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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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작가다. 한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자신이 살고자 하는,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가 끝까지 망설이며 소중히 간직했던 작품이 있다고 한다. 바로 <둘도 없는 사이>다. 처음 이 글을 쓰고 난 뒤 그녀의 계약 결혼 상대였던 장 폴 사르트르에게 부여주었고 그가 굳이 출판할 필요가 있냐는 답에 조용히 묻힌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민 없이 없애버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그녀가 죽은 후에도 버리지 않고 간직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둘도 없는 사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발표 유작으로 남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쓸 수밖에 없었지만 버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을까. 보부아르 자신의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경험이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시몬의 둘도 없는 사이였던 자자라고 불렸던 엘리자베스 라쿠엥이다. 학교에서 처음 만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려던 중 21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자자. 시몬은 그 둘도 없는 사이였던 친구의 죽음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테고 그녀의 죽음 뒤에 있는 것들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토대가 되어 씌여진 작품이 <둘도 없는 사이>다.

소설 속에서 시몬과 자자는 실비와 앙드레가 된다. 하지만 앞 부분에서 밝혔듯이 실비와 앙드레의 이야기가 현실 속 시몬과 자자를 완전히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친구를 추모하며 앙드레를 서술하는 실비가 된 시몬을 생각하며 문득문득 가슴이 아팠다. 실비가 처음 앙드레를 만났을 때의 느낌(영롱하고 숭배하고픈 반짝임을 가진 친구), 서서히 교재를 시작하며 그녀의 집안과 어울리며 느끼게 된 것들(자유로워 보였으나 자유롭지 못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친구를 걱정하던), 무엇보다 앙드레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앙드레를 진심으로 이해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펐을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전에 <아주 편안한 죽음> 이라는 작품을 통해 보부아르의 글을 처음 접했다. 그때는 그냥 유명한 사람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는 사실에 기뻤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글 또한 푹 빠져 읽었고 아마 지금 읽는다면 더없이 공감하며 읽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번 <둘도 없는 사이>를 통해 보부아르의 소설들과 자서전, 최종적으로 <제 2의 성>까지 섭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며 책을 읽었다. 나답게 사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던 시절, 그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여성을 나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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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 내 안의 빛이 되어준 말들의 추억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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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가 월간 프로젝트로 1년 간 12권의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으로 매달 곡을 발매했던 것처럼, 가십거리가 가득한 월간지가 매월 출간되는 것처럼 "정여울"이라는 작가의 글을 매달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책을 출간할 정도로 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의 책을 출간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나야 워낙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분명 관심 있고 즐겁게 읽을 것이지만 이 12권의 책이 모두에게 먹힐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는 독자가 봤을 때, 이 기획은 분명 실험이다.

제 때에 읽지 못했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집에는 항상 읽을 책이 가득하고... 그렇게 잠깐 잊혔다가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견! 반가운 마음으로 들고 왔다. 그 이후로도 역시나...(이 묵혔다 읽는 습관은 잘 변하지 않는다ㅠㅠ) 책장에 꽂혀 있다가 드디어, 이제야 읽는다.

<반짝반짝>은 월간 정여울의 6번째 책이다. 각각의 책은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집필되는 것 같다. 여섯 번째 책 <반짝반짝>은 "내 안의 빛이 되어준 말들의 추억"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여울 작가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다양한 책들의 문장들이 각 챕터마다 차지하고 있다.

크~ 이런 운명이라니~! 다른 책도 그냥저냥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지만 이 책들 속의 "말"이 있기에 아마도 특히 이 책을 훨씬 더 애정했을 것 같다. 책에는 정여울 작가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가치관들, 신념이 가득 들어있고 평소 내가 높이 사던 이 작가의 인문학적 소양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이 모든 생각들 하나하나가 나와 모두 공명하는 것은 아니어서(아마도 내 수준이 그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일 터) 그것이 아쉬울 뿐.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작가의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기쁨이다. 그다음 책은 어떤 책일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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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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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금각사>에 이어 두 번째다. 보통은 책을 읽기 전, 읽으면서, 읽은 후에도 작가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알아보는 편인데 <금각사>의 경우 그 내용 자체의 파격성으로 인해 작가에 대해선 완전 잊은 채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만나는 <나쓰코의 모험>은 <금각사>의 작가가 쓴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시작해서 중간중간 그 느낌이 살짝 드었다가,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이구나~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찾아보는 작가의 생애는, 소설이 아무리 서로 다른 내용을 가졌더라도 그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는 작가의 삶을 닮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쓰코의 모험>은 여성 모험 소설이다. 1950년 전후 아직까지 여성의 인권이나 주장이 미미하던 시절, 자신 만의 의지와 주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가던 나쓰코가 일상의 환멸을 느껴 수도원으로 가려 하던 중 만난 한 젊은이를 따라 맞게 되는 모험이다. 그렇다고 그 주체가 젊은이로 옮겨가지 않는다. 마지막 결정까지 나쓰코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 일순간 부잣집 무남독녀의 끝모를 떼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나쓰코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수긍하게 된다.

결국 <금각사>나 <나쓰코의 모험>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열"이다. 자신이 믿고 따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 힘! 그것이 안될 것 같을 때 불을 지르고(범인들의 생각으로는 미친 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나) 여성의 입장에서 그 정열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의 정열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니 수도원을 선택(이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무슨 이 기이한 행동이가 싶은)할 수밖에 없는 그 끝의 끝까지 가는 정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마음 속엔 정열을 품고 살지 않나. 다만 현실 앞에 묻어둘 뿐. 그것을 실행시키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들을 상대할 생각에 골머리가 아프고 그저 조용히 사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나. 그런 면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글에도, 자신의 생애도, 최선을 다 한 이로서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된다.

<금각사>보다는 <나쓰코의 모험>이 다소 가볍고 옛 소설 티가 많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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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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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H마트에서 울다>가 김영하 북클럽으로 지정되었다. 제대로 참여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시간 내어 읽고 참여하려고 노력했던 해였다. 몇몇 권은 한두 달이 지나 읽기도 했고 어떤 책은 거르기도 했다. 때맞춰 읽은 건 딱 한 권 뿐이었던 듯. <H 마트에서 울다>는 그때 구입해 두었던 책이다. 또, 읽기 시작한 지도 어언 세 달이 넘었다.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가수이자 기타리스트가 쓴 에세이로, 작정하고 읽자면 하루 이틀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도 세 달이나 붙잡고 있었던 건, 바쁘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아마도 엄마와 딸의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암에 걸린 엄마와 딸.

처음엔 미국에서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나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어 힘들고 괴롭기만 하던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라 훌훌 잘 읽혔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아빠와는 여전했지만 엄마와는 조심스레 관계를 개선해 나아가던 때, 미셸 자우너는 엄마의 암 발병 소식을 듣는다. 아마 이 즈음부터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엄마는 애증의 관계였다. 엄마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내게 전화해 퍼부었다. 곰살맞고 그런 얘기 잘 들어주는 딸이었다면 참 좋았겠는데, 마흔이 넘어도 딸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스트레스 풀이 대상이냐며 꼬박꼬박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우리 엄마가 한창 바쁠 때 내게 전화 해 "내가 이상하게 걷나 봐. 사람들이 빨리 병원 가보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번도 병원 밖을 나오지 못했다. 뇌 속에 자리잡은 악성 교모세포종 때문이었다.

<H 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11개월의 간병 기간 동안 혹 고통만 준 건 아닌지, 들어주고 싶어도 더이상 들어줄 수 없었던 엄마의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은 게 맞았던 건지 곱씹던 시간은 지났다. 지금은 엄마의 엉뚱함에 웃었던 기억이나 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려 했던 기억만 난다.

미셸 자우너 또한 엄마를 보내고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H 마트에 간다. 엄마가 해주시던 한국 요리, 그 요리를 본인이 직접 하며 엄마의 뒤를 밟는 것이다. 한인 2세로서 자신의 위치와 모든 한국어를 다 알아듣거나 잘 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에게서 받았던 한국 문화 등이 엄마를 추억하는 딸로서 함께 공감하고 함께 추억하게 한다.

읽는 동안보다 책장을 덮고 난 이후 더 감동적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더 늦기 전에,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라고.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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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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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암 환자가 한 명 있다면 가족들은 그 분야에서 거의 전문가가 된다. 어떤 식으로 발병을 하고 어떻게 치료 과정을 밟으며 그것과 상관 없이 어떤 모습으로 내 가족이 스러지는지 낱낱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하나하나 장면으로 찍혀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뭘 잘못했는지의 후회보다 그나마 좋았던 기억이 더 자주 추억된다.

최근 "죽음"에 관한 에세이를 두 편이나 연달아서 읽고 있는 중이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읽다 보니 엄마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두 책 모두 암 환자들의 이야기라 '그래, 엄마도 그랬지~', '우리도 그랬는데'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36살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최고참 레지던트 과정을 성공리에 마쳐갈 때 즈음 폐암 선고를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누구보다 병에 대해 잘 아는 의사가, 자신의 CT 결과를 보며 좌절했을 순간과 그 이후 병을 이겨내려고 하루하루 노력한 날들, 더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인식한 후의 삶까지 작가 폴 칼라니티는 담담하게 때로는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좌절이나 슬픔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이들을 위한 노력과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을 읽다 보면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는 폐암에서 온몸으로 전이된 순간까지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책을 쓰는 목적 또한,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252p)이라고 했다. 죽어가고 있지만 살기로 작정했던 이 젊은 의상의 사색과 생에 대한 통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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