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마르티 레임바흐 지음, 최유나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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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영>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정확히 내가 몇 살에 보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비디오로, TV로... 2~3번은 보았던 것 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볼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썼을까. 아마도 작가 자신이 엄청나게 많은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을 읽고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다니엘>>은 <다잉 영>의 원작소설을 썼던 마르티 레임바흐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내 아이가, 어느 날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니, 기분이라는 것이 느껴지기는 할까? 내가 디디던 땅이 사라지고 하늘이 사라지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 같지 않을까? 내 아이가 세상을 홀로 설 수 없다면 도대체 부모로서 어떻게 해 주어야하는지가 얼마나 막막할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하는 죄책감과 말도 안되는 후회같은 것들로 괴롭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소원, 다니엘이 보통이 되는 것이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 평범한 어린아이로, 슈퍼스타도 천재도 아닌, 그냥 평범한 동네 아이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102p

평범한 아이라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똑똑하기를 바라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라면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정상이 아니라면 그냥 다른아이들처럼 똑같은 보통아이라도 되어주었으면...하고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똑같은 바램이다. 그렇기에 "벽"과 같은 상태의 다니엘을 스티븐과 멜라니는 견딜 수가 없다. 잠시 방황하는 멜라니와 아예 도망쳐버리는 스티븐을 비난할 수는 없다. 방황에서 돌아와 자신만의 주장과 다니엘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다니엘을 붙잡는 멜라니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알아요. 무슨 말인지. 하지만 지금 다니엘은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모님도 살아야죠."
신기하게도, 비나의 그 말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88p

그렇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살아있는 한은 어떠한 역경이라도 이겨내야한다. 그 이름이 바로 "엄마"이다. 

조금씩 조금씩 다니엘이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멜라니가 다니엘의 행동에 소름이 돋듯, 나 또한 소름이 돋는다. 다른 아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행동들이, 다니엘에겐 얼마나 많은 노력과 기다림을 필요로 했는지 함께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정상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아와 비슷해질 수는 있다. 적어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니엘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에 대한 멜라니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아도 날고싶은 만큼 날 수 있다는 믿음! 그 사랑과 믿음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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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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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두 번의 무기명 투표 끝에 대상으로 뽑힌 책이니만큼 카리스마가 있다. 범상치 않은 소재와 "운명"이라는 결코 얕지 않은 주제, 읽는 이를 붙잡아두는 간결하고 시원시원한 문체 덕분이다. 작가는 이 책의 자료 수집을 위해 폐쇄 병동을 직접 방문하여 일주일을 환자들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책 속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직접 미쳐보지 않고서야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나...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니 말이다. 

정신병원은 가보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곳이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들도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미친 그들보다 더욱 미친 우리가 존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어찌보면 무척이나 흔한 과거를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듯한 대그룹 회장의 혼외로 태어난 막내아들의 비행이나 정신병 병력을 가진 어머니의 자살이 트라우마가 된 주인공 수명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런데 처음부터 읽다보면 이 흔한 과거가 전혀 흔하지 않게 읽힌다. 이야기를 풀어나아가는 순서가 뒤에서부터 앞으로 흐르기 때문인것도 같고, 그 과거의 이야기보다 더욱 진솔해보이는 현재(정신병동 안에서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남는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수명과 승민의 운명이 너무하다싶게 두 사람을 몰아붙인다. 과거의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잘못도 없이 가장 혹독한 정신병원에 수감된 두 사람의 운명이 그렇고, 환자들보다 더욱 미친 것처럼 보이는 보호사 점박이의 존재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명은 동료들간의 소통 속에서 공황장애를 조금씩 극복하고(치료 때문이 아닌 것이 더욱 극적이다.) 자신만의 현실과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240p 

"세상에서 도망치는 병이야. 자기한테서도 도망치는 병이고. 그렇지?"...291p 

승민이 수명에게 그토록 단단하고 커다랗게 보였던 이유는, 승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이었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그 용기가 수명에게도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도 세상의 총구를 향해, 운명에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존재로 존재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 또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에 맞서 바로 돌파하기보다는 도망치려하기 때문에 수명의 행동에 공감했다. 또 마지막 수명의 행동과 결정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다면 이 세상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운명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내가 운명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세상의 총구를 향해 질주하는 수명의 마지막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물음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무언가 우울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당신에게.... 현실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마주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세상에서 도망치는 병이야. 자기한테서도 도망치는 병이고. 그렇지?"...2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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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리뷰해주세요.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2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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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이야기라도 영화나 만화라면 마음껏 그 상상의 세계를 이해하고 오히려 푹~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데, 그 매체가 "소설"이라면... 난 그 소설을 외면하게 된다. 아마도 "책"이 주는 나의 편견 때문인 것 같다. 책을 읽고 무언가 얻어야(어떤 식으로든)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SF나 판타지 소설보다는 그저 우리 삶을 그대로 옮긴듯한 서정적인 소설이 더 좋다. 그런데.... "뱀파이어"라니..ㅋ 

1992년판 <드라큘라>에서부터 최근의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 영화는 몇 편인가를 보았다. 그러니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이 내겐 첫 뱀파이어 소설이 된다. 첫 소설에 대한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한 긴장감은 없지만,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내 머릿속에 이야기가 그려진다.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은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이다. 때문에 앞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인물들(초자연적 존재들도 인물에 포함된다면..)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사건"만을 중심으로 다룬 그저그런 소설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소설에 뱀파이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인공인 수키 스택하우스는 그냥 평범한(사실은 아닐지도..^^) 사람이고, 그녀의 남자친구인 빌과 빌의 상사인 에릭이 뱀파이어, 그 외 마이너스나 변종인간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이 존재들에 대한 느낌을 작가의 상상과 적당히 반반 섞어놓은 듯하다. 그래서 완전히 낯설지도, 아주 친숙하지도 않다.

정말로 이 세상에 뱀파이어나 다른 존재들이 존재한다면 꼭 이 소설과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들은 받아들일 것이고, 어떤 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악"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고 모두 착한 것은 아니고, 뱀파이어나 또다른 초자연적 존재들이라고 모두 악한 것은 아니다. 존재 자체를 서로 인정하고 함께 도모해나아가는 내용이... 마음에 든다.  

너무나 완전하게 악한 존재이거나 너무나 멋진 존재로서의 뱀파이어(당근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우훗!)가 아닌, 적당히 멋지고, 적당히 비인간적이고, 적당히 차가운 "빌"이 그래서 더욱 뱀파이어다운 뱀파이어로 등장한다. 때문에 무척이나 "살아있는" 소설이 되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뱀파이어"소설에 푹~ 빠질 수 있는 기회! 적당한 서스펜스와 적당한 즐거움~!!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전편이니까~                         내가 아는 또다른 뱀파이어 소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그저그런 평범한 소설들에 식상해진 당신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는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인 척할 수는 있어요. 인간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 편입되어 살려고 할 때는 말이에요. 우리가 당신 같은 인간이었을 때 어땠는지 가끔은 기억하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당신들과 같은 종족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제 다른 존재예요."...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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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피리 만들기
비부티부샨 반도파댜이 지음, 이덕열 옮김 / 아이필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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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피리 만들기>>는 벵골 소설이다. "벵골"이라는 곳이 나라이던가? 그냥 인도의 한 지역인지, 아님 한 나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에겐 낯선 곳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기대된다. 우리가 친숙한 우리의 문화가 아닌, 우리와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여행과도 같은 설레임이 있다. "문화 체험"은 여행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글"을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벵골의 한 시골 지역, 니슈친디푸르에 가난한 브라만 계급에서 태어난 남매가 있다. 먹을 양식이 없어도 자연을 벗 삼아 끼니를 해결하고, 늘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아내는 이 남매는 마치 "자연인" 같다. 숲에서, 들에서, 정글에서 뛰어놀던 이들은 이 작은 마을 밖의 세상도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그들에겐 감성이 있다. 두르가는 어렸을 때부터 고모로부터 시가를 듣고 자랐고, 아푸는 학자인 아버지의 책을 읽으며 바깥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운다.

"아푸는 가끔 그 나무를 무심코 쳐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머나먼 나라, 아주 먼 나라가 떠올랐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엄마가 들려주던 동화 속 왕자가 사는 곳, 그런 곳이 아닐까?"...51p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생활은 부모님에겐 체면이 있고(학자와 브라만 계급으로서의), 아이들에게는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과 외로움이 있다. 미신을 믿고 무지한 두르가의 엄마가 딸을 믿지 못하고 지켜주지도 못할 때엔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으셨던가.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고, 우리의 삶이 바로 그들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은 마을에서 바깥으로의 호기심이 가득했던 두르가와 남매는 "철길"에 대한 꿈이 있다. 철길을 보고싶은 꿈, 그 철길을 따라 벗어나고픈 꿈. 하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아푸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다른 세계를 열망했던 아푸는 자신의 마을 이외의 곳에 대한 희망보다 자신의 마을에서 누나와 함께 했던 추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떠날 때에야 깨닫게 된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추억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아투리 마녀, 강변의 가트, 우리집, 찰타탈라 옆 오솔길, 라누, 오후와 저녁, 웃고 뛰어놀던 날들, 포투, 누나 얼굴, 이루어 지지 않은 누나의 소망......."...201p

두 아이가 자라나는 성장 소설 안에 한 나라의, 한 지역의 문화와 풍습과 자연을 이렇게 잘 표현해 냈을거라 생각을 못했다. 그저 담담히 두 남매를 따라가고 있을 뿐인데도 바로 우리 이웃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기운이 숲에서 흘러들어오고, 폐허에 있는 포멜로나무는 붉은 빛을 받고 있으며, 반짝이는 갈색 날개를 가진 테로 새는 이쪽저쪽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날아다닌다. 신선한 흙냄새가 가슴속에 꽉 들어차고 상쾌한 마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누구에게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을까?"...121p

아름다운 자연이 느껴지고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벵골 지역이 매우 가깝게 다가온다. 두르가와 아푸의 이야기는... 아푸의 이야기로 끝을 맺었지만 담담한 진행때문인지 슬프지만은 않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새로운 나라의 소설을 읽게 되어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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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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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매일처럼 전쟁을 치른다. “이건 준비했니? 저건 챙겼어?” 내가 어렸을 적 다짐했던 엄마의 모습은 이런 잔소리꾼이 아니었다. ‘난 엄마처럼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지는 않을 거야!’ 언제나 감정적이고 듣기 싫은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어째서 다정한 한 마디, 친밀한 스킨십을 해주지 않으시고 바쁘다고, 덥다고 내치기만 하시며 잔소리만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그때서야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아침마다 아이와 씨름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내 어린 시절의 엄마와 닮아있는지 가끔씩 화들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서운하다고 느꼈던 엄마의 행동들이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러웠다. “너”라고 불리는 큰딸의 모습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엄마의 전화에 짜증내고, 큰소리치며 대들기도 하고, 매일같이 내 전화를 기다릴 엄마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시하기도 한 나. 내 딸과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이해는 했어도 엄마에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는 나이기도 하다. 

아빠와 싸우시거나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실 때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그런 온갖 감정 쏟아 부을 데가 없어 그러시겠지… 이해를 하다가도 왜 두 분은 연세가 드시고도 아직까지 싸우시는지, 이제는 좀 더 사이좋게 지내시면 안 되는지, 왜 꼭 화풀이는 나에게 하시는지…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그럼 꼭 이 책의 엄마와 큰딸처럼 서로 큰소리로 싸우다가 전화기를 쾅! 내려놓고 1주일씩 전화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둘 다 어린애 같다. 그러면서도 내가 엄마를 이해해드리기보다는 왜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건지 모르겠다며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와 큰딸의 관계가 엄마와 나의 관계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고,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냥 최루성 소설이기 때문에 운 것이 아니다. 자꾸만 “이 얘기가 나의 이야기라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순진한 시골분도, 자식에게 100% 헌신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놓으신 분도 아니지만 그런 분이라도 “치매”라는 무서운 병 앞에선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무시와 무관심 속에(언제나 엄마들이 겪는 고통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큰 병을 숨기며 지내올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에필로그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질 때 내 가슴이 찌르르 저려온다.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엄마를 잊어버렸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힘들 때, 곤란에 처했을 때,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엄마이면서 정작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기쁠 때는 엄마를 잊는다. 그 모든 기쁨과 행복이 모두 내 공인 양 생각한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149p)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잠시 엄마를 잊고 있어도 언제나 엄마는 그 자리에 계실 거라고. 아직은 건강하시니 괜찮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갑자기 생길 상실감과 죄책감을 어찌해야 하나?《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신경숙님도 그 점을 이 책에 쓰고 싶으셨나보다. 우리가 깨닫고 난 뒤엔 너무 늦을 수도 있으니 늦기 전에 잊었던 것들을 찾으라고 말이다. 찾은 뒤엔 진심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만끽하라고.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온통 늦은 후회와 죄책감뿐인데, 이 글을 읽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잊어버렸던 엄마를 되찾는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더 늦기 전에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이 흐르고, 엄마를 찾지 못했는데도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많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엄마를 찾지 못해서 아직도 힘들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들만의 생활 속에서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를 찾아낸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예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235p)

그렇게 엄마는 떠나지만 엄마에게 받은 것들을 자양분 삼아 아이들은 엄마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나도 그러할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대로 내 딸에게, 그리고 다시 엄마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희생"을 희생이라고 생각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되돌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딸에게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자신은 없다. "사랑"이라는 면에서는 난 언제나 엄마보다 못한 딸이니까.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랑한다고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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