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뜨려는 배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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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도전은 순전히 두 남자의 낭만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 편한 아파트 생활이 아닌, 텃밭을 가꾸고 정원을 가꾸고 살고 싶다는 조금 불편한 삶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들도 "무엇이든 구식으로" 된 배를 구입하여 먼 바다까지 나아가 거친 바다를 어디까지든 다녀보자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아...아.... 계획만이라면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꿈을 처절할 정도로 짓밟아놓곤 한다. 필리 모왓은 배를 살 때부터 약간의 사기를 당하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태평하고 긍정적인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계획에 차질이 생겨 도무지 "배다운 배"가 되지를 않고, 배에 대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이 모든 과정이 조금은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웃기기도 하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째서 팔리는 자신의 배를 지키려하기 보다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려하고, 또 어째서 그의 파트너 잭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항해에 대한 고집을 피우는건지... 그래도 이 두 남자의 낭만에서 시작된 모험은 그들의 이 언밸런스한 조합으로 인해, 무척이나 팔팔하고 생생한 그들만의 경험이 되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길고 불확실한 공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느긋한 마음으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배에 묶여 뭍으로 끌려갈 처지가 되자 진정한 뱃사람으로서의 수치심, 분노, 두려움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여행 중에 만난 땅, 그들만의 전통이 살아있고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그 땅에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때론 다투면서 그 땅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씌여진 때가 1969년이므로 한창 산업화가 진행될 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안 뜨려는 배>가 여행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데, 주지사는 내륙의 일자리를 보장한답시고 어부들의 생계를 앗아가고 있는 실정을 이 책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집스런 그들은 그들의 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집념은 팔리의 배 "해피니스어드벤처"호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처음부터 많이 부실한 배였지만, 아무리 수리를 하고 원인을 알아내려고 해도 그녀(책 속에서 이 배를 일컫는 지시대명사)는 요지부동 도통 뜨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의 의지는 언제나 그녀의 고향에서부터 서쪽으로만 가려고 하면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녀의 귀소본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팔리는 어떻게 해도 자꾸 물이 새는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행을 통해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지방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왜 이 배가 자꾸만 가라앉으려 하는지를 대변하려고 한 것 같다. 

"내가 "서쪽으로 출발!"이라고 외치면, 그녀는 "서쪽으로는 싫어!"라고 소리쳤다. 동쪽으론 양처럼 순순히 갔지만, 서쪽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안 가려고 했다."...261p
"조만간 클레어와 나와 앨버트와 해피어드벤처호는 동쪽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강을 떠내려가 짠물 가득한 살아 있는 바다로 갈 것이다. 고요와 안개가 있는 곳으로, 내 작은 배가 난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해피어드 벤처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323p

그들의 여행은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그들을 도와주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고(물론 돈 좀 벌어보겠다고 사기를 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대장정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남아 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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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2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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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시작되었다. 인류를 만들고 보살피는 일에 "게임"이라는 단어를 개입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신들도 그렇게 부른다. 144 명의 신 후보자들 중 단 한 명의 신을 뽑기 위한 "Y 게임". 각각의 신 후보생들은 자신에게 배급된 144 명의 한 무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금 더 진화되고 조금 더 발전된 인류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신 1>은 바로 이 단계를 위한 포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 후보생들이 만들어가는 여러 민족의 발전 단계를 보며 바로 현 지구 인류, 즉 우리의 모습을 비춰 보는 것이다. 이들의 발전 단계는 우리 인류의 역사와 무척이나 비슷한 단계를 밟으며 진화한다. 처음엔 각각의 신 후보생들이 고른 토뎀 동물에서 영감을 얻고 그 동물들이 가진 특성 그대로 진화한다. 씨족 시대를 거쳐 농업을 알게 되고 원시종교가 생겨나게 된다. 신들의 수업이 지구의 역사 진화 단계 그대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신 후보생들이 지구에서 온 자들이라면 그들이 만든 새로운 행성의 문명은 지구의 모습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들이 바라는 유토피아를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신 후보생들은 모계사회를 만들기도 하고, 각자의 성격에 따라 공격성이 강하거나 협력성이 강한 부족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의 개입을 떠나 자연발생적인 경쟁을 통해 인류 스스로 발전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에서는 이 후보생들이 만든 행성의 인류를 통해 그야말로 온갖 세계의 부정과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신 1>에서 언급되었던 "거울효과"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인 것 같다. 이들이 벌이는 진화, 발전, 역사를 통해... 그리고 신들의 강평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행성의 인류들만 진화되고 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천사를 거쳐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된 신 후보생들도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나아간다. 

"따지고 보면 내 영혼은 진화에 성공한 셈이다. 나는 천사를 거쳐 이 단계까지 올라왔다. 나에게는 친구들이 있고, 추구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과 이루고자 하는 사랑의 꿈이 있다. "...510p
"미카엘, 내가 보기에 네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여자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하나야. 너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한걸음씩 더 나아가게 돼. 좌절감과 불행을 느끼지만 그러면서 변화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거지."...514p
"나는 언제나 신이 된다는 것은 모든 권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온갖 책임을 지는 것이다."...527p

미카엘은 자신의 부족에게 애정과 함께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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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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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가 돌아왔다. 제목을 보는 순간, 드디어 미카엘 팽송의 여행과 그의 도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신>>은 저승을 탐사하기 위해 떠났던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수호천사로서 각 나라 3인의 삶을 돌보아주었던 <<천사들의 제국>>의 후편이며 이제 미카엘 팽송은 더욱 높은 단계인 신들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책은 참으로 깊고도 방대한 양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구축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의 신화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옛날부터 내려온 우주 창조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언뜻 보면 너무나 많은 양의 자료에 기가 죽거나 질릴 위험을 없애기 위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몇 가지 주요한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 

우선, 이야기 중간 중간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 5권을 인용하여 앞으로의 내용을 미리 추리해보거나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많은 문학 작품과 유사한 일화를 만들어 내거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성격을 유추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는 읽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미카엘 팽송은 수호천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드디어 신이 될 수 있는 후보가 되어 우주 어느 한 구석에 있는 한 행성의 올림푸스에 와 있다. 무언가를 예언하는 듯한 144명의 후보생들이 모여 낮에는 그리스 신화의 열두 신으로부터 신이 되기 위한 수업을 듣는다. 밤에는 안전한 성 벽을 넘어 올림포스 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그의 동료들 테오노트와 함께 탐험을 한다. 

"디오니소스가 말한 대로라면 이곳은 최후의 시련을 거쳐 영혼의 기나긴 진화를 완성하는 곳이에요.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대면하게 될 것이고, 절대적인 공포와 절대적인 욕막을 경험하게 되겠죠. "...72p

그들은 앞으로 어떤 수업을 받고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일까.... 신이 되기 위한 수업은 마치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행성이 생겨나고, 바다가 생기고, 광물질이 생겨나 식물과 동물 등의 순서로 진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하다. 단, 이러한 모든 과정이 "신"이라는 존재, 즉 신 후보들의 개입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 다를 뿐. 그들이 전혀 다른 창조물들을 만들어내도 결국은 지구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들을 관찰하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알쏭달쏭한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할 것이다. "...259p

이제 그들에겐 각각의 144명 인간들이 주어진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이 인간들을 보살필지... 2권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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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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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d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 "아서 밀러"의 대표작이다. 따라서 이 책은 "희곡"이다. 일반적인 소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희곡의 첫부분(윌리 집의 구조와 조명에 따른 구분을 설명하고 어떤 식으로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의 지문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내가 이 글에서 어떤 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사건의 중요한 점을 어떤 식으로 잡아내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곡이란 그러한 배경에서 느끼고 알 수 있는 사실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가능한 연극을 보는 것처럼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며 읽어나갔다. 

윌리 로먼은 세일즈맨이다. 하지만 이제 60세의 나이로 아주 먼 곳까지 운전해서 성과가 없는 영업을 하고 봉급 없이 커미션만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극의 시작은 어느날 밤이다. 윌리와 대립 관계에 있는 큰아들 비프가 돌아와 있고, 그들은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들은 하는 일 없이 아직도 미래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아버지 윌리가 큰아들 비프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윌리가 젊고, 그의 영업이 승승장구를 이루어 주당 170달러의 커미션을 받고, 셰비 자동차를 몰고 온 가족이 화목했을 당시에는 비프도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로 세 군데의 대학을 골라서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촉망받고 있었다. 

희곡은 이 밤과 그 화려했던 과거를 오가며 그때에 가졌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지금,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변했는지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세일즈맨 윌리의 허풍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아들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아들들의 현재 모습과는 더욱 큰 차이를 나타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가 아들들에 대해 마지막 자존심을 세워 허풍을 떨수록 그가 현재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지가 더욱 강조되기 때문이다. 

"린다  ...(중략)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64p)

윌리 로먼이 얼마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루하루 가족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으나 나이가 들고 이제는 그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는 허무함을 느껴버린 우리와 같다. 윌리는 아들들에게 기대를 걸지만 그 아들들 또한, 그냥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윌리는 자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들들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희곡을 읽고보니, 연극으로도 보고 싶어졌다. 배우마다, 연출자마다 표현 기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세일즈맨"을 만나게 되겠지만 아마도 거의 비슷한 그런 감동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왜인지 이 작품은 하루하루를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슬펐다. 세일즈맨으로서 그가 마지막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 

25년간의 주택 할부금도 모두 갚고, 빚진 것도 없이 이제는 자유로운데 그 자유를 과연 누가 누릴 것인가.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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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키친 사랑을 굽다
리자 팔머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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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상큼하고 발랄한 로맨스 소설이다. "서른 살의 사랑"이 상큼하고 발랄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살짝 맛보았다. 그래서 이 책의 빨간 띠지엔 "미국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별칭이 붙었나보다.^^ 

서른이라는 나이와 파티시에라는 공통된 직업, 그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일명 나쁜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정말 많이 닮아있다. 차이점이라면... 김삼순은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부자집 남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에 이르지만,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이 부자라는 점?ㅋ 바로 이 차이점 때문에 많이 닮은 듯 보이는 이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유명한 작가, 어머니는 대대로 유서 깊은 부자 가문의 후손이며 오빠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 사이에서 절대 비교당하지 않는 직업을 택하다보니 "파티시에"가 된 엘리자베스는 여유시간이 전혀 없는 일과 지지부진한 사랑에 지쳐있다. 그녀의 나이는 서른! 

"그 순간 내 미래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윌에게 나와 모험을 함께하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오래전에 우리 관계에 대해 대화를 했더라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그 모험은, <오즈의 마법사>처럼 황금색 길 끝에 에메랄드 시티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아무런 답도 없이 끝없는 방황만이 존재할까?"...79p

열심히 배우고 익힌 기술로 안정된 직장을 얻어 조금의 여유를 부리고 싶은 나이가 서른이라는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녀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쉴 수도 편안해질 수도 없는 나이이다. 일에서는 성공을 위한 도약과 변화가 필요했고, 사랑에서는 좀 더 안정된 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가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존재도 있다. 이들 남매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돌발 행동과 비난 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가족에게서, 일에서, 사랑에서 독립하고 싶었던 엘리자베스에게 기회가 다가온다. 

자신의 이름을 건, TV 요리 프로그램 섭외와 어느날 다가온 멋진 농구 코치! 엘리자베스는 헐리우드를 유치한 장난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비난을 견디고 자신만의 확신으로 이 TV 프로그램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또, 30년을 헤어짐과 만남의 반복으로 자신을 너무나 외롭게 만들었던 윌과의 지지부진한 관계를 끝내고 새롭게 다가온 사랑, 다니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는 자신을 더이상 드러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을 계속할 수는 없다. 또,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것을 내보여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다니엘과 만들어가는 사랑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조금씩 조금씩 너무나 다른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보듬어주는 일! 

"단점이 아닌 장점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당당한 사람이 될 수 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아직도 이 일이 꿈도 꾸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만류할 다른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이 일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할게요." "...237p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늘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성공과 도약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믿고 가족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다. 

스무 살이 되면, 바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서른 살이 되면 진정한 어른으로서 심적, 육체적으로 매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무 살도... 서른 살도... 그렇지 않았다.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몇 살이건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일에도... 사랑에도 .... 또 자신으로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엘리자베스가 이리저리 고민 하며 하나씩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열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와 다니엘의 귀여운 사랑 때문에 자꾸자꾸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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