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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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 다시 책에 슬슬 취미를 붙이기 시작할 무렵,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엔 "책에 대한 책"을 처음 읽었을 때였고 내가 읽은 책이 많지 않아 거의 대부분의 책은 읽어보지 못한 책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책이 어떤 책이고 남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가 궁금해진 것이. 그리고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그 책 속에 나온 책을 다시 리스트로 만든다. 결국 다른 일에 쫓겨 그 리스트의 대부분을 읽지 못하고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 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상한 편집증인가?^^

 

얼마 전 읽었던 제임스 A.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가 너무나 큰 행복을 준 덕분에 다시 "책에 대한 책"을 집어들었다. 남들은 책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애정하며 어떤 책을 읽고 큰 감정을, 큰 변화를 겪었는지 다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탐독>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이미 넓은 마당발에 탄탄한 지식을 담고 있는 작가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한 권의 책을 물어보고 그들의 인생과 함께 엮어본다.

 

"책을 통해 '진짜 사람들'을 찾고 만나는 일. 이 책의 목적은 그 지점에 있다."...8p

 

어떤 이에게 영향을 끼친 책 자체에도 관심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인생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 살아온 길 위에 어떤 책이 더해져서 더욱 확고하게 어떤 길로 뻗어나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일. 그러므로 이 책은 엄밀하게 "책에 대한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10인의 전문가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보다는 조금 더 깊고 진지하지만 한 사람의 책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

 

<탐독>에는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작가 김영하, 은희경, 정유정, 김중혁에서부터 외국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와 조너선 프랜즌, 무용가 안은미와 영화감독 김대우, 사회학자 송호근, 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슷한 듯 다른 한국 작가들의 인생 이야기도 조금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올해 초 세상을 떠 너무나 놀라게 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조너선 프랜즌의 인터뷰를 읽고는 그의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다짐도 해본다.

 

"무엇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하는가? 우리는 왜 죽음 이후의 세계로 자발적으로 넘어가는가?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도 단지 지금 여기에 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것일까?"...28p

 

소설가 김영하가 꼽은 <달과 6펜스>를 이런 식으로 읽지 않았다. 그저 고갱을 소재로 썼다는 그 소설을 읽으며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며 읽었을 뿐. 어쩌면 김영하는 자신과 같은 열정을, 아무리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던 그 꿈틀거림을 그 책에서도 찾았던 것은 아닐까.

 

책은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 누군가에겐 내 인생의 책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시간 낭비의  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읽을 책을 고를 땐 남들이 많이 읽었다는 베스트셀러도, "책에 대한 책" 속 추천 도서로 무조건 고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책"이 끌리는 이유는, 사람을, 동시에 책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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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평전
이창호 지음 / 벗나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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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고 싶은 뮤지컬이 한 편 있다. <영웅>이라는 뮤지컬로 안중근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과 함께 꼭 보러 가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역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위인전, 역사책 보다는 소설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다른 방식으로라도 우리 과거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아니, 내가 그 작품을 보고 가슴 뜨겁게 감동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이후, 우리 역사 속에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가 없다. 교육을 위해 편집되고 짧아진 이야기가 아닌,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위인들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고은 시인님의 <이중섭 평전>을 읽은 후론 앞으로 자주 우리 위인의 평전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감없이 펼쳐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맡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모습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감동을 준다.

 

<안중근 평전>은 그렇게 찾아온 책이다. 3.1 운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광복절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 역사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얼마 전엔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몰라 곤혹을 치른 걸그룹 멤버가 있었다던데, 아이들과 부모가 이렇게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함께 책을 읽으면 그런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이창호의 <안중근 평전>은 어마어마한 자료집이다. 저자는 평전을 서술하며 자신이 참고한 책을 바로 밝히고 있는데 그 다양함과 양이 엄청나서 저자가 이 "안중근 평전"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원래 위인전은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역사 이야기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중근 평전>은 그 역사 이야기가 너무 많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이 한 사람의 평전인지, 역사책인지 헷갈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호방했던 모양이다. 앉아 글을 읽기 보다는 밖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화살을 쏘면서 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단다. 뤼순 감옥에서 조목조목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밝혔던 안중근을 생각하면 무척 의외이다. 하지만 청년이 되며 신문을 찾아 읽고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시했던 점을 생각하면 안중근은 정세에 밝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다. 그런 행동력이 안중근을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은 성급하고 욱 하는 성질이 보였던 것도 같다. 워낙 정의심과 의협심이 강해서 잘못된 점은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청년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 국가, 세상에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안중근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이제 교육구국사업이나 애국계몽운동으로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으니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143p

 

안중근이 어린 시절 동학농민 운동과 관련 있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지만 사실 확실히는 몰랐었다. 또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처음부터 총과 무기로 일본을 처단하려고 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안중근 또한 교육이 나라의 근간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만 급변하는 일본과 조선의 관계 속에서 교육 만으로는 일본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안중근이 어떻게 하얼빈까지 가게 되었는지, 누구와 만나고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등 그의 행로에 대해서는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다. 일본의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거짓을 이야기하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다양한, 많은 자료를 통해 실제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를 추적하듯 서술한다. 그리고 안중근의 입장에서 그 사실을 복원해 본다.

 

며칠 전 어린이  TV 프로그램의 CF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위인전 도서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아직 살아있는 유명인이었다. 그렇다. 위인이 아니라 유명인이다. 물론 그들 또한 우리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냈고, 하고 있다. 그들이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노력은 본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과연 아이들에게 우리 위인들의 이야기 대신 그런 유명인의 이야기를 읽혀야 할까? 단지 인기가 더 많다는 이유로? 그런 교육이 계속 되니 안중근 의사의 얼굴도 모르는 20대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역사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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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이종인 옮김 / 예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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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임스 A. 미치너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이름이지만 대표작이라든가 어떤 류의 글을 쓰는 작가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으로만 날카로운 평론을 쓰는 작가인가...하는 생각만 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이지만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책을 골랐던 것은 어쨌든 이 책이 "책에 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책은 언제 읽어도, 얼마나 읽어도 좋다.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과연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에 대한 책이라면 더욱 좋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 떠오르는 한 작가에 대하여"는 사실 작가인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책에 관련된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혹은 소설가답게 미치너의 글은 술술 읽힌다. 날카롭고 비판적인 평론이기 보다는 젊은 시절의 미치너가 만났던, 그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를 회상하듯 재미나게 풀어낸다. 의외였다. 그리고 즐거웠다. 영문학을 하는 젊은 문학도에겐 아주 풍성한 환경이 제공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열심히 찾아다니는 노력 덕분인지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엄청난 독서가나 애서가들이 가득했다. 뭐랄까, 내가 그저 꿈꾸던 아름다운 미래의 한 장면(아름다운 저택에 커다란 서재를 꾸미고 그 서재엔 내가 갖고 싶었던 책들로 가득 꾸며놓고 책을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삶)이 미치너에겐 몇 번의 강렬한 만남으로 그에게 남아있다. 어쩌면 그가 편집자로서, 소설가로서 살아가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평생 작가로서 지켜온 한 가지 일관된 고집이 있다면 그건 좋은 책의 제작에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책이라면 마땅히 겉모양이 멋지고, 지도가 정확하고, 활자가 읽기 쉽고, 장정이 훌륭한 그런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여러 주 동안 들고 다니며 동반자가 되기를 바랐고 책을 읽는 행위가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나는 소설, 에세이, 또는 논픽션을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책을 썼다."...70p

 

글을 쓰는 작가가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란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다. 작가들은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미치너에 한정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편집자를 거쳐 작가가 된 사람이므로. 그럼에도 이런 문장을 읽으니 왠지 독자로서 굉장히 이해받는 기분이었고 그런 책을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2.다른 작가들에 대하여"는 작가가 만난, 아는 네 명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마거릿 미첼, 마커스 굿리치, 트루먼 커포티가 그들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잘 아는 작가이든, 그렇지 않은 작가이든 미치너를 통해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므로 신선하다. 그가 말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들었던 의견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 또한 그가 편집자 출신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좀 다른 시각(독자나 편집자로서의 의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3.나이 들어가는 한 작가에 대하여"는 미치너 자신이 쓴 시와 소네트를 담고 있다. 2장까지는 다른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기에 3장은 미치너 본인에 대한 맛보기라 할 수 있다. 사실 2장까지의 글을 읽으며 미치너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그의 작품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 3장을 통해 짧지만 그를 조금은 느껴보는 시간이 된다. 물론 이 정도의 작품으로 미치너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 2 장의 에세이를 통해, 3장의 시를 통해 미치너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인다. 꼭 시간을 내어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는 왜 쓰는가>는 수많은 작품을 독파하고 작가들을 이해한 제임스 A. 미치너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통해 깨달은 바를 적은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미치너 자신에 대한 책에 대한 사랑, 열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이 책이 무척 소중해졌다. 미치너가 많은 작가들에 영향을 받고 힘을 얻기 위해 때마다 꺼내 읽었던 것처럼 나 또한 책장 한쪽에 예쁘게 진열해 놓고 가끔 꺼내보는 책 중 한 권을 만나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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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나 - 청소년을 위한 규범의 사회학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1
니콜라우스 뉘첼 지음, 라텔슈네크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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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서 한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생 때 높았던 도덕심은 중학생 때 바닥을 친 후 곳등학생 때 다시 어느 정도 회복된다는 기사였다. 때문에 초등학생 때 바르게 도덕성을 쌓아 놓아야만 성인이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높은 도덕성을 갖출 수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예전엔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에서도 도덕 교육을 많이 받았다. 횡단보도 건너는 교육이나 길에 함부로 휴지를 버리면 안되는 등 아주 기초적인 것들부터 시작했다. 그런 교육은 그렇게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부터 학교에서도 차근차근 몸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이론으로 배운 것은 금방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어 도덕심이 바닥을 치는 이유는, 사춘기에서 비롯되는 반항심 때문이 아닐까...싶다. 사춘기, 모든 현상과 사건, 사물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는 때이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깊이 사유하는 아이들은 그다지 없다. "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런지 궁금은 하지만 그냥 넘기는 것이다. <만들어진 나!>는 그런 의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내 행동에 대한 이유에 대하여.

 

<만들어진 나!>는 "청소년을 위한 규범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이런 제목은 왠지 딱딱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첫 장을 펼치면 나오는 작가의 머리말 페이지를 보는 순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서체와 다양한 크기, 뭔가 대단한 입담처럼 보이는 작가의 머리말 덕에 딱닥하고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이 재밌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본문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규칙"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한다. 규칙이란 무엇이고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규칙과 규범을 지키는 순간 그 사회에 의해 바로 "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작가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청소년 독자를 위해 쓰였지만 성인들이 읽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정말이다. 나 또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자유의지가 아닌,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는 그렇단다.

 

"규범의 고유한 삶은 규범이 완전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규범을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은 이미 생겨난 규범을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이 만든 규범들은 인간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삶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55p

 

처음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혼자 살아 움직인다니, 정말 놀랍다.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초원에 홀로 떨어져 살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사회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이 체계는 그 사회 안의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동시에 체계가 그 안의 사람들을 형성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형성한다."...125p

 

이제 보니 이 책은 단순한 사회책이 아니다. 철학책이다.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여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책이다. 청소년들은 그들 특유의 귀차니즘으로 이 책을 조금 어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내가 어떻게 형성되고 왜 규칙과 규범들을 지켜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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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영재들 -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영재의 심리학 시리즈
잔 시오파생 지음, 이은주 옮김 / 와이겔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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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을 가끔 본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아이의 능력 보다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좋아서다. 환경적으로 너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자신을 닦아나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 아빠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빈 구멍을 보이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능력 보다 그 아이 자체라는 사실이다.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어른이 된 영재들>은 같은 작가의 전작 <영재의 심리학>의 후편 격인 책이다. 전작을 읽고 전국에서 날아왔다는 어른 영재들의 편지를 받고 작가는 아직 어리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자신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라 어쩔 수 없는 외톨이처럼 삶 속을 방황하는 어른이 된 영재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두 번째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책이 일기가 쉽지는 않다. 우선, 내 주변에 영재가 있거나 나 자신이 영재가 아닌 바에야 특별히 영재들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우리 주변에 어디선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불행한 어른이 된 영재들을 위해, 혹은 이제 막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려 하는 어린 영재나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자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재가 무엇일까. 사실 예전엔 "천재"라는 단어가 있었을 뿐이다. 이 천재는 일반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변의 너무나 큰 기대나 잘못된 양육으로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소문이다. 최근의 영재는 그보다는 좀 더 가벼워 보이는 단어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이기 보다는 어느 한 면에서 뛰어난, 혹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을 우리는 영재라고 부르지 않던가?

 

<어른이 된 영재들>은 영재의 올바른 정의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정의를 읽고 그들의 특성을 읽다 보니 조금 의아하다. 모든 사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나 이들 또한 어리둥절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던 영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만약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을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른다면, 또한 그 과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이해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설명할 수 없어 주변인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면, 차근차근 생각하여 뭔가 결과를 도출하고 싶은데 널뛰듯 뛰는 사고를 따라잡을 수 조차 없다면... 과연 그 지능이 내게 행복감을 안겨줄 것인가.

 

"과도한 지능은 고통이다. 지능은 고통을 주는데, 누구도 그것으로 고통받는 자를 가엾게 여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능은 질투와 공격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고통은 가중된다. "...68p

 

이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쉽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므로 사는 게 훨씬 쉽지 않을까, 간단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주변인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해 계속해서 좌절하고 실망한다면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실제로 이 책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많은 어른이 된 영재들을 위해 쓰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뛰어난 지능을 삶에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영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에게 그렇듯 "자존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뛰어난 지능을 지녔으면서도 성공했다거나 인정받았다고 느끼지 못했을 모든 영재들에게 "이해한다고, 그러니 힘내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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