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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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로 유쾌 상쾌 통쾌함을 날려 주신 저자,이번에는 <가시고백>으로 또 한번의 사춘기 그 시절의 비수와 같은 '가시'를 가슴에서 빼게 한다. 어찌보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왜 읽으면서 실실 웃음이 나오는지, 그랬다. 해일이 헛웃음처럼 웃던 '하하하하하'가 내게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르게 내게서는 헛웃음이 자꾸만 비져 나왔다. 읽는 동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새는 알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귀절처럼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유정란을 '병아리'로 키우며 잘못하면 흔들렸을 우정을 바로 세우게 된 해일과 친구들, 왜 자꾸 그들의 등을 '토닥토닥'두드려 주고 싶은지.

 

도벽이 있는 해일,아니 자신의 말처럼 '직업'을 가진 해일은 남의 물건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훔친다. 그리곤 표가 나지 않게 바로 현금화 하여 쟁여 놓는다. 그렇다고 돈이 필요해서 딱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7살 유치원생일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남과 달리 섬세하다는 것을 느낀 그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고2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슬쩍 슬쩍 한다. 그렇다고 유별나게 집안이 화목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지만 보통가정으로 잘 이끈 아버지 밑에서 가발공장에서는 엄마의 솜씨를 알아주는 베테랑 일꾼 엄마와 무슨 감정사인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백수나 마찬가지인 집안의 웃음코드를 만들어 내는 열두살 위  형 해철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잘 살고 있는데 그에겐 '도둑' 이라는 직업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그날도 지란의 전자수첩을 너무도 능숙하게 빼 내었는데 그것이 지란이 새아빠에게서 모처럼 딸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빌려온 것이란다. 해일은 벌써 현금화 하여 전자수첩의 자취도 일어버렸는데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받고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한 해일,우연히 엄마가 사온 고구마줄기가 담겨 있던 박스의 '유정란'을 보는 순간 알을 부화해보겠다고 식구들앞에 큰소리를 치게 되고 성공할까라는 생각보다 그는 미리 실천에 옮긴다. 유정란을 사고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오징어박스를 얻어 오고 그렇게 하여 부화기를 만들어 놓고 유정란을 넣어 부화가 될지 모두가 숨 죽이며 기다리게 된다. 해일이 보기에 우리 가족은 삐그덕 거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늘 삐그덕이다. 그런데 이 가족도 해일의 '유정란' 이 오면서 그야말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식구가 똘똘 뭉치듯 점점 식구들이 융합되고 조화를 이루어 간다. 설마 했던 6개의 유정란에서 2개에서 소식이 오면서 가족은 더욱 활기를 찾게 되고 해일도 무언가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있음에 웃는 날이 많아 지고 친구들도 그런 소식에 그를 다르게 본다.담임샘도 그렇고.

 

그렇다면 지란은 어떨까? 그녀 또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되어 그녀의 원래 아빠로부터 늘 술에 쩔어 보내는 문자에 시달린다. 귀찮고 못되게만 굴었던 아빠, 그를 해일과 어울리며 이해하게 되고 해일이 부화하는 병아리로 인해 모두가 새로운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 처럼 다른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도둑과 병아리의 부화는 어떻게 이어질까 했는데 문득 읽다보니 정말 데미안의 그 말이 자꾸만 가슴에 깊이 박힌다. 서로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힌 용서 받고 화해해야 할 일을 담아 두기만 했던 그들, 병아리의 부화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가슴에 박힌 '가시'도 스스로 빼게 되기도 하지만 해일은 자신은 완벽했다고 느꼈지만 친구들에게 들킨 도둑질을 친구들에게 털어 놓고 용서를 구하게 되고 친구들은 그런 해일에게 '옐로우카드'라는 경고를 하면서 그를 받아 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지란도 역시나 새아빠를 받아 들이고 자신의 원래 아빠도 용서하고 받아 들이게 된다. 자신의 가시는 스스로 빼야 하는 것이다. 남이 빼주는 가시가 아닌 스스로 빼야 상흔이 오래가지 않음을.

 

딱 요만때의 딸들이 있어서일까 그녀들의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도 있고 워낙에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해주지 않을 때 남과 비교해 불행한 삶이라 치부하는 그런 세대를 보며 소설속 아이들이 스스로 가시를 뽑지 못하고 다른 길로 빠지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는데 위기를 너무도 잘 헤쳐 나가는 것을 보고 뭉클했다.목울대가 콱 막히 듯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부분에서 눈시울이 뜨근. 친구기에 모두를 받아 줄 수 있고 친구기에 모든것을 용서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일까? '뽑아 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해일은 자신의 도벽으로 인해 친구를 잃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친구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들, 그들은 그동안 껍질에 쌓여 있던 어린티를 벗어 내고 한뼘 성장한 것이다. 아직은 미완이지만 어른의 세계도 나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춘기 친구들, 그들은 이번 일로 인해 진정한 우정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백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가 없다면 언제나 가슴에 담아 두어야할 '고백' 을 담아 두기 보다는 언젠가는 콕 뽑아 버려서 상흔이 남더라도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함을 느껴본다. 어찌보면 절말 감싸주기 애매하면서도 '우정을 단절'을 가져 올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성장해 나간 것이다. 그들의 성장일기를 보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잘했어' 라고 토닥여 주고 싶은,마음이 따듯하게 해주면서 가끔 웃게 만드는 소설로 왜 내안의 가시를 빼낸 것처럼 속이 후련한지.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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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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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에서 '가가형사' 의 로맨스를 읽고는 그 작품에 언뜻 언급한 '일년에 한두번 연락하는 사이인 사토코' 가 전애인이라는 말에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잠자는 숲>에서는 사토코와 연결이 안되었기 때문에 그는 형사가 되어 살인사건을 쫒아 다니고 살인사건과 연류된 인물인 발레리나와 애매한 사랑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전 애인이고 가가형사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어떨까 궁금하게 하던 작품이다.

 

추리소설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이 아끼는 탐정이나 형장을 구상해 내서 그를 오래도록 작품에 등장하게 만든다.'애거서 크리스티여사' 가 그랬고 다른 많은 추리소설 작가들도 그랬다. '가가형사 시리즈' 역시나 가가형사의 등장을 그 밑바탕부터 잘 그려나기기 위하여 저자는 가가의 대학 때의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아버지가  경찰이라 가정에 소홀하여 어미니가 떠났기에 자신은 경찰이 아닌 선생님을 꿈으로 선택하는 가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못 다 이른 가정을 이루고자 '사토코'를 가정에 끌어 들이기 위하여 그는 경찰의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선생님'이란 직업을 선택하게 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살인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충고를 받아 들이면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로 그려져 나간다.

 

그와 검도를 함께 하거나 미나미사와 선생님과 함께 다도를 하는 친구들인 쇼코가 갑자기 백로장에서 세면대에 손목을 그은 손을 올리고 죽어 있다. 완벽한 밀실이며 타살의 흔적보다는 자살로 굳어졌지만 '누가,왜..? 라는 이유를 가지면서 그녀의 죽음을 둘러 싼 의문들을 친구들이 풀어 보려 하지만 '범인' 이라고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잡히지가 않는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전해 들은 쇼코의 죽음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는,누군가 피를 닦은 흔적이 있다는 말과 쇼코의 방을 방문한 친구들의 진술에서 얽갈린 진술이 나오면서 자살이 아닌 '타살' 인 '살인사건'으로 굳어지게 된다.

 

쇼코의 살인사건도 해결을 못한 가운데 미나미사와 선생님의 집에서 설월화 게임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나미카가 독살된다. 그렇다면 모두 모인 친구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 나미카는 쇼코의 앞방에 기거를 하기도 하고 죽음을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미카는 쇼코의 죽음에 대하여 무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활달한 성격이던 그녀가 쇼코의 죽음과 그 전에 치루어진 검도대회 때부터 무언가 많이 달라졌다. 가가는 번득이면서 냉철한 사고력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하여 친구들의 알리바이와 두 살인사건에 쓰인 트릭을 조사해 나간다. 정말 두 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나미카의 죽음 또한 어찌보면 '밀실'이나 마찬가지다. 쇼코의 죽음 또한 '밀실'이라 할 수 있는데. 나미카의 죽음에는 '설월화 게임' 이라는 것이 적용이 되어 게임을 속임수를 풀어 나가는 가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언가 트릭이 있을 것이란 직감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전말은 모두를 전율케한다.

 

소설은 경찰보다는 '대학생 가가'를 내세워 사건을 흐름을 이어간다. 경찰도 잡아 내지 못한 것들을 가가는 친구들의 증언과 추리로 살인사건의 맥을 이어가며 첫번째 살인사건인 '쇼코의 죽음'의 풀리지 않은 의문은 그녀의 남친의 '편지'로 대신한다. 독자에게만 알리고 편지는 찢어 없어지는 형식으로 독자에게만 살인사건의 이유를 알려 준다. 자살이면서 타살인 살인사건,대학생이었던 그들이 사회로 나가기 위하여,아니 사회인이 됨녀서 물들어 가는 인간의 탐욕과 탐욕이 불러오는 무서운 살인에 얽힌 이야기는 친구이면서 적인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친구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발판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있다. 얼마나 삭막한 사회인가. 늘 어울려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던 그들의 졸업은 너무도 초라하고 썰렁하다. 사회로 나가는 사회인이 되는 졸업이면 시작인 출구가 너무도 스산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졸업시즌을 맞아 일부러 <졸업>을 선택하여 읽었는데 기분이 울적하다. 가가의 연애사도 그리 좋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의 살인사건이라 더욱 맘이 짠하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 어떤 일을 증명하려고 할 때,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던데?' 라면서 불가능을 가가를 내세워 증명해 보인다.그러면서 '긴 시간을 들여 언젠가는 무너져버릴 나무토막을 쌓아온 것이라면 그것을 무너뜨렸을 때 비로소 우리가 건너온 한 시대를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작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듯 '가가'라는 인물이 앞으로 그 '한 시대' 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암시를 준다.재밌게 읽었지만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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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시간 - 로마 4대 바실리카로 떠나는 시작을 위한 여행
김지환 지음, 전화식 사진 / 고즈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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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인 '순례자의 길'에 대한 산티아고 걷기 여행서를 읽으며 언제 한번 이런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는 그러지 않아도 정말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에 가고 싶었는데 더욱 이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신자가 아니어도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만나는 성당은 정말 감동 그 자체일 듯 하였다. 그리고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여 언젠가는 정말 이 산티아고 길도 한번 걸어봐야겠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로마의 4대 바실리카 성전은 어떨까? 아,정말 생각만으로도 꿈을 꾸고 있는 듯 할것 같다.멋진 조각과 그림 건축을 만나는 그 느낌이란, 그리고 그와 함께 깃들은 '신' 에 대한 믿음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몹시 궁금했다. 성지여행이란 어쩌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여행일 듯 하다.

로마 4대 바실리카 성전인 '성 베드로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전' 과 '성 바오로 대성전' 그 이름만으로 벅차 오른다. 그렇다고 내가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 성전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도록만 보아도 감격과 감동이 전해져 올 듯하여 사진만으로 행복할 듯 하여 읽고 싶어 선듯 응했던 책이다. 난 딱히 믿음이라고 정한 것이 없지만 절에는 잘 가기도 하고 나와는 맞는 곳인 듯 하다. 그렇다고 성당에 대한 믿음이나 거리감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고적 천주교와 인연이 있는 학교를 다녔으니 간접적으로 약간은 내 몸에 베어 들기도 했을 터인데 도통 내겐 깊은 믿음은 생기지 않았지만 성당에 가는 것은 좋았다. 괜히 그곳에 가면 평화롭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나는 느낌이 좋아 가끔 친구들과 가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데 그런 작은 성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인 대성전이니 그 감동이나 감흥이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듯 하다. 언젠가 큰 절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듯 '전국법회'를 그곳에서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정말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는데 이들 또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직접 주관하는 시성식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원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나 풍경을 만나게 되면 내 삶은 또 그만큼 변화하게 마련이다.

다큐멘터리 작가 전화식 사진가와 무언가 삶의 '출구'가 필요했던 저자가 함께 떠났다. 비신자와 신자의 여행이지만 성전앞에서는 신자와 비신자를 떠나서는 모두가 '신자'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도록처럼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던 사진작가와 대성전을 만나면서 정말 꼭 필요했던 출구를 만난 듯 절실함을 찾은 저자의 찰나의 시간들은 너무 기록이 적은 듯 하면서도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듯 하다. 이런 유명한 곳에서는 정말 꼭 필요한 사진을 찍지 못할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기 못하여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뜻 하지 않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인용하여,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 라는 글로 여행을 시작해 놓았다. 책을 읽기 전 '사진' 들을 먼저 한번 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분명 일부분일텐데도 정말 대단한데 직접보는 그 감동은 어떨까. 글을 읽고 난 후에 다시 한번 사진만 보았다. 넘 좋다. 어쩔 그렇게 하늘은 파랗고 건축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할까,인간이 신에게 향하는 마음이 그렇게 화려하고 끝이 없었을까. 모든 것이 조각과 그림으로 대표되던 시대에 미의 극치를 나타내듯 믿음과 함께 융합되어 정말 다시는 흉내낼 수 없는 건축물들이 완성된 듯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조각품이나 그림보다도 그 웅장함 앞에서 나약하게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왜 그리 경건하고 평화롭게 눈에 들어올까.


나의 믿음이 약하니 나 또한 영화로 만난 성서 이야기나 그림이나 그외 다른 곳에서 주워 들은 이야기들로 충족을 시키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며 읽어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듯이 알면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보이게 될텐데 설명을 읽어가며 보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보게 되면 그의 사인을 확인해야 할 것만 같고 정말 그것이 그냥 조작이 아닌 대리석속에 작품이 그냥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사실적이면서도 절실함이 잘 나타나 있는 미술품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들이 눈을 유혹할 것만 같은 사진들에 잠시 사진에서 시선을 멈추어 한참을 머무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의 믿음이 순간 베어 나오는 글들에도 눈길이 머문다. '누군가를 닮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말,행동까지 모든 것을 따를 때 가능한 것이다.'


앞에 부분들이 저자의 여행이야기라면 사진작가의 후기가 끝부분에 있다. 솔직한 그의 글에서 성전을 여행하며 겪은 기적같은 경험,카페에서 도난 당한 가방을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정말 우리 상식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나 위대하고 웅장한 대성전 여행은 내면을 찍기 위한 여행이라 다른 어떤 여행보다 더 힘들었다는 그의 고충을 읽다보니 쉽게만 접하고 읽은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자의 행간을 읽었어야 하는데 사진에 반하여 쉽게 내 방식대로 그들의 '순례자의 시간'에 동참한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 하지만 나 또한 이 책과 함께 하는 순간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듯 경건함에 젖어 들었음을 그리고 수많은 발걸음 속에서 나 또한 어느 한구석에서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고는 두손을 모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잠시 멈추어 섰음을. 그냥 건축물이 아닌 성전이고 인간의 구원과 믿음이 함께 하였기에 더욱 간절하고 경건하고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여행을 하번 가고 싶다는 로망을 가져본다. '당시 사람들은 신에 대한 의존과 기대가 컷을 겁니다. 예술가들은 이를 최대한 작품에 표현하려 했을 터이고, 아마도 하느님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예술품의 집합체를 여행하는 기분도 괜찮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 내면의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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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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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짝>이라는 책이 생각이 난다. 모방송의 프로인 <짝>은 정말 내 곁에 있는 짝, 그 짝이 지금 행복한지,아니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는지 묻고 있는 듯 해서 뒤돌아보며 더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 정말 지금 내 곁에 있는 '짝' 이 행복할까? 아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일까? 영원한 사람일까? 아가테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잘못되어 잃고 말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남편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아이를 잃던 그 때부터 둘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말았다. 남편은 그녀를 발정난 암케정도로 생각하고 아가테는 어떻게 해서든 남편의 마음을 돌려 놓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녀는 시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으면서 젊고 무척이나 아름다운데 시장인 티보 크로빅,그는 20여년 동안 시장직을 했으면서 사람들은 그를 '선량한 티보 크로빅' 이라 하지만 그에겐 한가지 고민이 있다. 그녀를 혼자 짝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중증이다.

 

사람의 마음이란것이 정말 요상하다. 님이 남이 된다는 것은 정말 순간의 일이다. 결혼한 부부였지만 마음에서 멀어지면 곧 모든 것이 멀어지나보다. 아이로 금이간 부부 스토팍,그들이 원만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아가테는 열심히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 듯 보여지는데 남편은 너무 멀리 갔다. 거기에 끼어드는 헥토르까지. 정말 부부간에 너무 끼어드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티보'까지 있으니 그들 사이가 다시 원만해지기는 글렀다. 아니 이 소설은 아가테 부부의 사랑이 아니다. 아가테도 그렇고 티보도 그렇고 서로에겐 사랑이라 말할 수 없었고 서로 넘보기엔 너무 먼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아가테는 결혼한 유부녀였으며 티보는 모든 시민이 '선량한' 이라고 부르는 그런 시장이었으니 그들이 사랑한다면 불륜이고 스캔들이다. 정말 그런데 그런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출근하기만 하면 그녀의 '향기'를 따라 방황하는 그,'겨울 내내 스토팍 부인은 고무 밑창을 댄 신을 신고 출근해서는, 자리에 앉아 신을 벗고 가방에서 굽 높은 핍토 샌들을 꺼냈다. 집무실 안에서 가엾고 선량하며 사랑에 빠진 크로빅 시장은 스토팍 부인이 출근할 때 울리는 쿵쿵거리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허겁지겁 카펫 위로 몸을 내던지고,구두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통통한 작은 발가락을 문 아래 큼 사이로 훔쳐보곤 했다...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아름다운,바로 저 문 너무에 있는 존재.' 시민의 선망의 대상인 크로빅이 문 틈으로 비서의 발이나 훔쳐보고 그녀의 향기나 좇는 인간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문틈으로 살금살금 내다보는 그는 그러다 정말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점심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그것 또한 그녀의 모습을 훔쳐 보고 있다가 말한 것이다.

 

크로빅만 아가테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아가테 또한 크로빅 시장을 좋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동안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맞는 호흡을 맞추어 왔기에 서로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안다는 것이 흠이다. 그리고 낮시간은 늘 붙어 지낸다는 것이다.손바닥이 혼자서는 절대 소리를 내지 못한다.둘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티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 또한 사랑으로 밝게 빛나고 티보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자리가 있기에 늘 '그만큼'의 자리와 위치만 지키는 티보, 더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용기를 내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좀더 많은 데이트를 즐기지만 늘 거기까지이다.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 그 때문에 스토팍과 갈리지고 그녀는 헥토르에게 간다. 하지만 티보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그때서야 말한다. 돌아서버린 그녀,방황하는 그,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급류를 타는가 싶다가 헥토르에게서 멀어져 그녀는 다시 티보에게 온다. 아니 그 사랑은 '개'가 된 그녀를 받아 들인다.

 

어쩌면 우리네 관념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받아 들이기 너무 어렵기도 한데 어쩌면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았기에 동화적으로 이야기를 끝맺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어쩌면 좀더 자신의 짝에 대하여 좀더 진실하고 사랑을 다하라는 의미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사랑은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한다. 그둘의 사랑은 그야말로 '불륜' 이다. 우리와는 너무 맞지 않는 듯 하지만 어찌보면 내 짝이라고 여긴 사랑은 나중에서야 알아 차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살다 보면 내 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짝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내 짝이 아닌듯 하면서도 살다보니 너무도 잘 맞는 짝이 되는 경우도 있다. 티보 아가테 또한 어찌보면 살다가 서로의 짝을 알아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나이 지긋하고 선망의 대상인 시장인 티보가 아가테 그녀에게 표현하는 사랑과 설레임은 막 사랑을 시작한 그때의 기분이나 묘한 감정을 잘 나타낸 듯 하다.

 

'티보는 애썼지만 그녀의 모든 것이 그를 두근거리게 했다. 봉투를 들고 있는 그녀의 자세, 날카롭고 효율적인 종이칼 놀림, '특별' 도장을 책상 위의 오래된 잼 병에 떨어뜨리는 우아한 손길, 입가에 살짝 빼물고 있는 혀끝, 깜빡거리는 눈꺼풀,그녀의 향기,그녀의 미소.' '그리고 그걸 다 쓰는 데 노트 한 권 반이 들었다면 믿겠어요? 점심 같이 먹자는 몇 마디 말 쓰는 데 숲 하나가 통째로 들어갔죠.' '점심 같이 먹자' 라는 말 한마디를 쓰기 위하여 어떻게 표현할까 쓰고 지우고 떼어내 버리고 하다보니 노트 한 권을 다 날렸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로 온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이런 표현들은 잘 되었지만 이야기는 우리의 정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일까 그리 와 닿지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좀더 무언가 큰 것을 기대했는데 '잔잔한 파도' 만 밀려오는 듯 하다. 그래도 잠깐 티보와 아가테의 사랑에 일탈을 하여 봄을 미리 만나본 듯 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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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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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보자고.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행태가 이해 안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 를 외치고 싶거든.시국이 아주 엄중하거든,아주.' 내년이 벌써 대선이다. 아니 대선이라고 해도 별 기대치가 없다. 나와 같이 정치에 문외한이거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라는 그 단어에 나 또한 포함된다고 생각되기에 별 기대없이 읽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빠져들며 그의 앙큼한 욕인 '씨바'에도 익숙해질 무렵,어제 보았던 <부러진 화살>이 되살아는 느낌은 뭐지.

 

대선에서 누굴 찍어야 할까? 누가 가장 대표하는 얼굴에 어울릴까? 누구가 생각이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시국을 읽어준다.그의 말처럼 일상의 언어로 간간이 욕까지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해주니 정말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그가 '조국애'를 내세우며 조국의 <진보집권플렌>을 보고는 뭔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그가 대선의 인물로 그를 꼽았는데 그는 자신의 의자를 빼듯 했으니 그런 그를 의해 그가 나섰다. 그야 말로 판을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찍어서 시국에 꼭 맞는 사람을 한번 뽑아 보자는 것이다.그렇다면 대선에 꼭 어울리는 그런 '완벽한 인물'이라고 정해진 사람이 있을까? 완벽하리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후회를 가져오지 않을, 시국과 국민의 입맛을 충족시켜줄 그에 가까운 인물이 따지고 보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는 정치판을 일상의 언어로 늘어 놓는다.하지만 그가 내뱉는 것들이 쉽게 그리고 속시원한 소화제처럼 잘 읽히고 막힌 속을 뚫어 주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늪에 빠지는,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진흙탕에 빠져드는 기분은 뭘까? 우리 대한민국 정치판이 현시국이 이랬어. 이런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고 봐야하나.

 

부러진 화살과 닥치고 정치 뭔가 비슷한 느낌은 뭘까

어제 본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는 사법부와 김경호교수의 싸움이었다. 석궁사건, 석궁을 쏘긴 했지만 우발적 발포였는데 그 화살에 담당 판사가 맞지 않았다.그런데 그는 석궁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런닝과 겉옷에는 피가 묻어 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는 피가 묻지 않았다. 정말 아이러니 아니 환타스틱한 이야기 아닐까? 그렇게 하여 '없는 진실' 을 가지고 거짓과 진실 공박에 나선다. 과연 증거물과 증인들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받아 들여질까? 개인이 그랬다면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텐데 그 각본을 사법부가 썼기 때문에 받아 들여진다는 것이다. '법' 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 뒤에 숨어 있는 법조인들, 그들은 법이란 잣대를 가지고 자기들 멋대로 휘둘러댄다. 하지만 모두가 힘이 없어 기죽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누군가가 김경호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법조인보다 더 법조인화 되어 공격을 한다. 아니 자신의 지키고 옳지 않은,법의에서 군림하려는 그들을 응징한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사로잡혔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는데 그 뒷맛이 씁쓸한것은 아니 그 영화와 <닥치고 정치>는 무언가 닮아 있는 듯 느낌이 들었다. 없는 진실을 '사실화' 하기 위하여 법을 맘대로 휘두르는 사람들처럼 우리 정치판이 딱 그모양이다. 정말 눈뜨고는 못봐줄 환타지고 팩션이고 어느 추리소설보다 재밌는 완벽한 추리소설이다.

 

그런 정치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무언가 '알고' 찍는다면 그런 오류의 역사를 미연에 방지,아니 그런 시국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정치판을 정리한다. 그야말로 동물의 세계인 '사파리' 와 같은 좌우의 세계, 하지만 어느 누군가를 내세운다고 지금까지 발생한 오류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물이 조금 덜 흐려지느냐 아님 정말 진흙탕처럼 더렵져 지느냐인듯 하다. 국민이 받아 들이는 세상은 늘 똑같다. 그러니 ' 그 놈이 그 놈이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알면 알수록 알고 싶지 않은게 정치이고 그 세계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다. 그런다고 나의 시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오물을 덮으려 추잡한 연애사나 그외 대형사건들을 폭탄터트리듯 하는 세계 정말 역겁다. 내가 찍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는 찍고 누군가는 당선이 되어 대표의 얼굴이 되는 것이 대선이다. 어찌보면 아는 자들이 더 찍지 않을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삼삼오오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정치얘기다. 하지만 쉽게 아니 속시원하게 그 내막을 말하기엔 뭔가 껄적지근하다. 아니 그렇게 한다면 정말 어느 개그맨처럼 될 수도 있고 시끄러운 '나꼼수' 처럼 될수 있는 아직도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 그런 사회는 아닌듯 하다.

 

요즘 '추리소설'에 빠져서 몇 권 읽었는데 이 책이 요즘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재밌는 추리소설이며 환타지였다. 내가 읽어서 껄끄러웠지만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어느 누구는 말했지만 아는 만큼 더이상 알고 싶지 않은 세계도 있다. 아니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양파처럼 몇 겹의 껍질에 쌓여 더이상 보여주지 않으려고 서로 단단하게 자신들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그는 계란을 투척하듯 '쫄지마,떠들어도 돼' 하며 시원하게 그만의 '판읽기'를 보여 주지만 막상 대선이 다가오면 누굴 찍게 될까. 아니 어느 누구를 위에 올려 놓아야 제대로 올려 놓았다고 볼 수 있을까. '연애하가 보면 찌질한 것도 하고 유치한 짓도 하게 마련인데, 때론 오바해서 자기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도 하고, 때론 상대방의 억지스러운 요구에 응하기도 해야 하잖아. 정치는 대중과 연애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거잖아?' 정치도 연애하듯 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그 연애라는 방식이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그 또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알고 찍는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시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난 읽어도 시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하다. 그저 그동안 흐름이 끊겨 있던 맥을 그가 이어주었다는 것,그리고 맥힌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 두가지로도 읽을만한 책이고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것. 그리고 대선 전에 읽어보면 더 좋을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편한 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역시나 불편한 진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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