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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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나 되는 소제목을 달고 이 많은 것들에 대한 추억, 느낌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책이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이다. 한국판 제목이 직역하다가 만 상태로 멈추어 놓아서 저 "취하다"를 술취하다의 취하다로 생각한 내가...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참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는구나...라고.ㅋ

이 책을 읽다보면 더욱 그렇다. 지극히 에쿠니 가오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여서 같은 주제를 놓고도 사람이 이렇게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아! 이건 누구랑 비슷하네~ 아! 이건 나랑 똑같다! 하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들면 노란 고무줄 이야기... 다른 그 어떤 고무줄보다 노란 고무줄에 애착을 느낀다는 그녀이지만, 나는 이 노란 고무줄이 참 싫다. 물론 꼭 쓰일 곳에 필요할 때면 그냥 사용하게 되지만 왠지 정말 하찮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이 노란 고무줄을 또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색색깔 예쁜 구슬로 만들어진 팔찌도 열 개가 넘는데도 금방 더러워지는 이 노란 고무줄을 몇 개나 모아서 팔에 끼고 다닌다. 

그런가하면 '보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와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그녀에게는 또 무한히 공감한다. 난 싸건 비싸건(보존 상태가 좋은지 안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뚜껑을 열고 1~2시간 후에 마시는 와인보다 일주일이상 묵혀서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화 얘기도 있다. 전화로 수다떠는 것을 좋아한다 = 아줌마..라는 공식에 나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누군가 전화하면 금방 대화가 끊기기 십상이고 상대방은 내가 기분이 안좋은 줄 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을 땐 맞아! 나도 그래!라고 외칠 수밖에..

문장이 짧고 간결하기 때문일까? 글짓기 연습할 때 한 사물을 정해놓고 작문 연습하는 아이들 글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하지만 사실을 묘사한 글이 아닌 그녀만의 경험과 느낌이 들어있는 글이기에 무척 편안하다. 그녀의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 들여다본 느낌.

"한편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과 향수, 목욕할 때 머리를 묶는 핀은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을 이런 사소한 것에 의존하고 있구나, 하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중략)... 하지만 일 때문에 떠난 여행이라 마음대로 쇼핑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필요한 것을 다 가져가야 하니까, 내 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절로 명확해진다."...85p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하찮고 소소한 물건이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자신이 한 물건에 갖는 느낌 또한 가지각색인데 나와 다른 남은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하찮지만 무수한 의미를 지닌 것들, 의미는 없어도 꼭 필요한 것들... 내게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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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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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님의 책은 <<미식견문록>>에 이어 두번째이다. <<미식견문록>>이 "먹는 이야기"를 빗댄 그녀의 지식 창고였다면 <<문화편력기>>는 아예 대놓고 이런 저런 그녀가 아는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녀에게 더욱 공감하고 놀라고 그녀가 정말 좋아진다. 참 이상하다. 나와 요네하라 마리님은 태어난 나라도, 자란 환경도, 지식 수준도(정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모두 다른데도 묘하게 친근감이 일며 동질감이 느껴지니 말이다. 

아마도 말솜씨(글솜씨인가?ㅋ) 덕분이지 싶은데, 딱딱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친근한, 마치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수다"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은 "남성적"이다. 글을 읽다보면 자꾸 남성 작가가 쓴 듯한 착각을 일으켜서 책을 읽으며 번역자 때문인가...했지만 이 느낌은 <<미식견문록>>을 읽을 때도 그러했고, 그때는 번역자가 여성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바로 요네하라 마리님의 또다른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의문은 <제대로 된 언어 구사> 편을 읽으며 풀렸다. 

"좀 더 솔직한 분들은 "딱딱해요, 요네하라 씨 문장은"이라거나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질 것 같다"라고 평한다."..131p

나만이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나보다. 귀국 자녀인 그녀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이 "제대로 된 일본어"라고, 그것을 편하게 다룰 만큼 몸에 익지는 않았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깊이 새긴다는 그녀이지만 나는 독자로서 오히려 이것이 그녀만의 매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한 나라의 관용어나 속담으로, 또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로 이어지며 활자중독자라는 그녀가 알고 있는 재미난, 혹은 통렬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원래 러시아 통역자이기도 하고 체코에서 살았던 경험과 동유럽에 자주 여행했던 경험이 아우러져 이야기는 주로 동유럽(중앙유럽이라 불리기를 원하는..)이 무대가 되지만 그녀에게 한계는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에피소드와 역사, 문화까지 모르는 것이 없을까.. 감탄하게 된다. 

그녀의 글을 읽는 즐거움은 또 있다. 자신만의 색깔이 무척이나 뚜렷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처럼 자신의 정치, 사회 비판도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읽는 나도 함께 낄낄거리며 "오호~"하는 기분이 되고만다. 심장에 털이 난 사람들만이 동시통역자일 수 있다는 그녀가,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힘이 떨어진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야심이나 속셈이 없다는 증거인 셈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가, 이제는 새로운 책을 낼 수 없음에 조금 안타깝다. 

두 편의 수필을 읽고나니 그녀가 쓴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그녀의 수필들처럼 친근할까,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을까, 위트로 가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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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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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이미 상당히 진행된 후에 발견되었으니, 어쩌면 20년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할머니 자신은 물론,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가족들과 그 외 가족들의 생활과 관계가 모두 무너졌음은 물론이다. 난 할머니 때문에 엄마, 아빠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싫었고, 가끔 우리집에 와 계시는 할머니의 하고 또 하시는 말씀과 밤마다 돌아다니시는 습관, 잠시만 눈을 떼면 자꾸 탈출하시는 그 완력(힘도 어찌나 센지..)이 너무 싫었다. 그때엔 어리기도 했지만 치매라는 병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라서 자꾸 할머니 탓만 했었던 것 같다. 

예전엔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들만 걸리는 병인줄 알았던 치매가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을 달고 젊은 사람들도 걸릴 수 있는, 나이들어 저절로 생기는 현상이 아닌, 하나의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조발성 알츠하이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이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어떤 매체로도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본인에 초점이 맞춰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병으로 인한 가족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무시못할 가장 중요한 점이기 때문에)에 주로 관심을 보여왔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50세의 하버드 심리학 종신 교수 앨리스가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 병을 앓는 그녀의 사고를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워낙 젊고 튼튼하고 똑똑한 앨리스였기에 그녀는 더욱 이 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폐경기 현상일 거라고, 아니면 자신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고 생각했던 현상들이 사실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앨리스는 더욱 힘들어한다.

소설은 철저하게 앨리스의 의식을 따라가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앨리스의 행동과 생각을 따라 그녀가 해야하는데 잊었던 것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고 독자만 기억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 졸이고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병에 걸리기 전의 "나"가 있고, 자신이 알아왔던 수많은 기억과 행동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가 있다면, 후자쪽의 나는...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추억과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해도 과연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걸일까... 앨리스는 자신의 뇌가 무너지기 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고 자신다운 자신으로 남기 위해 미래의 앨리스에게 단서들을 남긴다. 하지만 앨리스의 기억은 점점 왜곡되고 잊혀진다. 

치매는 워낙 긴 싸움이라 가족들은 지치고 힘들어한다. 이 책은 이런 가족들의 반응들도 잘 다루고 있다. 남편 존은 점점 망가지는(어디까지나 자신의 눈에) 앨리스를 계속 보고있기가 힘들어 더욱 일에 매진하고, 그녀의 자녀들은 그녀 앞에서도 그녀가 없는듯이 그녀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이런 모습들은 실제 치매 환자의 가족들 중에서도 아주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앨리스의 생각을 따라 읽으며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이들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못한 행동들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앨리스는 비록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나 남편을 못알아볼 정도로 심해진 환자라도 앨리스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다. 

"여러분, 우리에게 제한을 두지 말고 힘을 주십시오. 척추 부상을 당하거나 팔다리를 잃거나 뇌졸증으로 기능 장애를 갖게 된 환자들의 경우, 그들이 장애를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과 전문가들이 열심히 재활을 도와줍니다. 우리와 손을 잡아 주십시오. 우리가 기억력, 언어, 인지 능력의 손상을 딛고 나름의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326p

책을 읽는내내 할머니를 생각했다. 이 철없는 손녀의 무관심하고 신경질적인 행동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츠하이머 환자 본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도 자신들의 실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말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이해하고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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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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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처음 만났다."(...9p)라는 첫 문장을 읽고 <<내 심장을 쏴라>>를 떠올린 사람은 나 뿐이었을까? 시설에서 만난 두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참 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함을 유지한 반면, <<사과는 잘해요>>는 너무나 섬칫하고 살벌한 배경 속에서 자꾸만 실소를 자아낸다. 아마도 시봉과 진만의, 그 어이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과 행동 때문이리라. 

첫 문장에서 밝혔듯이, 시봉과 나(진만)는 시설에서 만난 사이이다. 언제부터 시설에 있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매일 복지사들에게 맞고, 약을 먹고, 일을 한다. 사건의 시작은 어느날 이들의 방에 새로 들어온 노숙자가 시설로부터 구해달라는 메세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시설의 기둥들이라고 생각했던 시봉과 내가 이 노숙자를 도와 결국 시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시봉의 동생 집으로 온 시봉과 내가 겪는 경험과 그들이 시설 안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오버랩된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비닐을 만지작거리며 내 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분명 큰 죄를 지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25p

복지사들은 시설원들에 대한 자신들의 구타와 폭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죄의 고백"을 원했고, 시봉과 진만은 단지 덜 맞기 위해 없는 죄를 만들어낸 후에, 그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위해 같은 죄를 지었다. 이 죄의 고백은 시봉과 진만이 시설의 반장이 된 후 대리 사과라는 형태를 통해 발전된다. 이 과정은 후에 시설을 나와 그들이 이에 관련된 일을 시작하며 본격화된다.

"핸드백을 뒤지기 전, 시봉과 나는 잠든 시연의 앞에 서서 사과했다. 핸드백을 뒤져서 미안하다고, 돈을 가져가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시연은 말이 없었다. 시연의 지갑엔 지폐가 한 장밖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이미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112p

이들의 죄와 사과는 마치 어느 것이 먼저일까..하는 닭과 계란의 문제인 것 같다. 죄를 짓고나서 사과하는 것이 아닌,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사과하고난 후 죄를 짓는다. 그리고 미리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이들의 순수함(시설에서 맞은 폭행과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모순이지만..)을 생각하면 풋! 하고 웃음이 나와버린다. 

하지만 계속해서 웃을수만은 없다. 이야기는 이들의 모순을 더욱 크게 부풀려 사건은 점점 더 암울해진다. 이야기 진행은 너무나 빠른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빠르기가 다른 탓이다. 이 소설이 가진 진짜 의미를 생각할 시간을 별로 주지 않는다. 머리 속에선 바쁜데 이야기는 끝나버리니 무언가 좀 허전하다. 

'나'는 정말 괜찮은걸까? 언제나 시봉과 함께였지만 이제는 시봉이 없는데 그는 홀로 설 수 있을까? 아부지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도 감정은 아무렇지 않은건가? 이 모든 것은 그저 독자의 몫인지... 아님 나만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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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 - 속수무책 딸의 마지막 러브레터
송화진 지음, 정기훈 각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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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적부터 줄곧 엄마와 싸워왔다. 그런데 하루는 이 싸움을 목격한 친구가(당시 6학년), 넌 엄마랑 친해서 정말 좋겠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도대체 어딜 봐서 얘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고 했던가. 어쩌면 그 친구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말다툼을 통해 서로의 존재와 사랑을 확인하는 관계였음을 이미 눈치챘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모녀의 관계가 이런 애증의 관계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딸과 엄마는 자주 싸우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답답해하고 서로 참견하면서 성에 안차는걸까.

29살 박애자는 정말 가진 것 하나 없이 자신감 하나와 그 당당함으로 살아왔다. 집에선 엄마가 언제나 다리 병신인 민석(오빠)이만 걱정하고 챙기는 것 같고 자신은 아무리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구박만 받아왔기에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하지만 사실 애자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외로워한다.

"넌 안 그런 척, 혼자 센 척해도, 사실은 사랑받으려고 무척 애쓰는 것 같아. 너 모르지? 네가 얼마나 외로워 보이는지. 안 그래도 돼, 애자야. 네가 얼마나 예쁘다고..."..66p

이러한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에게 철벽을 두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엄마에겐 더한 투정과 성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애자>>는 이러한 갈등을 가지고 있는 모녀 관계가 엄마의 투병 생활과 죽음을 통해 화해하고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결론만 놓고 보면 무척이나 뻔해 보이지만 책을 읽고있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워낙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중간중간 웃음과 감동 포인트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최여사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 편 들어줘서 고맙다, 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안 하던 말을 하려니 왠지 손발이 오글거렸다."...175p
"나는 고개만 푹 떨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못해드린 게 많은데, 그걸 너무 뒤늦게 알았단 말입니다."...190p

부모님을 일찍 여읜 우리 남편이 내게 항상 하는 말이다. 늦기 전에 잘 해드리라고.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가 않다. 결혼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저절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무진장 효도하는 효녀가 될 줄 알았건만, 엄마를 이해하는 것도 상냥하게 대해드리는 것도 다 따로 노력이 필요하더란 말이다. 물론 어릴 적 철부지 없던 아이가 이해하던 엄마와 지금의 내가 이해하는 엄마는 다르다. 그렇다고 "애자" 만큼이나 무뚝뚝하고 터프한 내가 갑자기 엄마께 상냥한 한 마디를 해드리기도 쉽지가 않다. 

<<애자>>를 읽으면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 생각이 나서... 우리 엄마도 언젠간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 애자와 함께 울게 된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전화도 자주 안드리고 전화 해도 뚱~한 이 딸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비록 표현은 그래도, 가끔 말대답은 X가지 없게 해도... 같은 편 들어달라고 전화했을 때 요목조목 따져가며 그건 엄마가 틀렸다고 딱부러지게 얘기하는 딸이라도... 그런 딸도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을 울려놓았던 애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엑스트라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던 애자가... 결국은 희미한 미소를 띄울만한 결과를 내어 정말 다행이다. 인생은 그렇게 쓰지만 달콤한 순간이 있기에 살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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