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3권을 읽었는데 처음 만났던 작품부터 빠져 들어 몇 권 더 구매를 해 놓고 있다가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흰집의 살인>은 '집의 살인' 중에서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집의 살인> 그리고 이작품과 < 긴집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머지 작품이 궁금하여 <긴집의 살인>을 주문했다.

 

추리소설은 워낙에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들기도 하거니와 저자마다 그 특성이 약간씩은 있는데 '우타노 쇼고'는 이 작품에서 '시나노 조지'라는 탐정을 내세워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렇다고 그가 '살인사건'을 완벽하게 파헤친것은 아니다. '범인에게 완패' 라고 할 정도로 그는 바깥으로 드러난 살인사건은 해결을 하지만 그 안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밑바탕은 파헤쳐내질 못한다. 어쩌면 그런 면을 남겨 놓은 것은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심리와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느껴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한겨울의 흰 눈에 덮힌 별장,그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완벽한 '밀실'이다. 추리소설 하면 기본적인 트릭이 밀실트릭이다. 하지만 이 밀실이라는 것이 범인이 만들어 놓은 밀실트릭이 있는가 하면 이 소설처럼 범인은 밀실을 원한지 않았지만 어찌하다보니 모든 살인사건이 '밀실화' 된 소설이 있다. 밀실로 하지 않고 오픈화하려고 했지만 밀실화 되어 당혹해 하는 범인,하지만 두번째 살인사건도 생각지도 못한 강도 5.0의 '지진'이 일어나면서 밀실화 되었다. 그렇다고 세번째 살인사건이 밀실이 아니었을까, 그 또한 시체는 집 밖에 있었지만 흰 눈속에 갇힌 별장이니 외부인이 차단된 상태라 '밀실'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범인은 별장에 함께한 사람들 중에 한사람인데 그들은 오래전 사건도 있고해서 경찰에 알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범인을 색출해 내야 하는데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범인을 잡아 낼 그런 인물이 별장안에는 없다. 이카리 사장의 딸인 시즈카의 가정교사로 와 있던 이치노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탐정을 소개한다.그가 바로 '시나노 조지' 이다. 경력이 있는 전문탐정이 아닌 몇 개의 사건을,그것도 경찰이 진범을 잡아 내지 못한 사건을 해결해낸 이치노세의 말에 의하면 뛰어난 탐정이라 그를 받아 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 그는 첫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오려고 했지만 눈 때문에 별장에 들어오지 못해서 두번째 살인사건이 나고 난 후에 별장에 오게 된다. 그를 위해 첫번째 살인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해 놓았던 이치노세는 그가 도착하자 사건의 전말을 세세하게 들려준다. 이카리의 딸 시즈카가 타살되고 난 후 이카리의 여동생인 에이코가 살해된다. 그것도 청산가리중독타살, 이 또한 추리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던 현장에서 갑자기 한모금 마신 커피로 인해 죽어간 에이코, 모두의 눈 앞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누구를 딱히 살해범이라고 지목하기가 어렵다. 누굴까? 누가 어떤 이유로 인해 그녀를 죽인 것일까? 한사람은 딸을 잃었고 한사람은 아내를 잃었다. 그것도 가족이 모인 별장에서 말이다.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돈을 놓고 한판 벌이는 가족간의 욕망싸움일까 원한 질투에 의한 싸움일까.

 

시나노 옆에서 이치노세는 그만의 추리로 살인사건의 연관성을,아니 피의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카리의 전처의 자식인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별장 옆에 특이한 형태의 별채를 지어 사는 '데쓰야' 뿐이다. 이치노세의 말에서 비롯되어 갑자기 피의자는 '데쓰야' 모자에게로 관심이 쏠린다. 이카리 집안의 돈을 물쓰듯 하는가 하면 창고에 있던 명화들을 팔아 이혼을 당한 노리요,과연 그들이 범인일까? 그들을 범인으로 보기엔 어디엔가 헛점이 많다. 눈 위에 찍힌 그들의 발자국과 거꾸로 매달려 있던 시즈카의 시체 그리고 에이코의 죽음까지 그들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시즈카의 사건에서는 시체는 샹들리에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했지만 완벽한 밀실이었다. 그것도 천장도 높은 건물의 3층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었는데 별채에 있는 데쓰야가 그럼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하늘로 날아갔을까.  

 

에이코의 죽음 이후 모두는 조마조마하다. 그러던 찰나 이카리의 젊은 후처이고 젊은 시절 술집에서 일했던 시즈카의 엄마 하루코가 데쓰야가 있는 곳인 별채 앞에 죽어 있다. 그렇다면 별장에서 죽은 시체가 하늘을 날아서 별채로 갔단 말인가,이렇게 눈이 내리는 산 속의 별장에서.별장에 있던 사람들은 시나노탐정이 이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그에게 시간을 주지만 그는 나타나지도 않고 해결을 못하니 도망갔다고 생각하는 찰나,그는 노리요까지 데리고 와서 모두에게 속시원하게 사건을 이야기 해주기는 커녕 이카리와 주치의만 데리고 들어가고는 별장을 이치노세와 떠난다. 그렇다고 이치노세에게 확실하게 사건의 정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준것도 아니라 이치노세 또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러던 참에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그는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하듯 노트를 전해주고 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흰집의 살인>의 범인은 아니 사건은 '첫 장' 에 모두 드러나 있다. 저자는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 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하나의 삐뚫어진 마음에서 출발한 일련의 일들이 얼마나 무모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졋는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사악하고 무섭고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지 이야기 한다.

 

이 작품은 저자의 초기의 작품인듯 한데 무언가 추리소설의 틀에 맞추려 한 듯한 느낌이든다. 그의 다른 작품들 보다는 정형화된 추리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연작인 '집의 살인'을 더 읽어 보게도 하지만 탐정으로 등장하는 '시나노 조지'의 활약상이 완벽하게 드러난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미흡함을 보충하게 한다. 사건은 해결했으니 그 완벽함을 풀지 못해 당당하게 범인에게 완패를 선언하는 '시나노' 다른 작품들에서는 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첫 장에 드러난 범인 때문에 정말 범인을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계획한 살인도 있지만 우발적인 살인까지 끼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나름 진범을 찾는데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처절한 결말을 불어 오는가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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