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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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 정도의 소설을 읽는 것이 좋다. 적당한 시대상과 사회상, 인간미 있는 감동이 있고 유쾌한 유머와 사건들이 있으며 가슴 떨릴만한 로맨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 없이 그냥 죽~ 읽히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오랫동안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에, 그러니까 영국 남쪽과 프랑스 노르망디 사이 채널 제도에 있는 건지 섬은 행정적으로는 영국왕실 소유의 자치령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행정적,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이곳은 나치 독일이 영국을 점령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곳으로 정하고 점령하게 된다. 이 점령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그동안 검진 섬의 주민들은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배경이 독일 점령 하의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가 되지는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아직 그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46년, 런던에 사는 30대의 여성 작가 줄리엣과 건지 아일랜드의 한 문학회(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와의 서신 왕래를 통해 이 책은 진행된다. 처음 책장을 펼치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편지 내용에 조금 당황되기도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와 메모, 전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그 편지와 메모, 전보 내용을 통해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각 등장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스스로 추리하고 유추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알게 되는 이 책의 커다란 줄기는, 건지 아일랜드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의 고통과 그 후의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아이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지치고 쓰러져 죽어갔던 어린 소년들, 그들을 도와주다 포로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줄리엣에게 전해지고 그 편지를 읽음으로서 줄리엣과 같은 감정을 독자들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고 아픔은 있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적인 삶에는 줄리엣도 함께 한다. 

돼지고기 파티를 열었던 것을 숨기기 위해 우연히 문학회를 시작하게 된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사람들은 처음엔 책 한 번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부분이었으나 모임이 거듭되며 새로운 세상에 눈 뜨게 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문학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들이 읽고 토론하고 푹~ 빠졌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책에는 성실하고 착하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꼭 한 사람씩 있을법한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종교에 미친 사람 등도 편지나 편지 속의 내용에 등장하여 꼭 어딘가에 정말 소설 속 사람들이 살고 있을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척이나 따뜻한 소설이다. 이제는 이메일과 메신저로 글씨 자체를 잘 쓰지 않는 이 시대에, 편지 한 장 한 장 무척이나 많은 감정들과 내용과 행동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게 신선했다. 아니, 편지만으로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써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건지 아일랜드에 가보고 싶다. 이 책을 떠올리면 그곳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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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펄프픽션
이강훈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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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후... 꼭 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 "어머~ 괜찮다~"...ㅋㅋ
예전에 "펄프 픽션"이란 영화가 있었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따로 따로 뒤엉키다 모두 한 사건으로 귀결되는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 주연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였다. 빠른 스피드와 그 놀라운 구성에 얼마나 열광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던지... 

<<도쿄 펄프픽션>>은 사진이 있고, 사진 위에 덧입혀진 일러스트가, 그에 따른 짤막한 감각있는 문구들이... 그리고 조금은 엉뚱한 듯 진지한 듯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은 도쿄의 여러 골목과 공원, 카페, 서점 등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이 책은 여행기일까... 소설일까...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일까...^^ 이 구분되어지지 않는 애매한 분류가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인간에게 말을 거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살찐 고양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나의 100퍼센트 그녀일 것 같은 그녀를 찾기 위해 고양이 탐정단에 의뢰하기도 한다. 시모키타자와에선 "숍드로핑"을 하는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함께 숍 드로핑을 시도하다 파출소 신세를 지기도 한다. 지유가오카에선 시간을 빌려준다는 자유여행사에서 시간을 빌려쓰는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하고, 이케부쿠로에선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 외에 계속 이어지는 믿을 수 없지만 저절로 믿어지는 이야기들...

도대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대체로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는 거짓일 거라 생각하고 책에서 인용한 부분은 진실일거다...라고 생각하여 인용된 책을 찾아보니, 없다! 흠~ 이것도 거짓이야? 너무 치밀하잖아? 그럼 어떤 게 진실이지? 너무 궁금하지만.. 굳이 알아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읽는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어쩌면 나도 여러 곳을 여행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새 잠시 가졌을 법한 상상들이기에,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낸 작가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인다. 

도쿄에서 겪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나도 한번쯤...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도쿄의 번화가가 아닌, 조금 떨어진 주택가, 한적한 카페, 유령이라도 나올듯한 고서점 등등... 나도 그런 거리, 장소를 어슬렁거려보고 싶게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한낱 꿈일지라도 전혀 불쾌하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듯한 기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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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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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피부와 핏방울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이 창틀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바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백설공주다. <백설공주>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이다.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그림 형제가 순화시켜 동화로 만들었고 또다시 디즈니를 거쳐 아이들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여러 공주 중 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변이성으로 인해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가 순화시키기 전의 형태와 내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겪기도 한다. 그 내용은 상징으로 가득해서, 잔혹하게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는 <오즈의 마법사>를 <<위키드>>라는 소설로 재탄생시킨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백설공주> 편이다. 책의 첫 장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문장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 소설 속엔 역사와 허구가,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502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가장 본받을만한 군주로 인정했다는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여동생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소녀와 아버지가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 몬테피오레로 방문하며 시작된다. 되도록 정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생활"해 오던 소녀의 아버지 비첸테는 오히려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체사레 보르자의 명령을 받아 자신의 영토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녀 비안카는 당시 미모와 정치적 음모로 악명높았던 루크레치아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나는 루크레치아 보르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를 인색했다. 나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 다리 뒤에 숨어 있는 어둡고 뒤틀린 아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몬테피오레라는 안전지대의 정원에서 소용돌이처럼 타오르는 불길이었다."...67p

소녀 비안카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루크레치아를 바라보며 자신을 인식했고 루크레치아는 아직 소녀의 눈부신 빛을 알아보지 못한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미모와 권력에 당당했고 때문에 자만심에 부풀어있었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리라는...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이 당당함은 시대 흐름과 함께 변한다. 애초부터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에 의해, 오빠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여인이었고 그녀가 오빠를 사랑하는만큼, 사랑했던만큼 그에게 의존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눈부시다. 소녀는 애초부터 갖고있었던 그녀만의 미모 외에 처녀의 순진함, 순수함,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하는 자유로움, 아버지의 애정을 한몸에 받아온 사랑의 힘을 갖고 있었다. 루크레치아가 소녀를 질투한 것은 소녀의 미모라기보다 바로 이 본성이었다. 

"아이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는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혼란스러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 분노와 인내심. 분명한 단순성. 여성스러움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가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걱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마에 그런 걱정거리가 없다는 점이 나로서는 이루지도 맞서지도 못할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그 아이를 가득 채웠다."...257p

이야기의 초점을 비안카에 맞춘다면 이 이야기는 하염없이 지루하고 늘어지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거울아 거울아>>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 모두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가 싶다. 특히, 루크레치아에게 끊임없이 비안카와 연결시켜주고 그들의 소망과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의 이야기는 아닐지......

"거울을 단 하나의 정확한 질문, 거울이 신경 쓰는 유일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탈출구로 이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거울을 빛나게 하는 빛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실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는 언제나 일이 분 정도 진실을 앞서 말한다. 하나의 질문이 만들어지는 동안(예컨대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아니면 오늘 내가 눈가 주름을 몇 개나 갖지 않은 척할 수 있지? 아니면 이것이 살인자의 얼굴인가?) 거울은 질문을 받기도 전에 그 답을 알고 있다."...325~326p)

거울은... 나 자신, 그대로를 비춰주지만 내가 보고 싶은대로만 보고 내맘대로 해석한다.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나 자신과 바로 맞서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 거울아...... 거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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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6
앙드레 지드 지음, 이충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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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랜동안 종교가 없었다. 지금이야 사회 생활의 한 수단(시댁에 맞춰드리고... 내 아이는 종교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으로 아주 조금, 내 새끼 손가락만큼만 종교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 사고방식은 참으로 기독교적이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좁은 문>>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분명 내 중학 시절 이 책을 읽었건만, 책의 내용도... 그때 내가 느꼈을 감정이나 그 무엇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제롬과 알리사... 두 아이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준 외숙모의 존재는 그녀가 끼친 영향만큼이나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에서야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이 여인의 바람과 가출이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나 이들 가문의 청교도적 사상과 엇갈려 이런 비극을 낳았을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길은 좁으니 이를 찾는 사람이 적다."...29p

외숙모의 가출 사건 이후 목사님의 의도적인 이 묵상 주제로 인해 제롬은 알리사를 지켜주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녀에게 걸맞는 덕행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알리사에게는 그녀 어머니의 죄를 대신해 자신의 희생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덕행과 사랑이 한데 어울릴 수만 있다면 그 영혼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때때로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덕행이 있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다 또 어떤 날엔 덕행이란 것이 단지 사랑에 대한 저항으로만 느껴진다."...206p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고단하면 내게 기대렴."하고 말하면, 상대방은 " 너를 곁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대답하는 두 순례자처럼 인생의 길을 따라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니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길은, 주여, 좁은 길이옵니다. 좁아서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 없는 길이옵니다."...209p

알리사는 어째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제롬에 대한 사랑이 함께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제롬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우선시하면서도 어째서 더욱더 다가가지 못한걸까. 수없이 대화하고 편지 왕래를 하면서도 이들의 사랑은 왜 계속해서 어긋나기만 하는건지.... 

이들의 사랑은 플라토닉한 사랑이었다. 이 책의 작가 앙드레 지드와 그의 외사촌 누이이면 부인인(마치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처럼...) 마들렌의 사랑처럼 말이다. 외숙모의 가출에 의한 트라우마가 이들이 육체적인 사랑을 거부하도록 했고 그럼으로서 알리사는 죽음을, 제롬은 순정을 선택했던 것이다. 

책은 작가를 이해하게 해 주고, 작가의 이야기가 책을 이해하게 해 준다. <<좁은 문>>이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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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여행자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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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책이 얼마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정말 자주... 깨닫게 된다. 좋아하는 책이 비슷한 친구가 추천했더라도, 혹은 유명 작가가 추천해서 읽은 책이라도 내게는 영~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여행자>>는 순전히 "앤 타일러"라는 작가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또 공지영님의 <네가 어떤 삶을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에 소개되었다는 글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뭐랄까... 이 책이 "영~ 아니올시다!"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 역시!"하는 느낌도 아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너무나 심란하고, 우울하고 괴로울 때 접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도 이 책이 나와 함께... 힘들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결혼 한 지 20년이 된 부부가 여행 도중 집으로 돌아오며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별거를 결정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1년 전에 햄버거 가게에 갔다가 무장강도에게 총을 맞아 죽은 아들의 부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이유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들의 죽음이 이들의 이별에 촉매제가 되기는 했지만 분명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메이컨은 무엇이든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대로만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그리고 꼭 그렇게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과 연결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웃도, 버스나 기차, 비행기 옆자리 좌석의 사람들과도 필요 이상의 대화나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도, 자신이 관심을 받는 것도 싫어한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요. 걷는 걸 봐요! 당신은 거리로 툭 튀어 나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성큼성큼 걷소. 누군가가 당신을 세우고 위로의 말을 하고 싶어해도, 당신은 그냥 걸어갈 거요. 물론 난 당신이 마음을 쓴다는 걸 알고, 당신 자신도 그걸 알지만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소?"...108p
"가끔은 영영 깁스를 하고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솔직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깁스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가슴팍을 통통 두드려보겠지. 눈구멍을 들여다볼 테고. "메이컨? 거기 있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아무도 모르리라."..108p

이런 그의 폐쇄성이 세라에게는 아들의 죽음도 너무나 잘 견디는 아버지로, 아내의 무너질 듯한 슬픔을 잘 이해해주지도 못하는 남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세라는 자신을 꽁꽁 묶어놓은 메이컨에게서 떠나버렸다. 반면, 메이컨은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류의 애견관리사 뮤리엘을 만남으로서 자신의 세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메이컨은,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패턴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뮤리엘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놀라운 면은 사랑했다. 또 둘이 함께 있을 때 드러나는 자신의 놀라운 면도 사랑했다. 외국이나 다름없는 싱글턴가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냉정하다는 비난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마음이 약하다고 놀림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그저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318p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만 일삼는 뮤리엘과의 사랑을 통해 메이컨은 조금씩 인간다움을, 삶의 즐거움을 찾아간다. 관심도 없던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관심을 갖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는 메이컨. 그리고 죽은 아들에게서 조금씩 벗어나는 메이컨. 여행을 가서도 언제나 자신의 집과 같기를 희망하던 "우연한 여행자" 메이컨은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진짜 모험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은 바로 그거야."...539p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때론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겪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조금씩 극복할 수 있다. 시간이 흐름으로서... 또 다른 삶을 여행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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