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the Wedding, 1890 - Konstantin Makovsky - WikiArt.org


아래 옮긴 글에 안나가 어떻게 결혼에 이르렀는지 과정이 나온다.


그가 현 지사로 재직 중일 때, 현의 부유한 귀부인인 안나의 숙모가 이미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현 지사로서는 그래도 젊은 편이었던 그에게 자기 조카딸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고, 청혼을 하든지 아니면 그 도시를 떠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긍정적인 근거만큼 부정적인 근거들이 있었으며,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삼가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위배하도록 강요할 만한 결정적인 요인도 없었다. 그러나 안나의 숙모는 지인을 통해서 그가 이미 처녀를 농락했으니 명예의 의무에 따라 청혼을 해야 한다고 자꾸만 암시를 불어넣었다. 결국 그는 청혼을 했고, 신부이자 아내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감정을 바쳤다……. - 제5부의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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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05-1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알렉산드로의 처신이 정말 본받을만하다고 느꼈습니다. 대놓고 바람피운 자기 아내에 대해 이혼을 요구하는 여자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인내심과 상대에 대한 존중은 말할 수 없는 품격이 느껴진다랄까요. 요즘 안나 까레리나를 다시읽으며 알렉산드로의 처신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모든 불륜 아내를 둔 남자의 윤리적 교본 같습니다. 그 고뇌까지여..

서곡 2024-05-15 16:53   좋아요 0 | URL
위에 옮긴 글 중 ˝긍정적인 근거만큼 부정적인 근거들이 있었으며,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삼가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위배하도록 강요할 만한 결정적인 요인도 없었다.˝ --> 그 부정적인 근거들을 더 자세히 듣고 싶기도 합니다

안나의 오빠 스찌바도 외도하잖아요 그것도 상습으로...결국 남매가 다 외도하는데 이 점도 흥미롭습니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이라영 지음)로부터



'버닝'을 해석하는 숨은 코드 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58447



버닝burning. ‘불타는’, ‘타오르는’ 등의 의미인 이 버닝은 무언가를 불태워 없애버리는 어떤 열정이며 힘이다. 버닝은 소멸되는 대상과 태우는 힘 모두를 암시한다. 생성과 파괴 모두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 버닝은 많은 의미를 품은 은유로 활용된다. 그렇기에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제목도 ‘버닝’이다. 이 영화에서 모호하게 사라지는 젊음은 여성이다. 여성은 야망을 불태우는 젊음의 주체가 아니다. 그 젊음을 타오르게 만드는 불씨로 나타나 결국 불태워지는 대상이다. 젊음을 다루고, 시사를 다루는 등 모든 사회 현안에서 여성은 그야말로 ‘버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게 웃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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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가 쓴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연작소설 '젤트빌라 사람들'의 일부)을 재작년 5월에 읽었다. 이웃에 살며 가깝게 자란 두 젊은이는 집안 간의 토지분쟁에 휘말려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켈러의 단편 소설 (독일문학사, 1989. 4. 1., 프란츠 마르티니, 황현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50962&cid=60603&categoryId=60603



By Roland zh - Own work,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 사진 속 켈러 기념비는 그의 고향인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 


'녹색의 하인리히'가 올 4월 새 번역이 나왔다.



구경꾼들의 놀라움에는 아주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둘의 불행에 대한 연민, 그들 부친의 영락과 비행에 대한 경멸, 보통이 넘게 거의 고귀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 하나가 된 두 연인의 행복에 대한 질투심이 동시에 발동했다. 이 거친 시골 사람들에게는 두 젊은이가 자신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서로에게 몰두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마치 둘이 버림받고 가난해진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마침내 두 연인이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놀랍게도 사방에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는 사람들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인사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다. 이러한 어색함과 불친절함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당황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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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iper Tree - Kay Nielsen - WikiArt.org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오선민) - '언제나 당신 곁에는 죽음의 입김이 : 「노간주나무」'


고전동화를 재창작한 소설집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제목 출처가 그림 동화 '노간주나무' .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다네. 내 어린 여동생 마를렌이, 내 뼈를 모두 모아 비단 손수건에 담아 묶고, 노간주나무 밑에 놓아주었다네, 짹짹, 지지배배, 난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가!

My mother she killed me,
My father he ate me,
My sister, little Marlinchen,
Gathered together all my bones,
Tied them in a silken handkerchief,
Laid them beneath the juniper-tree,
Kywitt, kywitt, what a beautiful bird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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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박영희)로부터 옮긴다. 

Aurora Leigh, 1881 By Edith Martineau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걷기의 즐거움'이란 책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오로라 리' 가 들어 있는데,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6부 고통의 힘: 19세기 여성의 시' 중 '15장 체념의 미학'과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 문학' 에 수록된 '페미니스트 시학을 향하여 (일레인 쇼월터)'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과 '오로라 리'에 관한 논의가 실려 있음을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Aurora_Leigh

안타깝게도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후에 그녀의 시는 서서히 잊힌다. 그러다 1930년에 버지니아 울프가 한 신문 칼럼에서 엘리자베스의 서사 소설시(epic novel-poem) "Aurora Leigh"(1856)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사회 문제를 대하는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대중과 평단은 여전히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을 등한히 했다. 그러다 70년대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에 의해 재평가되고 다시 주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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