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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 앞니가 처음 흔들거려 엄마를 따라 치과에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의사 선생님은 전혀 자상하거나 친절한 분이 아니어서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결국 이도 뽑지 못하고 쫓겨났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저 이를 뽑지 못하고 치과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엄마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으며 맞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때 일을 전혀 기억하시지 못하지만 나는 그 한 장면 한 장면까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일로 지금까지 내가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내 잘못이 아닌 상태에서 억울하게 혼났다는 점과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자존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엄마의 행동에 실망했고 때문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부모들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많은 가정에서 그렇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아주고 보살필 의무가 있지만 이 의무는 때로는 권리가 되고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도, 하루에 수십 번씩 이 경계를 왔다갔다 하고는 한다. 내 기분에 따라 소리를 질렀다가 애정 표현을 했다가... 혼자서 반성하기도 하다가 다시 말대답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철학과 기준이 명확하므로(비록 그 기준이 부모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대체 클레어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불편하고 읽기가 힘들던지.... 너무나 일방적인 미움과 폭력 앞에 독자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원치 않던 임신? 몇 년이나 계속되는 야뇨증? 아니면 자신과 너무나 다르게 못생긴 얼굴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내 자식”이라는 이름 앞에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던가?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던데... 도대체 자신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어째서 그토록 밉고 미운 철천지원수가 된 것일까.
“그렇지만 선생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고 아무 기쁨도 없다면요? 선생님은 천국이 즐거운 곳이라고 하셨잖아요? ”...90p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 부정당한다면 어떤 아이가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면 왜 천국에 조금 일찍 도착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형제들 모두가 아닌, 자신 혼자만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토록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어째서 외롭지 않겠는가 말이다. 학교에서의 생활이 더욱 행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아르바이트가 더욱 즐거운 클레어가 어떻게 그러한 생활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클레어는 그만큼 강한 아이였다.
집에서는 당연하고, 학교 선생님들조차 큰 꿈을 갖는 클레어를 인정해주지 않는 생활 속에서도 클레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꿈을 착실히 밟아 나아간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진즉에 삶을 포기했을만한 상황에서도 클레어는 굳세고 꿋꿋하게 하나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견디고, 견디고... 견디면서.
“너다, 클레어.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299p
클레어에게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을 이 한 마디. K 선생님의 이 격려는 클레어를 끝까지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꿈이 된다. 그리고 결국 콘스턴스라는 이름으로 그 꿈을 이루고야 만다.
“나는 생각했다. 내게 요술지팡이가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텐데. 나는 나를 아껴줄 어떤 사람을 줄곧 원했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 왜 그랬단 말인가?
...(중략) ...
나는 언제나 행복을 갈망해왔다. 날이면 날마다 행복하길 바란 것이 아니라 그저 가끔이라도 행복하길 원했다. 행복이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분명히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328p
원서의 부록에는 이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책의 출판 이후 어머니의 고소)이 적혀있다고 하는데 그 부분까지 번역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콘스턴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지만 그녀의 인생을 읽은 독자로서는 그 후의 이야기도 역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역자후기에 소개된 그 간략한 결말 이야기를 읽고는 나도 생각해보았다. 나라면... 내가 클레어였다면 결국은 성공했고, 몇 십년이 흐른 후에라면 그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주 작은 기억의 단편도 잊지 못하고 그 감정에 인상을 찌푸리는 내가, 클레어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당신은, 당신이라면... 용서하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