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크리스마스 -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해리 데이비스 지음, 타샤 튜더 그림, 제이 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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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12월 초가 되면 창고에서 트리를 꺼내 마루를 장식하고 며칠을 설레어하며 아이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연말 분위기를 내곤 했는데..(주로 과자파티였지만..^^) 올해는 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트리는 꺼내지도 않았고 아이도 그리 설레어하지 않는 듯하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탄생일이지만, 꼭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이제 이 날은 온 세계 누구나가 즐기는 하나의 파티가 되었다. 그 어떤 날보다 더욱 설레이고 기쁜, 무언가 기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날... 이런 날을 어덯게 하면 더욱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내가 존경하는 타샤님께옵서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시지 않는다. 이 분의 크리스마스는 꼭 한 달 전부터 시작이 되니 그 준비가 조금 거추장스럽고 귀찮게 생각될 수는 있으나 그 준비를 하며 저절로 드는 기대감과 즐거움에 비하면 조금의 수고스러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 뭔가 기대하는 것 자체가 실제로 그 일을 겪는 것과 똑같은 법"...14p

기다리는 것 자체도 즐기라는 말씀이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직접 손으로 만들고 집안을 장식할 리스와 트리에 매달 진저브레드 등도 미리 만들어두면서 하나하나 준비하는 그 즐거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은 이분의 모토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선물의 경우 무척이나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은 뻔하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아이는 마트에서 선물을 고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하늘과 땅 차이인지... 

아이들을 위한 준비일지라도(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해줄 수 없는 때가 있다. 타샤는 이러한 때라도 아이들만의 흥밋거리를 제공하여 그 기다리는 시간조차 훌륭한 놀이와 행사가 되도록 만들줄 아는 센스를 지녔다. 이러한 놀이들은 어느새 가족들만의 행사가 되고, 또 그들만의 풍습으로 자리잡는다. 얼마나 멋진 광경인지! 아이들 몰래 트리를 장식하는 동안 아이들은 인형들을 위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이 인형들의 크리스마스는 전통이 되고... 무엇을 했느냐보다 누구와 했느냐가 더욱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누는 기쁨"을 위해 동물들과 인형들에게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해줄 줄 아는 그 여유가 부럽다. 오랜동안 준비한 덕분에 매년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 않았을까.... 

꼭 이대로 따라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 워낙 문화 차이도 크고 손재주나 성격도 많이 다르니까. 하지만 그 여유와 마음만큼은 역시나 배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늘~ 해마다 하는 전통들은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여유로운 연말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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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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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 설화가 무당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그저 우리나라의 무수한 설화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바리공주가 무당들의 조상이라니...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당들과 바리공주는 역시 통하는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옛날 어느 왕이 딸만 계속 낳다가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갖다 버렸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에 걸려 점을 쳐 보니 바리공주가 저승의 생명수를 가져와야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예 바리공주가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게 되고 저승의 수문장이 살림해주고 아들을 낳아주어야 생명수를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모두 채운 뒤에야 생명수를 가져다 부모를 살려주고 한국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바리공주 설화이다. 

<<바리데기>>는 철저하게 이 바리데기 설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바리공주처럼 똑같이 일곱째로 태어나 숲에 버려졌던 바리는 할머니처럼 무당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녀는 청진에서, 또 무산에서 가족과 함께 힘들고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결국 북한 내의 체제와 기아로 인해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중국으로,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홀홀단신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려울 때마다 그녀를 도와줄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러면서도 쉽게 그녀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마치 바리공주의 업보를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바리의 인생은 너무나 힘이 겹지만 한편으론 끊임없이 이어져있다. 

바리 자신이 무녀의 기질을 타고 태어났기에 이 소설은 무당과 바리데기 설화가 서로 얽혀들어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고 있다. 때로는 그녀의 넋과 몸이 분리될 수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던 숱한 경험들과 할머니와 칠성이의 도움으로(무척이나 수동적인 듯 보이지만 어쩌면 이 또한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씩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바리"라는 여인의 운명과 함께 세계의 숱한 정치, 경제, 사건들을 접할 수 있다. 그야말로 격동의 세기를 바리는 직접 경험하고 겪어냈다. 북한의 기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밀입국,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모든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든 바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더이상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에 대하여 말을 나누다보면 싸움과 굶주림과 질병과 무섭과 엄혹한 장군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는 데에서 끝나곤 했다. 아직도 세상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하루라도 맘 편히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국경을 넘고 있었다. "...217p

바리공주는 자신의 목숨을 저당 잡아 남(비록 부모일지라도)의 목숨을 살리려 한 모든 것을 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온갖 고통을 짊어진 이들의 물음에 저승을 오가며 대답해준 이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바리"가 바리공주와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고통들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안타까움마저 느낀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223p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286p

"희망"이라는 이 두 글자가 작가가 던지는 이 세계의 생명수가 아닐런지.... 또한 나 자신과 우리를 구할 생명수 또한 희망일 것이다. 200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뉴스에선 오늘도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내일은, 2010년엔... 나도, 우리 모두가... 더 큰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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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쪽지 - 여섯 살 소녀 엘레나가 남기고 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키스 & 브룩 데저리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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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7살이다. 12월 초에는 신종 플루 확진을 받았고, 어제는 장염 진단을 받았다. 평소 워낙 건강한 편이고 열이 잘 나지 않는 아이인데 한 번 열이 오르면 조금 심하게 앓는 바람에 12월 들어 벌써 두 번이나 노심초사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가 좀 회복될라치면 이미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잔소리에... 잔소리에... 잔소리. 

이러한 시기에 <<남겨진 쪽지>>를 읽게 된 건 "엄마"로서 소홀했을지도 모르는 내게 무언가 가르침을 주기 위한 엘레나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엄마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엘레나와 딸을 계속 오버랩 시켰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충분히 사랑해주라고... 지금 바로 이 순간, 순간에 사랑한다고 말해주라고.... 이 책은 내게 그렇게 말한다. 

"그들 모두 이 단순한 일기가 자신들에게 자녀를 사랑하고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이들은 이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었다고 했다. "...17p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어린 동생 그레이시가 언니 엘레나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적기 시작했다는 이 부모의 일기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과 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들에게 큰 교훈을 준 것이다. 아이들이 더이상 귀찮은 존재가 아님을, 그리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여섯 살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질병이기에 엘레나가 어떻게 이 힘든 치료 과정을 버텼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엘레나는 장난감보다,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보다, 자신을 빛나게 해 줄 그 어떤 아름다운 장신구나 드레스보다... 더 간절하게 자신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 어린 아이가 왜 자신에게만 이런 병이 생긴 건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또한 자신이 언젠가는(생각보다 더 빨리)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가족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잔뜩 남겨놓았다. 엄마, 아빠, 그레이스를 사랑한다고... 엘레나가 떠나고 난 후 발견되는 이러한 쪽지들은 남은 가족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줄지! 

이 일기들을 읽다보면 엘레나가 얼마나 진지하고,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인지 저절로 알 수 있다. 비극이 예견된 이야기임에도 일기 속에는 아주 소소한 행복이, 일상의 작은 발견들이 가득하다. 아이가 어떤 치료로 어떻게 허물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엘레나의 부어오른 뺨이 두드러지는 사진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자꾸 눈물이 난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엘레나 부모의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아서... 또 눈물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고, 언젠가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대신에 삶의 소박한 순간들을 소중히 하며 평화를 찾는다. 엘레나는 우리의 선생이었고, 그 아이가 남긴 교훈은 집 안 곳곳에 숨겨진 분홍색 하트 모양 쪽지들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엘레나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끈끈한 가족애로 뭉쳐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293p

내 딸에게 미안하다. 잘 때마다 읽어주던 동화책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작은 포옹과 뽀뽀만이 남았다. 따스한 눈길로 진심으로 아이에게 마음을 전하던 때가 언제던가! 그저 가족이니까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대신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인데, 일반 어른 대하듯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된다. 엘레나의 이야기가 최선을 다해 바로 지금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바로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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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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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영국으로 온 난민 소녀의 "잉글랜드 드림"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 책이 주는 중압감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선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이(정말로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일어나고 역시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으며 누군가는 죽거나 그 고통을 안은채 살아간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무척이나 다차원적이다. 한 번은 리틀 비의 이야기를 통해, 다음은 새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이야기 어느 곳에 공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공백들은 결국 또다른 어느 곳에서 채워지고 있으니... 

리틀 비는 나이지리아에서 배에 잠입해 영국으로 들어왔고, 도착하자마자 난민 수용소에 갇힌 채 2년의 세월을 보낸다. 수용소 안에서 리틀 비가 살아날 수 있었던 힘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살 방법을 생각해내고 수도없이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녀는 수용소에서 허가증도 없이 풀려나게 되고 2년 전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만났던 앤드루를 찾아간다. 

새라는 2년 전 나이지리아에 휴가를 다녀온 후, 그 전부터 불안하던 가정생활이 더욱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 앤드루의 자살! 장례식 날 찾아온 리틀 비를 보고 그녀는 깨닫는다. 이제 그녀의 삶이 무너져버렸고 "본성에 대적하기 위해 면밀하게 짜놓은 방어물들 - 뻔뻔스러운 잡지, 잘생긴 남편, 엄마 노릇이라는 마지노선, 불륜 - 이 얼마나 어리석어"(...154p) 보이는지... 2년 전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일은 그들에겐 견딜 수없이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일어나선 안될 일이었고, 누군가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던 일.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2년 후 다시 재회하며 또다른 아픔을 만들어냈다. 

<<리틀 비>>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어려움이 처했을 때, 자신의 이익에 우선하여 순수하게 손 내밀어줄 수 있는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게 되는 것에 대하여. 

"타협? 성숙해진다는 것 참 슬프지 않아? 다들 찰리처럼 시작해. 악당을 모두 죽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출발하는 거야. 그러다가 조금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아마 리틀 비 나이쯤 될까, 세상의 악의 일부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자신이 악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그리고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좀 더 편안해지고 자신 안에서 발견한 악이 정말 그렇게 악한 건지 자문하기 시작해. 그러면서 10퍼센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거야."
"아마 그게 인간으로 성장하는 걸 거야, 새라."...335p

누구나 자신의 선과 악을 비교하며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에 고민하지 않는가. 소설 속에선 누구도 절대 "선"이 아니지만 결국은 새라도, 리틀 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모습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그 모습을 보고 또 다른 희생을 낳는 모습에... 그 조그만 희망 하나라도 언젠가는 조금씩 번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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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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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달 동안이나 9~10페이지(책 본론의 시작부분이며 핀란드 국민들이 왜 우울증을 많이 앓는지를 설명한느 부분)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꺼냈다를 반복하다가 어제부터서야 드디어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싫어했던 그 앞부분은 그게 끝이었는데 그부분을 지나가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발한 자살 여행"이라는 무언가 유머러스하면서 재미있을 듯한 제목과 달리 정말로 우울한 그 앞 페이지를 견딜 수가 없었나보다. 이 책... 끝까지 우울하면 어쩌나..싶어서.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인생의 어떤 의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렐로넨은 드디어 자살할 결심을 하고 자신이 죽을 장소를 찾아 한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 막 자살을 준비하여 죽음에 문턱에 들어서려는 켐파이넨 대령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이 기막힌 우연은 "자살" 시도 의지를 막았으며 두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된다.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은 인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몰아쳐 극한의 상황을 만들곤 한다. 그 때 그의 곁에 그를 위로하고 공감해줄 그 누구도 없다면... 그 사람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갔던 이들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삶에의 의지를 다질 수도 있다. 렐로넨과 켐파이넨 대령이 그러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경험에의 동질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로했으며 어쩌면 조금 더 이 시도를 미루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집단 자살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외로움과 실의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끔찍하게도 언제나 혼자 있는 경우에는, 일상적인 단순한 일을 해결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84p

해가 잘 비치지 않는다는 핀란드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그 중 많은 이들이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핀란드의 날씨, 풍경, 문화에서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점까지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듯하다. 이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대사를 통해, 누군가의 동화 이야기를 통해, 또는 그들의 행동 자체를 통해 아주 잘 드러난다. 굳이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이 다소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핀란드라는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600명에 이르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둘 혹은 셋이 이끄는 인솔자들의 세미나를 통해 100여명 정도로 줄고 이제 행동으로 옮길 자살 여행에는 약 30명만이 함께 행동하게 되는데 이들은 함께 동거동락하며 조금씩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나아간다. 하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는 렐로넨과 켐파이넨 대령이 겪었던 체험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는 것이다. 죽을 뻔한 경험! 

"내 마음속에서 삶의 의욕이 꺼지지 않고 희미하게 불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죽음을 향한 길에서 그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지 뭐요. 나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죽을 생각을 하자 마음이 심란해졌소."...226p
"그러나 그동안에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굳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고향 핀란드에서 엄청나 보였던 무제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고 서서히 깨달았다.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료들과의 긴 여행은 다시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유대감은 자의식을 굳건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좁은 생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자살자들은 새롭게 삶의 재미를 발견했다. 초여름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래가 훨씬 더 밝게 보였다. "...312p

현실의 일에서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 때...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잠깐 지금의 일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과 사랑과 행복을 함께 누리다 오면... (그렇다고 현실의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해도) 그래도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유럽 전역에서 소설을 패러디한 즐거운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이 생겨나기도 했다니, 정말로 기발한 자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죽을 결심을 하고 살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조금의 희망이 있다면... 살아볼만한 가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역시나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삶의 의욕이 되어주었으면 싶고, 내게도 삶의 의욕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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